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606 연중 제9주간 토요일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2,38-44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군중을
38 가르치시면서 이렇게 이르셨다. “율법 학자들을 조심하여라. 그들은 긴 겉옷을 입고 나다니며 장터에서 인사받기를 즐기고,
39 회당에서는 높은 자리를, 잔치 때에는 윗자리를 즐긴다.
40 그들은 과부들의 가산을 등쳐 먹으면서 남에게 보이려고 기도는 길게 한다. 이러한 자들은 더 엄중히 단죄를 받을 것이다.”
41 예수님께서 헌금함 맞은쪽에 앉으시어, 사람들이 헌금함에 돈을 넣는 모습을 보고 계셨다. 많은 부자들이 큰돈을 넣었다.
42 그런데 가난한 과부 한 사람이 와서 렙톤 두 닢을 넣었다. 그것은 콰드란스 한 닢인 셈이다.
43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가까이 불러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저 가난한 과부가 헌금함에 돈을 넣은 다른 모든 사람보다 더 많이 넣었다.
44 저들은 모두 풍족한 데에서 얼마씩 넣었지만, 저 과부는 궁핍한 가운데에서 가진 것을, 곧 생활비를 모두 다 넣었기 때문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부소치리 관상수도원 미사에 참석한 비신자인 한 친구가 미사 내내 그 수도자들을 보면서 '이런 삶도 있구나'하고 놀라면서, 동시에 그들이 너무 '불쌍해' 슬펐답니다. 좀 엉뚱합니다. 보통은 참 '아름답다'고 표현합니다. 그는 그 전날, 오대산 서대 토굴에서 정진 중인 수행자 스님에 대해서도 같은 표현을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가난한 과부를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첫째 계명인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하느님을 사랑하는' 모델로 제시하십니다. “저 과부는 궁핍한 가운데에서 가진 것을, 곧 생활비를 모두 다 넣었기 때문이다.” 가난한 과부의 하느님 사랑은 순교자들처럼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놓으며 주님과 일치에 이르는 사랑입니다. 수도자들의 하느님 사랑입니다.
율법에 따라 사는 자신을 하느님을 최고로 사랑하는 사람으로 자처하는 율법학자들을 그 반대 모델로 제시하십니다. 당신을 오시기로 되어있는 '찬양받으실 하느님의 아들 메시아'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율법학자들을 나무라십니다. 그들의 교만과 위선과 탐욕을 단죄하십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메시아로, 하느님의 아드님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은 바로 그들의 이 교만과 위선과 탐욕 때문입니다.
반면에 예수님께서 렙톤 두 닢을 헌금함에 넣는 가난한 과부를 보고 칭찬하십니다. 그녀는 궁핍한 가운데서 가진 것을 다 넣었기 때문입니다. 그녀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하느님을 사랑하는 완전한 하느님 사랑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녀는 예수님을 메시아로, 하느님의 아드님으로 믿고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가난한 과부는 수도자의 모델입니다.
자신의 모든 것을 봉헌한 가난한 수도자들의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의 삶은 참 아름답습니다. 그들은 메시아 시대, '진실한 예배자들의 영과 진리 안에서의 예배'(요한 4,23)의 삶을 살기 때문입니다. 그들 삶의 아름다운 향기는 온 세상에 퍼져 나갑니다.
그 향기를 맡으며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은 행복합니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행복하여라, 슬퍼하는 사람들! 그들은 위로를 받을 것이다.
행복하여라, 온유한 사람들! 그들은 땅을 차지할 것이다.
행복하여라, 의로움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들! 그들은 흡족해질 것이다.
행복하여라, 자비로운 사람들! 그들은 자비를 입을 것이다.
행복하여라,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을 볼 것이다.
행복하여라,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의 자녀라 불릴 것이다.
행복하여라, 의로움 때문에 박해를 받는 사람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마태 5,3-10)
화가인 고 강 방지거 형제님은 산이 좋아 퇴직후 양양에 정착해 살았습니다. 부소치리 관상수도원의 수도자들에게 반해 프란치스코 세례명으로 신자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천상병 시인의 <귀천>의 주인공처럼 아름다운 세상 소풍같은 삶을 살다 하느님께로 돌아갔습니다. 해마다 그의 기일이면 부소치리 관상수도원에서 미사를 드리며, 그의 행복하고 아름다운 삶을 기억하면서 주님께 감사와 찬미를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