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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5월 18일 - 아버지의 기도 (소망편 12) / 원리원본 (461) / 文鮮明先生말씀選集 (2-1-4)

작성자대태양/김현수|작성시간24.05.18|조회수197 목록 댓글 0
소망편 - 12. 아버지를 향한 소망의 심정을 갖게 하소서
아버님!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참을 아신 그날부터 가진 그의 소망은,
날이 가면 갈수록
가정을 넘어, 민족을 넘어, 국가를 넘어, 세계를 넘어,
무한한 영계까지 넘어서
아버지와 일체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었고,

또 모든 것의 시작도 끝도
아버지와 더불어 움직여야 된다는 것을 아시고,
어려운 길, 슬픈 길, 십자가의 길을
개의치 않고 가셨다는 것을

저희들은 잘 알고 있사옵니다.

아버님!
저희의 눈앞에 보이는 모든 것이
아름다운 것 같으되,

그것들은 한낱
저희와 더불어 지나가는 현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저희들이 알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저희가 좋다 하고, 저희가 믿고, 
저희가 의지하던 세상의 일체는

저희 마음의 세계와 영원한 소망의 세계에는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사오니,

아버님이시여,
이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오직 아버님을 중심삼은 소망이
저희 생명의 전체가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생애의 전부가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아버님을 위하고
아버님을 향한 소망이
저희의 어떠한 것보다도 더 귀중하고,
저희의 생명보다도 더 귀중하기에
그것을 붙들고 싸워 나가는 자가 되지 아니하면
아버지의 아들딸들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저희들은 알고 있사옵니다.


죽음의 고개까지도 비웃고
넘어설 수 있는 강한 소망을

저희에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그것이 소망으로서만 끝날 것이 아니라
이 소망에 불타는 충격의 마음이
더욱 강할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그 마음과 몸이
이 길을 향하여 달음질칠 수 있는
아들딸들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님을 위하려는 소망의 일념이
강한 자가 아니고는,

죽음의 길까지 넘을 수 있는 소망을
가진 자가 아니고는

당신이 믿을 수 없다는 사실을
저희들이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늘 저희들의 소망은
몇 년 동안 붙들고 나가다가 말 소망이 아니라
영원토록 붙들고 나가야 할 소망인 것을 알고,
나아가
그 소망이 없으면 살 보람이 없다는 것을 아는
아들딸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님이시여!
저희가 아버지를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아버지가 그리워지는 소망의 심정,
아버님의 생명을 그리워하는 소망의 심정,
아버님의 사랑을 그리워하는 소망의 심정을 갖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그리하여
아버지의 약속과 더불어
축복을 받을 수 있는 아들딸로 세워질 때까지
간절한 소망의 마음을 저희의 생애노정에서,
생활에서 빼앗기기 말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수많은 사탄들은 이것을 빼앗기 위하여
저희들을 침범하고 있음을 알고 있사오니,
당신이 허락하신 소망의 마음을 끝까지 붙들고 싸워서
아버지 앞에 영광을 돌려드릴 수 있는 아들딸들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최후에 남겨진 싸움터에서
아버님의 소망을 붙들고 사탄과 싸워 승리하여,
아버지 앞에 영광 돌려드릴 수 있는
아들딸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면서,
모든 말씀 주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1959. 3. 22)

 

원리원본 (原理原本) - 461쪽

平衡의 根本인 円和理想의 한 中心本部라는 總定義가 成立을 보는 바는 自然적 原理인 바다. 天宙에 자랑할 바는 이 하나가 完全한 存在이면서 이 하나로서만 理想起點이 됨은 事実이며 이 基點을 合하면 萬原理가 合하는 其 存在니 비로소 天宙에 対한 全体 理想 完成化로 한 対像目的 価値를 定하니 그 光榮이야 누가 찬양하지 않으랴!

그러니 基本적으로 찬양은 내 찬양으로 対像世界에는 帰結되며 또 始作으로 한 原因的 回線을 造成하는 바다 그러니 하나의 完全은 내 完全으로 내 완전은 하나의 完全的 聯關使命的 責任이 完成을 바라서 있는 存在의 世界니 其 目的을 未完成하면 非原理로 됨이니 사람이나 全部는 非原理世界에서 動作하는 樣相으로 됨에 幸福이 없음은 原理의 目的이 아님이 事実로 된다.

이것은 相対를 알고 対像이 떠난 곳이니 自然的으로 破壞的 作用이 始作하여 조작이 없는 사람은 自然히 原理的 拘束으로 되니 不安이란 것이 始作하여 계속하는 것이 自然的 事実



원리원본 (原理原本) - 461쪽

평형에 근본인 원화이상에 한 중심본부라는 총합하여 정한 결정이 성립을 보는 바는 자연원리인 바다. 천주에 자랑할 바는 이 하나인 완전존재이면서 이 하나로서만 이상기점이 되는 것은 사실이며 이 기점을 합하면 만원리 합하는 그 존재니 비로소 천주에 대한 전체 이상 완성화로 한 대상목적 가치를 정하니 그 광영이야 누가 찬양치 않으랴!

그러니 기본 찬양은 내 찬앙으로 대상세계에는 귀결되며, 또 시작으로 한 인적 회선를 조성하는 바다. 그러니 하나 완전은 내 완전으로 내 완전은 하나 완전적 연관 사명적 책임의 완성을 바라서 있는 존재의 세계니 그 목적을 완성하지 못하면 비원리로 되는 것이니 사람이나 전부는 비원리 세계에서 동작하는 것처럼 되는 것에 행복이 없음은 원리목적이 아님이 사실로 된다.

이것은 상대을 잃고 대상 떠난 곳이니 자연적 파괴적 작용이 시작하여 조작이 없는 인간은 자연 원리적 구속으로 되니 불안이란 것이 시작을 계속하는 것이 자연적 사실 

 

文鮮明先生말씀選集 2권

1) 복귀를 위한 예수님의 생애관
1957년 1월 6일(日), 전 본부교회(청파동 1가).

4. 예수님의 사명을 상속받아 뜻을 완결해야 할 우리

그리고 그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서 여러분 스스로가 남을 위해주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그럴 때에 여러분은 전체적인 생명과 인연맺게 되어 영원하신 하나님께서 입증해 줄 수 있는 생의 가치를 이룰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주적인 생을 복귀해야 할 사명을 지니고 오신 분이었기 때문에 개인적인 봉사와 개인적인 희생과 개인적인 고난의 노정을 거치셨습니다. 그리고 이런 책임을 지는 데 있어서도 당대에서만 책임지려고 하시지 않았고, 전체적인 복귀의 사명이 끝날 때까지 전인류의 생명을 책임지겠다는 각오를 갖고 사셨던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께서는 2천년 역사가 경과한 오늘날까지 우주적인 생의 복귀의 사명을 책임져 나오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자신만으로 그 사명을 완결하지 못하시자, 성신을 보내 역사하셨으며, 영계에 있는 수많은 영인들까지 동원해서 그 사명을 완결시켜 나오고 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가 이러한 우주적인 생의 가치를 복귀하기 위해 오셨다 갔지만 그 일을 완결시키지 못했기 때문에 아직 그 일을 이루어야 할 사명이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이날까지도 이 땅 위에서 그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수고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 책임은 예수님 자체만으로는 완결시킬 수 없습니다. 그러면 누구를 통해 그 사명을 완결시켜야 되겠습니까? 하나님은 여러분을 통해 그 사명을 완결시키고자 하십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께서 우주적인 생의 복귀의 사명을 다하지 못했기 때문에 이제 우리들이 그 사명을 책임지고 나서야 되겠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여러분 일대(一代)에서 그 사명을 종결시켜야 할 책임을 느낀다면, 여러분의 일생을 통하여 기필코 그 사명을 이루겠다는 굳은 각오를 가져야 되겠습니다.   

이제 오늘날 여러분들은 한날 한날의 생활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주적인 생의 가치를 찾아 세우기 위하여 섭리역사 과정에서 수고하고 계시다는 것을 체휼해야 되겠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지금까지 세워 나왔던 우주적인 생의 복귀의 사명자로서 수고해 오셨던 그리스도의 뜻이 여러분을 통하여 완결되지 못한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제 여러분은 먼저 여러분 자체를 하늘 앞에 맹세의 조건물로 세울 줄 알아야 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세계를 위하여, 하늘땅을 위하여 혹은 뭇백성을 위하여 단 한번 맹세의 조건을 세웠는데 그것이 무엇이냐 하면 십자가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십자가를 통하여 수많은 선지선열들이 생을 바쳐 수고해 나온 그 기준을 일시에 넘어섰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우주적인 생의 가치를 실현하기 위하여 앞으로 어느 한 때 하늘 앞에나 세계 앞에, 또는 개인 앞에 드려지는 하나의 맹세의 제물이 되겠다는 관념을 확실히 가져야 되겠습니다.   

여러분이 어느 곳에 가든지, 어떠한 곳에 처하여 어떤 일을 하든지 그날 그 시간에 처한 환경에서 언제나 맹세의 조건물로 서기 위하여 노력해야 되겠습니다. 이러한 생활이 바로 신앙생활인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에게는 아버지 앞에 우주적인 생의 가치를 찾아 드려야 할 사명이 남아 있으니, 여러분들은 자신을 맹세의 조건물로 세워 예수님의 생과 관계맺을 수 있는 생활을 해야 되겠습니다. 또한 여러분 자체를 세계적인 조건물로 세우겠다는 각오를 가져야 되겠습니다. 더 나아가 지금까지 수고해 온 수많은 선지자들을 대신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맹세의 제물이 되겠다는 각오를 가져야 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여러분 개체 개체가 그러한 맹세의 조건을 조성해야 여러분은 하나에서부터 둘이 되고, 넷이 되고 세계까지 나아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환경이 이루어질 때 생의 가치를 찾기 위한 세계적인 고난이 종결된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다시 말하면 생명을 찾기 위한 세계적인 고난을 종결시킬 수 있는 터전이 여러분 개체에서 형성되어 교회․사회․국가․세계에까지 확대되지 않는다면,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세워 우주적인 생을 복귀하시려는 섭리의 뜻은 종결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은 확실히 깨달아야 되겠습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이러한 섭리의 뜻을 대하여 나온 여러분 자체를 생각해볼 때나, 또는 오늘날 기독교인들을 생각해 볼 때, 우주적인 생의 가치를 대신하는 개인과 가정이 나와서 사회․국가․세계까지 연결시킨 기준이 조성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하나에서부터 전체가, 즉 세계 인류 전체가 그 권내에 들어가야 하는데 그러지를 못했던 것입니다. 그러한 기준이 이 땅 위에 이루어지지 않으면 예수 그리스도의 우주적인 생의 복귀의 사명은 종결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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