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라이 (한자는 섬기다 사)
사전의 뜻을 빌리자면 さむらい[侍]
①무사(武士). 무사의 가문(家門). warrior
②《속》기골(氣骨)이 있는 만만치 않은 인물. 뻔뻔스러운 인물.
―えぼし[―鳥帽子] 옛날 무사가 일상복(日常服)을 입을 때에 쓰던 모자.
―どころ[―所]
ꃢ①옛날 귀족․고관들의 집을 경비하던 초소.
②옛날 중요 기관의 하나로서 군사, 경찰등의 업무를 맡고 무사들을 취체 하던 관청. 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럼 이 사무라이는 어떻게 생겨나게 된 것인가?
0.
侍(さむらい:사무라이)는 일본의 고대(古代)에서 중세(中世)에 걸쳐 일본의 관인(官人)의 신분의 호칭이다. 또는 그 명칭에서 발전적으로 생긴 무사(武士)의 별칭이다.「伺候する-사후 한다: 지체 높은 사람의 곁에서 일을 본다」「従う-시타가우:섬기다」를 의미하는 동사「さぶらう:사부라우」에서 유래한다.
1. 사무라이의 성립
본래 사무라이도 옛날에는 귀족이었다. 헤이안 시대는 귀족 문화의 전성기였으나 모든 귀족이 이 세상의 봄을 즐기고 있지는 않았다. 궁정의 중요한 관리직책은 전부 세력이 큰 귀족들이 전부 장악하고 있었기 때문에 출세할 가능성이 희박한 하급귀족들은 수도를 등지고 지방의 고쿠시(国司:지방관리)로 파견되었다. 그 중에는 그대로 지방에 눌러 앉는 사람도 생기게 된다.
이렇게 지방에 토착하게 되자 이들은 스스로 개척한 땅. 다시 말해 정부의 손이 닿지 않는(세금을 내지 않아도 되는) 장원(荘園:중세의 귀족들의 땅)을 지키기 위해 병력을 양성하게 되는 데 이 집단이 무사단이 되고, 이윽고 이들은 지방의 유력한 호족을 중심으로 단결하게 된다. 바로 사무라이(侍)라는 존재가 등장하게 되는 것이다.
시대가 흐름에 따라 무사계급이 확대되어 사무라이 신분보다 낮은 하급 무사들도 자신을 사무라이라고 하게 되자 사무라이(侍)는 상위계층의 무사를 가리키게 되었다. 예를 들자면
17세기 초에 간행된『日葡辞書 - 닛뽀지쇼(일포사전)라고 부름 - 일본에 파견된 포루투갈 선교사들에 의해 만들어져 포루투갈어로된 일본어 사전 1603년~4년 나가사키에서 발행되었으며 무려 32,000단어가 수록되어 있다』에서는
Buxi 와 Mononofu 는 각각 「武人:무인」「軍人:군인」이라고 하는 말로 번역되어 있는 것에 대해서,
Saburai는「귀인(貴人), 또는 존경해야 할 사람」이라고 번역되어 있는 사실을 보더라도
사무라이(侍)가 무사계층의 중에서도 특별한 존재였다는 것은 분명하다
02.
「サムライ:사무라이」는 16세기가 되어 등장한 새로운 단어의 모습이다. 일본의 가마쿠라시대(鎌倉時代)부터 무로마치시대(室町時代)에 걸쳐서는 「サブライ:사부라이」, 헤이안시대(平安時代)에는「サブラヒ:사부라히」로 각각 발음 되고 있었다.
「サブラヒ:사부라히」는 일본어 동사(動詞)「サブラフ:사부라후」의 연용형(連用形:활용하는 말<동사,형용사,조동사>)이 명사화(名詞化:1류 동사의 기본형「う」단을「い」단으로 고친 형태 -예)かく[쓴다]→かき[쓰기])한 것이다. 이하「サブラフ:사부라후」의 어원의 역사에 대해서 말하자면, 일단 나라시대(奈良時代)에는 「サモラフ:사모라후」라는 어형으로 등장했고, 이것이 가장 오래된 어형(語形:말의 형태)라고 생각된다.
「サモラフ:사모라후」는 동사「モラフ(候):모라후」에 어조(語調)를 정리한접두어(接頭語)「サ:사」가 접속한 것으로「モラフ:모라후」는 동사「モル(窺・守):모루」에 존재(存在)・계속(継続)의 뜻의 조동사(助動詞:동사성 접미어라고도 한다)「フ:후」가 접속해서 생긴 말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그 어구성(語構成:말의 구성)에서도 생각할 수 있듯이「サモラフ:사모라후」의 어원은 상대의 모양이나 상태를 줄곧 窺う(うかがう:살피다)라는 의미였으나, 나라시대(奈良時代)에는 귀족의 옆에서 귀족을 모시며 그 명령을 떠받든다는 의미로도 사용되고 있었다.
이「サモラフ:사모라후」가 헤이안시대(平安時代)에 모음교체(母音交替)를 일으켜「サムラフ:사모라후」가 되고, 나아가 자음교체(子音交替)를 일으킨 결과「サブラフ:사부라후」라는 어형(語形:말의 형태)가 탄생하였다고 생각된다.「サブラフ:사부라후」는「侍:섬길 사」의 뜻으로도 사용되고 있는 점에서 알 수 있듯이 헤이안시대(平安時代)에는 오로지 귀족의 옆에서 받는다는 의미로 사용되었다.「侍:사무라이」라는 한자(漢字)에는 본래「貴族のそばで仕えて仕事をする:귀족의 옆에서 섬기며 일을 한다」라는 의미가 있지만, 무사와 비슷한 무예를 가업으로 하는 기능공무원을 의미하는 것은 일본뿐이다.
정리하면 사무라이라는 말은
サモラフ → サムラフ → サブラフ → サブラヒ→ サムラヒ→ サムライ
이와 같은 어형으로 변화를 이루었지만 지위에 관계없이 무사전체를 가리키는 말로 부르게 된 것은 에도시대(江戸時代)전후 해서이다. 그 전까지는 귀족이나 장군 등의 상위계층의 무사에게만 한정되어 있었다. 또한 이 말이 한국어 싸울아비에서 왔다는 설도 있지만 그것에 관해서는 다음에「サウラビ語源説:사우라비 어원설」에서 다시 다루기로 하겠다.
03.
일단 다시 사무라이로 넘어 가서 귀족의 입장에서 보면 사무라이는 지극히 낮은 신분의 인간에 불과했고, 귀족의 곁에서 봉사하는 의미에서 사무라이(侍)라는 경멸적인 이름이 붙은 것이다. 그러나 사무라이들은 힘을 모아 11세기에는 대규모 무사단을 형성하게 된다. 처음에는 무식하고 힘만 센 사나이 정도로 보이던 사무라이들도 이 시대가 되자 와카(和歌:일본의 시조)를 지을 수 있을 만큼의 교양과 학식을 갖추게 된다. 그러면서 점차 주인과 종의 봉건적인 상하관계가 형성되어 가게 되고, 사무라이들도 사무라이 나름대로의 윤리관을 가지게 된다.
헤이안시대의 사무라이는 점차 가마쿠라시대로 넘어가면서 그 세력을 확장하게 되고 천황을 배경으로 삼은 지방의 사무라이들은 가마쿠라막부를 멸망시키고 말았다 이로서 남북조시대로 들어가게 되는데 정권을 잡은 고다이고 천황은 평화로운 옛날로 돌아가려는 귀족중심의 정치를 펼치게 된다. 이에 사무라이들은 반발하여 아시카가 다카우지를 중심으로 한 무로마치막부(室町幕府)를 세우게 된다. 이 무로마치 막부는 1573년 오다 노부나가에 의해 막부 최후의 장군인 아시카가 요시아키라(義昭)가 교토에서 쫓겨나면서 종지부를 찍게 된다. 이후 전국을 통일하려는 전국의 다이묘들에 의해 전국시대(戦国時代)를 열게 되고 도쿠가와이에야스(徳川家康)에 의해 통일이 되면서 에도시대(江戸時代)로 넘어간다. 이와 같이 힘과 권력의 시대에서 영화를 누리던 사무라이들은 문명의 개화와 함께 역사속으로 묻혀가게 된다. 이것도 다음에 기록하도록 하기로 하겠다. 오늘은 사무라이의 탄생과 어원에 대해서만 살펴보았다.
참고
네이버 일본어 사전
不思議日本史(主婦と生活社)
集英社版 日本の歴史1日本史誕生(集英社)
集英社版 日本の歴史10戦国の群像(集英社)
日本史辞典(角川書店)
사무라이와 관련해서 일본의 헤이안부터 에도시대 그리고, 메이지 유신, 개화기까지 설명하자면 너무 길어질 것 같고 논점에서 벗어난 글이 될 것 같아서 여기까지만 씁니다. 사무라이에 관해서는 의견도 많고 설도 많지만 그 어느것 하나 시원하게 설명되어진 것은 없습니다. 사무라이 정신, 사무라이 문화라는 것이 원래 일본 문화와 역사를 공부하던 서양인들에 의해 재해석되어 미화된 말이기 때문입니다. 이것과 관련해서도 다음에 "서양인의 시각에서 바라본 일본"에 관련된 주제를 가지고 포스트를 써볼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