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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소금강 계곡의 바둑 친구들

작성자고추잠자리|작성시간11.08.29|조회수131 목록 댓글 0

우리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
- 명품 4대 동호회 소금강 대항전
2011-08-23 오전 9:48:00 입력 / 2011-08-23 오후 1:13:24 수정

▲ 주문진 해수욕장

S#1. 산, 바다, 호수

술 마시고 노래하고 춤을 춰 봐도 가슴엔 하나 가득 슬픔뿐이네.
무엇을 할 것인가 둘러보아도 보이는 건 모두가 돌아앉았네.

좀처럼 풀리지 않는 현실, 젊기에 더욱 막막한 그 시절
우리들은 목이 터져라 동해로 떠나자고 노래했었다.


▲ 주문진 향호 전경

주문진에 가면 고단한 영혼의 짐 내려놓고 푸른 날숨을 토했었지.
하늘과 맞닿은 수평, 그 곳에서 우리들 젊음의 지평을 보고 싶어
발돋움했었지.


▲ 대한민국 명승 1호로 지정된 소금강 계곡

앞을 보면 바다, 등 돌리면 호수와 심산유곡이 기다리는 그 곳.
어디론가 떠나고 싶을 때 언제든지 그 ‘어디론가’가 돼주었던 그 곳.

▲ 바둑 두는 전경


▲ 4대 동호회 대항전 휘장

그 시절 '고래사냥'을 목 놓아 불렀던 청춘들이 그곳을 다시 찾았다.
산과 바다와 호수는 그 빛 그대로 찬란하건만 청춘은 은발로 변했다.
그러나 세월에 풍화된들 마음까지 변할까?
19로에 마주 앉은 우리들은 영원한 청춘이다.

8월 20일. 동해안 명품 대자연 품 자락에 명품동호회를 표방하는 4대기우회
(서울 압구정 리그, 정맥회, 인천의 미추홀, 강릉바둑협회) 멤버들이 모였다.

▲ 인천의 미추홀

▲ 정맥회

▲ 강원지역 4개 기우회가 연합한 강원선발팀.


▲ 서울 압구정 리그


S#2. 무릉계곡에 고인 언어들

겨울 내내 눈이 내리고 여름 내내 비가 내렸던 올해.
모처럼 화창한 주말을 맞아 동해안으로 가는 길은 피서차량들이 엉켜 멀고도 멀었다.



오후 2시. 4개 팀 출전 오더 표가 발표되었다.
어느 팀에도 지각한 멤버는 없었다.
행여 팀에 누를 끼치기 싫어서 모두가 새벽같이 달려왔다는 이야기다.
각 팀 당 10인씩 풀리그로 승부를 내는 조건.
그러면 세 판씩 두어야 한다.
원래 1박 2일로 여유 있게 스케줄을 짰지만 1박의 후유증이 만만치 않을 것 같아 토요일 하루에 몰아치기로 합의했다.


▲ 나종훈, 천풍조, 김좌기, 홍태선

오대산 소금강 계곡 깊숙이 자리한 구룡산장 아무 곳에나 바둑판을 깔고 단체전이 시작된다.
인천 미추홀 팀 1장은 프로기사 나종훈 사범이 맡았고, 강원도 팀에는 홍태선 사범이 포진해 있다.
천풍조 사범과 김좌기 사범도 각 기우회에 속해 응원한다.
프로와 아마가 그냥 어울리는 모습이 참으로 정겹다.
전통과 기력으로 볼 때 명품동호회라는 말이 결코 과장은 아니다.
4개 팀 선수들의 면면이 화려하다.
어느 자리에 서도 '사범님' 소리를 들을 만한 강자들이 수두룩하다.
그렇기에 4개 팀의 전력도 팽팽하고 한판 한판 모두 중요했다.
일찍 판을 끝낸 이들은 삼삼오오 짝을 지어 담소를 나눈다.


▲ 유경성 사범과 강병두 대학연맹회장


"조령컵 4강전에서 어이없게 져버렸지 뭐야. 상대가 장고하길래 내 차례인 줄 알고 두었더니 두 번 착수했다고 반칙패를 선언하는 거야. 하하 이제 나이를 먹었다는 증거겠지?"

"나도 지난 번 TV대국 고교동문전을 할 때 기적의 역전승을 거둔 적 있어. 일대 일 상황에서 결정 국이었는데 초반에 심하게 몰려 역전이 거의 불가능한 판이었거든. 하하 그런데 상대가 느닷없이 두 번 두더라니까."


▲ 위에서 본 대국 장면


▲ 임동균

임동균 : 여기 소금강에 모인 멤버들은 30년 전부터 고락을 함께 해왔던 친구들이 대부분입니다. 그 오랜 세월 서로가 부르면 망설임 없이 달려가는 사이죠. 세상에 모임이 많지만 바둑 모임만큼 변하지 않고 오래 가는 모임도 드물 거예요.


▲ 고광록 강원도 바둑협회장과 필자

최근 강원도 바둑협회장을 맡게 된 고광록 변호사는 영동 지역의 대표적인 애기가로 소문나있다.
4대 기우회 초청대국은 그가 협회장을 맡고 나서 처음 치르는 행사라고 했다.
오랫동안 바둑계를 지켜온 이들이 공기 좋은 동해안에 모여 머리를 맞대고 세상 시름 다 턴 채 수담에 몰두하는 분위기가 너무 보기 좋아 매년 정기적인 행사로 만들고 싶다고 전한다.



판은 상대를 바꿔 계속됐다.
해가 오대산을 넘어갔고 산그늘이 금새 산장을 뒤덮었다.
여기저기 백열등이 빛을 발했다.


▲ 전등을 비추며 최선을 다해 두는 멤버들.

한 판 두 판 마무리되면서 희비쌍곡선이 그어지고 끝까지 한집을 다투는 결정 국에 모든 기우들이 모여든다.
밤 아홉 시를 넘겨서야 모든 대국이 끝났다.

S#3. 자, 떠나자 고래 잡으러!

주문진 수산시장의 상가들이 철시한 시각.
2010년 4월 타이젬 유저수첩에 소개됐던 주문진 고래 홍승종씨의 횟집에 모든 멤버들이 모였다.



4대 기우회 60여 명 모두 얼굴을 제대로 볼 수 있는 자리.
모두 아는 얼굴들이라 편안한 분위기다.
간단한 시상식이 열렸다.
우승은 서울 압구정 팀.
두둑한 상금이 수여됐는데 압구정 팀은 주최 측에 전액을 희사했다.
준우승은 강릉 팀이 차지했다.
푸짐한 횟감과 더불어 푸짐한 이야기 보따리가 풀렸다.
이날 밤 이 모든 이들의 행적은 알지 못한다.
그러나 그들이 나눌 이야기는 짐작한다.
푸르렀던 시절의 추억과 바둑에 대한 순정을 원없이 나누었으리라.


▲ 한철, 홍승종

S#4. 에필로그

주문진은 바둑계에 친숙한 지명이 됐다.
강릉의 한철 사범은 이번 4대 동호회를 기획하고 보이지 않게 뒷바라지를 했다.

한철 : 반가운 얼굴들 동해안에서 보니 너무 좋았습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바둑계의 세대 간 화합에 대해
       생각을 하게 됩니다. 젊은 친구들과도 정을 나눠야 하는데
       50대의 우리들이 너무 앞만 보고 달려왔나 싶어요.
       앞으로는 주니어 시니어가 함게 어울릴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보고 싶습니다.

주문진 수산시장의 터주대감 홍승종 씨는 향호를 가리키며 활짝 웃는다.

홍승종 : 며칠 전에 프로에 입단한 친구들한테 전화가 왔습니다.
         일곱 명의 입단자 중 세 명이 지난 겨울 주문진에 왔거든요.
         그때 제가 지옥훈련 교관을 자임하고 겨울 바다에 빠트렸습니다.
         그리고 향호 호반의 눈밭에 굴렸지요.
         그런데 그 친구들이 입단한 순간 고맙다고 인사를 해 온 거에요.
         

바둑을 따라 인연은 이어지고 이렇게 주문진은 바둑지도의 명소로 새겨진다.

TYGEM / 김종서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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