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자유 게시판

[스크랩] 살면서 꼭 가보고싶은곳들

작성자고추잠자리|작성시간12.06.23|조회수550 목록 댓글 1

 

세계유산] 007. 베르사이유 궁전

유럽 | 2008.12.02 15:49
파리 남서쪽 베르사유에 있는 바로크양식의 궁전으로 1979년 세계유산으로 등록된 Chateau de Versailles (베르사이유궁전)
 
원래 루이 13세가 지은 사냥용 별장이었으나, 1662년 무렵 루이 14세의 명령으로 대정원을 착공하고 1668년 건물 전체를 증축하여 외관을 가로축 부분이 앞으로 튀어나온 U자형 궁전으로 개축하였다. 1680년대 다시 커다란 건물 2동을 증축하고 남쪽과 북쪽에 별관과 안뜰을 추가하여 전체길이가 680m에 이르는 대궁전을 이루었다. 이때 정원 쪽에 있던 주랑을 '거울의 방'이라는 호화로운 회랑으로 만들고, 궁전 중앙에 있던 방을 '루이 14세의 방'으로 꾸몄다.
거울의 방은 길이 73m, 너비 10.5m, 높이 13m인 회랑으로서 거울이 17개의 아케이드를 천장 부근까지 가득 메우고 있고 천장은 프레스코화로 뒤덮여 있다. 궁정의식을 치르거나 외국특사를 맞을 때 사용되었으며, 화려한 내부장식을 한 '전쟁의 방'과 '평화의 방'으로 이어진다.
전쟁의 방에는 색조 회반죽으로 된 타원 모양의 커다란 부조가 있는데, 말을 타고 적을 물리치는 루이 14세의 위엄 있는 모습이 새겨져 있다. 남쪽에 있는 평화의 방 역시 유럽 평화를 확립한 루이 14세의 모습이 상징적으로 그려져 있다.
1783년 미국독립혁명 후의 조약, 1871년 독일제국의 선언, 1919년 제1차 세계대전 후의 평화조약체결이 거울의 방에서 행해지는 등 국제적 행사 무대가 되었다. 프랑스혁명으로 가구·장식품 등이 많이 없어졌으나 궁전 중앙부, 예배당, 극장 등을 제외한 주요부분은 오늘날 역사미술관으로 일반에 공개되고 있다. 프랑스식 정원의 걸작인 정원에는 루이 14세의 방에서 서쪽으로 뻗은 기본 축을 중심으로 꽃밭과 울타리, 분수 등이 있어 주위의 자연경관과 조화를 이루고 있다. 기본 축을 따라 라톤의 분수, 아폴론의 분수, 십자 모양의 대운하 등을 배치하였다.
대운하 북쪽 끝에는 이탈리아식 이궁(離宮)인 그랑트리아농(1687년)과 프티트리아농(18세기)이 루이왕조의 장려함과 섬세한 양식으로 세워져 있다. 1979년 유네스코(UNESCO:국제연합교육과학문화기구)에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하였다.

거울의 방
프랑스 일드프랑스주 이블린현의 주도(主都) 베르사유의 베르사유궁전에 있으며, 길이가 70m에 이른다. 주요 정부의 행사들이 열린 곳이며, 제1차 세계대전을 종식시키는 베르사유조약이 체결된 곳이기도 하다.
 

베르사이유의 정원
프랑스의 루이 14세가 건축한 바로크 양식의 궁전.

베르사이유의 조각상
1668년 루이 14세 때에 짓기 시작하였으며 루이 13세의 전용 사냥숙소를 둘러싸고 있는 일련의 건물로 이루어져 있다.
 

궁전의 벽난로



라톤의 분수
4개의 대리석 수반 위에 라톤의 여신상이 서있는 라톤의 분수.
 
베르사이유 궁전을 건설한 루이 14세는 70년 통치기간동안 전쟁으로 일관된 영토확장한 위대한 군주였던 그는 많은 문화유산도 남겼다. 루이 14세는 당대 최고의 건축가, 조각가, 정원사를 동원하여 웅장한 베르사이유를 건설하고 이곳에서 매일 밤 호사스런 사교파티를 열었다. 이러한 사치와 전쟁으로 국운은 쇠퇴하였고, 루이 16세가 20세에 즉위하였으나, 무능과 시대의 변화 물결의 소용돌이 속에서 1789년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진다.
1789년 10월 6일, 시민들은 베르사이유를 습격하기에 이르고 왕비 앙투아네트는 오빠인 오스트리아 황제 레오폴드 2세에게 도움을 청하여 1791년 탈출을 시도하나 발각 되고, 루이 16세와 왕비는 파리로 끌려와 옥에 갇히고 1792년 왕정은 끝나고 공화국이 선포된다. 이로써 베르사이유의 화려한 영광도 끝이 나고 이곳은 그 시절 자취를 보기 위해 모이는 관광객들을 위한 박물관으로 바뀌게 된다.
 

베르사이유 배치도
 
베르사이유 정문
 
정원과 숲
베르사이유 궁의 정원과 숲은 그 화려함과 더불어 그 광대한 규모의 아름다운 경치로 루이 14세때의 영화를 짐작케한다. 대혁명전까지는 6000ha에 이르렀으나 오늘날은 95ha로 그 규모가 축소 되었다. 중요 분수로는 라뽄느 분수, 아폴로 분수, 그리고 포세이돈의 분수가 있으며 물울 뿜어내는 그 모든 시스템이 변경되지 않은 상태로 아직까지 사용되고 있다.
 
베르사이유 궁전 내부
 
1. 왕실 성당(성 루이 성당): 루이 15세, 16세, 18세와 샤를 10세의 결혼식이 있었던 곳으로 매일 13시에 미사가 있었다. 1710년에 완성된 이 성당은 천정에 예수님의 부활과 재림을 알리는 벽화가 유명하다.
 
2. 헤라클레스의 방 : 매주 월, 수, 목요일에 있었던 연회장소로 쓰였던 곳이며 천정에는 315미터에 달하는 벽화가 신의 대열에 들어가고 있는 헤라클레스의 모습을보여주고 있다.또한 정면에는 시몬의 집에서 식사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그린 벽화가 있다.
 
3. 측제의 방들(풍요의 방): 연회를 위해 많이 쓰여져 거기서 이름이 유래하고 있으며 7개의 방들로 구성된 이 축제의 방들은 헤라클레스의 방과 유리의 방을 있고 있다. 부폐파티를 위해 사용되었던 방으로 루이 14세의 아들과 손자의 초상화를 볼수 있다.
 
4. 비너스의 방 : 천정에는 우미의 3여신에 둘러싸여 있는 비너스의 모습을 볼 수 있으며 정면에는 로마식 복장을 한 루이 14세를 볼수 있다.
 
5. 사냥의여신 다이아나의 방 : 천정의 24시간 변화하는 사냥의 여신 다이아나와 정면에 8개의 흉상에 들러싸여 있는 루이 14세외 흉상을 볼수 있다. 이방은 주로 당구를 비룻하여 게임을 즐기던 방으로 유명하다.
 
6. 군신의 방(마르스의 방) : 군신 마르스에게 바쳐진 이방은 저녁에 자주 음악회를 열었던 곳이며 난로위로는 하프를 켜는 다윗왕을 그림가 양쪽벽으로는 루이 15세와 그의 왕비인 마리 레진스키의 초상화를 볼수 있다. 원래는 경호원들을 위하여 쓰여졌던 곳이다.
 
7. 머큐리의 방 : 천정에는 새벽별과 함께 수레에 오른 머큐리를 볼수 있으며 이방은 왕실 가족의 놀이방으로 쓰여지기도 하였던 곳이다. 또한 루이 14세의 관이 1주일간 안치되었던 곳이기도 하다.
 
8. 아폴로의 방 : 추운 날씨에는 왕의 침실로 이용되었던 이방은 루이 14세가 외국대사들을 알현하던 곳으로 벽위의 3개의 닫집고리가 왕좌가 있었음을 알려주고 있다. 오른쪽 벽으로는 대관식복장의 루이 14세를 왼편으로는 루이 16세를 볼수 있으며 천정에는 태양수례를 끌고가는 아폴로를 볼수 있다.
 
9. 전쟁의 방 : 거울의 방을 중심으로 하여 평화의 방 맞은편에 자리잡고 있는 이방은 천정의 루이 14세의 초상화가 그려진 방패를 중심으로 하여 승리에 싸인 프랑스를 상징하고 있다.
 
10.거울의 방 : 이태리식 테라스가 있던 곳에 8년에 걸쳐 망사르의 설계와 르브랑의 장식에의해 길이 73미터, 너비 10.5미터, 높이 12.3 미터의 거대한 갤러리 헝식으로 만들어진 곳이다. 17개의 창문과 17개의 대형거울이 천정에 걸려있는 샹들리에와 함께 빛의 아름다움을 만끽하게 하여주며 왕정시 있었던 가면 우도회와 중요회의 모습들을 쉽게 상상할 수 있다.
 
11.평화의 방 : 거울의 방을 중심으로 전쟁의 방과 대칭을 이루고 있다.천정의 벽화는 유럽의 평화를 되찾는 모습을 모사하고 있다. 벽난로 위의 그림은 루이 15세가 유럽에 평화를 나누어 주고 있는 모습이다.
 
12.왕비의 방들 : 5개의 방들로 이루어진 이곳은 왕비의 침실을 비롯하여 대관식 방으로 사용하던 나폴레옹의 방까지를 가리키고 있다.
 
12-1.왕비의 침실 : 현재 이 방은 파리 시민들의 요구에 의해 왕가가 뛸르리 궁으로 옮겨갈때까지 이 방을 마지막으로 사용했던 마리 앙뚜아네뜨의 방을 재현해 놓은 것 이다. 천장은 왕비의 덕목인 자비, 풍요, 정숙, 신중함을 상징하는 그림으로 장식되어 있고 거울 위로는 루이 16세, 마리 앙뚜아네뜨의 어머니인 마리 떼레즈와 오빠인 오스트리아 황제 요셉 2세의 양탄자 초상화가 걸려 있다. 수로 장식된 침대위 닫집 가운데는 프랑스의 상징인 수탉이 놓여 있으며 침대옆의 보석상자는 1786년 파리시가 마리 앙뚜아네뜨에게 선물 한 것이다. 또한 이 방에서 공개적으로 19명의 왕자와 공주가 탄생한 곳이다.
 
13.귀족의 방 : 왕비가 귀족 부인들과 모임을 갖고 서로 소개하던 방이 었다. 천정의 장식만이 마리 떼레즈의 것이고 나머지는 마리 앙뚜아네뜨를 위하여 바꾸어 놓은 것이다.
 
14.대기실 또는 부속실 : 이곳에서 왕과 왕비가 가족과 함께 대중앞에서 식사를 하던 곳이다. 루이 16세의 딸들의 초상화와 마리 앙뚜아네뜨의 자녀들 초상화를 볼수 있다. 그리고 1764년 어느 겨울날 모짜르뜨가 왕에게 소개 되어진 곳이기도 하다.
 
15.경호원들의 방 : 1789년 10월 6일 경호원들과 혁명군 사이에 격투가 벌어진 곳이다.
 
16.대관식의 방
 
17.전쟁 갤러리 : 루이 필립왕때 왕자들이 사용하던 방들을 개조하여 문을 연 방으로 자기왕권의 합법성을 보이기 위해 과거의 역사적 사건들을 비유적으로 기록하고 있다.
 
18.오페라
 
19~21.왕실(나폴레옹의 방): 다비드에 의해 그려진 3점의 대작이 이방을 장식하고 있다. 그중 나폴레옹의 대관식 장면은 쌍둥이 작품이 루부르에 또한 전시 되어 있다.
 
22.왕의 침실
 
23.왕의 집무실
 
자료출처: 두산대백과, www.france.co.kr

 

세계유산] 001. 페루의 찬찬 고고 유적지대

남아메리카 | 2008.11.17 16:27
페루의 찬찬 고고 유적지대(Cahn Chan Archaelogical Zone)
 
바다를 그리던 소왕국의 수도
 
페루/ 찬찬…흙벽돌 벽면엔 파도-펠리컨-바다표범의 모습이

페루 북부도시 트루히요 교외에 남아 있는 찬찬(Chan Chan)은 13~15세기 페루 북부 해안지대를 중심으로 어업과 농업, 황금세공 등으로 번성했다. 1470년 잉카제국에게 정복되어 사라져버린 치무(Chimu)왕국의 수도였던 곳으로, 그 도시유적을 일컫는 말이다.


페루 찬찬 유적 가운데 추디궁의 개인 기도실(큰 사진). 마름모꼴의 어도본(흙담)이 공간을 나누고 있다. 사진은 유적 중심부에 있는 10개 궁의 입체도. 이 중 복원된 것은 추디궁뿐이다.

치무인들은 안데스의 물을 끌어들어 농사를 지었는데, 그 본바탕은 모래땅이었다. 그래서 20㎢에 이르는 찬찬유적 어디를 다녀도 돌조각 하나 볼 수 없다. 잉카의 왕도 쿠스코나 마추피추에선 석조건축물이 도시를 온통 뒤덮고 있으나 이곳에선 아도베(adobe, 햇볕에 구워서 만든 흙벽돌) 천지다. 아도베는 비와 바람에 약하다는 핸디캡이 있는데도 찬찬은 여전히 거대함과 섬세함을 간직하고 있다.

거대함이란 남부 5km, 동서 3km에 이르는 장방형의 도시 구조와 그 내부를 10개의 구역으로 나눈 다음 각종 의식이 벌어지는 광장과 사원, 궁전, 아틀리에, 창고, 정원, 공동묘지, 수로 등을 배치해놓은 것이라면 섬세함이란 아도베의 다양한 형태와 벽면에 새겨놓은 각종 동식물과 기하학적 무늬를 말한다. 그것도 가만히 들여다보면 파도치는 모습, 펠리컨, 가마우지, 바다표범, 물고기와 같은 바다와 관련된 것들이다.

찬찬은 바다와 가깝다. 겨우 5km밖에 떨어지지 않았다. 왕조의 시조 타이카나모는 바다를 건너와서 새로운 왕국, 치무를 세운 데다 어업을 주업으로 하였으니 바다에 대한 사랑이 각별할 수밖에. 그렇다고 모든 디자인이 바다와 관련되어 있는 것은 또 아니다. 도시 유적에서 2km 쯤 떨어진 ‘용의 사원’ 벽면에는 이름 그대로 수많은 용들이 새겨져 있기 때문이다. 하긴 용도 물 속에 사는 동물이니 바다와 전혀 관련이 없다고 하긴 어렵지만 말이다.

용의 사원은 크기는 비록 작으나 피라미드 구조라 그 정상에 오르면 아래를 내려다보는 재미를 선사한다. 그렇지만 평평한 땅 위에 사람 키보다도 더 높은 아도베의 벽들이 공간을 구획하면서 앞을 가로막고 있는 찬찬에선 전체를 조망할 수 없다. 그래서 무척 갑갑하다. 더욱 갑갑하게 만드는 것은 치무왕국의 실체가 제대로 규명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아메리카대륙의 고대문명은 아직도 이렇게 안개 속인 것이 많다. 마치 그게 자기네 특징이라도 한 것처럼.

▶정보

리마에서 트루히요까지는 570km. 트루히요에서 찬찬은 5km 정도라 합승택시를 이용하는 것이 좋다. 86년 세계문화유산 지정. 트루히요 교외에는 해와 달의 피라미드도 있다.

(권삼윤 역사여행가: tumida@hanmail.net)

 

《페루 제3의 도시 투르히요.수도 리마에서 북쪽으로 560km 떨어진 인구 65만명의 해안도시다. 지난달 26일 투르히요 연안의 태평양에서 부는 바람은 그다지 세지 않았는데도 파도는 높고 거칠었다. 이 바다에서 5km 떨어진 곳에 흙으로만 만들어진 도시로는 세계 최대규모인 ‘찬찬 고고유적(Chan Chan Archaeological Zone)’이 있다. 찬찬은 약 800년 전인 13세기 초에 번성했던 치무왕국의 수도. 15세기 중반 잉카제국에 멸망할 때까지 왕국의 수도였다.》

페루정부 산하 문화청(INC) 직원 아르투로 파레데스(49)의 차를 타고 유적지 안으로 들어갔다. 투르히요 공항에서 도심으로 향하는 도로 양쪽에 보이는 흙 구조물들이 유적으로 특별히 입구도 없었다.

현재 남아 있는 18km²의 찬찬 유적은 모든 건축물이 ‘어도비(햇볕에 말린 흙벽돌)’와 ‘어도본(흙담)’으로만 지어졌다. 유적지 중심부에는 성벽에 둘러싸인 왕궁(최대 가로 300m, 세로 600m) 10개가 있다.

이들 왕궁 가운데 추디궁만 공개되고 있다. 궁의 이름은 19세기 중반 이곳을 처음 연구한 스위스 고고학자 요한 본 추디의 이름을 땄다.

이 궁은 ‘프리메라 플라자 세레모니얼(의식의 광장)’로 명명된 종교 행사용 광장, 개인 기도실, 왕의 시신을 보관하는 시신 보관실, 창고, 저수지 등으로 이뤄져 있는데 의식의 광장 하나의 크기가 축구장 두 개를 나란히 붙여 놓은 것과 같을 정도로 규모가 크다.

추디궁 일부를 제외한 다른 건축물은 성벽이 대부분 허물어지고 바람에 날려온 흙에 덮여 방치돼 있었다. 정부의 지원부족으로 전체 유적의 1000분의 1가량만 복원된 상태.

페루 명문 사립 카톨리카 대학의 고고학 교수 크르지스크토프 마코우스키(51)는 “페루의 지배 엘리트인 백인은 자신들의 문명이 아니라는 이유로 스페인 점령기 이전 원주민의 토착 문명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고 말했다.


1980년대 후반까지 유적지 안에 220여가구가 살고 있었을 정도로 방치됐다. 1998년까지 몇 차례에 걸쳐 유적지 안의 거주자들을 내보냈지만 아직도 이들의 경작지 일부가 남아 있다. 페루 정부는 1964∼1970년까지 유적 일부를 복원하는 작업을 벌였지만 기술과 지식 부족으로 오히려 유적을 훼손하는 우를 범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몇 년에 한번씩 페루 해안에서 발생하는 엘니뇨 현상으로 인해 연간 강수량이 10mm도 채 안되는 건조한 이 지역에 폭우가 내려 진흙 벽이 크게 훼손됐다. 염분을 머금은 바닷바람도 흙벽을 부식시키고 있다.

파레데스씨는 “사람들이 더 이상 지하수를 사용하지 않게 되면서 지하로부터 물이 차올라 유적지가 훼손되고 있다”고 말했다.

페루 정부가 유적 복원에 보존 작업도 병행해야 한다는 인식을 한 것은 1986년 유네스코(UNESCO)가 이곳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한 이후. 같은 해 ‘위기에 처한 세계문화유산’으로도 등재됐다.

페루 정부가 보존 작업에 미온적이자 국제사회도 나섰다. 문화보존 국제단체들이 88년 유적보존을 위한 ‘가이아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하지만 당시 자료는 남아 있지 않다.

유네스코 및 유네스코 산하 문화유산보존 및 복원국제연구센터(ICCROM), 미국의 문화재 관련 민영단체인 게티보존연구소 등은 INC와 함께 96년 가이아 프로젝트의 후신격인 ‘PAT99 프로젝트’와 99년 ‘테라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두 프로젝트에는 미국 멕시코 베네수엘라 브라질 볼리비아 아르헨티나 우루과이 칠레 에콰도르 등이 참여했다. 당시 각국의 고고학자들은 찬찬 유적 복원 및 보존에 관한 세미나를 45일 동안 열었다. 유럽연합(EU)과 이탈리아 정부에서도 이 프로젝트에 20만달러의 돈을 후원했다.

이와 별도로 유네스코는 97년부터 페루 정부를 도와 찬찬의 복원과 보존을 위한 마스터플랜을 세우도록 했다. 마스터플랜은 고고학뿐 아니라 역사학 사회학 관광학 등을 전공한 미국 프랑스 페루 중남미의 학자 40명이 참여해 5년여 만인 지난해 말 완성됐다.

이 마스터플랜에 따라 찬찬 유적 복원에 1637만4637달러를 투입하기로 했다. 학자들이 만든 세부계획은 A4용지로 책자 7권, 4000쪽에 이른다. INC와 유네스코는 자금을 마련하는 대로 12년에 걸쳐 이를 시행에 옮길 예정이다.

유네스코 페루 문화재 담당인 키로 카라발로 페리키는 “문화재 복원과 보존은 장기적 지역개발과 관광수입 증대 등이 병행돼야 한다”며 “다른 나라에서 돈을 끌어오는 것뿐만 아니라 관광수입을 확대하는 것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INC는 찬찬 유적의 관광 서비스를 지난해에야 시작했다. 그러나 지난해 관광수입은 6만솔(약 2000만원)로 추디궁 1년 관리비의 10% 수준에 불과했다.

▼찬찬유적은… ▼

찬찬은 13∼15세기 중반 크게 번성해 지금의 페루 북부 연안과 중앙 연안을 지배했던 치무왕국의 수도. 약 6km²의 중심부에는 직사각형 모양의 성벽으로 둘러싸인 10개의 왕궁 또는 구역이 있다. 각각은 신전, 광장, 통로, 저수지, 정원, 시신 보관소 등으로 구성돼 있다.

모든 건축물이 흙으로 만든 어도비와 어도본으로 지어졌다. 추디궁의 ‘대응접실’ 벽면에는 새와 물고기, 기하학적 무늬 등이 양각으로 새겨져 있다.

치무왕국은 영토 확장을 거듭하다 결국 남쪽의 잉카제국과 맞닥뜨리면서 멸망으로 이어졌다. 잉카제국과 1462년부터 전쟁을 벌여 패망한 것.

치무왕국은 정교한 관개시설로 유명하다. 불모의 사막지대에 거대한 도시를 건설할 수 있었던 것은 최장 32km에 이르는 관개수로로 엄청난 양의 물을 공급할 수 있는 관개시설 덕분이었다. 당시 사회는 고도로 조직화됐으며 계급과 서열이 엄격했다. 인구는 전성기에 7만명 정도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금 은을 비롯한 금속 세공기술이 특히 발달했다.

▼"돈-인력 모자라 복원 부진 자자손손 발굴해도 못 끝낼것"▼

투르히요 시내의 고풍스러운 자택에서 만난 페루 INC의 찬찬 유적 복원 및 보존 담당부장인 아나 마리아 호일은 정부의 무관심에 불만이 많았다. 미혼인 그는 투르히요대학에서 고고학을 전공하면서 찬찬 유적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1975년 INC에 들어갔다. 국립박물관보다 더 많은 유물을 갖고 있다는 리마 시내의 라파엘 라르코 박물관 설립자 라르코 호일이 그의 삼촌이다.

―찬찬 유적의 보존과 복원에서 가장 절실한 것은….

“인력과 돈이다.”

―관광지로 개발하면 많은 수익을 올릴 수 있을 텐데….

“맞다. 정부는 찬찬 같은 거대한 유적을 관광자원으로 개발하면 몇십 배의 수익을 올릴 수 있다는 사실을 외면하고 있다. 90년대 초 페루의 은행가 프란시스코 비세는 치카바 지방의 엘부르코 유적지를 관광지로 개발하는 데 6만달러를 투자했다. 관광지 개발이 가져온 경제 효과는 1000만달러에 이른다. 유적지가 내셔널지오그래픽 커버스토리를 장식하는 바람에 비세 가문은 100만달러의 홍보 효과도 누렸다.”

―인력이 왜 부족한가.

“정부가 문화유적 복원에 미온적이기 때문이다. 멕시코만 해도 교수가 유적을 발굴하겠다고 하면 2년간 강의를 면하게 해주고 급여의 3배를 준다. 페루는 학자들이 유적 발굴에 신경 쓰면 수입이 더 줄어든다. 이러니 누가 유적 발굴에 나서겠는가.”

―돈은 어디서 구할 셈인가.

“다른 나라를 끌어들일 수밖에 없다. 미국이 가장 부자니까 미국을 끌어들이는 것이 제일 좋다.”

―유네스코 등 국제단체에서 도움을 주고 있지 않은가.

“재정적 도움은 별로 없다. 기술적 측면에서는 큰 도움을 받고 있다. 국제단체나 다른 나라들이 찬찬을 비슷한 종류의 유적 발굴을 위한 실험장으로 여기는 측면도 있다. 한 마디로 서로 이용하고 이용당하는 것이다.”

―현재까지 어느 정도 복원됐나.

“전체 유적의 1000분의 1이나 될까….”

―할 일이 많아서 고고학자로서 행복하겠다.

“맞다. 손자의 손자들까지 발굴한다 해도 끝이 없을 것이다.”

자료출처: 동아일보 김성규기자 kimsk@donga.com

 

세계유산] 002. 님바산의 자연보호지역

아프리카 | 2008.11.24 16:24

님바산의 자연보호지역 (Mount Nimba Strict Nature Reserve)

아프리카 희귀동·식물의 보고 님바산


사바나에 의해 둘러싸인 최고봉 1,752m의 님바산은 이곳에서만 볼 수 있는 고유동식물과 멸종위기의 희귀동식물들이 다수 서식하고 있어 보존가치가 높은 지역이다. 때문에 1943년 기니의 130㎢, 1944년 코트디부아르 50㎢가 순차적으로 자연보호구역으로 지정되었으며, 1981년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에 등재되었다. 단순보호구역이 아닌 엄중보호구역(strict reserve)로 지정되어 관광까지 금지되고 있으나 라이베리아 내전으로 1989년부터 피난민들이 몰려들고, 풍부하게 매장되어 있는 철광석 채굴 계획까지 세워지면서 훼손 위험에 처해 있는 지역이기도 하다. 유네스코는 이런 상황을 감안하여 1992년 이곳을 위기에 처한 세계자연유산으로 분류했다.

생물종다양성의 보고
고도 450m에서 1752m에 이르는 님바산 자연보호구역은 열대우림지대와 사바나지대를 포함하고 있으며, 고도에 따라 달라지는 다양한 식물이 자라고 있다. 식물은 모두 2,000여 종이 자라고 있으며 이 가운데 16종은 이 지역에서만 볼 수 있는 고유종이다.

풍요로운 식물종이 다양한 동물들이 서식할 수 있는 최적의 환경을 조성해주어 동물 또한 매우 다양하게 분포한다. 지금까지 밝혀진 바로는 총 500여 종의 동물이 서식하고 있으며, 이곳에만 있는 희귀종이 200여 종에 달한다. 멸종위기종인 서아프리카보모두꺼비, 돌을 도구로 사용하는 침팬지, 난쟁이하마, 민발톱수달, 애기포타모갈레 등이 특히 주목을 받고 있다. 님바산 자연보호지역에 대한 연구조사가 현재도 진행 중이므로 서식하는 식물과 동물의 수는 향후 훨씬 늘어날 것으로 추정된다.


 






사진출처: 유네스코 홈페이지

 

세계유산] 004. 아이르 테네레 자연보호구역

아프리카 | 2008.11.24 17:57

아이르 테네레 자연 보호 구역(Air & Tenere Natural Reserves)

니제르 중북부 알제리와의 국경지대에 펼쳐진 아이르 산지와 테레네 사막 지대로 770만 헥타르에 달하는 아프리카 최대의 자연보호지역이다. 1991년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되었으며, 1992년 위기에 처한 세계자연유산으로 분류되었다.

기이한 경관, 생물종다양성의 보고
아프리카 최대의 자연보호지역으로 빼어난 자연경관을 자랑하며 생물종다양성의 보고(寶庫)로 알려져 있다. 화산바위들이 밀집되어 있는 아이르 산지, 테레네 사막을 아우르고 있으며, 외부와 격리된 좁은 사헬지대(사하라 사막 남쪽의 대초원)가 포함되어 있다. 특히 사헬지대에는 고립된 기후조건에 적응한 많은 동식물군이 서식하고 있다.

평균해발고도 700∼800m인 아이르 산지에는 1,998m인 최고봉 탐가크를 비롯하여 1,500m 이상의 바위산이 여러 개 솟아 있으며, 산악 지형과 화산 지형이 결합되어 기이한 경관을 자랑한다. BC 4,000년 무렵 신석기시대의 유물(바위에 그려진 그림과 조각)이 발견되었으며, 동·식물도 다양하게 서식하고 있다.


위기에 처한 세계자연유산
테레네 사막은 사하라 사막 남쪽, 니제르 북동쪽에서 차드 서쪽까지 뻗어 있는 광대한 모래 평원으로 넓이가 40만㎢에 달하며 서쪽으로 아이르 고원과 맞닿아 있다. 테레네라는 이름은 이곳에 살고 있는 투아레그(Tuareg) 족의 언어로 '사막'이라는 의미다. 테레네 사막은 극도로 고온건조하여 물이나 식물을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불모지다. 하지만 한때는 열대우림이었던 곳으로 서쪽 끝에서 많은 공룡화석이 발견되었다.

아이르·테레네 자연보호지역에는 사헬지역에만 사는 고유종을 포함하여 다양한 동식물이 서식하고 있다. 현재까지 확인된 식물종이 298종이며, 조류 165종, 파충류 18종, 포유류 40여 종이 서식하고 있는데, 이곳에만 살고 있는 고유종인 아누비스개코원숭이·파타스원숭이 등이 포함되어 있다.

1991년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되었으나 니제르 정부와 투아레그족 사이에 일어난 내란으로 이듬해인 1992년 위기에 처한 세계자연유산으로 분류되었다. 한때 유네스코에서 파견된 직원이 인질로 붙잡히기도 하였으나, 1995년 평화협정 체결 이후 상황이 호전되고 있다. 하지만 끊이지 않는 밀렵으로 타조를 비롯한 몇몇 야생동물은 여전히 생존을 위협받고 있다.

알제리와 니제르의 접경지역이 바로 아이르 테네레 자연보호구역



사진출처: 내셔널지오그라피

자료출처: 두산백과사전

 

세계유산] 005. 비룽가 국립공원

아프리카 | 2008.11.25 18:12

비룽가 국립공원(Virunga National Park)

비룽가 국립공원은 콩고 민주 공화국의 동부인 비룽가 산맥, 르웬조리 산맥에 걸쳐 지정되어 있는 국립공원이다. 총 면적은 7800km² 이며, 1925년에 설립된 아프리카의 첫 국립공원이다. 얼마 남지 않은 산악고릴라들로 잘 알려져 있지만, 밀렵, 콩고 내전때문에 심각한 타격을 입고있다. 콩고 국립공원 관리단(Institut Congolais pour la Conservation de la Nature,약칭 ICCN)에 의해 관리된다.

국립공원은 하마가 서식하는 에드워드 호의 서안을 차지하며, 하마의 개체수는 95%가량 감소했다. 공원의 다른 지역은 늪지, 초원, 고원, 평지같은 다양한 지형으로 이루어져 있다. 두개의 활화산이 있으며, 화산활동 때문에 주변의 토지는 비옥한 편이다.

산악고릴라는 현재 많이 남아있지 않지만, 성공적인 보호노력으로 남은 개체들은 보전되고 있다. 1994년~2004년간의 내란에도 불구하고 개체수가 증가했다. 공원에 서식하는 동물은 둥근귀코끼리, 침팬지, 오카피, 기린, 아프리카들소, 그리고 여러 고유 조류들이 있다. 호요 산인근 지역이 공원으로 편입되었으며, 밤부티 피그미 족의 터전임과 동시에 동굴과 폭포를 포함한다. 내란과 밀렵이 생태계를 위협했는데, 이를 막는 과정에서 1994년부터 120명의 공원관리원이 죽임을 당했다.

현재 반군인 르완다민주해방군이 르완다내전이후 공원내에 터전을 잡고 콩고의 투치 족을 겨냥하기 시작함에 따라 투치 족의 장군인 로렌트 느쿤다는 국민방위 민족협의회를 조직해 대항하기 시작하였다. 여기에 이들을 명목상 제압하기 위해 콩고 민주 공화국군과 UN군이 들어와 있다. 전쟁에 진행됨에 따라 반군들은 자금원으로 공원내의 경목을 이용해 목탄을 불법으로 제조해 인근지역에 공급하고 있으며, 이는 비룽가 국립공원에 또다른 위협으로 부상했다.










인간의 탐욕이 만든 비극... 사살된 4마리의 희귀종 고릴라들의 처참한 모습

이 중 2마리는 임신한 상태였다고 하니 인간이 얼마나 더 잔인해질 수 있는건지 의문~

 

자료출처: 위키백과

사진출처: 유네스코 홈페이지, 연합뉴스

 

세계유산] 006. 암벽 속에서 꽃피운 문명 - 페트라

아시아 | 2008.11.29 22:34
영국의 시인 존 윌리엄 버건이 '영원의 절반만큼 오래된, 장미빛 같은 붉은 도시'라고 노래한 페트라는 나바테아인이 건설한 산악도시이다. 나바테아인은 BC 7세기부터 BC 2세기경까지 시리아와 아라비아반도 등지에서 활약한 아랍계 유목민이다. 이들은 사막 한가운데에 있는 붉은 사암 덩어리로 이루어진 거대한 바위 틈새에 도시를 건설하여 일세를 풍미했던 것이다.
 
암벽 속에서 꽃피운 나바테 문명
페트라는 이집트, 아라비아, 페니키아 등의 교차지점에 위치하여 선사시대부터 사막의 대상로를 지배하여 번영을 누렸던 캐러밴 도시이다. 좁고 깊은 골짜기를 따라 한참을 가면 극장과 온수 목욕탕, 그리고 상수도 시설이 갖추어진 현대 도시 못지않은 도시가 유령처럼 버티고 있다. 협소한 통로와 협곡으로 둘러싸인 바위산을 깎아 조성된 페트라의 건물들은 대부분 암벽을 파서 만들어졌다.
이곳은 기원전 1400~1200년 경 에돔과 모압의 접경지에 자리했으며, 구약에서는 '에돔의 셀라'라고 지칭하고 있다. 페트라는 그리스어로 '바위'를 의미하고, 셀라는 히브리어로 '바위'를 뜻하니 페트라는 바위의 도시인 셈이다. 애급(埃及, 이집트)을 탈출하여 가나안으로 향하던 모세와 그 추종자들에게는 약속의 땅으로 가는 통로이기도 했다. 
유목생활을 하던 나바테아인이 BC 7세기 무렵 페트라를 중심으로 정착하면서 나바테 문명이 빛을 보기 시작했다. 106년에는 로마의 트라야누스 황제에게 땅을 빼앗겼다가, 하드리아누스가 방문한 것을 기념하여 '하드리아누스의 페트라'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했다. 그 후 6세기경 발생한 지진에 의해 도시 전체가 폐허화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잊혀진 도시, 1200년 만에 그 모습을 드러내다
다마스쿠스에서 카이로로 향하는 탐험 도중 젊은 탐험가 부르크하르트는 페트라에 엄청난 유적이 숨겨져 있다는 말을 듣고 아랍인으로 변장한 후 이곳을 찾아 나선다. 1812년 그는 잊혀진 도시를 발견하였고, 이후 그의 여행기를 통해 페트라를 유럽에 알렸다. 이집트의 피라미드와 더불어 고대 세계 7대 불가사의의 하나인 이곳은 198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스티븐 스필버그의 영화 "인디아나 존스-마지막 성배"의 촬영 장소로 더욱 유명해진 곳.
 

두 사자 신전
요르단 페트라. 1세기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며 정면에 사자들이 조각되어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출입구가 병모양을 하고 있으며 내부가 로마의 3면 식탁 모양인 트리클리니움으로 되어 있어서 '트리클리니움'이라고도 한다.
 
묘지 문
요르단 페트라. 페트라는 나바테안 왕국의 수도였던 곳으로 기원전 2세기에서 서기 5세기까지 영위하다가 7세기부터 점차적으로 쇠퇴하여 지진등의 자연재해로 묻히게 된다.
 

4층 무덤군
 
수도원
요르단 페트라. 이 건물의 원래 용도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내부 벽면에 십자가가 새겨져 있어 수도원으로 추정한다. 이 부근은 기독교인들이 바위 굴 속에서 은둔생활을 했던 지역으로 알려져 있다.

오벨리스크 무덤과 트리클리니움 무덤
요르단 페트라. 윗층이 오벨리스크 무덤이며, 아래층은 로마의 식탁과 비슷한 내부구조를 가지고 있어 트리클리니움 무덤이라는 이름이 붙여져 있다. 아래와 위의 관계는 밝혀지지 않았으며, 아래층의 무덤이 시기적으로 훨씬 오래된 것이다.


페트라의 노을 풍경
 


왕족 무덤지역

납골당
 

왕궁무덤

 


알 카즈네
요르단 페트라. 아랍어로 '보물창고'를 뜻하는 그리스식 건축양식의 건물. 기원전 1세기 경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영화 인디아나존스 <최후의 성전> 편의 배경이 되기도 했다.

자료출처: 두산백과사전

 

필리핀의 계단식 벼 경작지, 코르디레라스(Rice Terraces of the Philippine, Cordilleras)

필리핀 루손섬 해발 1000∼1500m 고지에 형성된 대규모 계단식 논이다. 2000년 전부터 코르디레라스 산맥의 가파른 경사지를 깍아 논을 만들고 벼농사를 지어왔다. 논둑을 이을 경우 그 길이가 2만km가 넘는다. 단순한 농경지의 역할을 뛰어넘어 흙이 침식되는 것을 방지하는 역할을 한다. 풍경의 아름다움과 인간이 환경에 적응하며 이루어낸 전통의 가치를 인정하여, 1995년 유네스코(UNESCO:국제연합교육과학문화기구)에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하였다. 
 
 
인간의 의지가 만들어낸 장관이라고 할까...
 
 




얼마나 많은 노력을 들여야 산을 이렇게 논을 만들 수 있는걸까..
 
천수답을 만들어야만 살 수 있었기에 이런 장관을 만들어낸게 아닐까.. 만약 다른 선택이 가능했다면 절대 이렇게 만들지는 않았을꺼란 생각이 든다.

 

세계유산] 009. 스촨 자이언트 팬더 보호지역

아시아 | 2008.12.12 17:15
스촨 자이언트 팬더 보호지역 (Sichuan Giant Panda Sanctuaries)
 
중국 쓰촨[四川] 지역에 있는 자이언트 판다 보호구역이다. 면적 924,500ha이며 7개의 자연보호구와 9개의 관광구역이 있다. 멸종 위기에 있는 세계 판다의 30% 이상이 이 지역에 서식한다. 그밖에도 너구리판다, 눈표범, 구름무늬표범 등 멸종 위기에 처한 희귀한 동물도 있다. 또한 식물군도 매우 풍부하여 5,000∼6,000종의 식물이 분포한다. 2006년 유네스코(UNESCO:국제연합교육과학문화기구)에서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하였다.
 

 


 
팬더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중국 서부의 깊은 산, 대나무숲에만 살고 있으며 그 수가 극히 적어 야생화는 아직 알려져 있지 않고 그 털빛과 동작이 귀여워  온 세계의 사람들로부터 귀여움을 독차지하고 있습니다.
또한 팬더는 아주 먼 옛날(2500년 전)부터 그 모습이 변하지 않아 살아 있는 화석이라고 부릅니다.
팬더는 언제나 추운 땅 위에 있으며  낮에는 나뭇가지에 올라가서 일광욕을 즐기고  저녁 무럽에 주식인 대나무를 먹는데,  하루에 12시간에 걸쳐 약 20Kg의 양을 먹습니다.
그리고  팬더는 나무구멍에 집을 짓고  보통 1마리의 새끼를 낳습니다.  새끼는 3살이 될 때까지 몸에서 떼지 않고 돌봅니다.
팬더는 대나무 잎만 먹는 것이 아니고 본디 육식동물로써 새, 썩은 고기, 작은 동물 등도 먹는다고 합니다
팬더의 주식은 대나무와 조릿대 이며  이를 소화하기 위해 팬더는 위벽이 두껍고 발은  대나무를 잡을 수 있도록 손처럼 진화되었습니다.
번식기는 봄이고 가을에 새기 한 마리를 낳습니다. 새끼는 3~4년 지나면 어른이 되며 수명은 대략 25년 정도 입니다.  겨울잠을 자지 않으며  성질이 순하고 생김새와 동작이 귀여운 동물입니다.
 
 
인형이 아니라 진짜 살아있는 아기 팬더들~~~
 
너무 귀엽네요.
다음검색
스크랩 원문 : 아바사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수담장터 | 작성시간 12.06.24 잘 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댓글 전체보기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