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겨 여왕 김연아 선수의 일정은 매우 바쁘고 빡빡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한 달 정도 남은 체류 기간 동안 방송에도 나가야 할 것이고 만나고 싶어하는 정치인도 체육계 저명인사도 많겠지요. 그래도 저는 이 사람만은 한 번 꼭 만나고 가라고 추천하고 싶은 사람이 있습니다.
위 사진에 보이는 남자, 만 33세의 '세계 바둑의 전설' 이창호 9단입니다.
1. 두 사람의 짧은 프로필 소개
김연아 - 1990년 9월생, 7세 때 피겨를 시작하여 2002년 4월 만 11세 7개월에 슬로베니아 트리글라브 컵 대회 노비스 부문에서 우승하고 만 15세 때인 05/06 시즌에 주니어 그랑프리 파이널, 주니어 월드를 석권한 뒤 시니어에 들어 세 시즌동안 13회 국제대회에 참가 9회 우승, 1회 준우승, 3회 3위, 메이저 국제 대회 모두 제패라는 경이적인 성적과 함께 2009년 3월 대망의 세계선수권 금메달과 여성 최초의 합계 200점 및 쇼트, 프리 부문 세계신기록을 가진 만 18세 7개월의 피겨 여왕.
이창호 - 1975년 7월 생. 만 7세 때 할아버지로부터 바둑을 배워 만 11세 1개월에 프로로 입단(조훈현 사범에 이은 역대 두번째 최연소 기록). 만 14세 1개월에 첫 국내 타이틀, 만 16세 6개월에 첫 세계대회 제패, 1996년 만 21세에 세계 메이저 대회인 후지츠 배 우승, 1998년 23세 때 세계 메이저 기전 4회 연속 우승이라는 불멸의 세계기록을 세운 후는 '절대 지존'으로 군림함. 2001년 만 25세 7개월에 4년마다 열리는 바둑 올림픽 격인 응창기 배 우승, 세계기록인 국내 경기 41연승, 세계대회 22회 우승, 세계 대회 전 기전 제패, 최연소 1000승, 국내외 기전 137회 우승 (역대 2위, 1위는 조훈현 사범) 등 세계 바둑계의 모든 기록을 갖고 있거나 곧 가질 현대 바둑 역사상 자타 공인 최강자.
* 참고 : 바둑은 매년 열리는 세계대회는 3개, 2년마다 열리는 대회가 2개, 4년마다 열리는 대회가 1개 있고 국내 대회는 년간 10~12개가 있습니다. 1년에 정상급 기사는 80판 정도를 두어 50승 정도를 하므로 통산 1000승이란 정상급 기사로 20년 이상을 군림했다는 뜻으로 세계적으로 한국 4명, 일본 5~6명(정확히 기억 안 나네요) 밖에는 없습니다.
2. 두 영웅의 공통점
1) 겸손한 승리자
이 두 영웅은 사실 별명이 많습니다. 김연아 선수의 팬들이 그 별명만으로 소책자를 만들 정도지요. 하지만 두 영웅의 대표 별명을 두 개씩만 소개드리면 다음과 같습니다.
- 김연아 선수 : '대인배 김슨생' 과 "토탈 패키지"
- 이창호 사범 : "돌부처" 와 "신산(神算)"
앞의 별명은 두 사람의 인성을 압축하여 말하고 뒤의 별명은 가진 기량을 압축하여 표현하고 있습니다.
대인배와 돌부처 이 두 단어가 공통으로 포함하고 있는 것은 겸손입니다. 너무 오랫동안 지존의 자리에 있다보니 오히려 뉴스 가치가 떨어져 버린 이 창호 사범, 우승했을 때보다 패했을 때 더 뉴스가 되곤 했던 그에게 우승 소감을 기자가 질문하면 항상 같은 대답이었다고 합니다.
"매우 어려운 바둑이었는데 중간에 상대가 실수를 해서 좋은 결과가 나온 것 같습니다"
워낙 무표정하고 이런 저런 일에 쓰다 달다 표현하지 않는 그의 모습은 30대 40대의 어른들의 판이었던 바둑계에 13~4세 시절부터 우승을 도맡아하면서 어른들을 어려워해서 생긴 성격이라고도 합니다만 중국에서도 石佛 이라고 부릅니다.
김연아 선수 역시 각종 인터뷰에서 상대 선수를 폄하하거나 자신의 기량을 과장한 적이 없으며 작은 일에 신경쓰지 않는 성숙함에 팬들이 대인배와 선생을 붙여 주었습니다.
2) 자발적으로 모인 열성적인 팬들 - 승냥이와 두터미
요즈음 각 매체에 김연아 선수의 팬을 통칭하는 고유명사가 된 '승냥이'가 소개되었습니다. 제게도 그 말이 어디에서 누가 처음 붙였는지 문의하는 전화가 왔었습니다. 그러나 김연아 선수의 팬들은 다음의 팬카페와 디시 인사이드의 두 갤러리 거기에 독립 사이트 '피버스'에 이르기까지 자발적으로 모였으므로 누가 처음이고 왜인가는 그리 중요하지 않습니다. 줄잡아 약 10만명의 팬들이 '승냥이'라는 이름 하에 이 피겨 여왕을 아끼고 보호합니다. 경기 때면 자발적으로 선물도 만들고 세계 어디든 원정 응원을 가며 갔다 온 후기와 사진, 영상 자료들을 서로 나누는 훈훈한 팬클럽입니다.
'두터미' 는 응원이 전혀 필요하지 않은 바둑의 성격상 온라인에서 이 창호 사범의 경기가 있을 때 마다 자체 해설도 하고 채팅도 하던 팬들이 경기 끝나고 격려라도 하자는 데에 뜻을 모으고 경기가 열린 한국기원으로 달려간 2004년이 효시입니다. 전례가 없었던 일이라 한국기원이 당황했었다고 하는데요 대국장에 들어갈 수는 없는 것이 바둑의 특성이지만 이들이 모두 바둑 동호인인지라 대국장 밖에서 해설과 바둑을 즐기고 끝나면 격려하는 것이 하나의 문화가 되었습니다. 이후 이 창호 사범의 바둑 스타일을 따서 '두터움의 미학'이라는 사이트를 개설했다가 www.leechangho.com 으로 독립했고 자연히 그 팬들을 '두터미' 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특히 '향이'라는 이름으로 이 사이트의 대표 운영을 맡아온 분이 바둑을 잘 모르는 40대 교수 부인이라는 것이 화제가 되었었지요. '향이' 님은 현재 남편 분의 연구연가로 외국에 계셔서 다른 분이 대표 운영을 하고 있습니다. 두터미들도 이 창호 사범의 생일 파티도 열어 주고, 중국 일본에서 열리는 경기에 응원을 가며 때때로 통역 등의 편의를 주고 이 창호 사범과 년간 몇 차례 같이 어울리는 동호회를 넘어선 팬클럽입니다.
3. 왜 만나야 하는가?
김연아 선수는 이제 '전설'의 시작점에 서 있습니다.
대한민국 피겨가 아니라 '피겨의 새 역사'를 쓸 수 있는 위치에 올라 전세계의 피겨 팬들이 주목하는 선수가 되었습니다.
이 창호 사범은 이미 그 전설을 10년 이상 계속 써 온 사람입니다. 우리 나라가 배출한 많은 스포츠 영웅 중에도 특별히 전세계 바둑 팬의 존경을 받고 있는, 그리고 현재도 그 전설을 계속 업데이트 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이 창호 사범은 이제 김 연아 선수에게 '전설을 오래 지속하는 진실의 힘' 을 전수할 수 있을 것입니다.
1) 오래 지킨 전설의 보상은 존경 이다.
이들 두 사람은 각자 자기 분야에서 최고의 성적과 실력을 갖추었을 뿐만 아니라 동료와 후배 선수의 존경을 받고 있다는 점을 주목합니다.
김연아 선수의 후배 선수 사랑과 나눔은 다른 글에서도 언급했습니다만 어린 나이에 이미 나눔을 실천하는 모습과 빼어난 경기력은 아마 국내 모든 후배 선수들의 롤 모델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김연아 선수와 아이스 쇼에서 공연을 같이 한 모든 선수들이 그녀를 칭찬하고 있고, 이번 대회에서 2위를 한 조애니 로셰트 선수마저 감탄시킨 경기력은 '피겨의 새 역사' 시작이라고 할 만 합니다. 김연아 선수는 이제 그 전설의 시작점에 서 있습니다.
이창호 사범은 이미 바둑계의 전설입니다. 세계 바둑을 15년 이상 호령하고 있는 우리 바둑의 가장 큰 라이벌인 중국에서조차 이창호 사범에게 진 것은 부끄럽지 않다고 하고, 때때로 이창호 사범이 다른 나라 선수(우리 선수 포함)에게 지는 경우, 그들이 더 안타까워하기도 합니다. 중국의 젊은 사범들은 이창호 사범의 모든 경기 기보를 외우고 실험하며 존경합니다. 때때로 '이창호 프리미엄'이라고 해서 이창호 사범이 이해 안 가는 수를 두어도 해설자들이 '어 좀 이상하지만 이창호 사범이 두었으니까 뜻이 있겠지요' 하는 말을 하기도 합니다. 감히 평하기 어려운 수준이라는 것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이 창호 사범의 놀라운 점은 경쟁을 하는 외국 선수나 이 사범을 이긴 국내외의 다른 사범까지 감동시켜 왔다는 점입니다.
국제대회에서 가장 많이 우승을 다투고 가장 많이 패한 중국의 이 창호 사범보다 1년 어린 창하오 사범은 라이벌이라기 보다는 친구입니다. 상대 전적에서 8승 24패 정도의 참담한 기록을 가진 창하오 사범은 중국 내에서는 최고의 영웅입니다. 그러나, 이 창호 사범을 이기고 세계 타이틀을 오랫만에 차지한 2007년에 그는
"한두번 이겼다고 이창호를 넘어섰다거나 동급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라고 자국 언론에 말했습니다.
최근 연간 성적을 토대로 한 국내 랭킹에서 1년 이상 1위(매달 랭킹이 발표됩니다) 를 하고 있는 이 세돌 사범(이 창호 사범의 8년 아래입니다) 역시
" 이 창호 사범님은 항상 저의 목표입니다." 라고 했고
가장 최근에 세계 대회에서 이 세돌 사범을 꺾고 우승한 중국의 현 1인자 구리 9단도 세계 랭킹이 있다면 본인이 몇 위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이창호, 이세돌 두 사람에 이은 3위 정도" 라고 말했습니다.
그를 이긴 사람도 그와 동급도 사양하고 자신의 위에 두게 만드는 동업자의 존경심 - 진실한 전설이 갖는 파워입니다.
김 연아 선수가 전수받아야 할 것이 있다면 그것은 스케이팅 기술이 아니라 다른 분야의 전설이 말하는 '전설의 진실' 이며 그것은 바로 경쟁 선수들이 마음으로 승복하는 존경심이라 생각합니다. 그것을 가장 가까이에서 말해줄 수 있는 사람이 이 창호 사범이라고 저는 주장합니다.
2) 자기 분야의 새 시대를 연 사람이 되어라
이 창호 사범은 이미 다른 시대의 영웅들과도 비교되지 않습니다. 딱 한 사람, 2차 대전 이후 세계 바둑의 새로운 틀을 제시한 '살아있는 기성(棋聖)' 이라고 불리는 90대의 중국인 오 청원 9단(일본에서 기사 생활을 했습니다) 밖에는 감히 비교하지 못합니다. 이는 이 창호 사범의 바둑 스타일이 이전에 없었던 새 경지였기 때문인데 우리 나라가 아니라 중국과 일본에서 '오청원과 이창호 누가 더 위대한가' 같은 토론이 있었을 정도입니다.
이제 여성 초유의 200점 돌파, 에술의 경지에 있는 명품 스케이터인 김연아 선수는 아마도 피겨계에서 기술적으로는 비교 불가능일 것입니다. 그러나 피겨에 남긴 업적이라는 점에서라면 영원한 카르멘 '카타리나 비트' 가 남긴 전 지구적 감동을 이어갈 가능성이 있는 유일한 스케이터라고 생각합니다.
신채점제 피겨에 꼭 맞는 스케이터라는 평을 듣고 있는 김 연아 선수는 이제까지 남긴 여러 편의 명품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하지만 세계 선수권자로서 이제 그 전설의 한 페이지를 완성했을 뿐입니다.
이제 5~6년 후 혹은 더 뒤에 세계 피겨 역사를 말할 때 최근세의 피겨는 김연아 이전과 김연아 이후로 나뉜다 라는 문장이 들어갈 수 있도록 더 자신을 가다듬어야 할 김연아 선수
당신이 만나야 할 사람은 정치인도 연예 스타도 아닙니다.
이미 새 역사를 이룬 전설에게서
자신의 전설을 개척하고 유지하는 법을
이번에 꼭 배우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