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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집 『이유가 있겠지요』_김문주

작성자한내|작성시간26.06.16|조회수8 목록 댓글 0

기다리는 마음 / 김문주

 

 

입춘도

지났건만

뺨이 얼얼 맹추위다

 

어디쯤

오시는지

봄날을 넘보다가

 

동장군 헛기침 소리, 속마음을 들켰네

 

 

 

오월 / 김문주

 

 

하얀 이

드러내고

웃으며 걸어온다

 

손에 쥔

장미꽃이

그보다 먼저 온다

 

사귀자 고백하려나, 건넛산도 두근두근

 

 

 

여름을 만나다 / 김문주

 

 

비단 실

바람결에

연둣빛 나긋한 세상

 

그 속에

사르르 잠겨

꿈조차 달곰했는데

 

뜨건 숨

확확 뿜으며

다가온 그대, 난감하다

 

 

 

가을 하늘 / 김문주

 

 

하늘은

어쩌자고

저리도 새파란가

 

구름 한 점

허용 않는

결기가 놀라워라

 

조금만 잘라내어서 적고 싶구나, 내 오랜 꿈

 

 

 

겨울비 / 김문주

 

 

팔짱을

꼭 끼고 가는

한 쌍의 청춘 남녀

 

자그만

우산 아래

더운 김 몽글몽글

 

졸졸졸 눈치도 없이 따라가는 겨울비

 

 

 

기쁨과 슬픔 사이에 / 김문주

 

 

저물녘

공원 벤치

남루한 중년 사내

 

팔짱 긴

젊은 남녀

깔깔대며 지나간다

 

기쁨이 스쳐 간 자리, 그림자로 남는 슬픔

 

 

 

아침 / 김문주

 

 

자리를 툭툭 털며

산들이 일어선다

 

새하얀 학의 무리

냇물에 깃을 씻고

 

이슬로 단장한 풀잎 풀섶 마다 눈부시다

 

밤사이 조율된 세상

출발선에 다시 섰다

 

충전을 마친 햇살

일정표 빼곡하고

 

문 앞에 배달된 오늘, 천 년 같은 하루다

 

 

 

오래된 거울 / 김문주

 

 

세상에

이보다 더

냉엄할 수 있을까

 

한 번쯤

봐 줄 수도

못 본 척도 하련만

 

세월이 무진 흘러도 한결같이 꼿꼿해

 

언제나

어디서나

불쑥불쑥 나타나

 

반박도

할 수 없고

변명도 안 통하는

 

내 맘속 오래된 거울 흔한 이름, 그 양심

 

 

 

막다른 길 / 김문주

 

 

병마에

쇠잔해진

짚풀 같은 어머니 손

 

가슴을

졸여가며

꼭 잡고 걸었건만

 

끝끝내 놓쳐버리고 주저앉던 그 순간

 

 

 

이유가 있겠지요 / 김문주

 

 

세상이

펼쳐진 이유

분명코 있겠지요

 

세상에

내가 온 이유

그 또한 있겠지요

 

- 『이유가 있겠지요』(2026. 월간문학출판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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