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뒷날에 뉘 있어 스스로 나라를 사랑했다 이를 양이
면 스스로의 가슴에 조용히 손을 얹고 이제 白凡 가신
이의 生涯(생애)에나 물어보지 않고는 스스로 아무도
나라를 사랑했다 생각하지 말아라 --
백범 선생 서거 당시 박두진 시인의 ⌜오! 白凡 선생」
이란 추모시다.
1938년에 지어진 경교장은 서대문 부근에 있던
경교라는 다리에서 따온 것으로 2005년 사적 제
465호로 지정.
경교장에서 임시정부 요인들이 모여 국무회의를
개최하고 반탁운동과 남북협상을 주도하는 등 해
방 후 혼란정국을 수습하였다.
슬프고 끔찍한 사건은 육군 포병 소속 소위 안두희
였다.
당시의 안두희.
당시 경교장 2층 총탄이 난 구멍 밖으로 사람들이
엎드려서 슬퍼하는 장면을 찍은 사람은 칼 마이
던스 기자였다.
약120만 명의 조문객들이 애도의 물결에 참여해
경교장은 그야말로 발디딜 틈이 없었다고 한다.
백범 김구 선생의 조가(弔歌)가 생겼을 정도니까.
빈소는 1층 귀빈 식당에 차려졌다.
지하로 내려가면 서거 당시 입었던 피투성이 옷
이 그대로 재현되어 있어 그날의 참상을 말해주고
있다.
그 옆에 백범 선생의 글씨를 손자에게 일러주고
있는데 문화해설사 아저씨가 걸어오신다.
문화해설사 : 넌 몇 살이니?
손자 : 8살인데요.
문화해설사 : 어린 나이에 역사에 관심이 많구나. 손자를
껴안으면서, “넌 나중에 아마 잘될거야, 아저
씨가 지켜볼게 알았지”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하는 법.
愼其獨신기독.
혼자 있을 때에도 삼가 행동을 조심하라.
우리가 흔히 혼자 있을 때는 마음가짐이 흐트러지
기 십상이다.
누가 보는 사람이 없기에 편한 자세로 지내기 일쑤
다.
‘혼자 있을 때에도 행동을 조심하라’는
백범 선생의 저 가르침을 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