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감절요(通鑑節要)] 56.
八月에 詔曰 吏不廉平하면 則治道가 衰하나니 今小吏는 皆勤事而俸祿이 薄하니
欲無侵漁百姓이 難矣라 其益吏百石已下를 俸十五하라
8월에 칙명을 내리기를
“관리가 청렴하고 공평하지 않으면, 다스리는 도가 약해지니 지금 낮은 관리들이 모두 부지런히 일하지만 녹봉이 박하니,
백성들을 침탈하지 않기가 어렵다. 백 석 이하의 관리에게 녹봉의 10분의 5를 더해주라.” 하였다.
是歲에 東郡太守 韓延壽가 為左馮翊하다 始에 延壽가 為潁川太守하니 潁川이 承趙廣漢 構會吏民之後하여
俗多怨讎어늘 延壽가 改更하여 敎以禮讓이러니 黃霸가 代延壽하여 居潁川에 霸가 因其迹而大治하니라
이 해에 동군태수 한연수가 좌풍익이 되었다.
처음에 한연수가 영천태수가 되니, 영천은 조광한이 관리와 백성 간에 악감정을 엮은 뒤를 이어 풍속이 원수가 많거늘,
한연수가 다시 고쳐서, 예의를 지켜 사양함을 가르치더니 황패가 한연수를 대신하여 영천에 부임하자,
황패는 그 행적을 따라 크게 다스렸다.
延壽가 為吏에 上禮義하고 好古敎化하며 接待下吏에 恩施甚厚而約誓가 明이라 或欺負之者어든 延壽가 痛自刻責曰
豈其負之아 何以至此오 하니 吏聞者가 自傷悔하여 至自刺自剄이더라 其在東郡三歲에 令行禁止하고
斷獄이 大減이라 由是로 入為馮翊하다
한연수가 관리가 되어 예의를 높이고 옛날의 교화를 좋아하며, 낮은 관리를 대하여 은혜 베풀기를 매우 두텁게 하고,
약속과 서약이 분명하였다. 어떤 사람이 속이고 배신하면 연수가 통렬히 스스로 가혹히 꾸짖어 말하기를,
“어찌하여 그가 저버렸는가, 어찌 이 지경까지 이르렀는가.” 하니,
관리로서 듣는자가 스스로 아파하며 후회하고, 스스로 찌르고, 스스로 목을 찌르는 데까지 이르렀다.
그가 동군에 있은 지 3년에, 명령하면 행해지고 금하면 그쳐서,
옥사를 판단하는 것이 크게 줄어들었고, 이로 말미암아 들어가 풍익이 되었다.
延壽가 出行縣至高陵이더니 民有昆弟가 相與訟田하여 自言이거늘 延壽가 大傷之曰 幸得備位하여
為郡表率에 不能宣明敎化하여 至令民으로 有骨肉爭訟하니 旣傷風化라 咎在馮翊이라 하고 因閉閤思過하니
於是에 訟者가 自悔하여 願以田相移하고 終死不敢復爭하니 郡中이 歙然相敕厲하여 不敢犯이더라
延壽의 恩信이 周徧二十四縣하여 莫復以辭訟으로 自言者라 推其至誠하여 吏民이 不忍欺紿더라
한연수가 나가 현을 순행하다가 고릉에 이르렀는데, 백성 중에 형제가 서로 밭으로 쟁송을 하더니 자신의 말만 하거늘,
한연수가 크게 상심하면서 말하기를,
“다행히 벼슬자리를 차지하여 군의 본보기가 되었는데, 교화를 밝게 펴지 못해 이제 백성들로 골육의 쟁송이 있게 하였으니
이미 풍속교화를 해친 것이라 허물은 풍익에게 있다.” 하고 인하여 방문을 닫고 자신의 과오를 생각하니,
이에 송사로 다툰 사람들이 스스로 후회하여, 원하기를 밭을 서로 옮기고, 죽을 때까지 감히 다시는 다투지 않기로 하니,
고을 안이 화합하고 안정되어, 서로 조심하고 힘써서 감히 범하지 않았다.
한연수의 은혜와 신의가 두루 스물네 현에 미쳐서, 다시는 소송으로 스스로 말하는 자가 없었다.
그 지극한 정성으로 밀고나가서, 관리와 백성들이 차마 속이지 못하였다.
(癸亥) 四年이라 潁川太守 黃霸가 在郡前後八年에 政事가 愈治라 是時에 鳳皇 神爵이 數集郡國하되 潁川이 尤多어늘
詔賜爵關內侯더니 後數月에 徵霸為太子太傅하다 時에 河南太守 嚴延年이 為治에 陰鷙酷烈하여 素輕黃霸為人이더니
及比郡為守에 褒賞이 反在己前하니 心內不服이더라
(계해) (신작)4년 (B.C.58년)이라. 영천태수 황패가 군(郡)에 있는 전후 8년 동안에 정사가 잘 다스려졌다.
이때에 봉황과 신작(신령한 새)이 자주 군국에 모였는데, 영천에 더욱 많거늘, 조서로 관내후의 작위를 하사하더니,
수개월 후에 황패를 불러서 태자의 태부로 삼았다. 그때에 하남태수 엄연연이 (백성을) 다스림에 음흉하고 흉악하며 혹독하고 심하여,
평소에 황패의 사람됨을 경멸하였는데, 이웃군의 태수가 되기에 이르러, 포상이 도리어 자기의 앞에 있으니 마음속으로 불복하였다.
河南界中에 又有蝗蟲이거늘 府丞義가 出行蝗하고 還見延年할새 延年이 曰 此蝗이 豈鳳皇食耶아 하니
義가 年老라 素畏延年이러니 恐見中傷하여 上書言延年罪하여 驗得怨望誹謗數事하니 延年이 坐不道하여 棄市하다
하남군의 경계 안에 또 황충(메뚜기)이 있게되자, 부승(府丞) 의(義)가 나가서 황충을 잡고 돌아와서 엄연연을 보았는데,
엄연연이 말하기를, “이 황충이 어찌 봉황의 먹이겠는가?” 하니, 의(義)는 나이가 늙었고 평소에 엄연연을 두려워하더니,
중상을 당할까 무서워하여 엄연연의 죄를 글을 올려 말하여, (임금을) 원망하고 비방한 여러가지 일을 증험하니,
엄연연이 도리에 어긋난 죄에 걸려 죽임을 당하여 거리에 버려졌다.
初에 延年母가 從東海來하여 欲從延年이러니 臘到洛陽하여 適見報囚하고 母가 大驚하여 謂延年曰 天道가 神明하니
人不可獨殺이라 我가 不意當老하여 見壯子가 被刑戮也호라 行矣어다 去汝東歸하여 掃除墓地耳라 하고 遂去歸郡이더니
後歲餘에 果敗하니 東海가 莫不賢智其母더라
처음에 엄연연의 어머니가 동해로부터 와서, 아들을 따라가려 하더니, 섣달에 낙양에 이르러 때마침 죄수 판결하는 것을 보고,
어머니가 크게 놀라서 엄연연에게 일러 말하기를, “하늘의 도는 신령하고 밝으니, 사람이 홀로 죽일 수는 없는 것이다.
내가 늙어서 뜻밖에 다 큰 자식이 죄를 짓고 죽는 것을 보겠느냐. 가겠다. 너를 버리고 동해로 돌아가서 묘지 소제나 해야겠다.” 하고,
마침내 떠나가 군(郡)으로 돌아갔다. 1년여 뒤에 과연 (엄연연이) 패하니,
동해의 사람들이 그 어머니를 어질고 지혜롭게 여기지 않는 이가 없었다.
(甲子) 五鳳元年이라 韓延壽가 代蕭望之하여 為左馮翊하다 望之가 聞延壽가 在東郡時에 放散官錢千餘萬하고
使御史案之한데 延壽가 聞知하고 卽部吏하여 案校望之가 在馮翊時에 廩犧官錢,放散百餘萬이거늘 望之가 自奏하되
職在總領天下라 聞事에 不敢不問이더니 而為延壽의 所拘持로소이다
(갑자) 오봉 원년(B.C.57년)이라. 한연수가 소망지를 대신하여 좌풍익이 되었다.
소망지가 한연수가 동군에 있을 때 관청의 돈 천여 만 전을 헤프게 써버렸다는 말을 듣고, 어사로 하여금 조사하도록 하였는데,
한연수가 (그것을) 듣고, 곧 부하 관리에게 소망지가 풍익으로 있을때
곡식과 희생을 키우는 관전 백여 만 전을 써버린 것을 심사하여 판정하게 하거늘,
소망지가 스스로 아뢰기를, “직책이 천하를 총령하는 것이라, (한연수의) 일을 듣고 감히 묻지 않을 수가 없었는데,
한연수가 (죄를) 얽어매 누르는 바가 되었습니다.” 하였다.
上이 由是로 不直延壽하여 各令窮考하니 望之는 卒無事實하고 而延壽는
以在東郡에 奢僭逾制하고 鑄刀에 效尙方等事로 竟坐棄市하니 百姓이 莫不流涕더라
임금이 이로 말미암아 한연수를 정직하지 않다고 여기고, 각각 끝까지 조사하게 하니, 소망지는 끝내 (그런) 사실이 없었고,
한연수는 동군에 있을 때, 사치하고 참람함이 규제를 넘었으며,
칼을 주조함에 상방의 어도(임금의 칼)를 본뜬 일로, 끝내 죄에 걸려 기시(시체를 거리에 버림)형을 당하니,
백성들이 눈물을 흘리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丙寅) 三年이라 春에 丙吉이 薨하다 黃霸가 為丞相하다 霸材가 長於治民이더니 及為丞相하여 功名이 損於治郡時더라
京兆尹 張敞의 舍鶡雀이 飛集丞相府거늘 霸가 以為神雀이라 하여 議欲以聞이더니 後에 知從敞舍來하고 乃止하다 然이나
自漢興으로 言治民吏면 以霸為首더라
(병인) (오봉) 3년(B.C.55년)이라. 봄에 병길이 죽었다.
황패가 승상이 되었다.
황패의 재주는 백성을 다스리는 데에 뛰어났으며,
승상이 되어서는 공적과 명성이 군을 다스릴 때보다 덜했다.
경조윤 장창의 집에서 기르는 멧닭이 날아와 승상부에 모이니,
황패가 신작(신령스런 새)이라고 여기고, 의논하여 (임금께) 아뢰고자 하더니,
뒤에 장창의 집으로부터 온 것을 알고 마침내 그만두었다.
그러나 한나라가 일어남으로부터 백성을 (잘) 다스린 관리를 말하면 황패로써 으뜸으로 삼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