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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1월 30일 - 아버지의 기도 (효심편 21) / 원리원본 (032) / 文鮮明先生말씀選集 (3-11-4)

작성자대태양/김현수|작성시간00:40|조회수99 목록 댓글 0
효심편 - 21. 참효자가 되어 책임완수하게 하소서

 

아버지! 
당신이 억천만세에 뗄래야 뗄 수 없는 
저희들의 아버지인 것을 몰랐사옵니다. 

당신의 슬픔이 무엇이었사옵니까? 
자식을 잃어버리고 역사를 잃어버린 것이 
당신의 슬픔이었음을 저희들은 몰랐사옵니다. 

하오나 
이제 당신의 애절하신 분부의 일념을 따라서 
이 자리에 부복하였사오매 
진심으로 감사드리옵니다.
  
역사적인 한이 남아 있는 한 
당신의 한도 남아 있사옵고, 

역사적인 슬픔이 남아 있는 한
당신의 슬픔이 남아 있다는 것을 아는 
참다운 효자 효녀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러한 역사의 흐름을 가로막고, 
당신 앞에 제단을 쌓는 것을 
민족과 세계에 계대(繼代)해야 하는, 

세계적인 골고다의 길이 
남아 있다는 것을 절감하는 
당신의 자녀들이 나와야 할 때가 왔사옵니다.
  
여기에 모인 당신의 자녀들은 
오늘까지 누구를 위하여 살아 왔사옵니까? 
또한 무엇을 바라보고 나가고 있사옵니까? 

하늘이 남기신 역사의 전체적인 운명을 
책임져야 할 사명이 저희에게 있사옵고 
그 사명을 하겠다고 각오하고 맹세하고 나선 
저희들의 걸음이었사오니, 
주저하거나 도중에서 포기하지 말게 하여 주시옵소서. 

원수인 악과 대결해서 결코 패하여
무릎을 꿇는 무리가 되지 말게 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날도 수많은 민족을 대표하여 
아버님의 제단에 부복한 외로운 무리들을 
기억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더욱이 삼천리 방방곡곡의 외로운 몰림길에서도 
오히려 하늘과 인류를 염려하며 
민족의 탄식을 대신하겠다고,
 

몸부림치는 당신의 자녀들이 
오늘도 이곳을 추앙하며 눈물짓고 있사오니 
그들을 기억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 모든 것이 
아버님의 슬픈 역사의 인연이었음을 알았사옵니다. 
저희들 앞에 남겨진 
슬픈 인연과 슬픈 역사가 청산되지 않는 한, 

이 길에서 도피하거나 이 길을 피해 가는 
배은망덕한 자녀들이 되지 말게 하여 주시옵소서. 

효자의 도리를 배우고 
충신의 절개를 배울 줄 아는 
참다운 당신의 아들딸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오며, 

모든 말씀 주의 이름으로 기도하였사옵나이다. 아멘.
(1966. 3. 13)

 

원리원본 (原理原本) - 32쪽

하늘에는 그의 사랑의 全性이 하나님의 創造理想型을 드러내게 되므로 비로소 하늘의 無限 사랑을 人間에게 附하여 주게 되는 바가 目的이다. 그런데 創造世界가 墮落하고 난 뒤(後)에는 宇宙에는 하나님의 사랑을 代身的으로 주고 받은 한 存在도 없었으므로 하나님이 이 存在를 세워 찾고자 함이 目的이다. 이것을 찾아야 萬物과 宇宙가 다시금 蘇生하는 根本이 生起게 되나니 그런 고로 하나님이 하시고자 하시는 役事는 卽 攝理는 여기에 重要 要點이 있습니다.

그러면 結論的으로 表示하면 하나님 하나에서 사람을 二性(男性, 女性)으로 分立시켜서 長成하게 하여 사랑 理想을 주어 幸福하게 하는 同時에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사람들이 양성의 일체가 되어서 사랑하는 그 자체를 볼 적에 얼마나 아름답고 귀하게 보는가를 사람에 알게 하기 위하여서 번식을 주어 사랑할 수 있는 존재들로 되게 함이 번식체의 자식을 위한 부모들의 사랑이다. 하나님의 사람이 이상사랑을 하면 이와 같이 귀하게 보여지는 자체가 인간임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 인간은 육신이 있고 영인이 있다.(特別)



원리원본 (原理原本) - 32쪽하늘에는 그의 사랑의 전성이 하나님의 창조이상형을 드러내게 되므로 비로소 하늘의 무한 사랑을 인간에게 부여하여 주게 되는 바가 목적이다. 그런데 창조세계가 타락하고 난 뒤에는 우주에는 하나님의 사랑을 대신적으로 주고 받은 한 존재도 없었으므로 하나님이 이 존재를 세워 찾고자 함이 목적이다. 이것을 찾아야 만물과 우주가 다시금 소생하는 근본이 생기게 되나니 그런 고로 하나님이 하시고자 하시는 역사는 즉 섭리는 여기에 중요 요점이 있습니다. 
그러면 결론적으로 표시하면 하나님 하나에서 사람을 이성(남성, 여성)으로 분립시켜서 장성하게 하여 사랑 이상을 주어 행복하게 하는 동시에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사람들이 양성의 일체가 되어서 사랑하는 그 자체를 볼 적에 얼마나 아름답고 귀하게 보는가를 사람에 알게 하기 위하여서 번식을 주어 사랑할 수 있는 존재들로 되게 함이 번식체의 자식을 위한 부모들의 사랑이다. 하나님의 사랑의 이상 사랑을 하면 이와 같이 귀하게 보여지는 자체가 인간임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 인간은 육신이 있고 영인이 있다.(특별)

 

文鮮明先生말씀選集 3권

11) 예수의 섭리적 생애와 그의 승리적 목적
1957년 10월 27일(日), 전 본부교회

4. 사탄과 동반하여 갈 수 없는 하늘 길

지금까지 여러분의 생활은 어떠했습니까? 자기를 중심삼은 혈기와 교만으로 사는 사람이 아직도 있습니까? 여러분은 하루빨리 그런 입장에서 벗어나야 하겠고, 예수 그리스도가 세워 놓은 기준, 사탄을 굴복시키기 위한 최후의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는 기준인 온유와 겸손, 순종과 복종, 희생과 봉사의 자세로 혈기에 의해 하늘을 핍박하는 자들을 향해 싸워 나가겠다는 내적 각오를 다져야 하겠습니다.  

뜻에 대립하여 뜻을 반역하는 입장에 선 것이 사탄이요, 이런 것이 사탄의 생활로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자기도 모르게 뜻에 반발하려고 하는 마음이 드는 것은 스스로의 마음이 아니라 사탄의 세력이 환경에 꽉차 있고, 그 환경에 붙들려 있기 때문에 자기도 모르게 사탄의 세력이 자기를 중심삼고 나타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원한과 슬픔이 사탄세계에 맺혀져 있으나 희생과 봉사를 각오하고서 이 길을 해결하려고 나섰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처한 끝날에는 두 갈래의 길이 남아 있으니, 사탄이 가는 길과 하늘이 가는 길입니다. 그런데 사탄이 가는 길과 하늘이 가는 길은 다릅니다. 하늘이 가는 길은 사탄이 갈 수 없는 길입니다. 즉 사탄은 예수님과 같이 하나님을 대하여 순종복종하고, 뜻을 온유겸손하게 실천하고, 섭리의 뜻 앞에서 전인류를 대신하여 희생봉사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선함에 있어서 왕 중의 왕이요, 온유겸손함에 있어서 왕 중의 왕이요, 순종과 복종함에 있어서 왕 중의 왕이며, 희생봉사하는데 있어서 왕 중의 왕이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땅 위의 수많은 사람들은 온유할 줄 모르고, 순종할 줄 모르며, 희생봉사하는 제물의 길을 걸을 줄 모릅니다. 예수님께서는 4000년 역사상에 수많은 사람들이 왔다 갔고, 수많은 성현들이 왔다 갔지만 그들이 하지 못하던 것, 즉 하늘 앞에 최고의 온유의 기준, 최고의 순종의 기준, 최고의 제물의 기준을 세워 놓았던 연고로 사탄세계의 모든 것을 밟고 올라설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같이 사탄을 굴복시키는 피나는 노정을 우리에게 보여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온유겸손하고 순종굴복하고 희생봉사하는 생활을 하셨는데, 하나님께서 이 땅을 대하여 오랜 역사를 거쳐오시며 수고하셨던 그 마음과 동일한 심정을 지니고 그러한 생활을 해 나왔기 때문에 사탄이 근본적으로 굴복해야 했고 근본적으로 달라져야 하는 역사적인 출발점이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사탄은 하나님의 심정을 알면서도 인간이 하나님께로 나아가려 하는 길을 가로막고 도리어 자기에게로 이끌어 가는 존재입니다. 스스로 높아지고자 하고, 스스로 대항하려고 하며, 스스로 인간들을 이용하려 합니다. 이런 사탄이지만 하나님과 예수님께 나아가면 감히 머리를 들래야 들 수 없게 됩니다. 이런 조건이 예수님의 생활권 내에서 세워졌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님을 따라가면 우리에게서 사탄이 분리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생애는 이런 역사적인 출발을 이룩한 생애였다는 것입니다.   

이런 기준을 예수님이 어떻게 세우셨는가? 예수님은 먼저 하나님과 나는 둘이 아니라 하나라는 기준을 세우셨습니다. 하나님이 영생하면 나도 영생하고 하나님이 불변하시면 나도 불변하고 하나님이 무한 자비하시면 나도 무한 자비하겠다는 마음을 지니셨습니다. 즉 하나님의 내적 심정을 예수님은 누구보다도 잘 느끼고 하나될 수 있었기에 사탄 대한 싸움의 노정에서 승리의 기준을 세울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가 왔다 간 이후 오늘까지 이 사탄세계에는 하나님과 예수와의 내적 심정이 연결되는 그 말씀, 또 하나님과 사탄과의 사이에 어떠한 곡절 어떤 사무친 내용이 있는가 하는 것을 안 사람이 아무도 없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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