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원리강론 (原理講論)

원리강론 - 제2장 타락론 - 제4절 인간 타락의 결과

작성자대태양/김현수|작성시간24.11.29|조회수16 목록 댓글 0

제4절 인간 타락의 결과

아담과 해와가 영육(靈肉) 아울러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인간과 천사를 비롯한 피조세계에 어떠한 결과를 초래하게 되었는가? 우리는 여기에서 이 중요한 문제를 다루어 보기로 하자.

Ⅰ. 사탄과 타락인간

타락한 천사장 누시엘을 사탄이라고 한다는 것은 이미 위에서 논술한 바이다. 누시엘과 인간 조상이 혈연관계(血緣關係)를 맺어 일체를 이루었기 때문에, 사탄을 중심한 사위기대(四位基臺)가 이루어지면서 인간은 사탄의 자녀가 되고 말았다. 그러기에 요한복음 8장 44절을 보면 예수님은 유대인들을 마귀(魔鬼)의 자식이라고 하셨고, 또 마태복음 12장 34절과 동 23장 33절에서는 그들을 뱀 또는 독사(사탄)의 자식이라고 하셨다(마 3:7). 한편 또 로마서 8장 23절에는 처음 익은 열매 된 우리들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養子) 되기를 고대한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것은 인간 조상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혈통을 이어받지 못하고 사탄의 혈통을 이어받았기 때문이다.

아담과 해와가 완성되어서 하나님을 중심하고 사위기대(四位基臺)를 이루었더라면 그때 하나님 주권의 세계가 이루어졌을 것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미완성기에 타락되어 사탄을 중심하고 사위기대를 이루었기 때문에 이 세계는 사탄 주권의 세계가 되고 만 것이다. 그러므로 요한복음 12장 31절에는 사탄을 세상의 임금이라고 하였고, 또 고린도후서 4장 4절에서는 사탄을 세상의 신이라고 하였다. 이렇게 되어 사탄은 피조세계의 주관주(主管主)로 창조된 인간을 주관하게 되었으므로 그는 피조세계까지도 주관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로마서 8장 19절에는 ‘피조물의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의 나타나는 것이니’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것은 만물이 완성된 인간의 주관을 받지 못하고 사탄의 주관을 받고 있기 때문에, 그 사탄을 물리치고 자기들을 주관해 줄 수 있는 창조본연의 인간들이 나타나기를 바란다는 뜻이다.

Ⅱ. 인간세계에 대한 사탄의 활동

사탄은 욥을 하나님 앞에 참소하였듯이(욥 1:9), 항상 모든 인간을 하나님 앞에 참소하여 지옥으로 끌어가려 하고 있다. 그러나 사탄도 그의 대상을 취하여서 상대기준(相對基準)을 조성함으로써 수수작용(授受作用)을 하지 않고는 사탄적인 활동을 할 수 없는 것이다. 사탄의 대상은 영계에 있는 악영인(惡靈人)들이다. 그리고 이 악영인들의 대상은 지상에 있는 악인(惡人)들의 영인체(靈人體)이며, 지상에 있는 악인들의 영인체의 활동 대상은 바로 그들의 육신이다. 따라서 사탄의 세력은 악영인들을 통하여서 지상인간의 육신의 활동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그러므로 누가복음 22장 3절에는 사탄이 가룟 유다에게 들어갔다고 하였고, 또 마태복음 16장 23절을 보면 예수님은 베드로를 가리켜 사탄이라고 하셨다. 한편 이러한 악영인체를 마귀의 사자(使者)라고 한 기록도 있는 것이다(마 25:41).

지상천국(地上天國)을 복귀한다는 것은(전편 제3장 제2절) 전인류가 사탄과의 상대기준(相對基準)을 완전히 끊고 하늘과의 상대기준을 복귀하여 수수작용(授受作用)을 함으로써, 사탄이 전혀 활동할 수 없게 된 세계를 이루는 것을 말한다. 말세(末世)에 이르러서 사탄을 무저갱(無底坑)에 가둔다고 하신 말씀은, 바로 사탄의 상대자가 없어지므로 사탄이 활동할 수 없게 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인간이 사탄과의 상대기준을 끊고, 더욱 나아가서 고린도전서 6장 3절의 말씀대로 그들을 심판하기 위하여서는, 사탄이 사탄 된 죄상과 그 정체를 알아 가지고 하나님 앞에 사탄을 참소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하나님은 천사와 인간을 창조하심에 있어서 그들에게 자유를 부여하셨기 때문에, 이를 복귀하시는 데 있어서도 강제로 하실 수는 없다. 그러므로 인간은 어디까지나 자기의 자유의지(自由意志)에 의한 책임분담으로써 말씀을 찾아 세워 가지고, 사탄을 자연굴복시켜야만 창조본연의 인간으로 복귀할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이러한 원칙에 의하여 섭리하시기 때문에 복귀섭리역사(復歸攝理歷史)는 이처럼 오랜 세월에 걸쳐 연장을 거듭해 내려오게 된 것이다.

Ⅲ. 목적성으로 본 선과 악

선과 악에 대한 정의는 이미 창조원리(創造原理) 중 ‘창조본연의 가치’에서 논한 바 있다. 이제 우리는 그 목적성으로 본 선악(善惡)의 내용을 알아보기로 하자.

아담과 해와가 그들에게 부여된 사랑으로써 하나님을 중심하고 사위기대(四位基臺)를 조성하였더라면, 그들은 선의 세계를 이루었을 것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이와 목적을 반대로 한 사랑으로써 사탄을 중심하고 사위기대를 조성하였기 때문에 악의 세계를 이루고 말았다. 그러므로 선과 악은 동일한 내용의 것이 상반된 목적을 지향하여 나타난 결과를 두고 하는 말임을 알 수 있다.

우리가 흔히 악이라고 생각해 온 인간의 성품도, 그것이 하나님의 뜻을 목적삼고 나타나면 선이 되는 예를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 이제 그에 대한 예를 들어보자.

우리가 흔히 죄(罪)라고 생각하는 욕망은 원래 하나님으로부터 부여된 창조본성(創造本性)이었던 것이다. 왜냐하면 창조목적(創造目的)은 기쁨에 있고 기쁨은 욕망을 채울 때 느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만일 인간에게 욕망이 없다면 동시에 기쁨도 있을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욕망이 없다면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자 하는 욕망도, 살고자 하는 욕망도, 선을 행하고자 하는 욕망도, 발전하고자 하는 욕망도 없을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창조목적도 복귀섭리도 이루어질 수 없으며, 인간사회의 유지와 그 발전도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이와 같이 본래의 욕망은 창조본성이기 때문에, 이 성품이 하나님의 뜻을 목적삼고 그 결과를 맺으면 선(善)을 이루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와 반대로 사탄의 뜻을 목적삼고 그 결과를 맺으면 악(惡)을 자아내게 되는 것이다. 이 악한 세상도 예수님을 중심하고 그 목적의 방향만을 돌려 놓으면 선한 것으로 복귀되어 지상천국(地上天國)이 이루어진다는 것은(전편 제3장 제2절 Ⅱ) 이러한 원리로 보아 자명해지는 것이다. 따라서 복귀섭리는 사탄의 목적을 지향하고 있는 이 타락세계(墮落世界)를 하나님의 창조목적을 이룬 지상천국에로 그 방향성을 바꾸어 나아가는 섭리라고도 볼 수 있는 것이다.

복귀섭리(復歸攝理)의 성격이 그렇기 때문에, 이 섭리의 과정에 있어서 다루어지는 선의 기준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고 어디까지나 상대적인 것이다. 왜냐하면 어떤 특정한 시대를 놓고 볼 때, 그 시대의 주권자의 이념이 지향하는 목적에 순응하면 선이 되고 그 목적에 반대하면 악이 되지만, 한번 그 시대와 주권자가 바뀌어 그 이념이 달라지게 되면 동시에 그의 목적도 달라지고 따라서 선과 악의 기준도 달라지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종교(宗敎)나 사상(思想)에 있어서도 그 테두리 안에 있는 사람들에 있어서는 그 교리와 그 사상이 지향하는 목적에 순응하는 것이 선이고, 그에 반대하는 것이 악이 된다. 그러나 일단 그 교리나 사상이 달라지거나, 혹은 다른 종교로 개종(改宗)하거나 또는 다른 사상으로 전향하게 되면 그에 따라서 목적도 달라지기 때문에 선악의 기준도 자연히 달라지게 되는 것이다. 인간사회에 항시 투쟁과 혁명이 일어나게 되는 주요한 원인은 이와 같이 인간이 지향하는 목적이 달라짐에 따라서 선악의 기준이 항시 달라지는 데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복귀과정에 있어서의 선(善)은 이와 같이 상대적인 것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지상에서 사탄의 주권을 물리치고, 시대와 장소를 초월하여 영존(永存)하시는 절대자 하나님이 주권자가 되시어 그로부터 오는 이념이 세워질 때는, 그 이념이 절대적이기 때문에 그것이 지향하는 목적도 절대적인 것이어서 선의 기준도 절대적인 것으로 세워지는 것이니, 이것이 바로 재림주(再臨主)님에 의하여 세워질 천주적(天宙的)인 이념인 것이다.

사실상 인류역사는 수많은 투쟁과 혁명을 거듭하면서 본심(本心)이 지향하는 이 절대선(絶對善)을 찾아 나왔던 것이다. 따라서 타락된 인간사회에 있어서의 투쟁과 혁명은 이 절대적인 목적을 추구하여 절대적인 선의 세계를 이룩할 때까지 계속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Ⅳ. 선신의 역사와 악신의 역사

선신(善神)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과 하나님편에 있는 선영인(善靈人)들과 천사(天使)들을 총칭하는 말이고, 악신(惡神)이라고 하는 것은 사탄과 사탄편에 있는 악영인(惡靈人)들을 총칭하는 말이다. 선과 악이 그러하듯이 선신의 역사(役事)와 악신의 역사도 동일한 모양으로 출발하여 그 목적을 달리하고 있는 것이다.

선신의 역사는 시간이 흐를수록 그 개체의 평화감과 정의감을 증진시키며 그 육신의 건강도 좋아지게 한다. 그러나 악신의 역사는 시간이 흐를수록 불안과 공포와 이기심을 증진케 하며 건강도 해롭게 한다. 그러므로 영적인 역사는 원리를 모르는 사람으로서는 그것을 분별하기가 대단히 어렵지만,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그 결과를 보아 그 내용을 알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타락인간(墮落人間)은 하나님도 사탄도 다 대할 수 있는 중간위치에 있기 때문에 선신의 역사인 경우에도 악신의 역사를 겸행하는 때가 있다. 또 악신의 역사도 어느 기간을 지나면 선신의 역사를 겸행하게 되는 경우가 많아서, 원리를 모르는 입장에서는 이것을 분별하기가 곤란하다. 오늘날에 있어 많은 교역자(敎役者)들이 이에 대한 무지(無知)에서 선신의 역사까지도 악신의 것으로 몰아 하늘 뜻에 반하는 입장에 서게 되는 것은 참으로 한심한 일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영적인 현상이 점점 많아지는 오늘날에 있어서, 선신과 악신의 역사를 잘 분간하여 분립할 수 없는 한 영통인(靈通人)들을 지도할 수는 없는 것이다.

Ⅴ. 죄

죄(罪)라는 것은 사탄과 상대기준(相對基準)을 조성하여 수수작용(授受作用)을 할 수 있는 조건을 성립시킴으로써 천법(天法)을 위반하게 되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죄를 분류해 보면, 첫째로 원죄(原罪)가 있는데 이것은 인간 조상이 저지른 영적 타락과 육적 타락에 의한 혈통적인 죄를 말하는 것으로서, 이 원죄는 모든 죄의 뿌리가 되고 있다.

둘째로는 유전적(遺傳的) 죄가 있다. 이것은 부모가 지은 죄가 수대에 이른다고 한 십계명(十誡命)의 말씀과 같이 혈통적인 인연으로 그 후손들이 물려받은 선조의 죄를 말한다.

셋째로는 연대적(連帶的) 죄가 있다. 자신이 범죄하지도 않았고 또 유전적인 죄도 아니지만 연대적으로 책임을 져야 하는 죄다. 제사장(祭司長)과 교법사(敎法師)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내준 죄로 말미암아 유대인 전체가 그 책임을 지고 하나님의 벌을 받았고, 전인류도 공동적인 책임을 지고 예수님이 재림(再臨)하실 때까지 고난의 길을 걷게 된 것이다.

넷째로 자범죄(自犯罪)가 있으니 이것은 자신(自身)이 직접 범한 죄다.

여기에서 우리가 전기(前記)한 바와 같이 원죄를 죄의 뿌리라고 한다면, 유전죄는 죄의 줄기, 연대적 죄는 죄의 가지, 자범죄는 죄의 잎에 해당하는 것이다. 모든 죄는 그의 뿌리 되는 원죄로 말미암아 생긴다. 그러므로 원죄를 청산하지 않고는 다른 죄를 근본적으로 청산할 수 없다. 그러나 숨어 있는 이 죄의 뿌리는 그 누구도 알 수 없는 것이어서, 인간의 뿌리로서 참부모로 오시는 예수님만이 이것을 알고 청산하실 수 있는 것이다.

Ⅵ. 타락성본성

천사장(天使長)이 하나님을 배반하고 해와와 혈연관계(血緣關係)를 맺을 때에 우발적으로 일어났던 모든 성품을 해와가 계승하였고, 이렇게 되어서 천사장의 입장에 서게 된 해와와 다시 혈연관계를 맺은 아담도 그 성품을 계승하게 되었었다. 그리하여 그 성품이 타락인간의 모든 타락성을 유발하는 근본 된 성품이 되었다. 이것을 말하여 타락성본성(墮落性本性)이라고 한다.

이와 같이 타락성본성이 생기게 된 근본동기는 천사장이 아담에 대하여 질투심(嫉妬心)을 갖게 된 데 있었다. 그러면 선(善)의 목적을 위하여 창조된 천사장에게서 어떻게 되어 사랑에 대한 질투심이 일어날 수 있었을 것인가?

원래 천사장에게도 그의 창조본성(創造本性)으로 욕망과 지능이 부여되어 있었다. 이와 같이 천사장은 지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인간에게 가는 하나님의 사랑이 자기에게 오는 것보다 크다는 것을 비교하여 식별할 수 있었던 것이며, 또 그에게는 욕망이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더 큰 사랑을 받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을 것은 당연하다. 그리고 이러한 마음은 자동적으로 질투심을 일으킬 수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질투심은 창조본성으로부터 유발되는 불가피한 부산물로서, 마치 빛으로 말미암아 생기는 물체의 그림자와 같은 것이라고도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이 완성되면 이러한 부수적인 욕망으로 인하여서는 결코 타락(墮落)될 수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러한 욕망을 충당할 때에 느껴지는 일시적인 만족감보다도 그 욕망을 충당함으로써 일어나는 자기 파멸에 대한 고통이 더 클 것을 실감하게 됨으로써, 그러한 범행은 감행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창조목적(創造目的)을 완성한 세계는 마치 사람 하나의 모양과 같이 서로 유기적(有機的)인 관계를 가지는 조직사회이기 때문에, 개체의 파멸은 곧 전체적인 파멸을 초래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전체는 개체의 파멸을 방임하지 않는다. 이와 같이 창조목적을 완성한 세계에 있어서의 창조본성으로부터 일어나는 부수적인 욕망은, 인간의 발전을 가져오게 하는 요소는 될지언정 결코 타락의 요인이 될 수는 없는 것이다.

타락성본성(墮落性本性)을 대별하면 넷으로 가를 수 있는데, 첫째는 하나님과 같은 입장을 취하지 못하는 것이다. 천사장(天使長)이 타락하게 된 동기는,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아담을 하나님과 같은 입장에서 사랑하지 못하고 그를 도리어 시기하여 해와의 사랑을 유린한 데 있었다. 군왕(君王)이 사랑하는 신하를 그의 동료가 그 군왕과 같은 입장에서 같이 사랑하지 못하고 시기하는 성품은 바로 이런 타락성본성에서 나오는 것이다.

둘째는 자기의 위치를 떠나는 것이다. 누시엘은 하나님의 사랑을 더 받기 위하여, 천사세계(天使世界)에서 가졌던 것과 동일한 사랑의 위치를 인간세계에 있어서도 가지려 하였던 불의(不義)한 욕망으로 인하여 자기의 위치를 떠나 타락하게 되었다. 불의한 감정으로 자기의 분수와 위치를 떠나 행동하는 것은 모두 이러한 타락성본성의 발로인 것이다.

셋째는 주관성(主管性)을 전도(顚倒)하는 것이다. 인간의 주관을 받아야 할 천사가 거꾸로 해와를 주관하였고, 또 아담의 주관을 받아야 할 해와가 거꾸로 아담을 주관하게 된 데서 타락의 결과가 생겼던 것이다. 이와 같이 자기의 위치를 떠나서 주관성을 전도하는 데서부터 인간사회의 질서는 문란(紊亂)해지게 되는데, 이것은 모두 이러한 타락성본성에서 일어나는 것이다.

넷째는 범죄행위(犯罪行爲)를 번식하는 것이다. 만일 해와가 타락한 후에 자기의 범죄를 아담에게 번식시키지 않았더라면 아담은 타락되지 않았을 것이므로, 해와만의 복귀는 용이(容易)했을 것이었다. 그러나 해와는 이와 반대로 자기의 죄를 아담에게도 번식시켜 그를 타락케 하였다. 악인(惡人)들이 동료를 번식시키려는 성품은 이와 같은 타락성본성에서부터 일어나는 것이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