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언(證言) - [37]
정대화 (鄭大和) - 내조자로서의 한평생
7. 경기지구장의 내조자로
1 1965년 가을, 본부 총무부장이었던 남편이 경기지구장으로 발령받아 수원 매산로에 위치한 지구본부로 세 살짜리 장남을 데리고 2개월 된 맏딸을 업고 남편을 따라 내려갔다.
2 나는 입교한 이후 오랜 기간 참부모님을 모시는 생활을 하였는데 모심의 생활을 그만두게 되고 교회 생활을 하게 되니까 참부모님에 대한 그리움에 처음에는 적응이 쉽지 않았다.
3 당시 지구에서 우리와 함께 활동한 사람은 최봉춘(崔奉春) 총무부장, 임도순(任導淳) 전도부장, 김일환(金一煥) 학생부장 그리고 열심히 헌신적으로 활동했던 식구들 중에는 박효룡 장로, 정분옥 권사, 이부전 권사 가정, 이정희(李正姫) 권사 가정, 이문원(季文元) 순회사, 양윤영(梁允永) 선생의 장남 이두삼(李斗森) 씨 등등이었다.
4 배불리 먹지도 못하고 보리밥과 밀가루 음식, 고구마 줄기로 반찬을 해먹으며 지구 발전을 위해 뛰던 최전선의 생활 속에서 식구들과 정이 깊게 들었다.
5 그리고 경기지구가 승공활동을 열심히 한 공로로 정부로부터 밀가루 50포대가 나왔었는데 식구들과 함께 얼마나 기뻐했는지 모른다. 큰 부자가 된 것 같았다.
6 공기총이 나와 판매를 맡게 되고, 수련생들이 각 군에서 다달이 수를 더하여 모여드니 보람이 있었다. 경기지구에서 1년 반을 시무하고 나자 다시 협회 총무부장으로 발령이 났다. 다시 본부로 가리라고는 생각도 안 하고 있었는데 그렇게 발령이 났던 것이다.
7 고생하던 식구들과 헤어지는 것이 섭섭하여 부모님 방에 들어가 기도하며 슬프게 소리 내어 우는 남편의 모습을 처음 보았다.
8 ‘마음이 아프다는 말이 있는데, 그 마음이 어디 있는지를 알았다.’라고 하던 남편의 말을 잊을 수가 없다. 그때의 중심 식구였던 분들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한 기억 속에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