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맹자집주 (孟子集註) - 03 - 공손추장구상(公孫丑章句上) - 제1장 - ① - 公孫丑問曰 夫子當路於齊

작성자대태양/김현수|작성시간26.06.23|조회수82 목록 댓글 0
맹자 (孟子)  - 03 - 공손추장구상(公孫丑章句上) - 제1장 - ① 
11 公孫丑問曰 夫子當路於齊하시면 管仲晏子之功을 可復許乎잇가
孟子曰 子誠齊人也로다 知管仲晏子而已矣온여
或이 問乎曾西曰 吾子與子路孰賢고 曾西蹵然曰 吾先子之所畏也니라 曰 然則吾子與管仲孰賢고 曾西 艴然不悅曰 爾何曾比予於管仲고 管仲이 得君이 如彼其專也며 行乎國政이 如彼其久也로대 功烈이 如彼其卑也하니 爾何曾比予於是오하니라 
4 曰 管仲은 曾西之所不爲也어늘 而子爲我願之乎아
5 曰 管仲은 以其君覇하고 晏子는 以其君顯하니 管仲晏子는 猶不足爲與잇가
6 曰 以齊로 王이 由反手也니라
7 曰 若是則弟子之惑이 滋甚케이다 且以文王之德으로 百年而後崩하사대 猶未洽於天下어시늘 武王周公이 繼之然後에 大行하니 今言王若易然하시니 則文王은 不足法與잇가
21 공손축문왈 부자당로어제하시면 관중안자지공을 가부허호잇가
맹자왈 자성제인야로다 지관중안자이이의온여
3 혹이문호증서왈 오자여자로숙현고 증서축연왈 오선자지소외야니라 왈 연즉오자여관중숙현고 증서 불연불열왈 이하증비여어관중고 관중이 득군이 여피기전야며 행호국정이 여피기구야로대 공열이 여피기비야하니 이하증비여어시오하니라 
4 왈 관중은 증서지소불위야어늘 이자위아원지호아
5 왈 관중은 이기군패하고 안자는 이기군현하니 관중안자는 유부족위여잇가
6 왈 이제로 왕이 유반수야니라
7 왈 약시즉제자지혹이 자심케이다 차이문왕지덕으로 백년이후붕하사대 유미흡어천하어시늘 무왕주공이 계지연후에 대행하니 금언왕약역연하시니 즉문왕은 부족법여잇가
31 공손추가 (맹자에게)묻기를, “선생님(맹자)께서 제나라에서 요로(요직)를 담당하신다면 관중과 안자의 공적을 다시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 하니,

2 맹자가 말씀하시기를, “그대는 참으로 제나라 사람이로다. 관중과 안자를 알 뿐이로구나.

3 어떤 사람이 증서(증자의 손자)에게 묻기를, ‘그대는 자로와 더불어 누가 더 어진가?’ 하니, 증서가 불안해하면서 말하기를, ‘(자로는) 우리 선친께서 존경하신 분이니라.’고 하였다. ‘그러면 그대는 관중과 더불어 누가 더 어진가?’ 하니, 증서가 발끈하여 불쾌해 하며 말하기를, ‘네가 어찌 나를 관중에게 비교하는가? 관중이 군주의 신임을 얻은 것이 저렇게 독차지하였고, 국정을 시행함이 저렇게 오랫동안 했는데도 공적이 저같이 보잘 것이 없으니, 네가 어찌 나를 이 사람에게 비교하는가?’라고 하였다.”고 한다. 

4 (맹자께서) 말씀하시기를, “관중은 증서도 하지 않은 것인데, 그대는 나에게 그렇게 하기를 원하는 것인가?” 하니,

5 (공손추가) 대답하기를, “관중은 그 군주를 (천하의) 패자(覇者)가 되게 하였고, 안자는 그 군주를 이름나게 하였으니 관중과 안자도 오히려 해볼 만한 하지 않습니까?” 하니,

6 맹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제나라를 가지고 왕 노릇함은 마치 손을 뒤집는 것과 같이 쉬운 것이니라.” 하셨다.

7 (공손추가) 말하기를, “그렇다면 제자의 의혹이 더욱 심해집니다. 또 문왕의 덕으로도 백년 뒤에 죽었는데 그래도 천하에 (교화가) 흡족치 못하여 무왕과 주공이 계속한 뒤에야 크게 행해졌습니다. 지금 왕 노릇하는 것을 쉬운 것처럼 말씀하시니 그렇다면 문왕은 본받을 만한 것이 못 됩니까?”라고 했다.   
4Kung-sun Ch'âu asked Mencius, saying, 'Master, if you were to obtain the ordering of the government in Ch'î, could you promise yourself to accomplish anew such results as those realized by Kwan Chung and Yen?'

Mencius said, 'You are indeed a true man of Ch'î. You know about Kwan Chung and Yen, and nothing more,

'Some one asked Tsang Hsî, saying, "Sir, to which do you give the superiority,-- to yourself or to Tsze-lû?" Tsang Hsî looked uneasy, and said, "He was an object of veneration to my grandfather." "Then," pursued the other, "Do you give the superiority to yourself or to Kwan Chung?" Tsang Hsî, flushed with anger and displeased, said, "How dare you compare me with Kwan Chung? Considering how entirely Kwan Chung possessed the confidence of his prince, how long he enjoyed the direction of the government of the State, and how low, after all, was what he accomplished,-- how is it that you liken me to him?"

'Thus,' concluded Mencius, 'Tsang Hsî would not play Kwan Chung, and is it what you desire for me that I should do so?'

Kung-sun Ch'âu said, 'Kwan Chung raised his prince to be the leader of all the other princes, and Yen made his prince illustrious, and do you still think it would not be enough for you to do what they did?'

Mencius answered, 'To raise Ch'î to the royal dignity would be as easy as it is to turn round the hand.'

'So!' returned the other. 'The perplexity of your disciple is hereby very much increased. There was king Wan, moreover, with all the virtue which belonged to him; and who did not die till he had reached a hundred years:-- and still his influence had not penetrated throughout the kingdom. It required king Wû and the duke of Châu to continue his course, before that influence greatly prevailed. Now you say that the royal dignity might be so easily obtained:-- is king Wan then not a sufficient object for imitation?'

 

맹자집주 (孟子集註) - 03 - 공손추장구상(公孫丑章句上) - 제1장 - ①
1 公孫丑問曰 夫子當路於齊 管仲晏子之功 可復許乎
공손추가 (맹자에게)묻기를, “선생님(맹자)께서 제나라에서 요로(요직)를 담당하신다면 관중과 안자의 공적을 다시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 하니,
復, 扶又反.

 公孫丑, 孟子弟子, 齊人也. 當路, 居要地也. 管仲, 齊大夫, 名夷吾, 相桓公, 霸諸侯. 許, 猶期也. 孟子未嘗得政, 丑蓋設辭以問也.
공손추는 맹자의 제자이고 제나라 사람이다. 當路란 중요한 지위에 있는 것을 말한다. 관중은 제나라 대부고, 이름은 이오며, 제환공을 도와 제후들의 패자로 군림하게 하였다. 許는 기대한다는 말과 같다. 맹자가 일찍이 정치할 기회를 얻은 적이 없었기에, 공손추는 대개 가정하는 말로써 물은 것이다.

慶源輔氏曰 此必丑初見孟子時事 觀其語意恐孟子不敢以管晏自許 是全未知孟子也
경원보씨가 말하길, “이것은 반드시 공손추가 처음으로 맹자를 만났을 때의 일일 것이다. 그 말을 살펴보면, 아마도 맹자가 감히 관중과 안자를 가지고 스스로 기약하지 못할 것으로 생각한 것이나, 이것은 완전히 맹자를 알지 못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西山眞氏曰 齊宣旣慕桓文 丑復慕管晏 蓋覇者功利之說 深入人心已久 故不惟時君慕之而學者亦慕之
서산진씨가 말하길, “제선왕이 이미 제환공과 진문공을 그리워하였는데, 공손추가 다시 관중과 안영을 그리워하였으니, 대체로 霸者의 功利之說이 사람들의 마음속에 깊이 들어가 박힌 지가 이미 오래되었기 때문에, 당시의 임금들만 그들을 사모하였을 뿐 아니라, 배우는 자들도 역시 그들을 사모하였던 것이다.”라고 하였다.

2 孟子曰 子誠齊人也 知管仲晏子而已矣
맹자가 말씀하시기를, “그대는 참으로 제나라 사람이로다. 관중과 안자를 알 뿐이로구나.

齊人但知其國有二子而已, 不復知有聖賢之事.
제나라 사람은 그 나라에 그저 두 사람이 있는 줄 알았을 뿐, 성현의 일이 있음을 더 알지는 못하였다.

慶源輔氏曰 世衰道微 聖學不明 人不知有學問 則亦不復知有聖賢之事業 雖有英才美質 不覺溺於時俗之見聞而已 此齊人之所以但知其國之有二子也
경원보씨가 말하길, “세상의 도가 쇠미해지고, 성인의 학문이 밝지 않아서, 사람들이 학문이 있음을 알지 못한다면, 또한 성현의 사업이 있다는 것을 더 이상 알지 못할 것이다. 비록 뛰어난 재주와 훌륭한 자질이 있을지라도, 당시 세속의 견문에 빠졌다는 것을 깨닫지 못할 따름이다. 이것이 바로 제나라 사람들이 자기 나라에 단지 두 분만 있다고 알았던 까닭이다.”라고 하였다.

3 或問乎曾西曰 吾子與子路孰賢 曾西蹴然曰 吾先子之所畏也 曰 然則吾子與管仲孰賢 曾西艴然不悅 曰 爾何曾比予於管仲 管仲得君 如彼其專也 行乎國政 如彼其久也 功烈 如彼其卑也 爾何曾比予於是
어떤 사람이 증서(증자의 손자)에게 묻기를, ‘그대는 자로와 더불어 누가 더 어진가?’ 하니, 증서가 불안해하면서 말하기를, ‘(자로는) 우리 선친께서 존경하신 분이니라.’고 하였다. ‘그러면 그대는 관중과 더불어 누가 더 어진가?’ 하니, 증서가 발끈하여 불쾌해 하며 말하기를, ‘네가 어찌 나를 관중에게 비교하는가? 관중이 군주의 신임을 얻은 것이 저렇게 독차지하였고, 국정을 시행함이 저렇게 오랫동안 했는데도 공적이 저같이 보잘 것이 없으니, 네가 어찌 나를 이 사람에게 비교하는가?’라고 하였다.”고 한다. 
蹴, 子六反.

○ 孟子引曾西與或人問答如此. 曾西, 曾子之孫. 蹴, 不安貌. 先子, 曾子也. 艴, 怒色也. 曾之言則也. 烈, 猶光也. 桓公獨任管仲四十餘年, 是專且久也. 管仲不知王道而行霸術, 故言功烈之卑也.
맹자가 증서와 어떤 사람이 한 문답을 인용한 것이 이와 같았다. 증서는 증자의 손자다. 蹴이란 불안한 모습이다. 先子는 증자다. 艴은 화난 낯빛이다. 曾은 즉이라는 말이다. 烈이란 빛난다는 것과 같다. 제환공은 관중을 홀로 40여년을 재상에 임명하였는데, 이것은 제 마음대로 하고 또 오래한 것이다. 관중은 왕도정치를 알지 못하여 패술(패도정치)을 행하였기 때문에, 이룬 공이 비루하였다고 말한 것이다.

楊氏曰: “孔子言子路之才, 曰: ‘千乘之國, 可使治其賦也.’ 使其見於施爲, 如是而已. 其於九合諸侯, 一匡天下, 固有所不逮也. 然則曾西推尊子路如此, 而羞比管仲者何哉? 譬之御者, 子路則範我馳驅而不獲者也; 管仲之功, 詭遇而獲禽耳. 曾西, 仲尼之徒也, 故不道管仲之事.”
양씨가 말했다. “공자가 자로의 재주에 대해 말하길, ‘천승의 나라에서 군사를 다스리게 할 수 있다’고 하였는데, 설사 자로가 시행한 것에서 보이는 것이라 할지라도 이와 같을 뿐이었으니, 제후들을 아홉 번 회합하여 천하를 한번 바로잡는 일에 있어서는, 자로가 본래 미치지 못한 바가 있었다. 그렇다면, 증서가 자로를 밀어 높이는 것이 이와 같으면서도 자기를 관중과 비교한 것을 부끄러워한 것은 무엇 때문인가? 이를 마차 모는 일에 비유하자면, 자로는 내 방식에 따라 몰았다가 짐승을 잡지 못한 것인데, 관중의 공은 속여 만나게 하여 짐승을 잡은 것일 따름이다. 증서는 중니의 무리이므로 관중의 일을 말하지 않았던 것이다.”

問聖人分明是大管仲之功而孟子便以爲卑 如何 朱子曰 孟子是不肯做他底 是見他做得那規模來底
누군가 묻기를, “성인(공자)께서는 분명히 관중의 공이 크다고 보았는데, 맹자는 곧 낮다고 여겼으니, 어떻게 된 것입니까?”라고 하였다. 주자가 말하길, “맹자는 그가 행한 것을 하려고 하지 않았던 것이니, 그가 행한 저 규모를 알아보았던 것이다.”라고 하였다.

慶源輔氏曰 楊氏斷置得極分明 子路之才 視管仲誠爲不及 然子路之所學 則聖人之道 其於管仲之事 蓋有所不屑爲者 或曰 楊氏本說 但云子路譬之御者 則範我馳驅者 若管仲蓋詭遇耳 此則是以御而譬其所爲 未說到功效上 今集註增益之曰 子路則範我馳驅而不獲者也 管仲之功 詭遇而獲禽耳 則是幷與功都說了 然按孟子範我馳驅 是一人 不獲又是一人 詭遇是一人 獲禽又是一人 今若作一人看 則似以子路爲御之善而射未善 然射御又非一人所能兼者 恐不若只從其本說之爲得也 曰非是之謂也 集註之意 蓋謂子路是範我馳驅而不遇王者 故不獲 管仲則詭遇以逢桓公之爲 故得禽多耳
경원보씨가 말하길, “양씨는 자로의 재주가 관중과 견주어서 진실로 미치지 못한다고 지극히 분명하게 단정하였다. 그러나 자로가 배운 바는 곧 성인의 道였으니, 그가 관중의 일에 대하여 아마도 달갑게 하려 하지 않는 바가 있었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혹자가 말하길, “양씨가 본래 말했던 것은, 단지 자로를 수레 모는 사람에 비유한다면, 곧 자기 원칙대로 몰아 달리는 사람이고, 관중과 같은 경우는 대체로 속임수로 몰아 만나는 자라고 말했던 것일 뿐이라고 하였습니다. 이런 것이라면, 수레 모는 것으로써 그가 행한 바를 비유한 것일 뿐이지, 아직 그 공효 위에까지 말한 것은 아닙니다. 지금 집주에서는 그것에 보태어 말하길, ‘자로는 곧 자기 원칙대로 수레를 몰았지만 짐승을 잡지 못한 사람이고, 관중의 공효는 속임수로 몰아서 짐승을 만나게 하여 짐승을 잡은 것일 뿐이다’라고 하였으니, 이는 공효와 더불어 전부 다 말해버린 것입니다. 그러나 맹자를 살펴보건대, 자기 원칙대로 수레를 모는 것도 한 사람이고, 잡지 못한 것도 또 한 사람이며, 속임수로 몰아 만나게 하는 것도 한 사람이고, 짐승을 잡는 것도 또 한 사람입니다. 지금 만약 한 사람으로 간주한다면, 자로를 수레몰기는 잘하지만 활쏘기는 훌륭하지 못한 사람으로 여기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활쏘기와 수레몰기는 또한 한 사람이 겸해서 잘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아마도 그저 그 본래의 말이 잘 터득되는 것을 따르는 것만 못할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말하길, “이것을 일컬어 말한 것이 아니다. 집주의 뜻은 대체로 자로는 자기 원칙대로 수레를 몰아서 왕노릇 하는 사람을 만나지 못했기 때문에 짐승을 잡지 못한 것이고, 관중은 속임수로 수레를 몰아서 제환공을 만나 그의 행위에 영합하였기 때문에, 짐승을 많이 얻었다는 것을 말한 것일 뿐이다.”라고 하였다.

雙峯饒氏曰 使王良得善射者 而御之則範我馳驅 正所以獲禽 卽詩所謂不失其馳 舍矢如破 儻以孔孟之道而遇明主 則治國平天下皆餘事耳
쌍봉요씨가 말하길, “만약 왕량이 활을 잘 쏘는 사람을 얻어서 수레를 몰았다면, 자기 원칙대로 수레를 모는 것이 바로 짐승을 잡는 방법이었을 것이니, 곧 시경에서 말한 이른바 ‘수레 모는 것도 그 법도를 잃지 않고, 화살 쏘기를 마치 바위 쪼개듯이 한다’는 것이다. 만약(儻, dang3) 孔孟之道를 이용하여 현명한 군주를 만난다면, 나라를 다스리고 천하를 평화롭게 하는 것은 모두 餘事(여력으로 행하는 한가한 일)일 따름일 것이다.”라고 하였다.

4 曰 管仲曾西之所不爲也 而子爲我願之乎
(맹자께서) 말씀하시기를, “관중은 증서도 하지 않은 것인데, 그대는 나에게 그렇게 하기를 원하는 것인가?” 하니,
子爲之爲, 去聲.

○ 曰, 孟子言也. 願, 望也.
曰은 맹자의 말이다. 願은 바란다는 말이다.

5 曰 管仲以其君霸 晏子以其君顯 管仲晏子猶不足爲與
(공손추가) 대답하기를, “관중은 그 군주를 (천하의) 패자(覇者)가 되게 하였고, 안자는 그 군주를 이름나게 하였으니 관중과 안자도 오히려 해볼 만한 하지 않습니까?” 하니,
與, 平聲.

○ 顯, 顯名也.
顯은 이름을 드러낸다는 것이다.

6 曰 以齊王 由反手也
맹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제나라를 가지고 왕 노릇함은 마치 손을 뒤집는 것과 같이 쉬운 것이니라.” 하셨다.
王去聲 由猶通: 王은 거성(동사)이고, 由와 猶는 통한다.

○ 反手, 言易也.
反手란 쉽다는 말이다.

7 曰 若是 則弟子之惑滋甚 且以文王之德 百年而後崩 猶未洽於天下 武王周公繼之 然後大行 今言王若易然 則文王不足法與
(공손추가) 말하기를, “그렇다면 제자의 의혹이 더욱 심해집니다. 또 문왕의 덕으로도 백년 뒤에 죽었는데 그래도 천하에 교화가 흡족치 못하여 무왕과 주공이 계속한 뒤에야 크게 행해졌습니다. 지금 왕 노릇하는 것을 쉬운 것처럼 말씀하시니 그렇다면 문왕은 본받을 만한 것이 못 됩니까?”라고 했다.    
易, 去聲, 下同. 與, 平聲.

○ 滋, 益也. 文王九十七而崩, 言百年, 擧成數也. 文王三分天下, 才有其二; 武王克商, 乃有天下. 周公相成王, 制禮作樂, 然後敎化大行.
滋는 더욱(益)이다. 문왕이 97세에 돌아가셨으니 백년이라 말한 것은 성수(成數: 올림한 수)를 든 것이다. 문왕은 천하를 3등분함에 겨우 그 둘을 갖고 있었고, 무왕이 상나라를 이기고 비로소 천하를 갖게 되었다. 주공이 성왕을 도와서 예와 악을 제정한 연후에 교화가 크게 행해졌다.

禮記文王世子 文王九十七而終
예기 문왕세자 편에, 문왕은 나이 97세에 돌아가셨다고 한다.

東陽許氏曰 武王周公繼之然後大行 此言周公制禮作樂之後 雖殷之頑民 莫不率化趍善之時也
동양허씨가 말하길, “무왕과 주공이 계승한 후에 크게 행해졌다고 하였는데, 이것은 주공이 예를 제정하고 악을 지은 후에서야, 비록 은나라의 완고한 백성이라 할지라도, 교화에 따르고 선으로 나아가지 않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던 때라고 말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