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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월 5일 - 아버지의 기도 (심정편 7) / 원리원본 (131) / 文鮮明先生말씀選集 (1-19-1)

작성자대태양/김현수|작성시간26.01.05|조회수66 목록 댓글 0
아버지의 기도 - 심정편 - 7. 슬픈 심정의 아버지를 증거토록 하소서

아버님!
아버님께서 본연의 동산을 잃어버리고
슬퍼했던 그 심정을
이 시간 저희들이 깨닫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아버님께서는
저희들이 알지 못하는 가운데 눈물을 흘리며
무한한 슬픔과 무한한 고통 속에 계셨다는 것을
저희들 몸 마음에 느끼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담 해와의 타락으로 인한
아버지의 슬픔도 크거니와
복귀섭리의 뜻을 책임지고
땅 위에 오셨던 예수 그리스도가
자신의 모든 사명을 완수하지 못하고
십자가에 돌아가신 것도
아버님의 이루 말할 수 없이 큰 슬픔이었고,

외로움이었고,
고통이었음을 이 시간 저희들이 깨달아
그 모든 서글픈 심정을
몸 마음으로 체휼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저희의 선조들이
아버님을 배반한 연고로
통분할 수밖에 없는
슬픈 역사노정을 거쳐온 것을 생각하면서,

오늘의 저희 일신이
아버지 앞에 슬픔을 더욱 가하는
불쌍한 자리에 서지 말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아담 해와의 슬픔을 대할 수 있고
예수 그리스도의 슬픔을 대할 수 있는
모습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제 저희들의 몸과 마음이
단순한 저희들의 몸과 마음으로만
멎지 말게 하여 주시옵고,

저희의 마음이
아버지의 마음을 대신하고
저희의 몸이
아버지의 형상을 대신할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저희가 슬픈 심정을 갖고 계신 아버지를
증거할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주의 이름으로 기도하였사옵나이다. 아멘.
(1959. 2. 8)  

 

원리원본 (131)

이삭의 한 존재가 예약(予約) 상징제물의 침입을 보였기에 그 이삭도 실체헌제(實体献祭))에 순종하지 않을 것은 벌써 시작할 가능성이 잘못하면 생길 것을 사탄은 바라보고 따르게 되었다.

그것은 제물을 자기 것으로 하였던 사실이 있으므로 사탄은 여전하게 그 후손에 대하여 대립성(対立性)을 갖고 대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이삭이 자식을 낳으니 쌍둥이인지라 즉 에서와 야곱이었다.

이 쌍둥이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면 아브라함의 실패로 인한 제물에 원치 않은 존재의 침입이 있었던 것이므로 이 실체자식(實体子息) 이삭이 문제되어 또다시 찾았으나 이삭의 자식한테 대해서는 사탄 역시 사탄이 찾고자 하는 한 터를 양보하고 말았던 실수가 있었으니 그 자식되는 쌍둥이는 원수적 표시의 소유자(所有者)와 하나님적 표시인 소유자가 한 복중(腹中)에 있음을 표시함이었다.

그래서 에서와 야곱은 뱃속에서부터 싸웠음은 이와 같은 근본적 배치(背馳)의 존재니 뱃속에서부터 싸운 것이다. 자식을 낳으니 에서와 야곱이더라.

 

文鮮明先生말씀選集 1권

19) 만민을 위하여 오신 주를 모시는 자가 되자
1956년 12월 23일(日), 전 본부교회.

<말 씀> 여러분들과 같이 생각하려는 제목은 만민을 위하여 오신 주를모시는 자가 되자입니다. 만민을 위하여 오신 주를 모시는 자가 되자 이러한 내용을 가지고 잠깐 동안 말씀드리겠습니다. 

1. 하나님의 창조이상과 인간 타락의 결과

하나님과 인간과 만물, 이 모두는 하나의 창조이상을 중심 삼고 영원히 하나되어야 할 것이었는데, 하늘과 만물의 중간에 있는 인간이 실수한 연고로 만물은 만물대로, 하늘은 하늘대로, 사람은 사람대로 나누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창조 본연의 세계를 다시 찾기 위하여 만물부터 시작해서 인간과 마지막에는 하늘까지 찾는 복귀의 역사를 하시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입니다. 이런 아버지의 사정을 알지 못하는 여러분이 되어선 안 될 것입니다. 

타락의 혈통을 받고 태어난 오늘날의 우리들, 타락의 종족으로서 우거하고 있는 오늘날의 인류는 먼저 마음으로 몸으로 하나님의 서러움이 사무쳐 있는 것을 느끼는 사람들이 되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우리는 너 나 할 것 없이 타락했지만, 하나님이 우리 인간을 창조하신 관계가 있는 이상, 또 섭리의 뜻을 성취하기 위하여 수고하고 계시는 아버님이 있는 이상 우리들은 무의미한 입장에 서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여러분 자체가 악하다 할지라도, 악한 자리에 처해 있을지라도 스스로 지금까지 역사 과정을 거쳐 나오면서 섭리하신 아버지의 수고의 눈물 자국이 여러분의 몸에 남아 있음을 먼저 인식하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이요, 

다음에는 우리들을 다시 찾아 회복시켜 주기 위한 섭리, 즉 복귀섭리를 해 오신 아버지의 수고와 고난의 흔적을 여러분이 역사를 대신하여 여러분의 몸에 지니고 있음을 느껴야 될 것입니다. 또 그뿐만 아니라 창조 본연의 이상이, 하나님 속에 남아 있는 내적인 소원이 끝날에 있는 우리들에게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이제 우리들은 무형의 신으로 계시는 하나님의 서러움이 내 한 자체에 사무쳐 있고, 무형의 신으로 계시어서 복귀의 섭리를 하시는 하나님의 수고의 표적이 내 몸에 소망의 터전으로서 남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이 땅 위에 있는 우리들은 하나님이 당신의 애달픈 심정만큼 애달파하고, 수고하신 당신의 고난의 흔적만큼 수고하고, 소망으로 두고 나오던 당신의 본연의 선의 심정만큼 몸과 마음을 굽혀 그 서러움을 대신할 수 있는 서러움을 가진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또 하나님의 수고를 대신하는 고난의 심정을 갖고,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고난을 보이는 체를 갖추어 나타낼 수 있는 모습을 이 날도 요구하고 계시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뿐만 아니라 역사적인 모든 종교를 판가리 지어 소원을 이루어 드릴 수 있는 소망의 한 종교를 아버지께서는 찾고 계시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자나깨나 앉으나 서나 활동하나, 어느 한 순간의 생활 과정이나 찰나의 시간에 있어서도 마음에 어리고 몸에 자극을 받을 수 있는 참다운 성도가 이 땅 위에 나타나기를 아버지께서는 고대하고 있다는 것을, 오늘 여기에 모인 여러분들은 마음으로 체휼할 수 있는 자리에 나아가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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