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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십이장경(四十二章經)강의 18회

작성자무소|작성시간10.06.03|조회수105 목록 댓글 0

 

사십이장경(四十二章經)강의 

 

지난 ‘제16회’와 ‘제17회’에서 10바라밀을 설명했다. 이번회는 계속해서 본문을 설명한다. 다른 사람에게 도를 베푸는 자는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복을 받는다. 그런데 타인에게 도를 베푸는 사람을 보고 도와주거나 따라 기뻐만 해도 얻는 복이 크다고 하면, 처음 도를 베푸는 사람의 복에서 도와주거나 따라 기뻐한 사람이 얻는 복만큼 도를 베푼 사람의 복이 감소하는 것이 아닌가?하는 의문이 생길 수 있다. 이 의문을 어떤 사문이 부처님에게 물었던 것이다. 이에 대해 부처님께서는 횃불의 비유를 들어 설명하고 있다. 가령 여기에 하나의 횃불이 있다. 많은 사람이 그 횃불에서 불을 붙여서 각자가 음식을 해 먹거나 어둠을 밝히는 등으로 사용하더라도 원래의 횃불은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이와 같이 도를 베푸는 것을 보고 도와주거나 따라 기뻐한 공덕이 아무리 많더라도 원래 도를 베푼 사람의 복은 줄어드는 것이 아니다.

  그러면 도를 베푸는 사람을 보고 도와주거나 따라 기뻐한 사람의 복은 얼마나 클까? 이것은 산술적으로 계산이 되는 것이 아니지만 도와주는 마음과 따라 기뻐하는 마음의 정도에 따라 복의 크기가 달라진다고 하겠다. 다시 말하면 마음 씀씀이의 정도에 따라 달라진다. 간화선에서 “의심이 크면 크게 깨닫고, 의심이 작으면 작게 깨닫는다.”라는 말이 있듯이 복의 크기도 이와 같이 마음 씀씀이에 달려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 장은 결국 수희공덕(隨喜功德)을 말하는 것이다. 수희공덕에 대하여 대표적인 것이 보현보살의 십대원(十大願) 중 다섯 번째 수희공덕원인데 다음과 같다.


  다시 선남자야 수희공덕이라는 것은 있는바 온 법계 허공계 시방삼세 일체불찰의 극미진수 제불여래가 초발심으로부터 일체지를 위해서 부지런히 복취(福聚)를 닦되 목숨을 아끼지 아니하기를 불가설 불찰극미진수겁이 지나도록 낱낱 겁 가운데 불가설 불가설 불찰 극미진수 머리와 눈과 손과 발을 보시하였느니라. 이와 같이 일체의 행하기 어려운 고행으로 가지가지 바라밀문을 원만히 하시며 가지가지 보살지의 지위에 들어가서 모든 부처님의 위없는 보리를 성취하시고 열반에 들어서 사리를 분포하신 가진 바 선근을 내가 다 따라서 기뻐하며 저 시방일체 세계 육취사생 일체종류의 가진 바 공덕을 내지 한 티끌이라도 내가 따라서 기뻐하며 시방삼세 일체 성문과 벽지불의 유학과 무학의 가진바 공덕을 내가 다 따라서 기뻐하며 일체 보살의 닦은바 한량없는 행하기 어려운 고행으로 뜻을 세워 무상정등보리를 구한 광대한 공덕을 내가 다 따라서 기뻐하리니 이와 같이 하여 허공계가 다하며 중생계가 다하며 중생의 업이 다하며 중생의 번뇌가 다할지라도 나의 이 따라서 기뻐함은 다함이 없어서 생각 생각이 서로 이어지고 끊어짐이 없어서 몸과 말과 생각하는 업에 피로하거나 싫어함이 없느니라.(중산 혜남스님의 보현행원품 강설. p117)


  위 보현보살의 수희공덕원을 보면 도를 베푸는 사람을 어떻게 도와주고 따라 기뻐하여야 할 것인가에 대해 참고가 된다. 첫째는 수희(隨喜)의 기간인데, 허공이 다하여 사라지고, 중생이 다하여 사라지더라도 수희의 원을 그만두지 않겠다는 것이다. 즉 영원히 수희하겠다는 것이다. 둘째는 수희의 마음가짐이다. 따라서 기뻐하는 마음이 어떤 때에는 있고, 어떤 때에는 없는 것이 아니라 생각 생각이 서로 이어져서 항상 수희하는 마음을 가지겠다는 것이다. 셋째는 싫증을 내지 않아야 한다. 우리 중생은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그것이 반복되면 매너리즘에 빠지거나 싫증을 낸다. 이처럼 싫증을 내면 복이 생기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나쁜 업만 짓게 된다. 따라서 결코 싫증을 내어서는 안 된다.

  고려 때 균여대사는 수희공덕을 향가(鄕歌)로 지었는데, 다음과 같다.


迷悟同體叱  緣起叱 理良 尋只見根  佛 伊 衆生 毛叱所只 吾衣 身 不喩仁 人音 有叱下呂

미오동체질  연기질 리양 심지견근  불 이 중생 모질소지 오의 신 불유인 인음 유질하여


修叱賜乙隱 頓部叱 吾衣 修叱孫丁   得賜伊馬落 人迷 無叱昆

수질사을은 돈부질 오의 수질손정   득사이마락 인미 무질곤


於內 人衣 善陵等沙  不冬 喜好尸 置乎理叱過  後句 伊羅 擬可 行等  嫉妬叱 心音 至刀來去

어내 인의 선를등사  불동 희호시 치호리질과  후구 이라 의가 행등  질투질 심음 지도래거


어리석음과 깨달음이 하나인 연기의 이치를 찾아보니

부처도 중생도 내 몸 아닌 남이 있으리오.

닦아야 할 것은 모두 내가 닦건만 얻은 것마다 남이 없네.

어느 누구의 선업 공덕인들 아니 기쁨을 두오리까.

아 이같이 생각해 행함에 질투의 마음 이르러 올까. (중산 혜남스님의 보현행원품강설. p127)

[다음주에 계속]

글쓴이 : 교육국장 광명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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