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ººº 고전의 향기

[통감절요(通鑑節要)] 57. 황제가 보고 미워하여 양운을 대역무도 죄로 요참(허리를 잘라 죽임)하였다.

작성자구송박병수|작성시간26.06.23|조회수25 목록 댓글 0

 

[통감절요(通鑑節要)] 57.

 

(丁卯) 四年이라 大司農丞 耿壽昌이 奏言하되「歲數豊穰하여 穀賤하니 農人이 少利라 故事에 歲漕關東穀四百萬斛하여

以給京師하되 用卒六萬人하니 宜糴三輔、弘農、河東、上黨、太原郡穀이면 足供京師이고 可以省關東漕卒過半이리이다」

上이 從其計하니 壽昌이 又白「令邊郡으로 皆築倉하여 以穀賤으로 增其賈而糴以利農하고

穀貴時에 減賈而糶하여 名曰常平倉이라」하니 民이 便之어늘 上이 乃詔賜壽昌爵關內侯하다.

 

(정묘) (오봉) 4년(B.C.54년)이라.

대사농승 경수창이 아뢰기를, “여러 해 풍년이 들어 곡식(값)이 싸니, 농부들의 이득이 적습니다.

예로부터 해마다 관동의 곡식 400만 석을 배로 실어 경사(서울)에 공급하는데 군졸 6만 명을 사용합니다.

쌀을 사들이되 마땅히 삼보(京兆尹, 左馮翊, 右扶風), 홍농, 하동, 상당, 태원군의 곡식을 사들이면, 경사에 족히 공급하고,

관동으로 (쌀을) 실어 보내는 병졸을 반 넘게 줄일 수 있습니다.” 하니 임금이 그 계책을 따랐다.

경수창이 또 사뢰기를, “변방군에 모두 창고를 짓게 하여, 곡식이 싸면 그 값을 올려서 쌀을 사들여 농민에게 이롭게 하고,

곡식이 비쌀 때에 가격을 내려서 쌀을 팔아서, 이름을 상평창이라 하게 합니다.” 하니, 백성들이 편리하다고 하였다.

상이 마침내 조서를 내려서 경수창에게 관내후의 벼슬을 주었다.

 

光祿勳 楊惲이 廉潔無私하나 然이나 伐其行能하고 又性이 刻害하여 好發人陰伏하니 由是로 多怨於朝廷이더라

與太僕 戴長樂으로 相失이더니 長樂이 上書告惲罪하되 怨望為妖惡言이라 한데 上이 不忍加誅하여 免為庶人하다

 

광록훈 양운이 청렴결백하고 사사로움이 없으나, 그의 행실과 재능을 자랑하고, 또 성품이 각박하여 꺼리며, 남이 몰래 숨긴 것을 드러내기 좋아했다.

이로 말미암아, 조정에서 원한이 많았더라.

태복 대장낙과 서로 어긋나더니, 대장낙이 글을 올려 양운의 죄를 고발하되,

“(조정을) 원망하여 요망하고 나쁜 말을 한다.” 하니, 상이 차마 죽이지 못하여 직책을 면하고 서인으로 삼았다.

 

惲이 旣失爵位하고 家居治産業하여 以財自娛거늘 其友人 安定太守 孫會宗이 與惲書 諫戒之하여 為言하되

「大臣이 廢에 當闔門惶懼오, 不當治産業,通賓客하여 稱譽니라」 惲이 宰相子로 有材能하여

少顯朝廷이다가 一朝에 以晻昧語言으로 見廢하고 內懷不服이라

 

양운이 이미 작위를 잃고, 집안에 머물며 산업을 경영해서, 재물로써 스스로 즐거움으로 삼거늘,

그 친구인 안정태수 손회종이 양운에게 글을 보내서, 충고하여 경계해 말하기를,

“대신이 (벼슬을) 폐했으면 마땅히 문을 닫고 황송해야 할 것이니,

산업을 경영하고 빈객과 왕래하여 칭찬을 얻음은 마땅한 짓이 아니다.”라고하자,

양운이 재상의 아들로 재능이 있어서 젊을 때 조정에서 드러났다가,

하루아침에 애매한 말로 폐출당하고, 속으로 불복하는 마음을 품었다.

 

報會宗書曰「過大行虧하니 當為農夫以沒世라 田家作苦하여 歲時伏臘에 烹羊炰羔하여

斗酒自勞라가 酒後耳熱이어든 仰天拊缶而呼烏烏하니 其詩에 曰『田彼南山하니 蕪穢不治로다

種一頃豆러니 落而為萁로다 人生行樂耳니 須富貴何時오』誠荒淫無度하여 不知其不可也로다」

 

손회종의 글에 답하기를, “과실이 크고 행실이 어그러졌으니, 마땅히 농부가 되어서 세상을 마칠 것이다.

농가에서 고생하여 설과 삼복과 섣달에 양을 삶고 염소를 구워 말 술로 스스로 위로하며, 술에 취해 귀가 따뜻해지면,

하늘을 우러러 장구를 두드리며, 오오 (노래) 부르니, 그 시에 이르기를,

‘저 남산을 개간하니, 잡초가 무성하여 김매지 않았구나. 한 이랑에 콩을 심었더니 콩은 떨어지고 콩깎지만 남았네.

인생은 즐길 뿐이니 부귀를 기다린들 어느 때 오겠는가’, 하였으니, 진실로 황음무도하여 그 불가함을 모르겠다.”고 하였다.

 

會에 有日食之變이거늘 騶馬猥佐成이 上書告하여「惲이 驕奢不悔過하니 日食之咎는 此人所致니이다」

章下廷尉하여 按驗하여 得所予會宗書라 帝가 見而惡之하여 惲을 以大逆無道로 腰斬하다

 

마침 일식의 변고가 있자, 추마(거마 부서) 외좌(외마 담당)인 성(成)이 상서하여 고발하기를,

“양운이 교만하고 사치하여 과실을 뉘우치지 않으니, 일식의 재앙은 이 사람이 이르게 한 것입니다.” 하자,

글을 정위에게 내려서 조사하게 하니,

손회종에게 주었던 바의 편지를 얻어서, 황제가 보고 미워하여 양운을 대역무도 죄로 요참하였다.

 

溫公曰:以孝宣之明,魏相、丙吉為丞相,于定國為廷尉,而趙、蓋、韓、楊之死皆不厭衆心,惜哉。其為善政之累大矣!周官司寇之法,有議賢、議能,若廣漢、延壽之治民,可不謂能乎!寬饒、惲之剛直,可不謂賢乎!然則雖有死罪,猶將宥之,况罪不足以死乎!揚子雲以韓馮翊之愬蕭為臣之自失。夫所以使延壽犯上者,望之激之也。上不之察,而延壽獨蒙其辜,不亦甚哉!

 

사마온공(사마광)이 말하기를, “효선제의 밝음과 위상 병길이 승상이 되고, 우정국이 정위가 되었으면서, 조광한 개관요 한연수 양운을 죽여서 모두가 대중의 마음에 그르지 않다고 여겼으니. 아깝구나, 그것은 선정이 많이 쌓였기 (자만했기) 때문이다. 주나라 사구(형벌 담당)의 법에 현능을 의논함이 있는데, 만약 조광한 한연수의 다스림을 능하지 않다고 할 수 있으며, 개관요와 양운의 강직함을 어질지 않다고 할 수 있겠는가. 그런즉 비록 죽을 죄가 있더라도 오히려 장차 용서해 주어야지, 하물며 죽을 죄가 아닌데도 죽여야 했는가.” 하였다. 양자운(揚雄)은 한풍익(한연수)이 소망지를 참소함으로써 신하가 스스로 잘못한 것이라고 했다. 대저 한연수로 하여금 윗사람(소망지)를 범하게 한 것은, 소망지가 정도가 지나쳤음인데, 상이 살피지 못하였으며, 한연수만 홀로 그 죄를 받았으니, 또한 심하지 않은가!

 

(戊辰)甘露元年이라 楊惲之誅也에 公卿이 奏하되 京兆尹 張敞은 惲之黨友니 不宜處位라 하거늘 上이 惜敞材하여 獨寢其奏하고 不下하다 敞이 使掾絮舜으로 有所案驗이더니 舜이 私歸其家曰「五日京兆耳니 安能復按事리오!」 敞이 聞舜語하고 卽部吏하여 收舜繫獄하여 晝夜驗治하여 竟致其死하다

 

(무진) 감로 원년(B.C. 53년)이라. 양운이 주살되니, 공경이 아뢰기를, “경조윤 장창은 양운의 같은 무리의 벗이니, 지위에 있으면 안됩니다.” 하였으나, 임금이 장창의 재주를 아까워하여, 오직 그 아뢴 것을 뭉개고 (조정에) 내리지 않았다. 장창이 아전 서순을 시켜 조사시킨 바가 있었는데, 서순이 사사로이 그 집을 돌아가서 말하기를, “5일 경조윤일 뿐인데, 어찌 능히 다시 그 일을 조사하리오!” 했다. 장창이 서순의 말을 듣고 곧 아전을 보내어 서순을 잡아다가 옥에 가두어 주야로 조사하여 다스리니, 마침내 죽음에 이르렀다.

 

舜이 當出死에 敞이 使主簿로 持敎告舜曰「五日京兆가 竟何如오 冬月이 已盡하니 延命乎아」乃棄舜市하다 會立春에 行冤獄使者가 出이거늘 舜家가 載尸하고 幷編敞敎하여 自言한데 使者가 奏敞이 賊殺不辜라 하여 免為庶人하니 敞이 詣闕上印綬하고 便從闕下亡命이더니

 

서순이 나와 죽음을 당함에, 장창이 주부(主簿)로 하여금 교지를 가지고 가서 서순에게 고하게 하기를, “5일 경조윤이 끝내 어떠한가? 겨울이 이미 다했는데 연명하겠는가?” 하고, 마침내 서순을 죽여서 시체를 거리에 버렸다. 때마침 입춘에 억울한 옥사를 조사하러 사자가 나오자, 서순의 집에서 시신을 수레에 싣고 아울러 장창의 교지를 매고 스스로 (사정을) 말하니, 사자가 장창이 죄 없는 사람을 역적으로 죽였다고 하여, (장창을) 파면하여 서인으로 삼을 것을 아뢰었다. 장창이 대궐에 이르러서 인수(직인과 끈)를 바치고, 곧 대궐에서 목숨을 살려달라 하였더니

 

數月에 京師吏民이 解弛하여 枹鼓가 數起하고 而冀州部中에 有大賊이거늘 天子가 思敞功效하여 使者로 卽家召敞하니 敞이 身被重劾이라 及使者至에 妻子가 皆泣하되 而敞이 獨笑曰「吾身이 亡命為民하니 郡吏가 當就捕거늘 今使者來하니 此는 天子가 欲用我也로다」

 

몇달 후에 경사의 관리와 백성들이 해이해져서 도둑이 자주 일어나고, 기주 지역에 큰 도적이 있거늘 천자가 장창의 공적과 효과를 생각하여 사자를 곧 집에 보내어 장창을 부르니, 장창은 자신이 무거운 탄핵을 입었으므로 사자가 이르자 처자가 모두 울었지만, 장창은 홀로 웃으면서 말하기를, “내가 목숨이 살아서 백성이 되었으니, 군의 관리가 마땅히 체포해야 하거늘, 지금 사자가 왔으니, 이는 천자가 나를 등용하려 함이다.” 하였다.

 

裝隨使者하여 詣公車上書曰「臣이 前에 幸得備位列卿하여 待罪京兆다가 坐殺掾絮舜하니 舜은 本臣敞이 素所厚吏라 以臣으로 有章劾當免이라 하여 謂臣五日京兆라 하고 背恩忘義거늘 臣이 枉法誅之하니 雖伏明法이라도 死無所恨이니이다」 天子가 引見敞하고 拜為冀州刺史하니 敞이 到部에 盜賊이 屛迹이라

 

행장을 차려 사자를 따라 관용차에 올라 상서하여 아뢰기를, “신이 전에 다행히 벼슬자리를 얻어서 고급관리와 나란히 하였는데, 경조윤으로 죄를 기다리다 아전 서순을 죽인 죄에 걸렸습니다. 서순은 본래 제가 평소 두터이 대우했던 관리였으나, 신을 탄핵하는 글이 있어 마땅히 면직될 것이라 (생각)하여 신이 5일 동안의 경조윤이라 말하고 은혜를 배신하고 의리를 잊었으므로 신이 법을 구부려서 죽였습니다. 비록 밝은 법 앞에 복주된다 해도 한이 없습니다.” 했다. 천자가 장창을 불러서 보고 벼슬을 주어 기주자사로 삼으니, 장창이 그 지역에 이르자 도적들이 자취를 감추었다.

 

皇太子가 柔仁好儒라 見上所用이 多文法吏하여 以刑名繩下하고 嘗侍燕에 從容言하되 「陛下가 持刑太深하시니 宜用儒生이니이다」 帝가 作色曰 「漢家에 自有制度하여 本以霸王道로 雜之하니 柰何純任德敎하여 用周政乎아 且俗儒가 不達時宜하고 好是古非今하여 使人眩於名實하여 不知所守하니 何足委任이리오」 乃歎曰 「亂我家者는 太子也로다」

 

황태자가 유약하고 인자하며 유학을 좋아했다. 임금이 등용한 많은 법률 관리들이 형법으로 아랫사람을 통제하는 것을 보고, 일찍이 곁에서 시중들면서 조용히 말하기를, “폐하께서 형벌을 너무 각박하게 하시니 마땅히 유생들을 등용하셔야 합니다.” 하니, 황제가 (노여운) 안색을 지으며 말하기를, “한나라에서는 나름대로 제도가 있어서 본래 패도와 왕도로써 섞었으니 어찌 순수히 덕으로 교화함에 맡겼던 주나라의 정치를 쓰겠는가? 또 세속의 유생들은 시대의 흐름에 따르지 못하고 옛것을 옳다고 하고 지금 것을 그르다고 하니, 사람들로 하여금 겉에 나타난 이름과 속의 실상에 눈이 어두워서, 지킬 바를 알지 못하니 어떻게 족히 맡기겠는가?” 하고, 마침내 탄식하며 말하기를, “우리 한나라를 어지럽힐 자는 태자일 것이다.” 하였다.

 

溫公曰:王霸無異道。皆本仁祖義,任賢使能,賞善罰惡,禁暴誅亂;顧名位有尊卑,德澤有深淺,功業有鉅細耳,非若白黑、甘苦之相反也。漢之所以不能復三代之治者,由人主之不為,非先王之道不可復行於後世也。夫儒有君子,有小人。彼俗儒者,誠不足與為治也,獨不可求眞儒而用之乎!

 

온공(사마광)이 말하기를, “왕도와 패도는 다른 길이 아니다. 모두 인(仁)에 근본하고 의(義)에 바탕을 두어, 현자를 임용하고 능력 있는 자에 맡겨서, 선하면 상주고 악하면 벌을 주어, 난폭함을 금하고 어지러운 자는 죽이니, 다만 명칭과 지위에 높고 낮음이 있고, 덕택에 깊고 얕음이 있으며, 공훈과 업적에 크고 작음이 있을 뿐이요, 검고 흰 것과 달고 쓴 것처럼 상반된 것이 아니다. 한나라가 삼대(夏商周)의 정치를 회복하지 못한 까닭은, 군주가 하지 않음으로 인함이지, 선왕의 도를 다시 후세에 행할 수 없어서가 아니었다. 대체로 선비에 군자가 있고 소인이 있은데, 저 평범한 학자들은 진실로 더불어 정치함에 부족하지만, 오직 (진리를 터득한) 참된 선비를 구하여 등용함도 불가하겠는가!

 

稷、契、皐陶、伯益、伊尹、周公、孔子,皆大儒也,使漢得而用之,功烈豈若是而止邪!孝宣謂太子懦而不立,闇於治體,必亂我家,則可矣;乃曰:『王道不可行,儒者不可用。』豈不過甚矣哉!殆非所以訓示子孫,垂法將來者也.

 

후직, 설, 고요, 백익, 이윤, 주공, 공자는 모두 대학자였으니, 한나라로 하여금 (이런 사람을) 얻어 등용하게 하였다면, 뛰어난 공적이 어찌 이 같은 데 머물렀겠는가! 효선제는 “태자가 나약하여 확립되지 못하고, 정치의 요체에 어두우니 반드시 우리 한나라를 어지럽힐 것이다.” 라고 하면 곧 옳지만, 마침내 말하기를, “왕도를 행할 수 없고, 유자를 등용할 수 없다.” 고 하였으니 어찌 허물이 심하지 않은가! 그런 까닭에 자손을 훈시하여 장래에 드리워 본받게 할 것(말)이 거의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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