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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집주(論語集注) - 19 - 자장(子張) - ⑦ - 子夏曰 百工居肆以成其事 君子學以致其道

작성자대태양/김현수|작성시간25.12.19|조회수140 목록 댓글 0
논어(論語) - 19 - 자장(子張) -  ⑦
1子夏曰 百工이 居肆하야 以成其事하고 君子學하야 以致其道니라.
2자하왈 백공이 거사하야 이성기사하고 군자학하야 이치기도니라.
3자하가 말하기를, “온갖 공인(工人)들은 공장에서 자기 일을 이루고, 군자(君子)는 배워서 그 도(道)를 이룬다.”고 하였다.
4Tsze-hsiâ said, “Mechanics have their shops to dwell in, in order to accomplish their works. The superior man learns, in order to reach to the utmost of his principles.”

 

논어집주(論語集注) - 19 - 자장(子張) - ⑦
子夏曰 百工居肆以成其事 君子學以致其道
자하가 말하기를, “온갖 공인(工人)들은 공장에서 자기 일을 이루고, 군자(君子)는 배워서 그 도(道)를 이룬다.”고 하였다. 

肆 謂官府造作之處 致 極也 工不居肆 則遷於異物而業不精 君子不學 則奪於外誘而志不篤
肆란 관청에서 물건을 만드는 곳을 말한다. 致란 지극한 것이다. 장인들이 肆에 기거하지 않으면, 다른 사물에 마음이 옮아가서 일이 정밀하지 않게 된다. 군자가 배우지 않으면 밖의 유혹에 마음을 빼앗겨 뜻이 돈독하지 않게 된다.

新安陳氏曰 此重在居肆與學
신안진씨가 말하길, “여기에서는 肆에 기거하는 것과 배우는 것에 중점을 두었다.”라고 하였다.

尹氏曰 學所以致其道也 百工居肆 必務成其事 君子之於學 可不知所務哉
윤씨가 말하길, “배움은 그 도를 지극하게 만드는 수단이다. 백공이 肆에 기거하면, 반드시 그 일의 완성에 힘쓰는 법이다. 군자가 배움에 있어서 힘쓸 바를 알지 못해서야 되겠는가?”라고 하였다.

新安陳氏曰 此重在成事與致道
신안진씨가 말하길, “여기에서는 일을 이룸과 도를 지극히 함에 중점을 두었다.”고 하였다.

愚按 二說相須 其義始備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두 말은 서로 필요하니, 그래야만 그 뜻이 비로소 갖추어진다.

朱子曰 百工居肆 方能做得事成 君子學 方可以致其道 然居肆亦有不能成其事 如閑坐打鬨過日底 學亦有不能致其道 如學小道與中道而廢之類 故後說云居肆必須務成其事 學必須務致其道 故必二說相須而義始備
주자가 말하길, “백공이 肆에 기거해야만 비로소 일이 이루어지게 할 수 있고, 군자가 배워야만 바야흐로 그 도를 지극하게 할 수 있다. 그러나 肆에 기거해도 역시 그 일을 이룰 수 없는 자가 있는데, 예컨대 한가롭게 앉아 놀거나 싸움질이나 하면서 날을 보내는 자다. 배움 역시 그 도를 지극하게 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는데, 예컨대 작은 도를 배우거나 중도에서 그만두는 것 같은 종류다. 이 때문에, 後說은 肆에 기거하면 반드시 그 일의 이룸에 힘써야 하고, 학문을 하면 반드시 그 도를 지극하게 함에 힘써야 한다고 말한 것이다. 그러므로 반드시 2개의 설은 서로 필요하니 그래야만 그 뜻이 비로소 갖추어지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慶源輔氏曰 由朱子之說 則見君子之欲致道 不可不由於學 由尹氏之說 則君子之學 必當務致乎道 夫欲致道而不由學 則心志爲外物所遷誘而不能專一 固不足以致其道 然學而不足以致道 則其所學者 又不過口耳之習耳 欲致其道 則心由學 旣曰由學 則必務致道 然後爲君子之事也
경원보씨가 말하길, “주자의 말에 의하면, 군자가 도를 지극히 하고자 함에 있어서는 학문을 말미암지 않을 수 없음을 알 수 있고, 윤씨의 말에 의하면, 군자의 학문은 반드시 도를 지극하게 함에 힘써야 함을 알 수 있다. 무릇 도를 지극히 하고자 하면서도 학문을 말미암지 않는다면, 心志가 외물에 유혹되고 옮겨져서 오로지 할 수 없으니, 본래 그 도를 지극히 하기에 부족한 것이다. 그러나 학문을 했어도 도를 지극히 하기에 부족하다면, 그가 배운 것은 또한 입과 귀로만 익힌 것에 불과할 뿐이다. 그 도를 지극히 하고자 한다면, 마음은 학문을 말미암아야 하고, 이미 학문을 말미암는다고 말하였다면, 반드시 도를 지극히 함에 힘써야 하니, 그러한 후에야 군자의 일이 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胡氏曰 前說 則重在居肆與爲學 後說 則重在成事與致道 一主於用功 一主於立志 然知所以用功而志不立不可也 知所以立志而功不精 亦不可也 故二說相須而備 非如他章存兩說之比也
호씨가 말하길, “前說은 肆에 기거함과 학문을 함에 중점을 둔 것이고, 後說은 일을 이룸과 도를 지극히 함에 중점을 둔 것이다. 하나는 힘써 노력하는 것에 주안점을 두었고, 또 하나는 뜻을 세우는 것에 주안점을 두었다. 그러나 힘써 노력해야 할 것을 알면서도 뜻을 세우지 않아서는 안 되고, 뜻을 세울 것을 알면서도 힘쓰는 것이 정밀하지 않아서도 역시 안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2개의 說은 서로 필요하고 그래야만 그 뜻이 다 갖추어지는 것이니, 다른 장에서처럼 2개의 說이 존재하는 것에 견줄 바가 아니다.”라고 하였다.

雲峯胡氏曰 工必居肆 則耳目之所接者在此 心思之所爲者在此 而其事則成於此 君子之居於學也 亦然 集註二說相須 然前設尤重 蓋居肆而不務成其事者 有之矣 未有不居肆而能成其事者也 學而不知所務者 有之矣 未有不學而能致其道者也
운봉호씨가 말하길, “장인은 반드시 肆에 기거해야 하니, 눈과 귀가 접하는 것들이 모두 여기 있고, 마음과 생각이 행하는 바가 여기에 있어서, 그 일이 곧 여기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군자가 학문에 임하는 것도 역시 그러하다. 집주에서 2개의 說이 서로 필요하다고 하였지만, 그러나 前說이 더욱 중요하다. 대체로 肆에 기거하면서도 그 일을 이룸에 힘쓰지 않는 자가 있기는 하지만, 肆에 기거하지 않으면서 능히 그 일을 이룰 수 있는 자는 아직 없기 때문이고, 배우면서도 힘쓸 바를 모르는 자가 있기도 하지만, 배우지 않고도 능히 그 도를 지극히 할 줄 아는 자는 미처 없었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新安陳氏曰 前說是子夏本意 觀二以字可見 後說是發子夏餘意 而於警戒學者尤切
신안진씨가 말하길, “前說은 자하의 본래 뜻이니, 두 개의 以자를 살펴보면, 알 수 있는 것이다. 後說은 자하의 나머지 뜻을 드러낸 것으로서, 배우는 자에게 경계해줌에 있어 더욱 간절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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