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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벽제 가는 길 / 이승희

작성자문근영|작성시간26.06.22|조회수19 목록 댓글 0

벽제 가는 길

 

                    이승희

 

  벽제 가는 길

  탄약 대대 앞, 면회 온 가족들이 줄지어 선 불고깃집을 지나

  가방공장으로 누님 만나러 가는 길

  이 세상에 누님이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의 이름을 불러본다. 이름 끝으로 깊고 어두운 낭하가 생겼다. 버스 한 대가 길 끝으로 사라질 즈음 주황색 추리닝을 입은 군인들이 담벼락 아래에서 삽질을 시작하고 있었다.

  일요일, 꽃들도 쉬는가, 이 길이 왜 이리 멀고 아프냐

  날 업고 키웠다는 누님, 날 업고 줄넘기를 했다는 누님, 내가 순둥이라서 힘들지 않았다는 누님, 참꽃에 찔레 새순 벗겨주던 누님.

  이 세상에서 가장 쓸쓸한 일은 가난하다는 것인가. 아니라고 말하지 말라. 그 순간 돌이 될 것이다.

  길보다 낮게 염색공장을 지나온 물들이 피처럼 붉다. 바라보는 풀들도 핏물 들고, 핏물 든 풀들 씨앗 속으로 은밀하게 핏물을 숨겨 보내리라 그리하여 온 세상 붉은 풀씨로 가득하리.

  벽제 가는 길

  흰머리 둥실둥실 자꾸만 가벼워지는 누님이 있는 길

  검문소를 지나 양계장 같은 가건물 속, 거기 있는 누님.

  늦은 저녁을 먹고

  깊은 잠 자고 싶은 누님, 같은 감자꽃이 혼자서 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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