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참부모님 생애노정 - 5권 제2차 7년 노정 제4절 1971년 통일기반 확보 7. 참부모님 제3차 세계순회 1971.12.5. ~ 1972.5.8.,15개 국, 최원복, 김영휘수행 제3차 세계순회의 목적 777가정을 중심삼고 세계의 가정을, 세계의 종족권을 이루는 어예요. 민족적 각 종교, 각 씨족을 초월한 입장에서 이 기반을 닦은 후에 세계 상대권을 중심삼고 이 세계 종족권을 연결하기 위한 것이 쓰리 세븐(three seven)777가정입니다. 이것으로서 결혼하는 건 다 끝난 거예요. 선생님이 한 번, 3가정이 한 번, 36가정이 한 번, 72가정이 한 번, 124가정이 한 번, 430가정이 한 번, 777가정이 한 번 해서 7수가 다 끝난 거예요. 이래서 세계 종족 편성기반을 완성했다는 겁니다. 이럼으로 말미암아 세계의 어떠한 민족이든지 통일교회에 들어올 수 있는 길이 열렸다구요. 여기서부터 세계 섭리를 하는 겁니다. 그때가 70년대지요? 70년대입니다. 그때를 중심삼고 이 기반을 닦았기 때문에 선생님의 세계적 진출이 가증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세계무대로 배 타고 나간 거예요. 그것을 하려면 여러분들은 국가적 재탕감을 해야 됩니다. 한국 민족이 바대하고... . 전부 다 재탕감을 해야 됩니다. 우리 가정들이 재탕감해야 됩니다. 가정복귀 기반을 닦아야 되기 때문에 3년 동안 전부 내쫓는 거예요. 돈만 갖추면 사람은 얼마든지 있는 것입니다. 돈을 어떻게 벌 것이냐? 일본 식구들을 통해 가지고 경제적인 문제를 해결하려고 합니다. 이번이 제3차 순회노정이니만큼, 여러분은 모르겠지만 선생님이 세계적인 계획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한국 기독교를 구하려고 했지만 앞으로는 한국 기독교보다도 세계 기독교와 미국을 구해 주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앞으로는 새로운 각도로 방향을 전개시켜 가지고 국제적인 활동을 준비하려고 그래요.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자원이 필요합니다. 자원이 필요해요. 현재 각 강사들이나 젊은 사람들은 준비해 놓으라구요. 멀지 않은 장래에 한국을 대표한 세계적인 부흥단이 출현할 때가 올 것입니다. 전세계를 대표한 세계적인 부흥단이 세계를 순방함과 더불어 국가를 대표한 부흥단이 세계를 순방할 수 있는 조직을 불원한 장래에 만들 것입니다. 그리하여 몇 개 국의 부흥단이, 한팀이 되어 가지고도 할 것이고, 혹은 몇 개 국이 일시에 세계를 공격하는 작전을 하려고도 합니다. 그래서 이번에 순회를 가게 되면 못해도 40개 국 이상에 선교부를 설치하고 돌아와야 할 사명을 느끼고 있습니다. 그리고 몇 년 이내에 120개 이상의 나라에 선교부를 어떻게 만드느냐 하는 문제가, 금후에 통일가가 해야 할 사명인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순회기간 중 한국식구들의 임무 1971.11.5. ~ 11.7., 출발전 전국순회대집회 이번 선생님이 없는 기간에 여러분이 첫째 뭘해야 하느냐 하면 여 러분이 하나 되어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이 나라 이 민족을 대하여 기도하던 것과 마찬가지로, 선생님이 없기 때문에 여러분이 대신 지키는 의미에서 정성을 들여 앞으로 남북이 통일될 수 있는 그날을 위하여 내적으로 외적으로 결속하고, 하늘과 더불어 다짐하고 기도 시간을 갖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둘째는 여러분이 남한 각지 어떤 곳에서도 통일교회를 모르는 사람이 없도록 선전을 해야 되겠습니다. 밤이나 낮이나 쉬지 않고 이 짧은 기간 내에 선전을 해야 되겠습니다. 원래는 각 종단들과 힘을 합하여 그 일을 해야 할 텐데도 불구하고 그렇게 하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들이 배가의 삽자가를 지고 놀음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이 민족이 갈 방향을 제시해야 할 사명이 있기 때문에, 우리만이라도 이 놀음을 하지 않으면 갈 길 없기 때문에, 이러한 비운의 운명을 가리기 위해서는 온갖 지성을 다하여 여러분의 일신에 고달품이 있더라도 그것을 넘어서서 책임을 다해 주기를 부탁하는 바입니다. 그 다음에는 지금 일선에 나가 있는 전도대원들과 교회장이 하나 안 되어 있다구요. 하나 되지 않는 사이에 뭐가 있거든 여러분이 찾아가서 전부 다 풀라는 것입니다. 기도하고 나가서 활동하고 부딪치면서, 될 수 있으면 사이가 안 좋은 사람끼리, 옛날에는 원수였고 혹은 반대하던 사람들을 데리고 나가서 같이 활동하면서 하나가 되라는 것입니다. 일을 놓고 하나가 되고, 나라를 놓고 하나가 되라는 것입니다. 미국 입성까지의 난관 타개 1971.12.5. ~ 12.18. 우리가 맨 처음 한국에서 일본으로 출발할 때에, 비상사태를 선언하기 바로 전날 떠났다구요. 가만 보니까 사태가 절박하다는 거예요. 그래서 출발하려고 하는데 주일날이라 수속을 못한 거예요. 외무부 여권과 과장의 결재를 받아 놓아야 되는 것을 못 받아 놓았다구요. 주일날이라도 나가야 할 텐데 인증서가 없기 때문에 못 나가게 됐다구요. 큰일 났거든요. 그래 가지고 그 시간에 전부 다 기다리고 있는 거예요. 그런데 30분에 전에 여권과 과장을 만난 거라구요. 그것이 하늘의 역사라구요. 그 여권과 과장은 주일이니만큼 자기 과원들을 데리고 청평 호수에 놀러 가려고 약속해 놓았어요. 그래 과장이 아침에 일어나 가려고 하니까 몸이 찌뿌드드 하고 아, 왜 그런지 절대 가고 싶지 않더라는 거예요. 그래 가지고 자기가 '내가 이렇게 몸이 아파서 못 간다' 고 전화를 해 놓고 할수없이 일어나 뒤적뒤적 하는 판이었다나요. 그때 우리 패거리가 찾아간 거예요. 그렇게 되어 일본을 들어가는데 있어서 말이예요, 선생님의 여권이 무엇이었느냐? 아시아의 경제인 대표 회의에 참석하는 것이었어요. 그런데 그 회의는 벌써 40일 전에 끝났다구요. 그 여권을 가지고 일본에 들어가는 거예요. 들어가는데 이것을 파고들면 큰 문제가 벌어진다구요. 하나님이 보호하사 믿고, 모험을 하는 거라구요. 그때 출입구 관리 요원들이, 외무부 요원들이 전부 나와서 조사하는 거라구요. 조사하는 데에 쓱 가서 가만히 보니까 여러 사람이 있는데 그 뚱뚱한 녀석한테 가고 싶더라구요. 그래서 가 보니 그 녀석이 바로 어떤 녀석이냐 하면, 한국말을 참 잘하는 녀석이었어요. 나 한국 사람 미스터 문이라고 소개하니, 이름은 안 봐요. 내가 한국말을 하니 한국에서 오셨느냐고 하는 거예요. '아,. 당신이 어떻게 한국말을 할 줄 아느냐'고 물으니까 자기가 뭐 경상남도에 있었다는 거예요. 야 이거 찬스다는 거예요. '어쩌면 한국 사람보다도 이야기를 잘하느냐? 당신이 뭐가 일본사람이냐 한국 사람이지' 하면서 농담을 한 거라구요. 그랬더니 '그 여권을 주소' 하며 그냥 꾹 찍어 주는 거예요. 그리고 미국 여권(비자)을 못 냈기 때문에 캐나다에 가서 내려고 그랬어요. 그런데 일주일 전에 안 된다는 거예요. 한국 목사가 캐나다 대사관을 통해 비자를 내 가지고 미국으로 도망가서 지금 찾는 중이기 때문에 한국 사람은 절대 캐나다에 안 들여보낸다는 거예요. 떡 이렇게 되었다구요. 그래 얼마나 꼬치꼬치 캐묻는지 거기에서 시간을 한 시간 가량 보낸 거예요. 나중에는 현금을 얼마나 가지고 있느냐고 하는 거예요. 그리고 미국에 간다면 안 된다는 거예요. 그래서 저 남미 엘살바도루에 간다고 핑계를 대 가지고, 미리 여권을 낸 것을 들이댄 거라구요. 비자를 그렇게 냈기 때문에, 그리로 갈 것이 틀림없으니 통과비자를 내 준 거라구요. 그래서 14일 간의 통과비자를 갖고 캐나다에 들어가서 미국으로 갈 공작을 할 작전을 했다구요. 그런데 미국 대사관에 가서 무슨 문제가 있었느냐면 말이예요. 미국에 들어가는 비자를 내려고 신청을 해 놓으니 사흘 후에 오라는 거예요, 그래서 사흘 후에 쓱 가니까 그 대사가 안 된다는 통첩이 왔다는 거예요. 둘이대고 '왜 안 보내 주느냐?' 고 하니까 할수없이 '미스터 문은 1967년도에 공산당 활동을 한 내용이 있다고 해서 안 보내 준다는 보고서가 왔소' 하며 보여 준 거예요. 옳지, 됐다! 내가 언제 공산당 활동을 했어? 물고 늘어진 거예요. 그래 가지고, 우리 단체가 넷이 있는데 네 단체가 전부 다 미국 상원의원들을 통해 가지고 미국 국무성에 진정서를 낸 거예요. '미스터 문이 1967년도에 언제 공산당 활동 했느냐' 고 들이 항의하는 거라구요. 대사관에 대해서도 항의문을 보내 가지고 큰 문제를 일으켜 놨다구요. 이렇게 되니 동부에서, 서부에서, 워싱턴에서 전부 다 캐나다 대사관에 문의가 오는 거예요. 그러니 대사관이 국방성에 문의를 한 거 예요. 미스터 문은 그런 무엇이 없다는 반대 진정서가 캐나다에 있는 대사관에까지 보내져 왔다구요. 이렇게 되니까, 한국 대사관에 조회해 가지고 본국에 있는 카드를 조사해 보니까 결국에는 미스터 문이 그런 패가 아니라 승공 지도자라고 하는 게 판명이 된 거예요. 입을 딱 꿰매버렸다구요. 그래 가지고 12월 18일에 워싱턴에 도착한 거라구요. 선생님은 한국에서 싸워 얻은 승리적인 기반을 일본, 캐나다, 그리고 미국에 연결시켜 주려고 합니다. 선생님은 캐나다를 거쳐서 미국에 오게 되었는데, 캐나다가 미국에 대해 해와의 자리에 있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 있었습니다. 선생님이 미국에다가 그 승리적 기반을 연결시키려고 했기 때문에, 사탄은 그것을 못하게 하려고 애를 썼던 것입니다. 여기에 오는데 많은 어려움이 있었던 이유가 거기에 있습니다. 미국 마음에는 독일로 갈 것입니다. 그것도 문제라구요. 영국을 거쳐서 가야 합니다. 그것이 성공되면 그러한 조건들은 없어지게 될 것입니다. |
| 真の御父母様の生涯路程 5 第二次七年路程 第四節 一九七一年 統一基盤確保 七 真の御父母様の第三次世界巡回(一) (一九七一・一二・五~一九七二・五・八、十五カ国へ崔元福、金榮輝随行) 真の御父母様は、崔元福先生と金榮輝協会長が随行する中、一九七一年十二月五日から一九七二年五月八日までの百五十六日間、第三次世界巡回をされながら食□たちに激励のみ言を語ってくださった。巡回は日本、カナダ、米国、英国、ドイツ、オランダ、フランス、オーストリア、イタリア、ギリシャ、イスラエル、イラン、インド、タイ、自由中国(台湾)等、合計十五カ国であった。 巡回されながら、各国での要員修練会を通じて巡回伝道機動隊を編成、統一十字軍として活動するようにされたことは画期的なことであった。また「イエス様の十字架の受難は神様のみ旨であったか、人間の失敗であったか」という宗数的主題で十万ドル小説大懸賞募集を「ニューヨーク・タイムズ」「ワシントン・ポスト」「デーリー・ニュース」「ロンドン・タイムズ」などの新聞に全面広告を出し、言論の大きな反響を呼び起こしもした。 第三次世界巡回の目的 七百七十七家庭を中心として世界の家庭を、世界の氏族圈を成すのです。民族的各宗教、各氏族を超越した立場から、この基盤を築いたのちに世界相対権を中心としてこの世界氏族圈を連結するためのものがスリーセブン、七百七十七家庭です〇これをもって七数を中心として結婚するものはみな終わったのです。先生が一度、三家庭が一度、三十六家庭が一度、七十二家庭が一度、百二十四家庭が一度、四百三十家庭が一度、七百七十七家庭が一度、そして七数がすべて終わったのです。 このようにして世界氏族編成基盤を完成したというのです。これにより、世界のいかなる民族でも統一教会に入ってくることができる道が開けたのです。ここから世界の摂理をするのです。その時が七〇年代でしょう? その時を中心としてこの基盤を築いたために先生の世界的進出が可能であったのです。それで、世界舞台の航海に乗り出したのです。それをしようとすれば、皆さんは国家的再蕩減をしなければなりません。韓国民族が反対したすべてを再蕩減しなければなりません。私たち祝福家庭が再蕩減しなければなりません。家庭復帰基盤を築かなければならないため、三年間、「苦労をしなさい」と言って全部追い出したのです。それで一九七一年度に世界的な行路に出発したのです。 第三次七年路程を行くのに皆さんだけをもってしてはできません。今回、三次世界巡回に行くのは何をするためでしょうか。米国に定着するためです。その次に経済復帰のためです。今や、お金が必要だというのです。お金さえ備えれば、人はいくらでもいるのです。 今回が第三次巡回路程であるだけに、皆さんは知りませんが、先生は世界的な計画をしているのです。これまでは韓国のキリスト教を救おうとしましたが、今後は韓国のキリスト教よりも世界のキリスト教と米国を救ってあげなければならないのです。それゆえ今後は、新しい角度に方向を展開させ、国際的な活動を準備しようと思っています。そうするためには、相当な資金が必要です。 現在、各講師たちや若い人たちは準備しておきなさい。遠くない将来、韓国を代表した世界的な復興団が出現する時が来るはずです。全世界を代表した復興団が世界を歴訪するとともに、国家を代表した復興団が世界を歴訪できる組織を遠くない将来につくるつもりです。そうして、数カ国の復興団が、一チームになってするときもあり、あるいは数カ国が一時に世界を攻撃する作戦をしようとも思っています。 それで今回巡回に行ったら、少なくとも四十カ国以上に宣教部を設置して帰ってこなければならない使命を感じています。そして数年以内で、百二十以上の国に宣教部をどうやってつくるかという問題が、今後、統一家がしなければならない使命であることを皆さんは知らなければなりません。 巡回期間中の韓国食口の任務(一九七一・一・五~二・七、出発前の全国巡回大集会) 真のお父様は、第三次世界巡回を控えて一九七一年十一月五日大邱、六日光州、七日ソウルなどでの巡回大集会を通じ、韓国食□の健闘と活動方向、および依頼事項を平均四、五時間にわたってくださった。 今回、先生がいない期間に皆さんが第一に何をしなければならないかというと、一つになって祈祷をするということです。先生がこの国、この民族に対して祈祷したのと同じように、先生がいないため、皆さんが代わりに守る意味で精誠を込め、今後南北が統一されるその日のために内的に外的に約束し、天と誓う祈祷時間をもつことを願うのです。 第二に皆さんは、韓国各地どのような所でも統一教会を知らない人がいないよう、宣伝をしなければなりません。夜も昼も休むことなく、この短い期間内で宣伝をしなければなりません。本来は各宗教団体と力を合わせてそのことをしなければならないはずなのですが、そのようにできないため、私たちが倍の十字架を背負ってこの業をしなければなりません。このようにして、この民族が行くべき方向を提示しなければならない使命があるためです。 私たちだけでもこの業をしなければ行く道がないため、このような悲運の運命をかき分けるためにあらゆる知性を尽くして、皆さんの一身に疲れてだるいことがあったとしても、それを越えて責任を全うしてくれることを願います。 その次には、今一線に出ている伝道隊員と教会長が一つになっていません。一つにならない仲に何かがあるのです、それを皆さんが訪ねていってみな解きなさいというのです。祈祷して出ていき活動してぶつかりながら、できれば仲が良くない者同士、昔は怨讐であった、あるいは反対していた人を連れて出掛けていき、共に活動しながら一つになりなさいというのです。仕事を置いて一つになり、国を置いて一つになりなさいというのです。 米国入国までの難関打開(一九七一・一二・五~一二・一八) 私たちが一番最初韓国から日本に出発するとき、政府が非常事態宣言をする正にその前日に発ったのです。よくよく見ると事態が切迫しているようなのです。それで、出発しようとするのですが、聖日なので手続ができないのです。外務部旅券課課長の決裁を受けておかなければならないものを受けておくことができなかったのです。 聖日でも出発しなければならないのに、認証書がないために出発できなくなったのです。大変なことになったのです。そうしてその時間にみな待っているのです。ところが三十分前に旅券課課長と会ったのです。それは天の役事なのです。 その旅券課課長は聖日なので自分の課の職員たちを連れて清平の湖に遊びにいく約束をしてあったのです。それで、課長が朝起きて行こうとすると体がだるくて、「ああ、なぜだか絶対に行きたくない」と思ったというのです。そうして自分で「どうも体の具合が悪いので行けない」と電話をしてから、仕方なく起きてごそごそやっていたところだったのです。そこに、うちの連中が訪ねていったのです。 また、米国旅券(ビザ)を出してもらえなかったので、カナダに行って出してもらおうとしたのです。ところが一週間前では駄目だというのです。「韓国の牧師がカナダ大使館を通してビザをもらい米国に逃げていき、今探しているところなので韓国人は絶対カナダに入れない」と言うのです。そのようになったのです。 そうして、根掘り葉掘りどんなにしつこく尋ねることか、そこで一時間ほど過ごしたのです。しまいには、「現金をどれくらいもっているのか」と言うのです。それで、十四日間の通過ビザをもってカナダに入り、米国に行く工作をする策定をしたのです。 ところで、米国大使館に行ってどんな問題があったのかというと、米国に入るビザを出してもらおうと申請をしたら、三日後に来てくださいというのです。それで三日後に行くと、その大使が「駄目だという通知が来た」と言うのです。 それで、食ってかかり「なぜ行かしてくれないのか」と言うと、仕方なく「ミスター文は一九六七年度に共産党活動をした内容があるので行かせることができないという報告書が来ました」と言って、見せてくれたのです。よし、やった! 「私がいつ共産党活動をしたか」と食い下がったのです。 そうして、うちの団体が四つあるのですが、四つの団体がみな米国の上院議員を通して米国国務省に陳情書を出したのです。「ミスター文が一九六七年度にいつ共産党活動したか」とめちゃくちゃに抗議するのです。 大使館に対しても抗議文を送り、大きな問題を起こしておいたのです。そうしたら、東部から、西部から、ワシントンD・Cから全部カナダ大使館に問い合わせが来るのです。それで、大使館は国防省に問い合わせをしたのです。すると、「ミスター文にはそのような事実はない」という反対の陳情書がカナダにある大使館にまで送られてきたのです。 こうなったので今度は、韓国大使館に照会し、本国にあるカードを調査してみたら、結局はミスター文はそのような輩ではなく勝共指導者だということが判明したのです。口をぴたっと縫いあわせて何も言わせなくしてしまったのです。そうして、十二月十八日にワシントンD・Cに到着したのです。 先生は、韓国で戦って得た勝利的な基盤を日本、カナダ、そして米国に連結させてあげようと思います。 先生はカナダを経て米国に来るようになりましたが、カナダが米国に対してエバの立場にあるためにそのようにすることができました。先生が米国にその勝利的基盤を連結させようとしたので、サタンはそれができないようにしようと全力を尽くしたのです。ここに来るのに多くの困難があった理由はそこにあります。 米国の次にはドイツに行くつもりです。それも問題なのです。英国を経て行かなければなりません。それが成功すれば、そのような反対する条件はなくなるようになるでしょう。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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