梅答(매답)
/ 李滉(이황)
我是逋翁換骨仙(아시포옹환골선)
나는 바로 환골한 신선 임포요
君如歸鶴上遼天(군여귀학상료천)
그대는 학을 타고 요동에 돌아온 것 같구려
相逢一笑天應許(상봉일소천응허)
서로 만나 한 번 웃음 하늘도 허락하셨으니
莫把襄陽較後前(막파양양교후전)
양양의 매화와 선후를 비교하지 마오
〈감상〉
이 시는 매화가 이황에게 대답한다는 재미있는 발상으로, 이황이 지은 매화시(梅花詩) 64제(題) 91수 가운데 한 편이다.
매화는 환골한 임포요, 이황은 요동의 학이다.
매화와 이황이 서로 만나 웃음 짓는 일을 하늘도 허락하였으니,
매화가 양양보다 늦게 피는 것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말하지 말게나. 이것은 모두 자연의 조화에 의한 것이니.
이황은 이 시를 짓게 된 동기에 대해 “양양에서 매화를 본 후 한참이 지난 후에 도산의 매화가 처음 피었다
(양양견매후(襄陽見梅後) 근수순이도산매시발(近數旬而陶山梅始發)).”라 말하고 있어,
매화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었음을 보여 주고 있다.
『해동잡록』에 이황의 도학(道學)과 효도(孝道) 등에 관한 간략한 생평(生平)이 다음과 같이 실려 있다.
“본관은 진성(眞城)으로 자는 경호(景浩)이며, 퇴계(退溪)라고 스스로 호를 지었다.
중종 때에 등제하였으며, 나면서부터 천성이 심히 높고 학문은 정밀하고 깊으며 고정(考亭) 주자(朱子)를 높이 믿어 그의 학문을 깊이 체득하였다.
여러 번 임금의 부름을 받아 나아가고 물러남에 있어 도의로써 진퇴를 결정하였고,
도산(陶山)에서 여러 제자들에게 도학을 강의하여 문인들이 많이 성취하여 동방 이학(理學)의 조종(祖宗)이 되었다.
벼슬이 좌찬성에 이르렀으며 특별히 영의정에 추증되었다.
시호는 문순(文純)이고, 찬술한 『이학통록(理學通錄)』·『주자서절요(朱子書節要)』·『계몽전의(啓蒙傳疑)』·『성학십도(聖學十圖)』가
세상에 전한다.
선생은 조금 자라서는 언어와 동작이 반드시 예법에 맞았으며 더욱더 돈독히 어버이를 사랑하였다.
닭이 울면 일어나 세수하고 양치질하고 의대를 반드시 갖추고 모부인을 살폈다.
말소리는 부드러웠고 나지막하였으며 상냥스럽고 기쁜 안색으로 저녁에 부모를 위해 잠자리를 보아 드릴 때까지 이와 같이 하였다.
잠자리를 펴고 이부자리를 개 드리는 일도 반드시 몸소 하였다.
(眞城人(진성인) 字景浩(자경호) 自號退溪(자호퇴계) 我中廟朝登第(아중묘조등제) 天分甚高(천분심고)
學問精深(학문정심) 尊信考亭(존신고정) 深得蘊奧(심득온오) 累下徵召(누하징소)
進退以義(진퇴이의) 與諸子講道陶山(여제자강도도산) 門人多有成就(문인다유성취)
爲東方理學之宗(위동방리학지종) 官至左贊成(관지좌찬성) 特贈領議政(특증령의정) 謚文純(익문순)
所撰理學通錄朱子書節要啓蒙傳疑聖學十圖(소찬리학통록주자서절요계몽전의성학십도) 行于世(행우세)
先生稍長(선생초장) 言語動止(언어동지) 必以禮法(필이례법) 而尤篤愛親(이우독애친) 鷄鳴盥漱(계명관수)
衣帶必飭(의대필칙) 以省母夫人(이성모부인) 怡聲下氣(이성하기) 婉容愉色(완용유색)
至昏定亦如之(지혼정역여지) 枕席之設(침석지설) 衣衾之斂(의금지렴) 必身親爲之(필신친위지)).”
〈주석〉
〖逋(포)〗 임포로, 북송시대 사람으로 매화를 매우 사랑하여 아내라 지칭함.
〖歸鶴(귀학)〗 도연명(陶淵明)의 「수신후기(搜神後記)」에,
“정령위(丁令威)는 본래 요동(遼東) 사람으로 영호산(靈虎山)에서 도를 배워 신선이 되었는데,
그가 뒤에 학으로 화하여 성문 앞의 큰 기둥인 화표(華表)에 앉아 있었다.
이때 어떤 소년이 활로 쏘려고 하자 학이 날아서 공중을 배회하며 말하기를,
‘새여, 새여, 정영위로다. 집을 떠난 지 천 년 만에 이제야 돌아오니,
성곽은 예전과 같은데 백성은 그때 사람이 아니로구나.
어찌하여 신선술을 배우지 않아 무덤만 즐비한고.’ 하고는 날아가 버렸다.” 하였다 함.
〖把〗 잡다, 대하다 파.
-원주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