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
이진명
문방구점에 가고 싶다
백동전을 두 손에 모아 쥐고
발을 들어올리며
저 횡단보도를 건너
자전거가 지나가고 나서
머리를 두 갈래로 땋은 소녀들이 이르면
그 소녀들을 몇 발짝 앞세운 채
짐짓 뒤에서 늦게 문을 열고 싶다
비밀스럽게 지퍼가 채워진 필통을 골라
한 자루의 일용할 연필을 사 넣고
찰고무 지우개도 하나 사서
필통 모서리에 살짝 끼워 두고 싶다
점을 두 개나 찍어 틀렸을 때
얼른 꺼내 그 하나를 하얗게 지우리라
그리고는 백동전을 내고 싶다
큰 백동전 위에
작은 백동전을 하나씩 하나씩
머리를 두 갈래로 땋은 소녀들을 뒤로 하고
먼저 문을 나서고 싶다
하늘빛이 셀로판지처럼 퍼지리라
큰길을 건너가지 않고
집집의 대문 앞을 지나
골목으로 해서 늦게 돌아오고 싶다
담 밖으로 조금 내려서고 있는 새 잎줄기를 보면
슬쩍슬쩍 당겨 주면서
- 시집 『밤에 용서라는 말을 듣는다』 믿음사, 1992년 30~31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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