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의 몽상/이시영
사는 것이 사는 것 같지 않고 으스스 몸이 시릴 때, 아니 내 삶이 내 삶으로 도
저히 용납되지 않을 때, 그것이 또한 오로지 남의 탓이 아닐 때 등을 돌리고 서
면 거기 안서호의 황혼녘에 오리들이 몇 유쾌한 직선을 그으며 나아가고 있었
나니, 나 425호 남의 연구실 유리창에 이마를 갖다대고 그덧들의 한없이 자유
로운 유영을 지켜보곤 하였으나 내가 저 오리가 되기엔 너무 늙었거나 조금 일
렀으며, 생은 어디에 기댈 데도 없이 저처럼 뭉툭한 머리를 내밀고 또 물밑에
선 죽어라고 갈퀴질을 해대며 쌩까라*고 저 홀로 갈 때까지 가보는 것이라고
다집하곤 했는데, 그때쯤이면 해가 풍덩 가라앉은 저녁 안서호의 따스한 물결
이 내 가슴 통증께로 조금씩 밀려오곤 해 나는 서둘러 텅 빈 가방을 챙겨 의대
에서 오는 여섯시 막차 퇴근버스를 타러 언덕길을 총총히 내려가곤 했다.
*'쌩까다'라는 경상도 사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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