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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노란 샤쓰 입은 사나이와 빨간 구두 아가씨 /정끝별

작성자문근영|작성시간26.06.14|조회수11 목록 댓글 0

노란 샤쓰 입은 사나이

빨간 구두 아가씨



                                                   정끝별




  어머니는 노란샤쓰 입은 사나이와 살구요 아버지는 빨간 구두 아가씨와 살아요

처음부터 그런 건 아이에요 어머니가 장바구니에 방 한칸을 들였을 때부터에요
말없이 노란 샤쓰가 무겁디무거운 어머니의 장바구니를 들어주었다지요 어머니는

매일 장바구니를 옆에 끼고 노란 샤쓰 입은 사나이를 만나로 가요 가로등도 졸 때
쯤이면 어머니는 개나리처럼 노랗게 물든 채 돌아와서는 아버지 침대에 들어요

아버지는 글쎄 오늘도 버스를 갈아타는 길목에서 똑똑똑 빨간 구두 아가씨와 주저

앉아 있다 진달래 처럼 붉게 물든 채 돌아와 코를 골고 있어요 아버지는 쳐져만 가

는 왼쪽 어깨에 코를 박고 걷다  똑똑똑 빨간 구두를 처음 보는 순간 가슴에 빨간

불이 켜졌다지요그 불이 좀체 꺼지지 않아 그만 길 한복판에 붉은 등불을 걸고 주저

앉아버렸다지요 아버지와 어머니는 나란히 깊은 잠에 빠졌다가 아침이면 말갛게

일어나 마주보며 칫솔질을 할 거에요 반평생을 그렇게 어머니는 간당간당 아버지를

 노란 샤쓰 단춧구멍에 단단히 밀어넣은 채 말없는 노란 샤쓰 입은 사나이와 살았고  
요 아버지는 시름시름 어머니를 빨간 구두 굽에 박은 채 똑똑똑 빨간 구두 아가씨와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 시집 
『와락』창비, 2008년 9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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