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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모란와인 / 박이화

작성자문근영|작성시간26.06.06|조회수9 목록 댓글 0

모란와인

 

              박이화

 

취해도 아름다운 건

술이 아니라 꽃이다

길고 우아한 꽃대에

한 잔의 와인처럼 찰랑이는 모란

 

아직 반이 채워졌다고 해야 하나

이미 반이 비워졌다고 해야 하나 잠깐

고민하는 사이

이 잔에서 저 잔으로 붉은 나비의 입술 옮겨 간다

 

목이 길어 슬픈 짐승처럼

저 미끈한 녹각 위에 피보다 선명한 한 잔의 와인

그 모란 한잔 쏟아진 자리에

핏빛 흥건한 꽃잎 엎질러져 있다

그렇게 피는 물보다 진하고

그 피보다 진한 게 또 사랑이어서

일배일배부일배*

취해서 아름다운 건 술이고

취해도 아름다운 건 꽃이다

바람 앞에서

또다시 잔과 잔이 부딪히며

이윽고 봄날은 빈 술병처럼 깊어간다

 

 

* 이백의 시 인용

 

                       <시에> 2011년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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