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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의 역사 +만화의 분류 와 특징 +만화 사이트

작성자고추잠자리|작성시간10.04.12|조회수918 목록 댓글 0

 

 

만화라는 미술 개념은 근대적인 개념이며 한국의 만화는 대략 1900년대 이후에서 시작한다.

 

1990년대 후반, 대한민국의 만화가들은 싼 값에 만화를 빌려주는

 

만화 대여점의 피해로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었다

.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마린 블루스 등을 필두로,

 

웹툰이라는 만화 장르가 유행하기 시작했다.

 

2006년 현재는 각종 포털, 스포츠 신문사의 홈페이지에

 

와당카,용하다 용해 등의 많은 만화가 연재되고 있다

 

 

 

 

자유로운 과장법과 생략법을 써서 단순·경묘(輕妙) 그리고 암시적인 특징을 노리는 것이 순수회화와 구별되는 점이다.

회화 또는 풍자화를 캐리커처(caricature)라고 하는데, 이는 이탈리아어의 caricare(과장하다)라는 동사에서 나온 말로서, 현재는 영국·프랑스 등 극히 일부 유럽지역에서 시사만화를 가리켜 쓰는 말이며, 일반적으로는 과장된 인물화를 캐리커처라 한다.

그리고 시사만화나 한 장면만화는 카툰(cartoon)이라고 하며, 4컷 이상이 연결되어 스토리가 이루어지는 만화는 코믹스(comics) 또는 코믹 스트립스(comic strips)라고 하는데 이것은 주로 미국에서 쓰는 말이며, 유럽에서는 보통 카툰이라고 한다.

한국과 일본·중국 등지에서는 만화라고 하며, 소설처럼 긴 스토리를 엮어나가는 만화는 극화(劇畵)라고도 한다.

1. 기원
만화와 회화를 내용성 ·표현양식 등으로 구별하는데 어느 방법을 막론하고 만화와 회화의 역사적 기원은 동일시된다. 제4성층 후기 지구 전체가 얼음과 눈으로 덮여 있을 때, 인간은 이미 동굴 속에서 벽화를 그렸고, 사슴의 뼈나 뿔에다 칼로 조각하였다. 석기시대를 거쳐 이집트의 신문화시대로 들어서면서, 초기 피라미드 내부와 후기 룩소르신전 등에 그려진 새와 동물들의 의인화된 그림들은 다분히 만화의 기본요소인 희화정신이 깃들어 있다.

그 후 유럽의 르네상스문화의 개화에 따라 희화적인 작품이 많은 목판화나 동판화로 남겨져 있음을 볼 수 있는데, 독일의 A.뒤러가 ‘죽음과 악마’를 소재로 하여 그린 작품이나 보슈의 환상적인 유화작품에서 볼 수 있는 많은 요괴들과 악마들은 만화의 기본요소인 과장법으로 그려진 것들이다. 바로크시대 고야의 《로스 카프리치오스》 등 악마적인 동판화 시리즈는 희화성이 강한 회화라기보다는 회화적인 만화로 보아도 무방하다. 18세기 말경의 순수문화시대에 들어서면서는 개인사상의 존중과 자유, 독창성이 강한 표현양식이 빛을 보기 시작하자 회화 역시 다양성을 띠기 시작했고 19세기의 인쇄술 발달로 현대만화로 발전되었다.

2. 분류
만화는 내용과 특성에 따라 다음과 같이 분류할 수 있다. 시사만화는 정치 ·경제 ·문화 ·사회 전반에 걸쳐, 시사에 맞는 그때그때의 상황을 풍자한 만화이다. 유머만화는 가정물 ·아동물 ·동물만화 등 시사성을 초월하며 예술성을 지향하는 만화이다. 극화는 소설처럼 긴 스토리를 한 장면 한 장면 순서대로 변화시켜 엮어나가는 만화이다. 표현은 유머만화적일 수도 있고, 사실적인 삽화적일 수도 있고 비현실적 ·초과학적인 과장법을 쓸 경우도 있다. 애니메이션은 만화영화나 텔레비전에 나오는 단편만화이다. 월트 디즈니프로덕션은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3. 역사
현대회화의 시발점을 19세기 후반으로 본다면 현대만화의 시발점도 이와 거의 같은 때로 보아도 무방하다. 그 당시에는 만화를 화가의 여기(餘技)로 인식하기도 하였다. 예를 들면, 프랑스 사실주의의 대가이며, 회화사에 길이 남을 《크리스팽과 스카팽》 《삼등열차》 등의 명작을 남긴 오노레 도미에는 신문에 당시 국회의원들이 의회에서 한 발언장면, 법원에서의 재판광경 등을 만화로 그렸을 뿐 아니라, 당시의 프랑스왕 루이 필립을 서양배(꼭지쪽은 가늘고 밑쪽이 넓은) 모양으로 그려서 신문에 실어, 6개월 간의 금고형을 받는 필화사건을 일으키기도 하였다. 데생의 천재로 알려졌던 H.T.로트레크의 유화작품은 인상파미술관 속의 커다란 벽면을 차지하고 있는 대가이나 역시 신문에 많은 만화를 그렸다.

한국의 경우, 1930년대에 동양화의 대가로 일컬어지는 청전(靑田) 이상범(李象範)이 잡지에 단편만화를 그렸고, 노수현(盧壽鉉)은 1924년대에 《조선일보》에 《멍텅구리》를 연재함으로써 신문만화의 새 기원을 이룩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들은 순수회화작품으로 만화를 앞지르는 명성을 얻었기 때문에 대체로 만화가의 작품(본격 만화작품)으로 알려지기보다는 화가의 여기작품으로 알려졌다.

4. 한국
최초의 순수한 만화가는 김규택(金奎澤)이다. 그는 《신동아(新東亞)》 《별건곤(別乾坤)》 《조광(朝光)》지 등에 많은 단편만화와 만화 ·만문형식의 《억지춘향전》을 연재하여 세인의 눈을 끌었고 8 ·15광복 후에는 주간지 《새한민보》 표지에 시사만화를 연재하였다.

신문만화로는 1924년대에 노수현이 《조선일보》에 《멍텅구리》를 연재하였고 광복 후엔 김중현(金重鉉)이 때때로 잡지에 만화를 그리곤 했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에서 어린이잡지 등에 소설삽화를 그리던 김용환(金龍煥) ·김의환(金義煥) 형제가 광복이 되자 귀국하여 김용환은 《서울타임즈》에 《코주부》를, 김의환은 《어린이 나라》 등 어린이잡지에 많은 만화를 그렸다. 또 시인 김소운(金素雲)이 《만화행진》이라는 주간 만화신문을 발행하여 종래 만화란 어린이 전용의 것으로 여겨왔던 일반에게 새로운 면모를 보여주었으나 곧 폐간되었고 김용환이 《만화뉴스》를 발간했는데 《연합신문》에 만화를 기고하던 김성환(金星煥)과 신동헌(申東憲)이 이에 참여하던 중 6 ·25전쟁이 일어났다. 피난지에서 박성환(朴聖煥)이 《만화신보》, 김용환이 《만화신문》, 김성환이 《만화승리》를 제작하는 등 주간 만화신문이 잠시 활기를 띠었다.

환도 후엔 김성환이 1955년부터 《동아일보》에 《고바우영감》을 연재하고(80년도에 조선일보로 옮겨 연재하다 현재는 文化日報에 연재중), 곧 이어 안의섭(安義燮)이 《경향신문》에 《두꺼비》를 연재했다가, 《문화일보》에 연재했으며 정운경(鄭雲耕)의 《왈순아지매》가 《대한일보》 《경향신문》을 거쳐 《중앙일보》에 연재 중이며 백인수(白寅洙)의 《사회희평》이 《동아일보》에 연재 중인 것이 신문만화로선 장기간의 연재물이다. 신문 ·잡지엔 김일소(金一笑) ·김경언(金庚彦) ·길창덕(吉昌悳) ·박기정(朴基禎) ·임창(林創)이 그려온 한편, 오룡(吳龍)이 《조선일보》에 《야로씨》를, 윤영옥(尹暎玉)이 《서울신문》에 《까투리여사》를 연재했다.

환도 후의 아동만화계에는 만화잡지가 붐을 일으켜 이상호(李相昊) ·정한기(鄭漢基) ·박기준(朴基埈) ·김정파(金靜波) ·신동우(申東雨) ·김종래(金鍾來) ·박현석(朴賢錫) 등이 활약했으나, 얼마 후엔 잡지시대에서 대본소용 단행본시대로 접어들어 많은 조제품이 남발되어 사회문제화되기도 하였다. 또한 《소년세계》 《새벗》 《학원》 《학생계》 등에는 안의섭의 《두꺼비 A ·B곡》, 김성환의 《꺼꾸리군 ·장다리군》 《세모돌이 ·네모돌이》 《소케트군》 등이 연재되었다.

또 신동헌은 최초로 장편만화 《홍길동》을 제작상영함으로써 만화영화의 가능성을 보여주었고 이어서 《호피와 차돌바위》로 이어졌으나 기업으로까지 성장하지는 못했다. 김종래의 극화 《도망자》 《암행어사》에 이어 고우영(高羽榮)은 극화 스타일로 꾸준히 《일간스포츠》지에 《임꺽정》 《일지매(一枝梅)》를 연재했고, 이두호의 《머털도사와 또매》 《장독대》, 방학기의 《바람의 파이터》 등은 무술극화를 정착시켰고, 박수동(朴水東)은 독특한 선으로 《고인돌》을 《선데이서울》 등에 장기간 연재하였다. 《엄마찾아 3만리》의 김종래, 《라이파이》의 김산호의 단행본 시대를 거쳐서 각 일간지들은 어린이와 중학생 상대로 《소년조선일보》 《소년동아일보》 《소년한국일보》를 발행했는데 김박(金博) ·김세환(金世煥) ·김삼(金森) 등이 참여하였다. 《동아일보》에 이홍우(李泓雨)가 《나대로선생》을, 《일간스포츠》에 허어(許漁)가 《미스터 펀치》를 연재하였다.

어린이잡지에서는 김수정이 《아기공룡 둘리》로 명성을 얻었고 주간만화잡지와 스포츠신문에서는 이현세의 《까치》 시리즈와 《로보트 태권 V》의 김형배, 《변금련》의 배금택, 《악동이》의 이희재와 《각시탈》의 허영만, 《신손자병법》의 한희작, 이진주의 《달려라 하니》가 유명하다. 단체로는 1958년 김용환 ·신동헌이 주도한 한국만화가협회와 김성환 ·안의섭이 주도한 현대만화가협회가 각각 만화가협회전과 문화단체와의 야구경기 등 행사를 많이 해왔으나, 5 ·16쿠데타 후에 와해되었고, 68년 아동만화가협회가 이상호를 회장으로 발족된 후, 77년 극화분야와 어린이신문 관계 만화가까지 망라하여 만화가협회로 개칭되었다. 90년대에 들어서면서 《한겨레신문》이 발행되면서 박재동의 《한겨레그림판》과 《경향신문》의 김상택의 《시사 희평》이 유명하고 《한국일보》의 심민섭의 《심마니》도 유명하다.

5. 동향
만화잡지로 창간 140년이나 되는 영국의 《펀치:PUNCH》지는 우수한 작가들을 일간신문잡지들에 빼앗김으로써 일시 자진 정간을 할 정도로 경영이 부진하여 과거와 같이 개각(改閣)에 영향을 끼치던 시기는 지났다는 말을 듣다가, 급기야는 폐간되었다. 그러나 영국은 많은 신문지상에 여전히 시사만화가 활기를 띠고 있다. 미국에서는 돈, 마틴 등 블랙유머작가가 주축을 이룬 《매드:MAD》와 이와 유사한 형식의 만화잡지로 공상과학물 만화가 성행하였다. 독일과 프랑스 ·이탈리아 등에서도 여전히 신문지상에 만화가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으나, 고급 시사만화잡지계열의 것은 영국과 같이 차차 자취를 감추고 있다. 다만 순수 유머만화로 엮어진 단행본과 에로만화를 주축으로 편집된 만화잡지가 유행하고 있는데, 그 까닭은 현대의 기계문명 속에서 지쳐버린 현대인들의 가벼운 휴식의 방편으로 스포츠와 더불어 만화를 찾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만화는 여기저기 보급되어 현대 커뮤니케이션의 한 양식으로 자리잡고 있으나 제 9의 예술이라는 만화의 또 다른 명칭에 동의하는 사람들을 찾기란 쉬운 일은 아니다. 오랫동안 만화는 저급한 성질의 아이들만 보는 것으로 아니면 싸구려 환상을 담은 오락물 정도로 가볍게 보아 넘겨져 왔을 뿐이다. 그러나 만화의 역사는 인류가 시작되었을 때부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며 그 역사적 고찰로써 대중적 포용력과 상업성 그리고 사회전반에 미치는 영향력을 그 발전가능성에 비추어 다시 확인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작지만 오래된 역사
오늘날 인간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가장 오래된 증거는 남부 유럽의 고대 동굴 벽화에 남아 있다. 만화같은 그 기묘한 그림들이 그려진 때는 3만년 이상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러나 역사 시대 이전에 그려진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집을 치장하기 위한 순수한 장식품일 것이라는 추측과 일정한 이야기를 묘사하는 주술적인 특성을 가진 것이라는 추측을 할 수 있다. 이러한 초기의 그림들은 원시적이면서도 이상하게 현대적인 것처럼 보이는 기묘한 만화류의 특성을 갖고있다. 많은 학자들은 초기의 동굴미술가들이 그보다 더 이상 잘 그릴 수 있는 재능이 없었고 그러한 기술의 부족이 어떤 만화적 특성을 낳았을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다. 만화를 그리는데 있어서 기본적인 기술은 이집트인들이 파피루스를 발명한 이래로 거의 변하지 않았다. 각각의 예술가들은 처음에 여전히 펜이나 붓으로써 종이류의 표면에 선과 얼룩을 그린다. 펜, 붓, 종이, 잉크, 페인트 등이 수세기에 걸쳐 개발되어 왔으나 기본적인 기교는 본질적으로 동일한 것으로 남아있다. 단지 최근 몇십년동안 컴퓨터가 매우 상이한 방식의 만화창작을 제시해 줄 수 있는 도구로 등장하고 있을 정도이다. 그러나 만화를 복제하고 배포하는 방법에 있어서는 기술이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여 왔다는 점을 간과할 수 없다. 근대 만화로 가는 길을 닦은 것은 바로 15세기 인쇄술의 급속한 보급이었다. 인쇄술의 도래와 더불어 만화는 대량으로 제작되고 값싸고 광범위하게 배포되었다. 수세기에 걸쳐 인쇄술은 발달해왔고 상을 찍는 기술도 진전되어 왔다. 20세기 영화의 도래와 함께 만화는 새로운 배포 경로를 통해 전달되었다. 바로 에니메이션의 탄생이다. 이러한 만화영화는 이웃의 영화관처럼 가까운 것이 되었다. 텔레비전으로 인해 그 배포는 훨씬 더 광범위하게 이루어졌으며 생생한 만화가 전달되었다. 미래의 만화 산업의 기술은 바로 컴퓨터 그래픽과 각 가정에 보급된 컴퓨터의 형태로 등장하고 있다. 어쩌면 21세기 쯤에는 아마도 원하는 사람은 누구나 자신 스스로 만화를 그리고 영화로 만들 수 있으며, 자신들의 작품을 다른 사람들의 의사세계와 조화시킬 수 있을 것으로 여겨진다.


만화의 역사

(1)정치 만화
일반적으로 영국의 화가 윌리엄 호가드를 서구 역사상 최초의 만화가로서 간주하고 있다. 호가드는 이탈리아인들이 소개한 개인적인 차원의 캐리커쳐를 뛰어넘어 보편적으로 수용될 수 있는 유우머를 그렸다. 그는 최초의 정치만화가인 동시에 그의 서술적 만화이야기는 현대 연재만화의 전조가 되었다. 그 외에도 토마스 로우랜드슨과 고아는 정치적 설득을 가진 만화양식을 보급하는 데 기여했으며 프랑스의 오노레도미에는 만화를 미술의 차원으로 끌어 올렸는데 투옥까지 당하는 수난을 겪었다. 그의 사회적 악습에 대한 일반적인 풍자와 정치적 상황에 대한 공격으로 인해 넓은 견지에서 보면 정치만화에 대한 체제와 힘은 도미에에 의해 정립되었다고 볼 수 있다.   식민지시대의 미국에서는 많은 반영 만화들이 익명의 작가들에 의해 그려졌다. 그 중 한 사람이 벤자민 프랭클린이다. 그는 종종 미국 최초의 정치만화가로 논의되고 있다. 미국 저널리즘 초창기에는 정치만화가들이 크레용의 딱딱한 용모와 음침한 주색을 통한 표현법을 주로 사용했다. 그 대표적 인물이 터마스 내스트이다. 대도시에서 대형 신문들이 등장함에 따라 정치만화는 두 가지 양식으로 나누어 발전하게 되었다. 하나는 일간신문을 통한 시사만화로 그것은 복잡한 신문 신디케이트로 발전되었고 또 하나는 소규모의 잡지를 통한 표현이었다. 신문만화가에는 죤 넥커친, 로린 커버, 재이 딩 다링, 넬슨 하딩, 다니엘 피츠패트릭 등이 있었고 그들은 각기자신들의 시사만화로 한 개 또는 그 이상의 플리쳐상을 수상한 경력을 가졌다. 정치잡지에서 일하는 시사만화가들은 신문에서의 경우보다 상대적으로 훨씬 적은 독자를 가졌으나 그들이 선보인 논점과 표현법은 후세의 만화가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아트 영, 보드맨 루빈슨, 죤 슬론, 로버트 마이너 등은 크레용과 육중하고 딱딱한 용모의 사용, 도미에의 표현법 등을 사용했다. 2차 대전을 지나 1970년대에는 새로운 세대의 정치만화가들이 등장하였는데 패트 오리판트가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하였다. 이 때의 만화가들은 로널드 셜즈와 같은 현대 삽화가의 영향을 받아 소묘적이고 가는 선을 사용한 캐리커쳐를 지향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그들은 날이 넓은 도끼적인 공격보다는 가늘고 긴 쌍칼적인 재치를 통해서 자신들의 세상에 접근하고 있다. 유우머에 대한 이러한 경향은 짐 베리의 한 칸 만평인 베리의 세계에서 두드러져 유우머 만화가 신문의 사설면에 실릴 수 있도록 만든 계기가 되었다. 초창기 미국의 급진적인 만화가들로부터 강한 반발을 산 베트남 전쟁은 지하신문과 지하 연재만화에서 더욱 드러났다. 1980년대 이후의 정치만화는 사회의 여러 가지 경향들 이를테면 독자의 보다 강화된 시각적인 세련성, 더 많은 오락에 대한 요구 그리고 정치적 집단에 대한 태도의 변화 등을 반영하고 있다. 즉 유우머에 대한 요구, 시사면에 대한 구독률을 높혀줄 시각적 구성에 대한 요구는 신문만화가의 새로운 역할을 의미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현대의 신문만화는 정보를 알려 주고 설득하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사람들을 끌어 들어야만 한다.

(2)유우머 만화
1840년대의 카툰이란 영어단어의 의미는 이탈리아어인 키르톤과 같은 의미로 사용되었다. 그것은 대형미술작품을 제작하기 위해 행해지는 기초적인 스케치를 뜻하는 것이었다. 이 당시의 만화는 정치적 논평과 유우머적 성격 모두를 동시에 가졌다. 유우머스러운 만화가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논평의 영역에서 벗어나서 인간존재에 대한 완전하고 현세적인 세계를 떠맡게 된 것은 1860년대에 들어섰을 때이다. 유우머 만화는 삽화적인 표현법을 사용하였고 그 표제는 짧고 여러 줄로 구성된 연극대사식으로 이루어졌으며 상황설명도 곁들여 있었다. 1920년대에 와서 만화의 표제가 점점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종종 유우머만화는 여전히 두 줄의 농담 대사로 구성된 삽화형식을 취했다. 그 이후 만화의 표현기법은 점점 더 단순해지고 더 다양하게 변모하였다. 1930년대의 만화가로는 제임스터버와 찰스 아담스를 들 수 있다. 이들 만화가들은 각기 그들의 기법을 추종하는 많은 모방자를 낳았고 만화 유우머의 새로운 길을 전개시켰다. 1940년대에 이르러서야 전혀 설명을 붙이지 않은 상태로도 만화를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이 가능해졌다. 현대 유우머만화는? 미술 표현법을 통해 그림을 그림으로써 자신들의 현대 유우머 감각을 가장 적절한 시각적 표현으로 구성 짓는 것이다.

(3)이야기 만화 
정치만화와 유우머만화 이후에 등장한 만화분야는 연재만화이다. 그것은 현재 뚜렷한 확장을 보이고 있는 듯하다. 연재만화가 처음 출현했을 때 그것은 커뮤니케이션에 있어서 중요하고 획기적인 변화를 의미하였다. 그러나 연재만화가 처음 등장했을 때 이것은 미술의 영역으로부터 즉각적인 환영을 받지 못했다. 연재만화는 종종 황색저널리즘이라고도 불리우는 선정적 저널리즘과 함께 탄생하였다. 즉 최초의 연재만화인 「노란꼬마」로부터 그러한 용어가 만들어진 것이다. 1880년대에 들어와서 많은 미국 신문들이 대중들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일요판을 발간하기 시작했다. 월드지와 저널지는 독자확보 쟁탈전을 벌였으며 그 결과 리차드 아우트콜드가 월드지에 「노란꼬마」를 선보였던 것이다. 연재만화란 용어는 인물의 계속적인 출현, 그리고 그 그림 속의 대화나 본문이 곁들인 연속적인 장면들로 꾸려지는 어떤 하나의 이야기가 있을 경우 그것에 적용된다. 그러한 정의에 입각한다면 노란 꼬마가 분명히 첫번째 연재만화가 된다. 그러나 데이비드 쿤즈레는 ①분리된 이미지들이 연속적으로 연결되어야만 한다. ②이미지가 본문보다 우세해야 한다. ③연재만화가 등장하기 위해 이용되고 본래부터 지향하고 있는 매체는 재생산이 가능한 것이어야 한다. ④그 연속된 장면들은 도덕적이며 또한 시의적인 이야기를 전달해야만 한다는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이 정의에 따르면 윌리암 호가드의 작품뿐만 아니라 스위스의 화가인 로돌프 튀퍼의 작품도 이에 포함될 수 있음을 보여 준다. 그러나 아루트콜트가 1896년 그림과 대사를 함께 결합시킨 이후에야 그 양식은 창의성과 대중성 양자 모두에 있어서 급격히 발전하였던 점을 무시할 수 없다. 초기의 연재만화들이 사실적인 연재만화나 공포물 연재만화의 표현법과 같은 폭력성향을 갖지는 아니했다. 초기의 연재만화는 주로 유우머류였으며 슬램스틱과 혼전난투의 부수적인 사건에 크게 의존하였다. 1905년 시카고 트리뷴지는 저질 폭력만화를 비판하며 상상력이 풍부하게 가미된 파이닝거의 「킨-데르-키즈」를 일요판에 연재하였다. 그러나 `다음 호에 계속'식의 이야기는 독자들을 당황하게 만들었고 다른 작품으로 대체되게 만들었다. 그러나 파이닝거는 다른 만화가들이 연속적인 이야기를 꾸며 나갈 수 있도록 길을 닦아 놓았으며 그의 뛰어난 그림은 만화 분야에서 만화예술이 달성할 수 있는 것에 대한 전망을 제시?주었다. 그 뒤 일간신문의 연재만화가 탄생한 것은 샌프란시스코의 스포츠면 만화에서부터였다. 미국의 연재만화작가들이 풍부한 미술품, 저작물들을 만들어 내면서 점점 그것의 구입은 손쉬워졌으며 1980년에는 4개의 연재만화가 각기 1000개 이사의 신문에 공동배포 되었다. 그것은 딘영과 짐레이몬드 공동창작의「블론디」, 찰스 엠 슐츠의「피너츠」, 모트 워커의「비틀베일리」그리고 딕 부라운의「공포의 하가」가 바로 그것이다. 초기의 연재만화들은 유우머만화와 밀접한 관련을 맺었다. 그러나 1929년 로이크레인이 모험을 즐기는 군인인 이지선장을 연재만화인「빨래대야」에 선보임으로써 이후「딕트레이시」,「타잔」등과 같은 모험연재만화가 시작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모험 이야기는 만화책이 유행되면서 비로소 실질적인 제 길을 찾았다. 미국의 1세대 만화책들은 유우머를 중점적으로 다루었으나 1937년에는 형사연재만화라는 단일 주인공을 대상으로 한 첫번째 모험만화책이 출판되었다. 그 이후 초능력 주인공의 이야기인「수퍼맨」,「배트맨」,「아메리카 선장」,「마블대장」등이 등장하였다. 전쟁이 끝난 후 만화책 산업은 무너지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독자를 끌어들이기 위한 시도로 몇몇 발행인들은 공포와 폭력을 삽입하기 시작했다. 1950년대 동안 이러한 무시무시한 괴기물들에 대해 만화규약위원회가 조직되어 만화책의 내용에 대한 기준을 책정하게 되었다. 이 위원회의 조치는 만화책 기업들을 살릴 수는 있었지만 경쟁 시각매체인 텔레비전과 영화 등이 그 주제와 처리 면에 있어서 더욱 자유분방 해져 가는 상황에서 만화에 대한 구독률을 떨어뜨리는 계기가 되었다. 1960년대에는 문제를 갖고있는 초능력 주인공「스파이더맨」,「헐크」,「실버 서퍼」를 선보임으로써 만화책 분야에 새로운 분위기를 일으켰다. 1960년대에는 만화규약위원회에 반발한 아주 색다른 반응이 나타났는데 그것은 바로 코믹스(COMIX)라고 명명된 지하 만화책의 성장이다. 베트남전에 대한 반전감정에 부추겨지고, 늘어나는 마약 문화의 반권위주의적인 분위기에 편승하여 코믹스는 자신들의 표현의 자유를 뽐내며 성폭력 및 마약에 대해 삽화적 표현을 꾀하였다. 코믹스의 급증은 창조적 힘의 분출을 낳았고 새로운 유명만화가들을 배출하였으나 1970년대의 중반에 이르자 급격히 쇠퇴하기 시작했다. 최근 연재만화를 보면 유우머적인 성향은 더욱 늘어나고 모험적인 성향은 더욱 줄어드는 추세를 나타내고 있다. 유우머 연재만화도 더욱 간결해지고 있어 엉뚱하고 우스꽝스러운 이야기보다는 한 줄 이내의 짧은 대사의 이루어진 재담으로 흐르고 있다. 짐 데이비스의「가필드」가 그 좋은 예이다. 또한 애완동물에 관한 연재만화가 증가하고 있으며 사회의 동향 또한 반영되고 있다. 즉 직업여성에 대한 이야기나 사무적 근로자가 점점 늘어남에 따라 사무실을 무대로 한 연재만화가 늘어난다는 것이다. 연재만화 역시 임무를 가진 독자를 끌어들어야만 하는 만화이다. 변모하는 일간신문 그리고 변모하는 사회구조는 전통적인 연재만화에게 어려움을 부과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오래된 만화인물은 급변하는 세계에서 향수를 불러일으킨다는 점에서 항구성을 가지며 변모하는 사회양식을 반영해 주는 새로운 친구들, 새로운 인물들에 대한 끊임없는 요구 역시 존재한다.
  
(4) 만화영화
만화영화는 움직이는 그림을 움직이는 것으로 나타나게 해주는 것과 똑같은 지각현상에 기초를 두고 있다. 하나의 정지된 사진이 그것과 단지 조금만 틀린 다른 정지된 사진으로 신속하게 대치되었을 경우 우리의 눈은 그 변화를 움직임으로 해석하는 것이다. 일상적인 영화는 긴 일련의 송으로 그린 이미지들로 구성된다. 말할 필요도 없이 유연한 동작들의 연결을 창출하기 위해서는 짧은 장면에 있어서도 세밀하게 제작된 수천의 그림이 필요하다. 최근에는 컴퓨터가 만화영화 제작자의 일을 도와주게 되었으나 전통적으로 만화영화는 힘들고 고된 작업이다. 만화영화에서 만화커뮤니케이터는 움직임, 속도, 음향 및 색깔을 조절함으로써 보는 사람들의 주의를 흐트러지지 않게 꽉 붙잡아 둘 수 있다. 현대의 만화영화는 역사적으로 많은 조상을 갖고있어 중국의 그림자 연극과 17세기의 환등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러나 가장 명백한 현대 만화영화의 아버지는 J.S.블랙톤으로 그는 시사 만화가이면서 동시에 영화제작자였다. 1906년 그는 우스꽝스러운 얼굴의 익살단계라는 만화영화를 제작하였다. 그 속에서 그는 하나의 장면, 하나의 회전이라는 만화인물을 움직이게 만드는 기본공식을 발견하였다. 연재만화 창작자인 윈저 멕케이의「순한 공룡 거티」가 1914년 처음 나왔을 때 그 영화는 커다란 성공을 거두었고 만화영화에 대한 관심을 구체화시켰다. 그것은 만화영화가 예술과 커뮤니케이션의 매우 흥미를 자아내는 새로운 양식이며 커다란 상업적 잠재성을 지닌 하나의 사업이라는 점을 보여 주는 것이었다. 초기의 만화영화들은 기존의 신문연재만화들을 자유롭게 모방하였고 만화영화가 1920년대에 유행하기 시작함에 따라 그 나름의 스타들이 탄생하기 시작했다. 역으로 그 중 몇몇은 영화화면에서 신문연재만화로 옮겨가기도 했다. 무성영화 시대의 만화영화스타 중에는 팻 설리반의「팰릭스」가 최고 인기스타였다. 그것은 일련의 성공적인 영화에서 주연으로 등장하여 나름의 연재만화를 갖게 되었으며 또한 널리 상품화되어 최초의 만화인물이 되어 현재까지도 계속 이어지는 전통을 수립하였다. 1928년 디즈니는 동시 녹음한 최초의 영화인「기선 월리호」를 창작하였다. 그 주인공이 바로 미키 마우스였으며 이 영화로 인해 디즈니 제국은 번창하기 시작했다. 디즈니는 소리와 그림을 결합하였고 그 후 총천연색 만화영화를 개척했으며 마침내 1937년에는 최초의 성공적인 만화영화인「백설공주와 일곱난장이」를 제작하였다. 그는 계속 성공을 거두며 정상에 올라 경이로울 만치 인기있는 디즈니랜드와 디즈니월드라는 오락공원을 제작하였다. 또한 그의 영화작품들은 텔레비전에 공개되어 아동프로에 혁신을 일으키며 텔레비전 사상 가장 오래된 프라임 타임쇼를 만들어 냈다. 디즈니는 그의 상술로 자신의 인물들을 연재만화, 만화책 그리고 가능한 모든 종류의 상품-팔목 시계로부터 티셔츠, 미키 마우스모자에 이르기까지-을 탄생시켰다. 디즈니는 강력한 의사세계, 폐쇄된 환경속의 고전적 전형의 구조라 할 수 있는 일련의 이미지들을 창조했으며 1937년의「피노키오」, 1941년「덤보」, 1942년「밤비」등은 큰 성공을 거두었고 1940년「판타지아」는 가장 예술성이 돋보인 작품으로 꼽히고 있다. 초창기 동부 해안 만화영화가들 중 막스플레셔의「베티 부프」는 강한 성적 매력을 지닌 귀여운 바람둥이 아가씨로서 1930년대의 영화뿐만 아니라 연재만화 완구 인형 및 기타 베티 부프 상품들에서 스타의 자리에 올랐다. 또 다른 스타로는 이 씨 세가의 연재만화를 각색한「보빠이」가 있었다. 1939년에는 디즈니에게 도전한「걸리버 여행기」가 큰 성공을 거두었으나 1941년에 내놓은 두번째 작품인「버그씨 도시로 가다」는 그에게 재정적인 파탄을 안겨 주었다. 폴테리는 1942년 첫번째로「마이티 마우스」를 소개했고 그 후 1946년「핵클과 재클」을 선보였다. MGM의 조 바베라와 빌 한나는 큰 인기를 거둔「톰과 제리」시리즈를 창작했으며 텍스애버리는 신속히 전개되는 개그와 행동의 스타일을 개발하였는데 이는 만화의 전 영역에 영향을 미쳤다. 위너부라더스사 작품으로는「벅스 바니」, 「포키 피그」그리고「개피 덕」등은 꾸준한 인기를 끌었다. 유니버셜사에서는 월트 랜츠가「딱다구리」를 만들어 냈다. 가장 각광을 받았던 UPA제작소에서는 동물로부터 탈피하여「미스터 마구」, 1950년 아카데미 수상작품인「제럴드 맥보잉 보잉」등을 만들었다. 2차 대전 중에는 단편적인 만화영화가 군인 훈련용 영화로 광범위하게 이용되었다. 영국의 죤 할라스와 죠이 바첼러의 작품도 미국에 상륙하였는데 가장 유명한 것은 죠지 오웰의「동물 농장」이었다. 1940년대 텔레비전이 이미 전통적인 영화관객들을 갉아먹고 있었으며 영화관들이 여기저기에서 문을 닫았다. 헐리우드는 만화영화의 제작을 중단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텔레비전에 의해 만화영화의 새로운 시장이 창조되었으며 새로운 경제질서가 수립되었다. 1954년에 이르러 ABC방송국은 디즈니와 상당한 거래를 체결하였다. 이러한 거래가 디즈니에 의해 일단 이루어 지자마자 곧 텔레비전에 있어서의 만화영화쟁탈전이 벌어지기 시작하였다. 텔레비전은 오랫동안 잊혀졌던 만화영화에 대해 새로운 진열장을 제공해 준 반면 그 구미에 따라 신속하게 제작된 만화를 요구하게 되었다. 최근 만화영화의 중요한 새로운 방향들은 텔레비전 화면에서가 아니라 예전으로 되돌아가 영화관에서 발생하고 있다. 또한 만화영화는 국제적인 현상이 되었고 어른들의 주제를 다루고 있다. 장편만화영화가 여전히 고전을 면치 못하고있는 가운데 컴퓨터로 제작된 만화영화가 등장하여 종전에 수작업으로 할 때 수천 시간이 소요되었던 것을 간단히 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었다. 현재 만화영화는 성숙한 커뮤니케이션 매체로서의 모습을 갖추고 있는 것이다.

(5) 한국의 만화영화
한국 최초의 만화영화는 신동헌 감독의「홍길동」이다. 동생인 신동우 화백이 당시 소년조선일보에 연재하던「풍운아 홍길동」을 신동헌 감독이 만화영화로 제작한 이 작품은 여러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일본 역대 최고 제작비가 투여된「아키라(AKIRA)」에 사용된 동화매수와 비슷한 수준이라는 것을 보면 그 완성도가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다. 그 작품성에 못지 않게 흥행에도 상공하였으나 만화영화에 대한 재투자가 이루어지질 않아 신동헌 감독은 극장판 만화영화에서 물러난다.「홍길동」의 성공으로 곧이어 최소제작비의 국산만화영화제작 붐이 일어났고 외화 수입업자들도 이에 편승하여 수입에 비중을 두기 시작했다. 디즈니의「피터팬」과「신데렐라」와 같은 작품들이 이 때 극장에서 개봉되었다. 그러나 텔레비전의 보급으로 영화산업은 타격을 입게 되었고 1971년 용유수 감독의「호동왕자와 낙랑공주」이후로 거의 중단되었다. 1975년 극장가가 서서히 살아나기 시작하였으나 만화영화 시장은 당시 어린이 프로에 대한 자체 제작능력이 턱없이 부족했던 국내 방송실정상, 이를 대체하기 위한 일본 만화영화들로 채워지고 있었다. MBC에서 방영되고 있었던「마징가 Z」의 인기는 하늘을 찌르는 듯했다. 1976년 김청기 감독의「로보트 태권 V」가 개봉되었고 그 주제가의 인기 또한 대단했다. 이 성공으로 인하여 2탄이 제작되었는데 최초의 OST음반 발매라는 기록을 세우기도 했으나 1탄 만큼의 호응을 얻지 못하였다. 「로보트 태권 V」로 창작만화영화시장은 양적으로는 팽창되었지만 질적인 발전이 뒷받침되질 않아 점차 쇠퇴해갔다. 이와 때를 같이하여 국내에 반입되기 시작한 외국의 하청 물량들은 삽시간에 한국 만화영화 시장을 집어삼켰고 이후 약 10년간 하청산업은 호황을 맞게 된다. 1968년 TBC는 영화부 내에 만화영화부를 두어 일본과 합작이라는 허울로「황금박쥐」와「요괴인간」의 하청작업을 수주받았던 것이다. 열악한 제작여건 속에서 우리 나라의 하청부분은 전체 작품의 일부에 지나지 않았다. 이렇듯 일본의 필요성에서 하청만화영화제작사들이 국내에 난립하기 시작하자 열악한 조건에 있던 창작만화영화제작사들도 하청산업에 뛰어들게 된다. 1968년에 설립되었던 국제아트프로덕션은 일본이 아닌 미국과의 하청계약을 체결함으로서 마침내 한국은 일부 작업뿐만이 아닌 연출, 원화, 동화, 선화, 채화, 촬영, 편집에 걸쳐 전 공정을 소화해 낼 수 있는 제작사들이 속속 생겨나 한국의 하청 애니메이션 산업은 구조화 시스템화 되어갔다. 더구나 방송국의 입장에서는 이렇게 국내의 노동력으로 하청 제작된 작품을 다시 싼 가격으로 수입해 방송할 수 있다는 이점 때문에 굳이 국내창작만화영화 제작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안일한 태도를 보여 왔고 정부당국의 입장에서는 연간 매출액 1억 달러 규모의 하청시장을 외화벌이의 품목으로 상공부 휘하에 두었던 것이다. 80년대에 들어서자 한국만화영화 시장은 호황을 맞아 프랑스, 캐나다, 대만 등 제3국의 하청 물량들로 인해 당시의 제작사들은 작업을 전부 소화해낼 수 없을 지경에 처할 정도였다. 70년대 초 재미교포 애니메이터로서 미국에서 대단히 지명도 높은 만화영화감독인 스티브 한은 한국에서도 만화영화가 제작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되고 국내 최초 애니메이션 제작사인 한호흥업을 1978년에 설립하여 동서 동화를 합병하고 미국식 선진 만화영화기술을 한국에 다량으로 도입한다. 각국의 애니메이션 메이져들과  제휴하며 규모를 확장하던 중 하청작업의 단조로움에 심한 회의를 느껴 본연의 자세로 돌아가 창작만화영화 제작에 강한 의지를 보여 세계시장을 먼저 내다본「스타 체이서」라는 세계 최초의 3D MAX입체만화영화 제작을 강행하게 된다. 80년대 초 개발된 3D MAX라는 기법은 여러 가지 문제점과 동시에 막대한 제작비가 수반되는 것이다. 이 입체만화영화의 경우 똑같은 씬을 인간의 좌우 눈의 각도에 근거하여 두 장씩 그리는가 하면 촬영시 2개의 필름이 핀트를 엇갈리게 하여 시각적 착각효과를 극대화하여야 한다. 이처럼 기술의 한계에 가까운 고급만화영화였기에 기네스 북에도 올라있는 것이다. 그러나 결과적으로「스타 체이서」는 한국의 브랜드가 되진 못했다. 당시 정부 당국의 애니메이션에 대한 애매모호한 업종분류입장과 전무했던 지원정책, 게다가 스필버그류의 영화 붐이 한창 고조되고 있어 디즈니 영화마저 참패하고있을 시절, 미언론의 호평에도 불구하고 예외없이 흥행에 참패하여 작품의 판권마저 파라마운트가 가져간다. 이리하여 스티브 한의 한호흥업은 경남기업에 넘어가고 그는 망명성 도피를 하게 된다. 우리 나라 만화영화의 수준이 낙후한 까닭 중의 중요한 것은 TV판 만화영화 제작에 투자와 관심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1970년대 초 어린이 프로그램의 자체 제작능력이 턱없이 부족했던 국내 방송국들은 초저녁대의 채널을 메우기 위하여 일본의 만화영화를 수입, 방영하기 시작했다. 일본문화의 유입이 금지되었던 시점에서 방송국들은 제3국을 통해 수입하는 편법과 그렇게 사 온 작품에 우리식 번역과 녹음을 하여 보는 이들로 하여금 마치 이것이 우리 나라에서 만든 만화영화인 것처럼 위장시켰다. 때문에「마징가 Z」의 주제가를 국제경기에서 응원가로 사용해 일본인들을 놀라게 했고 92년 프로축구에서 우승한 포항제철의 마스코트는 일본만화인「철완 아톰」이었다. 이렇듯 한국의 텔레비전 애니메이션 시장은 그 시작부터 국적불명의 외국 애니메이션들로 거의 대체되어왔다. 더구나 미국이나 일본처럼 정기적으로 자국 내 방송사의 작품을 제작할 기회가 거의 전무했기 때문에 국내의 만화영화 제작인력들은 더욱 해외 하청 애니메이션 작업의 기능적 노예로서 안주할 수 밖에 없었다. 국내 방송사들은 근 30년 동안이나 제작비가 많이 든다는 이유 때문에 우리의 기술과 잠재력을 무시한 채 몇 년 묵은 싸구려 외제 만화들만을 수입 방영하여 민족적 자존심을 떨어뜨려 왔던 것이다. 이렇듯 텔레비전 만화영화를 외면해오던 각 방송사들에게 그 필요성을 인식하게 해준 계기는 바로 88년 서울 올림픽이었다. KBS의「떠돌이 까치」와 MBC의「달려라 호돌이」가 바로 그 시작이었다. 「떠돌이 까치」는 이현세 원작의 인기만화를 80분 짜리 장편으로 엮은 특집물이었고, 「달려라 호돌이」는 매주 10분 씩 방영하는 올림픽 캠페인 성격의 시리즈물이었다. 이렇게 해서 물고가 트이게 된 국내 자체 제작 텔레비전 만화영화 시장은 KBS가 김수정 원작의「아기공룡 둘리」를 제작 방영하면서 더욱 가속화되어간다. 이 작품들은 비록 원작의 분위기를 100% 살리지는 못했지만 만화영화에서만 표현이 가능한 여러 가지 연출들을 구사하여 시청자에게 좋은 반응을 얻었다. 그 뒤 MBC는 독고탁을 주인공으로 한「독고탁의 비둘기 합창」을 KBS는「떠돌이 까치」의 속편인「까치의 날개」를 내놓게 되었다. 양사는 이후「아기공룡 둘리2」「태권동자 마루치」「도단이」「달려라 하니」「천방지축 하니」등을 내놓아 텔레비전 만화영화의 양적, 질적 발전을 도모했다. 1989년 프랑스 칸느에서 열린 국제 텔레비전 프로그램 가을견본시에서 KBS에서 출품한「2020년 원더키디」가 프랑스 국영 앙탱 2TV를 통해 최우수 만화영화로 소개되었다. 그러나 원더키디의 메인 컨셉트인 국제적 감각은 국내 시청자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지 못하였고 그 실추된 이미지를 쇄신하기 위하여 제작된 것이 바로 배추도사 무도사를 등장시킨「옛날 옛적에」이다. 그 뒤 허영만의「날아라 슈퍼보드」와 배금택의「영심이」이원복의「사랑의 학교」가 텔레비전 만화영화에 많은 부분을 차지하게 되었다. MBC 역시 이두호 원작의「머털도사」한미합작의「보거스는 내친구」를 방영한 바 있다. SBS에서는 국내 최초의 텔레비전판 입체 만화영화인「빛돌이 우주2만리」를 선보였다. 1980년대 중반 이후 거의 전멸 직전에 처했던 국내 극장판 만화영화의 부활은 1989년의「로저래빗」「공룡시대」「환타지아」등의 대작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국내 극장가의 만화영화 붐은 디즈니의「인어공주」가 43만 명의 관객을 끌어들이면서 시작되었다. 또한 음성적으로 유통되었던 일본 만화로 인해 우리의 만화시장은 위협받고 있었다. 이러한 시점에서 94년 11월「블루시걸」은 관객을 50만 명 동원할 만큼 흥행에 성공했으며 비디오 출시 분량만 8000장이나 된다. 또한 직배 영화사인 콜럼비아 트라이스타 배급망에 의해 전세계 53개국에 수출될 예정이며 최경식 씨가 음악을 맡았던 음반과 뮤직비디오가 별도로 선보이게 되며 여러 캐릭터 상품이 선보이고 있다. 그 외에 CD-ROM용 게임 소프트웨어까지 개발될 예정이다. 이렇듯 참담한 완성도와는 대조적으로 대성공을 거둔 것은 과장광고에 의한 홍보력이 이루어 낸 기적인 셈이다. 하지만 극장판 만화영화 제작이 채산성이 있다는 이미지를 심어 줌으로써 많은 기업들이 만화영화 산업에 눈을 돌리게 된 것은 블루시걸의 성공적 측면이라고 할 수 있다. 국내 만화영화업계는 1000편이 넘는 연간 매출이라는 호황속에 안주하고 있고 국산 만화영화가 전무하긴 하지만 우리 나라 만화영화의 수준은「2020년 원더키디」에서 보았듯이 결코 뒤지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블루시걸」에서 보았듯이 엉성한 작품성을 낳게 한 것은 애니메이션 전문 기획자의 부재 속에서 만화영화 제작이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이러한 제작 위원회를 도입하여 프로젝트를 진행시키고 있는「아마게돈」프로젝트는 어느 특정 제작사에 작품을 맡기는 것이 아니라 각 부문이 전문화되는 것이다. 즉 전문 기획자가 기획을 하고 전문가가 시나리오를 쓰고 전문 만화영화감독이 연출을 하며 그 외 부분별 전문 스텝들을 동원해 작업을 하는 것이다. 80년대 후반 IQ점프에 연재된 이현세의「아마게돈」은 애니메이션 작업 외에 영상산업이 부가적으로 창출시킬 수 있는 다채로운 기획 안을 준비해놓고 있다. 비디오 게임, 캐릭터 상품, 가상현실 체험 체계용 놀이기구 제작에 대기업들의 다방면의 투자와 지원을 하고있다. 먼저 선보이게 될 아마게돈 애니메이션 작업은 전체 투자비 40억 원 중 17억 원이라는 역대 최고 약수가 투여될 정도로 큰 비중을 차지한다. 세계시장에 한국의 고유브랜드로서 인정받기 위해서 다분히 외국의 작품에서 모방되어진 듯한 몇몇의 디자인과 장면의 구성들, 애매모호한 결말로 끝나 버린 에필로그 등의 문제점을 개선해야 한다는 과제를 안고 있으며 또한 국산 만화영화의 붐을 조성해야 할 것이다. 이외에도 8월에 개봉예정인 소년챔프에 연재되었던 지상원 원작의「붉은 매」와 여름에 개봉될 엄 프로덕션에서 제작한「스퍼 차일드」, 고 신동우 화백의 미완의 유작을 현대적 감각에 맞추어 리메이크한「홍길동95」, 12월 개봉 예정인 스포츠 서울에 연재되었던「헝그리 베스트5」등이 기다리고 있다. 1995년에는 어느 해보다도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많은 국산 만화영화들이 개봉준비를 하고있는데 이것은 그에 앞서 개봉될 디즈니의 최대 야심작「포카 혼다스」가 20만의 관객동원을 장담하고 있는 이 시점에서 당당히 겨룰 수 있는 원동력이 될 것이다.

4. 나오며
만화발전의 가장 중요한 요소는 독자의 만화에 대한 인식이다. 우리의 만화시장은 아직도 어른들에게 만화가 받아들여지는 것이 힘들다. 지하철 안에서 거리낌없이 만화를 볼 수 있는 어른이 있을 때 만화는 비로소 대중문화의 한 장르로서 자리잡을 수 있는 것이다. 지금의 만화 애호세대가 20대 30대가 되더라도 학년에 따라 교과서가 바뀌듯 자연스럽게 그 나이에 맞는 만화를 접할 수 있도록 독자층을 넓혀 가야한다. 만화에 대한 지지도와 자체판단력을 가진 독자의 양성이 성자의 첫걸음이다. 대중을 모르는 만화는 작가는 사장될 수 밖에 없다. MBC에서 제작 방영된「머털도사」기법은 뛰어나지 않았지만 탄탄한 스토리, 편집력만으로도 남녀노소를 가릴것 없이 시청자를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만화를 제작하는데 있어서 테크놀로지의 결합은 매우 중요하지만 만화를 돋보이게 하는 것은 개성이다. 개성있는 캐릭터, 개성있는 소재가 우선 뒷받침되어야 한다. 재미있는 요소 즉 유우머, 풍부한 상상력, 숨쉴 틈없는 액션, 기막힌 반전을 느낄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최근 쥬라기 공원으로 벌어들인 수입이 우리 나라 1년 자동차 생산량을 넘는다는 분석은 영상산업의 무한한 가능을 지적해 준다. 만화 또한 일석 무한조의 산업으로 그것이 파생시키는 산업적 이득이 엄청나다는 것을 우리는 적지 않게 실감한다. 극장개봉과 TV방영뿐만 아니라 문구, 완구, 팬시, 패션 마스코트 등의 상품화 브랜드에서부터 음반 비디오, 광디스크, 컴퓨터 게임, CD-ROM 등의 첨단 복합 미디어에 이르기까지 그 응용분야가 거의 무한하다. 우리도 만화가 창출하는 부가가치 품목들에 눈을 돌리지 않으면 안되며 그 선결 조건이 국내 자체 제작의 창작 만화영화인 것이다

 

 

만화란...

 

대상의 성격을 과장하거나 생략하여 익살스럽고 간명하게 인생이나 사회를 풍자·비판하는 그림 형식.

만화의 종류....
◆ 그림체에 따른 분류

▼ 회화체 만화 (만화체)
인물 등신의 비례를 왜곡한다. 6등신, 8등신을 2등신, 3등신으로 왜곡한다. 따라서 비정산적 인간형이지만 상식적 판단을 자연스럽게 해소하면서 일방적으로 웃기기만하는 형상이라보다는 인간의 감정과 의식, 정서와 느낌, 감각과 인식등의 총화이며, 주인공의 개성과 삶의 양식이 단일적으로 통합하는 총체적 전형이다.

▼ 사실체 만화 (극화체)
인물의 등신비에 중심을 둔것으로써, 가장 핵심적인 요소는 사실성의 획득여부에 작품의 성패가 달렸다. 사실성은 소재를 올바른 각도에서 해석하고 동시대의 진실을 통해 정확한 시각으로 재구성하는데서 얻어진다.

▼ 비정형 만화 (순정만화, 판만화)
만화체와 극화체의 중간쯤된다.


◆ 내용에 따른 분류

▼ 희화 (Caricature)
어떤 인물이나 행위를 익살스럽게 표현한 그림으로 캐리커쳐(Carcature)라는 말은 원래 이탈리아어의 '싣는다' '덧붙인다'라는 의미이며 과장된 모습 또는 과장된 부분들을 덧붙인다는 것에서 전의된 것이다.

▼ 풍자만화 (Cartoon)
희화적 수법과 풍자적 언어가 가미된 두가지 방법을 통하여 정치 및 사회문제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환기시킬 목적으로 전제된 만화의 한 장르이다.

▼ 스토리 만화 (Comic Strips)
말그대로 하나의 커다란 이야기를 지닌 만화이다. 극화라고도 하며 대체로 Comic 하게 짜여진다. 최근 상업적인 만화의 주류이다.


◆ 형식에 따른 분류

▼ 단형만화
한칸, 네칸, 여섯칸, 여덟칸 만화 (만평, 풍자,인물희화(캐리커쳐), 도안, 삽화, 단편연재만화, 일러스트레이션)

▼ 이야기 만화
단편만화, 장편만화

▼ 애니메이션


◆ 만화의 영역

만화의 영역은 무궁무진하며 여러 가지 산업과 과학과도 밀접한 연관을 가지 고 있다. 위트와 유머를 주되 언어를 절제하면서 사회 풍자를 주로 하는 고급 스런 장르인 카툰(Cartoon), 정치풍자나 사회비판을 주제로 하여 유명한 정치 인이나 저명인사를 우스꽝스럽게 희화화한 캐리커쳐(Caricature), 시사 만평 이나 한 컷, 네 컷 시사만화, 그리고 보통 생각하는 만화인 코믹스(Comics), 애니메이션(Animation), 팬시,머천다이징(Fancy, Merchandizing) 등 만화의 종류와 그 영역은 정말 다양하다.

옛날에는 만화라 하면 저급한 것이나 아이들 대상의 그림으로 수준 낮게 취 급되던 것이 이제는 정치에도, 경제에도, 교육에도 그 어디에나 점차 깊숙하게 그리고 폭넓게 뿌리를 뻗어가고 있다. 단지 줄거리를 그림으로 풀어 가는 것이 전부인줄 알았던 만화가 이젠 날카로운 풍자를 하고, 알기 쉽게 경제 해설을 해주며, 설득력 있는 홍보물이 되어 우리들을 편리하고 즐겁게 하면서 그 활동 의 영역을 거의 무한대로 넓혀가고 있다. 이는 이제 더 이상 만화를 단순히 우스갯소리로만 보아 넘길 단계는 크게 벗어났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각 나라마다의 만화 특징!!
1. 유럽의 만화




15세기 인쇄기의 발명과 함께 유럽은 신문 및 잡지에 수록된 대중 만화의 역사를 일궜으며, 프랑스를 중심으로 예술 만화의 발전을 선도해 왔다. 프랑스나 이탈리아의 서점에서는 고급스러운 장정으로 꾸며진 만화들이 가장 눈에 뜨이는 자리에 진열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유럽만화의 일반적 특징은 철학과 역사가 있다는 것이다.프랑스에서는 20세기초 만화를 이미 '제9의 예술'로 정의할 정도로 만화의 예술성을 높게 평가하고 있다.프랑스의 단행본 만화는 '앨범'이라 불리운다.91년에는 국가에서 앙굴렘시에 국립 만화이미지센터를 설립하고 프랑스 유수의 만화학교와 만화박물관을 포함하여 유럽 만화의 중심적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2. 미국의 만화




미국의 만화는 크게 카툰과 일러스트레이션을 결합한 다양한 만화체와 수퍼 히어로(Super Hero)를 캐릭터로 한 SF작품과 애니메이션 등이 주종을 이룬다.미국만화는 출판만화에서 애니메이션(만화영화)으로 연계되는 상업만화로 대중화를 이루었다.
일반인에게 잘 알려진 슈퍼맨, 배트맨, 원더우먼 등도 모두 출판만화로부터 시작되었다.이외에 레넌 루리와 같은 만화가의 시사 만화는 전세계의 정치,사회,문화의 방향을 결정지을 만큼 그 영향력이 크다.애니메이션에 있어서는 1928년 세계 최초의 유성 만화영화 증기선 월리를 만든 월트 디즈니가 있다. 이후 최첨단기술로 꿈과 환상이 가득한 인어공주, 라이온 킹, 알라딘, 포카혼타스, 노틀담의 꼽추, 토이 스토리]등 수많은 만화영화를 전세계적으로 흥행시켰으며, 캐릭터 산업 등을 통하여 막대한 수입을 올렸다.




3. 일본의 만화




일본 대중 만화는 애도시대 이후 판화 형태로 발전돼 왔으며, 20세기에는 미국의 '모방 문화'로 출발해 오늘날의 독특한 '이야기 만화'형태를 완성해 왔다.만화의 천국으로 불리는 일본의 '만화'와 '애니메이션'의 힘은 대단하다.국가적 산업으로 장려할 만큼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며 국민 독서율의 절반 이상이 만화책으로 분석될 정도로 남녀노소 관계없이 만화를 좋아한다. 종류 또한 다양한 작품 경향을 보인다.출판만화의 대표격인 드래곤볼, 슬램덩크 처럼 몇 십권에 이르는 방대한 스토리의 연재물, 즉 '극화'라는 만화양식이 새로 생길 정도이다.그리고 일본의 애니메이션은 그 고유의 정서와 그림체 '저패니메이션(Japanimation)'으로 따로 불릴 만큼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다.물론 그 뒤에는 데즈카 오사무와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있었다.미야자키의 작품으로는 우리에게도 낮익은 작품인 TV만화 미래소년 코난에서 부터 이웃의 토토로, 마녀 우편배달부, 붉은 돼지 등이 있다.




4. 한국 만화 연대기



1883~1910년대 ▒ 만화의 등장 ▒



우리 근대만화의 시작은 20세기를 전후한 개화기 신문, 잡지의 발행에서 비롯됐다. 이 시기의 우리 만화는 각종 인쇄매체의 삽화 또는 신문만화의 형식으로 처음 등장했다. 개화기 당시의 인쇄매체를 통해 우리 만화의 태동을 알리는 중요한 '텃밭' 역할을 했다.초창기 우리 만화는 글을 말풍선 속에 가두는 요즘의 만화와는 달리 사람(캐릭터) 주위에 대화 내용이나 상황설명을 부연하는 형태를 취했다. 마치 동양화의 한쪽 귀퉁이를 장식한 싯구와 같은 양식이었다. 이러한 그림칸 구성은 1920년대 신문만화에까지 이어지고 있다.



1910~1920 년대 ▒ 신문 만화의 출발 ▒



3.1 독립 운동으로 한민족의 독립의지를 깨달은 일본제국주의는 1920년부터 소위'문화정치'를 표방, 형식적이나마 민간 언론의 설립을 허가했다. 이때 만들어진 조선일보와 동아일보 등은 비록 제한된 틀 안에서나마 기사와 시사만화를 통해 민족계몽에 앞장섰다. 이를 통해 우리만화는 비로소 대중적인 인기를 얻게되는 전기를 마련하게 되었다.1920년 김동성이 '그림이야기'라는 4칸 만화를 발표했다.



1930 ~ 1945 ▒ 암울의 시대 ▒



일본의 중국대륙 침략으로 한반도는 그들의 전쟁 전초기지가 되고 말았다.이에 따라 전시 총동원령이 내려져 우리 언론 매체는 대부분 강제 폐간되고 만화문화도 긴 암흑의 터널로 빠졌다.1930년대 중반까지 명맥만은 유지했던 한국만화의 역사가 간악한 일제의 언론 말살 정책에 내몰려 신음했으며, 이런 암울함은 1945년 8월 15일 해방의 그 날까지 지속되었다.해방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비로소 민족 문화와 우리글과 말을 되찾았다.우리 만화도 기나긴 암울의 터널을 벗어나 르네상스를 맞았다.대한일보 발행이후 처음으로 정치, 사회 문제를 아무런 제약없이 만화로 표현할 수 있는 '창작의 자유'를 찾게 되었다.



1946 ~ 1950년대 ▒ 만화 전성기 서막 ▒



1950년대를 전후한 시기에는 만화책을 비롯해 만화 전문잡지등의 출판붐이 일어났다.한국 전쟁의 와중에서도 우리 만화책은 피난지 부산과 대구에서 꾸준히 발행되는 등 활기를 띄었다. 이 시기의 만화내용은 고전이나 전쟁을 소재로 한 작품이 주류를 이루었고, 일본만화의 불법복제 및 표절이 공공연하게 이루어지기도 했다.한국전쟁 이후 우리만화는 잡지매체를 중심으로 대중만화 시대의 발판을 마련해 나갔다.

성인, 오락, 어린이(학생)잡지는 물론 1956년에 발행된 「만화세계」같은 만화전문잡지가 생겨나면서 대중의 만화 수요는 나날이 확대되었다.1955년을 전후로 만화전문 출판사인 광문당이 설립되면서 우리 만화출판계는 일대 혁신을 맞았다. 이때 발행됐던 만화책들은 대부분 서점 판매용으로 만들어 졌으나 58년이후 서울을 중심으로 생겨나기 시작한 만화방의 영향으로 서점 판매용 만화책은 하나, 둘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1960년대 ▒ 어린이 만화 전성시대 ▒



1960년대 부터 만화책 대여방은 우리 만화유통의 중심 역할을 해 나갔다.만화방은 날마다 엄청난 수량의 만화책을 공급해야 하는 관계로 소재 빈곤에 시달린 일부 만화 작가의 일본 만화 베끼기 등 '해적 출판' 행위와 '공장 만화'출현의 빌미가 됐다.합동 출판사를 비롯한 대형 만화출판사는 국내 만화출판을 독과점하면서 작가의 창작 행위를 일일이 통제하고 유통망을 유린하는 등 폐해가 극심하였다.




1961년 5.16 군사 쿠데타와 함께 만화원고의 사전검열이 시작됐고, 1967년 불량 어린이 만화에 대한 단속지시로 사전심의와 윤리강령, 실천요강 등의 독소조항을 속속 만화창작계에 적용, 우리 만화작가들의 정신세계를 옥죄어 나갔다. 이처럼 열악한 창작 환경속에서도 우리 만화는 질과 양적인 면에서 골고루 발전하였다.1960년대의 우리 만화는 '얼어붙은 땅에서 장미꽃을 피워낸 기적'을 만들었고 이런 분위기를 70년대 이후 대중 만화시대를 활짝 열게 한 기폭제 노릇을 하였다.



1970년대 ▒ 성인 만화시대 개막 ▒



1970년대는 우리만화가 기존의 어린이 독자는 물론 성인을 새로운 독자층으로 끌어 들이는 장르 다변화에 성공한 시기이다.
1972년 1월 1일 일간 스포츠에 연재를 시작한 고우영의 '임꺽정'은 우리 만화계 창작판도에 새로운 바람을 몰고 왔다.고우영의 스포츠 신문 만화는 해학과 기지로 성인들을 만화공간으로 끌어들이는데 커다란 기여를 했다.박수동의 '고인돌'등의 만화는 단행본으로 발행, 인세를 지급받는 서점용 책으로 정착되었다.70년대 만화계의 특징 중
하나는 어린이 청소년잡지에 만화가 대거 연재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소년 중앙, 새소년, 어깨동무 등 어린이 잡지와 여학생, 여고시대, 학원, 진학 등 청소년 잡지에 만화는 빼놓을 수 없는 메뉴로 등장했다. 이들 잡지는 또 만화작가 지망생들이 데뷔할 수 있는 발판으로서의 기능도 훌륭하게 수행해 냈다.



1980년대 ▒ 순정만화의 부흥 ▒



1970년대 말 박정희 군사 독재 정권의 몰락과 함께 우리 대중문화 영역 전반에도 창작 자유의 열망이 고조되었다. 그러나 잇달아 등장한 군사 정권에 의해 신문 시사만화의 일반 대중 문화의 사전 검열은 과거와 다름없이 지속 되었다.
1983년 우리 만화사에 커다란 전기가 될 만한 작품이 발표되었다.
이현세의 '외인구단'은 청소년들로 붐비던 만화방에 성인독자를 끌어들였다.
이후 허영만, 이재학, 고행석 등이 등장, 대중만화 판도는 이들 '힘있는 남성작가군'이 이끌었다. 또한 70년대 말 일본만화 '캔디'붐에 힘입어 순정만화계는 황미나, 김진 등의 국내 여류작가들에 의해 독자적인 장르 굳히기가 시도 되었다. 여기에 남성중견작가 이진주, 차성진, 김동화 등이 가세하였다.80년대 초반 군사 정권에 의해 초토화 되다시피한 신문 시사만화계는 후반에 들어 광범위한 사회 각층의 민주화 욕구와 맞물려 민중 운동 차원의 현실참여만화가 속속 등장하였다.



1990년대 ▒ '만화시대 활짝 열리다' ▒



1990년대의 한국 만화는 다양한 계층의 독자층을 흡수하는 명실상부한 '만화시대'를 구가했다.90년대에 두드러졌던 만화관련 이슈는 각종 공모전, 국제 행사의 잇단 개최였다.1991년 서울 만화전을 시작으로 서울 국제 만화페스티벌(SICAF), 신한 새싹 만화 대상, 운평 만화 공모전 등 우리 만화의 위상을 드높이고 우수 신인 작가를 발국하기 위한 노력이 대대적으로 전개되었다.1996년에는 정부가 '만화산업 육성 발전 방안' 등의 적극적인 지원책을 발표하였다. 또 다른 특징은 공주 국립 전문대를 위시한 전국의 10여개 대학에서 만화, 애니메이션 관련학과를 개설했다는 점이다. 이것은 만화가 한국사회의 '문화학문 영역'으로 정착됐음을 의미하는 일대 쾌거였다.



21세기 ▒ 우리 만화의 현재와 미래 ▒



21세기 우리 만화는 독자층의 세분화와 그에 걸맞는 특화된 장르만화가 지속적으로 개발되어, 한국 대중 문화계를 선도할 것으로 여겨진다.출판 만화를 극간으로 한 게임, 영화 등 인근 대중 문화영역에서도 많은 영향을 미치면서 대중 문화산업의 '중심축' 역할을 할 것이기 때문이다.현재 우리 만화계는 사이버 공간에 만화문화를 접목시키는 실험이 이어지고 있다. 1999년 말 부터 만화를 컨텐츠(Contents)로 한 인터넷 서비스 포탈 사이트가 늘어나는 등 만화 산업 대국이라 일컬어지는 미국과 일본을 앞지르고 있다.디지털 만화시대가 열리고 있는 것이다.




「클럽와우(Club Wow)」, 「코믹스 투데이(Comics Today)」, 「N4」, 「아이코믹스(Icomics)」, 「코믹 플러스(Comicplus)」등의 사이트에서 사이버 만화 유통을 실험하고 있다.
한국 만화의 미래, 새로운 '만화 수요층'을 창출하는 적극적인 자세와 만화인들의 올곧은 창작혼, 그것이 결합될 때라야만 밝은 미래을 기대할 수 있다.

 

 

사이트 이름

사이트 주소

내  용

파란만화

http://comic.paran.com/

무료회원에 가입하면 무협, 액션, 코믹, 드라마, 순정, 스포츠 등 모든 만화를 무료로 감상할 수 있다.

한국아마추어만화세상

http://www.kacl.co.kr/

국내의 아마추어 작가들의 작품과 국제 만화전, 만화교실 등을 연재하고 있으며 무료회원제로 운영되고 있다. 회원가입 및 사용은 무료이므로 부담 없이 이용하면 된다.

강도영의 만화이야기

http://www.kangfull.com/

강도영씨가 각종 매체에 연재하고 있는 강풀의 사랑이야기, 열혈카툰, 드라이브정보, 성공인의 길, 스포툰, 경기장에선, 전교조신문, 참여연대 등의 만화를 볼 수 있다.

포이브

 

포이브 무료회원에 가입하면 순정, 스포츠, 학원, 무협, 액션 만화를 무료로 감상할 수 있다.

코리아닷컴

 

가면선생9편, 스터프 20편, 로맨틱가든3편, 강호해결사14편, 제왕의 주먹천하 15편, 특급명령 10편, 예측불허 1부9편, 마이퍼니베이비3편, 세상에서제일가난한우리집4편 을 공짜로 볼 수 있다.

제로마켓

 

쇼핑몰을 방문한 고객들에게 순정 만화·명랑 만화 등 30편이 넘는 만화를 무료로 보여준다.

스노우캣

http://www.snowcat.co.kr/

고양이 캐릭터를 주제로 한 카툰과 플래쉬애니메니션.

스포트투데이연재만화 :http://cartoon.stoo.com/

일간스포츠연재만화 :
http://ilgan.joins.com/comics/


마린블루 :
http://www.marineblues.net/
마피의 다락방
http://www.mapi.co.kr/

밥돌
http://www.bobdoll.net
뻔뻔한 올리브 고양이 뻔
http://www.bburn.net
lazyphoto
http://www.lazypho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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