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안도현
내가 강에 나갔을 때
강은 삐걱거렸다
허리가 시큰하다 하였다
나는 보았다, 강에 나갔을 때
통속한 굴삭기와 식탐 많은 덤프트럭이
오래오래 잘 늙은 강의 허리를 파먹기 시작하는 것을
강은 더 이상 흐르지 않게 되었고
흐르지 않자, 엎드리게 되었고
엎드리자, 강의 뱃가죽에서
네 개의 발이 생겨났고 그리하여
개처럼 기어다니는 강이 되었다고 하였다
내가 강에 나갔을 때는 저녁이었고
강은 어스름 속에서 컹컹 짖었다
눈에 보이는 것에 빠져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잃어버린 나는
지금, 지금이라도 보려고 한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려고 한다, 강이여
한 마리의 큰 물고기였지, 원래 너는
물살이라는 이름의 등지느러미와
냇물이라는 이름의 꼬리지느러미를 가진,
아가미로 아가처럼 숨을 쉬고
비늘처럼 가지런한 물결이 반짝이는,
퍼덕이며 세상을 끌고 가는 물고기였지
아버지가 너를 구워 밥상에 올릴 때는 좋았어
그때는 팬티도 입지 않고 물장구를 쳤지만,
내 발목을 간질이는 모래무지를 손으로 움켜잡았지만,
나도 어린 물고기가 되어 너의 속살을 파고들었지만,
은모래로 온몸을 덮고 태양하고 눈을 맞추었지만,
나는 너를 구워 밥상에 올릴 일이 없겠다
네 앞에 서면 내 청춘의 울음도 뚝 멎었어
울지 마라, 내가 대신 울어줄게, 하고
네가 말했지 나를 대신해서 네가 울어준다는 말은
이 세상의 눈물을 네가 모두 모아
바다로 간다는 뜻이었어 얼마나 고마웠는지
너는 강이므로 그냥
강으로 흐르고 싶다고 말했지
너는 강이므로 강이 되어 살고 싶다고
네가 하는 말을 듣고 귀를 떼어낸 자들 덕분에
막고, 파내고, 실어 나르고, 막고, 파내고 실어 나르고,
막고, 파내고, 실어 나르고, 막고, 파내고 실어 나르고,
막고, 쌓고, 높이 쌓고, 막고, 쌓고, 높이 쌓고,
네가 하는 말을 듣고 귀를 떼어낸 자들 덕분에
마침내 강은 죽어가고 있다
산맥들은 포기했다
힘차게 뻗어내리다가 뜨거워진 발을
서늘한 강물에 담그고 식히는 일을!
왜가리 아가씨는 외면했다
하루종일 시집갈 생각을 하며
물빛 거울을 들여다보는 일을!
콘크리트 때문에,
철근 때문에.
바퀴자국 때문에,
중금속 때문에,
쓰레기 때문에,
우레탄 때문에,
아스팔트 때문에,
농경지 리모델링 때문에.
마침내 강은 죽어가고 있다
강물 속에 살던 이들이 등을 돌리리라
밤마다 별빛을 켜는 점등사가 이제 등을 돌리리라
조약돌을 닦는 구두 수선공 아저씨가 이제 등을 돌리리라
강변에 살던 이들이 떠나리라
수달 소년과 수달 소녀가 은밀히 동거하던 작은 집이 철거되리라
물 위에 복사꽃 도배를 잘하는 복숭아 아줌마가 강제이주당하리라
강이 죽고
강의 장례식이 끝나면
그다음은 수염이 거뭇거뭇한 아가들이 유모차에 실려 오고,
그다음은 자전거 탄 청춘들이 떨리지 않는 연애를 하러 오고,
그다음은 젖니가 돋은 노인들이 와서 앙앙 울 것이다
강이 죽고
강의 장례식이 끝나면
그리하여 마지막으로 불러보는,
강이라 부르지만 다시는 강이라 부를 수 없는,
그리하여 마지막으로 불러보는,
강이라 부르지만 다시는 강이라 부를 수 없는,
강이여,
강이여,
강이여,
강이여,
- <문학동네> 2012년 봄호,
안도현 : 1961년 경북 예천 출생.
1984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