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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nstrumental.

모차르트 / '아, 어머니께 말씀드리죠'에 의한 12변주곡 KV 265 - 클라라 하스킬

작성자영아자|작성시간10.06.30|조회수322 목록 댓글 0

 

 

 

 

 

 

Wolfgang Amadeus Mozart

 12 Variations on 'Ah, vous dirai-je Maman' in C major KV 265 

Clara Haskil piano

 

 

 

 

 

루마니아 부쿠레시티 출신의 여류 피아니스트 하스킬(Clara Haskil 1895~1960)은 파리 음악원에서 코르토, 포레에게 사사했고 에네스코, 이자이와같은 바이올린의 거장들과 함께 연주하기도 했다. 모짜르트에 정평했던 그녀는 신체적 불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청초한 아름다움이 넘치는 연주를 들려줬다. 죽은 해에 연주한 모짜르트 <피아노 협주곡 제20, 24번>·<어머님께 말씀 드리지요에 의한 변주곡 K·265>, 그뤼미오(vn)와 함께 <바이올린 소나타 K·301, 304, 376&378>은 기리 그 빛을 잃지않을 그녀의 소중한 유산이다.
 
'작은별 주제에 의한 변주곡' 이라고 흔히들 부르지만 실제 원제는 이 곡은 "작은별"로 잘 알려진 프랑스의 동요  "Ah, Vous diraise-je maman, 아! 어머니께 말씀드리죠 주제에 의한 변주곡" 이다. 위의 제목에는 그냥 '작은별 변주곡' 이라 적어 두었지만 정확하게 번역하자면 <"아, 어머니께 말씀 드리죠" 주제에 의한 12개의 변주곡> 이라고 하는것이 맞다. 딸이 어머니에게 사랑하는 사람에 대해 얘기하는 내용으로 우리나라 외에도 세계 곳곳에서 다양한 가사와 제목으로 불려지며 사랑받고 있는 곡이다. 영어로 번역된 "반짝반짝 작은별(Twinkle, Twinkle, Little Star)"이 우리에게 무척 친숙하다 보니 그렇게 알고있는것이다.


1778년은 모짜르트에게는 매우 고통스러웠던 해로 파리 체류기간 동안 생활은 비참했고 설상가상으로 어머니가 병환에 걸린데 이어 객지에서 죽음을 맞는 등 불행이 따랐던 때였다. 모짜르트는 슬픔에 젖어있던 그 무렵에 "아, 어머니 당신께 말씀 드리죠" 라는 곡을 접하게 되었고 이후에 이곡을 주제로 해서 12개 의 변주곡을 만들었다고 한다. 또한 1778년 파리에서 작곡된 것으로 알려졌었지만 최근 연구에서는 1781년이나 1782년 빈에서 작곡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피아노의 성녀 클라라 하스킬 
 
하스킬을 소개할 때마다 빠지지 않고 따라다니는 에피소드는 그녀의 천재성에 관한 것들이다. 가령 그녀의 나이 여섯 살 때 하스킬은 모차르트 소나타의 한 악장을 단 한 번 듣고, 그 자리에서 그대로 따라 쳤다고 한다. 물론 악보를 전혀 알지 못하던 때의 이야기이다. 그뿐이 아니라 그녀는 그 악장 전체를 다른 조로 바꾸어서 연주했다. 이야기가 이쯤 되면 그녀의 천재성에 대해 뭐라고 더이상 말할 것이 없을 것 같다.


그 자신도 천재 중 하나라고 분류되곤 하는 찰리 채플린은 하스킬을 만나고서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나는 살면서 진정 천재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을 세 명 만났다. 한사람은 아인슈타인이었으며, 한 사람은 처칠이었다. 그리고 나머지한 사람, 누구보다도 현격히 차이 나는 두뇌의 소유자는, 바로 클라라 하스킬이었다."    


하스킬은 너무나 아름다웠다. 하스킬이 만약 20세기 초엽의 사람이 아니라 지금 현재의 연주자로서 대중에게 알려지기 시작했다면 아마도 그녀의 음반은 플래티넘은 우습게 넘기지 않았을까? 그러나 신은 한 사람이 모든 것을 소유하도록 하지 않는다.하스킬은 18세(1913년)에 발병하여 숨지던 그날(1960년)까지 일생동안 병마와 전쟁, 고독과 싸우며 살아야 했다. 그녀의 아름다움을 하루아침에 빼앗아간 병은‘세포경화증’(Sclerosis)이라는, 뼈와 근육이 붙거나 세포끼리 붙어 버리는 불치의 병이었다.


그녀는 이후 4년간 몸에 깁스를 댄 채 살아야 했으며 당연히 연주도 할 수 없었다. 한창 꽃다운 나이에 피아니스트로서의 전성기를 맞이해야 할 시기에 그녀는 온몸에 깁스를 댄 채 누워있어야 했다. 불행한 일은 그것뿐이 아니었다. 이 병의 후유증으로 그녀는 아름다움을 잃어 버렸다. 마치 저주에 걸린 공주처럼 그녀의 아름다움은 한 순간에 사라져버렸고, 그녀는 꼽추가 되어 버렸다. 20대의 나이에 그녀는 젊음과 아름다움을 모두 잃어버리고 만 것이다.    


그러나 병마와 싸워 일어난 그녀는 다시 연주활동을 시작했고, 다시 예전의 인기와 명성을 회복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녀의 이런 행복도 잠시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했고, 그녀는 유태인이었다. 나치가 파리를 점령하자 그녀는 남프랑스의 마르세유로 피신했다. 이 과정에서 그녀는 극도의 공포와 피곤으로 인한 뇌졸증을 일으켰다. 실명의 위기에 부닥쳤으며 각종 신경계에도 종양이 생겨 수술을 받지 않으면 살아나기 힘든 지경이 되었다.


우여곡절 끝에 유명한 유태계 의사가 파리에서 마르세유까지 달려왔고, 어려운 수술을 통해 겨우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하스킬은 죽음의 문턱에서 다시 한 번 돌아섰다. 간신히 목숨을 건지기는 했으나 그녀는 전쟁 기간 동안 마르세유 근교에 숨어 지내야 했다. 당시 그녀에게는 바이올린 한 대와 고양이 한 마리가 전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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