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당시
李賀(이하)
(791년 ~ 817년)
당나라의 종친이자 시인으로 본관은 농서고 출생지는 복창현 창곡 출생이며 자는 장길(長吉)이다.
벼슬이름에서 따서 이 봉례(奉禮)라고도, 출생지로부터 이 창곡(昌谷)이라고도 불리기도 하였다.
중당 시대[1]의 시인으로 성당기의 이백, 만당기의 이상은(李商隱)과 함께 삼이(三李)라고 불리며,
시선(詩仙) 이백, 시성(詩聖) 두보, 시불(詩佛) 왕유와 함께 당나라 4대 시인(당시4걸)로 꼽히기도 한다.
당고조의 숙부인 정효왕(鄭孝王) 량(亮)의 운손(雲孫)이고, 회안정왕(淮安靖王) 수(壽)의 잉손(仍孫)이고,
금주대도독(金州大都督) 오국공(吳國公) 효일(孝逸)의 곤손이고, 좌효위대장군 이조(李璪)의 내손이고,
조청대부(朝請大夫) 태자복(太子僕) 이흥(李興)의 현손이고, 심주별가(深州別駕) 이도(李陶)의 증손이고,
섬현령(陝縣令)을 지내며 소백사(邵伯祠)를 다시 세우고 비석을 세운 이진숙(李晉肅)과 부인 정씨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이하는 비록 황족이지만 두보의 친척이라는 것 빼고는 거의 방계 중의 방계였던지라 실질적으로는 별볼일 없었고,
아버지 이진숙도 출세를 못 하고 일찍 죽었고 재산도 넉넉하지 못 했다.
이하는 어릴 때부터 싹수가 남달라 식은 죽 먹듯 시구를 지어냈다.
그는 불과 17세의 나이로 당대 문단의 거두이자 중국 시사에서도 이름 높은 한유를 찾아갔다.
물론 듣도 보도 못한 어린 것을 한유가 만나줄 리 없었으나 이하는 하인에게 자신의 시를 전했고,
한유는 첫 구절을 보자마자 황급히 이하를 맞아들였다.
재능도 뛰어났고 거두이자 높은 관직에 있었던 한유의 후원을 받게 되었으니, 이하의 출세는 보장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허나 과거의 첫걸음인 진사시를 치르기 위해 장안을 찾아간 이하는 청천벽력 같은 개소리를 듣게 되는데,
진사의 진(進)과 이하의 부친 이진숙의 진(晉)이 같은 소리니, 이 기휘 때문에 너는 진사가 될 수 없다는 말이었다.
이는 이하와 같이 진사시에 응시한 다른 경쟁자들의 망언이었으나 받아들여졌고, 이에 한유 역시 휘의 변이라는 글을 통해 극력 반론했으나,
끝내 주변인들은 그런 개소리가 진짜라며 듣지 않아 이하는 진사시를 치르지 못하고 실의에 빠져 창곡으로 돌아갔다.
한유는 그런 이하의 재능을 아깝게 여겨 어떻게든 간에 이하를 관직생활에 올리고자 여러가지로 물심양면 후원했지만,
그때마다 주변 사람들은 들어주지 않았다.
한유는 포기하지 않고 황실에까지 건의를 올렸고, 황실에서는 고민 끝에 이하가 방계 황족인 것을 감안해서 나름의 배려로 낮은 벼슬을 내린다.
이듬해, 이하의 일생에서 잠깐의 빛이 들어오니, 이하는 한유의 적극 추천으로 봉례랑이라는 관직을 받았긴 하였으나,
이는 원래부터가 황족에게 돌아가는 종구품의 벼슬자리로 제사 때 제기의 위치 및 백관들의 앉는 자리를 정해주는 일이었다.
2년간 봉례랑으로 봉직하나 스스로 물러난다.
그저 종실이라 봉례랑을 하고 있을 뿐이라 여겨 별다른 희망을 느끼지 못했을 수도,
높은 자부심에 진사도 거치지 못한 자신의 처지와 과거를 거친 다른 이들을 비교하며 차마 견딜 수 없었을 수도,
병약한 몸에 종구품 실무직의 업무가 과중했을 수도.
낙향한 다음해 다시 청운의 뜻을 품고 친구를 따라 산서성으로 향하나 별 신통한 일은 없었다.
결국 고향에 돌아온 이하는 병을 얻게 되고 시름시름 앓다 2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게 된다.
스물다섯부터 이미 백발이었다고 한다.
아내와도 일찍 사별해 자식은 없었다.
짧은 생을 살다 갔음에도 불구하고 그 흔적이 강렬했기에 여러 일화와 고사가 대시인을 둘러싸고 있다.
일찍이 심장을 토해야만 시 쓰기를 그만두겠다는 모친의 탄식처럼 시에 미쳤던 이하는 조랑말과 서동을 대동하고,
이곳저곳을 다니다 이하가 아름다운 시귀를 뱉으면 서동이 이를 받아적고는 비단주머니에 담았다고 하는데,
아름다운 글귀를 일컫는 금낭가구(錦囊佳句)란 어휘는 이하의 고사로부터 유래하였다.
비단주머니 속에 고이 간직했던 이하의 시는 그 주인에게 시귀(詩鬼), 혹은 '다시 없는 귀신과 같은 재주'란 뜻의 귀재절(鬼才絶)라는 명칭을 안겨 주었는데,
이는 이하의 시 세계가 중국시사에 있어 그 전에도 없었고 그 앞으로 지금까지도 없을 만큼의 독특함을 보유하였기 때문이다.
어머니인 정씨 부인은 아들의 짧은 생을 이해한 듯 "내 아들은 매일 마지막을 사는 것처럼 시를 쓰는구나..."라고 탄식하였다.
늦은 저녁식사를 한 뒤, 시동이 가져온 붓과 먹, 벼루를 받고 자신이 담은 글귀를 토대로 시를 지으니
그의 일생에서 짧지만 많은 시가 내려오는 것은 이 때문이다.
천상수문, 우귀사신이란 단어 역시 이하 시세계의 기묘함을 엿볼 수 있는 단면으로 기능할 수 있다.
천상수문(天上修文)은 이하가 젊어 세상을 떠날 때 어머니더러 지금 옥황상제의 사자가
내 앞에 백옥루의 상량문을 지어달라고 와 있으니 그리로 가겠다고 유언을 남긴 것에서 비롯한다.
이 이야기는 어머니를 안심시키려는 효성의 발로, 정말 죽음을 눈 앞에 두고 환각 둘 중 어느 것이어도 형언키 어려운 향기를 품긴다.
우귀사신(牛鬼蛇神)은 이하 시인 두목이 머리 대신 소대가리가 솟아있는 귀신이나 뱀의 몸뚱이를 한 귀신으로도
이하 시의 허황되고 환상적인 면을 형용키엔 부족함이 있다고 일컬은 데에서 비롯한다.
그의 대표작인 소소소묘는 남북조시대 기생 소소묘, 즉 처녀귀신과 접신하는(...) 내용이다.
다른 대표작인 <장진주(將進酒, 술을 올리는 노래)>, <신현곡(神絃曲, 귀신에게 제사 지내는 노래)>는 아예 대놓고다(...).
절망을 다룬 시도 많다. <추래(秋來)>, <상심행(傷心行)>이나 <증진상(贈陣商, 진상에게 드림)>은 그야말로 음울한 시.
秋來(추래)
/ 李賀(이하)
桐風驚心壯士苦
衰燈絡緯啼寒素
誰看靑簡一編書
不遣花蟲粉空蠹
오동잎에 바람 이니 사나이 마음 괴로운데
희미한 등불에 풀벌레 소리 차가워라
그 누구일까, 나의 시를 읽으며
화충(華蟲)에 좀먹지 않게 할 자는
▶桐風 : 오동나무 가지 끝에 부는 사람. 가을 바람.
▶壯士 : 포부가 큰 사람.
▶絡緯 : 베짱이의 일종
▶寒素 : 깨끗한 가난. 여기서는 가을 날씨를 표현한 것이다.
▶靑簡 : 서책. 종이가 발명되기 이전 푸른 대나무 조각을 줄에 쬐어 기름을 제거하고 거기에 글을 썼던데서 유래한다.
▶花蟲 : 종이를 좀먹는 벌레
思牽今夜腸應直
雨冷香魂弔書客
秋墳鬼唱鮑家詩
恨血千年土中碧
서글픈 생각에 이 밤 가슴 메이고
차가운 비 속에 향혼이 시인을 위로하네
가을 무덤 속 귀신 되어 포조의 시 노래하며
한스러운 피는 천년을 땅 속에서 푸르리라
▶香魂 : 아름다운 혼. 古 시인의 혼을 가리킨다.
▶書客 : 작자 자신을 가리킨다.
▶鮑家詩 : 남조 손나라의 鮑照가 지은 시. 죽은자의 감개를 나타낸 시.
▶恨血千年土中碧 : <장자 외물>편에 周나라 萇弘이 죄없이 무고하게 사형을 당하여 원한 때문에
그의 피가 3년 후에는 碧玉으로 변했다는 고사가 있는데 이를 인용한 것.
將進酒(장진주)
/ 李賀(이하)
琉璃鍾 琥珀濃
小樽酒滴眞珠紅
유리 술잔에 호박빛 짙은 술
작은 술통의 술방울은 진주처럼 붉다.
▶ 琉璃 : 瑠璃, 流離로도 쓰며 청색의 투명한 寶玉. 鍾은 이런 유리로 만든 큰 술잔.
▶ 琥珀 : 松脂가 땅에 들어가 천년 묵어 되었다는 보옥. 琥珀濃은 짙은 술이 황갈색의 호박빛이라는 뜻.
▶ 小槽 : 조그만 나무 술통
▶ 滴 : 방울져 떨어짐.
▶ 眞珠紅 : 술이 진주처럼 맑은 윤이 나면서도 붉다는 뜻.
烹龍炮鳳玉脂泣
羅幃繡幕圍香風
용을 삶고 봉을 구으니 옥같은 기름 울고
수놓은 비단 휘장은 향기로운 바람이 감돈다.
▶ 烹龍炮鳳 : 용을 삶고 봉새를 굽다. 좋은 안주를 마련함. 龍은 짐승, 鳳은 닭을 가리킨다.
▶ 玉脂泣 : 구슬 같은 기름이 울다. 기름이 이글거림을 뜻한다.
▶ 羅幃 : 비단 장막.
▶ 綉幕 : 수놓은 장막.
吹龍笛 擊鼉鼓
皓齒歌 細腰舞
龍笛(용적) 불고 鼉鼓(악어거죽 북) 치니,
이 하얀 미인이 노래하고 가는 허리 흔들며 춤을 춘다.
▶ 龍笛 : 용의 소리를 내는 저
▶ 鼉(악어 타) : 악어 타. 鼉鼓는 악어 가죽으로 만든 북
▶ 皓齒 : 흰 이. 미인의 한 가지 요건으로 미인을 나타냄. 細腰 : 가는 허리. 미녀.
况是靑春日將暮
桃花亂落如紅雨
하물며 청춘의 봄날도 저무려 하는데
흩날리는 복사꽃은 붉은 빗발처럼 진다.
勸君終日酩酊醉
酒不到劉伶墳上土
권하노니 그대여 종일토록 한껏 취하세
술은 유령도 무덤에 까지는 가져가지 못하나니
▶ 酩酊(명정) : 술이 얼근히 취함. 곤드레 만드레 취함. 酩(술 취할 명)酊(술 취할 정)
▶ 劉伶(유령) : 晉 죽림칠현의 대표적인 인물. 언제나 술병을 차고 다니며,
하인을 시켜 괭이를 메고 따라다니게 하고, ‘죽으면 즉시 나를 묻어라’라고 하였다고 한다.
자신의 形骸를 잊고 술을 마셨고 〈酒德頌〉을 지었다.
시의 대의는 李白의 〈將進酒〉나 같다.
아름다운 봄날, 좋은 술그릇에 담긴 美酒를 미인들의 가무를 즐기며 마시고 있다.
이것이 인생의 가장 큰 낙이다.
사람은 죽으면 그만이니 마음껏 마시며 즐기자.
호화로운 자리에서 술을 마시는 서술이 대부분인데도 이백의 시보다 더 감상이 느껴진다.
嘲少年(조소년)
철없는 소년을 비웃다
/ 李賀(이하)
少年安得長少年
海波尙變爲桑田
枯榮遞傳急如箭
소년이 어떻게 언제나 소년일 수 있으랴,
바다 물결도 뽕나무 밭으로 변하는 것을.
영고성쇠가 화살처럼 급히 뒤바뀌나니,
天公豈肯爲君偏
莫道韶華鎭長在
白頭面皺專相待
하늘이 어찌 너희들만 특별히 봐주려 하겠는가.
항상 청춘 시절에 눌러 있으리라고 말하지 말라,
너희들 기다리는 것은 오로지 백발에 주름살뿐이리니
흰머리는 근심과 걱정 때문이 아니라, 세월의 흐름 속에서 빈부귀천을 막론하고 누구나 공평하게 생기게 마련이라는 말이다.
이백(李白)의 시에 “나의 백발 보소 무려 삼천 장, 시름 속에 이처럼 자라났다오.
〔白髮三千丈 緣愁似箇長〕”라는 유명한 구절이 나온다.
《李太白集 卷7 秋浦吟》
작성자 낙이망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