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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집주(論語集注) - 13 - 자로(子路) - ⑤ - 子曰 誦詩三百 授之以政 不達 使於四方 不能專對 雖多 亦奚以爲

작성자대태양/김현수|작성시간25.06.01|조회수252 목록 댓글 0
논어(論語) - 13 - 자로(子路) - ⑤
1子曰 誦詩三百하되 授之以政에 不達하며 使於四方에 不能專對하면 雖多나 亦奚以爲리오.
2자왈 송시삼백하되 수지이정에 부달하며 사어사방에 불능전대하면 수다나 역해이위리오.
3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시경(詩經) 3백편을 다 외우더라도 그에게 정사를 맡김에 통달하지 못하고, 사방에 사신으로 보냄에 홀로 대응하지 못한다면, 비록 외우는 시가 많더라도 또한 이로써 무엇을 하겠는가?”라고 하셨다.
4論語 - 13 - 子路 - ⑤

子曰く、詩三百を誦すれども、之に授くるに政を以てして達せず。四方に使いして、専対すること能わずんば、多しと雖も亦た奚を以て為さん。
5Analects of Confucius - 13 - Zilu - ⑤

The Master said, “Though a man may be able to recite the three hundred odes, yet if, when intrusted with a governmental charge, he knows not how to act, or if, when sent to any quarter on a mission, he cannot give his replies unassisted, notwithstanding the extent of his learning, of what practical use is it?” 

 

논어집주(論語集注) - 13 - 자로(子路) - ⑤
子曰 誦詩三百 授之以政 不達 使於四方 不能專對 雖多 亦奚以爲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시경(詩經) 3백편을 다 외우더라도 그에게 정사를 맡김에 통달하지 못하고, 사방에 사신으로 보냄에 홀로 대응하지 못한다면, 비록 외우는 시가 많더라도 또한 이로써 무엇을 하겠는가?”라고 하셨다.

專 獨也 詩本人情 該物理 可以驗風俗之盛衰 見政治之得失 其言 溫厚和平 長於風諭 故 誦之者 必達於政而能言也
專은 ‘홀로’라는 뜻이다. 시는 인정에 뿌리를 두고 사물의 이치를 보듬고 있으니, 이로써 풍속의 성쇠를 징험할 수 있고, 정치의 득실을 알 수 있다. 그 말은 온후하고 화평하여, 풍자하여 깨우쳐주는 것에 뛰어나다. 그래서 시를 외우는 사람은 반드시 정사에 통달하고 말을 잘하는 것이다.

問誦詩三百何以見其必達於政 朱子曰 其中所載可見 如小夫賤隸閭港之間 至鄙俚之事 君子平日耳目所不曾聞見者 其情狀皆可因此而知之 而聖人所以修德於己施於事業者 莫不悉備於其間 所載之美惡 讀誦而諷詠之 如是而爲善 如是而爲惡 吾之所以自修於身者 如是 是合做底事 如是 是不合做底事 待得施以治人如是而當賞 如是而當罰 莫不備見 如何於政不達 若讀詩而不達於政 則是不曾讀也 又問如何使四方必能專對 曰 於詩有得 必是於應對言語之間委曲和平
누군가 시 삼백 수를 외우면 그가 반드시 정사에 통달한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지 물었다. 주자가 말하길, “시 안에 실려 있는 것으로 알 수 있다. 예컨대 필부나 천한 종들이 閭巷에서 하는 지극히 비천한 일은 군자가 평소에 눈과 귀로 일찍이 듣거나 보지 못한 것이지만, 그러한 정상들을 모두 이로 인해 알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성인이 자신 안에 덕을 닦고 사업에 베푸는 것들도 그 안에 모조리 갖추어져 있지 않은 것이 하나도 없다. 시에 실린 미추는 그것을 읽고 외우며 읊으면, 이와 같으면 선이 되고, 이와 같으면 악이 되며, 내가 내 몸에 스스로 닦는 것이 이와 같으면 마땅히 해야 할 일이고, 이와 같으면 마땅해 하지 않아야 할 일이며, 터득하기를 기다려 사람을 다스리는 일에 베푸는 것이 이와 같으면 마땅히 상을 주고 이와 같으면 마땅히 벌을 주어야 하는 것이 갖추어져 드러나지 않은 것이 하나도 없다. 어찌하여 정사에 통달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만약 시를 읽고서도 정사에 통달하지 못했다고 하면 이것은 일찍이 시를 읽지 않은 것이다.”라고 하였다. 또 어떻게 하면 사방에 사신으로 가서 반드시 홀로 대응할 수 있는지 물었다. 주자가 말하길, “시에서 터득한 바가 있으면, 반드시 이 사람은 응대하고 말하는 사이에 간곡하고 화평하게 할 것이다.”라고 하였다.

胡氏曰 詩之作也 有邪有正 皆原於人情 其所言於事物之理 莫不具載 其情合事理之正 則可以知風俗之盛政治之得 其情背事理之正 則可以知風俗之衰政治之失 故誦詩而有得 則可以達於政矣 詩之言 溫厚則不至於薄 和平則不至於訐 長於風諭 則人易曉 故誦詩而有得 則能言語
호씨가 말하길, “시를 지음에 있어 간사함도 있고 올바름도 있지만 모두 인정에 뿌리를 두는 것이니, 시에서 말한 바는 사물의 이치에 대하여 갖추어 싣지 아니함이 없는 것이다. 그 情이 사리의 올바름에 부합하면, 풍속의 흥성과 정치의 성공을 알 수 있고, 그 정이 사리의 올바름에 배치된다면, 풍속의 쇠퇴과 정치의 실패를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시를 외어서 터득함이 있다면, 이로써 정치에 통달할 수 있는 것이다. 시의 말이 온후하니 야박함에 이르지 않고, 화평하니 잘못을 들추어냄에 이르지 않으며, 풍자와 비유에 장점이 있으니 사람들이 쉽게 깨우친다. 그래서 시를 외어서 터득함이 있다면, 말을 잘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雙峯饒氏曰 詩本人情 人情有好有惡 讀詩而有得 則知人情之所好者在甚處 所惡者在甚處 得之於心施之於政 則必能順民之所好 而違其所惡 其政無不善矣 是之謂達 詩之言辭 多宛曲 風諭 而不直致 使者所以傳君命 措辭最難 才委靡 則流於弱而取侮於人 才剛直 則又恐激怒而貽禍於國 若能善其辭命 婉正得體 不辱君命 非誦詩而有得於詩人命辭之體者 不能也 春秋諸國往來多 尙辭令 故夫子倂指此爲讀詩之驗 問專對 曰 使有正有介 正使不能答 則介使助之 如正使自能致辭 不假衆介之助 是謂能專對 達與專對 非誦詩時便思量要如此 誦詩而有得 則自然有此效驗 以訓用 爲字只語助辭
쌍봉요씨가 말하길, “시는 인정에 뿌리를 두고 있으니, 인정에는 좋아함도 있고 미워함도 있다. 시를 읽고서 터득함이 있다면, 인정이 좋아하는 바가 어디에 있고, 싫어하는 바가 어디에 있는지 알게 된다. 마음에 터득하여 정사에 시행한다면, 반드시 백성들이 좋아하는 바에 순응하면서 싫어하는 바를 멀리할 것이니, 그 정사가 선하지 않음이 없는 것이다. 이를 일컬어 통달하였다고 말하는 것이다. 시의 언사는 대부분 완곡하여, 풍자하며 비유할 뿐 곧장 이르지는 않는다. 사신이란 임금의 명을 전하는 사람이니, 말을 하기가 제일 어렵다. 조금만 위축되어도 나약함에 흘러 남에게 모욕을 당하고, 조금만 강직하게 하여도 또한 아마도 노여움을 격발시켜 나라에 화를 끼치게 될 수 있다. 예컨대 그 辭命을 능히 잘 해내어 부드럽고 올바르게 그 본체를 얻어서 임금의 명을 욕되게 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이라면, 시를 외어서 시인이 명하여 하는 말한 본체를 터득함이 있는 사람이 아니면 해낼 수 없는 것이다. 춘추시대의 여러 나라들은 왕래가 많아서 辭令을 숭상하였기 때문에, 공자께서 이를 나란히 가리켜서 시를 읽은 효험으로 삼으신 것이다.”라고 하였다. 누군가 專對에 대하여 물었다. 말하길, “사신에는 正使와 介使가 있다. 정사가 대답하지 못하면, 개사가 이를 도와주는데, 만약 정사가 스스로 말을 다 할 수가 있어서 여러 개사들의 도움을 빌리지 않는다면, 이것을 일컬어 오로지 홀로 대답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達과 專對는 시를 암송할 때 곧 이와 같이 하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시를 외어서 터득함이 있으면, 곧 자연스럽게 이러한 효험이 있는 것이다. 奚以爲에서 以는 用으로 풀이하고, 爲자는 그저 어조사일 뿐이다.”라고 하였다.

○ 程子曰 窮經 將以致用也 世之誦詩者 果能從政而專對乎 不然則其所學者 章句之末耳 此學者之大患也
정자가 말하길, “경전을 궁구하는 것은 장차 그것으로써 씀을 지극히 하고자 함이다. 세상에 시를 외우는 자가 과연 능히 정치에 종사하고 사신으로 가 홀로 대응할 수 있는가? 그렇게 할 수 없다면, 그가 배운 것은 장구의 말단일 뿐이니, 이것은 배우는 자의 큰 걱정이다.”라고 하였다.

程子曰 今人不會讀書 如誦詩三百 授之以政 不達 使於四方 不能專對 旣誦詩後須達於政 能專對 始是讀詩 未讀二南時 一似面墻 到讀後 便不面墻 方是有驗 大抵讀書 只是此法
정자가 말하길, “요즘 사람들은 책을 읽을 줄 모른다. 예컨대 시 삼백편을 외었지만, 그에게 정치를 맡겨도 통달하지 못하고, 사방에 사신으로 보내도 홀로오로지 대응하지 못한다. 기왕에 시를 왼 후에는 반드시 정사에 통달해야 하고, 홀로 오로지 대답할 수 있어야만 비로소 시를 읽은 것이다. 아직 시경의 소남과 주남을 읽지 않았을 때는 한결같이 담벽을 마주한 것 같지만, 다 읽은 후에 이르면, 곧 담벽을 마주하지 않는 것 같이 되어야, 비로소 효험이 있는 것이다. 대저 책을 읽는 것은 그저 이 방법일 따름이다.”라고 하였다.

問詩三百篇 人未有不讀者也 而達於政能專對者 何其少耶 勉齋黃氏曰 亦視其所以讀之者 何如耳 爲人耶 爲己耶 誦說耶 踐行耶 鹵莽耶 精切耶 二者之不同而能不能 判矣 驗之於心 浹洽而通貫 體之於身 切實而專確 則亦奚不能之足患哉
누군가 묻기를, “시 삼백편을 사람 중에 읽지 않은 사람이 없지만, 정사에 통달하고 사신으로 가서 홀로 대응할 수 있는 자는 어찌하여 그렇게 적은가요?”라고 하였다. 면재황씨가 말하길, “역시 그가 시를 읽는 것이 어떠한지 살펴보아야 할 뿐이다. 남을 위하여 읽는가? 자기를 위하는가? 외어서 말할 뿐인가? 실천하는가? 거칠게 대충하는가? 정밀하고 간절하게 하는가? 두 가지가 서로 달라서 할 수 있고 없고가 결판나는 것이다. 그것을 마음에 징험하여 흡족하게 적셔서 관통하게 하고, 그것을 몸에 체득하여 절실하고 오로지 확실하게 한다면, 또한 어찌 해내지 못할 것을 걱정하겠는가?”라고 하였다.

厚齋馮氏曰 讀書必明其理 明理必達諸用 讀書不明其理 記誦之末學也 明理而不達諸用 章句之腐儒也 子刪詩在晩年而平日兩言詩三百 則知子之刪去者無幾 特釐正之以系於風雅頌之末云耳
후재풍씨가 말하길, “책을 읽음에 있어서는 반드시 그 이치를 밝혀야 하고, 이치를 밝힘에 있어서는 반드시 用에 통달해야 한다. 책을 읽으면서도 그 이치를 밝히지 못하면, 記誦의 말단 학문이다. 이치를 밝혔으면서도 그 用에 통달하지 못하면, 章句의 썩은 유생이다. 공자께서 詩를 산삭하신 것은 말년에 있었고, 평소에는 2번 시 삼백편을 말씀하셨으니, 공자께서 제거하신 것이 거의 없었음을 알 수 있다. 다만 그것을 바르게 고쳐서 風과 雅와 頌의 끝에 묶었다고 말할 따름이다.”라고 하였다.

雲峯胡氏曰 習溫柔敦厚之敎者 必能爲慈祥豈弟之政 必能爲溫厚和平之言 要之 三百篇 固多 易三百八十四爻 書五十八篇 禮三千三百 春秋二百四十二年之事 皆多也 窮經而不能致用 皆多而無益者也 擧詩以例其餘爾
운봉호씨가 말하길, “온유하고 돈후한 가르침을 익힌 사람은 반드시 자상하고 개제한 정치를 할 줄 알고, 반드시 온후하고 화평한 말을 할 줄 알 것이다. 요컨대, 시 삼백편은 본래 많기는 하지만, 주역은 384효이고, 서경은 58편이며, 예는 3천 3백이며, 춘추는 242년의 일이니, 모두 많은 것이다. 경전을 궁리하여 활용을 지극히 할 수 없다면, 모두 많을 뿐 유익함이 없는 것들이다. 시를 들어서 그 나머지를 例證하였을 따름이다.”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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