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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 한 편의 여행

작성자이미경|작성시간26.06.06|조회수20 목록 댓글 1

  20245월 대구오페라하우스 앞. 봄의 전령들이 마음을 흔드는 계절이다. 여행객을 태운 관광버스 한 무리가 지나간다. 어디론가 떠나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잠시 부러움을 느꼈지만, 저녁 7시에 시작하는 오페라 안드레아 셰니에를 보기 위해 편의점에서 산 샌드위치를 먹고 공연장으로 들어갔다. 봄나들이를 대신한 직장인의 작은 사치였다.

 

  객석의 불이 꺼지고 무대 조명이 켜지자 프랑스 로코코시대 화려한 의상을 입은 배우들이 등장했다. 아름다운 아리아가 울려 퍼지자 분주한 일상은 어느새 머릿속에서 사라진다.

 

  오페라는 프랑스 혁명을 배경으로 한다. 낭만주의 시인 앙드레 세니에, 귀족의 딸 막달레나, 하인에서 혁명정부의 간부가 된 제라르가 주요 인물이다. 극 초반은 귀족 아가씨 막달레나가 혁명가 세니에를 무시하다가 사랑에 빠지는 과정이 펼쳐진다. 그러나 혁명이 깊어질수록 이야기는 어두워진다. 혁명 세력이 분열되고, 자코뱅파의 공포정치를 비판하던 세니에는 반혁명 세력으로 몰려 사형선고를 받는다. 막달레나는 그와 함께 죽기 위해 제라르의 도움을 받아 여죄수와 자신을 바꿔치기한다. 마지막 장면, 주인공들은 단두대에서 우리의 죽음은 사랑의 승리라고 노래하며 최후를 맞는다. 공들인 무대와 의상은 나를 혁명기의 프랑스로 데려갔다. 특히 거대한 로베스피에르의 얼굴 형상이 세워진 무대는 섬뜩한 기운을 뿜어내 압도하였다.

 

  공연이 끝나고 밖으로 나오니 헤드라이트를 켠 차들이 도로를 빠르게 지나간다. 마치 시간과 공간을 건너 현실로 돌아온 기분이다. 대구역으로 걸어가는 길에 함께 공연을 본 동료가 말했다. “같이 죽자는 건 좀 아니지요. 나는 죽더라도 당신은 살라고 해야지요” 같은 생각이라 맞장구쳤다. “그러게요. 다 좋았는데 그 부분은 조금 정신 승리 같았어요. 이래서 괴테가 낭만주의를 현실도피라고 했나 봐요” 우리는 한참 웃었다. 그리고 일도 중요하지만 가끔은 공연도 보고 마음을 위한 시간도 갖자며 헤어졌다.

 

  집으로 오는 전철 안에서 공연의 마지막 장면이 다시 떠올랐다. 정치적 혁명으로 서슬이 퍼렇던 시절, 오페라는 애절한 연인의 죽음을 비극이라고 말하기보다 찬란한 사랑의 승리로 표현했다. 생각해보면 프랑스 낭만주의 시대는 그 이름처럼 낭만적이지 않았다. 자유와 평등을 외치던 혁명가들은 서로를 반목하고 공격해 한때의 동료마저 죽음으로 몰아갔다. 이상과 현실의 충돌 속에서 그 시절의 사람들은 어떤 마음으로 위로하며 살아야 했을까. 오페라 주인공들의 선택은 단순한 정신 승리가 아니라 죽음의 공포를 견디고 삶의 의미를 찾으려는 마지막 몸부림이었을지도 모른다.

 

  역사(驛舍)를 나서자 밤바람이 얼굴을 어루만지듯 부드럽게 스쳐 지나간다. 그제야, 죽음조차 넘어서는 사랑의 승리를 노래하던 그들의 간절한 마음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에둘러 낭만주의는 하나의 병적 현상이다 비판한 괴테도 이해하기로 했다. 현실의 잣대를 내려놓으니 한결 너그러워진다. 집에 도착하니 자시의 깊은 밤이다. 하루의 피로로 몸은 무거웠지만, 짧은 여행 같았던 오페라 한 편의 잔상이 남아 나에게 위로를 건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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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이미경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6.06.06 2년 전 오페라 감상 후 적은 글을 정리해서 올립니다. 2년을 묵혀두었지만 오래둔다고 글이 숙성되지는 않네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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