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나라의 한의사제도는 여러분들의 노력에 의해 1951년 설립되었다. 그런데 1898년부터 1952년까지의 역사를 살펴보던 중 한의사들이 잘 모르는 중요한 부분이 있었다. 이에 관해 이야기하겠다. 하나는 ‘의생제도는 한의사제도의 전신이다’라는 것이고, 또 하나는 지금 한의사 면허번호의 시작은 1974년부터 갱신된 번호’라는 것이다.
이를 살펴보면 첫째, 일제에 의해 제도가 생긴 【의생제도】에는 2가지의 형태가 있는데 하나는 1914년부터 1915년까지 『관보』에 있는 ‘평생면허 의생(영생면허자)’과 1915년 이후의 ‘의생(한지면허자)’으로 구분된다. 한지면허 의생의 경우 평생면허 의생 밑에서 도제제도 형태의 사승관계의 수업을 통하여 면허를 취득하였다. 【1951년 한의사제도 설립 이후 ‘평생면허 의생’은 ‘한의사’로, ‘한지면허 의생’은 ‘한지한의사’로 한의사 면허를 주었다.】 『소헌 정원희 유고집』 참고.
양의사들도 1945년 이전에는 ‘검정고시’, ‘의학강습소’, ‘의학전문학교’, ‘의학교’, ‘의대’등의 출신이 다양하였고 초창기 국권이 유린된 상태에서의 교육과정은 점진적인 근대화의 체계를 밝고 있는 과도기 과정의 일부였다.
일본인과 함께 양지에 있던 양의사들과 달리 한의사들은 음지에서 독립운동가, 교육가, 종교가 등의 다양한 직종에 종사하기도 하였는데 양의사들의 빈자리를 메우는 의료인이기도 하였다. 1921년에는 【총독부령 154호】에 의해 한의사들을 산간벽지에 지역을 한정하여 의료행위를 하게 하였다. 1921년 12월 『동아일보』에는 “금후의 의생의 출원자는 부칙 제2항에 의해 개업지역을 정하여 신청할 수 있는데 의료기관이 토지 인구에 비해 부족하여 총독부 당국에서 점차 충실히 하고 과도기에 ‘한방의’이란 것을 의생으로 인정하여 산간벽지에 의료기관이 없는 지방에 개업도록 함……”이라고 하여 의생이 양의사들의 도시집중화에 따른 의료 사각지를 메우는 형태의 의료구조로 되었다.
1910년대 시작도 ‘의료전달체계’의 사각에서 순수한 한국인만으로 구성된 의생은 도태시키려는 일제의 목적에 부합하여 【의생제도】를 만들었다. 일제가 ‘한의사제도’를 없애기 직전의 1942년 조선총독부통계는 양의사가 3674명… 의생 3349명… 으로 1944년 『조선 의료령』에 의해 3000여명의 의생들이 있음에도 완전히 말살시켰다.
실제 일제치하에서 도서벽지 의료를 한의사들에게 맡기면서 한편으로는 자연도태를 유도하였는데 1930년 이후 심각한 의료공백이 생기기 시작하였다. 『동아일보』 기사에 의하면 “1933년 고령, 안성, 홍천, 양양, 곡산을 1934년 강화 교동도, 평남 맹산, 안동을 1935년에 함양, 홍천 1936년 부천을 1939년에는 포천을 언급하였고 1939년에는 의생들의 자연도태로 경북의 경우 의생조차 없는 면이 180여면……” 이라고 하였다.
1951년 9월25일 법률 제221호에 의해 한의사 탄생의 『국민의료법』 제정 당시 【부칙 제3조】에는 “본법 시행당시에 현존한 의생은 이를 한의사로, 보건부는 이를 보건원으로, 산파는 이를 조산원으로, 간호부는 이를 간호원으로 개칭한다”라고 되어 있는 법조항을 참고하면 의생은 한의사이다. 【이때부터 ‘한의원’이라고 함. 이전에는 한의원도 ‘의원’으로 부름.】
둘째, 한의사 면허번호인데 지금의 번호는 1974년 12월2일 생존한의사를 중심으로 다시 일련번호를 주었다.
1957년 3월4일 【관보 제1740호】에 ‘한의사면허등록자’가 있는데 현재 면허번호 1번을 이우룡 선생으로 알고 있지만 실제 그는 면허번호가 4번이었다. 1974년부터 면허증 크기를 작게 하고 번호를 갱신하였다. 당시 【관보】를 보면 최초의 외국인 한의사로 中國人 趙秉度( 면허번호 5번 : 1904~1970 )가 있고 126번이었던 박천래(부산시 한의사회 간부)도 10번으로 면허번호를 갱신하였다. 또, 독립운동가인 엄주신 선생의 경우 의생번호는 3125번이며 1950년대 186번이었다. 하지만 대전현충원의 비석에는 한의사면허번호를 483번이라고 한다. 이처럼 1974년 이전에 작고하셨던 분들은 면허번호 갱신으로 “대한한의사협회 회무관리시스템”, “보건복지부”, “국시원” 등의 정부 관련 자료에는 사라져 버렸다.
또, 한지한의사(한지 의생)도 【관보】에 없는 경우가 많은데 제주도 여행 중 수월봉 정상에 진태준 선생님이 세운 ‘한의사 좌임관’비석도 기록에 빠져 있는 한의사이다. 제주도의 한지의생인 최재두, 대구한의사회 초대회장인 이호진 회장 등이 한의사로 되어 있지만 국가기록상 누락되어 있고 과거 자료인 한지의생(=한의사)부분만 존재할 뿐이었다.
이상과 같이 ‘74년 면허갱신 이전에 작고하신 경우의 한의사와 ‘80년 이전에 작고하신 한지한의사(=한지의생)는 기록을 찾아보기가 어렵다. 이런 부분에 관해 누락된 부분을 검증하여야 하고 ‘51년 이전에 의생들이 의료기관을 ‘한의원’으로 하지 않고 ‘의원’으로 되어 있어 양의사들의 역사에 포함시키는 경우도 있었는데 이에 대한 잘못된 역사 기록은 바로 잡아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