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충남 예산 추사 김정희 선생 고택, 수선화(26년 4월 4일 토요일 오전)

작성자신혜령|작성시간26.04.11|조회수199 목록 댓글 1

후기 - 충남 예산 추사 김정희 선생 고택

 

봄철, 금빛 별무리 같다는 꽃 수선화를 보러 충남 예산을 찾았다. 그곳은 식물원이 아니고, 조선 후기 실학자이자 서-예가로 이름을 떨친 추사 김정희 선생 고택이다.

 

 

추사 김정희 선생 고택

주소: 충청남도 예산군 신암면 추사고택로 261

주차장 및 입장: 무료

관람시간: 3~109:00~18:00, 11~29:00~17:00

휴관일: 매주 월요일, 설날과 추석 당일

* 월요일이 공휴일인 경우 다음 날을 휴관일로 지정

문의: 041-349-8248

 

 

 

큰 마음 먹고 나선 길인데, 하필 날씨가 협조적이었다. 추사 고택에 도착했을 때도 비가 내리고 있었다.

그래도 관람에 진심인 의지의 한국인답게 우산 쓰고 고택 외부를 둘러봤다.

 

 

비에도 굳세게 핀 수선화가 입구에서 상춘객을 반긴다. 고택을 둘러싸듯 자리한 백송 공원을 산책하며 수선화와 하얀 나무를 감상한다.

중간중간 추사 선생을 흠모하며 남긴 조형물들이 보인다.

 

 

백송 혹은 백골송이라고도 부른다. 나무껍질이 잿빛 도는 흰색이라 그런 이름이 붙었다. 이 소나뭇과의 상록 침엽 교목은 중국 사신으로 갔던 추사 김정희 선생에 의해 이 땅에 심어졌다고 한다.

참고로 우리나라에서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다. 잘 모셔야 하는 나무 품종 중 하나라는 거!

 

 

 

고택 주변과 안쪽 마당까지 피어난 수선화는 추사 선생과 인연이 깊은 꽃이다. 추사 선생은 관직 생활 중 당쟁에 휘말려 제주도로 유배를 당하게 되었는데, 그 사건의 발단은 윤상도의 옥이었다.

문관 출신 부사과 윤상도가 호조판서 박종훈, 어영대장 유상량 등 탐관오리 탄핵 상소를 올렸다. 그때 안동 김씨의 비리까지 비판하자 안동 김씨 세력이 윤상도를 귀양 보내고, 나중에는 처참하게 능지처참까지 시켰다. 그 탄핵 상소 초안을 추사 선생의 부친이 정리했는데, 그 죄를 물어 아들(추사 김정희)까지 유배 보낸 것이다.

~ 유구한 당쟁의 역사! 이쯤 되면 대한민국의 안 자랑스러운 전통 정도로 취급해줘야 하지 않을까? 오늘날 정치판 상황이 다 이런 유구한 역사에서 비롯된 것이야. 그 개족보가 있었기에...

 

 

하여튼 제주도 유배 생활, 그 시기 추사 선생의 위안이 된 것이 바로 수선화였다. 그렇다고 그 팍팍한 시기에 관상하거나 원예를 한 건 아니고, 당시 제주도에서는 수선화가 잡초 취급을 받고 있었더랬다. 그도 그럴 것이, 농사짓고 먹고살기에도 바쁜 판국에 웬 풀떼기가 꽃인지 뭔지, 예쁜지 어쩐지 볼 여유가 있었겠는가.

추사 김정희 선생은 자리를 잘못 잡아 귀한 꽃임에도 아무 죄 없이 미움받고,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수선화를 보며 자신의 처지를 떠올렸을지도 모르겠다. 일종의 감정 이입, 또는 동일시랄까?

한편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뿌리를 내리고 끝내 화사한 꽃을 피운 수선화처럼 자신도 이 역경을 이겨내리라 마음을 다잡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를 증명하듯 추사 김정희 선생은 제주도 유배 기간 동안 서-예 역사에 길이 남은 그 유명한 추사체를 완성했다고 한다.

그리하여 오늘날 수선화는 추사 김정희 선생의 철학권을 담은 꽃으로 취급된다는 모양이다.

 

 

 

수선화뿐 아니라 고택 담장을 따라 걷다 보면 백목련, 홍목련, 매화 등 여러 봄꽃들을 만날 수 있다. 정말이지 비만 그쳤다면, 오랫동안 거닐었을 공간이다.

 

 

추사 김정희 선생이 나고 자란 이 고택은 양반가의 전형적인 구조를 지니고 있단다. ᆫ 자 구조의 사랑채, ᆷ 자 구조의 안채, 그리고 사당으로 이루어져 있다.

남성들의 공간이자, 시를 짓거나 글씨를 쓰거나 하는 문학적 유희의 공간인 사랑채 툇마루에 잠시 앉아본다. 처마를 타고 떨어지는 빗방울도 불편함이 아닌 운치로 다가오는 기분이다.

추사 선생은 여기서 보이는 매화를 감상하길 즐겼다고 한다.

슬쩍 사랑채 안도 엿보았다. 소박한 세간 중 유독 붓걸이가 눈에 들어온다. 아마 저기에 붓이 한가득 걸려 있었겠지?

그가 생전 갈아치운 붓이 전 자루가 넘었다고 하니, 추사 김정희 선생은 재능뿐 아니라 노력까지 겸비한 인물이라 해도 과언은 아니리라.

바라건대, 문필가의 기운이 깃들어 소설 좀 쭉쭉 쓸 수 있기를!

 

 

여인들의 공간, 안채로 향한다. 안채는 밖에서 엿보기 힘든 구조로 이루어졌다고 한다.

여기 툇마루도 그냥 지나칠 수 없다. 잠시 앉았다.

여인들의 규방도 살짝 들여다본다. 좌탁과 이불 등이 놓인 방이 생각보다 넓었다. 내 방에 2?!

 

 

안채와 사랑채 그 어디쯤에 부엌이 있었다. 절구가 있는 거 보니, 부엌 맞겠지?

마당 곳곳에 수선화며 홍목련 등의 봄꽃이 있어 단아한 한옥에 화사한 색채를 더한다.

 

 

추사 고택을 나오면, 인근에 추사 기념관이 위치해 있다. 추사 김정희 선생의 생애와 그의 호를 딴 추사체작품을 볼 수 있다.

 

 

 

이곳에서는 추운 시절 그림이라는 뜻의 〈세한도〉를 감상할 수 있다. 이거 진본은 아니고, 사본이겠지?

설원을 배경으로 선 나무와 노옥을 그린 구도가 시각적으로 참 시리고 춥게 다가온다.

 

 

추사 선생은 사군자 가운데 을 애정했는데, 그는 난을 그린다고 하지 않고 쓴다고 표현했단다. 추사 김정희 선생에게 이란, 철학과 사상을 담은 무언가였던 모양이다.

 

 

추사 선생의 생애를 요약 정리한 영상이 나오는 미디어실도 있는데, 이쪽은 지역 자랑만 해서 솔직히 시청을 권하고 싶지 않다. 별로 도움 안 된다.

추사 선생이 제주도로 유배를 갔다는 내용만 나오고, 그 이유에 대한 설명은 없다. 중국 사신으로 갔을 때 중국 학자들 사이에서 찬사를 받았다는 말만 나오고, 무엇을 계기로 이름을 떨쳤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나오지 않는다.

미디어실 영상 시청보다 차라리 인터넷 검색하는 게 더 효율적이다.

추사 기념관에는 기념품 매장이 자리하고 있다. 그곳에서 수묵화 느낌 나는 세한도 부채와 받침대, 그리고 자개로 장식된 수선화 명함 케이스를 구매했다.

 

 

별처럼 피어난 수선화와 그 밖의 봄꽃에 눅눅했던 기분을 청신한 빛깔로 물들일 수 있는 곳, 넓고 한산한 한옥과 백송 공원을 거닐며 마음을 비울 수 있는 곳, 더불어 의미 있고 예쁜 기념품으로 지갑은 좀 가볍게, 손은 무겁게 되는 곳.

추사 김정희 선생의 고택 방문은 이렇게 마무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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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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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회오리 | 작성시간 26.04.18 세한도. 학창시절 의미없이 지나쳤던 그림.
    이제 노년이 된 내가 세상살이의 고초를 이해하며 새롭게 보이는 작품이였다. 굴곡진 인생의 참 맛을 느껴본 자의 동정심. 아직 살아 있으매 감사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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