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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언 (證言)

증언(證言) - 옥세현(玉世賢) - 일편단심 뜻만 위해 - 1. 평양에서 선생님 만나다

작성자대태양/김현수|작성시간24.02.07|조회수836 목록 댓글 1
증언(證言)
옥세현(玉世賢) - 일편단심 뜻만 위해
1. 평양에서 선생님 만나다

1 내가 태어난 곳은 평안남도 성천이다. 부친은 옥윤형 씨이고 모친은 민성덕 씨이다. 내가 12세 때에 학교에 입학했다. 머리가 길고 얼굴이 예쁘장하게 생겨서인지 남학생들이 너무 따라다녀서 졸업도 못 하고 중도에서 그만두게 되었다.
  
2 나의 할머니와 어머니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다. 내가 학교를 그만두고 집에 있게 되자 교회에 나가라고 종용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버지의 반대로 틈틈이 나가다가 19살 때에 시집을 갔다.
  
3 남편은 서울의 보성전문학교에서 공부하는 학생이었다. 학교를 졸업하고 군청에 취직되어 일을 보다가 23세 때에 보통문관시험에 합격하여 군청 주사가 되었다.

4 그 후 10년쯤 군청에서 근무하다가 지방의 군수로 발령이 나자 사직하고 사회에 나가서 고무조합 조합장도 하고, 회사 사장도 하면서 평양 신창리 장로교회의 장로가 되고 나는 집사가 되었다.
  
5 큰 아들이 22살 때 일본 유학을 갔다가 대동아전쟁이 나서 전쟁터에 나가게 되었다. 그때는 전쟁이 치열했기 때문에 징병되어 전쟁터에 나가는 군인들은 모두 개죽음하러 간다고 통곡들을 하였다. 내 아들은 하나님께서 돌보아 주시지 않으면 살아날 수 없을 것으로 믿었기 때문에 아들을 돌봐달라고 밤낮으로 정성 들여 기도하였다.

6 어느 날 특별히 은혜받은 사람이 집회를 한다기에 참석하여 그 사람을 우리 집에 초청해서 아들의 무사를 비는 기도회를 사흘 동안 보았다. 기도회를 마치고 그날 밤 잠자리에 드러누워 있는데, 새빨간 불덩어리가 방안에 가득 찼다.

7 이상해서 밖을 내다보니 뜰 안에도 태양 같은 빨간 불덩어리가 사방에서 왔다 갔다 했다. 방안에 가득 차 있던 불덩어리는 어느 사이에 내 몸을 감싸고 돌고 있었지만 나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기도하고는 그냥 자버렸다.
  
8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서 생각해 보니 어젯밤 그 불덩어리는 성경에서 말하는 성신의 불임에 틀림없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특별히 찾아오셔서 성신의 불을 주셨는데도 내가 미련해서 받아들이지 못하고 자고 말았으니 서운하고 한편으로는 분하기조차하였다.
  
9 그다음 날 잠자리에 들어서 여러 가지 생각에 잠겨 있는데 무엇인가가 와서 내 머리를 툭 치며 일어나라고 했다. 깜짝 놀라서 일어나 앉아 무슨 소리가 들리기를 기다렸으나 어제와 같이 성신의 불만 충만할 뿐 아무 소리가 없어서 어제저녁에도 그러더니 오늘 저녁에도 그러는구나 생각하면서 아무 감각도 없이 자고 말았다.
  
10 사흘째 밤에는 삼태기에 불덩어리를 가득 담아서 내 몸에 덮어 씌웠다. 나는 너무 뜨거워서 몸부림쳤지만 그때뿐, 아무런 역사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런 일이 있고 나서 며칠 후에 전에 우리 집에 와서 기도해 주었던 사람이 건너편에서 기도회를 본다고 해서 참석했다. 예배를 마치면서 나에게 기도를 하라고 하였다.

11 나는 집사까지 되었지만 그때까지 대중 기도를 해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시키니 할 수 없이 일어나서 ‘아버지여!’ 하고 부르며 기도를 하려니까 입이 딱 막혀서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한참 동안 엉거주춤 서 있으니 그 사람이 대신 기도했다.

12 기도 후에 ‘옥경신 씨(나의 옛 이름)는 오늘 하나님께서 특별히 부르셔서 은혜를 주셨다’라고 말했다. 그래서 나 같은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신다고 해도 내가 그 은혜를 감당할 수가 있겠느냐고 반문하니까, ‘아무튼 사탄에게 잡히지 말고 강하게 나가라’라고 당부했다.
  
13 그 사람의 말대로 집으로 돌아오는데 그때부터 기분이 이상해지기 시작했다. 몸이 공중에 떠 있는 것 같더니 걸음을 걸어도 허공을 밟고 가는 것 같았다. 그러더니 귀가 트여 이상한 소리가 들리고 눈도 밝아졌다.
  
14 집에 와서 기도하는데 사탄들이 방안 가득히 몰려와서 조롱하였다. 사탄에게 잡히지 말라는 말을 생각하며 더욱 힘을 내어 기도하자 갑자기 고함소리가 들려서 깜짝 놀랐다. 그러나 무서움을 참고 기도를 끝마쳤다. 그렇게 사흘 동안 사탄의 시험을 받고 나니 다시는 나타나지 않았다.

15 전쟁이 더욱 가열되자 교회가 텅텅 비고 대신에 노무자 등 별의별 사람들이 교회에서 기거하며 난장판을 벌였다. 그래서 교회가 곧 사탄의 소굴이 되었다. 나는 교회에 나가지 않고 집에서 기도만 하였다.
  
16 해방을 전후하여 성령의 역사가 많이 일어났는데 어느 날 새벽에 나에게 계시가 내렸다. ‘이남에서 올라온 선생님이 만수대 건너편에 계시니 찾아가라. 그 선생님은 지금 드러나지 않고 숨겨져 있다’라고 하시면서 산기도를 가라고 하였다.

17 나는 너무 기뻐서 우리 교회는 노무자들로 꽉 차 있으니 어디에 깨끗한 교회를 짓고 그 선생님을 모셔야겠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살림살이 때문에 산기도를 가지 않고 차일피일하다가 하늘로부터 징계를 받고 열병을 얻어 많은 고생을 했다.
  
18 1946년 11월 6일에 친언니가 찾아와서 여선생이 좋은 말씀을 하고 있는데 같이 가보자고 하여 따라갔다. 그분은 50여 세 된 아주머니로 이남에서 온 선생님한테서 은혜받고 기도회를 본다고 했다. 다음 날 그 아주머니를 따라가서 이남에서 올라온 선생님을 만나게 되었는데 그 젊은 선생이 바로 문선명 선생님이셨다.
  
19 선생님은 머리를 삭발하셨고 새파란 저고리를 입고 계셨다. 나를 데리고 간 아주머니가 ‘이 형님도 은혜받고자 하는 분입니다.’ 그 선생님께 소개하자 나에게 한참 말씀을 하시고는 마지막에 ‘같이 일해 봅시다’라고 하셔서 대답을 하고 주일마다 선생님을 찾아가서 예배를 보았다. 그 당시 선생님은 27세였고 나는 48세였는데 선생님을 대하기가 무척 어려웠다.

20 선생님을 중심 삼고 여러 교회에서 잘 믿는 집사들 수명이 모여서 예배를 보게 되었다. 예배 분위기가 너무나 은혜스러웠고 하늘 앞에 감사하는 눈물, 하늘의 사정을 알고 회개하는 눈물로 뒤범벅이 되었다.

21 그렇게 되니까 기성교회에서 참소를 하고 가족들이 반대하여 종내는 보안서에서 구금하는 사태에까지 이르렀다. 나도 그곳에서 2천 년 전 오순절 날 마가의 다락방에서 내린 성령의 역사를 체험한 것이다.
  
22 나의 가정에서는 내가 선생님에게 다니니까 ‘이남에서 온 젊은 사람한테 다닌다’라고 야단을 쳤고, 목사와 교인들도 매일 우리 집에 찾아와서 못살게 굴었다. 나는 그들을 무시하고 선생님을 따라다녔다.

23 지금 생각하면 하늘의 역사가 아니고서는 그런 용기가 나지 않았을 것이다. 선생님은 앞으로 어떻게 된다는 그런 말씀은 안 하시고 성경을 중심해서 말씀하셨다. 집회소는 장대현 교회 집사였던 김종화 씨 집이었다.

 

証言
玉世賢 - 「一片丹心、み旨だけのために」
1. 平壌で先生に出会う

私が生まれた所は、平安南道成川です。父親は玉ユニョン、母親は閔ソンドクといいます。

私は、十二歳のときに学校に入学しました。髪の毛が長くてかわいい顔立ちをしていたためなのか、男子学生たちにあまりにも追い回されるので、卒業もできず途中でやめてしまいました。

私の祖母と母は、篤実なキリスト教信者でした。私が学校をやめてから家にいるようになると、教会に行きなさいと誘い始めました。しかし、父親が反対したため、熱心に教会に通わず、十九歳のときに結婚しました。

夫はソウルのポソン専門学校で勉強している学生でした。学校を卒業してから郡庁に就職し、二十三歳のときに普通文官試験に合格して郡庁の主任になりました。その後十年間ほど郡庁に勤務して、地方の郡守の発令が出てからすぐに辞職しました。そして、社会に出てゴム組合の組合長をしたり会社の社長をしながら、平壌シンチャン里長老教会の長老になり、私は執事になったのです。

長男は二十二歳のとき、留学のために日本に行きましたが、そのときに大東亜戦争が始まって戦場に行くようになりました。そのときの戦争は熾烈だったので、徴兵されて戦場に行く軍人たちは皆、犬死にしに行くのだと痛哭していたのです。

“神様が助けてくださらなければ、私の息子は生き残ることができない”と信じていたので、「息子を助けてください」と昼夜、精誠を尽くして祈祷しました。

ある日、特別に恩恵を受けた人が集会をするというので参加し、それからその人を私の家に招待して、息子の無事を願う祈祷会を三日間行いました。

祈祷会を終えた日の夜、寝床で横になっていると、部屋中が真っ赤な火の玉でいっぱいになりました。おかしいと思い、外をのぞいてみると、庭にも太陽のような赤い火の玉が四方に行ったり来たり動いていたのです。部屋中に満ちた火の玉は、いつの間にか私の体を包むように回っていました。しかし、そのとき私はあまり深く考えず、祈祷してそのまま寝てしまいました。

次の日の朝、目が覚めてから考えてみると、夕べの火の玉は聖書でいう聖霊の火に間違いありませんでした。神様は特別に私を訪ねてくださり、聖霊の火を下さったのに、愚かにも私は受け入れることができずに寝てしまったのです。残念に思い、さらに悔しくなりました。

その翌日、寝床に入ってさまざまな思いに浸っていたのですが、何かが来て私の頭をトントンとたたいて、「起きなさい」と言ったのです。驚いて飛び起き、何か声が聞こえるのを座って待ちました。ところが、昨晩のように聖霊の火が満ちているだけで何の音もしないので、“今晩も昨日と同じようなことが起きるな”と思いながら、何の感覚もなく寝てしまったのです。

三日目の晩は、あじか(土などを運ぶ、竹などで編んだざる状のもの)に火の玉をいっぱいにして、私の体に覆いかぶせました。私はあまりにも熱くて身もだえしましたが、それ以外は何の役事も起こりませんでした。

そのようなことがあってから数日後に、以前、私の家に来て祈祷をしてくれた人が、向かい側で祈祷会をするというので参席しました。礼拝を終えてから、私に「祈祷をしなさい」と言いました。私は執事までしたのですが、大衆の前で祈ったことはありませんでした。

しかし、「しなさい」と言うのでしかたなく立ち上がって、「お父様!」と呼んでから祈祷をしようとすると、口がぴたっとふさがって声が出てこないのです。しばらくの間、及び腰で立っていると、私に祈祷するようにと言った人が代わりに祈り、祈祷後、「玉キョンシンさん(私の昔の名前)を、きょう神様が特別に呼ばれて恩恵を下さいました」と言いました。それで、「私のような人間に、神様が恩恵を下さるとしても、その恩恵にこたえることができるでしょうか?」と私が反問すると、「とにかく、サタンに捕まらずに強くありなさい」と言われました。

家に帰ってくると、その人の言うとおりに気分がおかしくなり始めました。体が空中に浮かんでいるようで、歩いても虚空を踏んでいくようでした。やがて、耳が開けて奇妙な音が聞こえ、目も開けました。

家で祈祷をしていると、サタンが部屋いっぱいに押し寄せてきて嘲弄しました。「サタンに捕まるな」という言葉を思い出しながら、さらに力を込めて祈ると、突然叫び声が聞こえて驚きました。しかし、恐ろしさに耐えて最後まで祈祷を行いました。そのようにして三日間、サタンの試練を受けた後、二度とサタンは現れませんでした。

戦争がさらに激しくなると、教会はがらがらになり、代わりに労務者などさまざまな人々が教会に身を寄せ、ごった返しました。そのようにして教会はサタンの巣窟になったので、私は教会に行かずに、家で祈祷をしました。

解放を前後して、多くの聖霊の役事があったのですが、ある日の明け方、私に啓示が降りたのです。

「以南(朝鮮半島で休戦ライン以南を言う語)から来られた先生が、万壽台の向こう側にいらっしゃるから訪ねていきなさい。その先生は今、現れずに隠されている」、「山に祈祷に行きなさい」という内容でした。

私は、とてもうれしくなりました。私たちの教会は労務者でいっぱいになっているので、“どこかにきれいな教会を建ててその先生をお迎えしなければならない”と思いました。しかし、自分の生活のために、山に祈祷に行く日を一日一日と延ばしていると、天から懲戒を受けて熱病にかかり、とても苦労しました。

一九四六年十一月に姉が訪ねてきて、「ある女性の先生が良いみ言を語られているから一緒に行ってみよう」と言うので、ついて行きました。そのかたは、五十数歳になるおばさんで、“以南から来た先生”から恩恵を受けて祈祷会をしていると言いました。その翌日、そのおばさんについて行き、“以南から来た先生”に出会ったのです。その若い先生が、正に文鮮明先生であられました。

先生は、髪の毛をそられており、真っ青なチョゴリ(韓服の上着)を着ておられました。私を連れてきたおばさんが、「このかたも恩恵を受けようと思っています」と先生に紹介すると、先生は私にしばらくみ言を語られ、最後に「一緒に働きましょう」と言われました。私は、それにおこたえして聖日ごとに先生を訪ねていき、礼拝を受けました。その当時、先生は二十七歳(数え年)、私は四十八歳でしたが、先生に対するのはとても難しいことでした。

いくつかの教会から信仰深い執事たち数人が集まり、先生を中心として礼拝を受けるようになりました。礼拝の雰囲気はとても恩恵深く、天の前に感謝する涙、天の事情を知って悔い改める涙であふれ返りました。そのような雰囲気であったために既成教会から讒訴され、家族が反対し、ついには保安署に拘禁される事態にまで至りました。二千年前の五旬節の日、マルコの屋根裏部屋に降りた聖霊の役事を私もそこで体験しました。

私の家庭では、私が先生の所に通うので、「以南から来た若い人の所に通っている」と大騒ぎし、牧師と信徒たちも毎日、私の家に訪ねてきて嫌がらせをしました。私は彼らを無視して先生について行きました。今、考えてみると、天の役事でなければそのような勇気は出てこなかったと思います。

先生は、これからどのようになる、というようなみ言は語られず、聖書を中心としてお話をされました。集会所は、章台教会の執事だった金宗フアさんの家でし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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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김수정 | 작성시간 24.02.07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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