선악에 대한 나의 결정
1986.04.01 (화), 한국 본부교회
오늘 말씀의 제목은 '선악에 대한 나의 결정'입니다.
악의 환경을 제거하지 않고는 선의 기반 형성이 불가능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는 역사적인 세계입니다. 역사적인 세계라면 그것은 개인 개인의 생활을 남기는 세계, 혹은 가정·국가·세계가 가고 있는 모든 생활의 기록을 남기는 세계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그 세계는 선한 세계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선한 세계가 이루어지지 않았고 악한 세계가 이루어져 나왔습니다. 모든 사람이 바라는 것이 선인데도 불구하고 바라지 않는 악의 세계가 뒤따라서 이루어져 나왔던 것입니다. 이러한 것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선과 악의 기원이 어디 있느냐? 그걸 따져 간다면 우리 인류 시조, 조상까지 올라갑니다. 우리 인류시조가 선한 조상이 되었느냐, 악한 조상이 되었느냐? 만약에 선한 조상이 되었더라면 선한 세계가 출발하여서 선한 세계의 씨를 뿌리는 거와 마찬가지가 되어 가지고 선한 세계의 씨가 싹이 터서 자라 가지고 그다음엔 꽃이 피고 열매를 맺었을 것입니다.
그것이 순환법도에 따라서 연속적으로 개인적인 선한 결과를 수확해야 되고, 또 가정적인 선한 결과를 수확해야 되고, 국가면 국가 자체가 선한 결과를 거두어야 하고, 혹은 세계면 세계가 그런 결과에 도달해야 됩니다. 더 나아가서는, 통일교회의 술어를 인용해서 말하면, 천주적인 선한 결실을 가져와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선한 주인이 있다면 그분이 기뻐할 것이 아니겠느냐는 것입니다.
만일에 하나님이 계신다면 하나님은 물론 나 개인이 선하기를 원하지요. 그러나 그것을 넘어서 가정이 선하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개인과 가정 중 어느 편이 더 선하기를 바랄 것이냐 할 때, 가정이 선하기를 바라는 것은 자연적인 이치입니다. 가정보다도 사회가 선하기를 바라고, 사회보다도 국가가 선하기를 바라고, 국가보다도 세계, 세계보다도 천주가 선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바라시는 하나님이 계시다면 그 하나님은 처음서부터 그러한 마음을 가졌을 것이고, 그러한 선한 세계를 이루기 위해서 우리 인간과의 관계를 시작했을 것입니다. 개인·가정·종족·민족·국가·세계적으로 이런 관계의 세계가 벌어졌을 것이라는 말입니다.
아무리 하나님이라 하더라도 하나님 혼자는, 하나님 혼자 있어서는 선한 세계가 필요 없습니다. 선한 세계라는 것은 관계의 세계로 연결되는 데 필요한 것입니다. 내가 아무리 선하더라도 선한 상대가 없으면 안 됩니다, 관계세계에서는. 또 선한 상대가 있더라도 선한 환경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함께 사는 부부가 있다면 부부를 중심삼은 형제지간 혹은 사회 국가의 환경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 모든 환경과 그 모든 상대적 관계가 서로서로 격차 없이 화동하고 화합할 수 있는 그런 세계여야 합니다.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도 기뻐할 수 있고, 낮은 자리에 있는 사람도 기뻐할 수 있고, 그 환경을 대하고 있는 전부가 기뻐할 수 있어야 될 것입니다.
자, 이렇게 볼 때, 선악의 기원에 있어서 우리의 인간 조상이 만약에 선하지 못하였고 악하게 되어 악한 기원에서 출발하였다면 그 악한 기원과 선한 기원이…. 이렇게 볼 때, 본래부터 인간이 가야 할 것이 선의 출발이었는데 악한 기원이 생겨났다면 선이 생겨난 기원 앞에 혹은 중간에 악이 타고 들어왔다는 뜻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느 것이 먼저냐 하는 문제를 볼 때, 악이 먼저일 수는 없습니다. 선이 먼저여야 되는 것입니다. 선이 먼저 되어야 할 것인데 만일 악이 먼저 되었다면 어떻게 될 것이냐? 여기서는 불상사가 벌어지는 거예요. 이렇게 바로 돌아야 할 것인데도 불구하고 외로 돌기 시작했다 하면 문제가 크다는 거예요. 출발 당시에, 선이 움직이기 시작한 당시에 바로 돌기 시작했다면 그 움직이는 것은 영원히 바로 돌아갔을 것입니다. 외로 돌아갈래야 돌아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돌기 시작하여 속도가 가해졌다면 그 선의 순환권 내에서는 악의 출발이, 악의 시작이 그것을 막을 수 없을 것이 아니냐 이거예요.
이렇게 볼 때, 만일 악이 먼저 출발했다면 문제가 큰 것입니다. 악을 뿌렸으면, 악이 먼저이면 어디까지나 악이 우선권을 갖고 개인에게 있어서나 가정에 있어서나 사회에 있어서나 국가, 세계에 있어서 악의 영향권이 먼저 미쳐질 것이 아니냐 이거예요. 그러면 이것을 제지해 놓지 않고서는, 그 움직이는 환경, 그 순환하는 운동의 환경을 제지해 버리고, 제거시키지 않고는 선의 기반 형성이 불가능한 것입니다.
몸이 가는 길과 마음이 가는 길
우리 인간생활에서 우리 자신을 두고 볼 때, 내 자신은 두 세계에 서 있는 것을 알고 있는 것입니다, 악한 세계와 선한 세계. 내 몸과 마음을 두고 볼 때, 어떤 것이 선한 편에 서 있느냐? 보다 영원한 것, 보다 변치 않는 것입니다. 선이라는 것은 변치 않습니다. 참 이렇게 볼 때, 참이라는 것은 그 본질에 있어서 변치 않고 영원한 것에 가까운 것입니다.
우리가 몸과 마음을 두고 보면 몸보다도 마음이 변치 않는 것입니다. 우리 몸이라는 것은 그 몸을 중심삼고, 몸에서부터 시작합니다. 거기에는 동기라는 것이 깊지 않습니다. 오늘, 자기가 현재 처한 입장에서 모든 걸 생각하게 되지 과거라든가 역사성을 배후로 해 가지고 생각하기를 원치 않는 것입니다.
결국은 뭐냐 하면 몸이라는 것은 현재의 문제를 중심삼고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마음이라는 것은 그래도 역사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지난날과 오늘과 내일이 어떻게 될 것인가를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몸은 동물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좋은 것을 보면 관계를 맺고 싶어하고, 맛있는 것을 보게 되면 먹고 싶어하고, 전부가 오늘 환경에 좋을 수 있는 여건을 언제나 추구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마음은 그렇지 않다는 거예요. 마음은 더 가치적인 것, 더 귀한 것을 찾고자 합니다.
이렇게 볼 때, 내 몸과 마음의 두 사람이, 두 인격이 연결되어 사는데, 마음으로 원하는 길을 가지 않고 몸으로 원하는 길을 가게 마련입니다. 여기서 출발했으면 나는 어디로 갈 것이냐? 마음으로 원하는 세계를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원하는 세계, 내가 좋을 수 있는 환경을 전부 다 찾아가려고 합니다. 가정 중심삼고 다섯 식구가 살면 그 식구들 전체가 좋을 수 있는 것은 제쳐두고 나 좋을 수 있는 것을 찾는다는 것입니다. 4천만 한국 백성이 산다면 4천만 한국 백성을 생각하기보다 나 좋을 수 있는 4천만, 나 좋을 수 있는 40억 인류, 내가 좋아할 수 있는 천주, 이렇게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몸은 현재에서부터 전체를 자기 중심삼고 자기가 좋을 수 있는 길을 찾아가려 합니다. 즉, 자기를 위주해 가지고 모든 것을 희생시키고 모든 것을 부정시키려고 하는 입장에 서는 몸이기 때문에 이 몸을 중심삼은 세계라는 것은 선한 뿌리가 박혀진 것이 아니고 악한 뿌리가 박혀져 있는 것입니다.
마음은 어떠냐 이거예요, 마음은? 마음은 언제나 뉘우치는 거예요. 한마디 말을 잘못했으면 벌써 비교한다는 거예요. 사방 환경을 살핀다는 거지요. 그것이 잘되었는지 못되었는지 어제와 오늘을 비교한다는 거예요. 또, 높고 낮은 것을 측정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마음을 중심삼고는 언제나 헤아리고 살피는 입장에 있는 것입니다. 몸과 다르다는 거예요. 그래서 마음을 따라가는 세계는 몸이 가는 세계와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선한 세계는 어디를 중심삼고 가야 되느냐? 몸을 중심삼고 찾아가는 거기에 선한 세계가 있겠느냐, 마음을 중심삼고 찾아가는 그 세계에 선의 기원으로부터 선의 과정, 선의 결과, 결실을 얻을 수 있는 길이 있겠느냐? 이렇게 볼 때, 몸을 중심삼고는 이게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왜 그러냐? 몸을 중심삼고는 오늘 내가 사는 환경보다도 다음날에 사는 내 환경이 더 커지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큰 것을 바라고 더 커지기를 바란다는 것입니다. 환경의 확대를 바란다는 거예요. 그 확대된 모든 환경을 나를 위하라는 환경으로 집약해 버리는 거예요.
사회가 좋다 할 때, 사회에 내가 무엇을 투입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 사회로부터 내가 무엇을 거두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결국은 이런 입장입니다. 아무리 큰 세계라도, 아무리 세계적 무대에 서더라도 그 세계를 위해서 내가 무엇을 투자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 자체가 내게 투자해 주기를 바란다는 것입니다. 어디까지나 자기를 중심삼은 길을 찾아가는 것이 몸이 가는 길입니다.
그러면 마음의 세계는 어떠냐? 마음의 세계는 다르다는 거지요. 자기가 남보다도 높은 자리에 서기 위해서는 자기를 낮추어야 되고, 희생해야 되고, 전체를 위해야 된다는 개념이 마음세계에는 따라다니는 거예요.
이렇게 볼 때, 악한 것은 어디에 가까우냐? 몸뚱이에 가깝다는 거예요. 외적인 세계를 찾아가는 것은 악에 가깝고 내적인 세계, 마음의 세계를 찾아가는 길은 선에 가깝다, 이렇게 규정을 지을 수 있어요.
참은 두 자리를 취할 수 없어
아까 말했다시피 오늘날 세계는 역사성을 지니고 있는 것입니다. 역사라는 것은 오늘만이 아니예요. 역사 가운데는 우리 조상의 역사가 있는 것입니다. 내가 인간으로 태어나 일생을 사는 데 있어서 내가 그렇게 사는 거와 마찬가지로, 우리 조상도 그렇게 살았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여러분의 후손도 그렇게 사는 것입니다.
사는 데는 어떻게 사느냐? 역사의 흐름이 이렇게 수직으로 내려왔다면 그 수직을 어디로 끌고 가느냐? 수직이 되기를 바라면 수직으로 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왼쪽으로 가서는 안 되는 것이고, 바른쪽으로 가서도 안 되는 것이고, 앞으로 가도 안 되고 뒤로 가도 안 된다구요. 수직은 수직이어야만 되는 것입니다. 수직에 있어서의 본질은 수직이어야만 영원히 선할 수 있는 거예요. 수직이 수직이 되지 못하게 될 때는 아무리 수직 자체가 선하다 하더라도 그것은 선으로 인정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건 모든 측정의 기준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렇지 않아요? 건물을 지을 때는 수평 위의 수직을 중심삼고 전체 건물이 기울어졌다든가 좌우로 치우쳤다든가 높다든가 낮다든가 하는 것이 결정되는 것이 아니냐 이거예요. 수직은 어디까지나 수직이어야 되는 것입니다. 또, 수평은 어디까지나 수평이어야 되는 것입니다. 수직이 수직 될 수 있는 자리를 떠나게 될 때는 참이 아니예요. 수평이 수평의 자리를 떠나게 될 때는 참이 아니예요. 이렇게 되는 거예요.
수직과 수평이 연결되는 그 자리, 여기에 이상(理想)이 있는 것입니다. 수직만 가지고는 이상이 없다구요. 수직은 하나밖에 없는 거예요. 참의 수직이라는 것은 둘이 있을 수 없다구요. 수직이 두 자리를 취할 수 있어요? 수직이라는 것은, 참이 있다면 참이 머물 수 있는 수직은 한 자리밖에 없는 것입니다. 두 자리는 없다구요.
그 한 자리를 기준삼고, 이래야 된다는 그 비교의 기준을 따라 가지고 그럴 수 있는 그 자리에 서게 될 때, 이것은 참의 자리를 대신해 있기 때문에 참입니다. 에이 이퀄 비(A=B), 비 이퀄 에이(B=A)다 이거예요. A가 참이니만큼 B도 참이라는 거예요. 그런 논리가 성립돼요. 그렇지만 수직적 기반이 참된 기반을 갖지 않고는 제2, 제3의 참 될 수 있는 환경적 여건을 찾을 수 없는 것입니다. 마찬가지예요.
혼자만 있으면 이상이 없습니다. 혼자만으로 좋을 수 있어요? 좋다는 것은 상대적 개념이예요. 좋은 세계, 좋은 세계라 하게 되면 나만을 중심삼은 세계가 아니예요. 나 혼자를 중심삼고 좋은 세계가 있을 수 있어요? 좋은 나는 있을 수 있지만 좋은 세계는 있을 수 없다구요. 좋은 가정이 있을 수 없고 좋은 환경이 있을 수 없어요. 좋은 세계라는 것은 관계세계를 중심삼은 역사적 인연을 벗어나서는 형성될 수 없습니다.
이렇게 볼 때, '선악에 대한 나의 결정' 이건 문제가 큰 것입니다. 여러분이 선악에 대한 결정을 해야 된다구요. 백 미터를 달리는 선수들이 스타트 라인에 서게 될 때는 나는 천 미터를 뛰는 것이 아니라 백 미터를 뛰어야 된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천 미터의 개념은 필요 없다 이거예요.
그래서 백 미터를 달리기 위해 모든 정력을 투입해야 된다구요. 거기에 몸 따로 마음 따로 있어 가지고는 백 미터 챔피언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결정이 필요한 것입니다. 스타트 라인에서 출발하게 될 때 '나는 3백 미터다, 5백 미터다, 마라톤 선수다' 하는, 자기의 해당되는 것에 대한 결정이 필요한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오늘날 통일교회 식구들, 통일교회 식구 외 모든 세계 사람들도 그렇겠지만 통일교회 식구인 여러분들이 선악에 대한 결정을 지었느냐? 선한 사람이 가야 할 길을 달려가려고 하는데 자기 나름대로는 갈 수 없는 것입니다. 내가 갈 수 있는 길에 있어 표준이 될 수 없는 거예요.
여러분 그렇지 않아요? 미터면 미터의 원기(原器)가 있는 것입니다. 도량형에 대해서 그 원기가 있는 거예요. 원칙적인 측정 기준이 설정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거기에 따라 제2적인 원칙의 형태를 갖춘 비교 기준에 있어서 동일성을 찾지 않고는 제2적인 결정 비준도 제1을 따를 수 없는 것입니다. 제1과 대등할 수 없는 거예요. 그것은 반드시 제1이 부정할 수밖에 없는 거라구요. 부정을 당해야 되는 입장에 서는 것입니다. 안 그래요?
환경 여건을 받아들이고 소화할 때 행복이 있을 수 있어
선악에 대한 결정을 지었느냐? 우리 인간들은 자타를 막론하고 행복하기를 바랍니다. 행복이라는 것이 뭐냐? 행복이 어디서 찾아지느냐? 행복도 자기 혼자 찾을 수 없는 거예요. 자기 혼자 있으면 외로와요. 행복이라는 개념도 결국은 상대적인 환경권 내를 벗어날 수 없는 거라구요.
자, 악한 세계에 행복이 있을 수 있느냐? 악한 세계 가운데서 행복을 향유할 수 있느냐? 내가 행복하더라도 가정이 불행하게 되면 그 행복은 불행한 가정의 환경에 휩쓸리는 거예요. 아무리 가정이 행복하다 하더라도 나라가 불행하게 되면 나라에 휩쓸리는 거예요. 아무리 나라가 잘산다 하더라도 세계가 전부 다 불행하게 되면 그 불행한 세계 앞에 휩쓸림을 받는 것입니다. 세계가 아무리 행복하다 하더라도 이 우주가 불행한 운세에 말려들게 되면 세계도 불행한 운세에 휩쓸림을 당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내가 찾는 행복은 어디서부터 출발할 것이냐? 문제가 심각한 거예요. 그것이 선한 세계를 넘어 가지고 이루어질 것이냐? 선한 세계 가운데 이루어질 것이냐? 선한 세계를 대하는 데서부터 이루어질 것이냐? 이거 문제입니다. 행복하기를 바라는 사람이 선한 세계…. 선이라는 것을 떼어 놓고는 행복할 수 없는 것입니다. 불행이 뭐냐? 그것을 반대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행복하고 불행하다는 것은 누구를 중심삼고 하는 말이냐? 이게 문제 돼요. 나를 중심삼고 하는 말이냐? 어디를 중심삼고 하는 말이냐 이거예요. 행복이라는 말을 할 때에는 반드시 환경을 중심삼고 말합니다. 그 환경 가운데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들어갈 수 있고, 대한민국이라는 나라 환경 가운데 가정이 들어갈 수 있고, 가정 환경 가운데 내가 들어갈 수 있지, 내 가운데 가정이 들어와 있을 수 없고, 나 가운데 대한민국이 들어와 있을 수 없고, 나 가운데 세계가 들어올 수 없다구요. 안 그래요?
자, 이렇게 볼 때에 내가 세계에 들어가야 돼요. 세계 환경에 들어가야 된다구요. 또, 우리 가정이 세계의 환경에 들어가야 되고 우리 나라가 세계의 환경에 들어가야 됩니다. 그러려면, 나라의 행복을 찾기 위한 사람들이 되려고 한다면, 나라의 행복을 먼저 찾아야 되겠느냐, 개인의 행복을 먼저 찾아야 되겠느냐? '나라든 뭐든 행복이 나부터 시작해야지, 나라부터 시작해야 되느냐?' 그런 생각 한다면 문제가 커요. 가정이 먼저 행복해야 되느냐, 내가 먼저 행복해야 되느냐? 어디를 중심삼고 하는 말이냐?
이렇게 볼 때, 흔히 생각하듯 나를 중심삼고는 할 수 없는 말이라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나를 중심삼는다는 건 모든 걸 부정하는 환경에 선다는 거예요. 자기가 환경을 긍정하고 인정해 가지고 그 긍정된 환경이 행복하기를 바라는 그 기준을 찾지 않고는, 환경적 행복을 찾지 않고는 내 행복이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행복 자체가 자기 개인만을 중심삼은 것이 아니예요. 안 그래요?
여자로 태어났으면 여자에게 행복한 것이 뭐냐? 애기 때는 부모님의 사랑을 받고 자라니 그건 행복할는지 모르지요. 자기가 원하는 것을 자유롭게 공급받을 수 있고, 먹을 것이나 입을 것을 자유롭게 공급받을 수 있어서 행복할는지 모르지만 여자가 장성하게 되면 자기 혼자만이 아니예요. 다시 말해서 하나의 나무로 말하면, 나무의 종대가 있으면 종대가 자라는 데 있어서 가지도 자라게 되는 것이다 이거예요.
가지로서의 나는 행복한 종대를 따라 자라게 되어 있지 종대를 넘어서 자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게 우주의 이치입니다. 그건 뭘 말하느냐? 내가 행복하려면 가정과 같은, 먼저 종대와 같이 자라난 터전 위에 붙어야 돼요. 그래야 내가 행복할 수 있지 종대를 부정하면 행복은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지의 행복이 먼저여야 되겠느냐, 종대의 행복이 먼저여야 되겠느냐? 그건 말할 필요도 없어요. 가정의 행복이 먼저여야 되겠느냐, 내 행복이 먼저여야 되겠느냐 할 때, '내 행복이 먼저다' 그럴 수 없다는 거예요.
선한 세계가 이루어진 다음에야 행복이 있어
이렇게 볼 때에 가지의 행복이 있기 전에 종대의 행복이 선의 조건이 되어야 되고, 내 행복이 있기 전에 가정적 행복이 선의 조건으로 등장하게 마련인 것입니다. 이런 환경 여건을 받아들이고 소화하는 데서만이, 그것을 타고 올라서는 데서만이 내 행복이 있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걸 부정하고, 이걸 흡수시켜 가지고 자기 위주한 기준에서 뿌리를 박고 모든 가지를 돕고자 하면 행복이 있을 수 없어요. 거기에는 문제가 벌어진다구요.
자, 오늘날 세계 사람들은 무엇을 바라느냐? 하나의 세계를 바랍니다, 하나의 세계. 선한 세계를 바라요. 행복한 세계를 바란다 이거예요. 그러면 행복한 세계라는 것이 하나의 세계가 되기 이전에 있느냐, 하나의 세계가 된 이후에 있느냐? 어디겠어요? 하나의 세계 이후에 있어야 된다 이거예요.
선하지 않은 곳에 행복이 있을 수 없어요. 오늘날같이 하나의 세계를 모색해 가는 가운데에는 완전한 행복이 정착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게 보는 거예요. 행복은 어디 있느냐? 선한 세계가 이루어진 그다음부터 있는 거예요.
이렇게 볼 때 행복권이라는 것은 오늘날 하나님이 타락한 인간을 구원하는 구원섭리의 과정에는, 선악이 투쟁하는 과정의 세계에는 있을 수 없습니다. 투쟁사가 끝나 가지고 선이면 선한 것의 결정이 이루어지기 전에는 있을 수 없습니다. 결정된 것이 한 나라 기준 이상의 결정권이어야 되는데 그것이 생겨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이상(理想)의 환경적 여건이 성립 안 되고는 나라 형성의 기준이 거기 들어가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인간은 나라의 행복을 추구하기 전에 선한 세계를 추구해야 됩니다. 왜 그래야 되느냐? 선한 세계가 없는 데 선한 나라가 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선한 나라가 없는 데 선한 사회가 있을 수 없고, 선한 가정이 없는 데 선한 내가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게 봐야만 되는 거예요.
이러한 전제를 두고 볼 때, 우리 역사가 선악의 투쟁 노정의 방향을 따라간다면 오늘날 우리들이 찾고 있는 행복, 우리들이 찾고 있는 선하다는 가치를 우리는 어디서부터 결정해야 되느냐? 결정을 지어야 된다 이거예요. 표준을 정해 가지고 출발과 표준이 일치된 자리에서 결정해야 되는 것입니다. 나는 이러한 목적을 향해 가고 있다 하면 그 목적이 이루어진 후에 행복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세상살이도 그렇잖아요? 학교 다니는 학생이 학기마다 시험을 치르는데 시험을 쳐서 전부 만점을 받고 나서야 행복한 것이지 시험 치는 과정에서 행복할 수 있어요? 아무리 자기가 안심하더라도 그건 행복한 것이 아니예요. 아직까지 선악에 대한 판정이 안 되어 있기 때문에 자기가 결정할 수 있는 기반이 없는 것입니다. 그런 기반이 없는 데는 행복의 기틀이 마련되지 않는 것입니다.
자, 이렇게 볼 때, 여러분들이 자기를 중심삼고 선악에 대한 결정을 지었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냥 따라가는 사람이냐? 아무리 따라가더라도 얼마만큼 가다가는 갈라질 수 있는 사람이냐? 이 세계는 이렇게 가더라도 나는 틀림없이 저리 간다 하는 그런 표준을 정해 가지고 결정하고 가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면 따라가는데 내가 살기 위해 따라가느냐? 내가 하루하루 생활하기 위해서 따라가느냐? 아니예요. 내가 따라가는 것은 이렇게 가 가지고 저렇게 가기 위한 거예요. 타락한 세계를 대해서 복귀섭리를 해 나오는 데에 있어서 하나님이 인간을 따라 나오고 있다 이거예요. 하나님이 인간을 따라 나오는데 왜 따라 나오느냐? 하나님이 따라 나오는 것은 인간들을 다른 곳으로 끌고 가기 위해서 따라오고 있는 것이지 따라가는 그 무리들과 더불어 종말을 보기 위해서가 아니예요. 종말이 되게 될 때는 급변해서 방향을 전환시킬 수 있는 그 길을 가는 하나님이지 그 환경 여건에 휩쓸려 가지고 벼랑에 굴러 떨어질 수 있는 하나님이 아니예요. 아무리 벼랑 끝에 가더라도 돌아서는 것입니다.
그렇게 따라가는 하나님에게는 소망이 있습니다. 소망이 있는데 세계사적인 결단을 지어야 된다는 거예요. 나는 너희들과 다르다 할 수 있는, 급변할 수 있다 할 수 있는…. 이렇기 때문에 따라가지 그렇지 않으면 따라가는 자체가 모순이라는 거예요. 파괴를 내포하는 길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상하는 세계는 절대선만이 존재하는 세계
그러면 여러분이 현재 살고 있는 세계는 선한 세계냐, 악한 세계냐? 하나의 세계를 향해 가는 데는 어차피 선악의 투쟁을 거쳐 나가는 거예요. 그래서 지금 때는…. 하나님이 이상하는 세계는 하나의 세계입니다. 왜? 절대적인 하나님이 생각하시는 그 생각도 절대적이기 때문입니다. 절대적인 것은 하나입니다. 그분이 생각하시는 것도 하나예요. 그분이 이상하는 것도 하나지 둘이 아니라는 거예요. 절대적인 것입니다.
제아무리 방향이 천만 가지라 하더라도 절대적인 하나님이 가는 방향은 하나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늘이 있다면, 이 세계가 절대적인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시작된 기원을 가졌다면 끝날은 틀림없이 복잡할 것입니다. 이 길을 출발해 가지고 전부 다 천 갈래, 만 갈래의 길이…. 이 가운데는 모호하지요. 길이 없다구요. 가는데 이렇게 가지요, 이렇게. 좌로 가나 우로 가나 딱 합해 가지고 가야 됩니다. 합해 가지고 가는 그 자리에서 출발하는데 갈라지는 것이 아니라 직선이 되어야 된다 이거예요. 이걸 모르는 거예요. 개인적인 직선, 가정적인 직선, 종족적인 직선, 민족적인 직선, 국가적인 직선, 세계적인 직선의 방향을 맞추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와중에서 제멋대로 굴러가면서 따라가고 있다구요. 그래서 이것이 출발부터 갈라져 가지고 천만 갈래로 벌어진 것을 수습해 들어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좌우가 혼란된 세계예요, 좌우가. 어디가 옳은지….
지금 그렇지 않아요? 우리 마음의 세계, 유심사관…. 유심사관은 마음의 역사관입니다. 유물사관은 몸의 역사관이예요. 역사라는 것은 생활을 합한 모든 기록, 모든 노정의 표시를 바로한 것입니다. 천태만상의 별의별 일이 돌고 하지만, 출발 당시에 선하였던 우리 마음세계가 있었다면 출발 기원이 스타트(start;시작)할 때에 갈 길이 본래 있었어야 합니다. 그래 가지고 앞으로 연결될 수 있는 것과 직선이 될 수 있는 본래의 길이 있어야 된다구요. 있어야만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이 지금까지 인류역사를 복귀섭리해 나왔는데 어디로 가느냐 하면 정처 없이 흘러가야 된다는 거예요. 정처 없다는 거라구요.
그러니 하나님은 인간에 대한 창조이상이 있어야 됩니다. 그 창조이상은 인간이 시작되는 그날서부터 뚜렷해야 됩니다. 방향도 뚜렷해야 된다구요. 그래서 몸의 사람과 마음의 사람 두 종류의 사람을 뿌렸는데 이 세계의 끝날이 되게 되면 열매가 맺힐 텐데 어떤 것이 참인지 모르고 있다구요. 안 그래요? 그건 까 보아야 돼요.
여러분 그렇지 않아요? 밤송이 같은 것도 보게 되면 크기는 다 마찬가지예요. 어떤 밤송이를 보게 되면 전부 다 같은 모양이지만 가운데를 까 보면 알이 없는 게 있다구요. 보기에는 똑같아요. 그게 숫밤송이인데 그 숫밤송이라는 녀석이 태어난 자리는 알밤송이 녀석과 다르지 않아요. 같은 가지에서 자랐다 이거예요. 도리어 더 클 수도 있어요. 그러나 그것은 숫밤송이가 된다는 거지요. 그럴 때 그것은 소망이 없는 거예요. 지금까지 영양소를 받아 온 모든 전부가 도리어 손해를 끼쳤다는 것입니다. 그건 뭐 불쏘시개밖에 안 돼요. 아무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라는 거예요.
그러니 하나님이 있다면 하나님의 절대적인 생각이 둘일 수 없는 것입니다. 출발에서부터 변할 수 없는 것이요, 과정도 변할 수 없는 것이요, 끝도 변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고장이 났기 때문에 수리하기 위해 끌고 다니면서 왔다갔다했지만 끝날에 가서는 완전히 몸과 마음의 결실의 세계가 벌어진다 이거예요. 유심사관 유물사관, 거 왜 그렇게 되었느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그렇다는 거예요. 심은 대로 거두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둘이 싸울 것이 아니냐? 세계는 어떻게 되느냐? 공산세계도 하나의 세계를 바라고 민주세계도 하나의 세계를 바라고 있습니다. 공산세계의 모순된 사실을 공산당들도 잘 알고 있으니 모순된 사실이 제거된 이상적인 하나의 세계를 바라는 것이고, 민주세계도 모순된 사실을 너무도 잘 아니 그것이 제거된 보다 이상적인 하나의 세계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 하나의 세계는 선악이 공존하는 세계가 아니예요. 선만이, 악이 없는, 선만이 존재하는 세계입니다.
선과 악, 선한 편과 악한 편
그러면 그 선만이 존재하는 세계는 어떻게 되느냐? 시작과 끝이 완전히 주고받을 수 있는 세계입니다. 그 말은 뭐냐? 맨 처음에 하나님이 있었으면 하나님이 시작이니 끝도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이 좋을 수 있는 출발과 좋을 수 있는 과정과 좋을 수 있는 끝을 연결시켜 가지고, 하나님이 처음도 좋고, 과정도 좋고, 지금도 좋다 할 수 있는, 시작과 결과가 통일된, 기쁨으로 결실될 수 있는 기반에 서야 될 것이 아니냐 이거예요. 하나님은 그래야 된다 이거예요. 하나님은 그렇다는 거예요.
아무리 악한 세계의 환경에 들어가 가지고 복잡다단한 입장에서 악한 세계를 구하기 위해 따라 다녔지만 하나님은 질이 다르다는 거예요. 따라다니는 하나님 자체가 질이 같은 자리에서 따라다니지 않았다구요. 다른 입장에서 따라왔다 이거예요. 따라간 것은 네 목적을 협조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악한 세계를, 네가 가는 목적을 파탄시키고 너를 끌어 내기 위한 것이다 이거예요. 다르다는 거예요.
그러면 악한 세계를 대해 하늘이 구원섭리한다는 것은 뭐냐? 악한 세계를 협조해 줘 가지고 악한 세계가 잘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악한 세계를 브레이크를 걸고 파탄시켜서 악한 모든 힘을 제거해 버리고 내가 원하는 세계로 데리고 가겠다 이거예요. 그 말은 뭐냐 하면, 악한 세계를 대해서 하나님은 반대적 방향과 반대적 내용을 지녀 가지고 이것을 제거시키려는 악영향적 내적 인연을 갖고 대한다는 것입니다.
악은 뭐냐? 그걸 그냥 그대로 끌고 가 가지고 벼랑에 떨어뜨려 파괴시키는 것입니다. 서로 싸우고, 자기 주장하고, 서로 부딪치고…. 만일에 선한 세계가 벌어지는데 거기 악이 들어온다면…. 악은 뭐냐 하면 반대라구요. 선한 세계를 따라오지만 선한 세계에 브레이크를 걸고 선한 세계를 파탄시키는 것이 악입니다. 몸과 마음이 언제나 투쟁과정에 있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면 오늘 통일교회가 선편 악편을 말하는데 악편이 뭐냐? 선한 것하고는 달라요. 선편은 선하더라도 얼룩덜룩하다구요. 선이라고 하는 것은 절대적인 선이예요. 또 악편, 악하다고 하는 편, 그편도 얼룩덜룩하다구요.
선과 악이 혼합되어 있더라도 악이 우세하면 악한 편, 선이 우세하면 선한 편이라는 거지요. 절대적 선을 말하는 것이 아니예요. 그러면 여러분 자신도 마찬가지예요. 마음이 하자는 대로 시작서부터 일생 동안 따라가느냐? 아니예요. 마음이 하자는 대로 하다가 또 몸뚱이가 하자는 대로 하는 거예요. 지그자그로 왔다갔다하는 거예요. 선한 편, 악한 편….
여러분을 보게 되면, 선한 것이 열이라면 악한 것은 열이 될 수 없다구요. 악한 것은 반드시 아홉이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야 선편이 되는 거예요. 아홉이 되어야지 악한 것이 열을 넘어서 열 하나가 될 수 있다면 아무리 선한 세계를 추구했댔자 그건 악한 세계가 되기 마련입니다.
하나님이나 사탄보다 더 무서운 존재가 사람
선과 악이 투쟁할 때, 선이 이기느냐 악이 이기느냐? 어떤 게 이겨야 되겠어요? 오늘 인간들은 말하기를 '어, 선이 이겨야지' 한다구요. 선한 편을 따라가겠다는 마음을 가진 사람은 그렇게 답변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악은 '어떤 게 이겨야 되겠어?' 할 때 말하기를 '악이 이겨야지' 그렇게 답변할 것입니다.
그러면 선한 신이 있느냐? 그런 하나님이 있다면 악한 신은 없느냐? 악한 신이 없다면 선한 신이 갈 길을 누가 반대하겠느냐? 이게 문제예요. 그러니까 선한 신도 있고 악한 신도 있다구요. 악한 신, 선한 신이 결국 싸우는데 무엇을 중심삼고? 선한 신, 악한 신 둘이 싸우는 것이 아니예요. 안 그래요? 둘이 싸울 수 없다구요.
절대적인 하나님 앞에 상대적으로 나타나 가지고 싸울 수 있는 무슨 악이 있을 수 없다구요. 그러면 악을 곧장 제거해 버릴 수 있는 거예요. 그렇다면 싸우는데 어떻게 해요? 선신과 악신이 반대되어 가지고 싸우는데 선신 자체, 악신 자체가 싸우는 것이 아닙니다. 여기에는 사람이라는 것이 있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거예요.
선한 신이 가지려고 하는 사람이 있고 악한 신이 가지려고 하는 사람, 이 두 종류의 사람이 있기 때문에 문제라는 거예요. 그 두 종류의 사람이 개인 개인 따로따로 되어 있으면 문제는 간단하다는 거예요. 그러면 선한 편 사람권, 악한 편 사람권으로 갈라졌을 것입니다. 그런데 선한 편 사람, 악한 편 사람으로 아침 저녁으로 교체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것이 뭐냐 하면 소위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게 뭐냐? 하나님이 무서운 게 아니예요. 하나님은 언제나 선한 길을 가는 거예요. 악한 것은 언제나 악한 길을 가는 거예요. 두 길을 못 가요. 악마가 선하고 악할 수 있는 길을 갈 수 없어요. 악마는 악한 길을 가야 돼요. 하나님은 악한 길을 갈 수 없어요. 언제나 선한 길을 가야 됩니다.
그러면 문제가 어디 있느냐? 하나님보다도 악마보다도 사람이 무섭다는 거예요. 사람이 하나님보다 더 무섭고 악마보다 더 무서운 거예요. 왜? 하나님을 골탕먹이면서, 따라오던 하나님을 마음대로 차 버리고 따라오던 사탄을 마음대로 아침 저녁으로, 시시각각으로 차 버리면 하나님도 나가떨어지고 악마도 나가떨어지게 된다 이거예요.
그래, 하나님도 무서워하고 사탄도 무서워하는 것이 뭐냐? 하나님과 악마가 서로 무서워하는 것이 아니예요. 하나님과 악마 서로 싸웠으면 벌써 끝장 다 났어요. 하나님보다 더 무서운 패가 있는데 그것이 나라는 사람이예요. 요사스러운 나라는 사람이라구요. 눈을 깜빡깜빡 요리하고 자기 이익만 취하고 왔다갔다, 조금만 불편하면 '나 요리 갈 거야, 엄만 저리 가' 하며 자기 마음대로 돌아서 가는 거예요. 뒤로 돌아갔다가, 앞으로 갔다가, 옆으로 빠졌다가 또 거꾸로 살살 빠져 나가는 거예요. 하나님이 그래요? 하나님은 일방통행이예요. 악마도 일방통행이라구요.
그래 악마는 뭐냐? 왼편, 좌익, 이게 사탄편이 가는 길이예요. 그걸 알아야 돼요. 좌익이라는 말이 왜 생겼는지 알아요? 십자가에서 생겼어요. 십자가에서부터 생긴 거예요. 오른편 강도, 왼편 강도가 생긴 그날서부터 이게 시작한 거라구요. 우익, 그건 누가 정했어요? 인간들이 말한 거예요. 그렇잖아요? 인심은 곧 천심이라구요. 사람의 마음에 어린 것은 말로 나타나기 때문에 그런 말이 나온 거예요. 인간들이 가야 할 우익 길, 좌익 길의 두 갈래 길에서 끌려 다니는 것입니다.
이것이 먼 거리에서 둘이 끌어당기니, 시시각각으로 끌고 다니니 이거 죽을 지경이라구요. 지금 세계는 도탄 중에 있는 거예요. 우익, 좌익이 싸우는 과정에서 나라의 기반이 깨져 나가고, 가정의 기반이 깨져 나가고, 사회가 다 깨져 나간 것입니다. '이거 옛날에 좋던 가정이 어디 갔어? 나라가 어디 갔어?' 하지만 다 잃어버린 거예요. 그것을 다 잃어버렸기 때문에 이제는 '나' 중심삼고 나 제일주의라고 하는 거예요. 이것이 지금 미국에 있어서 자기 중심삼은 주의, 자기세대라고 말하는 그거예요. 미 제너레이션(me generation;자기세대)이라고 말하고 있는 거라구요.
여러분, 피곤하지 않아요? 여기서 살겠다고 등불을 켜고, 살아 보겠다고 왔다갔다하는 것을 볼 때 얼마나 기가 차요. 어디 가서 정착할 거예요? 대한민국이 어디 가 정착할 것이고 대통령은 어디 가 정착할 거예요? 국회의원들은 어디 가 정착할 거예요? 정착한다고 하지만 마음대로 안 돼요.
이 통일교회 영신들, 어디 가서 정착할 거예요? 문선생이고 뭣이고 따라다녀도 이익이 없어요. 지금까지 몇십 년씩 따라다니느라고 고달프지요? 고달픈 보따리예요. 고달프니 보따리 집어던지면 좋겠는데 못 던져요. 집어던졌다가는 또 가 쥐어야 돼요. 휙 집어던졌다가는 또 가 쥐어야 된다구요. 그래도 돌아다녀 보면 이게 낫거든요. (웃음)
그거 솔직한 얘기지요. 내가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그거 못 느끼고 돌아다녔겠어요? 도망가서 더 좋을 수 있으면 도망갔지요. 가야 별수없으니 이 길을 가는 거예요. 욕을 먹고 감옥에 끌려다니면서…. 그게 할 짓이예요? 못 할 짓인 줄 알지만 할 수 없다 이거예요. 이러지 않고는 가망성이 없어요. 소망이 있을 수 없다구요.
영원히 변하지 않는 나를 찾는 것이 문제
자, 이렇게 볼 때 문제가 컸지요. 그러니 이 세계적인 흐름 가운데 좌익이…. 모스크바에서 전세계 사람을 끌어가려고 하는데 워싱턴 사람은 그런 욕망이 없어요. 좌익은 그르다는 거예요. 왼편 강도라구요. 이 세계를 예수님을 중심삼고 가르기 시작한 거예요. 두 패로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악한 세계, 그 전까지는 악이예요, 악편이예요. 우익이 안 생겨났다구요. 기독교가 들어와 가지고 2천 년 동안 오른편, 새로운 세계, 하나님을 중심삼은 세계를 만들어 놓은 거예요. 그것이 우익이라구요, 하나님을 중심삼은.
하나님은 누구냐? 극우익이겠어요, 중간 우익이겠어요, 맨 끄트머리 우익이겠어요? 「극우익입니다」 하나님이 뭐예요? 극우파! 극우파 좋아하는 사람 있어요? 극좌파는 폭력을 일삼고 피를 매일같이 보지 않고는 살 수 없는 흡혈귀적 공산당입니다. 하나님은 뭐예요? 사탄은 뭔가요? 사탄은 극좌파니까 하나님은 극우파예요. 사람은 극좌파이고, 하나님은 극우파예요. 그거 아니예요?
임자네도 그렇잖아요? 공산당이 속닥속닥 얘기하게 되면 '아이구! 그거 나쁘지 않은데' 하고 쓱 가고 싶다구요. 극좌에서 극우로, 극우에서 극좌로 날아다니느라고 얼마나 바빠요. 그렇게 사는 거예요. 우리가 호흡을 하고 사는데 대한민국 공기를 호흡하고 살아요, 우주의 공기를 호흡하고 살아요? 우주의 공기를 호흡하고 살아요. 보는 데도 대한민국 나라만 보고 사나요, 세계의 나라를 대표한 자연을 보고 사나요? 세계 자연을 대표한 대한민국 자연을 보고 사는 것입니다. 그래, 대한민국에 있는 모든 자연이 세계에 다 널려 있다는 거예요. 약간씩 다른 것이 있지만 그건 필요 없는 거예요.
자, 그런 세계에 살고 있다구요. 고달프다는 거예요. 눈을 휘둥그렇게 떠 가지고…. 미국 가면 미국 사람 되고 싶고 다 그래요. 한국에 오면 한국 사람 되고 싶고 그런 거예요. 저기 어디예요? 중공 가면 중공 사람 되고 싶은 사람은 없을 거예요. 왜? 거긴 차도 없고 걸어 다녀야 되는 거예요. 그렇지 않으면 전부 다 '칙칙폭폭' 하는, 연탄을 피는 기차에 타고 앉아 가지고 궁둥이가 배기도록 며칠씩 가야 돼요. 비행기를 타면 휙….
내가 엊그제 제주도에서 오는데 말이예요, 배를 타고 오게 되면 열두 시간 걸리고 기차가 몇 시간? 목포에 가는데 몇 시간 걸리나요? 「여섯 시간」 여섯 시간. 그러니까 열두 시간에 여섯 시간이면 몇 시간이예요? 열여덟 시간 걸리는데 45분 만에, 변소 가서 한번 힘 주면 되는 그런 시간이면 쓱 날아오는 거예요. (웃음) 그렇게 편리하다구요. 그래, 어떤 걸 취할 거예요? 편리한 걸 취해야지요.
자, 그러니까 중공 가서 살고 싶은 사람 하나도 없지요. 전부 다 미국…. 하나님은 참 공평합니다. 미국 가서 살면 좋긴 좋은데 전부 다 팔아먹게 돼요. 나라 팔아먹고, 사회 팔아먹고, 자기 가족 팔아먹고, 어미 팔아먹고, 아비 팔아먹고, 새끼 팔아먹고, 색시 팔아먹고, 남편 팔아먹는다는 거예요.
좋다고 껍데기, 외적인 것만 찾아가면 전부 다 팔아먹어야 됩니다. 내적인 것은 전부 다 잃어버리고 껍데기만 날아와서 이러고 있다구요. 눈알도 빠지고 정신알도 다 빠져 가지고 껍데기만 이러고 있어요. 그런 세계예요. 미국놈 믿지 말고 미국 좋다 하지 말라는 거예요. 미국이라는 것은 미끄러진다고 해서 미국이예요. (웃음) 내가 미국 좋아했으면 왜 반대받았겠어요? 이놈의 자식들! 전부 다 나쁘다고 들이치니까, 망한다고 하니까 야단한 거라구요.
자, 이렇게 놓고 보니 이제 세계를 찾는 것이 문제가 아니고 나라를 찾는 것이 문제가 아니예요. 내가 어디로 가느냐? 내가 누구냐? 내가 뭐냐? 내가 나를 찾는 것이 문제입니다. 여러분이 여러분을 갖고 있어요? 여러분이 여러분이예요? 내가 나예요? 내가 나가 아니예요. 내 마음도 내 것 아니고, 몸뚱이도 내 것 아니예요. 이랬다저랬다하는 사람을 나는 싫어하는데, 하나되어 가지고 언제나 변하지 않는 나를 찾고 있는데 내 몸뚱이와 마음이 매일같이 싸우고 있어요.
바울 같은 양반도 그랬잖아요? 마음의 법과 몸의 법이 싸워 가지고 언제나 몸의 법이 마음의 법을 전부 이긴다고 해서 '오호라, 나는 괴로운 사람이다' 그렇게 탄식을 한 것입니다, 바울까지도. 오늘 기독교인들은 전부 다 바울 신앙을, 바울 신앙관을 배우고 있는 것입니다.
나의 뿌리를 어디에 내릴 것인가
벌써 한 시간이 되었구만, 오늘은 얘기 길게 안 하려고 그랬는데. 자, 이제 알았어요? 그래 여러분 결정을 했어요? 말하라구요. 나는 이것을 찾은 자리에서 변치 않는다는 결정을 지었느냐? 언제나 팔려 다닐 수 있는 사람이냐 이거예요. 부평초, 뿌리 없는 나무는 죽어 버리는 거예요. 뿌리 없는 풀도 죽어 버려요.
그 뿌리를 어디다 박을 것이냐? 선한 뿌리를 남길 것이냐, 악하고 병들어 가지고 죽을 수밖에 없는, 뽑아 버릴 수밖에 없는 자리에서 나를 결정할 것이냐? 어떤 거예요? 이게 문제입니다. 아무리 미래의 세계가 좋은 세계가 되었더라도 내가 병나서 곯아 떨어지게 되면 그 미래의 세계가 나와 무슨 관계가 있어요. 그 행복의 세계가 나를 기다려 주지 않아요. 지나가 버리고 말아요?
그래, 성공하는 사람은 일대 충격을 받고도 그 일대 충격을 제껴 버리고 그걸 박찰 수 있는 자리에서 뒤돌아 서 가지고 새로이 결심하는 사람이예요. 그렇게 될 때는 다른 면에 가서 성공하지 그 길을 따라가서 성공 안 하는 거예요. 결심이라는 것은 실패한 자리에서 그 길 따라가려고 하는 게 아니예요. 실패한 그 길을 따라가는 자리에서 그것을 계속적으로 연결시키는 놀음 할 것을 결심하지 않는다구요. 실패한 자리에서 180도 다른, 그걸 박찬 그 반작용적 힘을 이용해서 도약해 가지고 방향을 달리하는 데서 성공이 벌어지는 거라구요. 달리할 수 있는 결정을 내려야 하는 거예요. 내리지 못하게 되면 그 사람은 거기서 꺼져 버리는 거라구요.
아무리 세계의 사연을 구하고 동정을 구하더라도 그 사연과 동정은 통하지 않는다구요. 자기가 결정해야지요. 결정지어 가지고 오를 수 있는 방향에 들어오게 되면 하늘편 운세는 그리로 흘러가는 것입니다. 그 힘이 그리로 흘러가는 거라구요. 태풍이 불어도 태풍의 방향이 있는 거예요. 태풍이 정지될 때까지는 그 방향으로 전부 다 흘러가는 거예요. 그 권으로 흘러가지 않을 때는 그걸 박차고 그 이상의 결심을 해 가지고 도약할 수 있는 결정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오늘 통일교회가 지금까지 걸어온 길은 핍박의 길이었다는 것입니다. 출발에서부터 환영이 아니었어요. 그게 멋지다는 것입니다. 출발에서부터 환영 안 한 그것이 멋지다 이거예요. 출발부터 환영 안 하니 끝에도 환영 안 해요. 환영 안 하는 곳이 어디냐? 악한 세계예요. 선한 세계가 환영 안 하면 칼을 갈 터인데 악한 세계가 환영하지 않고 끝에도 악한 세계가 환영하지 않으니 그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런 기대 위에서 생각이 없지 않은 레버런 문 같은 사람도 전부 다 처음부터 대한민국 3천만이 반대하고 세상에서도 요사스러운…. 그때는 3천만이라고 그랬는데 이제는 4천만이 되었어요, 한 40년 되니까 말이예요. 하나님도 참 작전을 잘하셨다구요. 환영하면 내가 따라갈 수 있는 가능성이 많거든요. 들이제기니까 분해서라도 안 가는 거예요. 그렇다구요. 그게 하늘의 작전인 거예요. 그래 반대, 반대, 반대받으면서 통일교회는 후퇴해 나왔나요, 발전해 나왔나요? 「발전해 나왔습니다」(박수)
변치 않는 사람이 되어야
자, 이제는 세계가, 대한민국도 그렇지요. 옛날에는 '문 아무개 그 녀석!' 그랬는데 요즘에는 뭐 문선생이 되었더구만. (웃음) 그것도 '문선생님' 하는 거예요. 거 언제 그렇게 교육을 잘 받았어요? 난 그렇게 될 줄 생각도 안 했는데 그렇게 되었더라 이거예요. 그거 누가 그렇게 만들었느냐? 세계가 그렇게 만든 것입니다. 무슨 세계가? 악한 세계 아니면 선한 세계 둘밖에 없어요. 그래, 내가 악돌이 대표예요, 악돌이가 살고 있는 세계에서 반대받는 파예요? 보편적인 결론이 그래도 악돌이가 사는 세계에서 반대받으니 선돌이일 가능성이 있다 이거예요. 그렇지 않아요?
그렇다고 해서 내가 한 5년쯤 갔다가 악돌이 패한테 가 가지고 '아이구, 내 잘못했소. 악수합시다' 그랬으면 어떻게 되나요? 그건 악돌이보다도 더 나빠요. 뭐예요, 이게? 뭐 변질자라고 그러나요? 변질자예요. 변질자는 도리어 변질되기 전 그 상태 사람보다도 못하다는 거예요.
나 좋아하는 사람 지금까지 없었어요. 하나도 없었어요. 요즘에는 통일교회 패들 날 좋아하나요? 「예」아니야, 아니야. 이 쌍것들! 나 좋아한다고 그래도 내 귀때기에 들어오지도 않아요. 아니예요. 아니예요. 나 싫어해요. 나 싫어한다구요. 지금까지 욕을 먹을 때는 불쌍해서 내가 좋아했지요. 울고불고 다니면 말이예요.
보라구요. 여편네들이 남편한테 매맞고, 벌거벗겨서 쫓겨나니 선생님한테 찾아올 수밖에 없지요. 그러니, 통일교회 담을 빤츠 입은 여자가 타고 넘으니 요사스러운 소문 다 났지요 뭐. (웃음)
별의별 욕을 다 먹으면서도…. 그렇다고 내가 월급을 받았나요, 월사금을 받았나요? 내가 그저 먹여 주고 일생 동안 시중을 해주었잖아요? 요전에 보니까 손 벌리는 사람 많더라구요. '선생님!' 해서 '왜 그래!' 하니까 '내가 통일교회 들어와서 30년 살았는데 이렇게 됐소' 하는 거예요. '이 쌍놈의 자식아! 나 같았으면 잘되었을 텐데 왜 망해 가지고 이래 자식아! 내가 하라는 대로 했으면 그렇게 안 되었을 텐데…' 한 거예요.
여러분, 날 좋아해요? 「예」아니예요! 아니예요! 이제부터 교육을 다시 해야 되겠다구요. 생각이 복잡해요, 머리를 가만히 보면. 한 눈을 이렇게 하고…. (웃음)
자, 선생님 결정이 왔다갔다했으면 어떻게 됐겠어요? 세계적인 통일교회가 나왔겠어요? 대한민국 저 구석의 통일교회도 못 되었을 거예요. 내가 요즘 와서 제주도 왕초가 되어 있더구만. 내가 제주도 가니까…. 내가 제일 싫어하는 게 그거예요. KAL직원들이 와서 선생님 어떻고 어떻고 하는 거예요. 와 가지고 '오십니까. 어서 오십시오' 하는 거예요. 아이구! 한 40년 전에 그랬으면 세계가 살 텐데 내 지금 따라지 되어 가지고 암만 그래도 세계 못 살려요.
자, 선생님 결정이 왔다갔다했으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왔다갔다했으면 통일교회가 다 없어졌겠어요, 살아 남았겠어요? 내가 댄버리 형무소에 갈 때, 여러분들이 '아이고, 선생님 형무소에 가면 안 됩니다' 그럴 때 '아! 거 너희들 말이 좋다' 하고 안 갔더라면 어떻게 되었겠어요? 세계적 통일교회는 수중에 떨어져야 돼요.
그걸 차 제꼈으니, 구멍이 뻥 뚫어져 가지고 보니 호화로운 이상세계, 피안의 세계가 나타남으로 말미암아 '야! 통일교회 문선생 위대하다' 그렇게 된 거 아니예요? (박수) 위대가 뭐예요? 위대 거꾸로 하면 대위밖에 더 돼요, 대위? 나 위대 좋아하지 않아요. 사탄세계는 '위대하다' 하면 '대위다' 그렇게 보는 거예요. 그렇지 않아요?
선생님은 남자가 이만큼 생겼으면 못났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잘났다고 생각하지. (웃음. 박수) 아, 남자들 세계에서만 잘났다는 얘기가 아니예요. 여자의 세계도 어느 나라 가든지 나 나쁘다는 여자들이 없더라구요. (웃음) 반대하는 세계에서도 말이예요, 대해서 얘기하면 다 좋다고 하지요.
그래? 좋다 하는 여자들 전부 다 끼고 차고 그랬으면 어떻게 됐겠어요? (웃음) 어떻게 됐겠어요? (웃음) 오늘날 통일교회가 남아졌겠어요? 「아니요」요사스러운 여자들이 얼마나 많았겠어요? 얼마나 요사스러운 여자들이냐 하면 우리 어머니 자리까지 와서 '야, 내가 이 자리 가져야 되니까 너 내 놔라!' 하며 와서 땡강을 부리고 있더라구요. (웃음)
거기에 남편이라면 '이런 간나가 어디 있어?' 하고 목덜미를 잡아 가지고 치워 주어야 할 텐데 난 눈만 껌벅껌벅하며 바라보고 있는 거예요. 그런 남자가 어디 있어요? '에잇!' 하고 후려갈기고, 한 칼에 갈겨 치우지 않고 말이예요, 떡 보고 가만히 있는 그런 남자가 어디 있어요? 내가 우리 엄마 같으면 '이혼합시다' 당장에 그럴 텐데 우리 엄마도 또 그래도 '그래야지' 그러고 있거든요? (웃음) 세상 사람들이 이해할 수 없는 부부지요. 그렇게 살다 보니 요즈음에는 유명해졌다구요.
그게 편안했겠어요? 어때요? 기가 막히는 일이 세상에서 얼마나 많았겠어요? 이혼장 써서 갈라지는 그런 것은 아무것도 아니예요. 이혼장 쓰게 되면 우리같이 이만한 남자는 색시감이야 뭐 다스로, 소대로, 대대로, 연대로 달려 있는데 뭐. (웃음) 지금도 어머니 없다면, 내가 처녀 장가 가겠다면 처녀가 '나도, 나도' 하고 나설 거예요. 지금도 내가 70이 된 할아버지라도 그럴 텐데 말이예요….(웃음) 그렇다구요. (웃음)
그럴 수 있는 남자가 그럴 수 없는 길을 가고 있으니 이게 미워서도 반대하는 거예요. 선생님 친구 된 패들 부모들도 친근하지요. 우리 어머니로 말하면 참 보통 부인이 아니시지요, 내가 보통 남자가 아니니만큼 말이예요. (웃음) 아니라구요. 어머니라서 그런 얘기 하는 거 아니라구요. 보통 부인이 아니예요. 그런 양반이 한번 정하면 용서가 없는 것입니다. 못 사는 거라구요.
그래, 우리 같은 사람은 사리가 밝은 사람이기 때문에 벌써 십대 소년시대부터 우리 어머니의 결점을 알고 어머니를 굴복시키는 방법을 연구했다구요. 열두 살 때는 어머니 아버지를 앉혀 놓고 내가 훈시를 했어요. '아버지 어머니, 그러시면 안 됩니다. 이건 이렇고 이러니까 어떻습니까? 이래야 되겠소? 안 됩니다. 옳소, 안 옳소?' 하고 항복을 받고 교육하고 내가 살았지 어머니 아버지한테 달려 살지 않았다구요. 그랬기 때문에 지금 이런 놀음 하고 있는 거예요.
그때 벌써 집안에서 어머니 아버지가 날 제일 무서워했어요. 제일 조그만 녀석인데 말이예요. 말하게 될 때는 껍데기를 한 꺼풀 두 꺼풀 벗기는 거예요. 저 옥수수 껍데기 벗기면 맨 나중에는 무엇이 생기나요? 푸른 가죽 벗기고 그다음에는 파르스름하고 노르스름한 껍데기 벗기면 노란 알이 빠져 나오지 않아요? 드러나거든요. 결국은 줄이 바른지 어떤지 다 드러나는 거예요. 딱 집어내 가지고 공격하는 거예요.
그 어머니가 나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모릅니다. 우리 어머니가 나를 사랑한 만큼 우리 애기 어머니가 나를 사랑하는지가 의문이예요. (웃음) 보라구요. 이런 얘기 하자면 재미있는 얘기 많지요. 많은데 시간 가기 때문에, 내가 어머니한테 가서 기합받을까봐 못 한다구요. (웃음) 거 왜 웃소? 내가 말을 잘못했나?
사랑하는 모든 걸 희생시켜 만민을 사랑한 전통을 이어받아야
보라구요. 내가 일본에 있을 때, 그때 왜정 말기에 곤륜환(곤진마루)이라는 배가 깨졌다구요. 9월달인데 졸업식하고 나올 때인데 내가 고향 간다고 전보를 해 놓고 가만 보니 안 되겠다 이거예요. 내일이면 떠날 텐데 동무들이 와서 전부 다 부사산(후지산)에 가자고 그러는 거예요. 내가 왜정 때 일본 나라에 와 가지고 일본 천황의 모가지를 떼어 버리려고 했던 녀석인데 일본 높은 산에 가자고 한다고 가겠어요? '구경 나 싫다' 이거예요. 요즘 같으면 한국에 있으면 부사산 제1호로 올라갈 텐데 내 일본이 자랑하는 부사산에 올라가지 않는다 이거예요. 그래 안 갔다구요. 안 가고 배를 타러 가려니까 아주 발이 떨어지지 않고 이렇거든요. 그래 안 돌아갔다구요. 그런데 그 배가 깨졌다구요, 그 배가.
그러니 전보를 받아 놓고 있던 어머니는 난리가 벌어졌지요. 그래서 정주에서 부산까지…. 여기가 어디던가? 「서울」서울이지요? 서울을 지나서 부산을 가 볼 게 뭐예요, 시골 아줌마가? 아들이 죽었다고…. 틀림없이 아들이 죽은 거지요, 온다고 했는데 안 왔으니 말이예요.
여러분, 한국 부인들 속곳 알아요, 속곳? 치마도 안 입고 속곳바람으로 떠나 가지고 부산까지 왔댔어요. 정신이 있어요? 그러니까 신발이 벗어졌는지도 모르고, 발바닥에 아카시아 나무 가시가 박혀 아픈 것도 잊어버리고 부산까지 온 거라구요. 그리고 나서 내가 죽지 않았다는 소문을 듣고 나서 보니까 발에 티눈같이 알이 배겼더라는 거예요. 그걸 파 보니 그렇게 되었더라 이거예요. 거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부모의 사랑이 얼마나 크냐 이거예요. 그렇게 사랑하던 자식이었어요. 사랑받던 나입니다. 그런데 통일교회 임자네들 나를 우리 어머니의 십분의 일이나 생각했어요? 사랑했어요? 이 쌍것들! 이것들 때문에 우리 어머니를 버리고 우리 형제…. 우리 형제가 나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알아요? 8 남매 가운데서 내가 둘째 아들인데 말이예요, 모든 형제들을 희생시켜서 나 하나 출세시키겠다고 집안 문중이 전부 다 밀어 주고 있었다구요.
왜? 가만 보니까 똑똑하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역적이 안 되면 뭣이 된다는 말을 했다 이거예요. 씨름판에 가서 씨름도 잘했고 뭘하더라도 잘했어요. 동네 방네 20리 안팎에서 나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구요. 그렇게 손꼽고 전부 다 잘되기를 바라는데 이 녀석이 돌아다니고 뭐 어떻다 하면서 감옥에만 들락날락한다 이거예요.
그러니 어머니 신수가 좋겠어요? 내가 못된 놀음 하고 다녔으면 기가 찼지요. 나 잘못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왜정 때에도 어머니가 감옥에 와 가지고 '아, 네가 뭐 어떻고 어때…' 하는 거예요. 그래서 '야, 집어 치워!' 한 거예요. 그때에는 이름을 부른 거예요. '아무개! 내가 아무개 여인만의 아들이 아니오. 나는 이러이러한 길을 걸어간다고 이미 통고했는데 뭐요?' 한 거예요.
울다가, 눈물 흘리다가 돌아서 가지고 부끄러움을 느끼게 할이만큼 부모 앞에 불효한 사람입니다. 그거 알아야 돼요. 불효 중에 그 이상의 불효가 없어요. 일생 동안 내가 손수건 하나 어머니 아버지 사 주질 않았어요. 오늘날 통일교회에 집을 사 주고 별의별 짓을 다 하지만 말이예요. 세계 녀석들에게 양복을 가랭이에 끼워 가지고 해주었지만 어머니 아버지에겐 손수건 하나 안 사다 주었다구요.
내 집안, 내 사랑하는 모든 걸 팔아서, 전부 다 희생시켜 가지고 만민을 사랑하고 돌아와서 만민이 내가 세운 전통을 따라, 내가 우리 어머니를 버렸으니만큼 버린 이상 사랑할 수 있는 가정적 울타리를, 사랑의 울타리를 그리워한 것입니다. 그 울타리 가운데는 대한민국도 들어가서 살고 세계 인류도 들어가서 산다고 봤기 때문에 휘젓고 지금까지 살아온 것입니다. 그렇게 살다 보니 내가 오늘날 유명한 사람이 됐어요? 유명의 반대가 뭔가? 무명인가? 유명하게 됐어요, 안 됐어요? 너무너무 유명해져서 탈이예요. 나 싫어요! 얼마나 귀찮은지. 어디 가서 앉더라도 그저 옛날식으로, 상 있으면 뭘해요, 손으로 집어서 맛있게 먹으면 되는 거지요, 상은 뭐….
서양 가게 되면 내프킨하고 뭐 하고 그래요. 이놈의 자식들! 변소 가서도 내프킨 하나요? (웃음) 변소 같은 세상인데. 변소보다 더 나쁜 세상이예요, 지금이. 그러한 과거를 엮어 왔다구요. 그때 어머니 아버지가 울고불고, 여편네가 이혼하자고 목을 조르고 와서 전부 다 모둠 매를 치고 하는 자리에서…. 기가 막혀요. 내가 한 손으로 내갈겨 다 날려 버릴 수 있는 사람이라구요. 그런데도 참고 오는 거예요. 참고 지금까지, 일생 동안. 말을 다 못 하고 분풀이 못 하고 이렇게 살아 나온 거예요.
대한민국이 나를 버렸댔지요? 임자네들, 통일교회 여러분들은 선생님을 버렸나요, 안 버렸나요? 「안 버렸습니다」절대적으로? 「예」 소리가 크질 않구만. 안 버릴 게 뭐예요? 통일교회 그만두려고 생각 안 한 사람이 어디 있어요? '통일교회 힘들어서 안 가면 좋겠다' 안 해본 사람 어디 있어요? 어디 안 해봤다면 손들어 봐요, 내가 물을께요. 이 쌍것들! (웃음) 눈치가 훤하지 뭐. 통일교회 믿기가 쉬워요? 통일교회 믿기 쉽지 않았다구요.
자, 오늘날 통일교회가 있는데, 선생님이 소년시대에 결심하고 결정했던 것을 변경했더라면 통일교회가 있겠어요? 나도 고생하는 거 싫어요. 지금도 내가 흥남 감옥생활 얘기를 안 하는 거예요. 내 자신이 얘기를 하자면 목이 멜 수 있는 사연이 얼마든지 있어요. 지도자가 자기 지난날의 서러움을 가지고 자기를 따르는 사람들을 격려하고 싶은 생각 없다 이거예요. 거기에 앞서 진리와 실제 행동 면에 있어서 본이 되는 것을 위주로 했지요.
지금도 그렇다구요. 지금 제주도에 가더라도 떡 둘러앉아 있다구요, 벌써. 열 시만 되면 '선생님 고단하실 텐데 주무셔야 되겠습니다' 그러면서 일어선다구요. 이놈의 자식들! 진정 그래? 자기가 자고 싶으니까 그런 거 아니야? (웃음) 그만큼 편안하다는 거예요. 여유가 있다는 거라구요. 난 여유가 없어요. 딱 찼어요. 잠이 뭐예요?
그래도 내가 언제나 들어 주었어요. 잘들 가누만. 가라는 얘기도 안 했는데 인사를 하고 떡 돌아가는 거예요. 어떤 때는 호출 명령을 내린다구요, '이놈의 간나 자식들, 집합!' 하고. 그러고 있더라구요. '선생님 죽으면 저것들이 다 어떻게 될 거야? 통일교회 전부 다 팔아먹을 패들이구만' 하고 손가락질하고 바라보고 있다는 것도 모르고 말이예요. 이제 가면 그러지 말라구. 따라다니는 재석이도 말이야. 재석이는 뭐예요? 석재라는 말 아니예요, 돌재료? (웃음)
자주 자립하여 부모 이상 일할 수 있는 아들딸이 되어야
자, 이제 알 만해요? 오늘 제목이 뭐예요? 「선악에 대한 나의 결정」결정했어요? 「예」 '예' 하는 아줌마, 칼을 들고 남편이 타고 앉아서 가슴을 찌르겠다는데도 '예'예요? 다 정리해 놓아야 돼요. 아까 말한 거와 마찬가지로 앞으로 선의 세계를 이루지 않고는 행복이 있을 수 없습니다. 가짜 행복이예요. 그건 언제나 치워 버리는 행복이라구요.
레버런 문, 통일교회, 하나님이 바라는 행복은 뭐냐? 선악의 세계를 넘어서 피안의 세계에 가 가지고 하나의 세계를 만들어 놓은 그 세계에서 추구하는 행복인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추구하는 행복이요, 레버런 문이 추구하는 행복이요, 통일교회 원리가 가르쳐 주는 행복이지 이쪽에서 행복하라고 가르쳐 준 것이 아니예요.
그렇기 때문에 축복가정도 여기서 행복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가정적 전통을 세워 가지고 저세계에 가서 행복하자는 거예요. 그러니 문제는 나예요. 내가 문제예요, 내가. 죽을 일이 있으면 도망가지요? 왜, 왜 도망가요? 내가 살기 위해서. 나를 살리기 위해서예요. 그래, 도망가는 것이 잘 도망가는 것인지 못 도망가는 것인지 그걸 알아야 돼요. 어려운 일은 다 싫어하는 거예요.
통일교회 문선생은 지금까지 감옥에만 끌려다녔다구요. 그거 싫다고 도망했으면 어떻게 되었겠어요? 통일교회가 어디에 가 떨어졌겠어요? 결정해야 돼요. 생명을 바쳐서 이 길을 간다고 했으면 내가 살아 있는 한 가야 되는 것입니다. 죽을 자리까지 가야 돼요. 거기서 목이 떨어지더라도 후회 없이 가야 돼요. 피도 성인의 피로서 하늘 앞에 호소할 수 있는 피를 남기고 가겠다고 생각해야 됩니다. 내 피는 네 피와 다르다 이거예요.
그런 결정을 지었기 때문에 어머니 아버지, 가정, 일가, 자식 전부 다 버리고 반대하는 그 길을 다 거슬러서 지금에 온 것입니다. 지금에 와서 세계 사람들을 가르치는데 어떻게 가르치느냐? 지금까지 악한 세계에서 자기에게 제일 좋다는 걸 전부 다 버리고 선의 길을 찾아 나오는 스승의 입장에 서서 그러한 전통을 세계 젊은 청년 남녀들과 모든 인류 앞에 물려줘 가지고 이 세상을 정비하고 나서 환고향해야 되는 것입니다.
지금 내게 금의환국했다고 야단인데 나 그런 말 듣고 싶지 않아요. 아직까지 모스크바 싸움이 남아 있어요. 워싱턴은 이제 어차피 내 신세 져야 돼요. 이런 말 한다고 레버런 문…. 여기 대사관 녀석인데, 누구? 이름이 뭐라고 그러던가? 워카인지 무슨 뭐 가죽 주머니인지…. (웃음) 내가 여기서 얘기하게 되면 CIA에 전부 다 기록되는 거 알아요.
워싱턴은 내 신세 져야 돼요. 그러지 않으면 망해요. 요전에도 신세를 지려고 꼬리를 물고 방향을 돌려 따라오대. 이놈의 자식들! 따라오려고 하면 후려갈긴다, 이놈의 자식들! 돌아서서 따라오려고 할 때는 그야말로 기합을 줄 거예요. 모진 훈련을 시킬 것입니다.
통일교회 교인들은? 아직까지 선생님 따라갈래요? 「예」선생님 죽으면 어떡할 거예요? 다 죽을래요? 따라가겠다는 말이 그 말 아니예요? 선생님이 죽으면 어떻게 할 테야? 쌍것들! 다 죽으면 통일교회 없어진다는 말 아니야? (웃음)
그건 뭐냐 하면, 부모는 장성한 아들이 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자주 자립할 수 있는, 부모 이상 그 일을 해낼 수 있는 아들딸을 바라는 거라구요. 부모가 죽더라도 죽을 길로 내모는 게 아니라구요. 죽을 길로 가려고 해도 살길로 안내하는 것이 부모의 뜻이예요. 왜? 전통을 세우고 미래의 세계를 선한 세계로 연결시키기 위해서 부모는 그걸 원하는 것입니다.
그래, 선생님 따라간다는 말 알겠어요? 「예」따라가긴 따라가는데 뜻이 망할 수 있게 될 때는 따라가서는 안 되는 거예요. 그 뜻을 이어받아 가지고, 바통을 받아 가지고 그 이상 달릴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렇게 되어 있어요? 여기 젊은 녀석들 많구만. 나는 젊은 청춘시대에 칼을 꽂고 어떤 결심 했는지 알아요? 그런 거 모르지요? 과거를 몰라요. 문선생의 과거를 모르는 거예요. 거죽은 늙어 갈는지 모르지만, 시들어 갈는지 모르지만 과거의 역사는 내 모든 생애의 어떤 늙음도 극복할 수 있어요. 천년 만년 하늘이 그것을 동기삼아 가지고 만민을 전부 다 감동시킬 수 있는 하나의 모체가 되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건 모른다는 거예요.
그래, 여러분은 선생님이 고생한 얘기를 듣게 되면 눈물이 나오는데 그 눈물이 나는 게 괜히 나는 게 아니예요. 선생님이 그런 사연을 갖고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예요. 그렇기 때문에 기도를 해보면 영계에서 가르쳐 주는 거예요. '문선생이 어떤 사람이냐?' 하면 통곡을 시키는 거예요. 목을 놓고 배의 힘줄이 당겨질이만큼 통곡을 시킨다구요. 왜? 그런 사연을 품고 사는 사람이기 때문이예요. 안 그래요?
대한민국의 위정자면 위정자들은 자기들이 결정한 것이 세계 만세에 빛날 수 있고 역사시대의 흐름이 그걸 옹호해 가지고 온세계 결실의 왕좌로서 비칠 수 있느냐? 그런 자리에서 결정하고 있느냐 이거예요. 모든 것이 심각하다는 것입니다. 선한 자리에 서면…. 그것이 자신 없거들랑 아예 후퇴해 버리라는 거예요. 그렇지 않으면 자기 아들딸이 전부 다 죽어 버리는 거라구요. 그 일족이 망해 버리는 거예요.
내가 이제 죽는다 해도 통일교회는 망하지 않습니다. 왜? 한국이면 한국 어디 가든지 선생님의 손자국이 남아 있고, 미국 가면 내가 거쳐간 곳은 반드시 손자국이 남아 있어요. 그들이 '우리 선생님은 이러 이러했습니다. 우리와 다르십니다' 하고 증거할 수 있는 기록을 남기고 다니는 사람이예요. 그렇기 때문에 내가 가더라도 통일교회 세계는 망하지 않는다고 보는 것입니다.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는 자기를 투입해야
통일교회는 앞으로 교회 자체 내에 있어서 두 패로 갈려 싸울 수 없어요. 벌써 여기 대가리라고 하는 작자들 떡 보는 거예요. 내 다 점치고 있다구요. 이놈의 자식들! 다 누구를 중심삼고…. 지금까지 뜻을 위해 나왔다 하지만 나이 먹어 가니까 전부 다 머리를 휘젓고 똥내 피우고 있다 이거예요. 그 사람들은 다 흘러가는 것입니다. 아무리 축복가정이라도 내가 잘라 버려야 되겠다구요. 어미가 병이 나고 아비가 병이 나서 다리가 썩었을 때 아들이 의사라면 어미 아비 다리를 잘라야 된다구요. 그게 어미 아비를 위해 효자가 가야 할 길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예」내가 그걸 잘 아는 사람이라구요.
그와 마찬가지로 지금도 가고 있는 거예요. 지금도 가고 있는데 지금 결정한 것이 아니예요. 이미 결정한 길을 가고 있는 거라구요. 알겠어요? 청춘시대에 이미 결정한 길을 가고 있는 거예요. 밤이나 낮이나, 아무리 천지가 거꾸러져 내려가고, 공산세계와 민주세계가 뒤넘이치더라도 내 결정한 것은 여전히 마찬가지입니다. 출발과 동시에 과정도 끝도 마찬가지예요. 직행이라구요.
그 직행의 본질적인 요소가 뭐냐? 그런 문제가 통일교회 교리 가운데 심각한 문제입니다. 창조해야 돼요. 존재하는 세계에 환경이 필요한 사람은 환경을 만들어야 돼요.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는 자기를 투입해야 돼요. 자기를 투입해야지 상대권에서는 생겨나지 않아요. 그게 창조 본연의 원칙이예요. 창조하기 위한 하나님의 생각의 방향이었다 이거예요.
사람을 짓는 데 하나님을 투입한 거예요. 자기를 투입했는데 무얼 투입했느냐? 제일 귀한 걸 투입한 거예요, 제일 귀한 걸. 사랑의 대상을 만들기 위해서 자기의 사랑을 전부 다 투입한 거라구요. 그걸 알아야 됩니다. 그래, 여자는 누구를 위해 태어났다구요? 「남자요」남자는 누굴 위해 태어났다구요? 「여자요」사람이 왜 태어났느냐 하는 걸 통일교회에서는 묻지 말라구요. 오늘날 철학의 문제에 대해 생각하는 사람들, 사람이 왜 태어났느냐,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느냐 이거예요. 남자가 태어난 것은 여자 때문이예요. 간단하지요. 철학이고 뭣이고 이 이상 귀한 철학이 없어요. 그게 답변, 철학이예요.
여자가 태어난 것은 누굴 위해서? 「남자요」남자가 태어난 것은 누굴 위해서? 「여자요」그렇게 생명이 시작되었으니 생명이 꺼지는 것도 누굴 위해서? 자기를 위해서가 아니예요. 아내는 남편을 위해서, 남편은 아내를 위해서예요. 그러면 다 천국도 가고 어디도 가는 거예요. 다 가는 거라구요. 그 공식이 만국, 만천하를 개문할 수 있는 키예요. 그게 사랑의 원칙, 사랑의 뿌리입니다. 그것이 어머니 아버지를 사랑하고 자식을 사랑하는 뿌리예요.
그와 같이 세계를 사랑하는 거예요. 세계는 어머니 아버지 연령, 자기 연령, 아들딸 연령이 이어져 있습니다. 세 계급의 연령이 전부 다 연결되어 있다구요. 여기서 가정을 중심삼고 훈련해 가지고 세계를 그렇게 사랑할 수 있어야 됩니다. 어머니와 같은 연령의 여인을 미워할 수 없고, 아버지와 같은 연령의 노인을 미워할 수 없는 거예요. 사랑해야 돼요. 그러면 천국 가는 것입니다. 가정에서 보호함을 받지 못하는 사람은 천국 갈 수 없어요.
자, 그러려면 가정을 위해서…. 할아버지가 어머니 아버지를 위하고 할아버지를 위하다가 피곤해서 누워 새우잠을 자는 손자 녀석을 볼 때, 눈물지을 수 있는 사랑이 거기 깃든다는 거예요.
위해서 태어난 것입니다. 자식은 부모를 위하고 부모는 자식을 위해서 태어난 거예요. 이것은 간단한 내용입니다. 만국과 만민의 통일은 간단한 거라구요. 우리 통일교회는 그것을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부모를 위해서 일생 동안…. 부모를 위해서 태어났고 전부 다 위해서 태어난 거예요. 남자로 태어났으면 아내를 위하고, 아내로 태어났으면 남편을 위하고, 그다음에 부부가 되었으면 자식을 위하고, 그것으로 되는 거예요.
그렇게 될 때, 어머니를 모신 게 행복이요, 남편을 모신 게 행복이요, 자식을 가진 것이 행복인 것입니다. 그게 행복한 거예요. 그거 어려운 환경이 아니예요. 요즈음 날라리 패들, 땅강아지새끼 같은 젊은 녀석들 말이예요, 부모도 필요 없고 자식도 필요 없어? 망했지. 열매를 못 거두고 가는 나무가 행복한 나무예요? 그건 나무 구실 못 하는 거예요. 순환법도에 의해서 출발했으면 돌아가야 돼요. 돌아가야 된다구요. 돌아가면서 발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그런 걸 알았기 때문에 이 길을 지금까지 걸어 나오는 거예요. 내가 죽을 때까지 신세를 지려고 하는 사람 아니라구요. 그러다 보니 누가 보호한다구요? 누가 보호해요? 내 몸뚱이를 마음이 보호하는 거예요. 지금까지 몸뚱이하고 마음이 싸웠지만 내 마음을 몸뚱이가 보호하는 거라구요. 그러다 보니 자기를 위한 본연의 사랑의 바탕이 거기서 생겨나는 것입니다. 몸뚱이와 마음이 싸워 사탄이 은신할 수 있는 거처가 있어 가지고 내 자체에 고통이 개재했는데, 이걸 청산지을 수 있는 하나의 힘이라는 것은 뭐냐? 위하는 하늘의 사랑, 위하는 부모의 사랑에서부터 연결되어 자리잡는 것입니다.
선악에 대한 나의 결정을 확실히 해야
자, 지금까지의 통일교회를 보게 되면 참 형편이 없다구요. 뭐 언제는 열심히 철야 기도하고 그러더니 요즘에는 전부 다 쉬기에, 편안하기에 바쁘다구요. 그걸 알아야 돼요. 아무리 이상세계가 온다 하더라도 선악의 결정권을 자기 스스로 갖추지 못하면, 악을 제거하고 선한 입장에 섰다고 자기 스스로 자신할 수 있는 환경권을 갖지 못한 사람은 선의 상속물을 받았댔자 보관할 자리가 없는 것입니다. 그걸 확실히 알아야 되겠다구요.
돌아가면서 여러분들은 그걸 생각해야 된다구요. 내가 무엇을 결정해야 되느냐? 그것이 결정 안 되었으면 남에게 신세를 지울 필요도 없고, 질 필요도 없어요. 내 자신이 결정하지 못하면 남에게 신세를 지웠댔자 그것은 영원히 안 가요. 흘러가 버리고 만다구요. 내 자신이 참의 자리에서 영향을 주는 것은 영원히 남지만, 하늘이 공인하지만 내가 왔다갔다하는 데 있어서는 안 되는 거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 표어가 '우주주관 바라기 전에 자아주관 완성하라'는 것입니다. 그 말이 그 말이예요. 내 자신을 결정해야 된다구요. 자기를 주관 못 하고는 우주주관 할 수 없다 이거예요.
그래서 '선악에 대한 나의 결정'을 확실히 해야 되겠습니다. '나는 이렇게 가는 것이다. 이렇게 출발한 내 본심이 이렇게 갔다면, 혼란된 세상이 아무리 지그자그로 가더라도 나는 여기서 이렇게 갈 것이다. 그러나 내가 지금 이 와중에서 이러고 왔더라도 요 중앙선에 와 가지고는 언제든지 지그자그가 아니라 이 선을 따라갈 것이다'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도가 필요한 거예요. '혹시나 방향이 틀렸거들랑 하늘이여! 나를 시정해서 방향을 바로 해주소서' 하고…. 전부 다 결정하기 전에는 암만 기도했댔자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기도가 허사예요. 암만 기도했댔자 허사예요. 안 그래요? 파괴적인 주의로 살아 가지고 암만 해보라는 거예요. 암만 해도 안 되는 거예요. 자세를 갖추어 가지고 쏘아야 되는 것입니다.
이 세계 사람들은 두 갈래, 지그자그로 사는 사람들이 돼 있어요. 보다 변치 않는 마음 자세를 중심삼고 방향을 갖추어 가지고 세계가 전부 따라갈 수 있는 방향과 세계 통일적인 방향을, 하나의 세계로 수습할 수 있는 그런 길을 따라가야 됩니다. 그게 인류애예요, 인류애. 인류애는 자기를 위하는 것이 아니예요. 인류를 위한 사랑, 위하는 사랑이예요. 위하라는 사랑이 아니라 위하는 사랑에서만이 본연의 이상세계에 도착할 수 있는 방향이 확실히 서는 것이예요. 자기 위주해 가지고 꺼떡거려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거 결정했어요? 「예」이제 당장에 선생님이 '여러분 보따리 싸 가지고 저 아프리카 어디로 대이동해라!' 그러면 어때요? '난 병이 났소. 그런 때는 지나갔소. 지금까지 일했으니 딴 사람 보내소' 그럴 수 있어요? 「없습니다」나는 60이 넘어서도 댄버리 감옥길을 하늘이 벌써 결정한 걸 알고 찾아간 거예요. 명령 안 해도 내가 찾아가는 거예요. 미국 갈 때 벌써 감옥을 표준으로 하고 간 것입니다.
이제 중공이나 소련을 대하는 데도 그런 생각을 하고 대하는 거예요. 편안히 가려고 안 그러는 거라구요. 소련 사람 모가지 치고 가는 것이 아니예요. 그들을 살려주기 위해서는 어차피 출발했던 그 길과 과정에 걸어오던…. 하늘이 보호하던 길이 두 길이 아니예요. 하나밖에 없다구요. 범위가 클 뿐이지 가는 방향은 하나예요. 수직 방향으로 올라가는 것은 하나라구요. 하나예요. 둘이 있을 수 없어요.
참된 사랑의 길을 따라가야 하나님의 사랑권 내에 동참할 수 있어
선생님은 수직으로 서 있으니 여러분이 횡적으로 세워지려면 90각도로 맺어져야 됩니다. 수평선에 서야 돼요. 선생님의 수직을 중심삼고 수평선이 접해야만 90각도가 되는 거예요. 90각도가 되어야 연장하더라도 영원히 오케이가 되지 여기에 85도, 88도가 되어도 영원이 아니예요. 이것은 오케이가 아닙니다. 요건 가면 갈수록 거리의 차이가 큰 거예요. 여기에서는 오케이 같지만 오케이할 수 없다 이거예요. 그런 거예요.
수직은 하나예요. 평형선은 위에도 있고 아래에도 있고 얼마든지 있어요. 안 그래요? 수직은 하나밖에 없어요. 그 수직이 뭐냐? 수직이 통할 수 있는 그 길이 뭐냐? 그건 돈도 아니요, 무슨 권력도 아니요, 무슨 지식도 아니예요. 이건 오직 참된 사랑이예요. 참된 사랑은, 수직은 천년 만년 오직 하나입니다.
여러분이 참된 사랑을 원하거든 참된 남자가 되었느냐, 참된 여자가 되었느냐 하는 정의를 해야 돼요. 참된 남자라는 것은 360도 갔다고 해서 변하는 것이 아니예요. 360도로 도수의 숫자가 많아졌다고 해서 '나 영점 싫어' 하는 게 아니라구요. 이것은 언제나, 360도 갔다가 영점으로 돌아와도 불평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참된 부부가 되었느냐 이거예요. 참된 부부의 정의가 뭐냐 이거예요. 왜 참된 부부가 되어야 되느냐 이거예요. 참된 부부의 사랑을 갖지 않고는 하나님을 대할 수 없습니다. 남자 혼자 가지고는 안 되는 거예요. 그래서 예수는 남자로 왔기 때문에 반드시 신부를 모시지 않으면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없다구요. 하나님의 사랑을 대할 수 있는 남자, 여자가 되지 않고는 하나님의 사랑권 내에 동참할 수 있는 권리가 없어요.
남자 여자만의 사랑 가지고는 안 돼요. 하늘과 연결 못 돼요. 그건 평형성 사랑은 되지만 종적 사랑과 연결이 안 되는 것입니다. 여기 와 가지고 딱 합하게 되면 여기서 얻은 힘은 사방으로 통하는 거예요. 아래로도 갈 수 있고 위로 엇바꿔 가지고도 갈 수 있는 거라구요. 그것이 원형을 거칠 때 모든 힘은 요 한 점을 통하는 것입니다. 여기의 가장자리 힘은 전부 다 파괴될 힘이예요. 있을 수 없다는 거지요.
천국 가는 길이 둘이 아니예요. 수직의 사랑을 따라, 참된 사랑의 길을 따라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 참된 아내 노릇을 했느냐 질문해 보라구요. 참된 남편 노릇 해봤느냐 이거예요. 그건 자기들이 잘 알지요? 살면서 여편네가 되어 가지고 남편 속여먹기를 떡 먹듯하고, 남편 되어 가지고 여편네 속여먹기를 떡 먹듯하고 말이예요, 자식 되어 가지고 부모 속여먹기를 떡 먹듯하고, 부모 되어 가지고 자식 속여먹기를 떡 먹듯하고 말이예요. 그런 세상 아니예요?
우리는 그런 세계에 있어서 참된 통일의 기반을 갖춰야 되는 것입니다. 그 통일의 기반은 무엇 갖고? 돈 주고 통일하려고 안 그래요. 선생님은 돈 갖고 있지만 돈의 종이 아니예요. 몇천만 불을 내가 하루에 사인할 수 있고 몇억, 몇수십억을 하루에 사인할 수 있는 능력이 있더라도 그 돈에 팔려가는 나가 아니라구요. 내가 바라는 그 이상의 사랑의 세계를 위하는 데 쓰려고 하지 악돌이들 판돈 만들어 쓰려고 안 하는 거예요.
그러면 여러분이 올바로 하나님편에 서서 결정했다면 하나님은 언제나 여러분과 더불어 같이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세상을 따라가는 자와 하늘편을 따라가는 자는 달라요. 그는 가다가도 언제든지 90각도로 돌아설 수 있어요. 90각도 이상으로 돌아서야 저 벼랑에 가서도 살아 남지 88도만 해도 떨어지는 거라구요.
가다가 틀렸을 때는 180도 돌아서겠다는 결정을 다 하고 있느냐 이거예요. 그럴 때는 가다가 반드시 360도 돌 계획을 해야 된다구요. 그렇지 않고는 돌아갈 길이 없어요. 그렇지 않아요? 저 소돔 고모라가 멸망당할 때 롯의 처가 소금 기둥이 왜 되었어요? 그거라구요. 세상을 돌아보지 말라는 거예요. 그때는 딱 돌아설 줄도 알아야 됩니다.
미국에 내가 살 수 있는 모든 환경을 다 만들어 놓았어요. 한국도 그렇지요. 자기 중심삼고 판단하지 않는 거예요. 전체를 중심삼고 판단해 가는 거라구요. 여러분 자신들이 그렇게 되어 있느냐 이거예요. 그러지 않고는 흘러가는 거예요. 흘러가는 거라구요.
세상에서 전부 다 늙어 가지고 통일교회에 들어오면 새로운 힘이라도 얻을 수 있지만 통일교회 안에서 지친 사람은 어디 가서 힘을 얻겠어요? 통일교회에서 지친 사람은 어디 가서 힘을 얻을 거예요? 힘 없으면 선생님도 박대하고 차 버릴 텐데 말이예요. 틀림없이 차 버리는 거예요, '이 자식아!' 하고. 선생님 눈을 보라구요. 날 믿지 말라구요. 눈이 올빼미 눈 같은 사람은 멀리 보는 거예요.(웃음) 장거리 총이예요, 총으로 말할 것 같으면. 심통을 들여다보고 측정하는 거라구요.
세계의 운명은 우리 자신에게 달려 있어
자, 이런 심각한 문제가 달렸어요. 여러분 하나가 잘못 결정하면 여러분의 가정이 망할 뿐만 아니라 여러분의 사회가 망하고, 여러분의 나라가 망하고, 여러분의 세계가 망하는 것입니다. 그럴 수 있는 위험천만한 자리에 있다는 거예요. 세계를 망치고 살리는 것은 여러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한 사람으로부터 시작하는 거예요. 공산주의도 한 사람, 기독교의 역사도 예수 한 사람으로 시작했어요. 오늘날 세계가 죽느냐 사느냐 하는 문제를 결정하는 것도 한 사람, 레버런 문 한 사람을 중심삼고 결국 판결짓고 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박수) 한 사람이예요, 한 사람. 한 사람이 누구냐? 나예요, 나. 여러분 자신이예요. 여러분 자신이 세계를 망칠 수 있고 하나님을 망칠 수 있는 것입니다. 그걸 망각해서는 안 된다구요. 그걸 알아야 돼요
그렇지 않아요? 나이 많더라도 마찬가지라구요. 언제나 악마의 그늘 아래 자기가 은신하고 있는 사실을 잊지 말라는 거예요. 그러니까 소년시대부터 이렇게 결정해 가지고…. 우리 같은 사람이야 지금까지 지내 나온 걸음을 생각할 때, 하도 비참하고 하도 사연 많은 역사를 지내왔기 때문에 이만큼 나왔던 사실이 너무나 아까와서 돌아서고 싶더라도, 생각을 하더라도, 돌아섰다가도 그것이 아까와서 되돌아서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고생하는 어머니의 손등은 물론 주름살이 일고 갈라졌지만, 그 어머니의 손으로 자식의 손을 잡아 주는 사랑의 손길은 보통 다른 사랑과 다르다는 걸 알아야 돼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종교라는 이 간판 밑에서 수고하고 억센 핍박 가운데 살아 남은 레버런 문이 대하는 심정은 가날픈 어떤 목사 짜박지와 다르다는 거예요. 다르다구요. 나타나게 될 때는 하늘이 자연히 드러난다는 것입니다. 뿌리 없고, 줄기 없는 나무는 전부 다 물이 들어오게 되면 녹아나는 거예요. 썩어나는 거라구요. 사망의 물결이 차게 되면 썩어나는 거예요. 레버런 문은 그 사망의 물결에 뿌리를 박고 그걸 거름삼아 줄기에서 자라나고 있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는 도탄과 환난 중에서 자라 왔어요. 이번에도 불란서 르펭한테 영(0)에서부터 35석의 의석을 누가 만들어 줬느냐 하면 내가 만들어 주었다구요. 그런 말 처음 듣지요? 불란서까지…. 88년부터 미테랑 모가지를 쳐 버려야 되겠다구요. 차기에 레이건 대통령도 두고 보라는 거예요. 공화당, 민주당에서 누가 대통령이 되나 보자 이거예요. 일본의 수상 짜박지들도 두고 보자, 내 힘이 필요할 것이다 이거예요.
그런 기반을 갖게 되었다면 그게 그냥 앉아서 됐겠어요? 믿을 사람이 없는 세상에 하늘이 레버런 문을 믿는 것입니다. 레버런 문밖에 믿을 수 없으니 다 맡겨서 하늘이 그렇게 해주는 거예요. 그거 나빠요, 좋아요? 「좋습니다」공짜로? 공든 탑이 무너지지요? 안 무너집니다. 그 공이 무슨 공이예요? 자기를 위한 공이 아니예요. 만민을 위하고 하늘땅을 위한 공이예요. 나를 위해서 그 놀음 한 것이 아니예요. 만민과 하늘땅을 위한 공이기 때문에 그 공든 탑은 무너지지 않는 거예요.
그런 의미에서 오늘 이 아침 4월 초하루에…. 4월은 언제나 통일교회로 보면 환난시기였어요. 언제나 핍박시기였어요. 금년 4월은 지금 한국에서 통일교회에 희소식이 찾아드는 때예요. 봄철이 왔어요. 통일교회에 봄시절이 찾아와요. 거기에 움이 돋아야 할 순이 있는데 순이 움도 돋지 못하게 되면 죽은 나무가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자체가 스스로 발발된 하나의 움, 뭐라고 할까요, 싹을 갖고 있느냐 이거예요. 내일의 소망을 이어 줄 수 있는 삶의 힘을 갖고 있느냐 이거예요. 여러분 꽁무니에 나라가 달리게 될 때 나라를 차 버릴 거예요, 떼어 버릴 거예요, '나라 말고 세계야 더 붙어라' 이렇게 할 거예요? 어떤 거예요? 각자가 대답해 보라구요. 내 뒤 꽁무니에 나라가 달리게 되면 '아이고, 나 싫소' 그거예요?
가정의 십자가도 처리 못 하는 작자들에게는 나라의 십자가가 달리려고도 안 하는 거예요. 나라와 세계를 오매불망 생각해도 나라와 세계는 갈 길을 찾아간다는 거예요. 천운을 따라간다는 것입니다. 암만 자기가 해먹고 싶고, 암만 뭘하고 싶어도 자기 하고 싶은 대로 안 된다구요. 안 된다 이거예요. 쳐 버리는 거예요. 전부 차 버리고 간다는 것입니다. 레버런 문은 그걸 아는 사람이예요. 전환시기를 아는 거예요.
이번에 내가 한국에 괜히 와서 이 놀음 하는 게 아니예요. 한국은 지금 위기요, 혼란시기예요. 참 위험해요. 위기일발이예요. 잘못하게 되면 김일성이 행동할 수 있는 위험한 시대로 알고 있는 것입니다. 내가 와서 사회에 미친 보이지 않는 영향이 컸다는 거예요. 공중에 떠 가지고 바람에 날려서 어디로 떨어질지 모르는 한민족이 내가 와서 이런 놀음을 함으로 말미암아, 그래도 자리를 잡고 문총재에 대한 방향을 그리면서 실낱 같은 소망이라도 생각할 수 있는 것입니다. 정부가 후원 안 하더라도 나는 그런 놀음 하고 돌아다니는 거예요.
누가 본질적인 생각을 잘하고 있느냐? 위정자들이냐, 레버런 문이냐? 위정자들보다도 레버런 문이 본질적인 생각을 하고 있다고 나는 자부하는 사람이라구요. 그래, 이 민족이 어디로 가는가 봐라 이거예요. 반대하면 반대할수록 어디로 가나 봐라 이거예요. 가만 놔두라는 것입니다. 그래, 3개월 동안에 통일교회에 대한 인식이 상당히 달라졌지요? 「예」저기 국회의원 하던 양반도 오셨구만.
옛날에는 깡패, 쓸데없는 색마 같은 레버런 문이라고 전부 다 소문내더니 요즘엔 뭐 5천 년 역사에 없는 무슨 위인이 났다고 하는 거예요. 위인 나 싫어요. 지금도 달릴 길이 바빠요. 그런 칭호 필요 없어요. 낭비하지 말라 이거예요. 한라산 저쪽에 지금 동서남북 사방으로 제트기가 착륙할 수 있는 비행장 닦는 공사를 하고 다니는 거예요. 그건 누굴 통해서? 통일교회 패들이 전부 다, 장박사 늙은 사람으로부터 쓱싹쓱싹 다 해 나왔다 이거예요.
그래서 소련을 어떻게 방어하느냐? 극동 함대를 방어하기 위해서 일본과 중공을 어떻게 묶어야 하느냐? 이런 생각 하고 다니는 거예요. 그러니 배를 만들어야 되겠고, 트롤선을 만들어 가지고 해상부터 전부 다 묶어 나가야 되겠다, 이런 생각을 하는 거라구요. 그거 누가? 자기들은 지금 밥 먹기에 바쁘고 내일 생각하기도 복잡하니 안 하려고 하는데 우리 같은 사람은 왜 그런 공상을 하고 다녀야 되느냐 이거예요. 그게 나를 위한 것이 아니라구요.
자신들이 만국을 통할 수 있는 자세를 갖추어야
그래, 선악에 대한 결정도 하지 못한 여러분 자체에 나라가 달리면 나라를 처리할 수 있어요? 어느 한 지구의 교회를 맡기면 처리할 수 있어요? 처리 안 돼요. 천운이 도와주질 않아요. 천운이 안 도와줘요. 하늘땅이 그를 옹호 안 해준다구요. 심각한 문제입니다. 여러분들을 누가 보호해 주느냐 이거예요. 나 레버런 문은 보호 못 해줘요. 여러분들이 보호할 수 있는 심적 결정을 짓지 못하게 될 때는 보호 못 해준다 이거예요. 문제는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그걸 도와주게 되면 망치는 거예요. 그걸 천대해야 돼요. 불신해야 돼요. 그런 때가 찾아온다구요.
앞으로 선생님이 나와 가지고 초하룻날, 주일날 설교할 시대는 지나가는 거예요. 만국의 수령들을 데려다가 훈시하고 교육할 때가 찾아오는 거라구요. 앞으로는 얼씬 못 할 때가 오는 거예요. 그렇다고 해서 내가 그러고 싶어서 하는 것이 아니예요. 천운이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여러분 자신들이 만국을 통할 수 있는 결정적 자세를 갖추어야 됩니다. 그래서 그 자신을 개인이 잡더라도 점핑해 넘어갈 수 있고, 가정·사회·나라가 잡더라도 점핑해서 담 넘어 가지고 더 차원 높은 선의 판도에 들어갈 수 있게 하는 발판돌이라도 되어라 이거예요.
그래, 여러분들이 지금 무엇이 되어 있어요? 30년, 40년 선생님은 그런 싸움 해 나왔지만 여러분들은 선생님을 따라오다 보니 자기 스스로 전부 다…. 선생님이 들고 차 버리면 어떻게 되는 거예요? 보라구요. 열매가 전부 익은 씨는 전부 다 '퉤' 나무에서 차 버리고 뱉아 버려요. 알아요? 그래요, 안 그래요? 씨가 되거들랑 퉁겨져 버려요. 단뽀뽀(たんぽぽ;민들레) 같은 거 보게 되면 전부 다 거기에 붙어 있지 않고 날아가요. 바람이 동서남북, 사방으로 헤쳐 보내는 거라구요. 차 버리는 거예요. 마찬가지 이치로 여러분이 열매가 되었다면 차 버려야 돼요. 안다고 하지 말고 냉정하게 전부 다 뿌려 버려야 된다구요. 그게 천지이치입니다. 그게 발전할 수 있는 거라구요.
한국 사람들을 전부 다, 통일교회 오래된 패들을 전부 다 세계로 뿌려 버려야 돼요. 그거 찬동해요? 뿌려져 가지고 거기에서 뿌리를 박아 잎이 나와 가지고 가지가 되고 줄기가 되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으면 선생님 열매와 같은 열매를 맺을 자신 있어요? 심각하다구요.
이제 점점점 선생님 못 따라 할 거라구요. 왜? 안보문제 때문에. 공산당들이 전부 다 통일교인 이상의 열성분자로 가장해 들어오기 때문에. 그렇기 때문에 서러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잘못 결정했기 때문에 여러분은 그걸 받아야 돼요. 서러워하지 말고 원망하지 말라는 거예요. 그걸 달게 받으면 여러분 후손들은 가망이 있다는 거예요. 돌아서는 거예요. 방향을 돌려 죽지만, 원망하게 되면 그냥 그대로 악한 세계를 향해서 낭떠러지로 떨어지고 또 떨어져서 옥살박살되는 것입니다. 그때 후회하지 않고 당연하다고 생각하면 거기서부터 새로운 방향의 옆가지가 나와 가지고 경계선을 넘게 될 때 소망이라도 있다는 것입니다.
축복가정이니 뭣이니 요사스러운 여러분들을 전부 다 재정비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 하는 것을 생각하고 있는 거예요. 이거 심각한 얘기예요. 선생님이 와서 좋은 얘기 할 줄 알았더니 뭐…. 심각한 얘기예요. 그래, 여러분 자신들이 선악에 대한 자체 결정을 중심삼고 주관성을 가질 수 있는 자리에서 선의 방향, 선의 목적을 확정짓지 않고는 선의 세계의 판도를 상속받을 수 없고 거기에 동참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게 천리예요.
그런 것을 확실히 깨닫고, 기억하고 돌아가 기도하면서 그거 결정해야 됩니다. 우선 나는 누구의 아들딸이냐, 난 어떤 부모의 아들딸이냐? 어머니 아버지의 아들딸로서 어머니 아버지의 참아들딸의 자리에서 정성을 들여 주어야 돼요. 어머니 아버지에게 효성의 도리를 해야 한다구요. 어머니 아버지가 없더라도 영계에 가 있는 그 어머니 아버지를 위해서 아들의 도리, 자식의 도리를 다했다 할 수 있게끔 정성을 들여 줘야 되는 것입니다.
주관성을 갖고 선의 방향과 목적을 확정지어야 하늘이 보호해
남편이 남편으로서의 길을 다 가지 못했거든 그 아내 앞에, 아내가 죽었더라도 그 아내 앞에 회개를 하고, 내가 살아생전에 이런 놀음 못 했으니 모두 용서해 달라 빌고 청산지어야 됩니다. 그래서 '당신은 그래도 남자 중에서 내 남편으로서 자랑할 수 있는 남편이다' 할 수 있어야 여편네도 영계에 가 가지고 갈 길을 가는 거예요. 부모에 대한 모든 해결점, 남편에 대한, 아내에 대한 모든 해결점, 자식에 대한 해결점을 지어야 된다구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래서 선생님의 자식들 대해서…. 여기 우리 어머니는 그거 모르지요. 전화도 잘 못 한다구요, 전화하고 싶어도. 갑자기 '아이구 너를 사랑한다, 생각한다' 나 그러고 싶지 않다구요. 내가 그럴 수 있는 환경에 왔다 할 때까지는…. 자식을 위할 수 있는 내 스스로의 환경을 못 가졌다는 거예요. 환경을 못 가졌으니 할 수 없어요. 환경을 가질 수 있는…. 바람벽에 가 부딪치고 돌아설 때까지는 그 길 가기가 바쁘지 자식들 붙들고 위로하기에 바쁘지 않다 이거예요. 그걸 안다면 만나면 입이 다물어진다구요. 어저께 우리 은진이를 만났어도 '아이고, 안 돼' 그랬다구요. 그거 다 그런 거예요.
자, 그래 놓으면 다 하늘이 보호한다구요. 하늘이 보호하는 거예요. 내가 염려 안 해도 하늘이 보호해 주는 것입니다. 우주가 보호해 주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 교인들은 전부 다 하늘이 보호해 주는 것입니다. 죽을 녀석들도 살아나고 말이예요.
미국에서 우리 활동하는 사람들은 24시간 활동하다 보면 졸면서 운전하는 사람도 수두룩하지만…. 자, 이거 가만 들어와서 보면 한 시간 운전해 왔는데 어떻게 운전해 왔는지 모르고 왔다는 사실이 많다구요. 실제 그렇다구요. 운전을 하고 왔는데 자기가 어떻게 왔는지 생각이 안 나도 집에 오기는 왔다 이거예요. 그거 누가? 영계, 영계의 자기 선한 조상들이 운전해 준다 이거예요. 그런 일이 많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얼마나 심각해요? 얼마나 심각한 사람들이예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열두 시가 넘어서 새로 한 시, 두 시가 되었더라도 내가 잘 시간을 생각 안 하는 거예요. 자기 사명이 촉구되는 거기에 포로가 되어서 사는, 그런 길을 가고 있는 사람들이 통일교회 교인들이라구요. 그게 누굴 위한 것이예요? 하늘과 세계를 위하고 선한 편을 위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도와주고, 그런 역사를 다 지니고 나가는 것입니다.
작더라도 알뜰하고 흠 없는 그릇이 되라
자, 그러니까 세계 통일교회 본부에 속하는 한국 통일교인들은, 통일교회 신앙을 하는 사람들이 조국 강토라고, 신앙의 조국이라고 말하고 있는 한국 땅에 있는, 이 한국 본부에 참여한 여러분들은 다 크게 되라는 것이 아니예요. 작지만 알뜰한 그릇이 되라는 것입니다, 알뜰한 그릇, 흠 없는 그릇.
이런 걸 결정해야 된다구요. 그 결정을 오늘 시대에가 아니라 과거에 했어야 했고, 지금 그렇게 또 방향을 갖추어 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 못하거들랑 이제라도 자기를 중심삼고 스스로 선악에 대한 결정을 짓고 맹세하고 가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가는 길에 풍파도 많고 변함이 많지만 그 환경 여건을 소화하고 변함없이 갈 수 있어야만, 하늘땅이 믿을 수 있어야만 여러분 친구들이 믿는 거예요. 하늘땅이 믿지 못하고는 여러분 친구들이 믿었댔자 하늘땅이 믿을 때는 그 친구들을 다 후― 불어 버리게 되는 거라구요. 다시 정비해야 되는 거예요.
자, 그런 것을 여러분이 잘 아니, 그러한 길을 새로이 갈 수 있게끔 여러분 자체가 선편 악편을 결정지어 선을 옹호하고 악을 제거해 가지고, 전진적인 선의 방향을 위하여 사랑으로써 하나님을 모시고 사는 여러분이 되기를 바라서 말씀드렸습니다.
기도
흘러가는 역사시대에 왔다 갔던 수많은 조상도 그러했고 이 세계에 널려 있는 40억 인류도 그러한 생활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그중의 한 사람인 나도 선배들이 가던 길을 되풀이하며 그러한 환경에 살고 있는 인류들이 가는 길에 동반하는 운명을 지니고 있는 자신인 것을 알고 있습니다.
오늘의 승리를 다짐하는 것이, 내일의 승리의 세계를 위하고 승리의 하늘땅을 위함이라는 것을 아옵니다. 내 마음에서 그렇게 다짐한다면 몸의 환경을 소화하고, 내 개인에서 그렇게 되면 가정을 소화하고, 가정에서 그렇게 되면 종족·민족·국가로 반복적인 발전적 환경을 소화시켜 가야 할 투쟁적인 자체가 자기가 되지 않고는 살아 남을 수 없다는 것을 저희들은 너무나 잘 알고 있사옵니다. 그래야 하는 자아를 긍휼히 생각하지만 이것을 동정할 수 있는 내 자신이 못 된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타락의 함정에 깊이깊이 빠져 있고, 또 쇠사슬에 얽매어 있는 모든 극난한 조건들이 걸려 있는 것을 타파하고 도약, 비약하지 않으면 안 될 자기 자신의 운명인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여기에 참석한 개개인의 마음을 아버지, 새로운 선의 출발적인 마음과 연결시키시어 그 마음 몸을 중심삼고 완전히 하나된 새로운 내 자신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 내 몸 마음이 완전히 하나된 자신을 결정시켜 가지고, 방향을 통하고 미래의 하나의 세계의 모든 풍파를 겪고 소화시키고 남을 수 있는, 통일적인 권한을 갖출 수 있는 하늘의 아들딸들이 되게 축복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다가오는 세계 앞에 부끄러운 모습이 되지 않고 당당한 아버님의 아들이요 딸이 될 수 있는, 적어도 세계사적인 체면을 갖춘 아들딸의 모습으로 당당히 나설 수 있는 아들딸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여호수아와 갈렙을 대해서 하늘이 운거하게 될 때, 모세는 가고 이스라엘 민족은 도탄 중에 있던 그 환경에 있어서, 40년 동안 수난 훈련 과정을 거치고 난 후에 새로운 제2이스라엘 판도를, 가나안 땅을 향하여 바라보면서 나서는 그들의 지도자 앞에 하늘은 강하고 담대하라고 했습니다.
그 강하고 담대하라는 것은 개인을 위해서 강하고 담대하라는 것이 아니었사옵니다. 수많은 나라와 수많은 세계 인류 앞에, 악한 편 세계 앞에 강하고 담대하지 않고는 선편 승리의 기지를 닦을 수 없다는 것이 하늘의 절절하신 소원이었다는 것을 저희들은 알고 있사옵니다. 그 당시의 여호수아와 갈렙은 그걸 몰랐지만 하늘은 알고 권고했다는 것을 역사적인 시대를 지내온 오늘날 우리는 탐구해서 알 수 있는 자리에 선 것을 감사하지 않을 수 없사옵니다.
오늘 통일교회 무리들에게 새로운 봄이 찾아오고 있습니다. 이제 새로운 봄과 더불어 통일교회 운세는 세계에 활짝 피어 문제의 통일교회로 등장할 날이 멀지 않았사옵니다. 그 도상에 나타나서 세계인들이 나는 어디로 가야 되느냐고 묻게 될 때에, 그 자체들을 대해서 이렇게 가야 된다고 보여 줄 수 있는 자료를 가질 수 있는, 이미 스스로 결정된 자아의 생활권을 가지고 사회와 국가권을 대할 수 있는 당당한 모습들이 될 수 있게 축복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고 원하옵니다.
그렇지 못하였거들랑 스스로 다시 다짐하고, 낮은 자리에서 회개하고, 내일의 부끄러움을 모면하기 위하여 하루하루 부끄러운 자리를 소화할 수 있는 당신의 자녀들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이제 봄이 찾아온 4월, 꽃피는 계절, 철새가 날아드는 계절, 강남 갔던 제비가 지저귀는 계절, 화창한 봄날이 찾아온 가운데 고독한 슬픔의 눈물을 흘리는 외로운 아들딸이 되지 말게 하시옵고, 당당코 주인의 자세를 갖춘 환영받을 수 있는 영광의 아들딸의 모습으로 나타나게 하시옵소서. 만물이 소생하는 봄절기에 만유의 존재들과 화동할 수 있는 주체성을 가지고, 여유 있는 사랑으로 품고도 남을 수 있는 당당한 아들딸의 모습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자아를 발견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과거를 청산하고 새로운 내일을 입증시키고도 남을 수 있는 스스로의 모습이 되게끔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허락하신 이 시간을 감사하면서, 모든 말씀 참부모님의 이름으로 축원하였사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