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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6]원리해설 (原理解說) - 東西分立時代 (918年~1305年)

작성자대태양/김현수|작성시간22.05.19|조회수73 목록 댓글 0
第 4 節 東西分立時代 (918年~1305年)

統一王國時代의 聖殿理想이 挫折되면서 이 王國은 南朝와 北朝로 分離되어 南北朝分立時代가 400年間 繼續되었으므로 이 時代를 蕩減復歸하는 東西分立時代가 오게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基督敎王國도 分立되어 처음에는 東西 프랑크와 伊太利로 分裂되었다가 東 프랑크는 神聖 로마 帝國 을 繼承하여 伊太利 王을 兼任하였으므로 事實上 東西로 分立된 것과 같으며 이스라엘의 中心이 南朝에 있었던 것과같이 이 分立된 王朝의 中心 도 神聖 로마 帝國인 東 프랑크에 있었다.

統一王國時代에 있어서의 이스라엘의 國王은 祭司長의 命을 받아 聖殿理想을 이루어야할 것이었던 것같이 이 時代에 있어서의 王은 敎皇의 命令 에 의하여 基督王國의 理念을 實現해야될 것이었다.

이 時代에 있어서 事實上 帝國의 實權은 敎皇에게 있었음으로 敎皇 그레고리 7世는 獨逸 皇帝 헨리 4世를 破門할 수 있었으며 敎皇 이노센트 3世 는 佛國王 필립 2 世를 屈伏시켰고 英國王 존을 破門하는 等 敎皇權은 이 時代에 그 絶頂에 달하여 基督王國 全盛時代를 이루었던 것이다.

南北朝分立時代에 있어서 이스라엘 民族들이 이 聖殿理想에 背馳되는 立場에 서게될 때마다 하나님은 先知者들을 보내시어 內的 廓淸運動을 일으키시었다. 先知者 엘리야를 中心한 4大先知와 12小先知를 보내신 理由도 여기에 있는 것이다. 이와같이 東西分立時代에 있어서도 敎皇廳이 腐敗 함에 따라 그 內的 廓淸運動은 修道院에서 일어난 것이다.

토마스 아퀴나스(1225~1274), 토마스 아 켐피스(1380~1471), 프랑시스 敎團 等이 나타난 것은 모두 이러한 攝理의 目的을 이루기 위함이었다. 이스라엘 民族이 先知者들에 의한 內的 廓淸運動에도 悔改하지 아니함으로 埃及 갈대아 수리아 앗수리아 바벨로니아 等 異邦들에게 붙여 外的廓淸運動을 일으켰던 것과 같이 敎皇廳이 修道院에 의한 內的廓淸運動에도 悔改 하지 않고 墮落과 腐敗가 尤甚하여지매 그들도 異邦人들에게 붙여 外的廓淸運動을 일으켰으니 이것이 곧 十字軍戰爭이다.

예루살렘 聖地가 카리프 帝國에 속하여 있을 때는 그들은 基督敎人의 巡禮者들을 厚待하였는데 카리프 帝國이 셀주크 투르크(Seljuk turks)에게 망하여 예루살렘이 그들에게 占領을 당한 後에는 그들은 巡禮者들을 虐待 하였다. 이에 憤慨한 敎皇은 이 聖地를 回復하려고 十字軍을 일으킨 것이다.

十字軍戰爭은 1096年에 시작되어 約200年 間에 7回의 遠征을 하였으나 敗戰을 거듭하였고 雪上加霜으로 蒙古帝國의 西侵에 의하여 東西로 分立 된 基督王國은 崩壞되어 하나님의 攝理는 새로운 方向으로 展開된 것이다. 十字軍 戰爭은 이와같이 하나님의 뜻 가운데 서지못한 基督王國을 廓淸키 위한 것이 그 目的이다.

하나님의 直接的인 攝理에서 이루어진다고 믿고있던 基督王國이 異敎徒 에 의하여 敗戰을 거듭함에 따라 敎皇權은 그 權威와 信望을 완전히 잃게되자 또한 國民精神의 中心을 잃어버렸다. 한편 封建社會를 維持하던 領主들과 騎士의 戰死로 인하여 政治的인 基盤을 잃고 말았으며 또 長期間 에 걸친 戰費에 의하여 經濟的인 困窮에 빠지게되어 封建社會는 崩壞되기 시작했던 것이다.

 

제4절 동서분립시대(918년~1305년)

통일왕국시대의 성전이상이 좌절되면서 이 왕국은 남조와 북조로 분리되어 남북조분립시대가 400년간 계속되었으므로 이 시대를 탕감복귀하는 동서분립시대가 오게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기독교왕국도 분립되어 처음에는 동서 프랑크와 이태리로 분열되었다가 동프랑크는 신성 로마제국을 계승하여 이태리왕을 겸임하였으므로 사실상 동서로 분립된 것과 같으며 이스라엘의 중심이 남조에 있었던 것과같이 이 분립된 왕조의 중심도 신성로마제국인 동프랑크에 있었다. 통일왕국시대에 있어서의 이스라엘의 국왕은 제사장의 명을 받아 성전이상을 이루어야할 것이었던 것같이 이 시대에 있어서의 왕은 교황의 명령에 의하여 기독왕국의 이념을 실현해야될 것이었다.

이 시대에 있어서 사실상 제국의 실권은 교황에게 있었음으로 교황 그레고리7세는 독일황제 헨리4세를 파문할 수 있었으며 교황 이노센트 3세는 불국왕 필립2세를 굴복시켰고 영국왕 존을 파문하는 등 교황권은 이 시대에 그 절정에 달하여 기독왕국 전성시대를 이루었던 것이다. 남북조분립시대에 있어서 이스라엘민족들이 이 성전이상에 배치되는 입장에 서게될 때마다 하나님은 선지자들을 보내시어 내적 확청운동을 일으키시었다. 선지자 엘리야를 중심한 4대선지와 12소선지를 보내신 이유도 여기에 있는 것이다. 이와같이 동서분립시대에 있어서도 교황청이 부패함에 따라 그 내적 확청운동은 수도원에서 일어난 것이다.

토마스 아퀴나스(1225?~1274) 토마스 아 켐피스(1380~1471) 프랑시스 교단 등이 나타난 것은 모두 이러한 섭리의 목적을 이루기 위함이었다. 이스라엘민족이 선지자들에 의한 내적 확청운동에도 회개하지 아니함으로 애급 갈대아 수리아 앗수리아 바벨로니아 등 이방들에게 붙여 외적확청운동을 일으켰던 것과 같이 교황청이 수도원에 의한 내적확청운동에도 회개하지 않고 타락과 부패가 우심하여지매 그들도 이방인들에게 붙여 외적확청운동을 일으켰으니 이것이 곧 십자군전쟁이다. 예루살렘 성지가 카리프제국에 속하여 있을 때는 그들은 기독교인의 순례자들을 후대하였는데 카리프제국이 셀주크 투르크(Seljuk turks)에게 망하여 예루살렘이 그들에게 점령을 당한 후에는 그들은 순례자들을 학대하였다. 이에 분개한 교황은 이 성지를 회복하려고 십자군을 일으킨 것이다.

십자군전쟁은 1096년에 시작되어 약 200년 간에 7회의 원정을 하였으나 패전을 거듭하였고 설상가상으로 몽고제국의 서침에 의하여 동서로 분립된 기독왕국은 붕괴되어 하나님의 섭리는 새로운 방향으로 전개된 것이다. 십자군 전쟁은 이와같이 하나님의 뜻 가운데 서지못한 기독왕국을 확청키 위한 것이 그 목적이다.

하나님의 직접적인 섭리에서 이루어진다고 믿고있던 기독왕국이 이교도에 의하여 패전을 거듭함에 따라 교황권은 그 권위와 신망을 완전히 잃게되자 또한 국민정신의 중심을 잃어버렸다. 한편 봉건사회를 유지하던 영주들과 기사의 전사로 인하여 정치적인 기반을 잃고 말았으며 또 장기간에 걸친 전비의 의하여 경제적인 곤궁에 빠지게되어 봉건사회는 붕괴되기 시작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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