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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언 (證言)

문명호 (文明鎬) - 절대믿음과 감사의 생활 - 1. 출생과 가족 사항

작성자대태양/김현수|작성시간25.05.22|조회수686 목록 댓글 0
증언(證言) - [44]
문명호 (文明鎬) - 절대믿음과 감사의 생활
1. 출생과 가족 사항


1 나는 1942년 9월 14일(음) 부친 문점암과 모친 전삼수의 5남 3녀 중 3남으로 일본 교토에서 출생하였다. 그 후 히로시마로 이주해 살다가 해방 후 부모님과 함께 한국으로 귀국하여 경북 성주군 초전면 대장 4동 대마마을에서 살게 되었다. 
  
2 대마마을에서는 한국에 살고 계시던 조부모님과 삼촌 2명이 우리 가족과 합류하여 열세 명의 대가족이 함께 살게 되었다. 그런데 논밭이 없었기 때문에 식구들 모두 아버지만 바라보고 있었다.


3 아버지는 일본에서 가지고 온 돈이 다 없어지자 궁여지책으로 장사를 시작하셨다. 밤새 엿을 만들어 새벽부터 십오 리 혹은 삼십 리 길을 걸어 다니며 파셨다. 점심은 고구마 한두 개로 때우셨다.  
  
4 우리 형제들은 언제나 밤에 등불을 들고 아버지 마중을 나갔다. 밤길을 혼자 돌아오실 아버지를 생각하며 먼 곳까지 가서 만나 함께 오곤 했다. 아버지는 대단히 정직하고 성실하셨다. 타인에게 도무지 싫은 소리를 할 줄 모르셨다.

5 어머니는 그런 아버지를 말없이 내조하면서 장독대에 정화수를 떠놓고 가족을 위하여 정성을 들이셨다. 절에 가서 불공을 드리기도 하셨다. 
  
6 예전에는 누구나 그러하였듯이 교육 환경이 열악해 어머니는 공부를 하지 못해 한글 읽는 것조차 힘들어하셨다. 하지만 기억력은 가히 컴퓨터 같아 집의 일은 말할 것 없고 일가친척의 생일과 제삿날까지 다 기억하셨다.

7 글자도 모르시면서 주소만 들고 아버지가 계신 일본 오사카에 혼자 찾아가셨다. 세월이 많이 흐른 뒤 1982년 독신 축복을 받으실 때는 노인학교에서 한글을 깨우쳐 책을 보면서 성가도 곧잘 부르셨다. 어머니의 총기를 타고났는지 우리 형제들은 머리가 괜찮은 편이어서 주위 사람들의 부러움을 샀다. 
  
8 하지만 장수할 운은 타고나지 못하였는지 아버지와 삼촌, 고모 그리고 누나는 젊은 나이에 요절을 하셨다. 그런 일들을 겪으면서 ‘왜 그런 일이 일어나는 것일까?’라고 생각했다. 
 
9 어릴 때 나는 친구들과 교회를 다녔다. 동네 가까운 곳에 천주교가 생겨 그곳에 다니면서 교리 공부를 열심히 하였다. 그리고 영세를 받는 단계까지 갔지만 받지 않았다. 그때 영세를 받았으면 아마 통일교회에 대하여 잘 모르고 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것도 운명이라 생각되어 하나님께 감사를 드린다. 
  
10 청소년 시절의 내 꿈은 낙도에서 어린이들을 가르치는 것이었다. 그 꿈을 젊어서는 이루지 못하였지만 나중에 하나님께서 통일교회를 통해 이루게 해주셨다. 친구들과 3km나 되는 서당에 다니면서 열심히 한문 공부를 한 것이 후일 큰 도움이 되었다.

11 어릴 때부터 달리기, 철봉, 평행봉과 씨름을 많이 하였고 커서는 복싱도 했다. 중학교 입학시험 때는 철봉에 매달려 턱걸이하는 것이 있었는데 내가 제일 많이 했다. 그때 운동을 열심히 한 덕분에 지금까지 건강하게 뜻을 위해 살 수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証言 - [44] 
文明鎬 - 絶対信仰と感謝の生活
1.出生と家族

父ムン·ジョムアムと母チョン·サムスは5男3女を授かった。私は1942年9月14日(陰)、3男として日本の京都で生まれた。その後広島に移住して暮らし、解放後両親と共に韓国に帰国し、慶尚北道星州郡草田面大獐4洞の大馬村で暮らすことになった。


大馬村では韓国に住んでいた祖父母と父の兄弟2人が私たちの家族と合流し、13人の大家族が一緒に暮らすことになった。ところが田畑がなかったので、家族全員が父だけを頼りにしていた。

父は日本から持ってきたお金が全部なくなると、窮余一策で商売を始めた。夜通し飴を作り、明け方から15里、30里の道を歩き回りながら売り、昼食はサツマイモ1~2個で済まされた。

私たち兄弟はいつも夜になると、提灯を持って父を迎えに行った。夜道を一人で帰って来られる父を思いながら、遠くまで行って一緒に帰ってきたものだ。父はとても正直で誠実だった。他人に全く嫌味を言わなかった。

母はそんな父を何も言わずに内助し、 朝一番に汲くんだ井戸水を甕台にお捧げして、家族のために精誠を尽くされた。寺に行って供養をしたりもした。

昔は誰もがそうだったように教育環境が劣悪で、母は勉強ができずハングルを読むことさえままならなかった。しかし、記憶力はコンピューターに勝るとも劣らず、家のことは言うまでもなく、親戚の誕生日や法事の日まで全部覚えていた。

字も知らないのに住所だけ持って、父がいる日本の大阪に一人で訪ねて行った。長い歳月が流れ1982年に独身祝福を授かった時は、老人学校でハングルを学び、本を見ながら聖歌もかなり上手に歌われた。母の聡明さを生まれ持ったのか、私たち兄弟は頭が良い方で周りの人達から羨ましがられた。

しかし長寿の運は生まれ持たなかったのか、父と叔父、叔母そして姉は若くして亡くなった。そんなことを体験しながら「なぜこんなことが起きるのか」と考えた。

幼い頃、私は友達と教会に通った。村の近くにカトリック教会ができ、そこに通いながら教理の勉強を一生懸命した。

そして洗礼を受ける段階まで行ったが、受けなかった。その時、洗礼を受けていたら、おそらく統一教会についてよく知らずに暮らしていたのではないかと思う。それも運命だと思って神様に感謝を捧げる。

青少年時代の私の夢は、離れ島で子供たちを教えることだった。その夢を若い頃には叶えられなかったが、後に神様が統一教会を通じて叶えてくださった。友達と3kmも離れた書堂に通いながら一生懸命漢文を勉強したが、後日とても役立った。

幼い頃からよく走り、鉄棒、平行棒や相撲もよくし、大人になってからはボクシングもした。中学入学試験の時は鉄棒にぶら下がって懸垂するのがあったが、私が最高値だった。その時、運動を一生懸命していたおかげで、今まで元気にみ旨のために生きることができるのではないかと思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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