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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 지도자의 길[A]

작성자唯 一|작성시간26.01.04|조회수120 목록 댓글 6

    ‘한마음 棋友會’가,

결성된 것은, 최루탄을 쏘아대면

매캐한 연기에 코를 막고 대모대

낙원상가,관철동 등으로 뿔뿔

어지던 저,1983년 종로 한

기원 일반회원실(3.1빌딩뒤) 이었다.

 

    그,

기우회 초대 회장을 맡았다.

 

   당시,

한국기원 일반실에는 기료를 받

운영되고 있었는데,  매주 일

요일 2시면 찾아준 팬들을 위해

프로기사(김인, 김수영, 정창현, 전영

선 사범님 등)강의를 했다.

 

   일반실에는,

영화 [만다라]의 김성동 작가도

고, [귀천]의 천상병 시인도

단골찾아주었다.

   프로기사도,

원하는 팬들에게 바둑지도 차 자

오가고, 유명인사들이 부리나

케 드나드는 일반실에서 기우회

대진표를 붙여 놓고 진행하기가

영 불편하여 한국기원 1층에

그 유명한 유전 다방 맞은편

‘중앙 棋院’으로 옮겨갔다.

 

   ‘기우회’는,

매주 토요일마다 모여 회원끼리

대국한다음, 승패만 기록하기

보다는 한판 정도는 공동 연구하

는 분위기였다.

 

    회원들은,

13명으로 기력은 1~2급 정도 (당

는 단 제도가 정착되지 않아서 전국강

자는 강1급,   동네 강자는 새끼1급 듣던

절)였다.

 

   복기를,

하다보면 저마다 기풍차이가 있

다 보니 자기주장들이 강하기 마

련이다.

 

   공격형이면,

‘공격이 최선의 방어다’에 초점을

이고, 수비형이면, 타개에

의견을 개진할 것이기 때문이다.

 

   오청원,

先生이 아무리 ‘바둑은 조화다’

어도,복기현장에선 까먹기 일

쑤다.

 

    그러는가운데,

회원들 입에서 회장님(기우회장인

를 지칭)  복기논리가 그래도 가

리가 있다는 소리가 슬그머

나오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날,

20대 후반 아가씨 3명이 기원문

밀고 들어오더니 나를 찾았다.

 

   웬일인가 싶어,

마주 앉았는데 자기들 3명을 바

지도해달라는 요청이었다.

 

   당시,

한국기원 5층에는 주2일 저녁 7

~9시까지 프로기사가 직장인

을 상대로 바둑강좌가 처음으로

실시되고 있었다.

 

   ‘바둑판을,

메고 대중속으로’ 라는 슬로건으

로 야차게 진행 됐는데, 낮에는

프로합이 있는 그 대회장을 활

용하여 녁에 강좌가 열리고 있

던 때였다.

 

   아가씨,

3명의 기력은 6,8급 정도로 바둑

좌에 참여중이라 했는데, 프로

의가 수준이 높아 이해가 안

가고  라가기 어렵다는 하소연

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처음 시도해보는 강좌

지라 수준별로 반을 나누지 않

30여명을 한 번에 수업하는 형

상이어쩔 도리가 없을 터였다.

 

   어떤,

棋客이 “기우회회장을 한번 찾아

라고 친절히 일러주더라”는 것

이었다.

 

   그러하매,

직장인 바둑강좌에 내는 수강료

75,000(25,000원X3명) 드릴 테

니 맡가르쳐달라는 요청이었

다.

 

   처음으로,

맡는 바둑지도라 슬그머니 걱정

되고,  알바치고는 이만한 게

있을싶어, 주3일(월.수.금) 직장

에서 퇴근하는 7시~9시 까지 2

시간씩 그룹지도하기 시작했다.

 

   처음이라,

그런지 삼립빵 하나와 우유 한

시고 시작하는데도 배고프

기는커녕 신이 날 뿐이었다.

 

   직접둔,

바둑을 복기하는 대목에 가서는

치기 일쑤였는데, 그럴

도 덩달아 흥겨워했으니

때 비로소 ‘바둑 지도자의 길’

하늘이 내내린 직이 아

닐까 생각했다.

 

   배우는,

사람이 재미있고 즐거워한다면

자동으로 오를 것이었다.

 

   그룹지도 6개월.

[한국여성연맹 바둑대회]에 참가했다.

 

   첫 대회,

참가라 해도 성과를 내보여야 할

데, 예전이나 지금이나 설레이

기는 마찬가지다.

 

    수능시험장에,

들여보내 놓고 교문에서 기도하

다리는 수험생 부모 심정으

로.

 

   다행스럽게,

두 명이 준우승과 3위 트로피를

아오는 바람에, 관철동에서 식

접 받은 일이 43년이 지났음

마등처럼 스쳐간다.

 

   급기야,

‘잘 가르친다’ 는 소문이 돌더니

28이 개인지도 오고(입상

여성 개), 유심히 지켜보던 현

상선 부(당시 3.1빌딩 근무)

이 오면서‘바둑지도자의 길’

들어서버렸다.

 

   어쩌자고,

아가씨 3명을 바둑지도하기 시

게 계기가 되어 여지 것 43

동안, 6,000명에 가깝도록 달

려왔는가.

   팔짱끼고,

생각해보니 참, 많이도 지도해 왔다.

 

*성인+아동 개인지도     83년~현재까지          300명

*아동지도                    92년~현재까지         400명

*초등 방과후 바둑지도   98년~ 2017년          3000명

*문화센터 성인바둑강좌 2005년~현재까지        500명

*노인복지관 어르신강좌 2008년~2023년         1000명

*중학교 특별활동 바둑    6년                         300명

*어린이집                    2년                         200명

*고등학교 바둑지도        1년                         200명

 

    배우는 분중에,

선생님은 “신이 나서

가르친다”는 걸 보면

‘바둑 지도자의 길’ 은

에게 천직인가 보다.

 

‘흔히 사람들은

기회를 기다리고 있지만

기회는 기다리는 사람에게

잡히지 않는 법이다.

 

우리는 기회를

기다리는 사람이 되기 전에

기회를 얻을 수 있는

실력을 갖춰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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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답댓글 작성자唯 一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6.01.07 감사합니다
  • 작성자온달 | 작성시간 26.01.05 되돌아보니 저는 서른 몇 해에 3500명쯤 일까요. 조족지혈입니다.여순 훌쩍 넘어 감히 드러누울까 하였다가 선배님 바라보고 정신을 차립니다 좀 더 힘을 내야겠습니다.
  • 답댓글 작성자唯 一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6.02.08 저랑,
    현장을 같이 뛰고 같이 활동하는 사범님들은 대략 알고 있지만,
    굳이 밝히는 게 낮간지러 묵혀 두었다가 이제는 끄집어 내어도 되는 나이가 되다보니
    있는 그대로 기록하려합니다.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것도 얻을 수 없기 때문' 입니다.
    고맙습니다.
  • 작성자이필복(천안) | 작성시간 26.03.04 음^^^^^^^^^^^^^^^^^^^^^^^^^^
    대단 합니다.
    15년전쯤 인천에서 기원 할적에
    심리불안 학생을 조금 가르쳐 본적이 있는데,
    실패하였습니다.
    그게 경험치 였네요.
    가르친다는게 내 맘으로 안되는듯 하네요.
    ㄳㄳ
    온달님도 사범님도
  • 답댓글 작성자唯 一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6.03.04 어렵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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