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리는 마음 / 김문주
입춘도
지났건만
뺨이 얼얼 맹추위다
어디쯤
오시는지
봄날을 넘보다가
동장군 헛기침 소리, 속마음을 들켰네
오월 / 김문주
하얀 이
드러내고
웃으며 걸어온다
손에 쥔
장미꽃이
그보다 먼저 온다
사귀자 고백하려나, 건넛산도 두근두근
여름을 만나다 / 김문주
비단 실
바람결에
연둣빛 나긋한 세상
그 속에
사르르 잠겨
꿈조차 달곰했는데
뜨건 숨
확확 뿜으며
다가온 그대, 난감하다
가을 하늘 / 김문주
하늘은
어쩌자고
저리도 새파란가
구름 한 점
허용 않는
결기가 놀라워라
조금만 잘라내어서 적고 싶구나, 내 오랜 꿈
겨울비 / 김문주
팔짱을
꼭 끼고 가는
한 쌍의 청춘 남녀
자그만
우산 아래
더운 김 몽글몽글
졸졸졸 눈치도 없이 따라가는 겨울비
기쁨과 슬픔 사이에 / 김문주
저물녘
공원 벤치
남루한 중년 사내
팔짱 긴
젊은 남녀
깔깔대며 지나간다
기쁨이 스쳐 간 자리, 그림자로 남는 슬픔
아침 / 김문주
자리를 툭툭 털며
산들이 일어선다
새하얀 학의 무리
냇물에 깃을 씻고
이슬로 단장한 풀잎 풀섶 마다 눈부시다
밤사이 조율된 세상
출발선에 다시 섰다
충전을 마친 햇살
일정표 빼곡하고
문 앞에 배달된 오늘, 천 년 같은 하루다
오래된 거울 / 김문주
세상에
이보다 더
냉엄할 수 있을까
한 번쯤
봐 줄 수도
못 본 척도 하련만
세월이 무진 흘러도 한결같이 꼿꼿해
언제나
어디서나
불쑥불쑥 나타나
반박도
할 수 없고
변명도 안 통하는
내 맘속 오래된 거울 흔한 이름, 그 양심
막다른 길 / 김문주
병마에
쇠잔해진
짚풀 같은 어머니 손
가슴을
졸여가며
꼭 잡고 걸었건만
끝끝내 놓쳐버리고 주저앉던 그 순간
이유가 있겠지요 / 김문주
세상이
펼쳐진 이유
분명코 있겠지요
세상에
내가 온 이유
그 또한 있겠지요
- 『이유가 있겠지요』(2026. 월간문학출판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