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란와인
박이화
취해도 아름다운 건
술이 아니라 꽃이다
길고 우아한 꽃대에
한 잔의 와인처럼 찰랑이는 모란
아직 반이 채워졌다고 해야 하나
이미 반이 비워졌다고 해야 하나 잠깐
고민하는 사이
이 잔에서 저 잔으로 붉은 나비의 입술 옮겨 간다
목이 길어 슬픈 짐승처럼
저 미끈한 녹각 위에 피보다 선명한 한 잔의 와인
그 모란 한잔 쏟아진 자리에
핏빛 흥건한 꽃잎 엎질러져 있다
그렇게 피는 물보다 진하고
그 피보다 진한 게 또 사랑이어서
일배일배부일배*
취해서 아름다운 건 술이고
취해도 아름다운 건 꽃이다
바람 앞에서
또다시 잔과 잔이 부딪히며
이윽고 봄날은 빈 술병처럼 깊어간다
* 이백의 시 인용
<시에> 2011년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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