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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전국 시대 이야기 4 - 마왕 or 난세의 풍운아 오다노부나가 織田信長2

작성자미나모토노요시츠네|작성시간07.12.24|조회수385 목록 댓글 1

안녕하세요. 회원님들^^

저번의 이야기에 이어서 계속하도록 하겠습니다.

아버지를 살해한 희대의 폐륜아 사이토 요시타츠(斉藤義龍.도산의 장남.도키씨의 핏줄이라는 의혹도 있다.1556년 아버지 도산을 공격하여 패사시키고 미노의 국주가 된다)는 도산(斉藤道三.1494-1556 오미지방의 기름장수로 출발하여 도키가에 사관하나 책략으로 주가를 멸망시키고 나라를 가로챈 희대의 효웅.)의 목을 베어 내걸고 시신은 개천에 버림으로서 주변의 다이묘들의 공적이 됩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자가 싸움은 한싸움 한다는 것이었씁니다. -_-

 

노부나가는 도산의 원수를 갚고 미노 지방을 차지하는 것을 제일의 목표로 삼았지만, 문제는 이마가와 요시모토(今川義元.1519-1560 이마가와가문의 9대당주. 7대당주인 이마가와 우지치카의 다섯번째 아들로 태어났다. 8대당주인 친형 우지테루가 급사하자 이복형제와의 후계자계승에서 승리.당주가 된후에 이마가와의 세력을 더욱 크게 떨쳤다.뛰어난 정치력과 스승인 셋사이의 도움으로 천하에 가장 가까운 남자로 불리웠으나 교토로의 상락도중 급절,천하에의 꿈도 흩어지고 말았다)였습니다.

토도우미의 슨푸에 근거한 이마가와씨는 당대의 대국으로서 당시 일본에서 가장 강한 세력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의 세력을 과시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오와리의 오다가문과는 대를 이은 적대관계였습니다.

 

다케다신겐武田信玄,호조 우지야스北条氏康등과 이른바 삼국동맹을 체결한 이마가와 요시모토는 후고의 우려를 없애 마침내 교토로의 상락을 결정하게 되었습니다. 전투병력 3만,보충,보급대까지 포함하면 자그마치 4만3천의 대군을 거느리고 오카자키의 마츠다이라 모토노부(松平元信훗날의 도쿠가와 이에야스-이때는 이마가와에 종속되어있었음)를 선봉으로 하여 오와리로 진군을 시작, 이에 맞서는 오다군의 병력은 총병력 3천이었습니다.

 

강력한 이마가와의 대군앞에 오와리의 오다가신柴田,佐久間들은 한결같이 농성을 주장하고 나섰습니다. 야전에서는 이마가와의 대군과 맞설수가 없다고 판단했기때문입니다. 노부나가는 가신들의 말에 따라 군량미를 비축하는등 농성준비를 하는체 하면서도 실은 기노시타 토키치로(木下藤吉朗.훗날의 도요토미 히데요시-이때는 오다의 중요가신 축에도 못드는 그냥 하인에 가까웠음)에게 이마가와군이 진군하는 경로의 마을의 유지들을 포섭, 이마가와군에게 술과 음식을 접대하게 함으로써 그 경계를 소홀하게 했습니다.

 

선두의 마츠다이라군이 오와리 입구의 나루미 성채를 점령했다는 소식을 들은 이마가와 요시모토는 오케하자마桶狭間에 이르러서 잠시 진군을 멈추고 휴식을 취했습니다. 이마가와의 전 병력이 4만 3천이라고는 하지만 각자 진군 속도가 달랐으므로 오케하자마의 이마가와군은 요시모토 직할의 5천병력 뿐이었습니다. 때마침 억수같이 비가 쏟아지자 진흙탕이 되면서 이마가와 군의 진격은 크게 둔화되었습니다. 이때 기요스성에서 오다 노부나가는 수하의 병력들에게 갑자기 출진을 명령하고 앞장서서 오케하자마로 달려갔습니다. 총대장의 갑작스런 출진에 오다군은 적잖이 당황했지만 급히 따라나선 천여명의 병력과 함께 노부나가는 곧바로 요시모토의 오케하자마 본진을 들이쳤습니다. 가장 약한 시점에서 오다군의 기습을 받은 이마가와군은 그대로 붕괴, 처음부터 요시모토 한 사람만을 노리고 달려든 오다군은 마침내 이마가와 요시모토의 목을 베고 이에 대혼란에 빠진 이마가와군은 전멸, 오케하자마 주변은 이마가와 군의 피로 물들었다고 합니다.

 

오다군이 이마가와 요시모토의 목을 창끝에 꽂고 의기양양하게 키요스로 개선하자 전의를 상실한 이마가와의 남은 병력은 앞다투어 슨푸로 퇴각함으로써 이마가와의 세력은 크게 쇠퇴했습니다. 이에 마츠다이라 모토노부는 선대의 거성인 오카자키를 탈환하여 이마가와씨로부터 독립하게 됩니다. 이에 요시모토의 뒤를 이은 적자,이마가와 우지자네今川氏真-이 양반은 성격만 까칠했지 아버지와는 상대도 안되는 아둔한 군주였습니다.공놀이와 시짓는데만 치우치고 음풍농월하는데 세월 깎아묵고 결국은 다케다하고 호조씨,마츠다이라씨한테 영지 야금야금 깎여먹었죠.-는 크게 노해서 슨푸성에 억류중인 마츠다이라씨의 가신및 가족들을 잔혹하게 처형,마츠다이라씨와 감정의 앙금이 생기게 됩니다.

 

거대한 세력으로 상락을 하려던 이마가와 요시모토의 목을 벤 오다군은 일기당천의 사기로 무장되어 있었습니다.

이에 오다 노부나가는 마침내 미노로 진격,도산이 세운 난공불락의 거성,이나바야마산성稲葉山山城에 공격군을 배치하였습니다. 그러나 오다군이 국지전에 발이 묶여있는 사이 당주 사이토 요시타츠가 즉시 1만명의 병사를 거느리고 오다군을 공격하여 노부나가는 오와리로 패퇴하였습니다.요시타츠가 천하에 나쁜 인간이긴 했지만 장수로서의 역량은 아버지 도산에게 뒤지지 않았기에 노부나가는 미노 공략에 꽤나 고심하게 됩니다만,요시타츠가 얼마후 문둥병에 걸려 사망........== -일설에서는 천벌이라고도 하지만 당시 상황을 제대로 알수 없는 오늘날의 사람으로서 섣불리 판단할수가 없군요....-하자 요시타츠의 적손인 타츠오키龍興가 뒤를 잇게 되지만 이사람은 말그대로 훌륭한 조부에 못난 3대손이었습니다. 의식없는 벼락부자가문의 3대손에 불과했던것이죠. 타츠오키가 여색만 밝히고 정사를 내팽겨치자 사이토의 가신들은 서서히 분열되기 시작합니다. 노부나가는 선대의 도산공이 자신을 사위로 삼고 미노를 물려줄 생각이었다고 공공연히 주장하면서...-안봤으니 알수가 없죠. 도산이 노부나가에게 감복하고 있었다손 치더라도 허구많은 자기 자식들 놔두고 왜 노부나가에게 일본의 알토란같은 땅이라고 불렸던 미노를 내주겠습니까?? ㅎ-미노공격을 재개합니다. 그러나 미노에 혜성과 같이 등장한 신인장수 이른바 천재라고 불리우는 다케나카한베(竹中半兵衛.1544-1579 열전에는 히데요시의 가신이라고 적혀있지만 본인은 그것을 별로 바라지 않을듯 하군요. 희대의 젊은 천재군략가로서 삼국지에 비교하자면 조조의 군사 곽가에 비견될만하다 하겠습니다.자세히 소개하면 나중에 재미가 반감되므로 소개는 여기까지만 하겠습니다.-_-)가 오다의 공격을 뿌리치고 사이토가를 굳건히 지지해냅니다.

 

정면공격으로는 도저히 다케나카한베가 이끄는 사이토군을 물리칠수 없다고 판단한 노부나가는 다시 꼼수를 쓰기 시작합니다.다음편에서는 노부나가의 미노공략과 아사이,아사쿠라가문과의 대전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연말연시 즐거운 시간 보내시고 다음에 또 뵙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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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하얀소나무 | 작성시간 07.12.24 面白いです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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