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0월 7일 - 아버지의 기도 (부활편 14) / 원리원본 (345) / 文鮮明先生말씀選集 (5-12-1)
작성자대태양/김현수작성시간25.10.07조회수194 목록 댓글 0| 아버지의 기도 - 부활편 - 14. 저희들을 긍휼히 보시고 재창조역사 일으켜 주소서 아버님! 슬픔에 지치고 어려움에 지쳐 갈 방향조차 알지 못하고 허덕이는 저희들을 긍휼히 보시옵소서. 의지할 바를 알지 못하여 방황하는 저희들을 붙들어 주시옵소서. 당신이 저희에게 허락하신 은사가 놀랍고 크신 것을 느끼는 저희들이었사오나, 그 은사를 받고도 아버지 앞에 영광을 돌려 드리지 못하는 불충한 저희들을, 아버지, 용납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께서는 슬픈 세상에서 그 슬픔을 피해 갈 수 있는 길을 저희에게 미리 제시해 주셨사오나, 그 예고하신 뜻을 받들기에 충분하지 못한 저희들이었던 것을 용납하여 주시옵소서. 고통스런 행로를 가야 할 저희들이었사오나, 이것을 피할 수 있는 한 길을 저희들에게 세워 주셨다는 것을 알면서도 아버지 앞에 감사하며 그 길로 가지 못한 것을 용납하여 주시옵소서. 이제 남은 생애를 아버지의 기쁨과 아버지의 영광을 위하여 아버지의 의중에 맡기고 살기를 바라고 있사오나, 땅 위에 사망의 권한과 죄악의 권세가 워낙 강하게 저희 주위를 둘러싸고 있사옵니다. 이것을 벗어나기가 어려운 것을 아버지께서도 알고 계시오니, 긍휼의 아버지, 이 시간 현현하시옵소서. 아직까지 해방된 자리에서 아버지의 영광을 찬양하며 아버지 앞에 기쁨을 돌려 드리는 저희들이 못 된 것을, 아버님, 용납하여 주시옵고, 새로운 능력의 손길을 펴시어서 어둠의 권한을 제압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들이 승리의 모습으로 부활의 영광을 노래할 수 있도록 재창조의 역사를 일으켜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사망의 권세가 저희를 휩쓸고 있사온지라 생명의 감촉과 생사의 판가리를 거쳐서 이것을 밀고 나갈 수 있는 자동적인 힘과 자발적인 능력이 필요하오니, 아버님, 그것을 염원하는 당신의 아들딸이 있사올진대, 그들에게 친히 능력을 가하시옵고 부활의 권한을 허락하시어서, 내일의 소망을 품고 하루하루의 생활을 개척해 나가는 하늘의 정병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사랑하는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지금까지 걸어나온 모든 생활이 부족하였다 할지라도, 아버지, 용납하여 주시옵소서. 내일의 새로운 약속에 대해 예고하고 저희를 충격시키려는 아버지의 뜻이 있다 할진대, 그 뜻과 그 이념과 그 소망을 바라보면서 오늘도 내일도 개척자의 책임을 다할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사랑하는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아버지! 아버지를 위하고 싶고, 아버지를 따르고 싶고, 아버지의 심정을 본받고 싶은 마음이오니, 이것을 기반으로 아버지께서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께서 움직이시어서 저희들에게 부활의 영광을 보이시옵소서. 그리하여 해방의 은사권 내에 저희들을 옮겨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올 때, 모든 말씀 주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1959. 6. 7) |
| 원리원본 (345) 이와 같이 근본 한 개성을 중심하고 한 상대시작(相対始作)의 완성인 대상격 존재성으로 완성만 하면 그 기대상(基台上)에는 한 대상격 완성으로 원리노선상(原理路線上)을 성사하는 원리적 목적을 조성하니 그곳은 벌써 근본 창조원리로 나타난 것이니 선한 것이다. 그러니 하나님의 통성(通性)을 취할 수 있는 행복의 한 기점위치인 바다. 그러므로 인생세계에는 누구나 자기중심 제일주의로 나가는 것은 자기로 인하여서 근본 기점상 원리위치를 취하는 데는 제일 가까운 거리를 자기가 누구보다 더 가까운 것이므로 다른 사람을 중심하고 이루기보다 자기중심하고 개성 이상을 이루고자 하여서 자기 제일주의로 취하게 하는 바는 사실이다. 이것의 소생(蘇生) 성장 완성하여 한 목적달성하면 그 다음은 제2차적 대상위치를 널리하여 전체 기본목적으로 연장되는 바다. 그러므로 제일 자기부터 시작하여 전체에로 하며 완성이상을 협조하게끔 본래 인간은 되어있다. 그러므로 사람이 본래 이러한 기본 원리상에서 지었기에 타락은 되었을망정 자아중심을 주(主)로 하는 바는 사실이다. 순수한 양심적으로 선(善)으로 나아가는 곳이라면 누구나가 그 한 자체를 합하여 나아가면 언젠가 그 기본점상(基本点上) 선(善)을 합하게 되는 것이다. |
| 文鮮明先生말씀選集 5권 12) 소망인 이상천국 1959년 2월 22일(일), 전 본부교회. <말 씀> 우리 인간들은 타락한 그날부터 오늘날까지 잃어버린 이상의 나라를 흠모하면서, 새로운 소망을 품고서 무한한 고초를 겪으며 싸워 나오고 있다는 것을 우리들은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주위는 행복하여야 할 주위인데도 불구하고, 우리는 마음으로 그리며 사모하고 있는 모든 행복의 조건과 인연을 맺지 못한 채 불행 속에서 허덕이고 있다는 사실을 또한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이런 입장에 선 것은 인간이 하나님께서 창조이상으로 지으셨던 천국을 잃어버렸기 때문임을 우리들은 다시 회상하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엿새 동안에 모든 만물을 지으셨습니다. 그 중 아담 해와는 만물의 주인공으로 지음 받았습니다. 이 아담 해와는 하나님의 창조이상 동산에서 하나님 대신 온 피조만물을 주관할 수 있는 동시에, 하나님의 영광을 누릴 수 있었으며, 하늘과 땅 앞에서 화동할 수 있는 영광의 중심, 승리의 중심, 기쁨의 초점이었습니다. 이런 모습으로서 하늘과 땅 앞에 나타난 아담 해와였는데, 그들은 자기들의 위치를 잃어버리고 맡겨진 바의 책임을 감당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리하여 그날부터 이 땅은 슬픔과 고통과 죽음의 땅으로 화하였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나타나 이 사실을 부정하고, 그렇지 않다고 어떤 조건을 주장한다 할진대, 그는 자신의 마음을 부정하는 자요, 역사적인 사실을 부정하는 자요,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적인 생활을 부정하는 자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인간들은 누구를 막론하고 자신들은 불안하고 초조한 땅에서 살고 있고, 공포와 죽음의 어려운 환경에서 살고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될 때가 왔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것을 자각하여 새로운 각성을 하고, 현실적인 모순을 제거하면서 새로운 심정에 사무쳐야 하고, 새로운 이념과 소망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또 우리는 창조주가 있다 할진대 그가 창조주로서 소망하던 이념을 지니고 오늘도 내일도 아니 일생 동안, 그 이념과 더불어 싸울 수 있는 각오를 가져야만 이런 모순된 환경을 타파하고 천적인 인연을 맺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아니 갈래야 아니 갈 수 없는 죽음의 길이요, 아니 부딪칠래야 아니 부딪칠 수 없는 고통의 환경이지만, 이 모든 것을 부정할 수 있는 마음과 모든 것을 부정하고 나설 수 있는 소망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이 모든 것을 잊고 달려갈 수 있는 새로운 이상 동산, 이것이 바로 우리들이 가야 할 목적이요, 이것이 역사노정에서, 혹은 역사의 종말에서 찾아 세워야 할 목적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는 알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소망하시는 것이요, 인류가 소망하는 것이요, 이 민족과 오늘의 우리가 소망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입장에서 오늘날 여러분은 그것에 대한 책임을 짊어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느껴야 되겠습니다. 그래서 오늘 여러분 앞에 말씀드리고자 하는 제목은 ‘소망인 이상천국’입니다, ‘소망인 이상천국.’ 1. 인간 타락의 결과 인간이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소망이 꺾어지게 되었고, 인간의 소망도 끊어지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소망의 대상인 인간은 우주를 대신한 하나의 주인공으로서, 혹은 천주적인 이념의 개체로서, 이상적인 개체로서, 전체적인 제물로서 하늘을 움직일 수 있고 땅을 움직일 수 있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런 인간이 되지 못한 연고로 우리 인간에게는 소망이 남아지게 되었고, 하나님의 소망이 남아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생각하게 될 때, 인간을 위하여 지었던 창조 동산이요, 인간과 더불어 행복을 누리기 위한 창조이념이라 할진대는, 그 창조 동산과 이념 은 우리 자신들로 말미암아 결정된다는 사실을 우리들은 다시 한번 회상하여 이 일을 책임질 수 있어야 하고, 싸울 수 있어야 하겠으며, 하나님의 역사적인 한을 풀어 드릴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슬프다면 그 이상 슬픔이 없고, 억울하다면 그 이상의 억울함이 없고, 분하다면 그 이상의 분함이 없는 이러한 심적인 충격이 여러분 자신에서부터 폭발되는 그 시간이 여러분이 새로운 이념과 소망을 찾아 나갈 수 있는 한 시간이 된다는 것을 깨달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늘은 타락한 인간들의 마음에 새로운 충격을 일으켜 주기 위하여 오늘 이 시간까지 싸워 오셨다는 것을 우리들은 잊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하늘의 사명을 대신 맡았던 수많은 선지선열들도 잠들어 있는 사망권 내의 인류를 깨우쳐 그들에게 새로운 이념의 세계가 있고, 새로운 소망의 동산이 있다는 것을 각성시키고, 지금까지 자기들이 살아온 모든 환경을 부정하고 나설 수 있는 충격을 일으켜 주기 위하여 싸웠고, 또한 죽어갔다는 사실을 우리들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의 선지선열들이 역사노정을 거쳐오면서 하늘을 대신하여 그 시대 시대에 경고하였던 말씀에 충격을 받아 그 말씀을 의지하고 그 말씀을 중심삼고서 그 시대를 박차고 나선 무리, 민족, 인류가 없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러한 역사적인 범죄를 슬퍼해야 할 자체들인데도 불구하고 오늘날 우리는 이런 범죄에 대한 인식조차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야곱에게 자신이 원치 않았던 21년의 광야 생애가 있었다는 것을 우리들은 알고 있습니다. 부딪치는 어려움, 21년 동안에 거듭되는 모든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었던 마음의 기준이 야곱에게는 잡혀 있었습니다. 즉 하늘 대한 철석같은 심정과 그의 마음에 부딪친 하늘의 충격에 의한 심정이 그의 생활을 지배할 수 있고 생애를 지배할 수 있었기 때문에, 환경적인 모든 고난을 이겨내고 복귀노정을 늠름히 넘었다는 것입니다. 하늘의 충격을 받았던 그날의 각오를 가지고 일신에 미쳐지는 모든 고통과 어려움을 개의치 않고 나선 야곱이야말로,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실수하였던 연장의 역사를 가로막고 사탄을 물리친 믿음의 인물이었다는 사실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민족적인 책임을 지고 태어났던 모세의 마음은 호화로운 바로 궁중 생활로써 지배할 수 없었습니다. 미디안 광야에서 40년 동안 불쌍한 목자 생활을 한 모세였지만, 그 환경이 모세의 심정에 스며든 심적인 충격을 점령하지 못하였던 것입니다. 모세에게는 민족을 넘고, 인류를 넘고, 세계를 넘어서 하늘과 인연 맺기를 원하는, 솟구쳐 오르는 심적인 충격이 있었기 때문에 미디안 광야 40년을 무난히 넘을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우리의 선조들이 일심으로 고대하였던 것은 무엇인가? 새로운 나라, 하나님이 계시는 곳이었습니다. 이것을 찾아 세우기 위하여 싸워 나왔던 것을 우리들은 알고 있습니다. 모세가 60만 대중을 거느리고 광야에 나아가 유리한 40년 기간에도 주위 환경은 대단히 어려웠습니다. 그러나 그가 모든 어려운 환경적인 조건들을 잊어버리고 60만 대중을 가나안으로 인도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께 약속한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려는 사무친 심정과 가나안 땅에 대한 소망의 심정이 60만 대중이 반대하는 심정보다 강했기 때문이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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