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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언 (證言)

정대화 (鄭大和) - 내조자로서의 한평생 - 8. 12년간 한국협회장을 내조하다

작성자대태양/김현수|작성시간09:27|조회수13 목록 댓글 0

증언(證言) - [37]

정대화 (鄭大和) - 내조자로서의 한평생

 

8. 12년간 한국협회장을 내조하다

 

1 1970년 8월 1일부로 고 유효원 협회장의 뒤를 이어 남편이 협회장에 취임하여 한국교회를 책임지게 되었다. 그러나 나는 사회의 활동 경험이 적어 아무것도 헤아릴 줄 모르는 부족한 사람이었다. 
  

2 1970년도에 시작된 3년 전도 기간을 마치고 일본 간부들을 비롯하여 외국 식구들의 방문이 잦았다.

 

3 1975년도 여의도 대회를 위한 희망의 날 대부흥회가 남쪽으로부터 시작되어 기성교인들과 부딪치며 서울로 올라왔다. 크고 작은 대회를 하고 있는 남편을 내조하기에 나는 그릇이 너무 작고 세상을 몰랐다. 
  

4 1976년도에 워싱턴대회에 초대는 받았지만 미국 비자는 고사하고 여권 내기도 힘들어 참석도 못 할 정도였다. 효진님, 인진님, 그리고 은진님이 선화중학교에 다니기 위해 미국에서 오셨다. 그리하여 청파동은 분주하였다. 심명옥(沈明玉) 씨 부부와 손대오(孫大昨) 박사 부부와 같이 자녀님들을 모셨다. 
 
5 1977년의 일화 사건은 나의 피를 말리게 하였다. 일화 사장 부인이었던 유길자씨와 영통하는 분들과 철야 기도를 하면서 하늘에 매달렸다.

 

6 무죄를 간구하며 피를 말리던 어려운 시기였다. 한국협회장 아내로서의 귀중한 10년 기간은 정신없이 춘하추동이 언제 지나간지 모르게 몸 마음 아끼지 않고 일한 기억뿐이다. 
  

7 김순화(金順華) 시어머님의 승화도 이 기간이었다. 시어머니께서는 백과사전이란 별호가 붙으실 정도로, 모르는 것이 없으신 분이었다. 그분에 대한 것을 잠깐 소개하지 않을 수 없다.  

 

8 저에게는 시어머니이지만 일반적으로 김순화 국장이라고 불렀다. 60년도에 우리나라 보사부(保社部) 부녀국(婦女局) 소장으로 계셨기 때문이다. 백과사전이란 별호도 있을 정도로 다방면에 박식하셨다.  

 

9 참부모님 성혼 준비에서부터 124가정까지 축복 결혼에 필요한 모든 것을 맡아 잘 처리하셨다. 몸을 아끼지 않고 성심성의 철저히 하시는 분이었다. 리틀엔젤스 창단을 위한 기초작업도 열과 성의를 다하였다.  

 

10 전국순회사로서 희생 봉사의 본이 된 생활을 하셨다. 70년도 3년 전도 때는 4개월 된 손자를 기르시며, 어린 아들딸 4명도 돌봐주셨다. 그런 시어머님께 공적인 일로 뛰어다니느라 따뜻한 위로 한 번 못해드린 것이 송구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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