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자유 게시판

한자공부

작성자고추잠자리|작성시간15.11.05|조회수1,621 목록 댓글 0

 



 

//

 

 

 



▲ '암국선' 이라는 한자가 음각되어있다.


▲ 玉女峰頭日欲斜(옥녀봉 산마루에 해가 저물어) 殘棋未了各歸家(바둑을 못 끝낸 채 집으로 돌아갔네) 明朝有意重來見(이튿날 날이 밝아 다시 와 보니) 黑白都爲石上花(흰 꽃 검은 꽃이 돌 위에 피어 있네)



 

 

 

 

 

 

 

 

 

 

 

 

 

 

 

 

 

 

 

 


 

 

 

 

 

 

 

 

 

 

 

 

 

 

 

 

 

 

 

 

 

 

 

 

 

! 중국을 움직이는 15가지 키워드
중국의 성장 동력

崛(우뚝 솟을 굴) : 세계의 블랙홀이 된 중국
合(합할 합) : 중화의 틀 속에 모든 것을 녹여 낸다
實(충실할 실) : 실용과 실리가 우선이다
領(거느릴 령) : 안정 속의 변화를 꿈꾸다


고속성장의 그림자, 중국의 과제
腐(썩을 부) : 공산당, 자기혁신 없이는 미래도 없다
法(법률 법) : 법치와 인치의 딜레마에 빠지다
神(귀신 신) : 종교의 바람이 불고 있다
影(그림자 영) : 빈부격차의 해법이 필요하다


중국의 미래 전략은
略(꾀 략) : 대동사회를 위한 모색
交(사귈 교) : 전방위 외교로 세계를 품는다
力(힘 력) : 강함과 부드러움의 조화를 꾀하다
統(합칠 통) : 두 개의 중국은 없다


한국의 대중국 전략
隣(이웃 린) : 가까운 이웃이 먼 친척보다 낫다
變(변할 변) : 비즈니스의 판을 바꿔라
集(모을 집) : 격화되는 아시아 클러스터 전쟁의 승자는

 

多行不義必自斃

족(族)은 나부끼는 깃대 아래 사람(人)과 화살(矢)이 놓인 모양이다. 화살은 전쟁을 상징한다. 그래서 족은 한 깃발 아래서 함께 싸울 수 있는 공동체를 뜻한다. 족 앞에 백성 민(民)을 더한 민족(民族)은 통치자의 지배력이 미치는 영역 안에 살며 전쟁에 나갈 수 있는 사람을 가리킨다. 족 앞에 집 가(家)가 오는 가족(家族) 또한 다른 부족과 전투가 벌어졌을 때 똘똘 뭉치는 사람을 나타낸다. 모두 싸움과 관련이 있다.

한데 싸움 중에 제일 몹쓸 것으로 치부되는 게 바깥 세력과 다투는 게 아니라 가족 내 같은 피붙이 간의 싸움인 형(兄)과 동생(同生) 간의 골육상쟁(骨肉相爭)이다. 이는 사람들의 조롱거리가 되기 십상이다. 황제에 오른 뒤 동생 조식(曹植)을 핍박한 위문제(魏文帝) 조비(曹丕)의 경우가 그렇다.

‘콩대를 태워 콩을 삶으니(煮豆燃豆萁) 콩은 솥 속에서 울고 있네(豆在釜中泣)

본래 한 뿌리에서 나왔건만(本是同根生) 어찌 이다지도 괴롭히는가(相煎何太急)’

조식의 재치 있는 칠보시(七步詩)가 골육상쟁의 피바람은 막았지만 조비는 체면을 구겼다. 동생을 해치려는 명분이 온당치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그 반대의 경우도 있다. 춘추시대 정무공(鄭武公)에겐 두 아들이 있었다. 그의 사후 큰아들 장공(莊公)이 왕위를 이어받았으나 동생 공숙단(共叔段)은 야심을 버리지 못했다. 봉토(封土)를 확장한다, 군사력을 키운다 등 왕위 찬탈의 음모를 잇따라 획책했다. 그러나 장공은 “불의를 자주 행하는 자는 반드시 스스로 망할 것이다(多行不義必自斃)”라며 조치를 취하지는 않았다. 마침내 공숙단이 군사를 일으켜 정면으로 도전하자 그제야 장공은 단숨에 공숙단을 격파해 후환을 없앴다. 형제간 상잔(相殘)이었지만 장공은 사람들의 비난을 받지 않았다. 정도(正道)를 걸었기 때문이다. 공숙단으로선 ‘스스로 멸망의 길을 택한 것(自取滅亡)’이다. 돌을 들어 제 발등 찍은 경우에 해당한다(搬起石頭頭自己的脚). 『좌전(左傳)』에 나오는 이야기다.

판문점 도끼만행, 아웅산 테러, KAL기 폭파사건, 그리고 아직 공식 발표되지는 않았지만 최근의 천안함 침몰 사건에 이르기까지 북한의 악행은 그칠 줄을 모른다. ‘다행불의필자폐’라는 탄식이 절로 나오는 요즘이다.

 한우덕 중국연구소 차장

 

 

 

 

[한자로 보는 세상] 公關 [중앙일보]

입력시각 : 2010-04-14 오전 12:23:09

1914년 록펠러 소유의 미국 콜로라도주 광산에서 광부들이 파업을 일으켰다. 탄광 보안대와 광부들의 충돌 과정에서 무고한 여자들과 아이들이 숨졌다. 신문에는 연일 처참하게 죽은 희생자들의 모습이 실렸다. 록펠러에 대한 비난이 들끓었다. 록펠러 2세는 아이비 L 리를 소방수로 고용했다. 대중의 눈에 악덕 자본가였던 록펠러는 리의 손을 거쳐 자비로운 자선가로 탈바꿈했다. 리는 ‘PR(퍼블릭 릴레이션스)의 창시자’로 불린다. 선전(宣傳)을 PR로 한 단계 발전시킨 것이다.

2001년 9・11 테러가 발생했다. 펜타곤도 공격을 당했다. 그날 하루 동안 미 국방부만도 각종 언론에 총 1만 번 보도된 것으로 집계됐다. 당시 맨해튼에 소재한 금융사와 여러 항공사의 PR팀들은 사상 초유의 위기 사태를 맞아 고객들을 상대로 홍역을 치러야 했다. 9・11은 ‘예측할 수 없는 사태를 반드시 예상해야 한다’는 교훈을 남겼다.

한・중・일 3국은 미국에서 만들어져 태평양을 건너온 신조어 PR을 모두 다르게 해석한다. 일본은 광보(廣報), 한국은 홍보(弘報), 중국은 공관(公關)인 식이다. 큰 뜻은 같다. 개인 혹은 국가나 기업과 같은 조직이 자신에 대한 공적인 신뢰와 이해를 획득하기 위해 벌이는 일련의 활동을 의미한다. 전통적으로 관계(關係)에 강한 중국만 공공관계(公共關係)로 직역한 뒤 공관이란 약칭을 사용한다. 개혁・개방 이후에 부상한 신조어다. 중국식 공관에는 목적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는 뉘앙스도 덧붙었다.

홍(弘)은 본래 활(弓)과 크다(宏・굉)가 합쳐진 글자다. 활시위 소리, 크다, 넓히다는 뜻이다. 제갈량(諸葛亮)의 출사표(出師表) 가운데 “뜻 있는 선비들의 기개를 크게 넓혀야 합니다(恢弘志士之氣)”라는 용례가 보인다. 홍복(弘福)은 큰 행복이다.

보통 기업의 홍보실은 고객과 언론을 최일선에서 상대한다. 자사에 불리한 정보를 시정하며, 유리한 소식은 널리 알리는 것이 업(業)이다. 관(官)이 국민에게 나랏일을 알리는 건 공보(公報)다. 최근 천안함 사건, 4대 강 사업, 세종시 문제에서 정부의 공보 기능이 우왕좌왕(右往左往)하고 있다. 국민과 호흡하고 관계를 맺는 제대로 된 공관이 필요할 때다.

신경진 중국연구소 연구원
 

[한자로 보는 세상] 楊柳 [중앙일보]

양류

입력시각 : 2010-04-12 오전 12:18:26

버드나무를 한자로 통칭할 때 보통 양류(楊柳)라고 쓴다. 그러나 엄격하게 따지자면 양(楊)과 유(柳)는 다른 나무다. 양은 잎사귀가 다소 뻣뻣하고 가지가 굵어 아래로 처지지 않는다. 위를 향해 올라가는 모양새다. 그에 비해 유는 잎이 가늘면서 가지가 땅을 향해 처진다. ‘수양버들 춤추는 길에 꽃가마 타고 가네-’의 노랫말에 등장하는 수양(垂楊)은 가지를 아래로 향한 버드나무를 가리키는 것으로, 양과 유의 다른 두 나무를 하나로 혼동해 인식한 데서 나온 것이다.

그래도 버드나무로 통칭하는 이 양류는 봄의 대명사다. 물이 흐르는 갯가에 봄물을 흠뻑 빨아들이는 갯버들이 있고, 따뜻한 봄기운에 피워올리는 꽃의 상징으로는 버들개지가 있다. 버들개지는 한자로 보통 유서(柳絮)라고 적는다. 다사로운 봄 하늘에 눈처럼 휘날리는, 솜뭉치처럼 생긴 버드나무 꽃이다.

버들개지 흩날리는 정경을 읊으면 영서다. 원래는 하늘에서 떨어지는 눈송이를 버들개지 휘날리는 것과 같다고 해서 나온 단어다. 빼어난 감성에다 뛰어난 재주를 갖춘 여성을 일컫는 말이기도 하다.

‘버드나무 가지를 꺾다’는 뜻의 ‘절류(折柳)’라는 단어에는 헤어짐과 그 아쉬움의 의미가 담겨 있다. 이별을 노래했던 과거 중국의 숱한 문인은 이를 단골 소재로 활용했다. 과거의 중국에서는 가족・친지 등과 헤어질 때 이 버드나무 가지를 꺾어서 건네주던 습속이 있었다.

버드나무를 일컫는 한자 유(柳)는 머무른다는 뜻의 유(留)와 동음(同音)이다. 버드나무 가지를 꺾어서 상대에게 건네는 행위에는 ‘그대 떠나지 말고 머물기를 바란다’는 뜻이 담겨 있기 때문이라는 해석이다. 그래서 봄을 그리는 중국의 시사(詩詞)에는 ‘버들개지가 눈처럼 이리저리 날리는 날에 버드나무 가지 꺾어 이별하는 사람들’의 모습과 그 정경(情景)이 자주 등장한다.

봄은 생명이 움트는 계절이기도 하지만 늘 남아 있는 자와 떠나는 사람의 정서가 엇갈려 남다른 심사(心思)를 불러일으키는 때이기도 하다. 누군가 그랬다. ‘해마다 피는 꽃은 같지만, 사람은 다르다(年年歲歲花相似, 歲歲年年人不同)’고.

천안함 사고로 조국에 몸을 바치고 스러져간 장병들과 그 가족의 이야기가 모두 슬프다. 이 봄이 따뜻하고 편치만은 않은 이유다.

유광종 중국연구소 부소장
 

[한자로 보는 세상] 機密 [중앙일보]

입력시각 : 2010-04-08 오전 12:31:09

기밀(機密)은 정치・군사・국가와 관련된 긴요한 공적 비밀을 뜻한다. 명(明)나라 학자 매응조(梅膺祚)가 편찬한 『자휘(字彙)』는 “기(機, 군사와 나라의 큰일)는 밀(密, 은밀한 일)이다”라고 정의했다. 현행 법률 7613호인 ‘군사기밀보호법’은 일반인에게 알려지지 아니한 것으로서 그 내용이 누설되는 경우 국가안전보장에 명백한 위험을 초래할 우려가 있는 군사기밀의 보호와 처벌에 관한 사항을 규정하고 있다. 대한민국의 군사기밀은 누설될 경우 안보에 미치는 영향의 정도에 따라 Ⅰ급(top secret), Ⅱ급(secret), Ⅲ급(confidential)으로 나눈다. 일본은 군사기밀을 비(秘), 방위비밀(防衛秘密), 특별방위비밀(特別防衛秘密)로 나누어 관리한다.

중국의 병서(兵書)인 『육도(六韜)』에 실린 무왕(武王)과 강태공(姜太公)의 문답은 천안함 침몰사건과 관련해 함의하는 바가 작지 않다. 무왕이 적군과 아군이 팽팽하게 대치한 상태에서 승리를 위한 대처법을 물었다. 태공의 답이다. “겉은 어지러우나 안은 정돈되고(外亂而內整), 굶주린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식량이 충분하며, 정예군이면서도 겉으로는 둔한 군사처럼 보여야 합니다(內精而外鈍). 한 번은 군을 모으고 한 번은 분산시켜, 꾀하는 바를 숨기고, 기밀을 은폐해야 합니다(陰其謀,密其機). 보루를 높이고, 정예를 매복시킵니다. 조용히 소리를 없앤다면 적은 우리가 방비하는 곳을 모를 것입니다. 서쪽을 치고자 한다면, 동쪽을 습격하십시오.” 무왕은 이어 적이 아군의 기밀을 알아챘을 경우의 대비책을 물었다. “군이 이기는 방법은 은밀하게 적군의 기밀을 살피고(密察敵人之機), 빠르게 그 이로움을 틈타 적이 미처 생각하지 못한 바를 급습해야 합니다.”

이렇듯 기밀 보호는 승리의 관건이다. 한편 국방장관은 ‘국민에게 알릴 필요가 있는 때’와 ‘공개함으로써 국가안보에 현저한 이익이 있다고 판단되는 때’ 군사기밀을 공개할 수 있다고 법은 규정하고 있다. 국민과 소통(疏通)하라는 뜻이다. 천안함 침몰사건 이후 군당국과 매체들의 대응 과정을 되새겨 보면 기밀 관리의 소밀(疏密, 성김과 빽빽함)이 아쉽다. 향후라도 기밀 운용의 노련함을 기대해 본다.

신경진 중국연구소 연구원
 
천(天)’은 ‘대(大)’와 ‘일(一)’로 구성돼 있다. ‘대’는 사람(人)이 팔과 발을 오므리지 않고 좌우로 활짝 편 모양이다. ‘일’은 사람의 머리 부분을 뜻한다. 따라서 ‘천’은 사람의 머리에 비유됐다. 이후 ‘천’은 사람의 머리와 맞닿아 있는 부분인 하늘이라는 뜻이 됐다.

서주(西周) 시대 사람들은 천(天)을 최고신(最高神)으로 섬겼다. 천의 뜻이 ‘천명(天命)’이고, 천명을 지상에 실현하는 이가 ‘천자(天子)’이며, 천자가 통치하는 곳이 ‘천하(天下)’다. 천하의 안정을 바라는 마음은 ‘천안(天安)’이란 두 글자에 담겼다. 베이징의 천안문(天安門)은 황제가 ‘천명을 받아 나라를 태평하게 다스리고 민심을 안정시킨다’는 뜻을 가졌다.

우리 해군 초계함인 천안함(天安艦)은 ‘천안’이란 지명을 딴 경우다. 그러나 국가의 안정을 희구하는 바람은 한 가지다. 천안함이 침몰했다. 두 동강이 났다. 국민의 마음도 따라서 동강이 났다. 화불단행(禍不單行, 재앙은 한 번으로 그치지 않는다)이던가. 실종자 구조에 나섰던 한주호 준위에 이어 금양호 또한 사고를 만났다.

노자(老子)는 “하늘의 도는 사사로이 치우침이 없어서 언제나 착한 사람의 편에 선다(天道無親 常與善人)”고 했거늘, 도대체 ‘하늘의 도(天道)’는 있기라도 한 것일까. 사마천(司馬遷)은 말했다. “백이(伯夷)와 숙제(叔齊) 같은 착한 사람은 어째서 굶어 죽었는가. 공자가 가장 칭찬한 안연(顔淵)은 어째서 가난에 쪼들리다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떴는가. 반면에 죄 없는 사람들을 죽이고 그들의 간을 회 쳐 먹는 등 악행을 일삼은 도척(盜跖)은 어떻게 천수(天壽)를 누렸는가. 도대체 하늘의 도는 옳은 것인가 그릇된 것인가(天道是耶非耶).”

정말이지 천도(天道)의 시비(是非)를 따져보지 않을 수 없을 만큼 답답한 요즘이다. 게다가 사고의 원인마저 아직은 시원하게 밝혀지지 않고 있다. 그래도 노자의 말을 믿어보자. “천망회회 소이불실(天網恢恢 疏而不失).” 하늘이 친 그물(天網)은 매우 커서(恢) 언뜻 보기엔 성겨(疏) 보이지만 이 그물에서 빠져 나갈 수는 없다(不失)는 뜻이다. 아무리 교묘한 사고 원인도 끝내는 밝혀질 것이다. 차분하게 조사 결과를 지켜보자. 만반의 준비를 하면서.

유상철 중국연구소 소장


 
 
한자로 보는 세상] 好漢 [중앙일보]

입력시각 : 2010-04-05 오전 12:48:36

‘헌헌(軒軒) 대장부(大丈夫)’. 집채(軒)처럼 크고 묵중한 행동거지, 큰 마음을 지닌 남자를 일컬을 때 쓰는 말이다. 그런 사내들에게는 호한(好漢)이라는 말도 붙는다. 좋은 사내, 훌륭한 남자라는 뜻이다. 중국에서는 그 앞에 영웅(英雄)이라는 단어를 붙여 ‘영웅호한’이라고 부르는 용례가 많다.

남자를 부를 때 ‘한(漢)’이라는 글자를 쓰는 현상은 중국 왕조인 한나라와 연관이 있다. 당시 한나라와 맞붙어 치열한 전쟁을 벌였던 흉노(匈奴) 등 북방 유목민족이 한나라 병사, 또는 남성들을 한인(漢人) 또는 한자(漢子)라 불렀기 때문이다. 여기서 ‘한’이 일반적인 남성을 뜻하는 글자로 정착됐다는 설명이 가장 유력하다.

멋진 사나이를 뜻하는 단어는 꽤 있다. 장한(壯漢)이라고 하면 몸집이 크거나 훌륭한 행동을 하는 사내를 뜻한다. 자신의 뜻을 관철해 목표를 이루는 사람은 강골한(强骨漢)이다.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고 공적인 이익을 위해 뛰어드는 사내는 열혈한(熱血漢)이다. 피가 뜨거운 남자다.

나쁘게 쓰이는 경우도 많다. 술 마시고 길거리를 방황하면 취한(醉漢)이요, 뭔가 수상쩍은 일을 꾸미거나 행하는 사람은 괴한(怪漢)이다. 약한 여성이나 어린이들을 건드리는 비겁한 사내는 치한(癡漢)이자, 호색한(好色漢)이다. 좀 더 오랜 연원을 지닌 것은 공두한(空頭漢)이다. 머리가 텅 빈 사람, 아주 어리석은 사내라는 뜻이다. 신의를 잘 지키지 않아 미덥지 못한 사람에게는 탈공한(脫空漢)이라는 단어가 붙었다.

요즘 한국의 언론 마당을 장식하는 두 타입의 남성을 본다. 바다에 빠진 천안함의 대원들을 구하기 위해 물에 뛰어들어 목숨을 바친 한주호 준위는 영락없는 영웅호한이다. 그 장례식장에서 올곧은 군인자세로 꿋꿋하게 슬픔을 겪어 냈던 그의 선배와 부하 UDT 대원들에게서는 장한・호한・열혈한의 그림자를 본다.

국회에 출석한 국방부 장관에게 “(실종 대원들을) 건질 생각은 있느냐”면서 허무한 개그를 펼쳐 보였던 야당 의원들은 공두한, 탈공한이다. 한주호 준위의 장례식장에서 조문을 끝낸 뒤 기념촬영에 몰두했다는 여당 의원들은 우리에게 익숙한 파렴치한(破廉恥漢)이자 무뢰한(無賴漢)이다. 한국의 멋진 사내와 비루(鄙陋)한 남성들의 격차가 너무 크다.

유광종 중국연구소 부소장
 

[한자로 보는 세상] 戰禍 [중앙일보]

입력시각 : 2010-03-29 오전 12:34:51

유사(有史) 이래, 아니면 그 훨씬 전부터 줄곧 인류가 다툼의 형식으로 키워온 게 전쟁(戰爭)이다. 그를 표현하는 한자는 많다. 문(文)에 대해서는 무(武), 필(筆)에 대해서는 병기(兵器)의 총칭인 융(戎)이 전쟁을 말했다. 책을 놓고 전장에 나아감이 ‘기문취무(棄文就武)’, 붓을 내던지고 싸우러 나가는 것이 ‘투필종융(投筆從戎)’이다.

무기를 뜻하는 한자로 전쟁을 말하는 경우도 있다. 병(兵)이 우선이고, 갑옷을 뜻하는 갑(甲), 비슷한 뜻인 혁(革), 창의 일종인 과(戈), 칼에 해당하는 도(刀), 방패의 하나인 간(干) 등도 그런 사례다. 이들은 도병(刀兵)・병과(兵戈)・병갑(兵甲)・병혁(兵革)・간과(干戈) 등으로 조합을 이룬다. 일차적으로는 대개 병장기(兵仗器)를 일컫지만, 종국에는 전쟁을 뜻하는 단어로 자리 잡는다.

그래도 대표 선수는 병이다. 흥병(興兵)이라고 한다면, ‘전쟁을 일으킨다’는 뜻이다. 구병(構兵)이라고 하면 ‘전쟁을 벌인다’는 뜻으로, 교전(交戰)과 같은 의미의 단어다. ‘그친다’는 뜻의 한자어인 미(弭)를 붙여 ‘미병(弭兵)’으로 적으면 전쟁을 잠시 멈추는 정전(停戰), 또는 휴전(休戰)이다.

봉수(烽燧)도 전쟁을 의미했다. 일정한 간격의 산봉우리 위에서 불을 지펴 연기・불꽃을 올림으로써 전쟁의 시작과 끝, 중간의 전황(戰況) 등을 알리는 장치다. 낮에 연기를 피워올리는 게 봉, 밤에 불을 지펴 올리는 게 수다.

따라서 ‘봉화(烽火)가 올랐다’는 전쟁의 시작을 알리는 말이다. 같은 뜻으로 봉연(烽煙)과 연화(煙火) 등이 있다. 연기가 곧장 치솟게 하기 위해 늑대의 배설물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는 낭화(狼火) 또는 낭연(狼煙)으로 표현했다.

전쟁은 참혹하다. 그래서 전화(戰禍)・병재(兵災)・병화(兵禍)라는 말이 생겼다. 전쟁에는 불길이 빠지지 않고 늘 따라붙는다. 그래서 병화(兵火)와 전화(戰火)라는 말은 전쟁의 대명사다.

끝나지 않은 싸움, 60년 전의 6・25전쟁은 아직 그 상태다. 북한과의 첨예한 대립이 지금까지 이어지면서 우리를 긴장케 한다. 서해에서 발생한 천안함의 참변도 그 하나다. 적에 대한 물 샐 틈 없는 방어, 참변을 당한 유족들에 대한 깊은 사회적 배려가 모두 중요하다.

유광종 중국연구소 부소장

[한자로 보는 세상] 松茂柏悅 [중앙일보]

입력시각 : 2010-03-25 오전 12:40:58

‘호사토비(狐死兎悲)’란 말이 있다. 여우가 죽으니 토끼가 슬퍼한다는 얘기다. 고개가 갸우뚱거려진다. 토끼로선 저를 잡아먹는 여우가 죽으면 좋아해야 하는 것 아닐까. 꼭 그렇지만은 않다. 토끼가 한 치 앞을 더 내다볼 경우엔 말이다. ‘호사토비’엔 여우나 토끼든 어차피 사람의 사냥감이 되기는 매한가지라는 인식이 깔려 있다. 동류(同類)의 불행에 대한 ‘동병상련(同病相憐)’의 아픔이 묻어난다. 자신을 ‘괴롭히는’ 직장 상사가 ‘짤렸다’고 해서 마냥 좋아할 일도 아니다. 다음은 자기 차례일 테니까.

‘호사토비’에 비해 ‘삼 밭의 쑥’이란 뜻의 ‘마중지봉(麻中之蓬)’에선 보다 밝은 분위기가 느껴진다. 쑥은 보통 곧게 자라지 않는다. 그러나 똑바로 자라는 삼과 함께 크다 보면 붙잡아 주지 않아도 곧게 자란다고 한다. 더불어 사는 이의 중요성을 말할 때 언급된다.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얼마 전 한 언론에 기고한 글에서 한・중 관계를 ‘송무백열(松茂柏悅)’에 비유했다. 소나무가 무성하게 자라는 것을 보고 옆에 선 잣나무(또는 측백나무)가 기뻐하듯 한・중이 서로 잘 되기를 기원하자는 취지다. ‘송무백열’은 서한(西漢) 시기 문인 육기(陸機)가 쓴 ‘탄서부(嘆逝賦)’에서 유래한다. ‘소나무가 무성하면 잣나무가 기뻐하고 지초가 불에 타면 혜초가 탄식하네(信松茂而柏悅 嗟芝焚而蕙嘆).’ 벗의 행복과 불행을 함께 기뻐하고 슬퍼하는 데서 ‘송무백열’과 ‘지분혜탄(芝焚蕙嘆)’의 성어가 나왔다.

최근 한・중 관계는 ‘송무백열’이란 비유가 부럽지 않은 듯하다. 이명박 대통령의 측근 류우익 대사가 중국으로 나가자 중국은 역대 주한대사 중에선 가장 직급이 높다는 장신썬(張鑫森)을 대사로 내정했다. 지난해 말 류 대사가 한국을 찾은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부주석을 수행하자 장신썬은 최근 방중한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을 수행하는 것으로 화답했다.

앞으로 한・중 관계엔 여러 변수(變數)가 있겠지만, 변하지 않고 상수(常數)로 작용할 한 가지 사실은 양국의 산과 물이 서로 닿아 있고(山水相連) 또 바다를 사이에 두고 마주보는(隔海相望) 이웃이란 점이다. 그런 이웃과 지내기엔 ‘여린위선 이린위반(與隣爲善 以隣爲伴・이웃과 선하게 지내고 이웃과 동반자로 지내다)’의 태도만큼 좋은 것도 없을 것 같다.

유상철 중국연구소 소장
 

[한자로 보는 세상] 戰爭 [중앙일보]

입력시각 : 2010-03-24 오전 12:02:00

“무릇 전쟁을 하기 전에 전쟁 시뮬레이션을 해야 하고(夫未戰而廟算), 승리를 확신하는 자는 이길 계책이 다양하다(勝者得算多).” 춘추시대 손무(孫武)가 쓴 『손자병법(孫子兵法)』의 서론격인 ‘계획편(計編)’의 결론이다. 여기서 묘산(廟算)은 임금이 신하들과 정사를 의논하던 묘당(廟堂)에서 세우는 전쟁 계획, 즉 워 게임(War Game)을 뜻한다. 묘산에서 이기는 것을 묘승(廟勝)이라고 한다. 손무의 전쟁론은 간단하다. ‘선승이후전(先勝而後戰)’, 이긴 후 다시 싸워라(贏了再打, 영료재타)는 논리다.

“먼저 전략을 세우고, 외교전을 펼치고, 야전을 펼치고, 그 다음에 공성전을 펼친다(上兵伐謀,其次伐交,其次伐兵,其下攻城).” 손무가 ‘모공(謀攻)편’에서 펼친 전쟁 방법론이다. 미국이 전쟁을 수행할 때도 펜타곤에서 전쟁계획을 수립하고, 국무부가 외교전을 펼쳐 연합국의 지지를 얻는 순서를 충실히 따른다.

전쟁이 잦았던 중국에는 예로부터 전쟁 이론을 담은 병서가 많았다. 강태공(姜太公)의 『육도(六韜)』를 시작으로, 한(漢)나라 개국공신 장량(張良)의 스승 황석공(黃石公)이 지었다는 『삼략(三略)』을 비롯해 저자 미상의 『삼십육계(三十六計)』까지 모두 현대전에 적용해도 손색없는 책들이다.

일단 전쟁이 발발하면 명분보다 승리가 우선이다. “나라는 바르게 다스리고, 군사는 속임수로 부린다(以正治國,以奇用兵)”는 말이 『노자(老子)』에 나온 이유다. 상승(常勝) 장군은 영웅이 아니었다. 그들은 이길 전쟁만 했다. 먼저 적이 이기지 못하도록 하면서 적군에 승리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렸을 뿐이다. 반면에 “고금의 명장은 다수가 패장이다(古今名將, 多是敗將)”란 말이 있다. 항우(項羽)와 관우(關羽)가 대표적인 명장이면서 패장이다. 고매한 인격의 그들은 승리가 적었어도 이길 수 없는 전투에 나서 승리했기 때문이다.

6・25 전쟁 60주년인 올해 준비 없이 전쟁의 참화(慘禍)에 휩쓸렸던 세대들이 들려주는 전쟁담이 국방의 중요함을 뼈저리게 일깨워준다. 『좌전(左傳)』에 ‘생활이 편안하면 위험을 생각하고, 생각하면 준비를 갖추어야 화를 면할 수 있다(居安思危 思則有備 有備無患)’는 말이 있다. 대한민국은 아직 휴전(休戰) 중이다.

신경진 중국연구소 연구원
 

[한자로 보는 세상] 西遊記 [중앙일보]

입력시각 : 2010-03-18 오전 12:32:23

천궁(天宮)을 쑥대밭으로 만든 화과산(花果山)의 돌원숭이 손오공(孫悟空)이 개과천선(改過遷善)해 부처의 반열에 오른다. 중국 사대기서 『서유기(西遊記)』의 기본 플롯이다. 비평가들은 천상세계에 도전하던 오공이 기존 질서에 순응한 노예가 됐다며 비판하기도 한다. 하지만 서유기는 행실 나쁜 악동(惡童) 새사람 만들기의 좋은 사례다. 석가여래에 의해 오행산(五行山) 아래 500년간 갇혔어도 제 버릇 남 못 주던 오공을 삼장법사(三藏法師)는 어떻게 다스렸을까?

삼장이 오공을 오행산에서 풀어 제자로 삼은 뒤 곧 여섯 명의 강도를 만난다. 오공은 이들을 거리낌 없이 때려죽였다. 제자의 잔혹한 살인행위를 본 삼장은 그를 엄히 질책했다. 불같은 성격의 오공은 버럭 화를 낸 뒤 스승을 버리고 떠난다. 이때 관음보살이 나타나 삼장에게 머리를 옥죄어 구속하는 마법테 긴고아(緊箍兒)를 건네준다. 긴고아가 하드웨어라면 이를 작동시키는 소프트웨어는 긴고주(緊箍呪)다. 삼장이 긴고주를 외우면 긴고아가 머릿속으로 파고 들어 눈이 튀어나오고 머리는 깨질 것 같으며, 이마가 끊어지는 고통을 받는다. 옥황상제・석가여래와 맞짱을 뜰 정도의 신통력을 가진 손오공도 긴고아 앞에선 순한 양으로 변한다.

긴고아의 출처는 본디 석가여래다. 여래가 관음보살에게 세 개의 테와 각각의 주문을 건네준 것. 이 테들은 삼장을 호위한 손오공, 흑풍산 흑풍괴(黑風怪)와 화염산의 홍해아(紅孩兒)에게 씌워졌다. 흉악한 바람으로 삼장 일행을 괴롭힌 흑풍괴는 금고아(禁箍兒)를 쓴 뒤 관음보살이 거주하는 낙가산(落伽山)을 지키는 수산대신(守山大神)이 된다. 관음보살은 우마왕과 나찰녀의 아들 홍해아에게 금고아(金箍兒)를 씌워 제압한 뒤 선재동자(善財童子)로 삼았다. 악명 높은 요괴들도 긴고아를 쓴 뒤 새사람이 된 셈이다.

오공은 틈만 있으면 삼장에게 ‘송고주('686;箍呪)’를 외워 긴고아를 풀어 달라고 애원하나 소용 없었다. 천신만고(千辛萬苦) 끝에 불경을 구해 돌아온 공으로 투전승불(鬪戰勝佛)에 봉해진 뒤에야 비로소 속박에서 벗어났다. 최근 전자발찌, 사형제가 논란이다. 몹쓸 사람들에겐 발찌보단 긴고아가 적격이다. 긴고주를 외우면 하시라도 그들을 꼼짝 못하게 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신경진 중국연구소 연구원
 

[한자로 보는 세상] 名 [중앙일보]

입력시각 : 2010-03-17 오전 1:12:48

‘천천히 하라 서두를 것 없다(慢慢來不要着急), 과거의 방침에 따라 처리하라(照過去方針辦), 그대가 한다면 나는 마음이 놓인다(<4F60>辦事我放心)’.

말년의 ‘모택동(毛澤東・마오쩌둥)’이 ‘화국봉(華國鋒・화궈펑)’에게 적어준 세 문장이다. 마지막 문장은 모택동 사후 화국봉이 정권을 잡는 데 유훈(遺訓)과도 같은 역할을 했다.

그런 화국봉은 성과 이름을 모두 바꿨던 인물이다. ‘소주(蘇鑄・쑤주)’가 본명이다. 화는 17세이던 1938년 이름을 바꿨다. ‘중화항일구국선봉대(中華抗日救國先鋒隊)’에서 둘째와 여섯째, 여덟째 글자를 뽑아 ‘화국봉’으로 개명했다. 항일전쟁에 몸을 바치려는 굳은 의지의 표현이었다.

화를 실각시킨 ‘등소평(鄧小平・덩샤오핑)’의 ‘소평’도 원래 이름은 아니다. ‘개화된 등씨’라는 뜻의 이름을 가졌던 부친 ‘등문명(鄧文明・덩원밍)’은 아들에게 ‘선성(先聖・셴성)’이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다. ‘성인을 앞서라’는 야심에서다. 그러나 ‘소평’이 다섯 살 때 ‘이름이 과(過)하다’고 생각한 가정교사의 제안에 따라 ‘희현(希賢・시셴)’, 즉 ‘현자가 되고자 한다’로 눈높이를 낮췄다. ‘소평’이 된 건 스물세 살 때다.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에서 일하게 되면서 국민당의 눈을 피하기 위해 ‘작고 평범한 등씨’라는 ‘등소평’이 됐다.

이름엔 바람이 많이 담긴다. 1949년 10월 1일 중화인민공화국 성립 때 태어난 이들에겐 ‘건국(建國・젠궈)’이나 ‘국경(國慶・궈칭)’ 등과 같은 이름을 즐겨 붙였다. 1950년대 한국전쟁 때 중국은 ‘조선을 도와 미국에 대항한다. 집을 보호하고 나라를 지키자(抗美援朝 保家衛國)’를 참전의 슬로건으로 내세웠다. 자연히 ‘위국(衛國・웨이궈)’ ‘위민(衛民・웨이민)’ 등의 이름이 유행했다.

개혁・개방이 시작된 1980년대 이후엔 예쁜 이름을 선호했다. ‘나(娜)’ ‘려(麗)’ ‘신(晨)’ ‘비(飛)’ 등. 이름처럼 아름답게 살라는 염원을 실었다. ‘이름(名)’은 원래 어두운 ‘밤(夕)’에는 서로를 알아보기 어려우므로 ‘입(口)’으로 상대를 외치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한국의 김길태는 ‘길에서 태어나’ ‘길태’가 됐다고 한다. 더 무슨 말이 필요할까. 가슴이 답답할 뿐이다.  

유상철 중국연구소 소장
 

[한자로 보는 세상] 貪 [중앙일보]

입력시각 : 2010-03-15 오전 12:50:28

많이 먹으면서 그칠 줄 모르는 사람에게는 식탐(食貪)이 있다고 한다. 이성(異性)을 밝히면서 제 본분을 잃는 사람에게는 색탐(色貪)이 있다고 이른다. 뭐든지 제 몫 이상을 요구하는 사람에게는 이렇게 ‘탐’이라는 글자가 따르기 마련이다.

업무를 핑계로 집에 돌아갈 생각 없이 술만 푼다면 탐배(貪杯)다. 술을 탐한다는 뜻의 탐주(貪酒)도 마찬가지 단어다. 이 시대의 상습적인 고주망태들에게 어울리는 말이다. 이 정도면 차라리 애교다. 탐내는 것이 하도 많아 더럽다는 인상을 주는 사람에게는 탐묵(貪墨)이라는 형용이 따른다. 탐욕으로 마음 등이 시커멓게 변한 사람이다. 재물에다가 색까지 밝히는 사람은 탐닉(貪溺)의 상태다. 빠져나오기 힘든 수렁에 발을 들인 것이다.

음식이나 색욕(色慾) 등 특정한 대상 외에 무엇이든지 절제 없이 밝히는 사람은 ‘탐람(貪<5A6A>)하다’는 말을 듣는다. 탐람(貪濫)이란 단어도 그와 같은 뜻이다. 정해진 몫 이상의 것을 찾아 좇다가 자신을 망치는 일, 또는 그 결과가 탐오(貪汚)다.

‘탐오’라는 단어와 함께 떠올려지는 것은 부패한 관료다. 공공(公共)의 영역을 책임지는 관리가 부정한 재물에 욕심을 낸다면 탐관(貪官)이요, 오리(汚吏)다. 합쳐서 이르는 ‘탐관오리(貪官汚吏)’는 동서고금(東西古今)의 빼놓을 수 없는 골칫거리다. 동양의 관리들이 받았던 뇌물이 포저(苞<82F4>)다. 어육(魚肉)을 싸던 부들(蒲)을 일컬었던 단어다. 뜻이 확대돼 값비싼 물건을 싸던 보자기, 즉 뇌물로 변했다. 조선왕조의 실록(實錄)에 늘 등장하던 단어였으니 조정(朝廷)에서도 이 때문에 꽤 골치가 아팠던 모양이다.

지금 자주 사용하는 ‘뇌물(賂物)’은 회뢰(賄賂)라고 했다. 수회(受賄)라고 하면 뇌물을 받는 것, 뇌물을 주는 것은 행회(行賄)다. 한국에서는 뇌물 받는 행위를 수뢰(受賂)라는 단어로 자주 표현한다. 어차피 뇌물 수수(授受)에 관한 죄는 주고받는 쌍방이 있어야 성립하는 것이다. 이 모든 게 부정당한 재물을 받아 법질서를 어지럽힌다는 뜻의 ‘탐장왕법(貪贓枉法)’의 사례들이다.

요즘 경찰이나 교육계의 비리가 속속 터져나온다. 국가의 법질서를 이끄는 경찰, 차세대를 키우고 북돋워야 하는 교육계 공무원의 비리라서 그 심각성이 자못 크다. ‘무소유(無所有)’의 정신을 남기고 법정 스님이 세속의 삶을 마감했다. 그 다비(茶毘)식에서 타오른 장엄(莊嚴)한 불길은 이들의 탐심(貪心)에 어떤 반응을 일으켰을까.

유광종 중국연구소 부소장
 

[한자로 보는 세상] 中國夢 [중앙일보]

입력시각 : 2010-03-11 오전 12:32:26

“한 마음으로 중원을 되찾고 싶은 꿈이려니, 하천의 시 만고에 여전하네(一心中國夢,萬古下泉詩). 아침마다 남쪽을 향해 절하니, 원컨대 한실의 깃발 드날리는 것을 보고 싶구나(朝朝向南拜, 願睹漢旌旗).”

송(宋)나라가 망한 뒤 초야에 은거해 시화(詩畵)에 매진했던 정사초(鄭思肖, 1241~1310)의 시 ‘덕우이년세단(德佑二年歲旦)’의 일부다. 사초란 이름은 조(趙)씨가 세운 송나라를 그리워한다는 사조(思趙)의 뜻이다. 그는 송나라가 있던 남쪽만을 향하겠다 하여 호도 소남(所南)으로 지었다. 오랑캐에게 땅을 빼앗겼다 하여 난(蘭)을 그려도 흙과 뿌리를 그리지 않았던 작가의 조국 통일에 대한 갈망을 읊은 시다. 2008년 3월 원자바오 중국 총리는 전국인민대표대회(全人大) 폐막 직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대만 기자의 질문에 중국몽이 나오는 이 시를 인용하며 양안 통일에 대한 바람을 표현했다.

최근 중국에서는 류밍푸(劉明福) 국방대학 교수의 책 『중국몽(中國夢)』이 화제다. 류 교수는 세계가 미국의 패도(覇道) 대신 중국의 왕도(王道)를 원한다며, 임박한 미・중 전쟁을 막으려면 중국이 대군을 양성해야 한다는 급진적인 주장을 내놨다. 그는 미국식 민주보다 더 나은 중국식 민주 기적, 복지 국가보다 더 공평한 부의 분배 기적, 다당 경쟁보다 더 효율적인 장기 안정의 기적을 창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난해 이맘때쯤 나왔던 『앵그리 차이나(中國不高興)』와 같은 맥락이다. 정사초에게 오랑캐가 원나라였다면 류밍푸에게는 미국인 셈이다.

꿈 속에서 꿈 이야기를 한다는 몽중설몽(夢中說夢)이란 말이 『대반야경(大般若經)』에 나온다. 허황된 이야기란 뜻이다. 현실에서 꿈 이야기를 해도 황당할 텐데, 꿈 속에서 나눈 꿈 이야기이니 얼마나 허황할 것인가. 하지만 선불교에서는 반야경이 색즉시공(色卽是空)을 가르친다는 데 근거해, 몽중설몽을 헛소리가 아닌 부처의 진정한 가르침으로 해석한다. 몽중설몽이 곧 공중설공(空中說空)이란 논리다.

중국몽을 꾸는 중국의 국력이 어디까지 뻗칠지는 두고 볼 일이다. 하나 부처의 말처럼 꿈(夢)을 버림(空)으로까지 승화시킬 때 다른 나라들의 공감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신경진 중국연구소 연구원
 
한자로 보는 세상] 葉落歸根 [중앙일보]

입력시각 : 2010-03-10 오전 12:22:35

유방(劉邦)과 함께 대륙 중원의 패권을 다퉜던 항우(項羽)는 관중(關中・현재의 西安)땅을 장악한다. 이때 한 장수가 ‘관중은 천하의 요새이니 이곳에 도읍을 정하자’고 제의했다. 이 말에 항우는 피식 웃고는 답한다. ‘부귀를 얻어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는다면 마치 밤에 화려한 옷을 입고 밤길을 걷는 것과 같으니 누가 알아주겠는가(富貴不歸故鄕, 如衣綉夜行, 誰知之者)’라고 답했다. 항우는 진(秦) 궁궐을 철저히 파괴한 뒤 수레에 금은보화를 가득 싣고 고향으로 떠났다.

성공한 뒤 고향으로 돌아간다는 뜻의 ‘금의행주(錦衣行晝)’라는 말은 여기에서 유래됐다. 화려한 비단 옷(錦衣)을 입고 밤이 아닌 낮에 고향으로 간다는 뜻에서다. 당(唐)나라 고종 이연(李淵) 역시 같은 생각이었다.

그는 ‘화려한 비단옷을 입고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은 옛사람들이 동경하던 일(錦衣還鄕, 古人所尙)’이라 했다. 이후 ‘금의환향’이라는 말이 폭넓게 쓰이고 있다(중국에서는 ‘衣錦還鄕’이라고 한다). ‘금의영귀(錦衣榮歸)’ 역시 같은 뜻이다.

타지에서 생활하다 말년에 고향으로 돌아간다는 뜻의 또 다른 말은 ‘엽락귀근(葉落歸根)’이다. ‘나뭇잎은 떨어져 뿌리로 돌아간다’는 철학적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성어는 순자(荀子) ‘치인편(致仁篇)’에 나오는 ‘물은 깊어 되돌아오고, 나무는 떨어져 퇴비가 되네(水深而回,木落糞本)’라는 구절에 뿌리를 두고 있다. 후대 학자들이 이를 ‘물은 원래 자리로 돌아오고, 낙엽은 뿌리로 돌아간다(水落歸末,葉落歸根)’로 해석하면서 ‘葉落歸根’이라는 성어가 생겼다. 불가(佛家)에서 많이 인용된다.

새가 저물면 제 집을 찾듯(歸巢) 말년에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은 것은 사람의 본성일 터다. 여우조차 죽을 때는 고향을 향해 머리를 두고 초심으로 돌아간다(首邱初心)고 했으니 말이다.

30년 전 한국을 떠나 온두라스로 이주했던 강영신(57)씨가 온두라스 대사로 고향으로 돌아온다는 소식이다. ‘금의환향’이요, ‘엽락귀근’이라 할 만하다. 어찌 그뿐이겠는가. 엽락귀근은 바쁜 일상에 찌든 모든 현대인들의 소망인 것을….

한자로 보는 세상] 堂室 [중앙일보]

입력시각 : 2010-03-08 오전 12:40:02

과거에 번듯한 주택을 지을 때는 방 앞에 당(堂)을 만든다. 우리 한옥 형식으로 말하자면 방과 방 사이에 있는 대청(大廳) 또는 대청마루다. 관혼상제(冠婚喪祭)의 일반적인 가례(家禮) 의식(儀式)이 대개 당이나 대청에서 열린다.

당은 관아(官衙)의 집무실을 부르는 데서도 쓰였다. 그래서 명(明)대에는 현재의 장관급이나 차관급 벼슬자리의 관리를 당관(堂官)이라고 불렀다. 조선에서도 그 급의 관리를 당상관(堂上官), 그 아래의 관리를 당하관(堂下官)으로 나눠 불렀다. 성명을 직접 부르지 않고 그 사람이 사는 거처의 집 이름으로 호칭을 대신하는 게 당호(堂號)다. 정약용(丁若鏞) 선생의 여유당(與猶堂), 율곡 이이의 어머니 사임당(師任堂) 등이 대표적이다.

당보다 더 깊숙한 곳에 있는 것이 실(室)이다. 우리 식으로 말하자면 방(房)인 셈이다. 내실(內室) 또는 침실(寢室) 등 매우 개인적인 공간에 ‘실’이라는 글자가 붙는 이유다. 어쨌든 사람이 집 안으로 들어와 방까지 진입하는 과정의 선후(先後) 관계는 ‘당→실’이 되는 셈이다.

‘늑대’를 잘못 끌어들여 내실까지 오게 한다면 파장(罷場)이다. 그 뜻의 성어가 ‘인랑입실(引狼入室)’이다. 궁극적으로는 그 사람의 내면에 담긴 내용이 소중하지, 겉만 번지르르한 치장은 중요치 않다는 점을 일깨운 당(唐)대 문인 유우석(劉禹錫)의 유명한 문장 제목은 ‘누실명(陋室銘)’이다.

그런 점에서 당보다는 실이 더 수준이 높은 셈이다. 건축에서 최상위의 개념에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나온 말이 ‘승당입실(升堂入室)’이다. 공자(孔子)의 『논어(論語)』에 나오는 말이다. 공자가 제자 자로(子路)의 음악을 평하면서 “대청마루에는 이미 올라섰고, (단지) 방에는 들어서지 못했을 뿐(由也升堂矣, 未入于室也)”이라고 한 말에서 나왔다. 어느 정도 수준에 들어선 사람, 그가 앞으로 더 올라야 할 경지를 당실(堂室)에 비유했다.

요즘 일본이 한국을 부러워한단다. 밴쿠버 금 소식, 휘청거리는 일본에 비해 상대적으로 도약하는 한국 산업 때문이다. 그러나 자만은 결코 금물(禁物)이다. 공자의 지적처럼 우리의 진정한 국력은 실 앞의 당, 아니면 그에도 못 미치는 마루 밑 섬돌에 머무는 것은 아닌지 냉정하게 살필 일이다.

유광종 중국연구소 부소장
 
한자로 보는 세상] 座右銘 [중앙일보]

입력시각 : 2010-03-04 오전 12:28:00

‘남의 단점을 말하지 말고(無道人之短)

나의 장점을 자랑하지 마라(無說己之長)

남에게 베푼 건 기억하지 말고(施人愼勿念)

은혜를 받은 것은 잊지 마라(受施愼勿忘).’

후한(後漢) 시대 학자 최원(崔瑗)이 쓴 좌우명(座右銘)의 시작 부분이다. 그는 서예로 이름을 날렸지만 어려서 부모를 잃고, 또 형을 살해한 사람을 법의 심판대에 세우기보다는 자신이 직접 처단해 옥에 갇히는 등 굴곡 많은 삶을 살았다. 그런 연유로 그는 ‘자리(座)’의 ‘오른쪽(右)’에 일생의 지침이 될 좋은 글을 ‘쇠붙이에 새겨 놓고(銘)’ 생활의 거울로 삼았다. 좌우명이 세상에 퍼지게 된 유래다.

그러나 좌우명의 시작은 원래 문장(文章)이 아닌 술독이었다고 한다. 춘추오패(春秋五覇)의 하나였던 제(齊)나라 환공(桓公)에겐 묘한 술독이 있었다. 비어 있을 때는 비스듬히 기울었다가 반쯤 차면 바로 서고, 가득 차면 엎어졌다. ‘가득 차면 뒤집힌다’는 ‘만즉복(滿則覆)’이라는 말도 여기서 나왔다. 환공은 이 술독을 늘 자리 오른쪽에 두고 교만을 경계하고자 했다. 훗날 환공의 묘당(廟堂)을 찾았던 공자(孔子)가 이를 보고 제자들에게 이르기를 “공부도 이와 같다. 자만하면 반드시 화(禍)를 초래할 것”이라고 했다.

최근 차기 한국은행 총재의 유력한 후보 중 한 명으로 거론되는 김중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주재 대사가 밝힌 좌우명 ‘낭중지추(囊中之錐・주머니 속의 송곳)’가 눈길을 끈다. 올해 63세로 현재의 OECD 대사 자리가 14번째 근무처지만 “가고 싶다고 해서 간 적은 없다”고 한다. 묵묵히 열심히 일하다 보면 주머니 속 송곳처럼 자연스레 알려진다는 겸손함이 있다. 아울러 인재는 언젠가는 발탁된다는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도 엿보인다.

‘눈 덮인 들판을 걸어갈 때(踏雪野中去)

발걸음 하나도 어지러이 마라(不須胡亂行)

오늘 내가 걸어가는 발자취는(今日我行跡)

뒷사람의 이정표가 될 것이니(遂作後人程).’

김구(金九) 선생께서 즐겨 휘호(揮毫)로 쓴 시구이자 김대중 전 대통령의 좌우명이기도 하다.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럽지 않은 길을 가려 했던 선인(先人)들의 의지가 배어 난다. 세파(世波)에 파묻혀 하루하루 살기에 바쁜 오늘의 우리에겐 어떤 좌우명이 필요한 것일까.

유상철 중국연구소 소장
 

[한자로 보는 세상] 盲點 [중앙일보]

입력시각 : 2010-03-03 오전 12:46:23

간단한 실험 하나. 흰 종이 위에 가위표와 점을 5㎝ 정도 간격으로 그린다. 가위표가 왼쪽에 오게 종이를 손에 든다. 왼 눈을 감고 오른 눈으로 가위표를 응시하며 천천히 종이를 든 손을 얼굴 쪽으로 당긴다. 어느 순간 동그란 점이 사라졌다 다시 나타나는 마술이 일어난다. 맹점(盲點)을 확인하는 방법이다. 인간은 누구나 망막 한가운데 시신경 다발이 뇌로 이어지는 블라인드 스팟을 갖고 있다. 본디 ‘맹(盲)’이란 글자는 눈이 있어도 시력을 잃어 볼 수 없다는 뜻이다. 화기(火器)나 레이더의 유효거리 안에 있음에도 효력이 닿지 않거나 자동차 후사경으로 볼 수 없는 곳은 사각지대(死角地帶)다.

옛날 옛적에 태어나면서부터 눈이 먼 사람이 있었다. 어느 날 태양이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해져 옆 사람에게 물었다. “태양은 구리쟁반(銅盤)과 같소.” 장님이 쟁반을 찾아 직접 만지고 두드려 봤다. ‘당당당’ 소리가 났다. 그 후 길을 가다 종소리를 듣고는 “저것이 바로 태양이오”라고 말했다. 그러자 지나던 사람이 태양은 촛불처럼 빛을 낸다고 말해줬다. 손으로 초 한 자루를 만져본 장님은 어느 날 피리(籥)를 잡아보곤 큰 소리로 외쳤다. “이것이 정말 태양이다.”

북송 시인 소동파(蘇東坡)가 ‘일유(日喩)’란 글에 남긴 ‘맹옹문약(盲翁捫籥・눈먼 노인이 피리를 만지다)’이란 고사다. ‘구반문촉(毆槃捫燭・쟁반을 두드리고 초를 만지다)’이 같은 말이다. 남의 말만 듣고 사물의 단편적인 부분만을 본 뒤 진실을 인식하지 못함을 경계하는 말이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휩쓸던 2008년 말 갓 취임한 정만원 SK텔레콤 사장이 “구반문촉의 우(愚)를 범하지 말자”며 “세밀한 분석을 통해 위기를 기회로 만들자”고 말했다.

연초 리콜 사태로 세계 최강의 제조업체로 공인받아온 일본 도요타가 만신창이(滿身瘡痍)가 됐다. 그동안 고품질과 고효율은 도요타 방식의 양대 핵심이었으나, 생산공정만 강조하는 풍조가 개발・설계 단계의 맹점을 낳았다는 분석이 나온다. 맹점은 인간 누구에게나 있다. 문제는 맹목(盲目)적인 맹종(盲從) 대신 혜안(慧眼)을 뜰 때 풀린다.

신경진 중국연구소 연구원
 
한자로 보는 세상] 敎師 [중앙일보]

입력시각 : 2010-03-01 오전 12:32:47

스승을 일컫는 한자는 사(師)다. 당(唐) 문단의 거봉(巨峰) 한유(韓愈)는 스승이라는 존재를 “진리를 전하고, 학업을 가르치며, 의혹을 푸는(傳道授業解惑)” 사람이라고 정의했다. 요즘 한국에서는 선생(先生)이라고 호칭하는 경우가 더 많다. 『논어(論語)』에서 ‘선생과 제자(弟子)’를 함께 사용해 그 단초를 만들었지만, 원래의 뜻은 다르다. 여기서 선생은 ‘연장자’, 제자는 ‘나이 어린 사람’이다. 『맹자(孟子)』에 와서는 ‘존경 받는 어른’의 뜻으로 의미가 더해졌다가 나중에 스승의 의미로 자리 잡는다.

부자(夫子)라는 단어도 지위가 높은 남성을 일컫는 호칭으로 생겨났다가 스승의 뜻으로 변한다. 학생들이 선생님을 높여 부를 때는 부자 외에 ‘강석(講席)’이라는 단어도 쓴다. 선생이 학생에게 강의하는 자리라는 뜻이다. 이와 비슷한 것으로 ‘함장(函丈)’이 있다. 스승과 제자가 앉을 때 한 장(丈)의 거리를 두고 떨어져 앉아야 한다는 뜻에서 나온 말이다. 강석과 함장은 특히 편지 글에서 제자가 선생님을 높여 호칭할 때 사용한다.

고대 사회에서 중요한 법률을 공포할 때에는 목탁(木鐸)을 사용했다. 구리로 만든 원형(圓形) 그릇에 나무로 만든 울림대(舌)를 넣은 것으로, 소리를 내는 데 쓰이는 도구다. 법률을 공포하는 사람이 이 목탁을 흔들고 다니면서 그 내용을 알린다. 목탁을 흔드는 일은 따라서 ‘중요한 계시’라는 뜻을 담는다. 『논어』에는 그래서 “하늘이 선생님으로 목탁을 삼는다(天將以夫子爲木鐸)”라고 적었다. 목탁은 이후 스승 또는 선각자를 뜻하는 단어가 됐다. ‘목탁을 흔들다’는 뜻의 ‘진탁(振鐸)’도 역시 스승을 뜻한다. 남을 깨우치고 키워내기 위해 말을 해야 한다는 점에서 선생의 직업을 ‘설경(舌耕)’이라는 말로 부르기도 했다.

스승이라는 존재는 이처럼 고귀하다. 어둠 속에서 빛을 보여주는 사람이다. 그래서 ‘스승의 그림자를 밟지 않는다’는 말도 나왔다. “백 년을 내다보려면 사람을 심는다(百年樹人)”는 국가 백년대계의 중추도 역시 교사(敎師)다. 그러나 다 옛말이다. 돈을 받아 챙기고, 제 사람 끌어 앉혀 파벌싸움에만 몰두하는 교육 공직자들의 검은 모습이 요즘 매스컴에 속속 오르내리고 있으니 말이다. 대한민국의 교육이 큰 걱정이다.

유광종 중국연구소 부소장
 

[한자로 보는 세상] 作法自斃 [중앙일보]

입력시각 : 2010-02-25 오전 12:36:47

중국 신화 속 해태(獬豸)는 시비(是非)・선악(善惡)을 구별하는 상상 속 동물이었다. 바르지 못한 사람이나 죄인을 보면 뿔로 치받는다는 전설을 갖고 있다. 그러기에 우리나라 해태 상(像)과는 달리 중국의 해태에는 머리 중앙에 커다란 뿔이 하나 솟아 있다.

한자 ‘법(法)’에는 이 해태 한 마리가 웅크리고 있다. ‘法’의 원래 자는 ‘灋’으로, 여기에 나오는 ‘치(廌)’가 바로 해태의 또 다른 명칭이다. ‘물(水)처럼 공정하게, 해태(廌)가 뿔로 악한 사람을 제거(去)한다’는 뜻이 모여 ‘灋’이 된 것이다. 훗날 쓰기 복잡한 ‘廌’가 빠지면서 현재의 ‘法’이 됐다. 치우침 없는 잣대로 악인을 몰아내는 게 법의 어원이었던 셈이다. 중국 법원 앞마당에 저울을 든 정의의 여신 대신 뿔 달린 해태 상이 세워진 것도 그런 이유다.

형벌을 뜻하는 법을 치국(治國)의 방책으로 끌어올린 사람은 상앙(商鞅・? ~ BC 338)이다. 상앙은 진(秦)나라 재상으로 있으면서 변법(變法)의 정치를 펴 여러 제국 중 하나였던 진나라를 최강국으로 끌어올렸다. 법으로 통일의 기반을 닦은 셈이다.

그에게 법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적용되어야 할 엄격한 잣대였다. 죄인에게는 무자비할 정도의 형벌이 가해졌다. ‘(목공이 쓰는)먹줄이 굽지 않듯, 법은 귀족에게 아부하지 않는다(法不阿貴, 繩不繞曲)’는 식이다.

상앙은 그러나 자신이 제정한 법으로 인해 죽음에 이르게 된다. 귀족들의 반발을 샀고, 결국 쫓기는 신세가 된 것. 국경을 빠져나가려던 그는 한 여관에 들어 하루 묵게 해달라고 청했으나 주인은 “상앙이 만든 법 때문에 모르는 사람을 재워줄 수 없다”고 거부했다. 이 말을 들은 상앙은 “내가 만든 법으로 인해 내가 죽는구나(작법자폐・作法自斃)”라고 탄식했다. 자업자득(自業自得), 자승자박(自繩自縛)과 같은 뜻의 말이다. 그는 사로잡혀 거열(車裂・사지가 찢기는 형벌)을 당했으나, 여관 앞에서 탄식했던 ‘작법자폐’라는 말은 아직도 살아 있다.

‘세종시법’ 수정안을 놓고 한나라당이 시끄럽다. 자신들이 만들었던 법을 놓고 자중지란(自中之亂)을 보이고 있다. 당 내에서도 ‘작법자폐’라는 탄식이 흘러나온다.

[한자로 보는 세상] 萬折必東 [중앙일보]

입력시각 : 2010-02-24 오전 12:22:53

자공(子貢)이 공자(孔子)에게 물었다. “군자가 물을 보고서 느껴야 할 점이 무엇입니까.” 공자는 “만 번을 굽이쳐 흘러도 반드시 동쪽으로 향하니 의지가 있는 것과 같다(其萬折也必東 似志)”고 답했다. 여기서 ‘만절필동(萬折必東)’이란 말이 나왔다. 황허(黃河)가 남과 북으로 수없이 꺾여도 중국의 지형이 서고동저(西高東低)인 까닭에 끝내는 동쪽으로 흘러간다는 뜻이다. 결국 원래 뜻대로 된다거나 충신의 절개는 꺾을 수 없음을 이를 때 사용된다. 순자(荀子) 유좌(宥坐)편에 나온다.

삼성증권이 올해 증시 상황을 최근 ‘만절필동’에 비유했다. 중국과 미국의 긴축, 남유럽 재정악화라는 ‘글로벌 삼재(三災)’가 있지만 끝내는 극복할 것이란 전망이다. 주가가 오르기만을 기원하는 증권사의 바람이 담겼다.

만절필동이 가능한 건 ‘바다’라는 ‘그릇’이 워낙 크기 때문이다. 바다는 아무리 많은 강물이 흘러들어도 넘치지 않는다. ‘태산은 티끌도 마다하지 않고 강과 바다는 작은 시냇물도 가리지 않는다(泰山不辭土壤 河海不擇細流)’고 한 이사(李斯)의 명언을 떠올리게 한다.

최근 도요타 리콜 사태와 관련, 일본에서 ‘컨설팅의 신(神)’으로 불리는 하세가와 가즈히로(長谷川和廣)는 “도요타 자동차가 그릇 이상의 일을 벌였다”고 꼬집었다. 사업 규모가 도요타가 할 수 있는 ‘그릇’을 초과하다 보니 문제가 생겼다는 지적이다. ‘가득 차면 뒤집힌다’는 ‘만즉복(滿則覆)’의 상황이 발생했다는 이야기다. 사물은 차면 이지러지므로 가득 찬다는 건 오히려 손실을 초래하기 쉽다. 사람도 의기양양 거드름을 피우면 망하기 쉬운 이치다.

도요타 자동차의 도요다 아키오(豊田章男) 사장이 결국 미 의회의 압력에 굴복해 24일(미국 시간) 열리는 미 하원 감독정부개혁위원회 청문회에 증인으로 출석한다. 그의 가슴엔 ‘만즉복’의 쓰라림이 요동칠까, 아니면 끝내는 이번의 역경을 이겨내고 더욱 발전하리라는 ‘만절필동’의 의지가 번득일까. 비 온 뒤 땅은 더욱 굳어지게 마련(雨後地實)이라는데….

만절필동이 한국에선 ‘만절필서(萬折必西)’로 쓰여야 맞을 듯싶다. 우리 지형은 동고서저인 까닭에 대부분의 강물이 서쪽으로 흐르지 않던가. 그나저나 우리네 인생은 어디로 흘러가는 것일까.

한자로 보는 세상] 消息 [중앙일보]

입력시각 : 2010-02-22 오전 12:30:12

내쉬는 숨, 날숨은 호(呼)다. 들이마시는 숨, 들숨은 흡(吸)이다. 내쉬면서 들이마셔야 호흡(呼吸)이다. 이 한 번의 호흡이 식(息)이다. 호흡이라는 동작을 통해 들고 나는 기운을 말할 때는 기식(氣息)이라는 단어를 쓴다. 내게 닥쳐오는 바람을 막는 장치는 병풍(屛風)이다. 일부러 숨을 들이 쉬거나 내뱉지 않는 행위는 따라서 병식(屛息)이다. 불가항력으로 숨을 쉬지 못하는 상태는 질식(窒息)이다.

식은 천(喘)과 비슷한 뜻이다. 단지 차이가 있다면 식은 천천히 내뱉고 삼키는 호흡인 데 비해, 천은 급히 숨을 쉬는 행위다. 중국 고대 자전(字典) 『설문해자(說文解字)』는 천이라는 글자를 “빨리 숨쉬는 것(疾息)”으로 풀었다. 둘을 합친 천식(喘息)이라는 단어는 원래 숨쉬는 행위를 뜻했다. 그러나 잘 알려져 있듯이 천식은 호흡이 곤란한 병의 명칭으로 자리 잡았다. 실망감이 넘쳐 숨을 크게 내뱉으면 탄식(歎息)이다. 식이라는 글자 앞에 ‘길다’ ‘크다’는 뜻의 한자를 덧붙이면 탄식, 또는 장탄식의 의미를 지닌 단어가 된다. 태식(太息)・장식(長息)・장태식(長太息) 등이 그 경우다.

호흡은 생물에게 가장 중요한 생존의 조건. 우선 숨이 통해야 안정을 찾을 수 있다. 이 점에서 식이라는 글자는 높이 치솟은 것이 가라앉아 평온함을 되찾는다는 뜻으로 진화한다. 쉬어서 안정을 찾는 행위는 따라서 휴식(休息)이다. 『역경(易經)』에 나오는 “군자는 스스로 힘쓰면서 쉬지 않는다(自强不息)”는 말도 그의 좋은 용례다. 이런 이유로 인해 식은 생장(生長), ‘생겨나고 자라남’의 뜻도 지닌다. 아들딸을 뜻하는 자식(子息)이 대표적인 경우다. 돈을 빌려줘 생기는 이자(利子)를 이식(利息)이라고 부르거나, 그런 돈을 식전(息錢)으로 말하는 것도 마찬가지 이유에서다.

그에 비해 소(消)라는 글자는 소멸(消滅)과 소실(消失)을 뜻한다. 둘을 합치면 소식(消息)이다. 원래의 뜻은 ‘사라짐과 생겨남’이다. 그러나 나중에는 사람 또는 사물이 스러지거나 자라나는 상황에 대한 정보의 뜻으로 진화한다. ‘무소식(無消息)이 희소식(喜消息)’이라는 그 뜻이다. 요즘 한국인들은 캐나다 밴쿠버의 동정에 열심히 귀를 기울인다. 그곳만큼은 ‘유소식(有消息)이 곧 희소식’이라는 기대 때문 아닐까.
“촉(蜀)으로 가는 길 어려워라 푸른 하늘 가기보다 더 어려워(蜀道之難難於上靑天), 몸을 돌려 서쪽 보며 긴 한숨을 내쉰다(側身西望長咨嗟).”

당(唐)나라 시선(詩仙) 이백(李白)은 ‘촉도난(蜀道難)’에서 쓰촨(四川) 가는 길의 험준함을 하늘 길에 비유했다. 유비(劉備)의 아지트였던 파촉(巴蜀)은 예부터 산이 높고 안개가 잦아 해가 보이는 날이 드물었다. 어쩌다 날이 맑아 해가 뜨면 개들이 이상히 여겨 짖었다. 초(楚)나라 굴원(屈原)이 “마을 개들이 떼로 짖는 것은 이상하게 보이는 사물에 대해서다(邑犬群吠,吠所怪也)”라 했으니 ‘촉견폐일(蜀犬吠日)’이 예서 나왔다. 식견 좁은 사람이 현인(賢人)의 언행을 의심하는 것을 꼬집을 때 쓰인다. 따뜻한 월(越)나라 개들이 눈을 보고 짖었다는 ‘월견폐설(越犬吠雪)’도 당나라 유종원(柳宗元)의 글에 함께 나온다.

최근 소설가 이문열씨가 인터넷상의 포퓰리즘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그는 “인터넷이 이 나라 사람들을 촉나라 개로 만들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몇 사람 앞에서 누군가를 비방하는 것과 수십만 명이 보는 인터넷에서 그러는 것은 엄연히 다르기 때문에 다른 기준이 필요하다”고 인터넷 실명제 강화를 주장했다. 막가는 졸업식 뒤풀이 사진을 보노라면 공감이 가는 말이다.

지난달 말 중국의 한 신문에도 ‘촉견폐일’을 다룬 칼럼이 실렸다. 엑스포를 앞두고 증설된 상하이 지하철 노선도로 ‘머리 둘 달린 용(雙頭火龍圖)’이란 별자리 그림으로 만든 네티즌 작품이 소재였다. 지하철은 대도시의 상징이고 별이 있는 하늘(星空)은 향수(鄕愁)를 불러일으키는데, 심한 대기오염으로 별은 고사하고 태양조차 가리는 대도시의 현실에 액면 그대로 ‘촉견폐일’이 걱정된다는 내용이다.

민생 탐방이 잦은 시인 총리 원자바오도 하늘을 자주 올려보나 보다. “나는 별하늘을 우러러보네, 장엄한 빛이여! 영원히 타오르는 불빛, 내 맘속에 희망의 불꽃이 봄날의 우레 같이 피어나네”라며 2007년 인민일보에 자작시 ‘별하늘을 우러러보며(仰望星空)’를 실었다. 잠시 고개 들어 하늘을 보자. 해를 보고 짖기보다는 이웃나라 총리처럼 시 한 수 읊어보자. 

[한자로 보는 세상] 盜賊 [중앙일보]

입력시각 : 2010-02-17 오전 12:11:20

도둑은 인류 문명의 역사와 함께했나 보다. 갑골문에도 남의 물건에 욕심을 내고 훔친다는 ‘도(盜)’자가 나오니 말이다. ‘盜’는 흐른다는 뜻의 ‘沇(유)’와 그릇을 뜻하는 ‘皿(명)’이 합쳐진 글자였다. 남의 그릇에 담긴 음식을 보고 침을 질질 흘리는 형상이다. 남의 물건을 몰래 쓰는 ‘도용(盜用)’, 남의 무덤을 파헤치는 ‘도굴(盜掘)’ 등에서 그 뜻이 온전히 살아 있다. 절도(竊盜)의 ‘절(竊)’은 구멍(穴)에서 곤충(蟲)이 쌀(米)을 먹는 모습이다. 쌀벌레가 쌀독에서 쌀 파먹듯, 몰래 남의 것을 빼앗는 게 바로 절취(竊取)다.

먹을 게 줄어들고, 사회가 혼탁해지면서 도둑은 더 과감해졌다. 도적을 뜻하는 또 다른 한자인 ‘적(賊)’은 창(戈)으로 재물(貝)을 빼앗으려는 자들을 일컬었다. 이런 자들이 산에 있으면 산적(山賊)이요, 바다에 있으면 해적(海賊), 말을 타고 이동하면 마적(馬賊)이었다. 재물을 노리고 부모를 해하는 자를 적자(賊子)라 했으니, 최악의 패륜아였다.

이미 집에 들어온 도둑은 ‘구(寇)’가 된다. 집(家)에서 사람(元)이 무기를 들고 행패를 부리는 형상이다. 조선시대 남해안 주민을 괴롭혔던 왜구(倭寇)가 그들이다. 이 밖에도 노략질을 뜻하는 ‘략(掠)’, 물건을 훔친다는 의미의 ‘투(偸)’, 빼앗는다는 뜻의 ‘탈(奪)’ 등 도둑을 뜻하는 한자는 많다. 도둑질 형태가 얼마나 다양했는지를 보여준다.

그런가 하면 ‘양상군사(梁上君子)’라는 성어도 있다. 중국 후한(後漢)말 현감 벼슬을 지낸 진식(陳寔)이라는 사람이 자기 집 대들보에 웅크리고 있는 도둑에게 들으라고 한 말이다. 그는 “나쁜 짓을 하는 사람도 좋지 못한 습성이 붙었을 뿐 본바탕이 악한 것은 아니다”라며 “대들보(梁上) 위의 저 군자도 그런 사람일 것”이라고 두둔했다고 한다. 후한서(後漢書)는 ‘도둑이 진식의 말을 듣고 대들보에서 내려와 감읍했다’고 전한다.

최근 국내 정치권에서 때 아닌 ‘강도(强盜)’ 논쟁이 벌어졌다. 정파로 나뉘어 ‘적반하장(賊反荷杖)’이라며 몽둥이를 들 태세다. 그들에게서 자기 집에 들어온 도둑조차 ‘군자’라 불렀던 진식의 사려 깊음은 찾아 볼 수 없다.

[한자로 보는 세상] 孔子 [중앙일보]

입력시각 : 2010-02-11 오전 1:45:22

춘절(春節・설) 대목을 앞두고 중국 영화관에서 ‘아바타’가 내려지고 ‘공자(孔子)’가 오르자 해석이 구구하다. 중국 전통 문화의 상징인 공자를 내세워 미국의 소프트 파워에 대항하려는 게 아니냐는 등. 착각이다. 영화 ‘공자’의 제작 동기는 한국이 부여했다.

감독 후메이(胡玫)가 ‘공자’를 기획한 건 2005년 한국에서 ‘공자 조상은 한국인’이라는 이야기가 나온 데 자극받은 결과다. “공자 전기만큼은 중국인이 찍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가 역사상 최초라는 ‘공자’ 영화에서 보여주고자 한 메시지는 무얼까.

공자 역(役)의 저우룬파(周潤發)는 “성인(聖人) 공자가 아닌 인간 공자를 그린다”고 했지만 제목 자체가 ‘성인’ 공자를 지향하고 있다. ‘공자’의 ‘자(子)’가 한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위대한 사람에게나 붙일 수 있는 존칭의 접미사이기 때문이다. 노자(老子), 맹자(孟子) 등.

‘인간’ 공자를 그리려 했다면 제목에 본명이나 자(字)를 쓸 수도 있지 않았을까. 공자의 본명은 ‘구(丘)’, 자는 ‘중니(仲尼)’다. ‘구’는 공자의 머리 위 한 부분이 구릉처럼 솟았기 때문이라고도 하고, 부모가 니구산(尼丘山)에서 기도해 공자를 얻은 까닭이라고도 한다.

‘자(字)’는 주(周)나라 때 귀족 남자가 20세에 이르러 관례를 치름과 동시에 갖게 되는 이름이다. 명・청 시기엔 서민들도 자를 가졌다. 흔히 윗사람에겐 본명을 쓰지만 동년배 이하 사람들에겐 자를 사용했다. ‘중니’의 ‘중(仲)’은 ‘둘째’라는 뜻이다. 공자에겐 이복 형이 있었기 때문이다. ‘니(尼)’는 ‘니구산’에서 유래한다.

명(名)과 자(字)는 관련성을 갖는 게 많다. 공자의 수제자 안회(顔回)의 자는 ‘연(淵)’이다. 본명 ‘회’가 ‘돌다’, 자인 ‘연’은 ‘빙빙 도는 물’이라는 뜻이다. 제갈량(諸葛亮)도 마찬가지다. 본명 ‘량’이 ‘밝다’, 자인 ‘공명(孔明)’은 ‘매우 밝다’는 의미다. 명과 자의 뜻을 반대로 쓴 경우도 있다. 당(唐)대의 문장가 한유(韓愈)의 자는 ‘퇴지(退之)’인데 ‘유’에는 ‘앞서다’는 의미가, ‘퇴지’엔 ‘물러서게 한다’는 뜻이 담겼다.

영화 ‘공자’가 한국에선 오늘 개봉한다. 성인 ‘공자’를 보게 될지, 아니면 인간 ‘공구’나 ‘중니’를 만나게 될지 궁금하다.


[한자로 보는 세상] 龜裂 [중앙일보]

입력시각 : 2010-02-10 오전 1:47:43

전국시대 초(楚)나라 왕이 어느 날 장자(莊子)에게 벼슬자리를 제안했다. 이에 장자는 “초나라에는 죽은 지 3000년이나 되는 신령한 거북을 상자에 담아 사당에 소중히 보관하고 있다 들었소. 그 거북은 죽어 뼈를 남기고 귀하게 되길 바랐겠소? 아니면 살아 진흙탕에서 꼬리를 끌며 다니기를 바랐겠소(曳尾塗中, 예미도중)?”라며 거절했다. 『장자(莊子)』에 나오는 이 ‘거북이 꼬리(龜曳尾)’ 고사는 벼슬함으로써 속박되기보다는 가난해도 자유로운 생활을 권한다.

“신령한 거북이 오래 산다 해도, 반드시 죽는 날이 있고(神龜雖壽,猶有竟時),

하늘 나는 용이 구름에 올라타도, 끝내 먼지로 돌아간다(騰蛇乘霧,終爲土灰).

늙은 천리마가 마구간에 있어도, 뜻은 천리 밖에 있구나(老驥伏櫪,志在千里),

선비는 늙어도, 웅장한 포부는 가시지 않네(烈士暮年,壯心不已).”

만년의 조조(曹操)가 지은 시 ‘귀수수(龜雖壽)’에도 거북이 등장한다. 비록 나이를 먹었어도 진취적 기상이 젊은이 못지않음을 뽐냈다. 장수의 대명사 거북은 예부터 기린・봉황・용과 함께 대표적인 영물이다. 옛 사람들은 앞날이 궁금하면 거북등을 불로 지져 갈라진 금으로 점을 쳤다(龜卜). 거북은 길흉을 점치고 거울은 미추(美醜)를 구별해 준다 하여 본받을 만한 모범을 귀감(龜鑑)이라 불렀다. 한자의 원형인 갑골문(甲骨文)도 거북등(龜甲)에서 나왔다.

‘통일이 오래되면 갈라지고, 분열이 오래되면 통합된다(合久必分, 分久必合)’고 했던가. 최근 국내외 도처에서 거북등처럼 갈라지는 균열(龜裂)이 빈번하다.

라틴아메리카 단층선 균열로 아이티 대지진이 발생했다. 세종시 문제와 임박한 지방선거로 정치권은 균열 조짐을 보인다. 얼마 전 내시경 검사를 받은 광화문 이순신 장군 동상에서도 균열이 발견됐다.

무엇보다 최근 미국과 중국이 구글 해킹, 대만 무기 판매, 달라이 라마 면담, 위안화 절상 문제로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미・중 협력 노선에 균열이 생긴 것이다. ‘차이메리카(中美國)’란 용어를 만든 니알 퍼거슨 교수의 “미・중 관계가 악화되면 한국 등 아시아 국가들은 양자택일의 기로에 설 것”이라는 전망이 예사롭지 않다. 거북점을 치면 답을 알려나.

[한자로 보는 세상] 朋友 [중앙일보]

입력시각 : 2010-02-08 오전 2:33:39

친구를 일컫는 단어가 붕우(朋友)다. 현재의 용례로 볼 때 두 글자는 차이가 없지만, 원래는 조금 다르다. 붕(朋)은 동문(同門)에서 공부를 함께 한 벗을 말했다. 우(友)는 뜻을 함께 하는 사람, 즉 동지(同志)였다.

친구를 뜻하는 비슷한 글자로는 아(雅)와 교(交)도 있다. 전자는 ‘평소’라는 뜻에서 우정이라는 의미로 진화했다. ‘일일지아(一日之雅)’라고 하면 ‘한 번 만난 사이’가 된다. 교는 쓰임새가 제법 많다. 고교(故交), 구교(舊交) 등으로 친구를 표시한다. 새로 사귄 친구는 신교(新交)다.

사이가 아주 가까운 벗은 지우(至友), 지교(至交)다. 뜻과 기질 등이 서로 통해 막역한 사이로 발전하면 집우(執友)가 된다. 아버지의 친구는 부집(父執)으로 불렀다. 벗이기는 하지만 경외감을 품게 할 정도로 학식과 도덕적 수준이 뛰어난 친구는 외우(畏友)다. 나의 잘못을 엄격하게 지적해 고치게끔 하는 고마운 친구는 쟁우(諍友)다.

어렸을 적 친구가 오래간다고 했다. 그 친구는 총각교(總角交)다. 총각 시절에 맺은 친구다. 죽마고우(竹馬故友)도 잘 알려진 말이다. 대나무 말, 죽마 자체가 어렸을 적 친구를 뜻한다.

나이가 크게 차이가 나면서도 친구로 맺어지면 망년교(忘年交)다. 금석교(金石交)는 쇠와 돌처럼 변하지 않는 우정을 지칭한다. 그런 친구는 석우(石友), 석교(石交)라고 불렀다. 어려웠을 적 사귄 친구는 포의교(布衣交), 아주 가까워진 사이는 막역교(莫逆交), 목을 내놓고라도 상대를 지켜주는 우정은 문경교(刎頸交)다.

‘두 사람이 함께 길을 가면 그 날카로움은 쇠를 끊고, 마음이 한데 어울려 내놓는 그 말의 향기는 난초와 같다’는 말은 유명하다. 그래서 나온 말이 금란지교(金蘭之交)다. 달리 난교(蘭交)라고도 부른다.

전체적으로는 도움 주는 친구와 손해를 끼치는 친구가 있다. 앞의 친구는 익우(益友), 뒤는 손우(損友)다. 겉으로는 함께 어울리고 있지만 마음은 서로 다른 곳을 향하고 있는 사이는 면우(面友), 면붕(面朋)이다.

국회의사당 본회의장에서까지 얼굴을 붉히며 싸워대는 한나라당 친이(親李), 친박(親朴)은 손우 아니면 면붕일 것이다. 어쩌면 근본적으로 서로 벗할 수 있는 사이가 아니었을지도 모르고.

[한자로 보는 세상] 天時・地利・人和 [중앙일보]

입력시각 : 2010-02-04 오전 1:32:44

중국 춘추전국시대 사상가 맹자 가 세종시 문제로 골치를 앓고 있는 정운찬 총리를 만난다면 무슨 말을 할까. 맹자는 아마도 ‘천시(天時)・지리(地利)・인화(人和)’의 지혜를 거론할 듯하다. ‘맹자・공손축하(孟子・公孫丑下)편’에 나오는 말이다. 원전을 토대로 그들의 가상 대화를 엮어본다.

정 총리 : 세종시 지역 주민의 반발이 심하고, 한나라당 내부에서도 공격을 받고 있습니다. 어찌하오리까?

맹자 : 농사 일에 적절한 시기(農機)가 있듯, 전쟁에서의 공격도 가장 적합한 때가 있다. 이를 ‘천시(天時)’라 한다. 지금이 과연 세종시 수정안 처리의 ‘천시’라고 보는가?

정 총리 : 그렇습니다. 지금 고치지 않으면 후손에게 두고두고 욕을 먹을 것입니다. 지금이 적기입니다.

맹자 : 그럼에도 지역 주민의 반발에 부닥치는 것은 ‘천시’가 ‘지리’만 못하기 때문이다(天時不如地利). 전쟁에서 지키는 자는 높은 성곽과 깊은 연못, 많은 군량 등 지리적 이점을 갖는다. 그게 바로 ‘지리(地利)’다. 세종시 지역 주민들 역시 보이지 않는 성곽을 쌓아놓고 자신의 이익을 지키려 할 것이다. ‘천시’는 결코 ‘지리’를 이기지 못한다.

정 총리 : 어떻게 극복해야 하겠습니까?

맹자 : ‘지리’는 ‘인화’만 못하다(地利不如人和). 사람들의 마음을 얻어 화합하게 하는 것이 바로 ‘인화’다. 세종시 지역 주민들의 마음을 얻어야 한다. 진심어린 마음으로 설득하고 호소한다면 그들은 스스로 성곽을 허물고 나올 것이다. 아무리 땅의 이점이 뛰어나다고 해도 사람 간 화합을 이겨내지 못한다.

정 총리 : 주민 설득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렇다면 여당 내 반발은 어찌 해결해야 합니까?

맹자 : 민심을 잃게 되면 주변에서 돕는 사람이 적다. 심지어 믿었던 친척조차 배반하기도 한다. 그러기에 민심을 얻으라는 것이다. 도의정치로 백성들의 마음을 얻게 되면 주변에 도와주는 사람이 많아지고, 나아가 천하가 모두 순응한다.

정 총리 : 그러나 당내 파벌 간 이해를 극복하기 쉽지 않은 게 현실입니다.

맹자 : 천하를 순응하게 하는 힘으로 친척의 배반을 공격해야 한다(以天下之所順,攻親戚之所叛). 그러기에 군자는 싸우지 않지만, 싸운다면 반드시 이긴다(故君子有不戰, 戰必勝矣).

 한우덕 중국연구소 차장
 

[한자로 보는 세상] 四知 [중앙일보]

입력시각 : 2010-02-03 오전 1:51:52

‘촌(寸)’은 손가락을 벌린 손 옆에 점을 찍은 형태다. 손가락 ‘마디’만큼의 짧은 길이로 3cm 정도다. 세 치 짧은 혀는 ‘삼촌지설(三寸之舌)’, 쥐 눈처럼 좁은 식견은 ‘서목촌광(鼠目寸光)’, 짧은 시간은 ‘촌음(寸陰)’이라고 한다. ‘한 치 시간은 한 치의 금(金)이지만, 한 치 금으론 한 치의 시간도 살 수 없다(一寸光陰一寸金 寸金難買寸光陰)’는 말도 있다. 그러나 작은 정성을 일컫는 ‘촌지(寸志)’에 이르면 본디 뜻과는 달리 분위기가 썰렁해진다. 곳간(府)에 고기(肉)를 오래 쌓아 둬 ‘썩다’는 뜻의 ‘부(腐)’ 내음이 진동하기 때문이다.

청렴도 바닥권의 서울시 교육청이 지난주 극약 처방을 내놓았다. 촌지 수수 등과 같은 비리를 신고하는 자에게 최대 1억원의 포상금을 지급하겠다는 것이다. 1억원은 간첩 신고 시 받을 수 있는 최대 포상금이다. 서울시 교육계 비리 공무원의 죄질이 국가안보를 위협하는 간첩 수준에라도 달하는 모양이다.

서울시 교육청의 조치는 동한(東漢) 시기 사람인 양진(楊震)의 ‘사지(四知)’를 떠올리게 한다. 양진은 학생을 가르치는 것으로 생활하되 학식이 높고 청렴해 ‘관서의 공자(關西孔子)’로 불리던 이다. 그가 산둥(山東)의 둥라이(東萊) 태수로 발령받아 창이(昌邑)를 지날 때였다. 지인(知人) 왕밀(王密)이 마침 창이 현령이었는데, 한밤중에 황금 10근을 들고 찾아왔다. 놀라는 양진에게 왕밀은 “야밤이라 아무도 모른다(暮夜無知)”고 말한다. 이에 양진의 불호령이 떨어진다. “하늘이 알고 땅이 알고, 내가 알고 또 그대가 알지 않는가.” 하늘과 땅, 너와 나 등 넷이 안다는 이른바 양진의 ‘사지’다. 중국의 석학 지셴린(季羨林)은 ‘사지’에 하나가 더 붙어 ‘오지(五知)’가 된다고 했다. 다섯 번째는 ‘세상 사람들’이다. ‘낮 말은 새가 듣고 밤 말은 쥐가 듣는다(晝語雀聽 夜語鼠聽)’는 식으로 세상에 비밀은 없다는 얘기다.

서울시 교육청의 비리 신고 포상제는 ‘사지’를 자신한 처방 같다. 그러나 세상 참 묘하다. 인천시 교육청이 지난해 비슷한 제도인 신고포상금제를 운영했는데 단 한 건의 비리 신고도 들어오지 않았다고 한다. 아무도 모르는 ‘모야무지’라서일까, 아니면 비리가 근절됐기 때문일까. 아무래도 후자는 아닌 것 같은데….

유상철 중국연구소 소장

[한자로 보는 세상] 盟誓 [중앙일보]

입력시각 : 2010-02-01 오전 12:32:27

맹(盟)과 서(誓)는 모두 약속(約束)을 일컫는다. 맹은 춘추(春秋)시대 때 유행하던 제후국 사이의 약속 행위다. 일반적으로 가장 힘 센 사람이 그 행위의 주재자, 맹주(盟主)다.

중국 고대의 자전(字典)인 『설문해자(說文解字)』는 “나라 사이에 문제가 있으면 맹을 행한다(國有疑則盟)”고 했다. ‘나라 사이의 문제(疑)’는 ‘서로 어울리지 못하는 상태(不協)’라는 게 후대의 풀이다. 맹약(盟約)은 결국 다툼 또는 시비 등이 발생했을 때 이해 당사자끼리 모여 새 약속을 하는 행위다.

이를 위해 만나면 회맹(會盟)이다. 논의를 마친 뒤 준비한 희생(犧牲)인 소를 잡아 그 피를 서로 나눠 마시면서 약속 이행을 다짐한다. 회맹의 주재자인 사람이 소의 귀를 잡는다. 우리말의 용례에서도 쇠귀를 뜻하는 ‘우이(牛耳)’가 ‘우두머리’라는 뜻으로 쓰이게 된 유래다.

나눠 마신 소의 피는 약속을 상징하지만, 꼭 지켜지지는 않는다. ‘입에 묻은 피가 마르기도 전(口血未乾)’이라는 중국 성어는 그래서 나왔다. 현대 한국어 버전으로 하자면 ‘문서에 잉크도 마르기 전’인 셈이다.

이에 비해 서(誓)는 규모가 작은 약속이다. 즉흥적으로 표시한 약속을 일컫는다. 맹에 비해 강도나 심각성에서 크게 떨어진다. 큰 집단 사이에 이뤄지는 약정(約定)이 아니고 다분히 개인적인 약속이다.

맹약과 서약의 개념이 한데 뭉쳐 만들어진 약속이 맹서(盟誓)다. 산과 바다 등 영원히 변치 않는 대상을 향해 하는 약속이 ‘산맹해서(山盟海誓)’다.

세종시 수정안을 두고 약속과 신뢰의 문제에 대해 벌이는 논쟁이 아직 뜨겁다. 고사성어(故事成語)까지 동원한 도덕적 공방은 유치하기도 하다. 약속에는 맹약과 서약, 나아가 더 높은 수준의 맹서도 있음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약속을 지켜야 한다는 주장도 맞다. 그러나 수도 기능 분할・이전에 관한 우려도 결코 지울 수 없다. 이명박 대통령이 후보자 시절 내놓은 세종시 관련 약속은 어떻게 보면 서약의 수준이다. 서로 흉금(胸襟)을 터놓고 이야기하면 더 좋은 방안이 나올 수 있다. 그때의 서약을 맹약의 수준으로 올릴 수 있고, 나아가 맹서까지 갈 수 있다. 도덕적 편가름 말고, 현실적인 대안 마련을 위해 다시 함께 논의해야 한다.

유광종 중국연구소 부소장
 

[한자로 보는 세상] 推奴 [중앙일보]

입력시각 : 2010-01-28 오전 1:53:35

도망 노비(奴婢)를 잡아 생계를 잇던 추노(推奴)꾼의 이야기를 다룬 드라마가 인기다. 조선시대에는 노비뿐 아니라 부역(賦役)과 병역(兵役)을 피해 도망친 자들을 쫓는 것을 추쇄(推刷)라 불렀다. 추노가 잡아들이던 ‘노(奴)’는 ‘여자(女)’와 ‘오른손(又)’이 결합된 회의자(會意字)다. 본디 노(奴)는 남자종을, 비(婢)는 여자종을 뜻한다.

우리나라 노비제는 고조선 8조법금(八條法禁)의 “도적질한 자를 거두어 노비로 삼는다”는 조문에서 처음 시작됐다. “조선 성종(成宗) 15년(1484)에 추쇄도감(推刷都監)을 설치해 서울과 지방의 노비를 추쇄하니 모두 26만1984명이었다”고 실록은 전한다. 또 “우리나라에서 군역(軍役)에 해당하는 자는 겨우 15만 명인데, 사삿집 종이 40만 명이나 된다”고 실학자 이긍익은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별집 ‘노비’편에 기록했다. 그 정도로 당시 도망 노비와 종이 많았다. 그 때문에 노비제 존폐는 어전회의의 단골메뉴로 올랐으나 번번이 존치로 결론났다. 단, 노비를 추쇄하고 빚을 독촉하는 추노징채(推奴徵債)는 흉년이 들면 왕명으로 금지됐다.

최근 중국에서 노예 노(奴)자를 비롯해 질투할 질(嫉), 즐길 오(娛), 음탕할 표(嫖), 간사할 간(奸) 등 16개 한자에서 여(女)변을 빼거나 바꾸자는 주장이 나왔다. 부정적인 의미의 글자에 들어있는 ‘女’자로 인해 여성을 비하하게 된다는 주장이다. 과연 글자를 바꾼다고 의식까지 바뀌겠느냐며 찬성보다는 반대가 많다.

한편 젊은이들이 사회 진출의 어려움으로 인해 각종 ‘노예(奴隸)’로 전락한다는 신조어가 속속 생겨나고 있다. 부동산 대출에 허덕이는 ‘방노(房奴, 집의 노예)’, 치솟는 육아비 부담에 힘겨워하는 ‘해노(孩奴, 자식 노예)’, 자동차를 사기 위해 애쓰는 ‘차노(車奴, 차의 노예)’까지 종류도 다양하다. 『논어(論語)』의 ‘나이 서른이 되면 자립한다(三十而立)’는 말이 ‘삼십이 돼도 홀로서기 어렵다(三十難立)’는 식으로 바뀐 셈이다.

취업난에 만혼(晩婚)이 늘고 출산마저 기피하기는 한국도 매한가지다. 멀쩡한 청춘들을 ‘노예’로 만드는 세태의 원인을 잡아 없앨 추노는 어디 없을까.

신경진 중국연구소 연구원
 
한자로 보는 세상] 朝三暮四 [중앙일보]

입력시각 : 2010-01-26 오후 8:30:59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 일본 총리가 지난 22일 국회에서 망신을 당했다. 중의원 예산안 심사 과정에서다. 자민당의 모테키 도시미쓰(茂木敏充) 의원이 ‘1차 추경예산이 동결된 대신 그만큼 2차 추경예산이 늘었다’는 점을 놓고 하토야마 총리를 공격했다.

“총리, ‘조삼모사(朝三暮四)’라는 말의 뜻을 아는가?”

“알고 있다. 아침에 정한 것이 곧바로 밤에 바뀌는 것을 의미한다. 사물의 조급한 변경을 이르는 말이다.”

“틀렸다. 그것은 ‘조령모개(朝令暮改)’를 일컫는 말이다.”

의원석 이곳저곳에서 실소가 터져 나왔다. “총리가 ‘조삼모사’와 ‘조령모개’의 뜻도 모른다”는 조롱(嘲弄) 기사가 신문 가십면을 장식했다. ‘조삼모사’ 사건은 후텐마 미군 비행장, 오자와 간사장 뇌물 의혹 등으로 가뜩이나 정치적 위기를 맞고 있는 하토야마 총리를 더욱 초라하게 만들었다.

‘조삼모사’는 춘추전국시대 사상가인 장자(BC 369~289)가 쓴 ‘장자・제물론(莊子・齊物論)’에 뿌리를 둔 말이다. 원전은 이렇다. “송나라에 원숭이(狙)를 좋아해 ‘저공(狙公)’이라 불리는 자가 있었다. 어느 날 아침 원숭이에게 먹이를 주려는데 그 양이 부족했다. 꾀를 내어 ‘아침에 세 개를 주고, 저녁에 네 개를 주마(朝三而暮四)’ 했더니 원숭이들이 화를 냈다. 말을 바꿔 ‘그러면 아침에 네 개를 주고, 저녁에 세 개를 주마’ 했더니 모두 좋아했다. 사물의 근본은 변하지 않았음에도 인간의 희로(喜怒)가 바뀌는 것은 모두 이런 꼴이다.” 모테키 의원은 ‘예산의 내용은 같은데도 눈속임으로 국민을 속였다’는 점을 지적하며 총리에게 조삼모사의 뜻을 물은 것이다.

‘조령모개’는 한(漢)나라 사학자인 반고(班固・32~92)가 쓴 ‘한서(漢書)’에 나오는 말이다. 반고는 당시 농민이 땅을 버리고 고향을 등지는 이유를 “끊이지 않는 수탈(賦斂不時)과 아침 법령이 저녁에 바뀌기 때문(朝令而暮改)”이라고 설명했다. 총리가 이를 두고 ‘조삼모사’라 했으니 핀잔을 들을 만하다.

어디 일본뿐이랴. 요즘 국내 정치계에도 한자 4자성어가 난무하고 있다. 아전인수(我田引水)식으로 해석하고는 ‘당신 말이 틀렸다’며 정파 간 설전을 벌인다. 정치권은 ‘왈가왈부(曰可曰否)’로 날을 지새우는 곳이던가…. 

한우덕 중국연구소 차장
 

[한자로 보는 세상] 尋常 [중앙일보]

입력시각 : 2010-01-25 오전 2:35:54

당(唐)나라 시인 유우석(劉禹錫)의 시 ‘오의항(烏衣巷)’에 나오는 구절이다. “옛적 왕사 대인의 처마에 들던 제비, 이제는 평범한 백성의 집에 날아온다(舊時王謝堂前燕, 飛入尋常百姓家).” 시 제목 중의 ‘오의’는 ‘검은색 옷’의 뜻이다. 삼국시대 검은색 옷을 입은 오(吳)나라 군대가 주둔했던 곳이어서 오의항, 검은 옷 거리로 불렸다. 그 후에는 고관대작들이 살았던 고급 주택가였다. 시인은 옛날 고관의 집에 머물던 제비가 이제는 ‘심상’한 백성의 집에 살고 있다는 회고(懷古)의 감회를 시에 담았다.

심상은 여기서 ‘평범함’이다. 그러나 심과 상은 원래 길이를 나타내는 척도의 단위였다. 작은 면적, 짧은 거리를 뜻하는 말이기도 했다. 중국 고대의 길이 단위에서 심은 대략 1.2~1.6m, 상은 2.4~3.2m 정도다. 면적으로 따질 때 심상은 약 11~13㎡다.

이 점에서 심상은 그리 길지 않은 길이, 또는 별로 크지 않은 면적의 뜻을 얻게 된다. 이어 평범하면서도 일반적이라는 뜻을 담는다.

문(文)・무(武)의 관직에 오르는 사람을 양반(兩班)이라 하고, 그러지 못하는 평범한 사람들을 상민(常民)이라고 해서 반상(班常)의 구별을 엄격히 시행했던 조선시대의 계급 차별 용어는 이래서 생겨났다. 심상의 상이라는 글자는 이후 늘 변하지 않는 것, 사물의 기반이 되는 중심의 뜻으로도 진화한다. 정상적이면서 변치 않는 기준이라는 뜻의 ‘상도(常道)’, 통상적인 법칙을 뜻하는 상궤(常軌)라는 말이 예서 나왔다.

심상의 반대어는 ‘수상(殊常)’이다. 정상적인 것과는 다르다는 뜻이다. 사람과 사물, 또는 현상이 일반적인 수준을 떠난 상태다. 고국산천과 헤어지는 장면을 읊은 김상헌(1570~1652)의 시조 속 “시절이 하 수상하니 올동말동하여라”라는 구절이 좋은 예다. ‘수상한 사람은 간첩’이라며 고발정신을 강요했던 1960~70년대의 반공 포스터에도 자주 등장한다.

‘심상치 않은’ 판결이 법원에서 잇따라 나왔다. 일반적이면서 보편적인 생각・정서와는 차이가 있다는 지적이 빗발친다. 어느 판결문은 논리가 퍽 기이하고 별나기까지 하다. 보편과 타당은 법원의 생명이다. 그를 놓쳐 “법원이 수상하다”는 소리가 나오면 곤란하다.

[한자로 보는 세상] 肝膽相照 [중앙일보]

입력시각 : 2010-01-21 오전 12:55:50

류우익 주중 한국대사가 지난주 부임 후 처음으로 중국 언론 인터뷰에 응했다. “어려서 한문 공부 좀 했다”는 류 대사는 ‘한자의 나라’ 신문을 상대로 ‘문자’ 좀 썼다. ‘본립이도생(本立而道生, 근본이 서야 길이 열린다)’이라며 ‘일의대수(一衣帶水, 띠처럼 좁은 강이나 바다)’를 사이에 둔 한중이 ‘간담상조(肝膽相照, 간과 쓸개를 꺼내 보이다)’의 ‘복심지우(腹心之友, 마음 맞는 친구)’가 된다면 ‘상득익창(相得益彰, 서로의 재능을 더욱 드러나게 하다)’하고 ‘상보상성(相輔相成, 서로 도와 성공하다)’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인터뷰에 나선 중국 광주(廣州)일보가 가장 주목한 말은 무얼까. ‘간담상조’다. ‘한국대사 : 중・한은 간담상조의 선린(善隣) 돼야’라고 제목을 뽑았다. 간담상조는 당(唐)대의 문장가 한유(韓愈)가 유종원(柳宗元)을 위해 쓴 묘지명에 보인다.

유종원은 친구 유몽득(劉夢得)이 파주자사(播州刺史)로 발령 받자 울먹이며 말한다. “파주는 몹시 척박한 변방이다. 노모를 모시고 갈 수도 없고, 또 그 사실을 늙으신 어머님께 어떻게 알릴 수 있겠는가. 차라리 내가 몽득 대신 파주로 가는 게 낫겠다.” 한유는 유종원의 우정에 감복해 그가 죽은 후 묘지명을 쓴다. “사람은 어려운 지경에 처해야 참된 절의(節義)가 나타난다. 아무 걱정 없이 살아갈 때엔 죽어도 배신하지 말자고 ‘간과 쓸개를 내보이며(肝膽相照)’ 맹세한다. 하나 이해가 엇갈리면 눈길을 돌린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염량세태(炎凉世態)를 꼬집은 것이다.

오장(五臟)의 하나인 간(肝)은 우리 몸에서 가장 큰 장기로 몸(月)의 줄기(干)가 된다. 육부(六腑)에 속하는 쓸개(膽)는 간에서 분비된 쓸개즙을 저장하는 주머니로 간과는 표리 관계에 있다. 류 대사는 떼려야 떼기 어려운 간과 담이란 우리 몸의 일부에 빗대어 한・중 관계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 대목에서 생각나는 게 있다. 역시 신체 기관을 이용해 북・중 관계의 공고함을 설명하는 성어다. ‘순망치한(脣亡齒寒)’이다.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린 법. 중국이 60년 전 북한을 도와 한국전쟁에 나설 때의 명분으로도 쓰였다.

남으론 간담상조, 북으론 순망치한의 관계에서 중국의 선택은 무얼까. ‘둘 다 유지하자’가 아닐까 싶다.

유상철 중국연구소 소장

[한자로 보는 세상] 阿凡達 [중앙일보]

입력시각 : 2010-01-19 오후 8:20:55

‘아판다(阿凡達・대만은 阿梵達로 표기)’.

세계적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영화 ‘아바타’의 중국어 표기다. ‘아바타’는 본디 산스크리트어다. 인도의 힌두 철학에서 ‘아바타’는 천상에서 지상으로 강림한 신의 육체적 형태를 뜻한다.

‘아바타’와 같이 한자에는 음을 빌려 외래어를 표기하는 가차(假借)가 발달했다. 글로벌 브랜드도 중국에선 한자로 다시 태어난다. 발음이 쉽고 비슷하며 뜻까지 좋아야 금상첨화(錦上添花)다. BMW의 중국 이름은 ‘바오마(寶馬)’다. 화려한 수레와 훌륭한 말을 뜻하는 ‘향거보마(香車寶馬)’에서 따왔다. 메르세데스 벤츠는 질주하다는 뜻의 ‘번츠(奔馳)’로 지었다. 할인마트 카르푸는 집안이 화목해지고 복이 온다는 ‘자러푸(家樂福)’로 손님을 모았다.

한국 제품들의 근사한 중국어 작명도 많다. 소주 ‘처음처럼’은 처음 마실 때부터 즐겁다는 ‘추인추러(初飮初樂)’, 제과점 ‘뚜레주르’는 즐거움이 많은 날이라는 ‘둬러즈르(多樂之日)’, 외식 브랜드 ‘놀부’는 즐거운 아저씨란 뜻의 ‘러보(樂伯)’란 이름으로 13억 중국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아바타’의 감독 제임스 캐머런은 지난해 베이징 기자회견에서 영화 속 판도라(潘多拉) 행성의 할렐루야산(哈利路亞山)의 모티브가 중국의 명산인 황산(黃山)이라고 밝혔다. 중국인들은 그러나 후난(湖南)성 장자제(張家界)의 봉우리 남천일주(南天一柱)와 더 닮았다고 주장한다.

영화 ‘아바타’가 3부작으로 이어진다는 소식이다. 캐머런 감독은 속편에 중국 고대 신화에 나오는 비휴(貔貅)를 등장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비휴는 용의 머리, 말의 몸, 기린의 다리를 가진 사자 모습의 전설상의 맹수다. 사방의 재물을 먹어 치운다 해서 중국 인민은행의 상징이기도 하다.

최근 온라인과 현실 세계의 인간 관계가 괴리(乖離)되는 ‘더블 에고(Double Ego・이중 자아)’ 현상을 토로하는 이가 많다. 장자(莊子)가 나비 꿈을 꾼 뒤 내가 나비 꿈을 꾼 것인지, 나비가 내 꿈을 꾼 것인지 알 수 없었다는 ‘몽리호접(夢裡蝴蝶)’ ‘장주몽접(莊周夢蝶)’의 고사가 전한다. 온라인상의 아바타도 바로 자신의 분신(分身)임을 잊어선 안 되겠다.

신경진 중국연구소 연구원

[한자로 보는 세상] 割席 [중앙일보]

입력시각 : 2010-01-18 오전 2:01:52

‘자리를 나누다’는 뜻의 한자 성어다. 유래는 이렇다. 한(漢) 말엽에 관녕(管寧)과 화흠(華歆)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일도 함께하고 공부도 같이했다. 둘의 성정(性情)은 다소 달랐다. 밭을 갈다가 금 조각을 주우면 관녕은 그냥 버리고, 화흠은 주워서 살피다가 버린다. 어느 날 문 밖으로 고관대작(高官大爵)이 지나갔다. 화흠이 호기심을 이기지 못해 그를 구경하러 나갔다. 돌아와 보니 관녕이 화흠과 함께 앉았던 돗자리를 반으로 끊어 서로 따로 앉자며 ‘절교(絶交)’ 비슷한 선언을 해 버린 것. 그래서 나온 말이다.

이를 테면 서로 상종(相從)하지 않겠다는 맹세다. 관녕의 곧은 뜻을 칭찬하는 이도 있지만, 그 과도함을 경계하는 이도 많다. 장기판 중간에 뚜렷한 금이 그어 있다. 초(楚)와 한(漢)이 천하의 패권(覇權)을 두고 대치한 전쟁 국면(局面)의 표현이다. 그 중간을 지나는 선이 홍구(鴻溝)다. 원래 황하(黃河)와 회하(淮河)를 잇는 운하(運河)였다. 두 나라가 싸움을 벌일 때 이곳을 경계로 대치(對峙)했다. 초하한계(楚河漢界), 즉 초나라와 한나라의 경계라는 뜻이다. 나중에는 ‘결코 넘을 수 없는 구덩이’라는 뜻으로 쓰인다. 서로 적대시하면서 절대 화해하지 않는 두 사람, 또는 두 진영(陣營)의 마음가짐을 일컫는다.

서로 가슴에 품은 뜻을 스스로 장하다고 여겨 남과의 소통을 거부하는 사람과 그 자세를 두고서는 ‘각유천추(各有千秋)’라고 한다. 천추는 곧 천년(千年)이다. 장구한 세월 동안 쌓인 저만의 세계를 일컫는다.

위의 것들과 뜻은 다소 다르지만 ‘남원북철(南轅北轍)’이란 성어도 있다. 수레의 끌채(轅)는 남쪽을 향하면서도 바퀴 자국(轍)은 북쪽으로 나는 상황. 남쪽으로 내려가려 하면서도 제 몸과 수레는 북쪽을 향한다는 ‘배도이치(背道而馳)’, 즉 배치(背馳)라는 성어도 같은 뜻이다.

과도하게 남과의 타협과 대화를 거부한다면 할석의 주인공 관녕과 다를 바 없는 작은 마음, 협량(狹量)의 정객이다. 정치인 모두 그 꼴을 벗어나지 못한다면 제 길을 못 가고 그 반대의 결과를 낳는 ‘배치’의 상황에 이른다. 그러면 나라가 잘못 간다. 정치권이 진정으로 나라를 생각한다면 그런 상황에는 이르지 말아야 할 것이다.

유광종 중국연구소 부소장

[한자로 보는 세상] 國格 [중앙일보]

입력시각 : 2010-01-14 오전 1:06:58

‘국격(國格)’이 화두다. 올해 정부 정책 중 하나가 국격 높이기다. 그런데 정작 국격이라는 말은 국어사전에도 나오지 않는 조어(造語)다. 말의 뿌리를 추적해 정확한 뜻을 가늠할밖에….

국격의 ‘격(格)’이 갖는 본래 뜻은 ‘나무의 굵고 긴 가지’였다. 한자 자전인 설문해자는 ‘큰 나무의 긴 가지(樹高長枝爲格)’로 정의한다. 나무는 굵은 가지가 튼튼해야 잔가지와 잎이 풍성해지는 법이다. 그러기에 ‘격’은 나무 모양을 결정하는 기준이자 근거였다. ‘격’은 이 뜻을 바탕으로 기준・격식・표준・품위 등으로 진화했다.

공자(孔子・BC 551~BC 479)는 ‘격’을 특히 강조했다. 그는 『예기(禮記)』에서 군자의 바람직한 언행에 대해 ‘언유물이행유격(言有物而行有格)’이란 말로 설명했다. ‘말을 함에 있어 내용이 있어야 하고, 행동에 있어 격식을 차려야 한다’는 뜻. 허튼소리를 삼가고, 문란한 행동을 말라는 충고다. ‘그래야 살아서 뜻(志)을 지킬 수 있고, 죽어서 이름(名)을 남길 수 있다’고 했다. 여기서 말한 ‘격’이 바로 ‘품위’요, ‘품격’이다.

‘격’은 ‘바르다(正)’는 뜻으로도 발전했다. 공자는 『논어(論語)』 위정(爲政)편에서 ‘덕으로 이끌고(道之以德) 예로 다스려야(齊之以禮) 백성들은 염치를 알고 정도를 찾는다(有恥且格)’고 했다. 백성들이 정도를 걷도록 돕기 위해서는 술수나 형벌이 아닌 덕과 예로 다스려야 한다는 얘기다.

이런 뜻을 가진 ‘격’이 사람과 만나면 인격(人格)이요, 국가와 결합되면 국격이 된다. 개인의 가치가 중시되지 않았던 중국에서 인격(personality)이라는 말은 신해혁명 이후 나온다. 중국 교육학자인 채원배(蔡元培・1868~1940)는 ‘지식(智)・도덕(德)・건강(體)・아름다움(美)을 갖춰야 인격이 선다’고 했다. 국격을 자주 강조한 사람은 덩샤오핑이었다. 그는 “만일 중국이 스스로를 존중하지 않는다면 설 수도 없을 것이요, 국격도 사라지게 된다”고 말했다. 나라의 품격은 ‘자존심’에서 비롯된다는 지적이다.

‘격’이 튼튼해야 나무가 풍성해진다. 우리 국민 스스로 ‘격’을 살릴 때 대한민국이라는 나무는 세계에서 우뚝 솟은 거목으로 성장할 것이다.

한우덕 중국연구소 차장

[한자로 보는 세상] 破釜沈舟 [중앙일보]

입력시각 : 2010-01-13 오전 1:31:22

‘탈(脫)’. ‘껍질을 벗기고 뼈를 바른다’는 뜻이다. 살벌하다. 지난주 출범한 통합 LG텔레콤의 이상철 대표이사는 그런 한자를 새해 키워드로 제시했다. ‘만년 통신 3위’의 오명을 씻기 위해 알량한 기득권을 포기하고 초심에서 시작하겠다고 한다. ‘죽어야 산다’며 철저한 개혁을 부르짖는다.

‘파부침주(破釜沈舟)’를 올해 중국 시장 공략의 출사표로 던진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말에선 비장함마저 느껴진다. ‘부(釜)’는 ‘솥(鍋)’을 말한다. ‘부중지어(釜中之魚)’는 솥에 든 물고기다. 독 안의 쥐, 오래 갈 수 없는 목숨을 뜻한다. 한국 최대의 항구도시 부산(釜山)의 지명 또한 산 모양이 솥처럼 생긴 데서 유래했다.

‘솥을 깨뜨리고 배를 가라앉힌다’는 ‘파부침주’는 배수(背水)의 진을 쳤다는 얘기다.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 항우본기(項羽本紀)에 뿌리를 두고 있다.

진(秦)이 30만 대군으로 조(趙)를 침략하자 조는 초(楚)에 도움을 청한다. 그러나 지원에 나선 초의 상장군(上將軍) 송의(宋義)는 진을 두려워해 중도에 머물며 병사들이 굶든 말든 저만 먹고 마신다. 격분한 항우는 송의를 죽이고 조 구원에 나서 장하(漳河)를 건넌다. 이어 삼일치 휴대 식량을 지급한 뒤 타고 온 배에 구멍을 뚫어 수장하고(沈舟), 밥을 짓던 솥은 부숴버린다(破釜). 용장 밑에 약졸은 없는 법(勇士門下無弱兵). 죽기 살기로 전투를 치러 진을 격파한다.

최태원 회장은 “중국 규제가 심해서 안 된다는 말은 하지 말라”며 “파부침주의 자세로 경영에 임해 달라”고 요구한다. 서해 건너 대륙에 온 이상 다시 돌아갈 배는 없을 터이니 중국에 뼈를 묻을 각오로 일하자는 취지로 보인다.

파부침주의 자세로 일했던 대표적 인물은 중국의 ‘철혈(鐵血) 재상’ 주룽지(朱鎔基)다. 1998년 총리에 오른 그는 앞길이 지뢰밭이건 만장(萬丈) 심연이든 “용감하게 전진할 뿐이다. 옳다면 뒤돌아볼 필요가 없다. 나라를 위해 온 힘을 쏟기를 죽을 때까지 그치지 않겠다(一往無前 義無反顧 鞠躬盡瘁 死而後已)”며 경제개혁에 드라이브를 걸었다. 우리 기업인들에게 ‘파부침주’의 각오와 ‘탈’의 정신이 살아 있는 한 한국 경제의 미래엔 그늘보다 햇살이 더 많을 것이다.

유상철 중국연구소 소장
 

[한자로 보는 세상] 吐哺握髮 [중앙일보]

입력시각 : 2010-01-07 오전 12:35:45

“나는 한 번 목욕할 때 세 번 머리를 거머쥐고(一沐三握髮・일목삼악발), 한 번 식사할 때 세 번 음식을 뱉으면서(一飯三吐哺・일반삼토포) 찾아오는 천하의 현인들을 놓치지 않고자 했다.”

중국 주(周)나라 주공(周公)이 인재를 얻고자 목욕과 식사도 제대로 못했다는 고사다. 주공이 나라의 기반을 닦을 수 있었던 비결은 히딩크식 표현으로 여전히 인재에 배고팠기 때문이다. 주공은 공자마저 “내가 오래도록 꿈에서 주공을 보지 못하다니(吾不復夢見周公)”라면서 흠모했던 성인이다. 이 ‘토포악발(吐哺握髮)’의 전통은 삼국지 조조(曹操・155〜220)로 이어진다.

“산은 높아지기를 마다하지 않고, 물은 깊어지기를 마다하지 않는 법, 주공처럼 인재를 얻기 위해 먹던 음식을 뱉는다면, 천하가 나를 복종하고 따르리(山不厭高, 海不厭深, 周公吐哺, 天下歸心).”

조조가 적벽대전을 앞두고 읊은 ‘단가행(短歌行)’의 말미다. 인재에 허기져 하는 그의 심리를 토로한 것이다.

중국에서 조조가 되살아나고 있다. 지난 세밑에 중국 허난(河南)성에서 조조의 무덤이 발굴됐다는 소식이다. 그는 죽기 전에 72개의 진짜인지 가짜인지 모를 무덤인 의총(疑塚)을 만들게 했다고 전한다. 이번에 ‘위무왕이 항상 사용하던 호랑이를 때려잡는 큰 창(魏武王常所用格虎大戟)’이라 새겨진 석패(石牌)가 발견됐다지만 진위 논란은 여전하다.

조조 무덤 발굴 소식이 전해지자 중국의 한 매체는 발 빠르게 여론조사를 실시했다. 조조를 ‘난세의 간웅(奸雄)’이라고 평가한 사람은 8.9%인 데 반해, 78.1%가 ‘세상을 호령(叱咤風雲・질타풍운)한 영웅’이라고 답했다. 왜 중국인들은 조조를 긍정적으로 평가할까? 『품삼국(品三國)』의 저자 이중톈(易中天)은 조조의 용인술(用人術)에서 답을 찾는다. 조조는 적벽대전 2년 후인 210년부터 세 차례에 걸쳐 널리 인재를 구하는 ‘구현령(求賢令)’을 반포했다. 명성과 출신보다 실력과 재능을 중시해 ‘인재만을 등용한다’는 정책이다. 세계 1등 기업으로 도약한 삼성의 ‘인재경영’론과 맥을 같이한다. 결국 삼국은 위(魏)나라가 통일했다.

새해에는 기업 경영자들이 주공과 조조처럼 ‘토포악발’하길 바란다. 인재 등용이 일자리 문제 해결의 첩경이기에 하는 말이다.

신경진 중국연구소 연구원

[한자로 보는 세상] 庶民 [중앙일보]

입력시각 : 2010-01-06 오전 12:44:11

우리나라는 가히 ‘서민(庶民)공화국’이라고 할 만하다. 여당은 서민을 위한 정치를 하겠다 하고, 야당도 서민을 위한 생활정치를 내세운다. 엊그제 이명박 대통령의 새해 국정연설도 ‘서민의 삶에 온기가 돌도록 하겠다’는 말로 끝을 맺었다.

서민의 어원은 중국 춘추전국시대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백성(百姓)’이라는 말은 성(姓)이 있는 사람을 일컬었다. 아무나 갖는 게 아니었다. 왕족과 귀족만이 어머니로부터 성을 이어받을 수 있었다. 일반 평민들은 성이 없었기에 ‘백성’이 될 수 없었다. 그들을 일컫는 말이 바로 ‘서민(庶民)’이었다. 권력에서 소외된 일반 대중이다. 갑골문의 ‘庶’는 집에 있는 사람의 형상으로 표현돼 있다.

‘서(庶)’의 의미는 무리(衆)・평범 등으로 확대됐지만 ‘소외된 자’라는 기본 뜻은 변하지 않았다. 정실 부인이 아닌 첩(妾)에게서 태어난 아들은 서자(庶子)라 했다. 지배계층의 반대는 서민층이었다. 오늘날 서민은 경제적 의미가 더 강하다. 부(富)에서 소외된 사람들이다.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자금대출을 위해 ‘서민금융’이 생겼고, 돈이 넉넉하지 않은 무주택자를 위해 ‘서민아파트’가 건설된다. 가난한 집의 경제를 ‘서민가계’라고도 한다. 중산층・민중・민초 등의 말이 계급이나 정치적 의미를 담고 있는 데 비해 서민은 비슷한 대상이면서도 경제적 성격이 강한 것이다.

정치 권력과 서민은 어떤 관계를 유지해야 할까. 이 문제에 대한 맹자(孟子・BC372 ~BC289)의 해석은 의미심장하다. 맹자가 양(梁)나라 혜왕(惠王)을 만났을 때의 일이다. “왕은 어떠할 때 기뻐해야 하느냐”는 혜왕의 질문에 맹자는 시경・대아(詩經・大雅)편의 구절을 인용해 답한다.

“성군(聖君)인 주문왕(周文王)이 제단을 쌓기로 했습니다. 서민들이 달려들어 열심히 일을 했고, 며칠 지나지 않아 완공됐습니다(庶民功之, 不日成之). 힘든 일이었지만 서민들은 오히려 즐겁게 작업을 했습니다. 고대의 성인 군자는 이처럼 서민과 함께 즐거움을 나눴지요(與民偕樂). 그게 바로 왕이 기뻐하는 이유입니다.”(孟子・梁惠王)

정치지도자와 서민이 서로 마주 보고 즐거워하는 것, 예나 지금이나 정치의 최고 경지가 아닐 수 없다. 

한우덕 중국연구소 차장

[한자로 보는 세상] 煙月 [중앙일보]

입력시각 : 2010-01-04 오전 1:10:18

교수신문이 발표한 올해의 한자 성어는 강구연월(康衢煙月)이다. 태평성대를 상징하는 길거리 모습과 풍경을 가리킨 말이다. ‘편안한 모습의 거리(康衢)’까지는 괜찮지만, 몇몇 매체가 연월(煙月)을 ‘연기가 피어오르는 달’의 모습으로 설명해 안타깝다. 일부 국어사전에 그렇게 나온 것을 그대로 옮긴 것이다. 달이 뜬 뒤에 피어오르는 연기는 왠지 좀 불길하다. 전쟁의 참화를 떠올리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당(唐)나라 시인 이백(李白)의 시에 이런 유명 구절이 나온다. “좋은 경치의 3월에 양주로 간다(煙花三月下揚州)….” 이백이 친구 맹호연(孟浩然)을 떠나 보내며 지은 시다. 여기서 나오는 연화(煙花)를 ‘연기 피어오르는 꽃’으로 번역할 수 있을까. 당연히 그럴 수 없다. 문학적인 표현으로 이런 연기는 불을 피워서 오르는 그런 연기가 아니다. 안개가 그윽이 낀 날의 꽃, 말하자면 봄날의 좋은 경치를 의미한다.

연(煙 또는 烟)은 불을 지피면서 생기는 일반적인 연기이기도 하지만, 안개나 구름이 자욱이 낀 상태를 일컬을 때도 쓰인다. 따라서 연월은 ‘운무에 싸인 몽롱한 모습의 달’이 정확한 번역이다. 그래서 연일(煙日)이라고 적으면 ‘운무에 싸인 해’가 되는 것이고, 연해(煙海)라고 쓰면 ‘안개 낀 바다’가 되는 것이다.

연월은 더 나아가 남녀 사이의 로맨스, 또는 기생이 사는 곳 등을 가리킨다.

기녀(妓女)의 별칭은 한때 연월귀호(煙月鬼狐)로 불렸고, 그들이 장사를 벌이는 곳은 연월작방(煙月作坊)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기원(妓院)의 간판은 연월패(煙月牌)였다. 구름과 노을을 뜻하는 ‘연하(煙霞)’는 시인묵객(詩人墨客)이 자주 사용하는 문학적 소재이기도 했다.

하늘에 뿌옇게 끼어 있는 구름과 안개의 이미지는 정적(靜的)이다. 그대로 풍경이 멈춰 있어 안정과 고요를 뜻하는 표현이다. 희끄무레한 무엇인가에 싸여 땅을 비추는 달은 그래서 ‘평화로운 세월’의 이미지와 맞아떨어진다. 비슷한 것으로는 이내가 있다. 한자(漢字)로는 남기(嵐氣)라고 한다. 저녁 무렵에 산과 들에 푸르스름하게 끼는 기운을 말한다. 연월을 ‘연기 오르는 달’로 풀이하는 우리 사회와 한자의 세계 사이에도 적잖은 구름과 안개가 끼어 있는 셈이다.

유광종 중국연구소 부소장
 

[한자로 보는 세상] 희(喜) [중앙일보]

입력시각 : 2010-01-01 오전 1:57:28

‘기쁜 일 만나면 기분이 상쾌해진다(人逢喜事精神爽)’는 말이 있다. 중국인들이 쓰는 말이다. 희사(喜事)는 보통 혼사(婚事)를 일컫는다. 결혼만을 일컬을 때는 홍희사(紅喜事)다. 천수를 누리고 이승을 떠나는 이를 보내는 장례는 백희사(白喜事)다. 슬픔을 기쁨으로 승화했다.

희주(喜酒)는 결혼 혼례 때 참석해 마시는 술이다. 중국에서는 술도 술이지만 사탕 등을 나눠 주면서 희당(喜糖)이라고 한다.

영어를 중국어로 가장 잘 옮긴 말로는 코카콜라(可口可樂)를 꼽는다. ‘입에 딱 맞아 즐겁다’는 뜻이니 발음이 비슷한 데다 의미까지 훌륭해 그만이다. 그에 비견되는 표현이 있다. 호텔 힐튼의 중국어 표현 ‘희래등(喜來登)’이다. 발음도 얼추 비슷하고, 뜻은 ‘기쁨이 찾아온다’다. 호텔에 드는 손님들로서는 기분 좋은 일이다.

과거 결혼식장에 자주 내걸던 글자가 있다. 희(囍)라는 글자다. 기쁠 희라는 글자 두 개를 이어 붙였다. 기쁨이 배로 다가오라는 바람이 담겨 있다.

기대는 하지 않았으나 갑자기 찾아든 반가운 소식을 알린다는 존재는 까치다. 새벽 아침에 집 앞 나무에 올라앉아 기쁜 소식의 도래(到來)를 예고하는 까치는 그래서 희작(喜鵲)이다. 천수답(天水畓)에 기대 농사를 지어야 했던 예전의 생활에서 가뭄 끝의 단비는 희우(喜雨)다. 정자를 지었을 때 단비가 내려 이름을 얻은 희우정(喜雨亭)에 관한 이야기도 이래저래 전해져 오고 있다.

기쁨을 뜻하는 희(喜)는 사람이 갖고 있는 칠정(七情)의 선두다. 유교의 경전인 『예기(禮記)』에 따르자면 그렇다. 그 뒤로 노함(怒), 슬픔(哀), 두려움(懼), 사랑(愛), 미움(惡), 욕심(欲)이 등장한다.

기쁨이란 뜻으로 함께 쓰이는 글자로는 환(歡)과 흔(欣), 쾌(快), 유(愉), 열(悅) 등이 있다. 이들을 서로 조합하면 환희(歡喜), 유쾌(愉快), 흔쾌(欣快), 희열(喜悅) 등의 단어로 발전한다. 기쁨이라는 뜻을 담아 다 좋은 말들이다.

하늘의 계시를 뜻하는 보일 시(示)와 기쁠 희 자를 섞으면 ‘희(禧)’다. 새해 연하장 등에서 자주 보는 글자다. 행복과 기쁨을 뜻한다. “공하신희(恭賀新禧).” 공손한 마음으로 전하는, 새해 복 많이 받으시라는 덕담이다. 독자들께 올리는 새해 인사다.

유광종 논설위원
 

[한자로 보는 세상] 爵 [중앙일보]

입력시각 : 2010-04-26 오전 12:15:00

벼슬을 적을 때 쓰는 한자가 작(爵)이다. 공작(公爵)을 비롯해 후(侯)・백(伯)・자(子)・남(男)에 이 글자를 붙이면 높은 벼슬 이름이 된다. 중국에서 그 용례가 만들어진 뒤 요즘은 영국의 작위(爵位)를 한자로 적을 때 이렇게 붙인다.

‘작’은 원래 술잔을 일컬었다. 한자의 초기 형태인 갑골문 등을 보면 이 글자는 술잔 비슷한 모양의 물건을 손으로 잡고 있는 모습이다. 주로 고대 왕조사회의 국가적 행사인 제례(祭禮) 등에서 사용한 물건이다.

고대 예법(禮法)에서는 상・하의 관계가 매우 엄격했고, 사람이 제례 등에 참여해 서로 잡는 술잔의 크기와 모양이 각자의 계급에 따라 달랐다. 따라서 그런 자리에서 잡는 술잔, ‘작’의 여러 가지 모양은 그곳에 참여하는 사람의 관직(官職) 서열을 뜻하게 됐다. 관직을 일컫는 관작(官爵)의 의미가 붙여진 것이다.

하늘의 벼슬, 인간세상의 벼슬이라는 구분을 둔 사람은 맹자(孟子)다. 하늘이 내린 벼슬은 천작(天爵)이라고 적었다. 공후장상(公侯將相)의 인간 사회 속 벼슬은 인작(人爵)이라고 했다. 천작은 인자하고 의로우며, 충성스럽고 믿음이 있는 사람의 덕목(德目)을 가리켰다. 곧 ‘인의충신(仁義忠信)’이다. 선행에 늘 앞장서는 사람이기도 하다.

인작은 달리 설명할 게 없다. 일정한 경로를 통해 오르는 관직, 또는 그런 사람이다. 맹자는 천작과 인작을 설명하면서 “옛날에는 좋은 덕목을 갖춘 뒤에야 벼슬자리를 얻었으나 요즘에는 품성을 연마하는 척하다가 벼슬자리를 꿰찬 뒤에는 그를 버린다”며 한탄하고 있다. 2300여 년 전 맹자의 탄식인데, 조금도 낯설지가 않다. 지방에서는 군수가 건설업자에게 공사를 몰아줘 호화 빌라를 제공받는 비리가 횡행하고, 사정(司正)의 주축인 검찰 역시 건설업자와 “우리가 남이가”라는 식으로 얽혀들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들, 지금의 벼슬자리에 오르기까지 제대로 인성교육이나 마쳤는지 궁금하다. 맹자 시대 관료만도 못한 게 분명하다.

“불이 곤강산을 태우니, 옥과 돌이 모두 탄다(火炎崑岡, 玉石俱焚)”는 말을 기억하실 것이다. 관리의 부도덕은 그런 불보다 무섭다는 지적이다. 그 부패의 불길을 재촉하는 것이 바람이라. 추운 겨울 내내 기다렸던 봄바람 앞에서 괜히 우울해지는 요즘이다.

유광종 중국연구소 부소장
 
한자로 보는 세상] 盜泉 [중앙일보]

입력시각 : 2010-04-15 오전 12:36:50

견토지쟁(犬兎之爭)이란 말이 있다. 전국책(戰國策)에 나온다. 옛날에 날랜 사냥개 한자로(韓子盧)와 발 빠른 토끼 동곽준(東郭逡)이 있었다. 하루는 한자로가 동곽준 추격에 나섰다. 수십 리를 쫓고 쫓기며, 높은 산을 다섯 번이나 오르내리며 사력을 다해 달리다 둘 다 쓰러져 죽었다. 길 지나던 농부(田父)가 횡재했다. 힘들이지 않고 이득을 보는 걸 전부지공(田父之功)이라고 한다.

어부(漁父)가 재미를 보는 경우 역시 전국책에 나온다. 도요새(鷸)는 조개(蚌蛤)의 속살을 물고, 조개는 도요새의 부리를 문 채 입을 닫아 둘 다 꼼짝도 못하는 방휼지세(蚌鷸之勢)를 이뤘다. 이를 본 어부는 둘 다 잡아 어부지리(漁父之利)를 얻었다.

북한이 중국 여행사 등 남북한이 아닌 제3국의 업체를 이용해 금강산 관광을 추진할 것이란 이야기가 나온다. 남북 다툼에 제3자가 이득을 챙길 모양새다. 그러나 이 경우엔 농부든 어부든 제3자도 새겨야 할 말이 있다. ‘목이 말라도 도천의 물은 마시지 않는다(渴不飮盜泉水)’는 공자 말씀이다.

공자가 산둥성 사수(泗水)현을 지날 때다. 몹시 목이 말랐다. 마침 샘을 만났지만 공자는 물을 마시지 않았다. 샘 이름이 ‘도천(盜泉)’이었기 때문이다. 예가 아닌 것은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행하지도 말라(非禮勿視 非禮勿言 非禮勿聽 非禮勿動)고 했던 그가 아닌가. 공자는 갈증이 심했지만 도천의 물을 마시는 건 군자가 할 일이 아니라고 여겼다. 이후 도천은 수치스러운 행위를 비유하는 말로 쓰였다. 공자의 제자인 증자(曾子) 또한 하루는 날이 저물어 도착한 곳이 승모(勝母)라는 마을이었지만 그곳에 묵지는 않았다. ‘어미를 이긴다’는 이름을 부도덕하다고 봤기 때문이다.

서진(西晉)의 문인 육기(陸機)는 맹호행(猛虎行)에서 읊었다. ‘목이 말라도 도천의 물은 마시지 않으며, 더워도 악목의 그늘에선 쉬지 않는다(渴不飮盜泉水 熱不息惡木陰)’고. 형편이 어려워도 예(禮)에 어긋난 일은 삼가는 게 좋다는 뜻이다. 금강산 관광은 통일을 내다보는 긴 안목에서 추진하는 남북한 경협(經協)의 상징이다. 남북 관계가 경색된 틈을 이용해 3자를 들이려는 북한이 우선 문제이지만, 3자 입장에서도 상업적 이익만을 생각하고 들어설 자리는 아닐 것이다.

유상철 중국연구소 소장
 
한자로 보는 세상] 視聽과 見聞 [중앙일보]

입력시각 : 2010-04-19 오전 12:05:00

보고 듣는 행위를 한자로 적으면 시청(視聽)과 견문(見聞)이다. 보는 동작은 시견(視見), 듣는 행위는 청문(聽聞)이다.

‘시견’의 두 글자는 그 새김이 거의 비슷하다. 그러나 쓰임새는 다소 다르다. 앞의 글자는 일차적 행동, 뒤의 글자는 그 동작의 결과를 나타내는 경우가 많다.

이를 테면, 볼 시(視)는 눈의 감각이 사물에 닿는 행위다. 그에 비해 견(見)은 그에 따른 결과, 말하자면 눈으로 본 현상과 사물이 머리로 인식되는 과정에 이름을 말한다. 그래서 나온 성어가 시이불견(視而不見)이다. 사물을 눈으로 보되 그 자체에서 그치는 상태다. 생각이 따라주질 않으니 보지 않은 것과 같은 셈이다.

다음은 ‘청문’이다. 마찬가지다. 듣되 제대로 듣지 않는 것이 청이불문(聽而不聞)이다. 뭔가를 들었으면서도 그 안에 담긴 메시지를 머리로 이어가지 못하는 것이다. 사람 불러 놓고 정치적 제스처로 한껏 상대의 기운만 빼앗는 한국 국회의 청문회(聽聞會)가 바로 ‘청이불문’의 꼴이라고나 할까.

시조(視朝)와 청정(聽政)은 그래서 임금이 조정에서 정무를 보고 듣는 행위를 일컫는다. 관리가 업무에 임하는 것은 시사(視事), 판결을 주재하는 것은 청송(聽訟)이다.

이에 비해 한 걸음 더 깊은 뜻으로 전진하는 것이 견과 문이다. 두 글자를 합한 견문은 객관적인 사물에 대한 관찰로 얻어진 이해다. 그래서 ‘이 사람은 견문이 많다’는 식으로 말한다. 견해(見解)와 견식(見識)도 비슷한 용례다. 잘 듣고 보면서 사물과 상황에 제대로 대처하면 ‘총명(聰明)’이다. 귀 밝은 게 총, 눈이 예리하면 명이다. 그런 사람을 ‘총민(聰敏)하다’거나 ‘명민(明敏)하다’는 식으로 적는 이유다.

요즘 우리가 보고 듣는 게 많다. 슬픔으로 돌아온 천안함 용사들을 맞으면서 말이다. 그 사후(事後)에 임하는 우리의 태도는 매우 중요하다. 사고의 전 과정이 담고 있는 메시지가 많기 때문이다.

적의 도발 여부, 국가 안보가 걸려 있는 국방태세에 대한 문제들이다. 적의 도발이 맞다면 북한의 정체를 똑바로 인식하는 계기가 될 것이고, 이로써 국방태세를 다시 튼튼히 구축한다면 전화위복(轉禍爲福)이다. 보고 들었다가 그냥 잊을 사안이 아니다. 모두 뇌리 속에 깊이 새겨야 할 일들이다.

유광종 중국연구소 부소장
 
 

[한자로 보는 세상] 一山二虎 [중앙일보]

입력시각 : 2010-04-21 오전 12:02:00

교룡(蛟龍)이라는 상상 속 동물이 있다. 모양은 뱀과 같지만 넓적한 네 발이 있고, 머리는 작지만 비단처럼 부드러운 옆구리와 배가 있다. 연못에 웅크리고 있다가 비구름을 얻으면 하늘로 오른다(蛟龍得雲雨)는 전설을 갖고 있다. 그러기에 교룡은 ‘때를 만나지 못해 뜻을 이루지 못한 영웅호걸’로 비유되기도 한다.

교룡 두 마리가 한 우물에 있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여기서 나온 성어가 ‘일연양교(一淵兩蛟)’다. 한(漢)나라 초기의 문집인 『회남자(淮南子)』에 뿌리를 둔 말이다. 『회남자』는 ‘설산훈(說山訓)’ 편에서 ‘한 연못에 교룡 두 마리가 살지 않아야 물이 고요하고 맑다(一淵不兩蛟,水定則淸正)’고 했다. 하늘을 오르지 못해 울분에 찬 교룡 두 마리가 한 우물에 있다면 치고 박고 싸울 것이라는 얘기다.

요즘은 같은 뜻으로 ‘일산불용이호(一山不容二虎・하나의 산은 두 마리 호랑이를 용납하지 않는다)’라는 말을 많이 쓴다. 산 속 호랑이가 자신의 구역에 침입한 다른 호랑이를 내버려 두지 않듯, 같은 세력을 가진 존재는 둘이 공존할 수 없다는 뜻이다. 침입이 있다면 싸움만이 있을 뿐이다. ‘일산이호(一山二虎)’로 줄여 쓰기도 한다. 중국 현대 소설가인 어우양산(歐陽山・1908~2000)의 소설 ‘산자샹(三家巷)’에서 처음 등장한 말이다. 그는 사이가 좋지 않아 만나면 싸우는 사람을 들어 ‘一山二虎’의 관계로 묘사했다.

‘일산이호’는 국제관계를 설명하는 말로 중국 언론에 자주 등장한다. 아시아에서의 중국과 일본 관계, 세계 정치 무대에서의 중국과 미국 관계가 그 꼴이라는 얘기다. 미국과 중국이, 중국과 일본이 패권을 놓고 으르렁거리며 싸우는 모습이다. 흔히 ‘일산불용이호(一山不容二虎)’ 뒤에 ‘양호상쟁필유상(兩虎相爭必有傷・두 호랑이가 싸우면 반드시 상처를 입는다)’이라는 말이 이어진다.

두 호랑이가 있는 산에서는 ‘용쟁호투(龍爭虎鬪)’ ‘용호상박(龍虎相搏)’이 끊이지 않는다. 날이 밝으면 전쟁이요, 밤이면 암투다(明爭暗鬪). 세계 여러 곳에서 갈등과 분쟁이 이어지고 있다. 산은 언제 고요할 것이며, 연못은 또 언제 청정할 것인가 ….

한우덕 중국연구소 차장
 

[한자로 보는 세상] 選擧 [중앙일보]

입력시각 : 2010-04-22 오전 12:10:00

6・2 지방선거가 41일 앞으로 다가왔다. 선거(選擧)에는 본디 두 가지 뜻이 있다. 투표를 통해 대표자를 뽑는 것과, 인재를 뽑아(選) 등용한다(擧)는 의미다. 영어로 말하면 전자는 Election, 후자는 Selection인 셈이다. 세습(世襲)을 통해 귀족들이 독점하던 관직을 신분과 관계없이 능력으로 충원한 것이 선거의 옛 뜻이다. 한(漢)대에는 지방에서 인재를 천거(薦擧)하고 중앙이 임명하는 향거리선제(鄕擧里選制)가, 남북조시대에는 지방에 설치된 인재 선발관청[中正]이 아홉 등급을 매겨 중앙에 천거하는 구품중정법(九品中正法)이 시행됐다. 지방의 여론을 묻는 방식이 오늘날 지방자치제와도 연결된다. 수(隋)나라에 이르러 시험을 통해 선발[考選]하는 과거(科擧)제가 시작됐다. 이후 예부(禮部)는 과거와 학교 성적으로 선비(士)를 선발하고, 이부(吏部)는 인재를 저울질[銓選]하고 성적을 평가[考績]해 관리를 선발했다. 『예기(禮記)』에 “대도(大道)가 행해지면 천하에 공의(公義)가 구현되고, 어진 자를 뽑아 위정자를 삼고 능력 있는 자에게 관직을 부여한다”라고 전해진다. 어질고 재능 있는 사람을 선발해 임용하는 것(選賢擧能)은 유교사회의 이상이었다.

청(淸) 말에 이르러 중체서용론자 정관응(鄭觀應)이 『성세위언(盛世危言)』에서 근대적인 선거를 처음으로 언급했다. 그는 “의원 선거는 민주・군민공주(君民共主)를 시행하는 나라들의 가장 중요한 제도”라면서도 선거를 중국식으로 재해석한 공거(公擧)를 제안했다. 학교를 널리 세우고, 인재를 가르쳐 한대의 향거리선제를 부활하자는 주장이다.

우리 선조들도 선거를 중시했다. 조선시대 혜강(惠岡) 최한기(崔漢綺)는 저서 『인정(人政)』에서 “국가의 안위는 인재를 선거하는 날에 결정 난다(國事安危, 判於選人之日)”며 “소인을 내쫓으면 기뻐하고, 군자를 물러나게 하면 걱정한다(黜小人而喜, 退君子而慽)”고 말했다. 또한 조선왕조실록은 ‘천거한 사람이 자격자가 아니면 죄가 천거한 사람에게 미친다(所擧非人, 罪及擧主)’고 적었다. 잡음이 끊이지 않는 정당의 공천 담당자가 보면 뜨끔할 내용이다.

지방선거는 풀뿌리(草根) 민주주의의 기초이며, 산업화와 더불어 한국의 자랑할 만한 소프트 파워다. 유권자의 더 많은 관심이 요구된다.

신경진 중국연구소 연구원
 
<流>
글쓴이hmjbj 님의해석여류(女流)
여류[女流; 명사]: (일부 명사 앞에 쓰여) 어떤 전문적인 일에 능숙한 여자를 이르는 말[네이버국어사전]

女流(여류): 어떤 전문(專門) 분야(分野)나 전문가(專門家)를 나타내는 말 앞에 쓰이어, 여성(女性), 여자(女子)를 나타내는 말[네이버한자사전]
流[흐를 류·유; 형성문자; 流=水+㐬]: 뜻을 나타내는 삼수변(氵=水·氺) 부(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부수(部首)를 제외(除外)한 글자 㐬(류; 아기가 태어나는 모양)이 합(合)하여 이루어짐. 아기가 양수와 함께 순조롭게 흘러나옴을 뜻함.[네이버한자사전]
㐬[깃발 류·유, 거칠 황; 형성문자; 𠫓+丿丨 乙(*글자가 없어 合字하였음); =𡿮=㜽]: 荒(거칠 황)과 같음(與荒同)[康熙字典 외]
𠫓: 순조롭지 않게 갑자기 튀어나올(不順忽出) 돌(*'子'가 뒤집힌 모양).
“아이가 나올 때 산통이 시작되면 아이가 몸을 돌려 머리를 아래로 향하면서 분만이 시작된다(臨產, 腹痛, 子轉, 身首向下, 始分免也)”(六書精蘊)
“효순하지 않은 자식.불효자(不孝之子)”(廣韻)
“불효자가 (거꾸로) 튀어나오는 모습으로, ‘같은 나와바리’에 껴주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不孝子突出, 不容於内也)”[說文解字 외]
“효순하지 않은 자식.불효자(不孝之子)”(廣韻)
“불효자가 (거꾸로) 튀어나오는 모습으로, ‘같은 나와바리’에 껴주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不孝子突出, 不容於内也)”[說文解字 외]
丿丨 乙
丿丨 乙(합자)=巛=川: 내 천. 양쪽 언덕 사이로 물이 흐르고 있는 모양(*아기가 엄마 뱃속에서 나오는 모양).[네이버한자사전 외]
용례
ㆍ액체·물 등의 흐름·이동: 水流(수류), 流水(유수), 激流(격류)
ㆍ전파·(일시적인) 조류: 流行(유행), 한류(韓流↔中風), 風流(풍류), 流言蜚語(유언비어), 流弊(세상에 널리 퍼진 나쁜 풍습·악습·폐단)
ㆍ갈래·유파: 流派(유파; 물의 지류.유파)
ㆍ사회계층: 名流(명류), 一流(일류), 女流(여류)
ㆍ(물처럼) 흐름이 일정치 않음(방랑·流散): 漂流(표류), 流浪(유랑), 流寇(유구; 떠돌이 도적.왜구), 流失(유실; 떠내려가 없어지다), 流産(유산)
ㆍ난민: 流民(유민; 유랑민), 盲流(맹목적으로·대책없이 유입·이주해 온 사람·부류), 流離乞食(유리걸식; 떠돌아다니며 밥을 빌어먹다)
ㆍ옛 형벌(귀양·유배): 流刑(유형; 유배형; 고대 五刑의 하나), 流配(유배), 流放(유방; 귀양·유배)
ㆍ나쁜 방향으로의 전변(轉變): 流於感傷(유어감상; 감상적으로 되다), 流離瑣尾(유리쇄미; 상황·처지가 나쁘게 되다.좆되다)
ㆍ방종·방탕: 流蕩(유탕; 유랑·방탕)
ㆍ저질·부정직·사악한 부류: 三流(삼류), 流裡流氣(유리유기; 행동거지가 경박하고 단정치 못하다.불량스럽다), 二流子(이류자; 건달), 流氓(유맹; 유랑민.건달.불량배.깡패)
-人生下流

 

 

[한자로 보는 세상] 多行不義必自斃

족(族)은 나부끼는 깃대 아래 사람(人)과 화살(矢)이 놓인 모양이다. 화살은 전쟁을 상징한다. 그래서 족은 한 깃발 아래서 함께 싸울 수 있는 공동체를 뜻한다. 족 앞에 백성 민(民)을 더한 민족(民族)은 통치자의 지배력이 미치는 영역 안에 살며 전쟁에 나갈 수 있는 사람을 가리킨다. 족 앞에 집 가(家)가 오는 가족(家族) 또한 다른 부족과 전투가 벌어졌을 때 똘똘 뭉치는 사람을 나타낸다. 모두 싸움과 관련이 있다.

한데 싸움 중에 제일 몹쓸 것으로 치부되는 게 바깥 세력과 다투는 게 아니라 가족 내 같은 피붙이 간의 싸움인 형(兄)과 동생(同生) 간의 골육상쟁(骨肉相爭)이다. 이는 사람들의 조롱거리가 되기 십상이다. 황제에 오른 뒤 동생 조식(曹植)을 핍박한 위문제(魏文帝) 조비(曹丕)의 경우가 그렇다.

‘콩대를 태워 콩을 삶으니(煮豆燃豆萁) 콩은 솥 속에서 울고 있네(豆在釜中泣)

본래 한 뿌리에서 나왔건만(本是同根生) 어찌 이다지도 괴롭히는가(相煎何太急)’

조식의 재치 있는 칠보시(七步詩)가 골육상쟁의 피바람은 막았지만 조비는 체면을 구겼다. 동생을 해치려는 명분이 온당치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그 반대의 경우도 있다. 춘추시대 정무공(鄭武公)에겐 두 아들이 있었다. 그의 사후 큰아들 장공(莊公)이 왕위를 이어받았으나 동생 공숙단(共叔段)은 야심을 버리지 못했다. 봉토(封土)를 확장한다, 군사력을 키운다 등 왕위 찬탈의 음모를 잇따라 획책했다. 그러나 장공은 “불의를 자주 행하는 자는 반드시 스스로 망할 것이다(多行不義必自斃)”라며 조치를 취하지는 않았다. 마침내 공숙단이 군사를 일으켜 정면으로 도전하자 그제야 장공은 단숨에 공숙단을 격파해 후환을 없앴다. 형제간 상잔(相殘)이었지만 장공은 사람들의 비난을 받지 않았다. 정도(正道)를 걸었기 때문이다. 공숙단으로선 ‘스스로 멸망의 길을 택한 것(自取滅亡)’이다. 돌을 들어 제 발등 찍은 경우에 해당한다(搬起石頭頭自己的脚). 『좌전(左傳)』에 나오는 이야기다.

판문점 도끼만행, 아웅산 테러, KAL기 폭파사건, 그리고 아직 공식 발표되지는 않았지만 최근의 천안함 침몰 사건에 이르기까지 북한의 악행은 그칠 줄을 모른다. ‘다행불의필자폐’라는 탄식이 절로 나오는 요즘이다.

 한우덕 중국연구소 차장
 
한자로 보는 세상] 盜泉
견토지쟁(犬兎之爭)이란 말이 있다. 전국책(戰國策)에 나온다. 옛날에 날랜 사냥개 한자로(韓子盧)와 발 빠른 토끼 동곽준(東郭逡)이 있었다. 하루는 한자로가 동곽준 추격에 나섰다. 수십 리를 쫓고 쫓기며, 높은 산을 다섯 번이나 오르내리며 사력을 다해 달리다 둘 다 쓰러져 죽었다. 길 지나던 농부(田父)가 횡재했다. 힘들이지 않고 이득을 보는 걸 전부지공(田父之功)이라고 한다.

어부(漁父)가 재미를 보는 경우 역시 전국책에 나온다. 도요새(鷸)는 조개(蚌蛤)의 속살을 물고, 조개는 도요새의 부리를 문 채 입을 닫아 둘 다 꼼짝도 못하는 방휼지세(蚌鷸之勢)를 이뤘다. 이를 본 어부는 둘 다 잡아 어부지리(漁父之利)를 얻었다.

북한이 중국 여행사 등 남북한이 아닌 제3국의 업체를 이용해 금강산 관광을 추진할 것이란 이야기가 나온다. 남북 다툼에 제3자가 이득을 챙길 모양새다. 그러나 이 경우엔 농부든 어부든 제3자도 새겨야 할 말이 있다. ‘목이 말라도 도천의 물은 마시지 않는다(渴不飮盜泉水)’는 공자 말씀이다.

공자가 산둥성 사수(泗水)현을 지날 때다. 몹시 목이 말랐다. 마침 샘을 만났지만 공자는 물을 마시지 않았다. 샘 이름이 ‘도천(盜泉)’이었기 때문이다. 예가 아닌 것은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행하지도 말라(非禮勿視 非禮勿言 非禮勿聽 非禮勿動)고 했던 그가 아닌가. 공자는 갈증이 심했지만 도천의 물을 마시는 건 군자가 할 일이 아니라고 여겼다. 이후 도천은 수치스러운 행위를 비유하는 말로 쓰였다. 공자의 제자인 증자(曾子) 또한 하루는 날이 저물어 도착한 곳이 승모(勝母)라는 마을이었지만 그곳에 묵지는 않았다. ‘어미를 이긴다’는 이름을 부도덕하다고 봤기 때문이다.

서진(西晉)의 문인 육기(陸機)는 맹호행(猛虎行)에서 읊었다. ‘목이 말라도 도천의 물은 마시지 않으며, 더워도 악목의 그늘에선 쉬지 않는다(渴不飮盜泉水 熱不息惡木陰)’고. 형편이 어려워도 예(禮)에 어긋난 일은 삼가는 게 좋다는 뜻이다. 금강산 관광은 통일을 내다보는 긴 안목에서 추진하는 남북한 경협(經協)의 상징이다. 남북 관계가 경색된 틈을 이용해 3자를 들이려는 북한이 우선 문제이지만, 3자 입장에서도 상업적 이익만을 생각하고 들어설 자리는 아닐 것이다.

유상철 중국연구소 소장
한자로 보는 세상] 殷鑑
믿고(怙) 의지한다(恃)는 뜻의 호시怙恃)는 부모를 가리킨다. ‘아버지가 없으면 누구를 믿으며(無父何怙) 어머니가 없으면 누구를 의지하겠는가(無母何恃).’ 시경(詩經)의 한 구절에서 유래한 말이다. 부모는 이처럼 믿고 의지하는 대상이다. 나의 존재를 있게 한 뿌리이기 때문이다. 뿌리가 없으면 잎이 있을 리 없다. 그래서 뿌리가 잘리면 후대는 없고(斷根絶種), 뿌리가 깊으면 잎사귀가 무성한 법이다(根深葉茂).

나라의 경우 뿌리는 역사에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 젊은 세대의 경우 근본(根本)을 잊게 생겼다. ‘2009년 개정 고교 교과과정’이 내년부터 시행되면 한국사가 선택과목으로 바뀐다. 고교 3년간 국사(國史)를 배우지 않아도 졸업이 가능해진다. 그렇잖아도 암기할 분량이 많아 수능시험에서 외면당하는 국사가 이젠 아예 존폐(存廢)의 기로에 서게 됐다.

역사 알기는 국가의 흥망성쇠와 밀접하게 연결된다. 시경에 ‘은감(殷鑑)’이라는 말이 나온다. ‘은나라 거울’이란 뜻이다. 은 이전의 하(夏)나라가 어떻게 망했는가를 은나라의 거울로 삼아야 한다는 이야기다. ‘은나라의 거울은 멀리 있지 않다. 바로 하후의 시대에 있다(殷鑑不遠 在夏后之世).’ 걸왕(桀王)의 폭정으로 망한 하나라 역사를 거울로 삼아 경계를 늦추지 말자는 다짐이다.

당(唐) 태종(太宗) 또한 ‘옛것을 거울로 삼으면 흥망을 알 수 있다(以古爲鏡 可知興替)’며 역사를 거울로 삼아 정관(貞觀)의 치(治)로 불리는 태평성세(太平盛世)를 일궜음은 잘 알려진 일이다. 선인은 ‘미래를 알려면 과거부터 살피라(欲知來者察往)’고 하지 않았던가. 한 나라가 어떤 과정을 거쳐 오늘에 이르렀는지를 모르는데 어떻게 앞날의 발전을 도모할 수 있을 것인가.

‘나뭇잎 하나 떨어지는 것에 가을이 온 것을 알 수 있다(一葉落知天下秋)’고 한다. 국사 과목을 선택제로 결정한 교과 개정이 얼마나 문제가 많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국사뿐 아니라 국·영·수 등 다른 과목 모두 선택제로 했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우리는 천안함 46용사를 기리며 ‘당신을 영원히 잊지 않겠다’고 말한다. 그러나 역사를 배우지 않는데 어떻게 천안함 용사를 기억할 수 있단 말인가. 국사는 선택이 아닌 필수과목이 돼야 마땅하다.

유상철 중국연구소 소장

[한자로 보는 세상] 天網
‘천(天)’은 ‘대(大)’와 ‘일(一)’로 구성돼 있다. ‘대’는 사람(人)이 팔과 발을 오므리지 않고 좌우로 활짝 편 모양이다. ‘일’은 사람의 머리 부분을 뜻한다. 따라서 ‘천’은 사람의 머리에 비유됐다. 이후 ‘천’은 사람의 머리와 맞닿아 있는 부분인 하늘이라는 뜻이 됐다.

서주(西周) 시대 사람들은 천(天)을 최고신(最高神)으로 섬겼다. 천의 뜻이 ‘천명(天命)’이고, 천명을 지상에 실현하는 이가 ‘천자(天子)’이며, 천자가 통치하는 곳이 ‘천하(天下)’다. 천하의 안정을 바라는 마음은 ‘천안(天安)’이란 두 글자에 담겼다. 베이징의 천안문(天安門)은 황제가 ‘천명을 받아 나라를 태평하게 다스리고 민심을 안정시킨다’는 뜻을 가졌다.

우리 해군 초계함인 천안함(天安艦)은 ‘천안’이란 지명을 딴 경우다. 그러나 국가의 안정을 희구하는 바람은 한 가지다. 천안함이 침몰했다. 두 동강이 났다. 국민의 마음도 따라서 동강이 났다. 화불단행(禍不單行, 재앙은 한 번으로 그치지 않는다)이던가. 실종자 구조에 나섰던 한주호 준위에 이어 금양호 또한 사고를 만났다.

노자(老子)는 “하늘의 도는 사사로이 치우침이 없어서 언제나 착한 사람의 편에 선다(天道無親 常與善人)”고 했거늘, 도대체 ‘하늘의 도(天道)’는 있기라도 한 것일까. 사마천(司馬遷)은 말했다. “백이(伯夷)와 숙제(叔齊) 같은 착한 사람은 어째서 굶어 죽었는가. 공자가 가장 칭찬한 안연(顔淵)은 어째서 가난에 쪼들리다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떴는가. 반면에 죄 없는 사람들을 죽이고 그들의 간을 회 쳐 먹는 등 악행을 일삼은 도척(盜跖)은 어떻게 천수(天壽)를 누렸는가. 도대체 하늘의 도는 옳은 것인가 그릇된 것인가(天道是耶非耶).”

정말이지 천도(天道)의 시비(是非)를 따져보지 않을 수 없을 만큼 답답한 요즘이다. 게다가 사고의 원인마저 아직은 시원하게 밝혀지지 않고 있다. 그래도 노자의 말을 믿어보자. “천망회회 소이불실(天網恢恢 疏而不失).” 하늘이 친 그물(天網)은 매우 커서(恢) 언뜻 보기엔 성겨(疏) 보이지만 이 그물에서 빠져 나갈 수는 없다(不失)는 뜻이다. 아무리 교묘한 사고 원인도 끝내는 밝혀질 것이다. 차분하게 조사 결과를 지켜보자. 만반의 준비를 하면서.

유상철 중국연구소 소장
[한자로 보는 세상] 松茂柏悅
‘호사토비(狐死兎悲)’란 말이 있다. 여우가 죽으니 토끼가 슬퍼한다는 얘기다. 고개가 갸우뚱거려진다. 토끼로선 저를 잡아먹는 여우가 죽으면 좋아해야 하는 것 아닐까. 꼭 그렇지만은 않다. 토끼가 한 치 앞을 더 내다볼 경우엔 말이다. ‘호사토비’엔 여우나 토끼든 어차피 사람의 사냥감이 되기는 매한가지라는 인식이 깔려 있다. 동류(同類)의 불행에 대한 ‘동병상련(同病相憐)’의 아픔이 묻어난다. 자신을 ‘괴롭히는’ 직장 상사가 ‘짤렸다’고 해서 마냥 좋아할 일도 아니다. 다음은 자기 차례일 테니까.

‘호사토비’에 비해 ‘삼 밭의 쑥’이란 뜻의 ‘마중지봉(麻中之蓬)’에선 보다 밝은 분위기가 느껴진다. 쑥은 보통 곧게 자라지 않는다. 그러나 똑바로 자라는 삼과 함께 크다 보면 붙잡아 주지 않아도 곧게 자란다고 한다. 더불어 사는 이의 중요성을 말할 때 언급된다.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얼마 전 한 언론에 기고한 글에서 한·중 관계를 ‘송무백열(松茂柏悅)’에 비유했다. 소나무가 무성하게 자라는 것을 보고 옆에 선 잣나무(또는 측백나무)가 기뻐하듯 한·중이 서로 잘 되기를 기원하자는 취지다. ‘송무백열’은 서한(西漢) 시기 문인 육기(陸機)가 쓴 ‘탄서부(嘆逝賦)’에서 유래한다. ‘소나무가 무성하면 잣나무가 기뻐하고 지초가 불에 타면 혜초가 탄식하네(信松茂而柏悅 嗟芝焚而蕙嘆).’ 벗의 행복과 불행을 함께 기뻐하고 슬퍼하는 데서 ‘송무백열’과 ‘지분혜탄(芝焚蕙嘆)’의 성어가 나왔다.

최근 한·중 관계는 ‘송무백열’이란 비유가 부럽지 않은 듯하다. 이명박 대통령의 측근 류우익 대사가 중국으로 나가자 중국은 역대 주한대사 중에선 가장 직급이 높다는 장신썬(張鑫森)을 대사로 내정했다. 지난해 말 류 대사가 한국을 찾은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부주석을 수행하자 장신썬은 최근 방중한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을 수행하는 것으로 화답했다.

앞으로 한·중 관계엔 여러 변수(變數)가 있겠지만, 변하지 않고 상수(常數)로 작용할 한 가지 사실은 양국의 산과 물이 서로 닿아 있고(山水相連) 또 바다를 사이에 두고 마주보는(隔海相望) 이웃이란 점이다. 그런 이웃과 지내기엔 ‘여린위선 이린위반(與隣爲善 以隣爲伴·이웃과 선하게 지내고 이웃과 동반자로 지내다)’의 태도만큼 좋은 것도 없을 것 같다.

유상철 중국연구소 소장

[한자로 보는 세상] 名
‘천천히 하라 서두를 것 없다(慢慢來不要着急), 과거의 방침에 따라 처리하라(照過去方針辦), 그대가 한다면 나는 마음이 놓인다(<4F60>辦事我放心)’.

말년의 ‘모택동(毛澤東·마오쩌둥)’이 ‘화국봉(華國鋒·화궈펑)’에게 적어준 세 문장이다. 마지막 문장은 모택동 사후 화국봉이 정권을 잡는 데 유훈(遺訓)과도 같은 역할을 했다.

그런 화국봉은 성과 이름을 모두 바꿨던 인물이다. ‘소주(蘇鑄·쑤주)’가 본명이다. 화는 17세이던 1938년 이름을 바꿨다. ‘중화항일구국선봉대(中華抗日救國先鋒隊)’에서 둘째와 여섯째, 여덟째 글자를 뽑아 ‘화국봉’으로 개명했다. 항일전쟁에 몸을 바치려는 굳은 의지의 표현이었다.

화를 실각시킨 ‘등소평(鄧小平·덩샤오핑)’의 ‘소평’도 원래 이름은 아니다. ‘개화된 등씨’라는 뜻의 이름을 가졌던 부친 ‘등문명(鄧文明·덩원밍)’은 아들에게 ‘선성(先聖·셴성)’이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다. ‘성인을 앞서라’는 야심에서다. 그러나 ‘소평’이 다섯 살 때 ‘이름이 과(過)하다’고 생각한 가정교사의 제안에 따라 ‘희현(希賢·시셴)’, 즉 ‘현자가 되고자 한다’로 눈높이를 낮췄다. ‘소평’이 된 건 스물세 살 때다.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에서 일하게 되면서 국민당의 눈을 피하기 위해 ‘작고 평범한 등씨’라는 ‘등소평’이 됐다.

이름엔 바람이 많이 담긴다. 1949년 10월 1일 중화인민공화국 성립 때 태어난 이들에겐 ‘건국(建國·젠궈)’이나 ‘국경(國慶·궈칭)’ 등과 같은 이름을 즐겨 붙였다. 1950년대 한국전쟁 때 중국은 ‘조선을 도와 미국에 대항한다. 집을 보호하고 나라를 지키자(抗美援朝 保家衛國)’를 참전의 슬로건으로 내세웠다. 자연히 ‘위국(衛國·웨이궈)’ ‘위민(衛民·웨이민)’ 등의 이름이 유행했다.

개혁·개방이 시작된 1980년대 이후엔 예쁜 이름을 선호했다. ‘나(娜)’ ‘려(麗)’ ‘신(晨)’ ‘비(飛)’ 등. 이름처럼 아름답게 살라는 염원을 실었다. ‘이름(名)’은 원래 어두운 ‘밤(夕)’에는 서로를 알아보기 어려우므로 ‘입(口)’으로 상대를 외치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한국의 김길태는 ‘길에서 태어나’ ‘길태’가 됐다고 한다. 더 무슨 말이 필요할까. 가슴이 답답할 뿐이다.  

유상철 중국연구소 소장
한자로 보는 세상] 座右銘
‘남의 단점을 말하지 말고(無道人之短)

나의 장점을 자랑하지 마라(無說己之長)

남에게 베푼 건 기억하지 말고(施人愼勿念)

은혜를 받은 것은 잊지 마라(受施愼勿忘).’

후한(後漢) 시대 학자 최원(崔瑗)이 쓴 좌우명(座右銘)의 시작 부분이다. 그는 서예로 이름을 날렸지만 어려서 부모를 잃고, 또 형을 살해한 사람을 법의 심판대에 세우기보다는 자신이 직접 처단해 옥에 갇히는 등 굴곡 많은 삶을 살았다. 그런 연유로 그는 ‘자리(座)’의 ‘오른쪽(右)’에 일생의 지침이 될 좋은 글을 ‘쇠붙이에 새겨 놓고(銘)’ 생활의 거울로 삼았다. 좌우명이 세상에 퍼지게 된 유래다.

그러나 좌우명의 시작은 원래 문장(文章)이 아닌 술독이었다고 한다. 춘추오패(春秋五覇)의 하나였던 제(齊)나라 환공(桓公)에겐 묘한 술독이 있었다. 비어 있을 때는 비스듬히 기울었다가 반쯤 차면 바로 서고, 가득 차면 엎어졌다. ‘가득 차면 뒤집힌다’는 ‘만즉복(滿則覆)’이라는 말도 여기서 나왔다. 환공은 이 술독을 늘 자리 오른쪽에 두고 교만을 경계하고자 했다. 훗날 환공의 묘당(廟堂)을 찾았던 공자(孔子)가 이를 보고 제자들에게 이르기를 “공부도 이와 같다. 자만하면 반드시 화(禍)를 초래할 것”이라고 했다.

최근 차기 한국은행 총재의 유력한 후보 중 한 명으로 거론되는 김중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주재 대사가 밝힌 좌우명 ‘낭중지추(囊中之錐·주머니 속의 송곳)’가 눈길을 끈다. 올해 63세로 현재의 OECD 대사 자리가 14번째 근무처지만 “가고 싶다고 해서 간 적은 없다”고 한다. 묵묵히 열심히 일하다 보면 주머니 속 송곳처럼 자연스레 알려진다는 겸손함이 있다. 아울러 인재는 언젠가는 발탁된다는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도 엿보인다.

‘눈 덮인 들판을 걸어갈 때(踏雪野中去)

발걸음 하나도 어지러이 마라(不須胡亂行)

오늘 내가 걸어가는 발자취는(今日我行跡)

뒷사람의 이정표가 될 것이니(遂作後人程).’

김구(金九) 선생께서 즐겨 휘호(揮毫)로 쓴 시구이자 김대중 전 대통령의 좌우명이기도 하다.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럽지 않은 길을 가려 했던 선인(先人)들의 의지가 배어 난다. 세파(世波)에 파묻혀 하루하루 살기에 바쁜 오늘의 우리에겐 어떤 좌우명이 필요한 것일까.

[한자로 보는 세상] 萬折必東
자공(子貢)이 공자(孔子)에게 물었다. “군자가 물을 보고서 느껴야 할 점이 무엇입니까.” 공자는 “만 번을 굽이쳐 흘러도 반드시 동쪽으로 향하니 의지가 있는 것과 같다(其萬折也必東 似志)”고 답했다. 여기서 ‘만절필동(萬折必東)’이란 말이 나왔다. 황허(黃河)가 남과 북으로 수없이 꺾여도 중국의 지형이 서고동저(西高東低)인 까닭에 끝내는 동쪽으로 흘러간다는 뜻이다. 결국 원래 뜻대로 된다거나 충신의 절개는 꺾을 수 없음을 이를 때 사용된다. 순자(荀子) 유좌(宥坐)편에 나온다.

삼성증권이 올해 증시 상황을 최근 ‘만절필동’에 비유했다. 중국과 미국의 긴축, 남유럽 재정악화라는 ‘글로벌 삼재(三災)’가 있지만 끝내는 극복할 것이란 전망이다. 주가가 오르기만을 기원하는 증권사의 바람이 담겼다.

만절필동이 가능한 건 ‘바다’라는 ‘그릇’이 워낙 크기 때문이다. 바다는 아무리 많은 강물이 흘러들어도 넘치지 않는다. ‘태산은 티끌도 마다하지 않고 강과 바다는 작은 시냇물도 가리지 않는다(泰山不辭土壤 河海不擇細流)’고 한 이사(李斯)의 명언을 떠올리게 한다.

최근 도요타 리콜 사태와 관련, 일본에서 ‘컨설팅의 신(神)’으로 불리는 하세가와 가즈히로(長谷川和廣)는 “도요타 자동차가 그릇 이상의 일을 벌였다”고 꼬집었다. 사업 규모가 도요타가 할 수 있는 ‘그릇’을 초과하다 보니 문제가 생겼다는 지적이다. ‘가득 차면 뒤집힌다’는 ‘만즉복(滿則覆)’의 상황이 발생했다는 이야기다. 사물은 차면 이지러지므로 가득 찬다는 건 오히려 손실을 초래하기 쉽다. 사람도 의기양양 거드름을 피우면 망하기 쉬운 이치다.

도요타 자동차의 도요다 아키오(豊田章男) 사장이 결국 미 의회의 압력에 굴복해 24일(미국 시간) 열리는 미 하원 감독정부개혁위원회 청문회에 증인으로 출석한다. 그의 가슴엔 ‘만즉복’의 쓰라림이 요동칠까, 아니면 끝내는 이번의 역경을 이겨내고 더욱 발전하리라는 ‘만절필동’의 의지가 번득일까. 비 온 뒤 땅은 더욱 굳어지게 마련(雨後地實)이라는데….

만절필동이 한국에선 ‘만절필서(萬折必西)’로 쓰여야 맞을 듯싶다. 우리 지형은 동고서저인 까닭에 대부분의 강물이 서쪽으로 흐르지 않던가. 그나저나 우리네 인생은 어디로 흘러가는 것일까



한자유머시리즈1~3입니다.

 

 


 

 


남자들이 쉬~이 할때(?)



유형별 분석..^^

* 흥분 잘하는 남자 ????

- 빤쯔에서 구멍을 찾을 수 없자 온 몸을 떨며

   허리띠까지 풀고 오줌을 누는 남자







사교적인 남자




- 쉬~가 마렵든 안 마렵든 칭구를 따라가

  쉬~이를 누는 남자.

호기심 많은 남자

- 옆 사람과 사이즈 비교해 보려고

옆만 보고 오줌을 누는 남자.


* 똑똑한 남자

- 손으로 거시기를 잡지 않고

   지렛대 원리로 지퍼에 걸치고

   쉬~이 하는 남자.







  * 순진한 남자




- 오줌 줄기를 변기의 위,아래,좌우로 휘둘러 대며

자기 이름을 새겨 보거나 열심히

파리나 모기를 맞히려고 애쓰는 남자.







  * 불만형 남자




- 오줌이 다 마를 때까지 거시기를

   50회 이상 흔들고 있는 남자.



  * 터프한 남자

- 거시기의 오줌을 털어내기 위해 거시기를

변기에다 탕탕치는 남자.


  * 깐깐한 남자


- 거시기가 말랐나 안 말랐나

   손가락으로 확인하는 남자.


* 경제적인 남자

- 대변 마려울 때가지 기다렸다가

  두 가지를 다 해결하는 남자.

  * 술취한 남자


- 왼손으로 오른쪽 엄지를 붙잡은 채

그냥 빤쯔에 소변 보는 남자.

* 고개숙인 남자


- 한참동안 쉬~이 나오길 기다렸다가

터는 시늉만 하고 그냥 가버리는 남자









 

     

    * 황당한 남자

     
    새우깡 만한 거시기를

    야구방망이 붙잡듯이 두 손으로

    붙잡고 볼일을 보는 남자.



     

    새로나온 한자공부

     

     

    샤워

    '물수' 밑에 '사람인'을 써서 샤워하는 형상을 나타낸 글자.

     

     

     

     

    키스  

    '입구' 두 개에 '합할 합'을 써서 '키스키''라고 함.

     

     

     

    뻔할
    '수풀림' 가운데 '사내남'과 계집여'가 들어가 있는글자임.
    숲 속에 남여 한쌍이 들어가 있으면

    그 속에서 무슨일이 벌어질까 뻔하기 때문에 '뻔할 뻔'이라함.

     

    돌에깔릴
    '돌석' 밑에 '사람인'을 써서 사람이 돌에 깔리는 순간
    '꽥'소리도 지르지 못하고 죽는 모습을 상징한 글자임. 



     

     

     

    쉬할

    '사람인' 밑에 '내천'자를 쓴 글자로 사람이 모두 쉬를 하면
    시냇물처럼 변하게 된다는 것을 상상하여 만든 글자임.

     

     



     


    공처가

    '계집여' 밑에 '사내남'을 조립하여 만든 글자로
    여자한테 눌려 사는 사내,

    즉 공처가를 의미함.

     

     

     

    요본질할
    양쪽에 '사내남'이 있고 그 가운데 '계집여'가 있는 글자임.
    여자가 두 남자사이에 앉아 좌우로 히프를 씰룩거리는
    모양을 형상화하였음.


     

     

     

     

     

    춤바람 난 팔도아줌마!!

     

    일단 한번 땡겨 보자구요.

    밀고 땡기고 돌리고 돌리고~~~

     

     


    ☆ 깍쟁이 서울 아줌마 ☆

    아~ 너무 좋아요
    다음에 우리 또 만나요.

    아~~흐음!

    ☆ 적나라 하게 감정을 표현하는 전라도 아줌마 ☆

    으~메 조은거, 으~메 죽이는 거…환장 허겄네``~



    ★ 능청 떠는 충청도 아줌마 ★

    나~죽어유~


    증말 죽겠어유~~.


    ☆ 화끈한 경상도 아줌마 ☆

    고마 나를~

    쥐기~뿌소~ 마!

     

     





    ★ 북한 아줌마 ★

    고저내래 이 쫑간나 새끼 땜에


    정신 몬차리가서!!




  ㅎㅎㅎㅎ

  모두들 열심히

  한자 공부 합시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