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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질랜드 바둑계의 역사 (한상대교수님의 글중에서)

작성자고추잠자리|작성시간09.10.27|조회수208 목록 댓글 1

뉴질랜드의 바둑 역사와 추억


▲ 숨 막히는 절경의 밀포드 사운드(Milford Sound). 뉴질랜드 남(南) 섬에 있는 피요르드(Fjord).


▲ 뉴질랜드 최대 도시 130만 인구의 오클랜드(Aukland)

1. 바둑 역사(History of Baduk in New Zealand)

뉴질랜드에서 바둑이 처음 두어진 건 1912년 남 섬 더니든(Dunedin)에서 체스 (Chess) 인들이 바둑에 대해 읽고 판과 돌을 직접 만들어 두었다는 기록이 있다. 60~70년대에는 자기네끼리 바둑을 즐기는 사람들이 생겼다. 1965년 오클랜드 대학에 NZ첫 바둑클럽이 조직됐다. 그들은 색깔이 다른 네모난 돌을 사용하고 그 걸 상점에서 팔기도 했다. 1974년에 롭 톨벗(Rob Talbot)이 영국에서 함께 이민 온 사람들을 중심으로 ‘오클랜드 바둑클럽’을 만들었다. 나는 1980년 롭 네 집에서 며칠 묵은 일이 있었다. 차고로 들어가는 언덕이 45도쯤 경사졌는데 처음 후진으로 들어갈 때 겁먹었던 기억이 난다. 롭의 아들도 바둑을 잘 둔다. 1979년에는 오클랜드에 클럽이 하나 더 생긴다.

1976년 일본 여류프로 시라에(Haruhiko Shirae)일행이 수도 웰링턴을 방문한다. 이를 계기로 첫 클럽이 탄생한다. 그 해 8월에 전국대회를 열면서 뉴질랜드 바둑협회(New Zealand Go Society)가 창립되었다. 다음 해 1977년에는 오타고(Otago)대학클럽이 생기고 제 2회 뉴질랜드 선수권대회가 웰링턴에서 개최되었다. 그 해에 제 1회 중 고교 대회도 열렸는데 오클랜드에서 3개교와 해밀턴에서 1개교가 참가했다. 1978년에는 남섬 더니든 클럽이 약 10명의 회원을 확보하고 문을 열었다. 파머스톤 노스(Palmerston North)에도 클럽이 생겨 웰링턴 클럽과 교류전을 가졌다. 이 해에 뉴질랜드는 정기총회에서 서양국가 중 처음으로 중국식 룰을 채택하기로 결정한다.


▲ 더니든(Dunedin)


▲ 오타고 대학교와 파머스톤노스(Palmerston north)

1979년 2월 일본에서 열린 제 1회 세계바둑 선수권대회에 NZ챔피언 그레이엄 파멘터(Graeme Parmenter)가 시드니에 가서 호주챔피언인 필자와 합류한 후 오세아니아 팀으로 도쿄에 간다. 그러나 파멘터는 대회에서 1회전에 탈락한다. 초기 3회 대회까지는 스위스제도가 아니고 녹다운 제였다. 이 해 레이 톰스(Ray Tomes)가 첫 점수제도(Rating system)를 만들어 발표한다. 같은 해 남 섬 크라이스트쳐치 (Christchurch)에서 바둑 페스티벌(Go Fest)이 열린다.

1980년에는 챔피언 그레이엄이 최초의 4단이 된다. 뉴질랜드 바둑실력은 창립된 이 후 첫 5년간은 1년에 평균 1단씩 늘어 갔다. 호주와 국가대항전도 시작했다. 일본에서 바둑용품과 책을 수입하여 전국 5개의 클럽에 분배하고 각 도시가 매년 선수권대회를 돌아가며 개최하여 NZ바둑사회가 눈부신 발전을 계속한다. 당시 뉴질랜드 바둑계는 활기에 차 있었다. 내가 80년대에 뉴질랜드에 가면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90년대로 들어서면서 한국계 강인준6단이 1인자 자리를 한 동안 지킨다. 그러나 90년대 중반부터는 중국 강자들이 뉴질랜드 바둑계를 석권하기 시작한다. 그래도 서양의 다른 나라와 비교해 백인들이 그 속에서 선전하는 모습을 보인다. NZ 선수권 전을 보면 강인준, 홍명표, 김성호, 스티브 킴, 다니엘 정 등 한국인 이름이 자주 보인다. 그러나 이 중 스티브 킴 2001~2년, 강인준 1998년 NZ대표로 세계대회 출전 한 게 전부다.

2. 고바야시 치수(小林千壽)

1980년 일본기원은 당시 여성 세계최강으로 알려진 고바야시 치수5단을 오세아니아에 파견한다. 고바야시는 남편이 미국인 마테오(아마 4단 Matheo)라 일본에서 영어를 잘하는 드문 여성 프로기사였다. 일본영사관에서 그녀와 나의 특별기를 영사관에서 열어 주고 환영만찬도 베풀어 준다. 나도 바둑행사 때마다 내 차로 그녀를 데려다 주며 가능한 한 최대로 돌봐주었다. 그녀는 호주에서 강의와 지도기를 끝내고 뉴질랜드로 갈 계획이었는데 가기 이틀 전에 갑자기 맹장에 걸려 병원에 입원했다. 그녀가 나에게 자기 대신 일본기원 경비로 뉴질랜드에 가서 강의와 지도다면기 행사를 해 달라고 부탁한다. 그래서 나의 첫 뉴질랜드 행이 결정 되었다. 특히 그녀의 큰 동생(孝之)은 호주를 좋아해서 우리 집에서 3주 정도 묵었다. 그 일로 나는 고바야시 가문과 친해진다. 고바야시 4남매가 다 프로 기사인데 막내 고바야시 사토루 9단(小林覺)은 한국에도 잘 알려져 있다.


▲ 우리 집에 온 고바야시 치수(小林千壽) 부부

뉴질랜드에선 고바야시 대신 온 나를 따뜻하게 맞이해 준다. 나는 오클랜드에서 멀지 않은 교육도시 해밀튼(Hamilton)에 있는 와이카토(Waikato) 대학교엘 먼저 갔다. 내 강의 시간에 수 백 명의 학생이 강당에 모여 바둑에 대해 많은 질문을 해 온다. 그 때 열기를 보고 나는 뉴질랜드에 바둑이 빨리 확산 될 줄 알았는데 뭐가 잘못 되었는지 그 예상이 빗나간다. 오클랜드에서 열린 다면기는10 명과 두었는데 저녁식사 후 시작해서 새벽 2시까지 계속 되었다. 그 중 휠체어를 탄 뇌성마비 환자 브라이언(?)이 있었다. 그는 뉴질랜드 정부 컴퓨터 부처의 높은 자리에 있다는데 9점 바둑을 4 시간 이상을 끌었다. 본인이 너무 흥분해서 두기 때문에 독촉 할 수도 없었다. 또 한 명. 그래이엄의 제자라는 13세 소년 카일(Kyle Jones)이다. 나에게 대마가 잡히자 눈물을 뚝뚝 흘리며 필사적으로 두어 승부사 기질을 보여 주었다. 당시 뉴질랜드에서는 자기네 챔피언을 두 점 접고도 이기는 내가 엄청난 고수였다. 내가 바둑을 두면 많은 사람들이 관전을 하곤 했다. “호랑이가 없는 고을에선 토끼가 왕 노릇 한다더니” ^^ 이제는 다 “호랑이가 담배 피우던 시절 얘기”가 되었다.


▲ 와이카토 대학 전경과 내가 바둑 강의를 한 홀

나는 뉴질랜드에 온 김에 항상 가 보고 싶었던 마오리 족의 옛 수도 로토루아를 방문하기로 했다. 내가 뉴질랜드로 떠날 때 집 사람이 “로토루아는 꼭 들려 보고 오세요” 한다. 비가 오는 날 밤이라 그런지 버스에 승객이 나 하나다. 목적지까지는 3시간쯤 걸리는 거리다. 옆으로 내 몸의 두 배 정도는 되는 마오리 여자가 운전수다. 내가 그녀 옆 자리에 앉아 얘기하면서 갔다. 어느 마을 로타리(Roundabout)로 다가 가는 데 어떤 차가 갑자기 뛰어 들어 급정거를 했다. 빗속에서 큰일 날 뻔 했다. 내가 “저 거 여자 운전수(Woman Driver)가 틀림 없다”고 하자 마오리 여자 운전수가 크게 껄껄 웃으며 왼 손으로 내 등을 치는데 온 몸이 흔들린다. 호주-NZ는 차가 좌측통행이라 내가 앉은 조수석이 운전석 왼쪽이다.

서양에선 “여자 운전자”라고 하면 운전 못 하는 사람에게 하는 욕 비슷한 말이다. 자기가 여자 운전순데 내가 그런 말을 한 게 우스웠나 보다. 그러나 나는 여자가 등을 두드리는데 내 몸 전체가 그렇게 사정 없이 흔들린 사실이 쇼크였다. 나의 “남성우월주의(Male Chauvinism)”에 금 가는 소리가 들린다. 이 여자를 가만히 보니까 120~130kg은 나갈 것 같은데 두부 살이 아니다. 근육질로 힘이 엄청 세 보인다. 내가 속으로 “저 여자 하고 나 하고 방에 집어 넣고 한 명만 살아 나오라” 하면 결과가 어떻게 될까 생각해 봤더니 자신이 없다. 쓸데 없는 상념에 젖어 있는데 버스가 로토루아로 들어선다. 유황 냄새가 코를 찌른다.

▲ 로토루아 박물관(Rotorua Museum)

로토루아는 온천 욕, 진흙 팩(Mud pack) 마사지가 유명하다. 지열(地熱)이 높은 지하에 마오리 족이 감자와 옥수수 같은 음식을 넣어 자연 요리하는 것도 신기했다. 그렇게 만든 음식이 더 맛있다고 한다. 유황 냄새가 나는 흰 물줄기와 증기를 뿜어내는 간헐천. 부글부글 끓으면서 개구리처럼 폴딱폴딱 뛰는 진흙 풀(Mud pool) 등이 신기했다. 간헐천은 미국의 옐로우스톤 공원(Yellow Stone National Park) 보다 여기가 더 실감 난다. 이 지역을 그들은 “지옥의 입구”라고 부른다. 마오리 목각제품 만드는 곳, 마오리 쇼 등을 봤는데 색다른 문화라 흥미만점이다. 이 근처에는 강(江)도 몇 개가 흐르고 호수가 17군데나 있어 레프팅, 카약 등 수상활동을 많이 한다. 다 화산활동으로 생겨났다고 한다.


▲ 마오리 옛 수도 로토루아(Rotorua). 간헐천에서 유황 연기가 항상 솟아 오른다


▲ 바둑영어 팀의 로토루아 간헐천(geyser) 방문

3. 바둑 강자 (세계대회 출전 선수)

초기 뉴질랜드의 1인자는 단연 그레이엄(Graeme Parmenter)였다. 그레이엄은 더니든 대학 농학과 교수인데 초기 뉴질랜드 최강자로 군림한다. 그 뒤를 같은 더니든 출신의 배리(Barry Phease)와 오클랜드의 래이(Ray Tomes)가 추격하고 있었다. 2003년에는 무슨 일이었는지 세계대회에 대표를 안 보냈다. 2006년 뉴질랜드 오픈 챔피언은 12세의 중국 소년 켄 시에(Ken Xie)가 오른다. 2008년 세계 마인드 올림픽에 선수단은 거의 중국인이다. 그 명단을 보면 중국 세의 비중을 알 수 있다. 이 중 베리 피스는 중국여자(유콩)과 결혼했는데 전 가족이 유단자라 바둑대회마다 다 참가한다.

일본 세계대회에 간 대표명단

No
Year
Representative
(대표이름)
Placing
(순위)
1
1979
Graeme Parmenter
unplaced
2
1980
Graeme Parmenter
unplaced
3
1981
Barry Phease
unplaced
4
1982
Ray Tomes
8th
5
1983
John Blair
14th
6
1984
Kyle Jones
25th
7
1985
Barry Phease
16th
8
1986
Ray Tomes
16th
9
1987
Barry Phease
unplaced
10
1988
Ray Tomes
24th
11
1989
Kyle Jones
25th
12
1990
David Coughlin
28th
13
1991
Graeme Parmenter
24th
14
1992
Barry Phease
27th
15
1993
Yucong Phease
34th
16
1994
Colin Grierson
31st
17
1995
Barry Phease
17th
18
1996
Kyle Jones
29th
19
1997
Eric Jones
37th
20
1998
Injune Kang(강인준)
25th
21
1999
Colin Grierson
26th
22
2000
Shiyong Du
26th
23
2001
Steve Kim
29th
24
2002
Steve Kim
15th
NA
2003
no contest
NA
25
2004
Colin Grierson
31st
26
2005
Roman Pozaroszczyk
37th
27
2006
Stanley (Ming Yuan) Wang
39th
28
2007
Jimmy Yuan
19th
29
2008
Zhou Juhua
25th


▲ 오세아니아에는 전 세계 양의 75%가 있다.

4. 세계대회 해프닝 한 토막

1983년 도쿄에서 열린 세계바둑대회에서 일이다. 나는 같은 오세아니아 팀인 뉴질랜드 챔피언 존(John Blair)과 한 방을 쓰게 되었다. 숙소는 신주쿠 힐튼(Hilton) 호텔. 자다가 이상한 소리에 눈을 떠보니 존이 완전히 발가벗은 체 방을 뛰어 다니며 “Train is coming(기차가 온다)”를 외친다. 팔을 올리고 양 손을 위 아래로 잠자리 날개처럼 팔랑거린다. 그러더니 방향을 바꿔서 내 쪽으로 달려온다. 2미터짜리 거구가 나를 향해 나체로 뛰어 온다. 내가 “John, John”하며 소리를 지르는 동시에 얼른 침대 머리맡 램프를 집어 들었다. 쇠로 만든 거라 묵직하다. 나에게 덤벼들면 그 걸로 내려칠 생각이었다. 그 와중에 존이 내가 지르는 소리를 들었다. 눈을 번쩍 뜨는데 보니까 제 정신이 돌아온 거다. 존은 “I am sorry, sorry” 조그만 소리로 힘 없이 반복 하더니 자기 침대로 돌아 간다. 그러더니 잠이 들었는지 조용해 진다.

내가 눈을 감고 자려고 하니까 불안해서 영 잠이 안 온다. 나는 일어나서 아래층 네블(Neville Smythe) 방으로 갔다. 그는 오세아니아 팀의 단장이라 독방을 쓰고 있었다. 새벽 두 시 반에 초인종 소리에 네블이 놀란 얼굴로 나왔다. 나에게 “왠 일이냐?” 고 묻는다. 내가 “방을 바꾸자” 고 하자 나에게 “여잘 데려 왔느냐?” 고 묻는다. 내가 “마음대로 생각하고 내 침대로 올라가라”고 했다. 나에게 열쇠를 받아 들고 가면서 날 쳐다보는 네블의 표정이 영 마음에 안 든다. 이왕 청을 들어 줄 거면 좀 싹싹하게 해주면 안 되나? 아침에 일어나서 식당으로 갔더니 네블과 존이 벌써 같이 아침을 먹고 있다. 둘이 웃으며 얘기 하는 걸 보니까 별 일은 없었던 것 같다. 내가 속으로 웃으며 “초록은 동색이지” 하며 다가 갔다. 네블이 얼굴은 굳힌 체로 나에게 “Good morning” 한다. 존은 나를 잘 쳐다 보지도 못 한다.

이 날 나는 폴란드 챔피언에게 다 이긴 바둑을 실수로 졌다. 내가 평소에 두 점 접어 주던 친구다. 초 읽기에 몰린 내가 허 패감을 쓰고 1집 반을 졌다. 그 바둑을 계속 관전하던 조남철 선생이 “패를 안 했으면 이긴 바둑이고 패감만 제대로 썼어도 이긴 바둑이었는데……하곤 나에게 위로인지 구박인지 모를 말씀을 하곤 사라진다. 이겼으면 내가 세계대회 랭킹 4위나 5위가 되는 건데 그걸 놓쳤다. 나도 열 받아 있는데 네블이 나를 쳐다 보는 눈이 꼴불견이다. 내가 “왜 그렇게 보느냐?” 고 하니까 네블이 “본인이 더 잘 알 거 아니냐?” 고 한다. 그 말에 내가 정색을 하고 자길 노려보자 네블이 슬그머니 눈을 깔고 다른 곳으로 가 버린다. 존은 나에게 석 점쯤 약한 바둑인데 그 대회에서 5단들을 연파하며 14위에 올라 주위를 놀라게 했다. 존은 뉴질랜드 최대 도시인 오클랜드에서 고등학교 교사로 있다. 아주 착한 친군데 그 날 밤 이후부터는 사람이 좀 달라 보인다. 서양에선 애기가 잘 시간이 되면 혼자 침대에 놓고 부모가 매정하게 불을 끄고 문을 닫아 버린다. 그런 육아법의 부작용으로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게 아닌가 하고 나는 생각한다. 나는 집 사람에게 애가 어렸을 때 항상 같이 자도록 했다.


▲ 마오리식 인사 법


▲ 마오리 식 환영을 받는 이명박 대통령 부처

5. 바둑영어교실 팀 NZ 방문

2005년. 호주를 보름 동안 순회한 후 우리 교실 팀은 뉴질랜드로 갔다. 나도 12년 만에 방문이다. 우리가 오클랜드에 도착했는데 콜린이 공항에 마중 나와서 너무 반가웠다. 16년 동안 안 본 사이에 그도 중년이 되었다. 콜린은 오클랜드 바둑클럽 회장이다. 우리 일행은 NZ 바둑회장 탈러 집에 가서 바비큐로 저녁을 한 후 숙소를 배정 받아 헤어졌다. 탈러는 부부가 교수인데 부자는 아니라도 멋지게 인생을 살고 있다. 커피를 마시며 가치의 본질을 추구하는 대화를 하는데 너무 진지하다. 그런데 나와 친한 레이가 안 보인다. 물어 보니까 지난 15 년 간 바둑모임에 안 나오고 있다고 한다.

그 날밤 김계호씨 부부가 나를 찾아 왔다. 그와는 1975년 멜본 유학시절부터 친해진 친구다. 공무원 출신인 그는 남대문 옆 도큐 호텔 아래층 커피숍을 부인이 경영했고 그 밖에도 사업체가 있었다. 그가 가족과 몇 년 전 한가한 나라 NZ로 이민을 갔다. 우리는 반갑게 만났다. 그가 NZ산 특산품을 선물로 들고 오고 포도주도 많이 사 왔다. 우리 일행은 그가 사 온 술을 함께 마시며 즐겼다. 그날 밤 늦게 김형 부부가 날 데리고 나가 관광을 시켜준다. 친구란 참 좋은 존재다. 김형 바둑은 7급인데 그 날 모인 사람들의 수준을 알더니 자기가 너무 왜소하게 느껴진다며 자기가 바둑을 둔다는 말을 꺼내지도 못 하게 한다.

다음 날 오클랜드 바둑클럽에 교류전을 하러 가니까 놀랍게도 거기 레이가 와 있다. 우리는 포옹으로 해후를 했다. 나에게 “지난 15년 간 바둑 클럽에 안 나왔는데 당신이 온 다 길래 만나러 왔다”고 한다. ‘오클랜드의 전설’ 레이가 나타난대 대해 키위들도 놀란다. 교류전 동안 우리는 바둑을 안 두고 얘기만 했다. 내가 “왜 바둑을 끊었는지 모르지만 너무 섭섭하다. 이제 나이도 들었으니까 다시 시작 해서 나와 라이벌 전도 계속해야 할 거 아닌가?” 하고 물었다. 같은 방 NZ 사람들도 안 듣는 척 하면서도 우리 대화에 관심을 쏟는 걸 알겠다. 레이가 “나도 그럴 생각이 있었는데 때가 되면 나오겠다”며 웃는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그는 그로부터 2년 후 다시 바둑을 시작했다. 주관이 뚜렷한 그가 자기 바둑사이트에 써 놓은 글을 영어로 그대로 소개 한다.

G'day. I played go from about 1974 until about 1990 and reached 5 dan. Then I stopped playing for 17 years. I started playing again a little in late 2007 and am now 1 dan on KGS but rated a bit higher in Auckland club. I can be contacted by email to ray(at)tomes(dot)biz.
When I restarted playing again I still had 0.6 WAGC point from many years before, which was enough to allow me to get selected for the First World Mind Games in China in 2008. After some soul searching concerning the Chinese Government policies, particularly concerning Falun Gong(法輪功), I decided that going to this event would be like going to the 1936 Olympics in Nazi Germany and I pulled out. I would still love to visit China and see things both ancient and modern, but not as a guest of the Chinese Government.


▲ 1982년 레이 톰스와 오다케 9단(왼쪽사진) 중국여자와 결혼한 콜린 집에 묵은 부산여성바둑연맹 회원 2명.(오른쪽 사진)

내가 NZ로 출발 직전 시드니에서 일부러 박종욱과 신명길사장 간 내길 붙였다. 거기서 딴 돈으로 다음 날 오클랜드에서 종욱이가 점심을 쏘았다. 그 “내기 바둑”을 붙일 때부터 생각해 둔 내 각본이었다. ^^ 식사 후 시장에 가서 일행에게 자유시간을 주었다. 우리는 미니버스를 빌려 타고 같이 NZ 여행을 할 계획이었다. 그런데 오클랜드를 다 뒤져봐도 미니버스를 대여하는 곳이 없다. 제일 큰 게 9인 승뿐이다. 호주나 미국은 버스대여가 아주 쉬운데. 할 수 없이 두 대를 빌려 14명이 반씩 나누어 타고 3천 km의 대 장정을 시작했다. 나는 우리가 갈 코스를 지도에 표시해 놓고 “만약 사고로 헤어지면 그 다음 도시 시청 앞에서 만나자”고 했다. 우리는 오클랜드에서 이틀을 지낸 후 해밀튼을 거쳐 로토루아로 갔다. 다음 교류전은 웰링턴에서 있기 때문에 그 중간에 들리는 곳은 관광목적뿐이다.

로토루아에서 웰링턴으로 가는 도중 유명한 “타우포(Taupo) 호수”를 끼고 여행한 후 호수 아래 부분 어느 방갈로에서 잘 때 일이다. 내가 작은 통나무 케빈(Cabin) 하나에 두 사람씩 짝을 지어주고 저녁식사 후 자유시간을 주었다. 그 동안 회원들은 빨래, TV, 당구로 시간을 보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방갈로 매니저가 나에게 와서 “Someone is locked out!” 하길래 나가보니 우릴 따라온 프랑스 청년 크리스토프가 방엘 못 들어 가고 있다. 자기 룸메이트가 김선기인데 술이 취해 방 문을 안에서 잠그고 골아 떨어진 것이다. 다른 사람들까지 동원되어 소리를 지르며 문을 두드리는 바람에 이웃이 다 깼다. 그런데 선기만 안 깬다. 내가 할 수 없이 그를 내방으로 들어 오게 했다. 남반구의 8월 초면 영하10도 근처의 추위다. 크리스토프가 꽁꽁 얼어서 들어 왔다.


▲ 타우포(Taupo) 호수. 길이 46km. 넓이 33km의 큰 민물 호수다.

이 날 밤 나와 크리스토프는 새벽 세시까지 얘기하고 그는 바둑학과에 들어 오기로 결심한다. 그가 똑 같은 생활만 반복하는 것 보다 젊을 때 변화를 갖고 싶다고 나에게 먼저 말해 왔다. 내가 문화가 다른 한국에서 좋아하는 바둑을 공부하고 프랑스 최초의 바둑학사(BA)가 되면 어떻겠느냐고 물었다. 그는 얼굴에 이상한 미소를 띠고 앉아 한참 장고를 하더니 내 제의 쪽으로 마음이 기울기 시작한다. 컴퓨터 전문가인 그가 파리에 있는 직장을 그만 두기로 했다.

이번 여행 직전 한국에 놀러 온 크리스토프가 내 바둑영어교실을 찾아 왔다. 그 날 마침 내가 회원들에게 호주~뉴질랜드 여행에 대해 설명하고 있었다. 나중에 크리스토프가 자기에게 영어로 다시 설명해 달라고 한다. 설명을 듣더니 자기가 가장 가 보고 싶은 곳이 호주와 뉴질랜드인데 거기에다 바둑여행이니까 너무 환상적이라며 자기 좀 끼워 달라고 한다. 그래서 키가 192cm인 크리스토프가 우리 멤버가 되었다. 그는 유럽 2단이다. 사람 운명이란 묘하다. 그 날 김선기가 문만 열어 주었어도 크리스토프가 바둑학과에 들어 오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다음 날 웰링턴으로 가면서 코린에게 전화했더니 “강자들은 다 타지에 갔고 하수만 몇 명 있어서 클럽을 열어도 한국 팀이 시간만 낭비 할 것”이라고 한다. 하수라도 바둑인이면 만나 보고 싶지만 나는 처음 NZ에 온 일행을 위해서 그런 바둑모임 보다는 관광을 택했다. 이 덕에 우리는 웰링턴의 유명한 곳들을 들러 볼 수 있었다. 다음 날 남 섬으로 가는 페리를 타러 항구로 가다가 우리 두 차는 실수로 헤어졌다. 남 섬에 가는 페리를 타러 가는 건 저쪽 차도 알고 있지만 영어 잘하는 사람은 다 내 차에 타 있어서 걱정이 된다. 젊은 사람끼리 한 차에 타겠다고 해서 그렇게 되었다. 페리호 문 닫기 3분전 나는 오늘 출발은 포기하고 내일 다시 오려고 하는데 선기가 운전하는 차가 달려 들어온다. 반 집 차이로 승리했을 때 같은 기분으로 우리는 남 섬으로 떠났다.

남 섬 크라이스처치도 강자가 없어 교류전은 안 했다. 내가 잘 아는 테일러도 북섬에 가고 없다. 이 곳도 구경만 하고 더니든으로 갔다. 더니든은 이상한 곳이다. 인구는 12만 정도로 작은 도시인데 바둑은 강하다. 이 곳에 NZ 챔피언 그레이엄과 베리가 있다. 그 두 명과 나는 반갑게 만났다. 세월이 우리를 중년으로 만들었다. 지난 날 얘길 하느라고 우리는 바빴다. 바둑친구는 오랜만에 만나도 거리감을 전혀 느낄 수가 없다. 내가 그레이엄에게 “어떻게 금년에 NZ 챔피언에 복귀했느냐” 고 묻자 그는 “운이었다” 며 계속 싱글벙글한다. 그들이 크리스토프를 보고 “저 사람은 누군데 한국 팀에 있느냐?” 고 한다. 이 질문을 받을 때 마다 나는 웃음이 나온다. 자기네 눈으로도 크리스토프는 한국인으로 보이지 않나 보다. 그래서 매 번 내가 설명을 해 주어야 했다. 이 곳의 오타고 대학도 바둑클럽이 있다. 우리는 바둑인 집에 민박을 했고 교류전도 훌륭하게 치렀다. 나는 그레이엄 집에서 잤다.


6. NZ 바둑협회 회장단

회장: 마이클 탈러(Michael Taler)
총무: 그래이엄 파멘터(Graeme Parmenter)
재무: 아이라 터비(Ira Turvey)


7. NZ 바둑클럽 명단(List of Go clubs in New Zealand)


1) 오클랜드(Auckland) 클럽

그리어슨(Colin Grierson 회장) - phone (09) 532-9996 (home) or (09) 525-7353
탈러(Michael Taler 전국회장) - phone (09) 620-9872 (home)

2) 오클랜드 대학(Auckland University) 클럽
튜텐버그(Jonathan Teutenberg) - phone (09) 373-7599 ext 87458

3) 해밀튼(Hamilton) 클럽
트릭(Len Trigg) - phone (021) 624 595,
키한(Mike Keehan) - phone (07) 843 9014 (home),

4) 매스터튼(Masterton) 클럽
운영자 톰이 크라스트처치로 이사 가서 휴업 중. 이메일 연락 가능
http://wairarapa.wikispot.org/Go_Club

5) 웰링턴(Wellington) 클럽
피스(Barry Phease) - phone (04) 9716500
레이크랜드(Corrin Lakeland) - phone (04) 5869343 or 021-467784

6) 크라이스트처치(Christchurch) 클럽
테일러(W F C Taylor) - phone (03) 379-6422 home, (03) 364-2686 (work)

7) 더니든(Dunedin) 클럽
클루난(Matt Cloonan) - phone (03) 4821348; matthewcloonan@hotmail.com


8. 바둑대회(TOURNAMENTS – 최근 대회)


1) 2009 뉴질랜드 오픈(2009 NZ Open): 2009년 9월 12~13일 오클랜드

1일 3라운드, 최강부와 일반부, 타 지방 선수에게는 숙소 제공,

2) 오클랜드 오픈(2009 Auckland Champs)
2009년 7월 4~5일 거행. 5라운드
결승국: 켄 시에 – 롱양 리. 결과는 리가 5전승으로 우승.


▲ 전승자 리(Li)와 켄(Ken)의 결승국

3) 제 30회 세계 아마추어 바둑대회
2009년 5월 일본에서 개최

4) 2008웰링턴 오픈
11월 29~30일 개최

5) 김인 컵 국제 시니어 대회(Kim-in Cup International Senior Amateur)
2008년 한국 오로미디어 주최로 강진에서 거행. 만 60세 이상 참가.
EMAIL: oromedia@oromedia.co.kr

6) 제 3회 국무총리배(The 3rd Korea Prime Minister Cup)
제 3회 대회가 고양시 킨텍스에서 2008년 11월 7~12일 사이에 개최. NZ 대표는 피어슨(Ciaran Pearson)


▲ NZ의 쳉치(마이클) 리가 왕리청 9단과 대국. 탈러 NZ단장이 서서 관전

7) 제 1회 세계 마인드 스포츠 대회

중국 북경 2008년 10월 3~18일
단장: 탈러(M Taler), 임원: 피스(B Phease) 코치: 쉬용 두(Shi Yong Du)
아마추어 오픈 개인전: 롱양 리(Long Yang Li), E. 피스(Edwin Phease)
남자 개인전: 켄 시에(Kai Kun Xie), 쳉치 리(Cheng Chi Lee) B. 피스(B Phease), 레이크랜드(C Lakeland), 샤오 웨이 자오(Xiao Wei Zhao)
여자 개인전: Y. 피스(Yu Cong Phease)
남자단체: 롱양 리(Long Yang Li), 켄 시에(Kai Kun Xie), 쳉치 리(Cheng Chi Lee), 쉬용 두(Shi Yong Du), 밍유안 왕(Ming Yuan Wang)
혼성 페어: 그리어슨(Colin Grierson), 닝 후(Ning (Linda) Hu)

2008 뉴질랜드 오픈(2008 NZ Open) Sep 2008
오클랜드 바둑클럽 주최. 9월 13~14일 개최.


▲ 2006 NZ 오픈 챔피언 12세 켄 시에(Ken Xie)와 그리어슨 회장

제 29회 아마추어세계대회(29th World Amateur Go Championship )
2008년 5월 28~31일 개최
우승: 하성봉(한국 - 중국에 반 집 신승!)
준우승: 궈 유젱(Guo Yuzheng - 중국)
3위: 아귈라(Fernando Aguilar - 아르헨티나. 깜짝 3위!)
25위: 조우 주화(Zhou Juhua - NZ 그래도 최근 성적 중 잘한 편)

2008 오클랜드 챔피언 전(2008 Auckland Champs)
5월 개최. 격전을 치른 대회

2007 Wellington Open
개최2008년 2월 두 째 주말. 전국 강자 거의 출전
우승: 롱양 리(Long Yang Li-오클랜드)


▲ 웰링턴 오픈대회와 웰링턴 전망대 케이블 카

도요타 덴소 컵(Toyota & Denso Cup)
제 4회 오세아니아 대회가 2008년 1월 18~20일 호주 브리스번에서 개최
우승: 조안 미싱엄(J Missingham 13세 소녀 브리스번)
준우승: 궈이밍(Guo).
NZ 챔피언 켄 시에(K Xie)가 10위니까 얼마나 강자들이 많은지 알 수 있다. http://www.uq.net.au/~zzjhardy/toyotacup.html


▲ 남 섬 더니든 클럽과 교류전.
앞 줄: 김향희3단. 뒷줄: 박종욱 7단과 대국하는 그레이엄(Graeme Parmenter)


▲ NZ를 여행하는 바둑영어 팀. 왼쪽 끝 한오람은 마오리 “하카”를 하는 중

호주와 뉴질랜드는 세계 문화중심지로부터 외따로 떨어져 있다. 그래서 그들은 북반구로 여행을 많이 한다. 오세아니아에는 한적하고 “시간이 정체된 평화(Timeless peace)”가 있다. 자연도 인간의 손길이 안 닿아 “태초의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 북적대는 한국과는 전혀 다르다. 그 대신 “사회의 역동성(Dynamics)”은 그만큼 떨어진다. 그런 곳에도 “골 때리는 바둑쟁이들”이 살고 있다. 나는 내 인생 중 20년을 호주에서 살면서 심심한 줄 전혀 몰랐다. 직장 + 여행 + 바둑 인생에 쫓겨 시간이 항상 부족했다. 만약 그 중에서 바둑을 뺀다면 내 인생의 그림은 전혀 달라 졌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 분명한 것이 있다. 그 “바둑을 뺀 그림”은 내가 원하는 “인생의 그림”이 아니란 사실이다. ^^


한상대(전 시드니대학 교수, 호주바둑협회 회장)
sdhahn@gmail.com 017)276-5878

 


▲ 마오리 전사의 ‘하카(Haka)’. 마오리족 프리마돈나 키리테 카나와

뉴질랜드는 혐오동물인 뱀과 쥐가 없는 나라다. 환경이 깨끗하고 날지 못하는 새가 많다. 뉴질랜드는 10세기쯤 폴리네시안(Polynesian) 중 마오리(Maori)족이 하와이쪽에서 카누를 타고 내려와 살기 시작했다. 자기네 나라 이름을 “흰 구름이 기다란 나라(Aotearoa)”라고 불렀다. 1840년 백인이 마오리 족과 와이탕이(Waitangi) 조약을 체결하고 식민지로 삼았다. 나라 면적이 한반도보다 남한의 반만큼이나 더 큰데 2009년 현재 인구가 430만 명이다. 이 중 백인이 78%, 마오리가 14.6%다. 북 섬에 인구의 75%가 살지만 경치는 남 섬이 훨씬 좋다. 마오리 노래 ‘Pokarekare ana’는 우리나라에 ‘연가’로 널리 알려져 있다. ☞노래 듣기

집사람이 1975년 오클랜드 대학원에 다닐 때 뉴질랜드의 한국인은 대사관 직원까지 합해 20명 정도였다. 지금은 교민이 3만 여명이 살고 있다. 유학생도 1만 5000명 정도가 있다. 이 나라 바둑인구는 1000여 명으로 추산되고 있다. 뉴질랜드는 호주와 가까워서 나도 그곳 바둑계와 관련이 많다.


▲ 마오리 전사의 춤 1 전사의 춤 2. 혀를 내 밀어 상대를 겁을 주고 약을 올린다.


▲ 마오리 전사(Warrior) 마오리 전통가옥


▲ 검은 유니폼이 트레이드 마크인 NZ 럭비팀이 마오리 전사의식 “하카”를 하고 있다.
호주와 경기에서 하카 장면 보러가기

뉴질랜드에는 천적이 없어 새들이 날아다닐 필요가 없어졌다. 그 중 키위(Kiwi)는 뉴질랜드의 심볼이다. 뉴질랜드 사람을 ‘키위’라고도 부른다. 바둑대회 중 내가 “우리 중 키위가 몇 명이냐?”고 물어보면 NZ사람들이 다 손을 든다. 또 대표적 과일 이름도 키위다. 내가 어릴 때 미제 구두약 겉에 있는 주둥이가 긴 새 같은 동물 그림이 있었다. 그 게 이상해서 우리 아버지에게 물어본 기억이 난다. 그 게 키위였다. 그러나 내 관심을 더 끄는 새는 모아(Moa)다.


▲ 날지 못하는 새 키위(Kiwi). NZ의 심볼 뉴질랜드 과일 이름도 키위다

세계에서 가장 큰 폴리네시아 박물관이라고 하는 오클랜드 박물관에 갔을 때다. 유리관 안에 있는 엄청나게 큰 새를 보고 놀라서 가 봤더니 이름이 모아(Moa)다. 평균 키가 3.7미터에 무게가 230kg쯤 됐다고 적혀 있다. 다리 길이만 해도 내 키 보다 크다. 세상에서 가장 큰 새였는데 멸종되었다고 한다. 나중에 키위(NZ 사람)에게 들은 얘긴데, 마오리 남자가 성년식을 치르기 위해서는 이 놈을 한 마리 잡아와야 했다고 한다. 그래야 온 마을이 잔치를 할 수 있었다. 그렇게 해서 약 100년 전쯤 다 잡아 먹어 멸종을 시켰다고 한다. 10여 년 전에 누가 숲에서 모아를 봤다고 해서 수색대와 헬리콥터를 동원해서 찾았으나 못 찾고 만 사건이 있었다. 호주에서 모아가 멸종이 안 됐을지도 모른다는 뉴스를 듣고 나도 흥분했던 기억이 난다. 지금은 박물관에 박제만 있지만 혹시 앞으로는 DNA로 복원시킬 수 있지 않을까?


▲ 멸종된 세계 최대의 새 모아(Moa). 오클랜드 박물관.

1. 호주 – 뉴질랜드 국가대항전
1980년 호주-뉴질랜드 양국은 정기 국가대항전을 갖기로 합의를 본다. 격년제, Home & Away, 4명씩 풀 리그로 총 16 국, 주최측 룰(Rule)을 따르고, 네 명이 합한 단수(段數)는 양측이 2단 이상 차이가 안 나게 하고 주최국 바둑인 집에서 숙식을 제공한다는 조건이었다.

1) 제 1차 전 1981년
내가 호주 팀 주장으로 팀을 짰는데 한인 강자들은 생계형 이민자들이라 갈 사람이 없었다. 항공료의 반을 바둑협회가 지불하는 조건인데도 지원자가 없다. 할 수 없이 방학이라 시간이 많은 캔베라 국립대 회원들 중심으로 팀을 구성했다. 우리 팀은 시드니에서 합류한 후 뉴질랜드로 갔다. 4일간 격전 끝에 첫 국가대항전은 비기는 걸로 끝났다.

대회가 끝나고 바둑캠프를 오클랜드 서북쪽 어느 해안으로 갔는데 모래 색이 까맣다. 그런데 모든 게 너무 깨끗하다. 바위마다 홍합(Mussel)으로 완전히 덮여 있는데 아무도 안 따먹는다. 뉴질랜드 홍합은 질이 좋기로 유명하다. 나도 호주에서 홍합은 주로 뉴질랜드 산을 사 먹는다. 우리는 그들과 바둑만 둘뿐 아니라 그들 안내로 관광도 하고 피크닉도 갔다. 많은 대화를 통해 양국 바둑인들은 빠른 속도로 가까워졌다. 나는 컴퓨터 전문가 레이(Ray Tomes)의 집에서 묵었는데 특히 중, 고생인 그의 두 아들과 친해졌다. 탁구도 치고 같이 놀아 주니까 내 옆에 많이 따라 다닌다.


▲ 검은 모래 해변


▲ 홍합

하루는 양국 선수 전체가 점심을 먹으러 시내로 나갔다. 바로 옆에 어시장(魚市場-Sea Food Market)이 보인다. 나는 내 손바닥 보다 더 큰 전복(Abalone) 두 마리를 샀다. 우리 돈으로 1000 원이 조금 넘었다. 근처에 있는 ‘Fish & Chips’에서 이걸 알맞게 튀겨 식당으로 가져와 소금에 찍어 먹었다. 너무 맛있다. 그런데 분위기가 이상해서 보니까 바둑인들이 전부 얼굴을 찌푸리고 나를 쳐다본다. 한 사람이 나에게 “마오리가 전복을 먹는 다는 얘길 들었는데 한국인이 먹는 걸 몰랐다”고 한다. 또 한 명은 “꼭 고무를 씹어먹고 있는 것 같다’ 며 웃는다. 내가 “먹어 보겠느냐”고 했더니 다 사양한다. “이 좋은 맛을 모르다니, 쯧쯧.” 하긴 그때까지만 해도 호주 정육점에서는 쇠고기 갈비가 무료였다. 갈비 한 짝을 사는데, 손질 해 주는 값 2불만 주면 되었다. 갈비 파티가 돈이 전혀 안 들 때였다. NZ 전복 껍질은 무늬가 화려해서 장식품으로 많이 쓰인다.


▲ NZ 전복 껍질 장식 품(목걸이)

장소 : 오클랜드. NZ 룰(중국식)
NZ 선수 : G Parmenter, R Tomes, R Talbot, J Blair
호주선수 : 한상대, J Chen, N Smythe, B Holliday
결과 : 8 대 8 무승부

2) 제 2차 전 1983년
2차전은 시드니에서 열렸다. 뉴질랜드에서 5명이 왔다. 한 명은 후보선수다. 나는 캔베라에 살고 있었기 때문에 우리집에 뉴질랜드 선수를 묵게 할 수가 없었다. AGA회장인 네블도 마찬가지였다. 호주에 강자가 훨씬 많았으나 양팀의 단수(段數)를 맞추기 위해 약자들을 섞어서 팀을 짜고 나니까 힘을 못쓰겠다. 국가대항전 결과는 1차전처럼 또 비겼다. 비공식이었으나 시드니 교민들이 뉴질랜드 선수들과 대국을 많이 하면서 한국 ‘힘바둑’의 위력을 보여주었다. 특히 한국인 중 내 연배의 김정일 3단은 서양인이면 누구에게나 호선으로 두어 전부 만방으로 이겼다. 그 중에 5단도 몇 명 있었다. 서양인들은 김 3단을 가리켜 “세계에서 가장 강한 3단일 것”이라며 혀를 내 둘렀다. 그 김 3단도 한국인 속에서는 성적이 좋지 않았다.


▲ 오세아니아의 뉴욕 시드니

뉴질랜드 선수들은 거의가 시드니엘 와봤다고 한다. 시드니가 그들에게 자기네 도시처럼 익숙하다. 시드니는 오세아니아의 뉴욕 같은 도시다. 뉴질랜드 선수들이 호주 TV드라마도 나보다 더 잘 알고 있어 놀랐다. 또 대부분이 친구나 친척들이 시드니에 살고 있었다. 알고 보니 그때 시드니에 뉴질랜드 인이 80만 명이나 살고 있었다. 당시 370만 명의 뉴질랜드 인구를 생각해 보면 높은 비율이다. 시드니가 오클랜드 다음으로 두 번째 큰 NZ 도시다. 그러나 뉴질랜드에도 폴리네시아 섬에서 온 사람들이 80만이나 산다고 한다. 오클랜드는 세계에서 가장 큰 폴리네시아 도시다. 바둑 피크닉은 시드니 북부 해안지대가 한눈에 보이는 웨스트 헤드 전망대(West Head Lookout)로 갔다.


▲ 양국 선수단이 BBQ 피크닉을 간 웨스트헤드 전망대(West Head Lookout-Kuringai Chase 국립공원 내).

장소 : 시드니 - 호주 룰(일본식)
NZ선수 : G Parmenter, R Tomes, J Blair, M Unwin
호주선수 : 한상대, J Power, C Davies, N Smythe
결과 : 8 - 8 비김

3) 제 3차 전 1985년
해프닝 한 토막. 나는 뉴질랜드에 가기 위해 내가 사는 캔버라에서 300km떨어진 시드니 국제공항으로 왔다. 당시 인구 35만의 캔베라는 국제공항이 없는 세계에서 유일한 수도이다. 시드니 공항에서 체크인을 하는데 카운터 아가씨가 날보고 여권을 잘못 가져왔다고 한다. 보니까 시효가 지난 구 여권이다. 내가 집사람에게 짐을 싸라고 했을 때 서랍 속 여권 중 위에 있는 것은 구 여권이니까 조심하라는 얘기를 해야 했는데, 깜박했다. 이 비행기를 놓치면 나는 뉴질랜드에 가지 못하고 1회전에 호주 주장이 기권패 하는 상황이 나온다. 나는 마음이 급해서 카운터에게 “누구와 얘기하면 되느냐”고 물었더니 “공항 매니저와 얘기해 보라”고 한다. 나는 2층 매니저 사무실로 뛰어가 매니저에게 “내가 호주 바둑(Go) 챔피언인데 오늘 뉴질랜드에 못 가면 호주가 진다”고 했더니 매니저가 반가워 하며 자기는 핸디가 12라고 한다. 내가 ‘Golf’가 아니라 ‘Go’라며 보드게임이라고 바둑을 간단히 소개했다. “이건 지적인 두뇌 게임이라 대학 중심으로 두어진다”고 했다. 그가 “내 아들도 대학생”이라며 뽐낸다.

그가 “바둑은 처음 들어본다”면서도 내 상황에 동정적이다. 뉴질랜드와 관계기관에 전화를 해 보더니 나에게 “잘 뛰느냐”고 묻는다. 내가 “잘 뛴다”고 하자 무전기로 활주로로 나가고 있는 비행기에 연락하여 “호주의 명예가 걸린 일로 한 사람이 더 타야 한다”며 비행기를 세운다. 나와 그는 아스팔트 위를 한참 뛰어서 달렸다. 500미터는 확실히 넘는 거리였다. 매일 조깅을 한다는 덩치가 큰 그가 내 가방을 들고 뛰었다. 우리가 뛰어가는데 비행기에서 사다리가 내려온다. 나는 매니저에게 “너무 고맙다(Thank you too much!)”고 인사하고 비행기로 올라갔다.

내가 땀 범벅이 되어서 들어서니까 기내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박수를 친다. “나 때문에 지연이 됐는데 왜 박수를 치지?” 어리둥절했으나 나는 웃으며 절을 했다. 3시간 반 만에 뉴질랜드 남 섬 크라이스트처치(Christchurch) 공항에 도착하니까 내 이름이 방송에 나온다. 입국심사관에게 가니까 나를 그냥 통과시켜 준다. 나는 여권 없이도 국경을 통과한 희귀한 경험을 했다. 우리나라 공항에서 그런 상황이 발생하면 어떤 반응이 나올까? 공항에 뉴질랜드 바둑인 몇 명이 기다리고 있다가 나를 차에 태우고 국가대항전이 열리는 해머스프링 온천 관광호텔로 이동한다. 내 방에서 조금 쉬었다가 전야제행사 시간이 되어 볼룸으로 내려 갔다. 서양인들 리셉션은 각종 드링크와 오더보(비스켓 위에 올리브나 해산물을 조금 넣는 안주 감)가 있고 주로 서서 대화를 많이 한다. 순서는 양국 선수단 소개와 피크닉 프로그램 안내 정도였다.


▲ 이런 곳을 내가 뛰어가서 호주항공 콴타스(Qantas)를 탔다.

이번 국가 대항전은 남 섬의 온천 휴양지로 유명한 해머스프링(Hammer spring)에서 열렸다. 주변 경치가 환상적이다. 뉴질랜드에서 가장 유명한 온천인데 유황 수에 게르마늄 포함 량이 많다고 자랑한다. 주최측에서 그 곳 관광호텔을 숙소로 잡는 등 최선을 다 한다. 호텔 무도장(Ball Room)을 빌려서 대국장으로 쓰고 있다. 바둑은 하루에 한 판만 둔다. 한 사람 당 제한 시간이 3 시간씩이다. 거기에다 초 읽기 1분이니까 마음만 먹으면 하루 종일 끌 수가 있다. 하수가 말도 안 되는 곳에서 한 없이 들여다 보고 있으면 나는 답답해서 몸이 뒤틀린다. 호주 팀엔 내가 넉 점 접는 멜본의 필립 힝스턴과 캔베라의 스티븐 라이가 있어서 우리 팀 전력이 약했다. 둘 다 지금은 교수지만 그 때는 박사코스 학생이었다. 당시 뉴질랜드 선수 중 친절한 청년 콜린(Colin Grierson)이 나에게 자기 차(Laser Ford 1.5)를 이용하라고 열쇠를 주어서 가끔 그 차를 몰고 주위를 돌아 다녔다.


▲ 유황 온천탕(Thermal pool & spa)


▲ 해머 스프링 관광호텔 앞에 전개되는 오염 안 된 자연. 태초의 모습을 갖고 있다.

바둑 피크닉은 아서령(嶺 Arthur’s Pass)이라는 곳엘 갔는데 차로 한 시간 이상 달려서 갔다. 남 섬의 가운데를 질러 흐르는 산맥을 동서로 넘는 고개다. 해발 천 미터쯤 되는 이 곳에는 마을도 있다. 공기가 냉랭하고 조금 더 올라가니까 빙하호수(Glacier)들이 보인다. 너무 아름답다. 이 산맥의 최고봉은 쿡 산(Mt. Cook 3,764미터)을 비롯해 3천 미터가 넘는 봉우리가 27군데나 된다. 산 맥이 너무 높아서 태평양에서 불어 오는 수분(Moisture)이 다 걸려 동쪽으로 못 넘어 간다. 그래서 남 섬의 동쪽은 벌거벗은 황량한 광야가 계속되고 서쪽 해안은 정글을 방불케 하는 숲이 계속된다. 산맥 양 쪽의 전혀 다른 아름다움을 비교하며 자동차 여행하는 맛이 색다르다. 이 바둑 광들이 경치 좋은 여기까지 바둑 세트를 들고 와 바둑을 둔다.


▲ 아서령에서 내려다 보는 우리가 차로 올라온 길


▲ 쿡 산(3,764m) 마오리 語-Aorak

장소 : NZ 남 섬 해머 스프링 온천 - 뉴질랜드 룰
NZ 선수단 : B Phease, R Tomes, C Grierson, D Coughlin
호주선수단 : 한상대, G Parker, P Hingston, S Reye
결과 : 10대 6 뉴질랜드 승

나는 이 국가 대항전이 끝나고 혼자 남아 뉴질랜드 남 섬 크라이스트처치에서 개최되는 뉴질랜드 바둑대회에 출전한다. 한국에 있는 내 동생이 친구 한 명과 1주일 후에 호주에 도착한다고 국제전화가 왔다. 내가 “이왕이면 뉴질랜드로 와서 나와 자동차로 경치 좋은 NZ 남 섬을 한 바퀴 돌고 나서 호주로 가자”고 했더니 “너무 좋은 아이디어”라며 반긴다. 내가 대회에서 우승을 하자 뉴질랜드에선 외국인 우승이 없었던 까닭에 처음으로 오픈 챔피언 타이틀을 만들었다. 시상식에 우승 트로피 증정은 뉴질랜드 총독, 부상 증정은 일본대사가 하는 등 격이 꽤 높다. 바둑인 가족까지 동원되어 내가 상을 받을 때 수 백 명이 소리를 지르며 환호한다. 부상으로 받은 바둑 판은 뉴질랜드에만 있는 카오리(Kaori) 나무로 만든 건데 3~4천 년을 자란다고 한다. 초기엔 이 나무 하나만 자르면 배 한 척을 만든다고 하고 집은 여러 채 짓는다고 하여 무차별로 벌목을 했다. 요즘은 보호 대상이라고 한다. 미국 켈리포니아에 사는 ‘Red Tree’가 4천 년을 산다. 우리나라엔 양평 용문사에 있는 은행나무만 천 년이 조금 넘은 것으로 알고 있다.


▲ 1985 NZ 바둑대회가 열린 켄터베리(Canterbury) 대학교

시상식이 막 끝나자 내 동생이 친구와 들어선다. 내가 “내 시상식 봤니?” 하니까 “조금 전 박수 소리가 형이 트로피 받는 거였어?” 한다. 간발의 차이로 내가 트로피 받는 걸 놓쳤다. 동생이 “그런데 형, 왜 그렇게 수척해 졌어?” 한다. 내가 “여기서 2 주 동안 김치를 못 먹어서 그렇다. 오죽하면 내가 전화 번호부에 한국 성(性) 비슷한 집에 전화를 30군데 넘어 걸었겠니? 그런데 다 중국인이었다. 이 도시엔 한국인이 하나도 없는 것 같다. 고기와 빵은 이젠 질려서 목구멍으로 안 넘어 간다” 했더니 “당장 수퍼에 가서 재료를 사면 내가 김치를 만들게” 한다. 내가 외국에 오래 살면서도 입 맛은 현지화가 안 되어 있다.

우리가 그 날 산 작은 붉은 무와 이태리 고추로 만든 김치는 너무 맛이 있었다. 여행 내내 그 김치에 밥을 먹어 내가 다시 전에 모습으로 돌아 왔다. 동생이 지금도 “그 때 그 김치가 내가 먹어본 김치 중 제일 맛있었어” 한다. 우리는 차를 빌린 다음 그 날은 차분하고 매력적인 도시 크라이스트처치에서 묵으며 시내관광을 했다. 동생도 “내가 전 세계에 가 본 도시가 40군데가 넘는데 이런 분위기는 처음”이라고 한다. 나는 다음 날 아침부터 동생과 5일 간 남 섬을 자동차로 자연을 만끽하며 여행하고 호주로 돌아 왔다. 특히 산 속의 통나무집에 묵은 경험은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집에 오니까 NZ에서 내가 우승 트로피를 놓고 갔다고 국제전화가 왔다. 집 사람이 “제일 중요한 걸 놓고 다니는 건 여전 하시네요” 하며 웃는다.


▲ 크라이스트쳐치 중앙광장. 나는 이렇게 한적하며 매력적인 도시는 처음이었다


▲ 시내 관광 전차


▲ 크라이스트처지(35만). 1911년 아문젠과 남극탐험 경쟁을 한 스코트 대령의 영국팀이 이 곳에서 출발했다.


▲ 붉은 무(Red radish) 통 나무집 내부

4) 제 4차전 1987
4 차전은 호주 수도 캔베라에서 열렸다. 그 때 나는 방학이 되자 우리 어머니가 와병 중이라 서울로 서둘러 갔다. 호주 팀은 캔베라 선수로만 구성된 최 약 팀이었다. 호주가 지는 건 불을 보는 것 보다 훤했다. 내가 석 점 접는 존 첸이 호주 팀 주장인데 NZ주장 레이 톰스에게는 적수가 아니다. 내가 “한 명은 2승을 하고 나머지는 1승씩 만이라도 해야 망신을 덜 당할 텐데” 했는데 1 승도 못 거둔 선수가 나오며 뉴질랜드에게 최악의 참패를 당한다.

호주 캔베라 - 일본 룰
NZ 팀 : R Tomes, D Coughlin, C Grierson, A Guerin
호주 팀 : J Chen, C Davies, S Reye, J Trevethick
결과 : 13 – 3 뉴질랜드 승

5) 제 5차전 1992
5차전은 1989년 뉴질랜드에서 열릴 예정이었으나 항공료 반을 지불하는 조건이 없어져서 그랬는지 호주 팀이 결성이 안 되어 취소 된다. 5차전도 92년에 와서야 시드니에서 열린다. 이 번 NZ 팀은 피스 부부 중 부인인 유콩이 주장이다. 내가 보기엔 부부가 실력이 비슷하다. 나와 친한 콜린과 데이빗을 우리 집에 묵게 했다. 컴퓨터 전문가인 그들은 우리 집에 1주일간 묵으면서 우리 가족과 친해 진다. 자기네가 부속을 사와서 고장 난 내 컴퓨터를 고쳐주고 백업까지 해준다. 특히 우리 아들 옆 방에 묵으면서 아이와 많이 친해 진다. 우리 아들 놈이 좋아할 만한 농담을 계속해 주어서 아래층에서 오람이가 웃는 소리가 항상 들린다. 호주 팀은 나와 강찬수 5단의 전승에 힘 입어 이 번엔 압승을 한다. 피크닉은 시드니에서 1 시간 가량 떨어진 불루 마운튼(Blue Mountains)으로 갔다. 다음 날 11시에 60 km 떨어진 카툼바(Katoomba) 전망대 앞에서 모이기로 하고 제 각기 알아서 찾아 오라고 했다. 그런데 수 십 명 중 지각한 사람이 한 명도 없다. 서양인의 시간엄수(Punctuality)는 알아 주어야 한다(호주 2. 데본 베일리 샌드위치 사건 참조)


▲ 불루 마운틴 산 속 우리가 걷던 고사리 나무 숲


▲ 우리가 바비큐를 한 고벳리프 전망대(Govett’s Leap Lookout) – 내 단골 장소

호주 시드니 - 일본 룰
NZ 팀 : Y Phease, B Phease, C Grierson, D Milne
호주 팀 : 한상대, 강찬수, J Bates, N Smythe
결과 : 11 – 5 호주 승

6) 제 6차전 1993년
지연 됐던 대회를 당기는 의미로 1년 만에 대회를 다시 열었다. 나는 NZ 수도 웰링턴에서 열리는 이번 대회는 꼭 이기려고 2장에 안광호 5단, 3장에 베이츠 5단, 후보에 박현용 5단을 배치하고 진용을 가다듬은 후 뉴질랜드로 날라갔다. 비행기 안에서 내가 안 5단과 박 5단에게 “이 정도 강 팀이면 뉴질랜드쯤이야 백 날 된 아기 팔 비틀기죠! 하하하” 의기양양했다. 웰링턴은 인구가 약 40만 명이다. 호주 수도 캔버라와 인구는 비슷한데 분위기는 전혀 다르다. 캔버라는 인공도시인

데 여기는 자연도시이다. 캔버라는 산 속에 있는데 여기는 바닷가에 있다. 골목 안에는 흥미를 끄는 작은 가게와 음식점, 카페들이 보인다. 북 섬 끝 자락에 있어 건너 편이 남 섬이다. NZ 수도로 자리를 잘 잡았다. 이번 국가 대항전이 끝나면 일본 바둑인 2~30 명이 뉴질랜드 관광을 마치고 그 날에 맞추어 도착한다. 그리고 곧 “3국 친선 교류전”이 행사로 잡혀 있다. 웰링턴 북쪽 외곽지대에는 마오리 족과 남 태평양 사람들이 의외로 많이 살고 있는데 그 이유가 궁금하다.


▲ ‘바람의 도시’ 웰링턴

뉴질랜드 선수단 2장이 한국 이름이다. 조금 후 누가 “한교수님 안녕하세요?” 해서 보니까 어디서 본 얼굴이다. 내가 얼른 기억을 못하는 거 같으니까 그가 “몇 년 전 교수님이 방학 중 한국기원에 오셨을 때 제가 찾아 뵙고 호주 쪽으로 진출 하고 싶다고 말씀 드렸는데요. 바둑도 한 판 두고요” 한다. 그러니까 기억이 난다. 내가 “그럼, 혹시 음악 한다는?” 하니까 “맞습니다. 여기서도 밴드를 조직해서 음악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한다. 그리고 보니까 오세아니아의 두 국가 선수 8 명 중 3명이나 한국인이다. 후보까지 4 명이 모였다. 이 무렵 강인준씨는 NZ 챔피언을 몇 차례 했으나 시민권이 아직 없어 세계대회 대표로는 몇 년 후에나 출전한다. 이 무렵까지가 오세아니아 주에서 ‘한국 바둑의 전성기’ 였다.

나는 우리 팀에게 “한국인 1급(5단)이 한 명 섞였으니까 방심하지 말자” 면서도 우리 팀의 승리는 의심을 안 했다. 그런데 이 게 웬 일인가? 뚜껑을 열어 보니 우리 팀의 참패다. 나도 저 쪽 주장 카일에게 졌다. 10여 년 전 나에게 대마를 잡히고 울면서 바둑을 두던 꼬마다. 안선생도 한 판 밖에 못 이기고 나머지 두 명은 전 패를 했다. “우째 이런 일이~” 특히 카일이 날 이겼다는 뉴스에 전 뉴질랜드 인이 기립 박수를 친다. 드디어 호주를 극복했다는 박수인 것 같다. 카일은 감격하여 일어서서 계속 절을 한다. 나도 어색한 미소로 같이 박수를 칠 수 밖에 없었다. 이 날 3국 교류전에서도 호주는 꼴찌를 한다. ☞관련기사 바로 가기


▲ ‘벌 집(Beehive)’이란 별명의 NZ 국회의사당(Parliament House)

장소 : 웰링턴 - 뉴질랜드 룰
NZ 팀 : Kyle Jones, 강인준, C Grierson, G Parmenter
호주팀 : 한상대, 안광호, J Bates, T Purcell, 박현용(후보)
결과 : 12 – 4 NZ 승

93년을 마지막으로 양 국간 “국가 대항전”은 중단 되었다. 95~96년에 호주에서 개최 되어야 하는데 호주 측 주동이었던 내가 한국으로 가 버리고 “Home & Away”가 생각 보다 쉽지 않아서였다. 특히 약체 NZ가 호주를 꺾자 목적의식을 잃은 것도 한 몫을 했다. 양국의 강자들이 다 중국인으로 대체 된 것도 문제다. 국가 대항전이 중국인끼리 경쟁이 될 테니까. 지금은 대회가 없어졌으나 두 나라가 서로 오가며 국가 대항전을 했던 10여 년은 우리 인생의 황금기(Golden age)였다. 그 동안 우리가 휩싸였던 열정과 흥분은 우리에게 “찬란했던 젊은 날의 추억”으로 영원히 남을 것이다. 그 동안 우리가 쌓은 “우정의 약발”은 아직도 그 효력이 듣고 있다. 요즘 세대에게도 그런 낭만을 경험할 날이 올 수 있을까? 
(NZ 2로 계속)

한상대(전 시드니대학 교수, 호주바둑협회 회장) sdhahn@gmail.com


▲ 웰링턴의 밤


▲ NZ 지도


▲ 국기

TYGEM / 한상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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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고추잠자리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09.10.28 저의 제자 정다니엘군이 뉴질랜드에서 공부를 하고 있는데 가끔 연락이오곤하는데 보고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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