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숨 막히는 절경의 밀포드 사운드(Milford Sound). 뉴질랜드 남(南) 섬에 있는 피요르드(Fjord). |
 ▲ 뉴질랜드 최대 도시 130만 인구의 오클랜드(Aukland) |
1. 바둑 역사(History of Baduk in New Zealand)뉴질랜드에서 바둑이 처음 두어진 건 1912년 남 섬 더니든(Dunedin)에서 체스 (Chess) 인들이 바둑에 대해 읽고 판과 돌을 직접 만들어 두었다는 기록이 있다. 60~70년대에는 자기네끼리 바둑을 즐기는 사람들이 생겼다. 1965년 오클랜드 대학에 NZ첫 바둑클럽이 조직됐다. 그들은 색깔이 다른 네모난 돌을 사용하고 그 걸 상점에서 팔기도 했다. 1974년에 롭 톨벗(Rob Talbot)이 영국에서 함께 이민 온 사람들을 중심으로 ‘오클랜드 바둑클럽’을 만들었다. 나는 1980년 롭 네 집에서 며칠 묵은 일이 있었다. 차고로 들어가는 언덕이 45도쯤 경사졌는데 처음 후진으로 들어갈 때 겁먹었던 기억이 난다. 롭의 아들도 바둑을 잘 둔다. 1979년에는 오클랜드에 클럽이 하나 더 생긴다.
1976년 일본 여류프로 시라에(Haruhiko Shirae)일행이 수도 웰링턴을 방문한다. 이를 계기로 첫 클럽이 탄생한다. 그 해 8월에 전국대회를 열면서 뉴질랜드 바둑협회(New Zealand Go Society)가 창립되었다. 다음 해 1977년에는 오타고(Otago)대학클럽이 생기고 제 2회 뉴질랜드 선수권대회가 웰링턴에서 개최되었다. 그 해에 제 1회 중 고교 대회도 열렸는데 오클랜드에서 3개교와 해밀턴에서 1개교가 참가했다. 1978년에는 남섬 더니든 클럽이 약 10명의 회원을 확보하고 문을 열었다. 파머스톤 노스(Palmerston North)에도 클럽이 생겨 웰링턴 클럽과 교류전을 가졌다. 이 해에 뉴질랜드는 정기총회에서 서양국가 중 처음으로 중국식 룰을 채택하기로 결정한다.
 ▲ 더니든(Dunedin) |
 ▲ 오타고 대학교와 파머스톤노스(Palmerston north) |
1979년 2월 일본에서 열린 제 1회 세계바둑 선수권대회에 NZ챔피언 그레이엄 파멘터(Graeme Parmenter)가 시드니에 가서 호주챔피언인 필자와 합류한 후 오세아니아 팀으로 도쿄에 간다. 그러나 파멘터는 대회에서 1회전에 탈락한다. 초기 3회 대회까지는 스위스제도가 아니고 녹다운 제였다. 이 해 레이 톰스(Ray Tomes)가 첫 점수제도(Rating system)를 만들어 발표한다. 같은 해 남 섬 크라이스트쳐치 (Christchurch)에서 바둑 페스티벌(Go Fest)이 열린다.
1980년에는 챔피언 그레이엄이 최초의 4단이 된다. 뉴질랜드 바둑실력은 창립된 이 후 첫 5년간은 1년에 평균 1단씩 늘어 갔다. 호주와 국가대항전도 시작했다. 일본에서 바둑용품과 책을 수입하여 전국 5개의 클럽에 분배하고 각 도시가 매년 선수권대회를 돌아가며 개최하여 NZ바둑사회가 눈부신 발전을 계속한다. 당시 뉴질랜드 바둑계는 활기에 차 있었다. 내가 80년대에 뉴질랜드에 가면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90년대로 들어서면서 한국계 강인준6단이 1인자 자리를 한 동안 지킨다. 그러나 90년대 중반부터는 중국 강자들이 뉴질랜드 바둑계를 석권하기 시작한다. 그래도 서양의 다른 나라와 비교해 백인들이 그 속에서 선전하는 모습을 보인다. NZ 선수권 전을 보면 강인준, 홍명표, 김성호, 스티브 킴, 다니엘 정 등 한국인 이름이 자주 보인다. 그러나 이 중 스티브 킴 2001~2년, 강인준 1998년 NZ대표로 세계대회 출전 한 게 전부다.
2. 고바야시 치수(小林千壽)
1980년 일본기원은 당시 여성 세계최강으로 알려진 고바야시 치수5단을 오세아니아에 파견한다. 고바야시는 남편이 미국인 마테오(아마 4단 Matheo)라 일본에서 영어를 잘하는 드문 여성 프로기사였다. 일본영사관에서 그녀와 나의 특별기를 영사관에서 열어 주고 환영만찬도 베풀어 준다. 나도 바둑행사 때마다 내 차로 그녀를 데려다 주며 가능한 한 최대로 돌봐주었다. 그녀는 호주에서 강의와 지도기를 끝내고 뉴질랜드로 갈 계획이었는데 가기 이틀 전에 갑자기 맹장에 걸려 병원에 입원했다. 그녀가 나에게 자기 대신 일본기원 경비로 뉴질랜드에 가서 강의와 지도다면기 행사를 해 달라고 부탁한다. 그래서 나의 첫 뉴질랜드 행이 결정 되었다. 특히 그녀의 큰 동생(孝之)은 호주를 좋아해서 우리 집에서 3주 정도 묵었다. 그 일로 나는 고바야시 가문과 친해진다. 고바야시 4남매가 다 프로 기사인데 막내 고바야시 사토루 9단(小林覺)은 한국에도 잘 알려져 있다.
 ▲ 우리 집에 온 고바야시 치수(小林千壽) 부부 |
뉴질랜드에선 고바야시 대신 온 나를 따뜻하게 맞이해 준다. 나는 오클랜드에서 멀지 않은 교육도시 해밀튼(Hamilton)에 있는 와이카토(Waikato) 대학교엘 먼저 갔다. 내 강의 시간에 수 백 명의 학생이 강당에 모여 바둑에 대해 많은 질문을 해 온다. 그 때 열기를 보고 나는 뉴질랜드에 바둑이 빨리 확산 될 줄 알았는데 뭐가 잘못 되었는지 그 예상이 빗나간다. 오클랜드에서 열린 다면기는10 명과 두었는데 저녁식사 후 시작해서 새벽 2시까지 계속 되었다. 그 중 휠체어를 탄 뇌성마비 환자 브라이언(?)이 있었다. 그는 뉴질랜드 정부 컴퓨터 부처의 높은 자리에 있다는데 9점 바둑을 4 시간 이상을 끌었다. 본인이 너무 흥분해서 두기 때문에 독촉 할 수도 없었다. 또 한 명. 그래이엄의 제자라는 13세 소년 카일(Kyle Jones)이다. 나에게 대마가 잡히자 눈물을 뚝뚝 흘리며 필사적으로 두어 승부사 기질을 보여 주었다. 당시 뉴질랜드에서는 자기네 챔피언을 두 점 접고도 이기는 내가 엄청난 고수였다. 내가 바둑을 두면 많은 사람들이 관전을 하곤 했다. “호랑이가 없는 고을에선 토끼가 왕 노릇 한다더니” ^^ 이제는 다 “호랑이가 담배 피우던 시절 얘기”가 되었다.
 ▲ 와이카토 대학 전경과 내가 바둑 강의를 한 홀 |
나는 뉴질랜드에 온 김에 항상 가 보고 싶었던 마오리 족의 옛 수도 로토루아를 방문하기로 했다. 내가 뉴질랜드로 떠날 때 집 사람이 “로토루아는 꼭 들려 보고 오세요” 한다. 비가 오는 날 밤이라 그런지 버스에 승객이 나 하나다. 목적지까지는 3시간쯤 걸리는 거리다. 옆으로 내 몸의 두 배 정도는 되는 마오리 여자가 운전수다. 내가 그녀 옆 자리에 앉아 얘기하면서 갔다. 어느 마을 로타리(Roundabout)로 다가 가는 데 어떤 차가 갑자기 뛰어 들어 급정거를 했다. 빗속에서 큰일 날 뻔 했다. 내가 “저 거 여자 운전수(Woman Driver)가 틀림 없다”고 하자 마오리 여자 운전수가 크게 껄껄 웃으며 왼 손으로 내 등을 치는데 온 몸이 흔들린다. 호주-NZ는 차가 좌측통행이라 내가 앉은 조수석이 운전석 왼쪽이다.
서양에선 “여자 운전자”라고 하면 운전 못 하는 사람에게 하는 욕 비슷한 말이다. 자기가 여자 운전순데 내가 그런 말을 한 게 우스웠나 보다. 그러나 나는 여자가 등을 두드리는데 내 몸 전체가 그렇게 사정 없이 흔들린 사실이 쇼크였다. 나의 “남성우월주의(Male Chauvinism)”에 금 가는 소리가 들린다. 이 여자를 가만히 보니까 120~130kg은 나갈 것 같은데 두부 살이 아니다. 근육질로 힘이 엄청 세 보인다. 내가 속으로 “저 여자 하고 나 하고 방에 집어 넣고 한 명만 살아 나오라” 하면 결과가 어떻게 될까 생각해 봤더니 자신이 없다. 쓸데 없는 상념에 젖어 있는데 버스가 로토루아로 들어선다. 유황 냄새가 코를 찌른다.
▲ 로토루아 박물관(Rotorua Museum) |
로토루아는 온천 욕, 진흙 팩(Mud pack) 마사지가 유명하다. 지열(地熱)이 높은 지하에 마오리 족이 감자와 옥수수 같은 음식을 넣어 자연 요리하는 것도 신기했다. 그렇게 만든 음식이 더 맛있다고 한다. 유황 냄새가 나는 흰 물줄기와 증기를 뿜어내는 간헐천. 부글부글 끓으면서 개구리처럼 폴딱폴딱 뛰는 진흙 풀(Mud pool) 등이 신기했다. 간헐천은 미국의 옐로우스톤 공원(Yellow Stone National Park) 보다 여기가 더 실감 난다. 이 지역을 그들은 “지옥의 입구”라고 부른다. 마오리 목각제품 만드는 곳, 마오리 쇼 등을 봤는데 색다른 문화라 흥미만점이다. 이 근처에는 강(江)도 몇 개가 흐르고 호수가 17군데나 있어 레프팅, 카약 등 수상활동을 많이 한다. 다 화산활동으로 생겨났다고 한다.
 ▲ 마오리 옛 수도 로토루아(Rotorua). 간헐천에서 유황 연기가 항상 솟아 오른다 |
 ▲ 바둑영어 팀의 로토루아 간헐천(geyser) 방문 |
3. 바둑 강자 (세계대회 출전 선수)
초기 뉴질랜드의 1인자는 단연 그레이엄(Graeme Parmenter)였다. 그레이엄은 더니든 대학 농학과 교수인데 초기 뉴질랜드 최강자로 군림한다. 그 뒤를 같은 더니든 출신의 배리(Barry Phease)와 오클랜드의 래이(Ray Tomes)가 추격하고 있었다. 2003년에는 무슨 일이었는지 세계대회에 대표를 안 보냈다. 2006년 뉴질랜드 오픈 챔피언은 12세의 중국 소년 켄 시에(Ken Xie)가 오른다. 2008년 세계 마인드 올림픽에 선수단은 거의 중국인이다. 그 명단을 보면 중국 세의 비중을 알 수 있다. 이 중 베리 피스는 중국여자(유콩)과 결혼했는데 전 가족이 유단자라 바둑대회마다 다 참가한다.
■ 일본 세계대회에 간 대표명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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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
Year |
Representative (대표이름) |
Placing (순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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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1979 |
Graeme Parmenter |
unplace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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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
1980 |
Graeme Parmenter |
unplace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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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
1981 |
Barry Phease |
unplace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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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
1982 |
Ray Tomes |
8th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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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
1983 |
John Blair |
14th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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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
1984 |
Kyle Jones |
25th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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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
1985 |
Barry Phease |
16th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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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
1986 |
Ray Tomes |
16th |
|
9 |
1987 |
Barry Phease |
unplace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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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
1988 |
Ray Tomes |
24th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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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
1989 |
Kyle Jones |
25th |
|
12 |
1990 |
David Coughlin |
28th |
|
13 |
1991 |
Graeme Parmenter |
24th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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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
1992 |
Barry Phease |
27th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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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
1993 |
Yucong Phease |
34th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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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
1994 |
Colin Grierson |
31s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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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
1995 |
Barry Phease |
17th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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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
1996 |
Kyle Jones |
29th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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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
1997 |
Eric Jones |
37th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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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
1998 |
Injune Kang(강인준) |
25th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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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
1999 |
Colin Grierson |
26th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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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
2000 |
Shiyong Du |
26th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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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
2001 |
Steve Kim |
29th |
|
24 |
2002 |
Steve Kim |
15th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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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 |
2003 |
no contest |
N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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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
2004 |
Colin Grierson |
31st |
|
26 |
2005 |
Roman Pozaroszczyk |
37th |
|
27 |
2006 |
Stanley (Ming Yuan) Wang |
39th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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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
2007 |
Jimmy Yuan |
19th |
|
29 |
2008 |
Zhou Juhua |
25th |
 ▲ 오세아니아에는 전 세계 양의 75%가 있다. |
4. 세계대회 해프닝 한 토막
1983년 도쿄에서 열린 세계바둑대회에서 일이다. 나는 같은 오세아니아 팀인 뉴질랜드 챔피언 존(John Blair)과 한 방을 쓰게 되었다. 숙소는 신주쿠 힐튼(Hilton) 호텔. 자다가 이상한 소리에 눈을 떠보니 존이 완전히 발가벗은 체 방을 뛰어 다니며 “Train is coming(기차가 온다)”를 외친다. 팔을 올리고 양 손을 위 아래로 잠자리 날개처럼 팔랑거린다. 그러더니 방향을 바꿔서 내 쪽으로 달려온다. 2미터짜리 거구가 나를 향해 나체로 뛰어 온다. 내가 “John, John”하며 소리를 지르는 동시에 얼른 침대 머리맡 램프를 집어 들었다. 쇠로 만든 거라 묵직하다. 나에게 덤벼들면 그 걸로 내려칠 생각이었다. 그 와중에 존이 내가 지르는 소리를 들었다. 눈을 번쩍 뜨는데 보니까 제 정신이 돌아온 거다. 존은 “I am sorry, sorry” 조그만 소리로 힘 없이 반복 하더니 자기 침대로 돌아 간다. 그러더니 잠이 들었는지 조용해 진다.
내가 눈을 감고 자려고 하니까 불안해서 영 잠이 안 온다. 나는 일어나서 아래층 네블(Neville Smythe) 방으로 갔다. 그는 오세아니아 팀의 단장이라 독방을 쓰고 있었다. 새벽 두 시 반에 초인종 소리에 네블이 놀란 얼굴로 나왔다. 나에게 “왠 일이냐?” 고 묻는다. 내가 “방을 바꾸자” 고 하자 나에게 “여잘 데려 왔느냐?” 고 묻는다. 내가 “마음대로 생각하고 내 침대로 올라가라”고 했다. 나에게 열쇠를 받아 들고 가면서 날 쳐다보는 네블의 표정이 영 마음에 안 든다. 이왕 청을 들어 줄 거면 좀 싹싹하게 해주면 안 되나? 아침에 일어나서 식당으로 갔더니 네블과 존이 벌써 같이 아침을 먹고 있다. 둘이 웃으며 얘기 하는 걸 보니까 별 일은 없었던 것 같다. 내가 속으로 웃으며 “초록은 동색이지” 하며 다가 갔다. 네블이 얼굴은 굳힌 체로 나에게 “Good morning” 한다. 존은 나를 잘 쳐다 보지도 못 한다.
이 날 나는 폴란드 챔피언에게 다 이긴 바둑을 실수로 졌다. 내가 평소에 두 점 접어 주던 친구다. 초 읽기에 몰린 내가 허 패감을 쓰고 1집 반을 졌다. 그 바둑을 계속 관전하던 조남철 선생이 “패를 안 했으면 이긴 바둑이고 패감만 제대로 썼어도 이긴 바둑이었는데……하곤 나에게 위로인지 구박인지 모를 말씀을 하곤 사라진다. 이겼으면 내가 세계대회 랭킹 4위나 5위가 되는 건데 그걸 놓쳤다. 나도 열 받아 있는데 네블이 나를 쳐다 보는 눈이 꼴불견이다. 내가 “왜 그렇게 보느냐?” 고 하니까 네블이 “본인이 더 잘 알 거 아니냐?” 고 한다. 그 말에 내가 정색을 하고 자길 노려보자 네블이 슬그머니 눈을 깔고 다른 곳으로 가 버린다. 존은 나에게 석 점쯤 약한 바둑인데 그 대회에서 5단들을 연파하며 14위에 올라 주위를 놀라게 했다. 존은 뉴질랜드 최대 도시인 오클랜드에서 고등학교 교사로 있다. 아주 착한 친군데 그 날 밤 이후부터는 사람이 좀 달라 보인다. 서양에선 애기가 잘 시간이 되면 혼자 침대에 놓고 부모가 매정하게 불을 끄고 문을 닫아 버린다. 그런 육아법의 부작용으로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게 아닌가 하고 나는 생각한다. 나는 집 사람에게 애가 어렸을 때 항상 같이 자도록 했다.
 ▲ 마오리식 인사 법 |
 ▲ 마오리 식 환영을 받는 이명박 대통령 부처 |
5. 바둑영어교실 팀 NZ 방문
2005년. 호주를 보름 동안 순회한 후 우리 교실 팀은 뉴질랜드로 갔다. 나도 12년 만에 방문이다. 우리가 오클랜드에 도착했는데 콜린이 공항에 마중 나와서 너무 반가웠다. 16년 동안 안 본 사이에 그도 중년이 되었다. 콜린은 오클랜드 바둑클럽 회장이다. 우리 일행은 NZ 바둑회장 탈러 집에 가서 바비큐로 저녁을 한 후 숙소를 배정 받아 헤어졌다. 탈러는 부부가 교수인데 부자는 아니라도 멋지게 인생을 살고 있다. 커피를 마시며 가치의 본질을 추구하는 대화를 하는데 너무 진지하다. 그런데 나와 친한 레이가 안 보인다. 물어 보니까 지난 15 년 간 바둑모임에 안 나오고 있다고 한다.
그 날밤 김계호씨 부부가 나를 찾아 왔다. 그와는 1975년 멜본 유학시절부터 친해진 친구다. 공무원 출신인 그는 남대문 옆 도큐 호텔 아래층 커피숍을 부인이 경영했고 그 밖에도 사업체가 있었다. 그가 가족과 몇 년 전 한가한 나라 NZ로 이민을 갔다. 우리는 반갑게 만났다. 그가 NZ산 특산품을 선물로 들고 오고 포도주도 많이 사 왔다. 우리 일행은 그가 사 온 술을 함께 마시며 즐겼다. 그날 밤 늦게 김형 부부가 날 데리고 나가 관광을 시켜준다. 친구란 참 좋은 존재다. 김형 바둑은 7급인데 그 날 모인 사람들의 수준을 알더니 자기가 너무 왜소하게 느껴진다며 자기가 바둑을 둔다는 말을 꺼내지도 못 하게 한다.
다음 날 오클랜드 바둑클럽에 교류전을 하러 가니까 놀랍게도 거기 레이가 와 있다. 우리는 포옹으로 해후를 했다. 나에게 “지난 15년 간 바둑 클럽에 안 나왔는데 당신이 온 다 길래 만나러 왔다”고 한다. ‘오클랜드의 전설’ 레이가 나타난대 대해 키위들도 놀란다. 교류전 동안 우리는 바둑을 안 두고 얘기만 했다. 내가 “왜 바둑을 끊었는지 모르지만 너무 섭섭하다. 이제 나이도 들었으니까 다시 시작 해서 나와 라이벌 전도 계속해야 할 거 아닌가?” 하고 물었다. 같은 방 NZ 사람들도 안 듣는 척 하면서도 우리 대화에 관심을 쏟는 걸 알겠다. 레이가 “나도 그럴 생각이 있었는데 때가 되면 나오겠다”며 웃는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그는 그로부터 2년 후 다시 바둑을 시작했다. 주관이 뚜렷한 그가 자기 바둑사이트에 써 놓은 글을 영어로 그대로 소개 한다.
G'day. I played go from about 1974 until about 1990 and reached 5 dan. Then I stopped playing for 17 years. I started playing again a little in late 2007 and am now 1 dan on KGS but rated a bit higher in Auckland club. I can be contacted by email to ray(at)tomes(dot)biz.
When I restarted playing again I still had 0.6 WAGC point from many years before, which was enough to allow me to get selected for the First World Mind Games in China in 2008. After some soul searching concerning the Chinese Government policies, particularly concerning Falun Gong(法輪功), I decided that going to this event would be like going to the 1936 Olympics in Nazi Germany and I pulled out. I would still love to visit China and see things both ancient and modern, but not as a guest of the Chinese Government.
 ▲ 1982년 레이 톰스와 오다케 9단(왼쪽사진) 중국여자와 결혼한 콜린 집에 묵은 부산여성바둑연맹 회원 2명.(오른쪽 사진) |
내가 NZ로 출발 직전 시드니에서 일부러 박종욱과 신명길사장 간 내길 붙였다. 거기서 딴 돈으로 다음 날 오클랜드에서 종욱이가 점심을 쏘았다. 그 “내기 바둑”을 붙일 때부터 생각해 둔 내 각본이었다. ^^ 식사 후 시장에 가서 일행에게 자유시간을 주었다. 우리는 미니버스를 빌려 타고 같이 NZ 여행을 할 계획이었다. 그런데 오클랜드를 다 뒤져봐도 미니버스를 대여하는 곳이 없다. 제일 큰 게 9인 승뿐이다. 호주나 미국은 버스대여가 아주 쉬운데. 할 수 없이 두 대를 빌려 14명이 반씩 나누어 타고 3천 km의 대 장정을 시작했다. 나는 우리가 갈 코스를 지도에 표시해 놓고 “만약 사고로 헤어지면 그 다음 도시 시청 앞에서 만나자”고 했다. 우리는 오클랜드에서 이틀을 지낸 후 해밀튼을 거쳐 로토루아로 갔다. 다음 교류전은 웰링턴에서 있기 때문에 그 중간에 들리는 곳은 관광목적뿐이다.
로토루아에서 웰링턴으로 가는 도중 유명한 “타우포(Taupo) 호수”를 끼고 여행한 후 호수 아래 부분 어느 방갈로에서 잘 때 일이다. 내가 작은 통나무 케빈(Cabin) 하나에 두 사람씩 짝을 지어주고 저녁식사 후 자유시간을 주었다. 그 동안 회원들은 빨래, TV, 당구로 시간을 보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방갈로 매니저가 나에게 와서 “Someone is locked out!” 하길래 나가보니 우릴 따라온 프랑스 청년 크리스토프가 방엘 못 들어 가고 있다. 자기 룸메이트가 김선기인데 술이 취해 방 문을 안에서 잠그고 골아 떨어진 것이다. 다른 사람들까지 동원되어 소리를 지르며 문을 두드리는 바람에 이웃이 다 깼다. 그런데 선기만 안 깬다. 내가 할 수 없이 그를 내방으로 들어 오게 했다. 남반구의 8월 초면 영하10도 근처의 추위다. 크리스토프가 꽁꽁 얼어서 들어 왔다.
 ▲ 타우포(Taupo) 호수. 길이 46km. 넓이 33km의 큰 민물 호수다. |
이 날 밤 나와 크리스토프는 새벽 세시까지 얘기하고 그는 바둑학과에 들어 오기로 결심한다. 그가 똑 같은 생활만 반복하는 것 보다 젊을 때 변화를 갖고 싶다고 나에게 먼저 말해 왔다. 내가 문화가 다른 한국에서 좋아하는 바둑을 공부하고 프랑스 최초의 바둑학사(BA)가 되면 어떻겠느냐고 물었다. 그는 얼굴에 이상한 미소를 띠고 앉아 한참 장고를 하더니 내 제의 쪽으로 마음이 기울기 시작한다. 컴퓨터 전문가인 그가 파리에 있는 직장을 그만 두기로 했다.
이번 여행 직전 한국에 놀러 온 크리스토프가 내 바둑영어교실을 찾아 왔다. 그 날 마침 내가 회원들에게 호주~뉴질랜드 여행에 대해 설명하고 있었다. 나중에 크리스토프가 자기에게 영어로 다시 설명해 달라고 한다. 설명을 듣더니 자기가 가장 가 보고 싶은 곳이 호주와 뉴질랜드인데 거기에다 바둑여행이니까 너무 환상적이라며 자기 좀 끼워 달라고 한다. 그래서 키가 192cm인 크리스토프가 우리 멤버가 되었다. 그는 유럽 2단이다. 사람 운명이란 묘하다. 그 날 김선기가 문만 열어 주었어도 크리스토프가 바둑학과에 들어 오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다음 날 웰링턴으로 가면서 코린에게 전화했더니 “강자들은 다 타지에 갔고 하수만 몇 명 있어서 클럽을 열어도 한국 팀이 시간만 낭비 할 것”이라고 한다. 하수라도 바둑인이면 만나 보고 싶지만 나는 처음 NZ에 온 일행을 위해서 그런 바둑모임 보다는 관광을 택했다. 이 덕에 우리는 웰링턴의 유명한 곳들을 들러 볼 수 있었다. 다음 날 남 섬으로 가는 페리를 타러 항구로 가다가 우리 두 차는 실수로 헤어졌다. 남 섬에 가는 페리를 타러 가는 건 저쪽 차도 알고 있지만 영어 잘하는 사람은 다 내 차에 타 있어서 걱정이 된다. 젊은 사람끼리 한 차에 타겠다고 해서 그렇게 되었다. 페리호 문 닫기 3분전 나는 오늘 출발은 포기하고 내일 다시 오려고 하는데 선기가 운전하는 차가 달려 들어온다. 반 집 차이로 승리했을 때 같은 기분으로 우리는 남 섬으로 떠났다.
남 섬 크라이스처치도 강자가 없어 교류전은 안 했다. 내가 잘 아는 테일러도 북섬에 가고 없다. 이 곳도 구경만 하고 더니든으로 갔다. 더니든은 이상한 곳이다. 인구는 12만 정도로 작은 도시인데 바둑은 강하다. 이 곳에 NZ 챔피언 그레이엄과 베리가 있다. 그 두 명과 나는 반갑게 만났다. 세월이 우리를 중년으로 만들었다. 지난 날 얘길 하느라고 우리는 바빴다. 바둑친구는 오랜만에 만나도 거리감을 전혀 느낄 수가 없다. 내가 그레이엄에게 “어떻게 금년에 NZ 챔피언에 복귀했느냐” 고 묻자 그는 “운이었다” 며 계속 싱글벙글한다. 그들이 크리스토프를 보고 “저 사람은 누군데 한국 팀에 있느냐?” 고 한다. 이 질문을 받을 때 마다 나는 웃음이 나온다. 자기네 눈으로도 크리스토프는 한국인으로 보이지 않나 보다. 그래서 매 번 내가 설명을 해 주어야 했다. 이 곳의 오타고 대학도 바둑클럽이 있다. 우리는 바둑인 집에 민박을 했고 교류전도 훌륭하게 치렀다. 나는 그레이엄 집에서 잤다.
6. NZ 바둑협회 회장단
회장: 마이클 탈러(Michael Taler)
총무: 그래이엄 파멘터(Graeme Parmenter)
재무: 아이라 터비(Ira Turvey)
7. NZ 바둑클럽 명단(List of Go clubs in New Zealand)
1) 오클랜드(Auckland) 클럽
그리어슨(Colin Grierson 회장) - phone (09) 532-9996 (home) or (09) 525-7353
탈러(Michael Taler 전국회장) - phone (09) 620-9872 (home)
2) 오클랜드 대학(Auckland University) 클럽
튜텐버그(Jonathan Teutenberg) - phone (09) 373-7599 ext 87458
3) 해밀튼(Hamilton) 클럽
트릭(Len Trigg) - phone (021) 624 595,
키한(Mike Keehan) - phone (07) 843 9014 (home),
4) 매스터튼(Masterton) 클럽
운영자 톰이 크라스트처치로 이사 가서 휴업 중. 이메일 연락 가능
http://wairarapa.wikispot.org/Go_Club
5) 웰링턴(Wellington) 클럽
피스(Barry Phease) - phone (04) 9716500
레이크랜드(Corrin Lakeland) - phone (04) 5869343 or 021-467784
6) 크라이스트처치(Christchurch) 클럽
테일러(W F C Taylor) - phone (03) 379-6422 home, (03) 364-2686 (work)
7) 더니든(Dunedin) 클럽
클루난(Matt Cloonan) - phone (03) 4821348; matthewcloonan@hotmail.com
8. 바둑대회(TOURNAMENTS – 최근 대회)
1) 2009 뉴질랜드 오픈(2009 NZ Open): 2009년 9월 12~13일 오클랜드
1일 3라운드, 최강부와 일반부, 타 지방 선수에게는 숙소 제공,
2) 오클랜드 오픈(2009 Auckland Champs)
2009년 7월 4~5일 거행. 5라운드
결승국: 켄 시에 – 롱양 리. 결과는 리가 5전승으로 우승.
 ▲ 전승자 리(Li)와 켄(Ken)의 결승국 |
3) 제 30회 세계 아마추어 바둑대회
2009년 5월 일본에서 개최
4) 2008웰링턴 오픈
11월 29~30일 개최
5) 김인 컵 국제 시니어 대회(Kim-in Cup International Senior Amateur)
2008년 한국 오로미디어 주최로 강진에서 거행. 만 60세 이상 참가.
EMAIL: oromedia@oromedia.co.kr
6) 제 3회 국무총리배(The 3rd Korea Prime Minister Cup)
제 3회 대회가 고양시 킨텍스에서 2008년 11월 7~12일 사이에 개최. NZ 대표는 피어슨(Ciaran Pearson)
 ▲ NZ의 쳉치(마이클) 리가 왕리청 9단과 대국. 탈러 NZ단장이 서서 관전 |
7) 제 1회 세계 마인드 스포츠 대회
중국 북경 2008년 10월 3~18일
단장: 탈러(M Taler), 임원: 피스(B Phease) 코치: 쉬용 두(Shi Yong Du)
아마추어 오픈 개인전: 롱양 리(Long Yang Li), E. 피스(Edwin Phease)
남자 개인전: 켄 시에(Kai Kun Xie), 쳉치 리(Cheng Chi Lee) B. 피스(B Phease), 레이크랜드(C Lakeland), 샤오 웨이 자오(Xiao Wei Zhao)
여자 개인전: Y. 피스(Yu Cong Phease)
남자단체: 롱양 리(Long Yang Li), 켄 시에(Kai Kun Xie), 쳉치 리(Cheng Chi Lee), 쉬용 두(Shi Yong Du), 밍유안 왕(Ming Yuan Wang)
혼성 페어: 그리어슨(Colin Grierson), 닝 후(Ning (Linda) Hu)
2008 뉴질랜드 오픈(2008 NZ Open) Sep 2008
오클랜드 바둑클럽 주최. 9월 13~14일 개최.
 ▲ 2006 NZ 오픈 챔피언 12세 켄 시에(Ken Xie)와 그리어슨 회장 |
제 29회 아마추어세계대회(29th World Amateur Go Championship )
2008년 5월 28~31일 개최
우승: 하성봉(한국 - 중국에 반 집 신승!)
준우승: 궈 유젱(Guo Yuzheng - 중국)
3위: 아귈라(Fernando Aguilar - 아르헨티나. 깜짝 3위!)
25위: 조우 주화(Zhou Juhua - NZ 그래도 최근 성적 중 잘한 편)
2008 오클랜드 챔피언 전(2008 Auckland Champs)
5월 개최. 격전을 치른 대회
2007 Wellington Open
개최2008년 2월 두 째 주말. 전국 강자 거의 출전
우승: 롱양 리(Long Yang Li-오클랜드)
 ▲ 웰링턴 오픈대회와 웰링턴 전망대 케이블 카 |
도요타 덴소 컵(Toyota & Denso Cup)
제 4회 오세아니아 대회가 2008년 1월 18~20일 호주 브리스번에서 개최
우승: 조안 미싱엄(J Missingham 13세 소녀 브리스번)
준우승: 궈이밍(Guo).
NZ 챔피언 켄 시에(K Xie)가 10위니까 얼마나 강자들이 많은지 알 수 있다. http://www.uq.net.au/~zzjhardy/toyotacup.html
 ▲ 남 섬 더니든 클럽과 교류전. 앞 줄: 김향희3단. 뒷줄: 박종욱 7단과 대국하는 그레이엄(Graeme Parmenter) |
 ▲ NZ를 여행하는 바둑영어 팀. 왼쪽 끝 한오람은 마오리 “하카”를 하는 중 |
호주와 뉴질랜드는 세계 문화중심지로부터 외따로 떨어져 있다. 그래서 그들은 북반구로 여행을 많이 한다. 오세아니아에는 한적하고 “시간이 정체된 평화(Timeless peace)”가 있다. 자연도 인간의 손길이 안 닿아 “태초의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 북적대는 한국과는 전혀 다르다. 그 대신 “사회의 역동성(Dynamics)”은 그만큼 떨어진다. 그런 곳에도 “골 때리는 바둑쟁이들”이 살고 있다. 나는 내 인생 중 20년을 호주에서 살면서 심심한 줄 전혀 몰랐다. 직장 + 여행 + 바둑 인생에 쫓겨 시간이 항상 부족했다. 만약 그 중에서 바둑을 뺀다면 내 인생의 그림은 전혀 달라 졌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 분명한 것이 있다. 그 “바둑을 뺀 그림”은 내가 원하는 “인생의 그림”이 아니란 사실이다. ^^
한상대(전 시드니대학 교수, 호주바둑협회 회장)
sdhahn@gmail.com 017)276-58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