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고
달달한
추억
여행 / 글로리아 임
2014년이 곧 저문다.
세월은 늘 화살 같다느니, 유수 같다느니 하는 식상한 표현을 여기저기서 다시 쓰는 시간이 돌아 왔다. 그러면서 사람들은 지난 시간을 아쉬워하곤 한다. 나에게도 그 쏜살같은 시간이 왔다. 그러나 올 한 해를 되돌아볼 수밖에 없음이, 마냥 서운한 것이 아닌 일이 있었다. 그것은 올해 17년 만에 싱가폴을 여행 하게 된 일이다. 그 곳은 나의 20대를 보낸 곳이요, 외국 생활을 처음 시작한 곳이요, 믿음 생활을 시작한 곳이요, 그리고 평생의 반려자를 만난 곳이다. 15살이 된 딸 아이와 함께 한 지난 2주간의 여행은 한마디로 추억 여행이었다.
대학 졸업 후, 동남아시아 배낭여행으로 시작한 싱가폴 생활이 7년이 넘었다. 싱가폴 생활은 타국에서 홀로 살아남기 위해 마신 쓴 잔이었다. 한편으로는 달콤한 잔이기도 했다. 당시의 삶의 여정을 돌아보며 ‘그때는 그랬었지’ 하는 나이가 된 것이 짠하면서도 달달하다.
이번 여행은 남편이 준, 통 큰 선물이었다. 갱년기 초기인지, 아이들 키우느라 진을 다 빼서 인지, 지친 나에게 휴가를 주고 싶다고 했다. 아마 부쩍 짜증이 많아진 나의 잔소리를 피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이유야 어찌되었건 고마운 제안이었고 나는 망설이다가 저지르기로 했다. 아줌마에게도 로맨스가 필요한 이유를, 아니 아줌마에게도 로맨스가 있었다는 기억이 때론 삶에 활력소가 됨을 이 나이가 되어보니 알 것 같다. 딸아이에게 여행 내내 말했다. 이곳에서 아빠를 처음 만났지, 이곳에서 밤새워 손을 잡고 걸었지, 이곳은 아빠와 첫 데이트를 했던 거리야, 이곳은 첫 키스를 했던 곳이야 등등을 수 없이 말해 주었다. 처음에는 호기심을 가지고 흥미롭게 잘 들어 주는 딸아이가 나중에는 ‘엄마 이제 그만해요!’ 를 외칠 때까지, 나의 추억여행은 홀로 로맨틱했다. 그리고 그때, 같이 어울렸던 친구들과 학교의 지인들을 만나 옛 이야기로 울다 웃으며 꽃 피울 때가 이번 여행의 절정인가 싶기도 했다.
싱가폴은 우리가 잘 아는 바와 같이 말레이 반도 끝자락에 붙은 도시 국가이다. 적도 근처라 열대의 나라이다. 덥고, 습하고, 스콜이 내리고 인도네시아에서 불어오는 ‘헤이즈’라는 이름의 화산먼지가 가끔 하늘을 덮고 있는 것도 그대로였다. 그런데 내가 살았던 90년대와 2014년의 차이가, 한 나라의 성장과 개발, 발전과 번영이라는 이름아래 두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 싱가폴은 거의 모든 것이 두 배가 되어 있었다. 원화 대비 환율도 두 배, 교통비와 주거비도 두 배 가까이 비싸졌고, 인구도 두 배나 늘었다. 심지어 MRT라 불리는 지하철 노선도 두 배가 되었다. 역시 세월은 세상을 바꾸는 가장 큰 힘이다. 20년 전보다도 싱가폴은 더 한 도시국가가 되어 높은 빌딩과 인공적인 관광지를 자랑 하고 있다. 마리나 배이 샌즈 호텔의 위용은 대단하다. 뉴욕의 마천루와 홍콩의 야경을 압도 하는 듯하다. 쇼핑센터들은 말할 것도 없이 싱가폴의 영원한 수입원이다. 아시아에서 가장 작지만 가장 높은 국민소득으로 싱가폴 사람들의 자부심을 높인 정부의 정책은 왠지 완벽해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곳에도 문제는 있다. 초저출산, 외국인 노동자급증, 중국인과 다른 민족 간의 차별로 인한 문제, 중국인 이민자들의 시민 결여 의식으로 인해 발생하는 사회 문제들, 그래도 중국인 이민자를 적극 허용해야 하는 민족적, 역사적 이유가 짠하게 느껴졌다. 그것은 편리함과 깨끗함의 이미지를 유지하고 국가 간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생존의 전략인 것이다.
지금, 싱가폴의 상황을 이 글에 쓰는 이유는, 열정과 도전으로 보낸 내 20대를 무척이나 사랑하기 때문이다. 캐나다에서 온 한 청년과 불꽃같은 연애를 했던 20대가 꿈인가 싶을 만큼 그립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그 곳에서 감사한 것은 이 세상에서 찾을 수 없는 안식을 주는, 믿음 생활을 시작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나라의 땅과 환경과 사람들에게 관심이 가고 아껴 주고 싶은 마음이 있다. 나름 공원이 많고, 놀라운 정도로 잘 가꾼 식물원도 있지만 싱가폴의 자연을 캐나다에 어찌 비할까? 캐나다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정말 말 그대로 새 발의 피 한 방울에도 못 미친다. 하지만 그 곳을 향한 애정이 내 인생에서 사그라지지 않는 이유는 바로 내 삶의 한 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동남아시아에서 마실 수 있는 갈색 커피의 달달한 맛과, 입맛에 딱 맞는 국수요리의 시원함과, 손가락이 붓도록 까먹어야 하는 칠리크랩의 매콤한 맛과, 이 모든 것이 어우러진 푹푹 찌는 더위에, 내가 싱가폴에서 살아야 했던 이유를 생각하면, 어찌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을 수 있으랴. 2014년이 멀어져 간다. 세월은 세상을 바꾸지만 사람은 달고 쓴 추억으로 인해 겸손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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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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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신정효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14.12.16 12월 12일 <문학가 산책>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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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빈수레 작성시간 14.12.16 내가 다녀봤을 때도 90년도 그 무렵인가 보네요. 너무 잘 다듬어져있던 도시국가로
깨끗하고 쾌적하게 가꾸어놓은(다만 사원은 원숭이와 바나나 등 으로 지저분?) 공원이
인상적이었지요. 새공원도 기억에 남지만 중국집 요리도 일품이고 일본 전자제품이
왜 그리 비싼지(아마 정책인 듯) 종교의 자유가 없는 것 빼놓고는 좋은 환경으로 남습니다... -
작성자글로리아 작성시간 14.12.17 오늘은 제주에도 눈이 오고 전국이 추워졌어요.캐나다 추위에 비하면 이정도는 괜찮은 거죠?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그립습니다.
동남아시아는 한류바람이 한창이라 뭐든지 한국붐이더라구요. 멀리서 성탄인사 드립니다. 평안이 가득한 연말 보내세요!
참, 싱가폴은 다양성의 나라라서 다양한 종교가 있고 자유가 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