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상스(Camille Saint-Saëns, 1835~1921)는 이 작품을 36년 동안 숨겼습니다. 자신이 가장 아끼는 비밀 무기처럼, 사육제가 돌아올 때마다 친한 음악가들 앞에서만 몰래 꺼내 보였습니다. 그 이유는 흔히 "유쾌한 작품이 진지한 작곡가 이미지를 해칠까 봐"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었습니다. 《동물의 사육제》의 14개 악장 안에는 당시 파리 음악계를 향한 날카로운 풍자와 음악적 패러디가 살아 숨 쉬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작품은 귀여운 동물 음악으로만 듣기에는 너무 정교하고, 너무 영리합니다. 동물의 이름 뒤에 숨겨진 그 미묘한 풍자의 지도를, 지금부터 함께 읽어봅니다.
1. 실패한 투어 뒤에 태어난 음악적 복수
1885~86년 겨울, 생상스는 독일 순회연주를 떠났다가 처참한 결과를 안고 돌아왔습니다. 그를 괴롭혔던 것은 무대 위의 실수가 아니었습니다. 열렬한 반바그너주의자였던 그의 음악관이 독일 청중과 언론으로부터 냉혹한 평가를 받았고, 일부 투어 일정은 취소되었습니다. 상처를 안고 오스트리아의 작은 마을로 은거한 생상스는 그 겨울, 자신이 공을 들이던 《교향곡 제3번 '오르간'》 작업을 잠시 내려놓고 전혀 다른 음악에 몰두했습니다. 훗날 그가 출판사에 보낸 편지에는 이 작업이 "너무나 재미있어서 도저히 멈출 수 없었다"고 적혀 있습니다.
약 며칠 만에 완성된 이 작품의 이름은 《동물의 사육제(Le Carnaval des animaux)》였습니다. 겉으로는 친구 첼리스트 르부크(Charles-Joseph Lebouc)가 매년 사육제 즈음 여는 비공개 음악회를 위한 헌정 작품이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독일 투어에서 받은 수모와 파리 음악계의 구태를 향해 웃음으로 되돌려준 음악이기도 했습니다. 사육제의 정신이 "일체의 구속에서 벗어난 자유"라면, 이 음악에 그 이름을 붙인 것은 정확히 옳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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