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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선집 121~160권

文鮮明先生말씀選集 150 - 1. 광야시대의 승리자 (1958년 8월 17일)

작성자대태양/김현수|작성시간21.09.30|조회수134 목록 댓글 0

광야시대의 승리자

1958.08.17 (일), 한국 김포교회

 

이념을 실천하는 데는 아니 갈래야 아니 갈 수 없는 불가피한 원리원칙이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원리원칙이 나와 있으면 이 원리원칙을 통해서 생활할 수 있는 조건, 그 이념과 영원히 관계를 맺을 수 있는 내용이 내포되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까지 숱한 주의가 있었지만 이런 이론은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오늘날 우리에게 있어서는 우리가 바라는 이념이 서 있습니다. 이 이념 가운데 나오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조직이요, 이 조직 가운데서 나오는 것이 뭐냐 하면 생활입니다.

 

생활적인 인연을 맺으려면 이념과 조직이 필요해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은 지금까지 우리 교리를, 하나님이 창조이상을 중심삼고 복귀섭리하신다는 복귀의 이념을 배우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이념을 배우고 보니 거기에선 무엇이 나오느냐? 여러분들이 이제부터 편성해야 할 조직적인 움직임이 나오는 것입니다.

 

원리를 공부해 보게 될 때 거기에서 나오는 것이 무엇이냐? 오늘날 우리들이 갖고 있는 삼위기대와 같은 조직이념이 나오는 것입니다. 이제는 이념을 갖고 삼위기대를 편성해 가지고 반과 조와 같은 기능적, 조직적인 움직임을 우리들이 판단해서 개척해 세우지 않으면 안 되는 책임 단계에 처해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지나간 후에는 생활속으로 들어간다 이거예요. 이념을 알았고 조직을 알았으면 이제는 실천해야 할 생활적인 단계로 들어가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 생활을 볼 때 개인에게 있어서는 개인 생활이 있고, 가정에서는 가정 생활이 있고, 사회에 있어서는 사회 생활이 있고, 교회면 교회, 국가면 국가, 혹은 세계면 세계, 하늘나라면 하늘나라에서의 생활이 있습니다. 존재한다는 그 의미를 중심삼고 생활적인 인연을 벗어나는 일들은 하나도 없다는 겁니다. 그렇게 볼 때, 오늘날 우리 개인을 중심삼고 산다는 삶이 나 하나에 미쳐져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내 개인으로서 산다는 것은 반드시 가정과 인연이 되어야 되고, 가정을 중심삼고 산다는 것은 사회나 교회, 혹은 국가와 세계, 더 나아가서는 천주와 인연이 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중대한 관계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념도 조직도 무엇을 하나 만들기 위한 것이었느냐 하면, 하나님이 바라는 생활적인 인연을 우리에게 맺어 주어 하나되게 하기 위한 것임을 우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니 이제부터의 생활이념이 개인적으로 전창조이념을 대신할 수 있고, 창조이념을 세우신 아버지의 심정을 대신할 수 있는 인연을 통해 내가 살 수 있다 하는 사람이 된다면 이들은 영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창세 이후에 이런 생활을 한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살되 지금까지 각 민족이면 민족의 습관과 민족의 풍습, 혹은 한 국가면 국가의 이념에 의지하여 살았지, 하나님을 중심삼고 산 민족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천륜 앞에 세워진 이념이나 조직 밑에서 생활한 사람은 한사람도 없었다는 거예요.

 

이념을 통한 조직과 생활적인 승리의 발판을 하나 만들어야

 

그러면 오늘 우리가 남달리 이렇게 모인 목적이 무엇이냐? 또, 모인 인연은 어찌하여 이런 인연이 되었느냐? 여기에서 하나님이 기뻐할 수 있는 조직과 하나님이 기뻐할 수 있는 생활의 목적을 빼 버린다면 여러분들은 하등의 관계가 없는 무리가 되는 것입니다. 아버지의 뜻 하나를 빼놓아 버리면 하등의 관계가 없는 사람들이 되는 거예요.

 

오늘날 서로서로 뗄 수 없는 인연으로써 우리의 마음이 엉클어져 있고, 우리의 생활이 인연의 법도에서 서로가 염려할 수 있는 입장에 서 있다 함은 오로지 하나님이 바라는 이념을 통한 조직과 생활적인 승리의 발판을 하나 만들기 위한 것입니다. 그걸 위해 이렇게 모여 있다는 걸 알아야 됩니다. 즉, 뜻 하나를 세우기 위해서 이렇게 모였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부터 우리가 그렇게 생활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이냐? 내 손발을 움직여야 됩니다. 그렇지요? 또, 어떻게 해야 될 것이냐? 내가 밥을 먹어야 돼요. 밥을 먹고, 손발을 움직이고, 보고 듣는 오관의 감각을 통해 내 생활 목적을 개척할 수 있는 책임적인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되지 않는다면 그가 산다 해도, 그가 움직인다 해도 그는 전체 천륜의 생활이념과 생활적인 원칙과는 하등의 관계가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는 손도, 몸도, 내 느끼는 오관도 아버지의 생활을 대신해서 살고 있다는 것을 느껴야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까지 6천 년의 기나긴 생활을 해 나왔는데, 6천 년 생활이념으로, 복귀의 서러움으로 사무친 생활의 일편을 붙들고 그 서러움을 대신해서 살아 본 적이 있느냐? 이제 내가 하나님 앞에 세워졌는데 내가 그 아버지 앞에 자신 있게 `아버지가 기뻐할 수 있는 생활 이념을 찾아 가지고 아버지가 기뻐하시는 생활을 하는 데 아버지가 같이하여 주셔야 할 책임이 있사오니, 아버지, 나와 같이 즐겨 살아 주시옵소서'라고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럴 때만이 하나님은 이것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생활하기 위해 수고하고 노력해 온 것이 무엇이냐? 이 땅을 붙들고 나왔습니다. 삼천리 반도면 삼천리 반도, 여기 김포면 김포 이 땅, 또 집이면 집, 그 환경의 어느 조그마한 부분이나 할 것 없이 조그만 데서부터 큰 세계 이 땅덩어리, 더 나아가서는 모든 이 우주세계, 더 나아가서는 영계의 전체 분야까지 창조하신 만물에 대해서 복귀의 생활을 해오신 것입니다.

 

생활하는 데는 사정이 있고, 생활하는 데는 반드시 인연이 있는 것입니다. 인연을 통한 각자 각자의 사정이 있고, 그 사정이 있는 데는 반드시 일이 있습니다. 이 일과 내 생활과는 뗄래야 뗄 수 없는 것입니다. 사정이 있고 일이 있는 데는 내 심정이 있어야 됩니다. 내 심정과 내 사정과 내 일을 합해 가지고 천륜을 대신해서 산다 하는 사람이 된다면 하나님은 기뻐할 것입니다. 오늘 이 시간에 모인 여러분들을 바라보게 될 때 이렇게 산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드물다 이거예요.

 

삼위기대를 편성하는 목적

하나님은 땅을 대해서, 이 땅 위의 인간을 대해서, 그다음에는 영계에 있는 모든 영인들을 대해서 지금까지 생활해 나왔습니다. 하나님도 생활해 나오는 데는 혼자 해 나온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도 성부 성자 성신이 합해 가지고 이 생활의 목적을 추진시켜 나온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 대신 하나님이 하시는 생활을 맡기 위한 끝날의 자녀가 되어야 할 우리들이기 때문에 우리들에게 여기서 필연적으로 요구되는 것이 하나님과의 관계입니다. 참뜻, 참뜻 말입니다.

 

이 삼위기대를 통하여 이제 반이 통일될 것이고, 이 반을 통하여 조가 통일되어 가지고 전체적인 분야가 배후에서 조직적인 이런…. 하늘이 맺어 준 삼위기대, 이 삼위기대의 가치를 느낄 줄 알아야 하나님의 이념을 느끼는 거예요. 삼위기대의 가치를 느낄 줄 알아야 하나님의 생활을 대신 땅 위에서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들 이런 말을 들었겠지요? 삼위기대를 편성하는 목적은 행동통일과 생활통일, 그다음엔 뭐라구요? 이념통일이예요. 그렇게 하기 위해서 우리는 이러한 조직을 하는 것입니다. 생활통일과 행동통일과 이념통일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념이 있는 행동이라는 것은 조직적이고 원리원칙적이다 이거예요.

 

그러면 삼위신이 서러워하는 것은…. 오늘날 이 땅 위에 한 사람을 세워 놓고 아버지께서 6천 년 동안 땅을 대하여, 혹은 만민을 대하여 수고하시던 복귀의 수고의 책임을 맡아 할 수 있는 , 더 나아가서는 영계를 아버님 대신 염려해 줄 수 있고, 또 사탄을 대해서는 단호한 장비를 갖추어 용서할 수 있고 이를 격퇴시킬 수 있는 사람이 되어, 사는 데에서 아버지를 대신해서 자신있게 책임을 지고 살고, 사는 것이 모든 환경의 가치로써 영향을 끼쳐 줄 수 있는 사람들을 찾고 있는 것입니다. 이걸 생각할 때, 여기 있는 여러분들이 그럴 수 있느냐 이거예요.

 

하나님이 삼위신을 합해서 천적인 생활을 해 나오는 목적은 이 땅 위에 친히 임재할 수 있는 성전을 건설하자, 이 우주에 친히 임재할 수 있는 성전을 건설하자는 것입니다. 사탄의 종족을 남기지 않게끔 이 지상에 있는 모든 사탄을 추방하여, 하나님의 아들딸이 평화에 잠기어 하나님 앞에 감사의 영광을 돌릴 수 있는 그 한날을 깊은 생각 가운데 마음으로 염려하며 섭리하시는 아버지인 것을 여러분들이 알아야 됩니다.

 

그 아버지는 우리의 선조, 맨 처음 아담 해와를 붙들고 부르짖었던 아버지요, 우리, 혹은 천추만대의 우리의 후손에게 복귀의 서러움이 남아있는 날까지 그 슬픔의 마음을 빼놓지 못할 아버지라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 아버지의 마음, 그 아버지의 심정, 그 아버지의 사정과 통할 수 있는 사람들이 되지 않으면 오늘날 하늘이 바라는 천적인 생활을 개척할 하늘의 자녀가 되지 못합니다.

 

천적인 생활을 경륜하시는 아버지께서 하나의 뜻을 세워 놓고 엉클어진 사정과 심정을 중심삼고 곡절의 노정을 걸어 나왔다는 것을 회상하게 될 때, 지금 여러분 자신을 냉정히 비판해 보고 여러분은 천륜의 뜻 앞에 피할래야 피하지 못할 사정이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되겠습니다. 하나님과 나와는 끊을래야 끊을 수 없는 , 내 생명의 힘보다 더 강하게 흐르는 사정의 밑바닥을 헤어 나오시던 아버지의 심정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 사정이 내 사정이요, 그 심정이 내 심정인 것을 알진대는 그 창조한 만물이 내 것이요, 타락한 인류가 내 형제인 것을, 내 혈족인 것을 느끼지 않을 자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런 심정을 여러분들이 느끼면서 이제 하늘이 주장하는 소망의 생활을 통해 지옥생활을 천국생활로 돌려놓아야 할 우리들의 사명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러면 오늘의 나는 그걸 무엇으로 건설할 것인고?

 

오늘날 우리들은 무엇으로 그걸 건설할 것인고? 우리에게는 사탄세계와 같이 갖추어진 무리가 없습니다. 사탄세계와 같이 갖추어진 권력이 없고, 사탄세계와 같이 갖추어진 물질도 없습니다. 아무것도 없는 이 한 몸뚱이를 가지고 이루어 드려야 할 곡절의 이 운명을 어떻게 해결지을 것이냐 이거예요.

 

이런 것을 바라보게 될 때, 먼저는 모든 것을 이길 수 있는 간절한 내 마음이 있어야 되겠고, 지금까지 세상에 살고 있는 나의 생활적인 사정이 하늘과 인연된 사정을 피할 수 없는 무가치한 것을 느낄 수 있는 폭발적인 심정이 여러분의 마음에서 솟구쳐 나와야 되겠습니다. 그렇지 않는다 할 때는 여러분은 하늘이 영원히 이 땅 위에 남길 수 있는 기쁨의 소망의 상대로 찾고 있는 아들딸로서 살 수 있는 생활의 기준을 하나님 앞에 세울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내가 수십 평생을 어떠한 소망을 갖고 살았으나 그 소망의 출발서부터 아버지의 사정을 통하지 못하였던 것을 상기할 줄 아는 내가 되어야 되겠습니다. 삶의 사정을 통하여 욕망을 걸고 허덕이었던 내 심정을, 하늘과 하등의 인연이 없게 살았던 과거를 후회할 줄 아는 마음이 없다 할진대, 오늘의 여러분은 현재 이 환경을 개척하여 새로운 분야에서 정상적인 생활 기준을 영위할래야 영위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의 손길이 얼마나 아버지의 딱한 사정을 붙들어 보았으며, 여러분의 심정이 아버지의 심정을 대신해서 얼마나 서럽고 얼마나 괴롭고 얼마나 분한 심정이 되었느냐는 것입니다. 마음에서 느끼지 않을래야 느끼지 않을 수 없는, 온 몸이 고스러지면서 `나의 아버지!' 하고 아니 부를래야 아니 부를 수 없는, 누가 끊고 누가 변형시킬래야 변형시킬 수 없는 천륜의 인연이 있다는 것을 여러분 스스로가 느낄 수 있는 그와 같은 한 시간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그렇지 않고는 내 생명의 본체가 내게서 떠난다는 것을 여러분들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때는 광야시대

오늘날까지 산 것이 그 생명을 의지하여 산 것이 아니었고 빈자(貧者)와 마찬가지의 생활을 했다는 것을 알고, 여러분들은 이런 생활 속에서 하늘의 심정과 하늘의 사정을 갖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사정과 하나님의 심정은 무엇이었던고? 이 땅이면 이땅, 김포면 김포 이 지역에 하나님이 사랑하는 자녀들이 많습니다. 타락하지 않았더라면 여기 이 지역에 사는 백성들도 하나님이 부르면 응할 수 있는 백성이 되었겠지만, 그렇게 못 된 것을 바라보는 하나님은 이 김포 지역에 대해서 무한정 슬프게 생각할 것입니다.

 

오늘날 여러분의 심정이 하나님의 심정을 생각하고 하나님의 사정을 체휼하면서 이 김포를 바라보게 될 때, 하나님 대신 눈물을 지어 줄 수 있는 마음이 우러난다 할진대는 하나님 앞에 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 대신 고통을 느끼고, 하나님 대신 분함을 느끼는 무엇이 있다 할진대 이는 사탄 앞에 명백히 나서서 싸울 수 있는 하늘의 용장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마음이 여러분에게 없다 할진대 여러분들은 기쁨을 맞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김포면 김포 이 지역은 하나님이 마음 놓고 친히 발걸음을 옮겨 사랑하는 자녀들을 찾아갈 수 있는 땅이 돼 있느냐? 사랑하는 아들딸들이 있다 할지라도 김포 땅을 밟을 수 없는 연고로 그 아들딸을 이 시대에 찾아와 볼 수 없고 그 아들딸과 같이 생활할 수 없는 환경이 돼 있는 것입니다. 그런 생활적인 환경이 되어 있지 않은 것을 여러분이 느껴야 되겠어요.

 

이스라엘 민족은 광야에서 장막 성전을 건설하였고, 그다음에는 가나안을 복귀하여 실체 성전을 대신한 성전을 건설하였습니다. 이것은 무엇이냐? 복귀노정에 있어서 우리들이 하늘을 찾아 나가는 전체 모형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이 김포 땅에 모인 여러분들, 여러분들이 여기에 머물러 있는 것은 광야에 있는 장막 성전에 머무르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통일교회에 있어서 이때는 애급 궁중에서 바로를 몇 번이나 강퍅하게 하여 택한 이스라엘 민족이 애급을 박차고 나와 홍해를 건너던 과정의 체험을 여러분들이 가져야 할 때입니다. 새로운 소식, 소망의 한날, 희망의 고국을 그려 마음과 몸이 그곳을 향하고 있으나 앞을 가로막고 있는 원수의 무리가 있으니, 이것을 제쳐 놓고 새로운 복된 날의 소식을 맞을 수 있어야 됩니다.

 

여러분, 지금까지의 애급 땅과 같은 생활 환경을 박차고 나올 때의 결의와 결심이 각자에게 있을 것입니다. 그 결심이 있은 후에는 여러분 앞에 무슨 생활이 시작되느냐 하면 광야시대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돌고 도는 40년 광야노정을 걸어야 할 입장에 서 있다는 거예요. 광야노정 다음에는 무엇을 해야 하느냐? 이스라엘 민족에게는 12지파와 70장로를 세워 조직적인 형태를 갖추어서, 장막 성전시대를 지나 실체성전을 건설하여 가나안 땅에 들어가 가지고 가나안 7족을 격멸시킨 후에, 그 땅을 유업으로 상속받아야 할 상속자로서의 훈련 시기가 있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오늘 우리들에게도 역시 이것이 있는 것입니다.

 

법도적인 조건을 갖고 삼위기대가 하나돼야

 

삼위기대는 왜 필요하느냐? 광야에 있어서 아멜렉 족속의 공격이 시작될 때 그것에 대비하여 방비할 수 있는 하늘의 무기는 그 어떠한 세력도 아니었습니다. 그 어떠한 권력이나 어떠한 자기의 위력도 아니었습니다. 단지 하늘이 허락한 최후에 남아질 법도적인 조건을 갖고 모세를 중심으로 아론과 훌이 하나되는 거기에 있어서 소수의 이스라엘 민족을 통하여 아멜렉 대군을 물리치고도 남을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이 우리의 복귀노정에 필연적인 증거물로 나타나 있는 것을 바라보게 될 때, 오늘날 우리들은 이런 광야노정에 들어와 있기 때문에 이것이 필요한 것인 줄 알아야 됩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광야에서 돌고 돌면서 맨 처음 결심하여 나오던 마음이 간데없이 점점 식어 들어간 것입니다. 바로 궁중에서 싸우던 모세는 우리의 지도자요, 이스라엘의 지도자요, 민족의 선구자요, 하나님이 택한 사랑하는 아들임에 틀림없다고 믿고 나오던 이스라엘 민족이 원수의 무릎 아래서 탈출해 나올 때는 기쁨으로 나왔으나, 민족 민족끼리 광야노정에서 허덕이며 이리 밀리고 저리 밀리는 바람에 모세를 중심삼고 좋아하던 마음을 잊어버렸던 것입니다.

 

원수로부터 빠져 나가기 위한 간절한 마음을 갖고 있을 때는 이스라엘 민족이 애급을 대하여 싸울 수 있는 용기도 있었고, 자기네 끼리끼리는 죽든지 살든지 아버지가 허락하시고 인도하시는 그 땅을 향하여 기필코 가려는 용기가 다들 있었는데, 이리 밀리고 저리 밀리는 그 노정에 있어서 그 힘과 정신은 점점 쇠해 간 것입니다. 쇠해 가기 시작하는 거기에 다시 바로 궁중에서와 같은 경고의 채찍을 세워서라도 흩어진 이스라엘 민족을 바로잡으려는 하늘의 진동이 있는 연고로 아멜렉 족속으로 하여금 공격하게 하셨던 것입니다. 이런 뜻이 있었던 것입니다.

 

60만 대군이 원수 앞에 내놓여졌을 때 전부가 흩어지더라도 단 세 사람만 하늘 앞에 단결할 수 있으면 안 망합니다. 여호수아가 아멜렉 족속을 무찌른 그 동기는 이스라엘 민족에게 있는 게 아닙니다. 모세와 아론과 훌이라는 단 세 사람이 동기가 되어 이겼던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통일교인들은 그런 사명감을 갖고 있어야 됩니다.

 

오늘날 여러분이 선생님을 위주로 해서 나올 때는 , 원리의 말씀을 의지해 나오게 될 때는 생명을 바쳐 나왔습니다. 이 말씀이 지향하는 목적지를 가기 위해서는 죽음을 각오하고 바로 궁중과 같은 모든 과거 생활을 청산하고 늠름하게 나섰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홍해를 건너고 광야에 나서고 보니, 식구식구끼리 모여 보니, 하루를 대하면 하루요, 일년을 대하면 일년, 천 사람을 대하면 천 사람이…

 

가나안 복지를 향하여 나선 서로서로가 자극적인 생명의 중보자가 되지 못하고 가나안 복지를 향하여 바라보는 결심과 용맹을 감소시키는 소모적인 무리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약속한 땅을 언제 들어가겠노?' 하고 자기들 자신이 바쁜 것보다도 모세가 더 바쁘고, 모세가 바쁜 것보다도 하나님이 더 바쁘다는 것을 모르는 이스라엘 민족과 같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이 통일교인들은 자기 일 개인의 생활적인 환경이라든가 자기 일개인의 사정에 의해 가지고, 바라보던 가나안 땅이 당장에 나타나지 않고 소망하였던 그 뜻이 당장에 나타나지 않는다고 해서 쑥덕거려서는 안 되겠습니다. 그것들이 나타나지 않는다고 쑥덕거린 사실들이 이스라엘을 삼켜 버리게 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오늘날 여러분들도 그런 길을 가서는 안 되겠습니다. 여러분들보다도 더 급한 것이 선생님의 심정이고, 선생님보다 더 급한 것이 하나님의 심정인 것을 모르고 입을 열어 논의함으로 말미암아 여러분의 갈 길을 엉클고 걸고 뭉그러뜨리는 적이 얼마나 많으냐?

 

그뿐만 아니라 이런 환경에 처해 있는 우리에게 하늘이 어떻게 하시느냐? 아멜렉 족속의 공격과 같은 것이 있는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애급 나라가 삼켜 버린 이런 입장에까지도 처해 있는 것입니다. 또, 앞에는 가나안 7족이 남아 있습니다. 전후좌우에 머무르는 환경이라는 것은 촌보도 움직일 수 없는 환경입니다. 그런 환경에 몰아넣는 것입니다. 하늘을 믿을 수 없게끔 포기 상태에 놓아두는 광야시대가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모세를 중심한 광야시대를 되풀이하지 않아야

 

이스라엘 민족들을 애급에서 4백 년 동안 연단시켰고, 모세를 통하여 40년 동안 훈련시켜 가지고, 하나의 중심을 세워 가나안 땅을 바라보면서 애급에서 광야로 인도해 냈으나 인도해 낸 본의의 그 목적과 다르게 하늘과 멀어지게 될 때 어떻게 되었느냐? 재탕감 기간인 광야 애급 기간이 습격해 왔다는 것을 우리들은 알아야 합니다. 이런 연고로 사탄이 침범하게 된 것입니다. 그리하여 불뱀이 물어 이스라엘 민족을 쓰러뜨린 것입니다.

 

그때에는 이스라엘 민족들이 모세의 말을 요만큼도 안 믿으려 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피를 흘리면서도 `이 녀석, 무슨 요술을 부려 우리를 끌어내 가지고 전부 다 광야에서 쓰러뜨리느냐?' 라고 한 것입니다. 그랬어요, 안그랬어요? 당장 현실을 보니 그렇게 됐다는 거예요. 10년도 아니고 30년 40년을 돌고 돌아 나중에는 광야에 있어서 독수리 밥을 만들었다는 사실을 아는 그 민족들이 모세를 때려죽이지 않은 것만 보더라도 이스라엘 민족은 선했다는 것입니다. 그런 것을 바라보는 모세의 마음은 애급에 있어서나 광야에 있어서나 애달팠다는 것입니다.

 

모세의 심정은 어떠했느냐? 소망의 가나안 땅을 40년 동안 바라보면서 바로 궁중에서 기도하던 모세는, 민족을 사랑한다는 피 끓는 심정을 참지 못하여 몇몇 사람을 때려 죽이고 미디안 광야의 처량한 목자 생활을 40년동안 계속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지팡이를 들고 양을 몰던 그 마음은 어떠했느냐? 양떼를 이스라엘 60만 민족 대신으로 알고 하늘을 향하여 기도하였던 것입니다. 그런 모세의 마음을 우리는 알아야 됩니다. 멀리 가나안 땅을 바라보면서 `아버지!' 하고 호소하던 그 마음, 그 심정이 애급에 살고 있는 이스라엘 민족의 어느 누구보다도 하늘의 심정과 통할 수 있었기에 하늘은 그를 불러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세웠다는 것입니다. 그런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그런 과거를 가졌던 모세는 몸은 이미 80여 세를 지난 노구의 몸이로되 마음은 뜻에 대한 사명을 책임진 일심이었습니다. 민족의 생사 결단을 책임진 모세였던 것입니다. 그런 연고로 이스라엘 민족이 애급 땅에서 나올 때는 기쁨으로 나왔으나 광야에 나와 가지고 흩어지는, 하늘을 배반하는 모습을 바라보는 모세에게 있어서는 광야 기간이 어떠한 기간이냐 하면, 과거 80평생을 회고하는 기간이요, 80여 년 동안 숨은 눈물을 흘렸던 것을 실제로 눈물 흘리는 기간이었던 것입니다. 그러한 사연이 있었던 것을 이스라엘 민족은 몰랐다는 것입니다. 모세의 뒤를 따르고 있는 이스라엘 민족들은 80여 평생의 숨은 눈물을, 그 일신이 실체의 눈물을 짓던 숨은 이면을 알지 못하였어요.

 

그러나 `애급에서 하나님의 원수인 바로를 대해서 싸워 나오던 모세는 우리의 지도자니, 죽더라도 그를 사수하여 그의 신념을 따라 그의 길을 받들어야 한다' 하는 것을 쓰러지면서도 생각하고, 쓰러지는 입장에서도 마음으로 바라보는 사람이 있었기에 모세는 쓰러지는 이스라엘을 위해 하늘에 대하여 하나님 대신 슬픔의 마음을 갖고 호소했던 것입니다. 그러한 연고로 하나님은 모세를 조건으로 쓰러지는 이스라엘에 생명을 붙들어 주기 위해, 뱀한테 물린 것을 살려주기 위해 구리뱀을 만들어 주셨던 것입니다.

 

이때에 모세를 대해 원망하던 녀석들은 모세가 또 허위 수작을 한다고 했습니다. `지금까지 속여 나오고 지금까지 우리를 이 지경으로 만든 모세가 뭘 또….' 했던 것입니다. 그러자 대부분이 그 말을 듣고 넘어갔어요. 그러나 애급 땅에서 바로를 대해 싸워 나오던 모세에게 같이 협력하고 안타까운 마음을 갖고 나온 사람, 홍해를 지나 광야에 나와 입을 것 입지 못하고 먹을 것 먹지 못하는 처량한 신세가 되었지만, 그 마음에 있어서는 모세가 자신들의 지도자라는 마음을 잊지 않고 모세를 마음으로 그리면서, 반대하는 무리 가운데서 마음 아파하면서 혼자 숨은 마음을 품고 모세를 위로하는 그 마음이 있던 사람은 모세의 외치는 소리에 마음이 안 움직일래야 안 움직일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랬던 사람만이 살아 남은 것입니다.

 

광야시대에 있어서의 우리의 자세

 

오늘날 우리 교회가 그런 위치에 처해 있습니다. 지금 선생님의 입장이 그런 입장이예요. 여러분들은 애급 생활과 같은 생활을 박차고 나와 광야노정을 가고 있는 것입니다. 광야에 나온 우리 앞에는 아멜렉 족속이 걸려 있는 것입니다. 이제부터 아멜렉 족속이 공격해 들어오는 거예요. 이제 사탄과 실체를 쓴 뱀들이 우리 앞길을 선동하여 여러분들을 물어 제끼는 때가 왔다 이거예요.

 

여러분이 어느 부분을 물렸느냐 하는 건 자기 자신들이 알 것입니다. 마음으로 몸으로 물질로 자녀로 지금까지 우리들이 생활해 나온 모든 조건들이 나를 물어 제끼는 하나의 조건으로 남아 있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옛날의 나의 친구, 나의 부모, 나의 동기가 그렇다는 것입니다. 애급에 있던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을 따라 나와야 할 처지에 있는데 `아! 바로가 잘살게 해주고 있는데 뭐' 그런 사람이 있었다구요. 그건 사탄이 알고 있었다는 거예요.

 

`우리는 이와 같이 사니 가나안 땅에 들어가도 그거 뭐…. 우리는 더이상 부러울 것이 없어. 우리는 여기에 살겠다' 라고 하며 아니 나오겠다는 사람이 있다 할진대는, 자기 사랑하는 부모, 자기 사랑하는 처자, 자기가 사랑하는 무엇일지라도 끊어 버리고 나서지 않으면 안 될 이런 처지에 처해졌던 것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오늘날 여러분도 외로운 길에 나선 사람들입니다.

 

거기에는 어떠한 울타리도 없고, 의지할 곳도 없습니다. 북풍이 불면 남쪽으로, 동풍이 불면 서쪽으로 힘없이 밀려가는 처참한 입장에 처해있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거기에 있어서 오직 내가 가져야 할 하나의 잃어버리면 안 될 것이 무엇이냐? 모세가 처음 바로 궁중을 박차고 나올 때 그의 마음에서 끓어오르던 간절한 그 심정에 내가 들어가 있다 하는 것을 여러분들은 알아야 됩니다. 그 심정 위에 내 사정을 박차고 나섰던 그 사정이 있었던 것을 알아야 돼요.

 

이런 광야시대에 있는 연고로 지금 선생님의 말은 이제 한국에서 믿을 수 없는 사람의 말로 되어 있습니다. 어느 누구든지 그 말을 믿어서는 안 된다고 되어 있어요. 몰리고 있던 모세의 일면을 걷고 있는 때에 처해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 믿을 수 없는 환경에 있어서 믿어야 할 심정을 가진 사람이 모세가 찾고 있는 사람이요, 하늘이 찾고 있는 사람이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여러분들도 그와 같은 자리에 처해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한 기로에서 4백 년 조건의 제단을 쌓아 가지고 첫 고개를 넘은 이스라엘 민족은 광야에 나가 가지고 둘째 고개를 넘어야 할 것인데 넘지 못한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가 그런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한국 기독교가 그런 시대에 처해 있음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자기만 망하면 몰라도, 망하는 단계에 들어서서 곁에서 모세를 옹호하는 사람까지도 물어 넘기려고 하는 입장에 서 있는 사실들을 여러분이 실제 느껴야 됩니다.

 

그때에 조건이 된 것이 모세의 구리뱀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 뱀을 들기 전에 모세가 주장하고 부르짖는 음성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 사명을 대신한 것이 오늘날 우리 교회의 원리고, 그 사명을 대신하여야 할 것이 통일교회의 길을 걸어 나가는 우리의 입장인 것을 여러분들이 알아야 됩니다. 이런 때가 되었기 때문에 선생님은 역사적인 길을 가려고 합니다. 이러이러하여 우리 선조들이 망했기 때문에, 이것을 복귀하기 위해 문을 가로막고 있는 원한을 박차고 장벽을 무너뜨려 가지고 승리적인 민족의 문을 해방시켜야 할 각자의 책임이 있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선생님이 소원하는 것은 무엇이냐 하면, 여러분들은 옛날 모세의 명령에 움직이던 이스라엘 민족과 같은 사람이 되지 말자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세와 아론과 훌을 대신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 주길 바라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야 역사적인 원한을 넘고 새로운 가나안 복지를 향하여 행군할 수 있는 하늘의 군대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라구요, 여러분들의 생각이 어떤가. 선생님은 그렇게 생각해요.

 

12지파를 대신하여 가나안 땅을 정탐하라 할 때 어찌하여 열두 명이 들어갔느뇨? 하늘은 거기에서 서러워한 거예요. 1천 2백이 못 되고, 1만2천이 못 되고, 1백 2십만이 못 되었던 것을 서러워하신 것입니다. 어때요? 정탐하고 돌아온 모든 사람들은 다 반대하는데 거기에 있어서 `승리는 우리의 것이요, 애급에서 우리를 인도하던 하나님은 가나안 칠족이 있다 할지라도 우리 가운데 같이하시므로 어떤 원수도 우리 손으로 굴복시키고 남을 수 있다' 라고 첫번 각오의 심정을 잃지 않았던 여호수아와 갈렙이었지만, 정탐하고 돌아올 때는 낙망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60만 대중을 바라볼 때 소망에 지치고 지쳐 어떠한 하나의 조건도 붙들 수 없는, 이런 기준도 안 가진 마당에 있어서 가나안 7족을 공격한다는 것은 꿈에도 당치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런 미미한 이스라엘을 바로의 마수에서 인도하여 가나안 복지를 약속했다는 것을 철석같이 믿는 여호수아와 갈렙은 믿음의 보고를 했던 것입니다. 그들은 무엇이 있었기에 그렇게 할 수 있었느냐? 신념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가나안을 찾을 수 있는 주인이 되겠다는 신념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반대하던 모든 무리는 다 쓰러지고 충성하고 따르던 무리만이 남아진 것입니다.

 

조직을 통하여 생활적인 자유 환경을 개척해야 할 우리

 

그러면 오늘날 우리들은 어떻게 해야 될 것인가? 이스라엘 대중이 광야에 나와 가지고 무엇을 했느냐? 거기에서 12지파를 중심삼고 반열 편성을 해 나갔던 것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오늘날 우리들도 그렇게 반열을 편성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반열을 편성하기 전에 삼위기대를 편성해 가지고 아론과 훌과 모세를 대신하여, 아멜렉 족속과 같은 사탄을 무찌를 수 있는 하늘의 군대가 되어야 합니다. 성부ㆍ성자ㆍ성신을 대신할 수 있는 승리의 모습들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래 가지고 셋이 단결하여….

 

우리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12지파를 대신하여 가나안 정탐을 들여 보내려 할 때 `아버지, 내가 가겠습니다' 할 수 있는 무리가 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가나안 땅, 원수의 땅을 정탐 들어가야 할 때가 온 것입니다. 또, 그 땅을 점령해 가지고 거기서부터 `너는 어느 지역을 점령하고, 너는 어느 지역을 점령해야 한다' 라고 딱 점령해야 할 분배 지역을 맡아 가지고 공격의 호령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때 이스라엘 민족은 그걸 몰랐다는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들은 그러한 공격을 해야 하기 전 순간의 단계에 처해 있는 것을 느껴야 되겠습니다.

 

이제 우리는 이념을 알았고, 가나안 땅에 들어간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들어가는 데는 지파적인 단계를 거쳐 가지고 들어가야 되는 것입니다. 가 가지고 우리는 무엇을 해야 되느냐? 이제 생활적인 자유 환경을 개척해야 합니다. 그런 사명이 남아 있다는 걸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걸 못 하면 다 망해 버리는 거예요. 이념이 섰다 할지라도, 조직이 있다 할지라도 다 망해 버립니다. 그러니 우리는 지금까지의 신앙생활의 전체 심혈을 기울여 이를 악물고 이것을 생활해 내야 하겠습니다. 모세가 80여 세의 노구의 몸으로써 하나의 실천적인 생활면에 있어서 이스라엘 민족을 끌고 나가야만 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여러분들도 그러한 기간에 있어서 생활의 중심이 되지 않으면 절대 안 된다 이거예요. 알겠어요? 「예」

 

가나안 땅을 향해 나온 우리이기 때문에 삼위기대를 편성하고 반을 편성해 가지고 토지 분배를 해야 됩니다. 어느 지역을 맡아 책임지고 반열을 인도하여 하나님이 자유의 정든 터로 인정할 수 있는 거룩한 땅을 만들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원한을 다 잊어버리고, 사탄의 모든 두려움을 다 잊어버리고 에덴동산에서 아담 해와를 행복 가운데서 사랑하고 함께 즐거워할 수 있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영원히 여러분을 사랑할 수 있는 환경에서, 사탄의 시험과 외부에서 들어오는 모든 조건을 전부 제거시키는 환경이 벌어진 곳에서 비로소 하늘땅을 찾을 수 있는 것입니다. 거기에서 여러분이 지금까지 바라고 있던 개인완성으로부터 천국생활의 이상세계의 첫출발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기가 나이가 젊다고 자랑할 것 없고, 나이가 많다고 낙심할 것 없다는 것입니다. 내 가나안 복지를 바라보는 간절한 마음이 모세의 마음과 같고, 애급 땅을 대하여 바로와 싸우던 때의 모세의 마음과 같고, 이스라엘 민족을 이끌고 애급을 박차고 나올 때의 모세의 마음과 같고, 광야에 있었던 모세의 마음과 같다 하는 무리가 되었다 할 때는 영락없이 가나안 복지는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실체 성전을 복귀하려면 삼위기대가 하나돼야

 

그렇기 때문에 지금 때는 지금 말한 것과 마찬가지로 사정을 알아야 할 때고, 심정을 알아야 할 때입니다. 심정이 통하고 같은 사정에서 생활할 수 있는 사람이 광야 생활에 있어서 하나님과 같이 동거할 사람입니다. 광야 생활에 있어서 하나님과 같이 사는 사람이요, 광야 생활에 있어서 모세를 울타리삼아 보호할 수 있는 사람인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광야에 있어서 장막 성전은 무엇이냐? 광야에 있어서 둘이 싸우며 서로가 어떻고 어떻고 하는…. 앞으로 삼위기대가 하나 못 된 사람은 입을 벌려서 말도 할 수 없어요. 머리를 들고 하늘 앞에 설 수가 없어요. 죽어서도 안 돼요. 유구무언(有口無言)이예요. 세상에서도 그렇잖아요? 내가 어떠한 상하라든가 좌우라든가 전후의 방향을 갖추어야만 하나의 비중적인 가치가 좋다든가 됐다든가 어떻게 해결지어 나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여러분들이 통일교회 원리를 배우고 통일교회 내용을 알았으니 이제는 그런 내용을 깨달아야 되겠습니다. 이제는 통일교회에서 나오는 진리가 문제가 아닙니다. 진리보다도 이제 선생님의 사정이 여러분의 사정이요, 선생님의 심정이 여러분의 심정이 되고, 아버지의 사정이 여러분의 사정이 되고, 아버지의 심정이 여러분의 심정이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걸 모르면 쓰러져요. 가나안 땅에서 망해 버린 이스라엘 패와 같이 되는 거예요.

 

그 시대가 지나 여러분이 주위를 다 닦고 난 후에는 후대 사람들이 들어와 가지고 가나안 복지 동산에서…. 그러니 첫번 결심한 절개를 잃지 않고 충절을 다 할 수 있는 아들딸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그러려면 하루도 쉴 틈이 없는 것입니다. `아버지여! 내가 40년 광야노정을 나서니 오늘부터 그날까지 쓰러지는 한이 있고 어떠한 날이 있더라도 내 각오한 이 마음을 잃지 않게 하소서' 하는 그 마음만 있으면 되는 것입니다. 그런 마음을 가져야 되는 거예요.

 

그런 마음을 갖게 되면 여러분에게 어려움이 있다 할진대 그 어려움은 6천 년 수고하신 아버지의 어려움과 비할 바가 아닙니다. 여러분의 서러움과 슬픔이 있다 할진대 6천 년 아버지의 서러움과 슬픔에 비할 바가 아니예요. 그런 것을 한시도 잊어서는 안 되는 거예요. 전념을 해서 마땅히 해야 되는 거예요. 그런 마음이 동해야 되는 거예요.

 

그와 동시에 뭘해야 되느냐? 이스라엘 민족은 끼리끼리 하나 못 되어서 망했습니다. 끼리끼리 전부 다 민족의 원수가 됐다는 거예요. 그러니 끼리끼리 하나될 수 있는, 끼리끼리 사랑할 수 있는, 끼리끼리 놓을 수 있는, 끼리끼리 서로의 제단을 연하여 가지고 내 제단 가운데 아버지가 임재하시고, 내 삼위기대가 맡은 분야에 하나님이 임재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되겠습니다. 이 환경은 사탄세계 역사를 대신한 것이니 사탄세계의 깨끗한 것보다도 더 깨끗하고, 사탄세계의 어떠한 아름다운 것 보다도 더 아름답게 단장해서 아버지가 임재할 수 있는 자리로 만들어야 되겠습니다. 그런 자리를 자기 앉을 자리만한 크기로라도 우리끼리 만들어서 비로소 아버지가 우리를 믿을 수 있는 환경으로 만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상징해 보여 준 것이 장막입니다. 장막 성전이예요. 그렇게 볼 때, 오늘날 여러분들이 장막 성전의 건설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중요한 것이 삼위기대입니다. 이것이 문제예요. 실체성전 복귀를 하려면 도대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여러분이 기반을 갖추어야 돼요. 삼위기대는 뭐냐 하면 성부ㆍ성자ㆍ성신을 대신하고, 종족인 복귀섭리를 보게 될 때 아담과 예수와 재림주를 상징하고, 또 시대적인 면에 있어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아담의 세 아들로부터, 노아의 세 아들, 세 믿음의 조상, 또 세 민족의 조상, 또 세 세계의 믿음의 제자까지 전부가 상징적으로 아담가정을 상징한 실체적인 제물입니다.

 

그러니 그 지역을 셋이 맡아 가지고 그 지역을 위해 단결해야 되는 것입니다. 김포면 김포도 여러 사람이 맡는 게 아닙니다. 세 사람이 맡아 가지고 하는 거예요. `아버지! 이 김포에는 내가 있사오니, 우리 셋이 하늘의 모든 책임을 지겠사오니 안심하시옵소서' 하고 손을 치켜들고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적진을 바라볼 때 사기가 충천하여 바라보는 스승과 같은 입장에서 아침 저녁 밥 먹기 전에 하늘을 대하고 땅을 대하여 매일 기도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 책임적인 심정에 눈을 떠야 민족을 거느리던 모세의 뒷걸음을 따르는 자요, 세계를 거느리려던 예수의 발자취를 따르는 자요, 2천 년 역사과정에 희망의 전통을 세워 나가기 위해 싸워 나가던 우리 선조들의 길을 따르는 자가 되는 것임을 여러분이 알아야 돼요. 이걸 못 하면 안 됩니다. 이걸 못 하면 여러분은….

 

제단을 갖추어 그 지역의 백성을 위해 성심을 다해야

이제 부활적인 무대, 생활적인 무대 시대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이래가지고 삼천리반도 어느 한 바위틈까지도 내가 모르는 분야가 없게 해야 되는 것입니다. 김포면 김포의 산 성부 성자 성신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 책임을 다하면 그런 분야에 있어서는 선생님도 그들 앞에 가서 머리 숙이고 섬기게 되는 것입니다. 거기에서는 산 하나님이예요, 그 지역에 있어서는. 그 땅에 대해 산 하나님의 사명을 하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그곳은 일생을 걸어서 자기가 죽을 때까지 살면서 꾸며야 할 환경적인 제단인 것입니다. 그것이 사람에게는 태어난 고향이 있듯이 고향적인 제단입니다. 자기가 분깃 맡은 고향적인 제단입니다. 고향적인 제단을 갖춘 이런 기반을 통해 가지고 민족적인 기반을 갖추어 놓아야 되고, 그다음에는 민족적인 기반을 통해 가지고 내가 고향에 대한 책임을 다한 연후에는 삼천리반도의 어떤 한 지역을 통해 가지고 고향 제단의 상대적인 제단으로 만들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야 내적, 외적 기반을 닦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기반을 닦은 연후에야 삼천리반도를 뒤넘이치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내 고향적인 거기에는 내 아들딸과 내 형제들이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나로 말미암아 신앙적으로 키워진 아들딸들이 `이것을 해라!' 하면 `예' 할 수 있고, 국가적인, 민족적인 가나안 복지의 미비한 복귀노정에 있어서 우리의 한 선 앞에 떨어진 부분을 향하여 책임지고 싸워 줄 줄 알아야 돼요. 이런 책임이 우리를 중심삼고…. 그리하여 그 지역에 있어서 밤이나 낮이나 사탄의 침범을 받을 우려가 없는, 안심 지역이라는 이 지역이 되어야 하나님은 이 땅 위에 실체로 나타나 영광의 한 날로서 여러분이 생각하고 있는 내용을 이룰 것입니다.

 

그러면 삼위기대는 무엇이냐? 그 지역은 제단이요, 삼위기대 이 세사람은 3대 제물인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3대 제물이 있었고, 노아에 있어서도 3층짜리 방주가 있었지요? 전부 다 3대 제물입니다. 이렇듯 제단을 쌓아 놓고 세 사람이 제물을 드리며 그 지역의 백성을 위해 충성과 성심을 다하고, 자기 아들딸을 대하여 복을 비는 심정을 갖고 그 지역을 품을 줄 아는 사람들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그런 지역을 맡아 3년 동안만 움직이면….

 

이런 이념이 서 있고, 이런 이념 가운데 조직이 있고, 이런 조직 가운데 생활이 있어야 됩니다. 조직이자 생활이요, 생활이자 이념이예요. 이념은 먼 것이었고 조직은 우리에게 상대적이었으나 생활 수준에 있어서 이것이 한꺼번에, 하나님의 심중의 소망, 심중의 목표, 심중의 생활 기점이 하나되어 가지고 그 생활 중심을 대신하여 전체 가치에 비할 수 있는 자기가 되게 될 때,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서 6천 년 동안 찾고 있던 아들딸로서 찾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사실들을 지금까지 누구도 몰랐기 때문에 그러한 자리에 나갈 수 있다는 것은 제일 귀한 것입니다. 이걸 못 하면 안 되는 거예요. 아무리 선생님을 알고 아무리 선생님을 따르더라도 이것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심정을 통해서, 사정을 통해서 하늘 제단을 아버지 앞에 기어코 세울 줄 아는 사람이 돼야 하늘 천국 심정을 대신한, 사정을 대신한 생활을 가진 아들딸이 된다는 것입니다. 아시겠어요? 「예」

탕감복귀는 맞고 빼앗아 오는 것

 

지금까지는 나와 가지고 개인이 좋아 가지고 세월을 보냈지요? 무얼 할 줄 몰랐다는 거예요. 이제 여러분들은 갈 목적을 알았습니다. 때가 안됐기 때문에 안 가르쳐 줬어요.

그러면 이제 이것을 실천하는 데 있어서는 어떠한 각오를 가져야 되겠느냐? 하나님의 6천 년 복귀섭리 과정이 남아 있는 연고로 어떠한 각오를 가져야 되느냐? 사탄을 쳐부수고 사탄편에 있는 악한 무리를 심판해야 할 때가 있다는 것을 아시는 하나님은 몇천 년 전에 세상의 사탄자식을 치기 전에 하늘의 아들딸을 먼저 치는 것입니다. 애급 백성을 치기전에 4백 년 동안 이스라엘 민족을 쳤습니다. 아브라함을 복 주기 전에 아브라함을 쳤고, 모세를 복 주기 전에 모세를 쳤고, 예수를 복 주기 전에 예수를 쳤던 것입니다. 안 그래요? 역사는 그렇게 나온 거예요.

 

왜 그러느냐? 어떤 두 아이가 싸움을 했다면 한 아이의 부모가 볼 때 자기 아들이 잘했다 이거예요. 다른 부모가 볼 때도 그 아이가 잘한 것을 안다는 거예요. 그렇지만 그 아이의 아버지가 와 가지고 자기 아들을 때려 봐요. 여기에도 조건이 있는 거예요. 두 아이의 부모가 서로 바라보고 있을 때 이쪽 아이의 부모는 자기 자식이 잘못한 것을 알고 있는 데 그쪽 부모가 자기 자식의 뺨을 먼저 갈기면 이쪽 아이의 부모도 그걸 아는 거예요. `음, 우리 아들이 잘못했는데' 하고 안다는 거예요. 그런 후에는 그쪽 부모가 와서 자기 아들 뺨을 때려도 말을 못 하는 거예요. 이것이 탕감이예요.

 

지금까지 통일교회 교인들은 탕감적인 노정에 있어서 절대적인 방향은 이럴 수 있으나 앞으로 선생님이 여러분을 대하는 데 있어서 공평하지 못하게 될 때가 많을 것입니다. 왜? 어떠한 한 사람이 그런 상태에 처해 있는 세계의 하나의 사람으로서 수많은 사람을 대신하여 제물의 입장에 서게 될 때, 무자비하게, 아브라함이 자식을 잡아 가지고 칼로 찌르던 것같이 마음은 아프고 안됐지만, 할 수 없는 사정이기에 안 할 수 없는 곡절이 있는 놀이를 해야 할 때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그 한 사람은 세계에 있어서 그런 급에 있는 영계와 미래의 하나의 산 제물로서, 죽어서는 안 돼요, 산 제물로서 하늘에 바쳐질 수 있는 제물이 되어야 돼요. 그런 하늘의 제물이 각 분야 분야에서 필요하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맡은 분야에서 `아버지! 내가 여기에서 이 분야와 세계를 대신해서 제물 되기를 원하였사오니, 아버지께서 책임을 지시고 인도하시옵소서' 하면 하나님은 못 치는 것입니다. 사탄이 치지 못하는 거예요. 하늘이 배척한다 해도 당연히 받아야 돼요. 하늘에 먼저 배척받을 수 있는 각오가 되어 있어야 그 책임을 감당해 낼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선생님도 이 길을 나오면서 아버지 앞에 많이 맞았습니다. 여러분들은 그걸 알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기에 얼마나 목숨을 걸고 사랑했나 하는 것을 알기 때문에 바로에게 열 번씩이나 강퍅하게 하던 것과 같은 시대적 배경도 내게 있어야 될 것을 아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40년 유리고객하면서 당하던 서글픈 심정을 당해야 될 것도 안다 이거예요. 또, 가나안 복귀를 하기 위해 민족을 거느려 들어가던 여호수아 갈렙의 심정을 대신해야 할 것도 아는 것입니다. 또, 4백 년 사사시대 이후에 벌어진 서러움의 심정 노정을 가야 되는 입장인 것입니다. `역사적인 모든 우리의 선조들이 이렇게 걸으면서 하나의 때를 가는 사무친 심정을 알거늘, 아버지여, 깨깨(충분히 또는 심히) 버리고, 깨깨 수고하고, 깨깨 죽게 하소서. 인간을 위하여 제물이 되지 않으면 안 될 깊은 무엇이 있다 할진대 어서 속히 제물로 쓰시옵소서' 하는 마음인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걸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이런 역사성을 탕감하게 되면, 하늘이 치고 나설 때는 애급 바로 궁중에 있는 장자를 쳐 나오던 그런 역사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을 알기 때문에 이 놀음을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천륜의 도리예요. 편안하기를 바라겠어요? 제물은 피 흘리며 책임을 다해야 하는 거예요. 제물은 주인이 지극히 사랑하는 양떼요, 지극히 사랑하는 물건입니다. 그걸 알아야 돼요. 사랑하는 것을 극단의 자리에 내세워 칼로 베고 찔러야 할 하나의 장면이 있다는 거예요.

 

오늘날 복귀시대는 쳐 가지고 복귀하는 것이 아닙니다. 고생 중에 죽음의 고비를 넘어서도 죽이지 않고 복귀시켜야 할 원한의 세계예요. 이 세계는 누가 넘어뜨리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걸 느끼면서 여러분은 이렇게 이렇게 해서 내가 그것을 하고 싶다 하고, 가나안 복귀를 책임진 긍지를 가지고 이것을 사수하여 이 가나안 땅이 곧 지옥의 세계적 제물의 기반인 것을 그 누가 몰라주는 입장에 있더라도 가야 하는 것입니다.

 

말씀과 인격과 심정을 가지고 인간을 대하라

 

옛날 이스라엘 민족에 있어서는 모세가 말씀을 통하여 인도하였습니다.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의 능력을 통해야 했던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는 어떻게 해야 할 때냐? 말씀과 인격과 정을 통해 인간을 대해야 합니다. 복귀과정에 있어서 말씀의 때는 구약시대였고, 믿음의 시대는 신약시대였던 것입니다. 예수님 때가 신약시대였어요. 그다음에는 무엇이냐 하면, 우리의 이상세계는 정적인 시대인 것입니다. 이것이 한꺼번에 움직여 말씀을 통해 가지고 인격이 나오니 인격을 대신해서 여러분은 정을 주어야 되는 것입니다. 정이 동하는 때가 되었기 때문에 틀림없이 가나안 복귀는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마음은 가나안 복지가 그리워 가지고 어떤 길이라도 가겠다는 결심을 갖고 형극의 마음으로 가야 되겠습니다. 때가 그런 때인 것입니다. 이 국면이 그런 조건이 되었기 때문에 여러분의 마음이 능히 강하고 끊어질 수 없는 마음이 돼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가야 한다는 거예요. 그걸 우리가 생활적인 무대에서 감당해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그런 결심을 갖고 가나안 복지를 향해 들어가는 이스라엘 민족 앞에는 무엇이 가로놓였던고? 가다 보니 여리고성이 가로놓였다는 것입니다. 60만 대군이 이 성을 함락해야 할 텐데, 이 성이 이스라엘의 생사를 결정하는 중요한 도성인 연고로 이것을 함락시키기 위해 어떻게 했느냐? 일곱 바퀴를 돌라는 명령을 주셨던 것입니다. 일곱 바퀴를 도는 것은 무얼 뜻하느냐? 일곱 바퀴 도는 데는 맹목적으로 도는 것이 아니다 이거예요. 도는 것은 뭐냐? 여리고성 철벽을 향하여….

 

하늘은 이런 조건을 바라는 것입니다. 일곱 번이란 수는 복귀의 수예요. 창조는 7일이 걸렸어요. 그것이 뭐냐? 사람에게 있어서는 개인이 있고, 가정이 있고, 사회가 있고, 교회가 있고, 국가가 있고, 세계가 있고, 천주가 있습니다. 7단계예요. 그렇기 때문에 전역사과정에 복귀의 7단계가 있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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