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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이야기

대학의 자율성을 폐지하라

작성자보광|작성시간26.06.10|조회수22 목록 댓글 0
대학의 자율성을 폐지하라
김 진 균 (성균관대학교 초빙교수)
대학은 연구와 교육을 수행하는 고등교육기관이다. 대한민국 헌법은 제22조 1항에서 학문의 자유를, 제31조 4항에서 대학의 자율성을 보장하고 있다. 이는 대학이 외부 권력의 부당한 간섭 없이 학문적 양심과 전문성에 따라 자유롭게 탐구하고 교육하여 공동체에 기여하라는 사회적 요청을 담은 것이다. 학문적 양심과 전문성은 학계라는 상징적 공간 안에서 형성되고 인정되는 권위의 핵심이다. 말하자면 대학은 학계의 권위를 바탕으로 자율성을 보장받는 기관이니, 학계의 상징적 권위가 부정되고 훼손되면 대학의 자율성 또한 헌법적 정당성을 잃게 된다.
학계 스스로 허물어버린 상징적 권위
1991년부터 한국학술진흥재단(학진, 현 한국연구재단)이 학술지 발행과 학술대회 개최 경비를 지원하는 사업을 시작한 것은, 연구 결과의 자유로운 발표라는 나름 학문의 자유에 대한 국가의 지원 책무를 다하려는 노력으로 읽을 수 있다. 그런데 1998년 학진이 논문의 질을 담보하겠다며 학술지 평가제도를 시행한 것은, 학문의 자유에 대한 국가의 책무를 과도하게 넘는 일이었다. 물론 이때의 학계가 자율성을 주장할 만큼 충분한 권위를 확립했다고 보기 어려운 수준이었기에, 국가가 고등교육에 대한 재정 지원을 확대하기 위해 행정 중심의 일정한 평가 체제를 만드는 일은 불가피한 일이었을 것이다. 문제는 학계가 행정 중심 평가 체계를 바로잡으며 상징적 권위를 확보할 생각을 안 했다는 점에 있다.

학계에서는 오히려 외부 권력의 평가에 대한 적응을 생존 전략으로 여기고, 일탈마저 필요악처럼 용인했다. 회원 수를 평가하자 회원명단을 주거니 받거니 외형을 부풀렸고, 출간 횟수를 평가하니 일제히 계간지로 전환하여 항목 만점을 얻기 위해 분주했다. 게재율을 평가하자 탈락을 전제로 만든 가짜 논문을 끼워 넣었으며, 논문 편수가 실적 평가 대상이 되니 한 편의 문제의식으로 써야 할 논문을 몇 편으로 쪼개어 발표하고, 그런 논문도 쉽게 게재할 동아리 학술지를 우후죽순으로 만들어댔다. 논문 형식까지 표준화하여 평가하자 학계 스스로 학문적 글쓰기를 획일화시켜 학문의 갱신 가능성마저 위축시키기에 이르렀다. 학계의 권위가 자라야 할 토대를 학계 스스로 허물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도 처음에는 정부 개입에 민감하게 반응하던 학자들이 적지 않아서 끊임없이 등재지 제도의 폐단을 지적했다. 군소 학술지를 그 분야 우수 학술지로 선정하는 등 학계의 자율적 판단으로는 납득하기 어려운 결정을 반복하던 정부는 2011년 드디어 등재지 평가제도를 2014년까지 폐지하고 이후 학계의 자율 평가를 존중하고 지원만 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막상 등재지 제도 폐지 계획이 제시되자, 대학과 학계의 반응은 마치 목줄을 놓은 주인의 손을 불안하게 쳐다보는 반려견의 모습과 닮아 있었다. 2013년 교육부가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대학의 90%와 학술지 운영진의 70%가 폐지 반대의 의견을 제출하자, 결국 정부는 폐지 계획을 폐지했다.
학계의 권위 없이 대학의 자율성은 어불성설
등재지 제도 폐지가 폐지되자 폐단에 대한 민감도도 뚝 떨어졌다. 신생 학술지를 만들어 등재 후보지를 경유하여 등재지에 이르는 과정에서 벌어진 일탈은 마치 아슬아슬한 모험담처럼 자랑스레 전파되었다. 학계에서 자율적 권위를 외주 주고 외부 권력의 평가지표에 적응하는 것이 능력처럼 여겨지자, 심지어 자본의 평가지표를 수용하는 일도 전혀 거리낌 없게 되었다.

글로벌 정보서비스 기업들이 운용하는 SCIE나 A&HCI, SCOPUS 등의 인용지수 저널 논문은 정부가 운용하는 KCI 등재지 논문보다 몇 배의 점수를 받는 것이 자연스럽고, 재벌 소유 일간지가 대학의 연구와 교육을 평가해도 이상하지 않게 되었다. 해외에서 운용하는 THE, QS, ARWU 등이 국경은 물론 학문 범주도 초월하며 마치 권위의 화신처럼 대학을 줄 세우며 군림해도 학계에서는 이미 용혹무괴(容或無怪)의 범주에서 발생하는 일이라 그러려니 여긴다.

이렇게 되자 대학을 지방균형발전 정책의 하위파트너로 규정하고 평가하는 ‘서울대 열 개에서 세 개 만들기’도 감지덕지로 느껴지고, 인용지수 저널 논문 양산 기계 수준의 해외 학자에게 명의 임대료를 줘가며 대학 평가 점수를 높이는 학술용병 짓도 켕기지 않는다. 학계가 공동체에 대한 기여를 망각하고 학문적 양심과 전문성마저 외주 처리한 이상, 상징적 권위는 학계에 존재하지 않는다. 학문적 양심을 걸고 정부와 협상할 의지도 없고, 학문의 전문성을 이고 평가 권력을 비판할 능력도 없다면, 굳이 대학의 자율성을 헌법적 원리로 보장할 이유도 없을 것이다.

글쓴이 / 김 진 균
- 성균관대학교 초빙교수
- (사)다산연구소 연구위원장

[저서]
〈추금 강위 평전〉(소명출판, 2024)
〈모던한문학〉(학자원, 2015)
〈한문학과 근대 전환기〉(다운샘, 2009)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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