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음 棋友會’가,
결성된 것은, 최루탄을 쏘아대면
매캐한 연기에 코를 막고 대모대
가 낙원상가,관철동 등으로 뿔뿔
이 흩어지던 저,1983년 종로 한국
기원 일반회원실(3.1빌딩뒤) 이었다.
그,
기우회 초대 회장을 맡았다.
당시,
한국기원 일반실에는 기료를 받
고 운영되고 있었는데, 매주 일
요일 2시면 찾아준 팬들을 위해
프로기사(김인, 김수영, 정창현, 전영
선 사범님 등)가 강의를 했다.
일반실에는,
영화 [만다라]의 김성동 작가도
있었고, [귀천]의 천상병 시인도
단골로 찾아주었다.
프로기사도,
원하는 팬들에게 바둑지도 차 자
주 오가고, 유명인사들이 부리나
케 드나드는 일반실에서 기우회
대진표를 붙여 놓고 진행하기가
영 불편하여 한국기원 1층에 있
는 그 유명한 유전 다방 맞은편
‘중앙 棋院’으로 옮겨갔다.
‘기우회’는,
매주 토요일마다 모여 회원끼리
대국을 한다음, 승패만 기록하기
보다는 한판 정도는 공동 연구하
는 분위기였다.
회원들은,
13명으로 기력은 1~2급 정도 (당
시는 단 제도가 정착되지 않아서 전국강
자는 강1급, 동네 강자는 새끼1급 듣던
시절)였다.
복기를,
하다보면 저마다 기풍차이가 있
다 보니 자기주장들이 강하기 마
련이다.
공격형이면,
‘공격이 최선의 방어다’에 초점을
맞출 것이고, 수비형이면, 타개에
의견을 개진할 것이기 때문이다.
오청원,
先生이 아무리 ‘바둑은 조화다’ 라
했어도,복기현장에선 까먹기 일
쑤다.
그러는가운데,
회원들 입에서 회장님(기우회장인
나를 지칭) 복기논리가 그래도 가
장 일리가 있다는 소리가 슬그머
니 나오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날,
20대 후반 아가씨 3명이 기원문
을 밀고 들어오더니 나를 찾았다.
웬일인가 싶어,
마주 앉았는데 자기들 3명을 바
둑지도해달라는 요청이었다.
당시,
한국기원 5층에는 주2일 저녁 7
시~9시까지 프로기사가 직장인
을 상대로 바둑강좌가 처음으로
실시되고 있었다.
‘바둑판을,
메고 대중속으로’ 라는 슬로건으
로 야심차게 진행 됐는데, 낮에는
프로시합이 있는 그 대회장을 활
용하여 저녁에 강좌가 열리고 있
던 때였다.
아가씨,
3명의 기력은 6,8급 정도로 바둑
강좌에 참여중이라 했는데, 프로
의 강의가 수준이 높아 이해가 안
가고 따라가기 어렵다는 하소연
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처음 시도해보는 강좌
인지라 수준별로 반을 나누지 않
고 30여명을 한 번에 수업하는 형
상이니 어쩔 도리가 없을 터였다.
어떤,
棋客이 “기우회회장을 한번 찾아
보라고 친절히 일러주더라”는 것
이었다.
그러하매,
직장인 바둑강좌에 내는 수강료
75,000원(25,000원X3명)을 드릴 테
니 맡아 가르쳐달라는 요청이었
다.
처음으로,
맡는 바둑지도라 슬그머니 걱정
도 되고, 알바치고는 이만한 게
있을까 싶어, 주3일(월.수.금) 직장
에서 퇴근하는 7시~9시 까지 2
시간씩 그룹지도하기 시작했다.
처음이라,
그런지 삼립빵 하나와 우유 한
잔 마시고 시작하는데도 배고프
기는커녕 신이 날 뿐이었다.
직접둔,
바둑을 복기하는 대목에 가서는
무릎을 치기 일쑤였는데, 그럴
때면 나도 덩달아 흥겨워했으니
그때 비로소 ‘바둑 지도자의 길’
이 하늘이 내게 내린 천직이 아
닐까 생각했다.
배우는,
사람이 재미있고 즐거워한다면
실력은 자동으로 오를 것이었다.
그룹지도 6개월.
[한국여성연맹 바둑대회]에 참가했다.
첫 대회,
참가라 해도 성과를 내보여야 할
텐데, 예전이나 지금이나 설레이
기는 마찬가지다.
수능시험장에,
들여보내 놓고 교문에서 기도하
며 기다리는 수험생 부모 심정으
로.
다행스럽게,
두 명이 준우승과 3위 트로피를
받아오는 바람에, 관철동에서 식
사대접 받은 일이 43년이 지났음
에도 주마등처럼 스쳐간다.
급기야,
‘잘 가르친다’ 는 소문이 돌더니
28세 여성이 개인지도 오고(입상
한 여성 소개), 유심히 지켜보던 현
대상선 부장(당시 3.1빌딩 근무) 이
요청이 오면서‘바둑지도자의 길’
로 들어서버렸다.
어쩌자고,
아가씨 3명을 바둑지도하기 시
작한 게 계기가 되어 여지 것 43
년 동안, 6,000명에 가깝도록 달
려왔는가.
팔짱끼고,
생각해보니 참, 많이도 지도해 왔다.
*성인+아동 개인지도 83년~현재까지 300명
*아동지도 92년~현재까지 400명
*초등 방과후 바둑지도 98년~ 2017년 3000명
*문화센터 성인바둑강좌 2005년~현재까지 500명
*노인복지관 어르신강좌 2008년~2023년 1000명
*중학교 특별활동 바둑 6년 300명
*어린이집 2년 200명
*고등학교 바둑지도 1년 200명
배우는 분중에,
선생님은 “신이 나서
가르친다”는 걸 보면
‘바둑 지도자의 길’ 은
나에게 천직인가 보다.
‘흔히 사람들은
기회를 기다리고 있지만
기회는 기다리는 사람에게
잡히지 않는 법이다.
우리는 기회를
기다리는 사람이 되기 전에
기회를 얻을 수 있는
실력을 갖춰야 한다.’
댓글
댓글 리스트-
답댓글 작성자唯 一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26.01.07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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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온달 작성시간 26.01.05 되돌아보니 저는 서른 몇 해에 3500명쯤 일까요. 조족지혈입니다.여순 훌쩍 넘어 감히 드러누울까 하였다가 선배님 바라보고 정신을 차립니다 좀 더 힘을 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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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唯 一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26.02.08 저랑,
현장을 같이 뛰고 같이 활동하는 사범님들은 대략 알고 있지만,
굳이 밝히는 게 낮간지러 묵혀 두었다가 이제는 끄집어 내어도 되는 나이가 되다보니
있는 그대로 기록하려합니다.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것도 얻을 수 없기 때문' 입니다.
고맙습니다. -
작성자이필복(천안) 작성시간 26.03.04 음^^^^^^^^^^^^^^^^^^^^^^^^^^
대단 합니다.
15년전쯤 인천에서 기원 할적에
심리불안 학생을 조금 가르쳐 본적이 있는데,
실패하였습니다.
그게 경험치 였네요.
가르친다는게 내 맘으로 안되는듯 하네요.
ㄳㄳ
온달님도 사범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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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唯 一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26.03.04 어렵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