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 十 回. 험조부측(險遭不測)....하마터면 불행한 일을 당할 뻔하다.

작성자겨울나그네|작성시간26.06.12|조회수91 목록 댓글 7

 

        < 第 十 回. 험조부측(險遭不測)....하마터면 불행한 일을 당할 뻔하다. >




주성한이 대답하기 난처해하던 차에 마침 어린 시비가 잔과 젓가락을 가져왔다. 이에 술병을 들어 잔에 미주를 가득 채우고는 다시 면전의 술잔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차경을 빌려 꽃을 바치듯, 한 잔 올리겠소."

황해어가 웃으며 말했다. "상공, 술을 권하는 데도 명목이 있어야 하지 않겠소!"

주성한은 머리를 굴려 즉시 대답했다. "방금 낭자가 동 낭자가 거짓으로 죽은 척했다는 비밀을 한마디로 꿰뚫어 보아 이 사람의 막힌 가슴을 탁 트이게 해주었으니, 자연히 대접 한 잔을 올려야 마땅하지 않겠소! 자! 건배합시다!"

황해어가 손을 한 번 치켜들며 말했다. "상공, 잠시만 기다리시오. 내가 먼저 주인에게 잔을 올린 뒤에 마시겠소..." 술잔을 끌어당기며 말을 이었다. "양 낭자에게 한 잔 올리겠소."

양계령이 살짝 미소를 지으며 술잔을 들어 단숨에 비웠다.

바로 이때 어린 시비가 다시 들어와 양계령의 귀에 대고 한참 동안 나지막하게 속삭였다.

양계령의 얼굴이 차갑게 굳어지더니 홧김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두 분은 잠시만 앉아 계시오. 계령이 잠시 다녀오겠소." 말을 마치고 그 어린 시비와 함께 아담한 자리를 나갔다.

발걸음 소리가 멀어지기를 기다려 황해어가 목소리를 낮추어 말을 이었다. "상공은 어찌하여 저 살인을 눈 깜짝 안 하고 저지르는 소마녀와 어울리게 된 것이오."

주성한이 말했다. "이 사람도 낭자와 마찬가지로, 부름을 받아 감히 오지 않을 수 없었소."

황해어가 차갑게 말했다. "그건 아주 다르오. 나는 내 발로 직접 여기를 찾아온 것이오."

주성한이 말했다. "목적이 무엇이오?"

황해어가 말했다. "자연히 당신이 안심이 되지 않아서지 가오. 그 양 낭자가 혹시 나에 대해 묻지 않더이까?"

주성한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물었소!"

황해어가 눈썹을 치켜뜨며 말했다. "당신이 말해버렸소?"

주성한이 말했다. "이 사람이 어찌 그런 신의를 저버릴 자이겠소. 먼저 약조한 바가 있으니 결코 가벼이 깨뜨리지 않소."

황해어가 차갑게 콧방귀를 뀌었다. "설마 당신이 감히 그랬겠소."

주성한은 마음속으로 은근히 노여움이 일어 소매를 떨치고 일어서려 했다. 그런데 갑자기 점포 안에서 "쿵탕 쾅탕" 하며 탁자와 의자가 뒤엎어지는 소리가 요란하게 울려 퍼졌다.

두 사람이 급한 걸음으로 점포 안으로 가보니, 여러 손님이 사방 구석으로 급히 몸을 피하고 있었고 점포 한가운데는 몇 개의 탁자와 의자가 이미 사방으로 걷어차여 뒹굴며 널찍한 공터가 생겨나 있었다.

양계령과 대치하고 있는 자는 나이가 예순쯤 되어 보이고 머리가 쑥대머리처럼 헝클어진 자줏빛 얼굴을 한 노인이었다. 양손에 철갈고리 한 쌍을 쥐고 있었는데, 몸이 가라앉고 걸음걸이가 굳건한 형세를 보니 그의 공력이 만만치 않음을 단박에 알 수 있었다.

양계령은 금방울 한 쌍을 손에 쥐고 있었고, 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친 채 신형은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황해어가 소근거렸다. "상공은 저 노인을 알아보시겠소?"

주성한이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본 적이 없소."

황해어가 말했다. "저 노인은 ‘장강사괴(長江四怪)의 스승으로, 이름은 수상비(水上飛) 금전표(金戰彪)라 하오. 수중의 싸움에서는 가히 일방의 패자라 일컬어지는 자요."

주성한은 마음속이 살짝 동요했으나 더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생각은 바람개비처럼 빠르게 돌기 시작했다...

그의 생각이 채 끝나기도 전에, 저편에서 양계령이 이미 낭랑한 기합을 내지르며 몸을 날려 앞으로 덮쳐갔다. 손에 쥔 금방울 한 쌍이 딸랑거리는 소리를 연달아 울려 퍼뜨렸다.

"챙!" 하는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두 사람의 신형이 부딪쳤다 이내 갈라졌다. 그러나 승부는 단 한 초식 만에 곧바로 드러났다. 금전표의 오른손 철갈고리는 한 토막이 부러져 나갔고, 옷소매 역시 길게 찢어져 틈이 벌어져 있었다.

양계령(楊桂玲)이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 "늙은 귀신이 겨우 그만한 솜씨를 믿고 굳이 이 몸의 앞에서 공도를 찾으려 들다니, 어서 스스로 한쪽 팔을 부러뜨리거라. 그러면 이 몸이 살길을 열어주겠다. 그러지 않으면 네놈은 이 주루를 살아서 나가지 못할 것이다."

단 한 초식 만에 패배한 것은 진정 금전표를 경악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그 역시 삶에 연연하고 죽음을 두려워할 위인은 아니었기에, 즉시 눈을 부릅뜨고 칼칼한 목소리로 포효했다. "천한 년은 방자하게 날뛰지 마라! 이 할아비는 살 만큼 살았으니 죽어도 인간 세상에 헛걸음한 것은 아니다. 초식을 받거라..."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갈고리를 휘두르며 앞으로 덮쳐들었다.

양계령이 슥 피하며 냉소를 지었다. "세상에 참으로 이토록 죽고 사는 것을 모르는 물건이 다 있구나."

주성한(朱星寒)의 생각은 여전히 바람개비처럼 돌며 멈추지 않고 있었는데, 문득 한 목소리가 그의 귀를 때렸다. "소협, 제발 금 큰형님을 구해주시오!"

주성한이 깜짝 놀라 돌아보니, 말을 건넨 자는 바로 그 백룡천이었다. 얼른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어찌 된 일인가?"

백룡천(白龍天)이 전음으로 말했다. "‘장강사괴’가 비록 정파의 인물이라 할 수는 없으나, 금 큰형님은 의기가 대단한 호걸이요. 게다가 우리의 금릉행에 도움이 적지 않았으니, 만약 그가 양 낭자의 손에 죽는다면 우리에게 심히 곤란한 일이 될 것이오."

주성한은 자신도 모르게 미간을 깊이 찌푸렸다. "그가 스스로 죽음을 자초하는데 이 사람이 어찌 그를 구한단 말이오?"

백룡천이 말했다. "저 양 낭자를 막아주시오! 소협은 방금 그녀와 한 탁자에서 함께 술을 마시지 않았소?"

주성한이 천천히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좋지 않을 듯싶소만?"

백룡천이 말했다. "소협이 어찌 죽음을 보고도 구하지 않으려 하시오? 한 번 시도라도 해보시오!"

주성한은 문득 황해어가 바로 자신의 곁에 있음을 떠올렸다. 자신과 백룡천이 암중에 왕래하는 정황이 만약 그녀의 눈에 밟히기라도 한다면 번거로운 일이 생길 수 있었기에, 얼른 고개를 돌려 황해어를 바라보았다.

황해어는 양계령의 양손에 든 두 개의 금방울에 온 정신을 쏟고 있어서, 주성한과 백룡천 두 사람이 전음으로 나직하게 나누는 대화는 전혀 알아채지 못한 듯 보였다. 그제야 주성한은 시름을 놓았다.

저편의 금전표는 일격이 허공을 가르자 노화가 더욱 치밀어 올랐고, 이미 목숨을 걸고 한바탕 싸우겠다는 마음을 굳혔다. 손을 한 번 휘둘러 부러진 갈고리를 내던져버리더니, 다섯 손가락을 갈퀴처럼 벌리고 낮은 포효를 내지르며 몸을 날려 앞으로 격렬하게 덮쳐들었다. 한 번 갈고리를 쓰고 한 번 손톱을 휘두르는 기세가 참으로 매섭기 그지없었다.

양계령이 냉소를 지으며 손에 쥔 금방울을 막 손끝에서 날려 보내려던 찰나, 주성한은 가슴이 철렁하여 얼른 크게 외쳤다. "낭자, 잠시만 멈추시오..."

외침과 동시에 신형을 번개처럼 움직여 접부채를 "촤락" 펼쳤다. 부채 끝에서 뿜어져 나온 강한 기운이 금전표를 억세게 밀어내어 물리쳤고, 그의 신형은 이미 두 사람의 사이에 가로놓여 있었다.

양계령의 오른손에 쥐여 있던 금방울은 이미 손가락 끝을 떠나 반 자 남짓 날아간 상태였다. 주성한이 가로막는 것을 보고 급히 하얀 손목을 뻗어 낚아채니, "딸랑" 하는 소리와 함께 금방울이 다시 손바닥 안으로 되돌아왔다. 그녀는 즉시 차가운 번개 같은 눈빛을 주성한의 얼굴에 던지며 무겁게 꾸짖었다. "소협은 어찌하여 가로막는가?"

주성한이 말했다. "금릉에는 생사를 두려워하지 않고 날뛰는 무리가 너무 많아, 이 자가 가면 저 자가 올 터이니 낭자께서 매번 상대하시기에 번거롭기 짝이 없을 것이오. 이 사람이 저 노인장에게 훈계 몇 마디를 건네어 보내버릴 터이니..." 신형을 홱 돌려 금전표를 마주 보며 말했다. "‘장강사괴’가 분수를 모르고 양 낭자를 범했소. 양 낭자께서 단지 각각 한쪽 팔만 해하는 것으로 징벌하셨으니 이미 지극히 너그러운 처사요. 문을 박차고 들어와 도발한 것부터가 지혜롭지 못한 짓이거늘, 굳이 만용을 부려 목숨을 걸려 하니 참으로 어리석기 짝이 없는 노릇이오. 존각은 어서 물러가시오!"

금전표는 그 말을 듣자 타오르는 불에 기름을 부은 듯하여 막 화를 터뜨리려 했다. 그런데 문득 백룡천이 전음술로 속삭였다. "금 큰형님! 푸른 산이 남아 있으면 땔감 걱정은 안 하는 법이오. 굳이 만용을 부려 목숨을 버릴 필요는 없소. 주 소협이 나서서 다리를 놓아주는 것이니 오해하지 말고 어서 자리를 뜨시오!"

금전표는 속으로 나직하게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었다. 자신도 양계령의 적수가 되지 못함을 잘 알고 있었기에, 시선을 아주 빠르게 돌려 주성한에게 고마움이 담긴 눈길을 한 번 보낸 뒤 차갑게 말했다. "존각의 훈계에 이 금 아무개가 할 말이 없구려. 사람을 구하려는 속내인지, 아니면 고의로 모욕하려는 심사인지 금 아무개가 훗날 다시 존각과 결판을 내겠소." 말을 마치고 창문을 깨부수며 뛰어내려 곧장 거리 한복판으로 내려앉았다. 수중에서 가히 패자라 불리던 이 노인은 육지에서의 신법 역시 그리 나쁘지 않았다.

양계령의 지금 표정은 더없이 냉혹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소협은 다시 아담한 자리로 돌아가시오." 날씬한 허리를 한 번 가누며 안쪽으로 걸어 들어갔다.

주성한은 시선을 황해어에게 슬쩍 던졌다. 그녀가 이미 양계령의 뒤를 바짝 쫓아 걷고 있는 것을 보고는, 더 생각할 것도 없이 뒤따라 걸어갔다.

세 사람이 다시 자리에 앉자, 사방의 기류는 조금 전과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양계령의 예쁜 얼굴에는 위엄이 서려 있었고, 가라앉은 목소리로 물었다. "여쭈어보겠는데... 소협은 저 금 씨 성을 가진 노인장과 무슨 교분이 있는가?"

주성한은 변함없는 태도로 온갖 변화에 대처하겠다는 심사로 엷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낭자는 그 말씀을 대체 어디서부터 꺼내시는 것이오?"



양계령이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 "소협은 이 몸 앞에서 잔꾀를 부릴 생각은 마시오. 당신이 겉으로는 금전표를 훈계하는 척하면서 암중에 그를 구했다는 것을 이 몸이 모를 줄 알았는가."

주성한은 본래 간사한 꾀를 부릴 생각이 없었으나, 제멋대로이면서도 무공이 극도로 고강한 양계령을 마주하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다소 심계를 써야 했다. 이에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말했다. "이러면 이 사람이 해명하기 곤란하구려! 이 사람의 본의는 단지 낭자께서 너무 많은 살업을 짓지 않기를 바랐을 뿐이오!"

양계령은 여전히 연방 냉소를 흘렸으나 눈빛의 사나운 기세는 이미 많이 수그러들어 있었다. 그녀가 분한 듯이 말했다. "길이 멀어야 말의 힘을 알고 날이 오래 지나야 사람의 마음을 보는 법이다. 소협이 만약 겉과 속이 다르다면 이 몸이 조만간 알게 될 것이다..." 어조를 멈추고 황해어의 얼굴을 유심히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묻겠는데, 황 낭자는 저 황대선과 무슨 관계인가?"

황해어는 마음속이 찔렸으나, 얼굴에는 웃음을 가득 띄우며 반문했다. "낭자는 어찌 그런 질문을 하시오?"

양계령이 말했다. "당신들 두 사람의 성이 모두 황 씨인 데다, 어젯밤에 낭자가 황대선의 방으로 찾아간 적이 있기 때문이다."

황해어는 여전히 웃으며 말했다. "낭자는 객잔에 계시지도 않으면서 객잔 안의 정황을 어찌 이리 귀신같이 잘 아시는구려..." 어조를 잠시 가다듬고 말을 이었다. "내가 그를 찾아간 것은 그저 강호 관상쟁이의 관상 보는 술법이 얼마나 고명한지 한 번 보려 했을 뿐이오. 같은 종친이라는 점 외에는 아무런 관계도 없소."

양계령이 말했다. "그렇다면 되었다..." 말을 잠시 멈추고 이어갔다. "실속을 말하자면, 이 몸이 보기에 황 낭자와는 제법 마음이 맞는 듯하여 한번 물어본 것이다. 이 몸이 황대선을 찾아가 결판을 내릴 생각인데, 만약 황 낭자가 황대선과 무슨 긴밀한 관계라도 있다면 당신과 나의 화기를 깨뜨릴까 염려스럽지 않겠는가."

보아하니 이 제멋대로이고 매서운 무림 가인 역시 제법 심계가 깊었다. 그녀가 황해어와 첫눈에 마음이 맞았다고 한 것은 분명히 거짓말이었다.

주성한이 말을 참견해 물었다. "양 낭자! 당신은 어찌하여 그 황대선의 행패를 찾아내려 하시오?"

양계령이 말했다. "이 몸의 눈에 그자가 곱게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황해어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낭자는 그 강호 관상쟁이의 내력에 대해 더 깊이 알아보신 적이 있소? 내가 보기에 황대선은 그리 상대하기 만만한 인물이 아니오!"

그녀의 이 말은 한편으로는 탐색하는 것이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기회를 틈타 부추기려는 심사였다.

양계령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그런 보잘것없는 인물 따위는 이 몸의 안중에 두지도 않는다."

주성한은 속으로 생각했다. '양계령은 분명히 황대선의 본래 면목을 알고 있으면서도 한마디도 입에 올리지 않는구나. 이 가시내의 심계가 참으로 깊기도 하네.'

황해어가 술잔을 밀어내고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술과 음식을 대접받아 신세를 졌소. 내가 먼저 자리를 뜨겠으니 죄송하오!"

양계령 역시 굳이 붙잡지 않고 말했다. "억지로 붙잡지 않겠다! 낭자는 객잔에서 기다리며 구경이나 하시는 게 좋을 것이다!"

황해어가 떠난 뒤, 주성한이 머뭇거리며 물었다. "낭자가 황해어의 앞에서 황대선이라는 사람을 언급한 것은 다른 속셈이 있어서요?"

양계령이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 "소협, 천하에 잔머리를 굴릴 줄 모르는 여자는 없다. 두고 보시오..." 어조를 무겁게 가라앉히며 말을 이었다. "소협은 내게 진실을 말하시오. 당신과 금전표는 대체 무슨 관계인가?"

주성한이 흠칫 놀라며 말했다. "그저 한 번 얼굴을 본 인연이 있을 뿐이오. 다만 이 사람이 알기로 그 수중의 패자는 아직 큰 악행을 저지른 적이 없기에..."

양계령이 안색을 싹 바꾸며 걀걀대고 요염하게 웃었다. "소협이 결국은 바른말을 하시는구려. 그러지 않았다면 서로의 체면이 크게 깎였을 것이다..." 어조를 바꾸어 말을 이었다. "이 몸이 오늘 소협을 청해 술을 마시며 마음을 터놓은 것은 오직 한 가지 부탁할 일이 있어서다."

주성한이 말했다. "과분하오, 낭자께서 아낌없이 말씀하시오!"

양계령이 말했다. "소협이 금릉에 온 것이 자연히 유산객을 하기 위함은 아닐 터이나, 이 몸 역시 그 근본을 캐묻고 싶지는 않다. 당신이 무슨 일로 왔든 간에 이 몸은 소협을 힘써 도울 용의가 있다."

주성한이 포권을 하며 읍을 했다. "고맙소!"

양계령이 말했다. "다만 소협이 먼저 이 몸을 위해 한 가지 일을 해주어야겠다."

주성한이 말했다. "다만 이 사람의 힘이 미치지 못할까 두렵소..."

양계령이 빠르게 말을 받았다. "소협은 사양하는 말을 마시오. 이 몸이 비록 횡포하게 굴지언정 도리는 따르는 법이라 결코 남에게 억지로 강요하지 않는다. 이 일은 소협에게 식은 죽 먹기나 다름없다."

주성한이 말했다. "낭자께서 명확히 일러주시오!"

양계령이 말했다. "저 황해어의 어조를 들어보니, 마치 이 몸이 그 황대선과 한바탕 싸우기를 간절히 바라는 듯싶다. 이 몸이 황대선을 두려워해서가 아니라, 단지 쓸데없는 공력을 허비하고 싶지 않을 뿐이다."

주성한이 말했다. "그렇다면..."

양계령이 말을 이었다. "이 몸에게는 따로 셈속이 있다. 방금 황해어가 이 몸의 앞에서 불을 한 번 질렀으니, 지금 객잔으로 돌아가 틀림없이 황대선의 앞에서도 한바탕 부추길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바로 이 몸이 바라는 바다. 조금 뒤 이 몸이 황대선을 만나러 갈 때, 소협이 수단을 발휘해 황해어를 객잔 밖으로 잠시만 유인해 내기를 바란다. 이것이 바로 이 몸이 부탁하는 일이다."

주성한은 가슴속으로 슬며시 한 번 놀라며 말했다. "겨우 그처럼 간단한 일이오? 낭자의 의도가 무엇이오?"

양계령이 말했다. "묻지 마시오, 소협은 먼저 돌아가 보시오!"

주성한이 말했다. "방금 낭자가 이 사람이 금릉에 온 목적이 무엇이든 간에 전력으로 돕겠다고 하셨는데, 진정인가?"

양계령이 말했다. "이 몸은 여태껏 누구에게도 약조를 한 적이 없다. 일단 소협에게 약조를 한 이상, 자연히 말한 대로 행할 것이다."

주성한이 말했다. "만약 이 사람이 금릉에 온 목적이 추오상을 죽이기 위함이라면, 낭자는 어찌하시겠소?"

양계령이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 "소협은 결코 추오상 때문에 온 자가 아니다. 그런 방법으로 나를 곤란하게 만들려 들지 마시오."

주성한이 말했다. "만약 진정 그러하다면?"

양계령이 말했다. "이 몸이 당신을 도와 그를 죽여주겠다. 다만 그가 양가보의 사위로 들어온 뒤라야 한다. 가모의 명령이 먼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뒤에 소협 역시 이 몸의 손에 죽어야 할 것이다."

주성한이 눈을 크게 뜨며 말했다. "그것은 무슨 까닭이오?"

양계령이 말했다. "이 몸이 남편을 죽인 원수를 갚아야 하지 않겠는가."

주성한이 웃으며 말했다. "다행히 이 사람은 추오상을 죽이러 온 것이 아니구려. 이 사람이 먼저 물러가겠소."

양계령이 말했다. "소협을 배웅하지 않겠다!"

주성한은 포권을 한 번 하고 자리를 떠났다.

양계령이 예상한 바는 조금도 틀리지 않았다. 황해어는 자리를 떠나 객잔으로 돌아가자마자 곧장 합자 대원으로 향하더니 황대선의 방문을 두드렸다.

황대선(黃大仙)은 황해어가 백주대낮에 찾아온 것에 대해 제법 뜻밖이라 여겼다. 그녀를 방 안으로 맞아들이고는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낭자에게 혹시슨 무슨 중대한 일이라도 있는가?"

황해어는 거만하게 의자에 주저앉으며 냉소를 지었다. "당신 황대선은 스스로 신기하게 경륜을 헤아려 남의 흉길을 점치고 화복을 묻는다고 큰소리치거늘, 당신 자신의 죽을 날은 계산해 낼 수 있겠소?"

황대선이 헤헤 웃으며 말했다. "낭자가 마음 쓰지 않아도 내 황대선은 아직 수십 년은 더 살 날이 남았다!"

황해어가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 "내가 보기에는 당신이 죽을 날이 눈앞에 닥쳤는데도 아직 모르고 있구려."

황대선이 말했다. "그 말은 황 아무개가 머리털 나고 처음 듣는 소리로군."

황해어가 말했다. "아침에 객잔 안에서 두 가지 일이 벌어졌소. 그 첫째는 ‘매화선자’ 유예향의 일이요..."



황대선이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을 받았다. "황 아무개도 이미 전해 들었소! 그 양 씨 성을 가진 가시내가 황 아무개의 꼬투리를 잡으려는 모양인데, 이틀 전 그녀가 남장으로 변복하고 황 아무개의 수하에게 접근한 적이 있소. 하지만 ‘금령칠보탈혼초’ 따위는 황 아무개의 안중에 두지도 않소."

황해어가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 "큰소리는 당신이 치는 것이니, 자연히 이 재미난 판도 당신이 이끌어가야지 않겠소. 이 몸이 괜히 한 걸음 한 셈으로 치겠소." 말을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나 곧장 가려 했다.

황대선이 팔을 뻗어 가로막으며 말했다. "낭자, 잠시 멈추시오. 이왕 왔으니 어찌 말을 더 명확히 해주지 않는가?"

황해어가 쇠와 옥을 두드리는 듯한 어조로 한 자 한 자 내뱉었다. "그 양 낭자가 당신 황대선의 행패를 찾아내려 하오."

황대선이 흠칫 놀라며 말했다. "무슨 명목으로?"

황해어가 말했다. "그녀의 손에 든 금방울 한 쌍을 믿고 그러오."

황대선이 무거운 목소리로 물었다. "낭자는 어디서 그런 소식을 들었소?"

황해어가 말했다. "자연히 양 낭자의 입에서 나온 소리요..." 목소리를 낮추며 말을 이었다. "머지않아 그녀가 당신을 찾아 여기로 올 터인데, 내가 보기에 당신은 결코 그녀의 적수가 되지 못할 듯싶으니 어서 몸을 피하는 것이 좋을 것이오."

황대선이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 "낭자가 사람을 너무 얕보는구려. 황 아무개가 누구를 두려워했다면, 무슨 배짱으로 이 금릉성에 발을 붙이고 있겠소?"

황해어가 말했다. "사정이 그러하다면 이 몸도 더는 말하지 않겠소. 당신은 죽을 날이나 기다리시오!"

말을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나 방을 나갔다.

그녀가 막 합자 대원을 걸어 나오는데, 마침 마주 오던 주성한과 딱 부딪쳤고, 얼굴에는 자신도 모르게 슬며시 놀란 기색이 서렸다.

주성한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어찌 되었든 같은 종친의 정이 있으니, 낭자께서 황대선에게 소식을 전하러 온 것이오?"

황해어는 그의 말을 받아치지 않고 도리어 반문했다. "내가 떠난 뒤에 양 낭자가 무슨 말을 더 하더이까?"

주성한이 말했다. "낭자! 당신과 나 모두 타인의 한가한 일에는 참견하지 않는 것이 좋겠소. 마땅히 우리 절박한 일부터 물어야 하지 않겠소."

황해어가 눈썹을 치켜뜨며 말했다. "상공의 말뜻이 모호하니 내 알아듣지 못하겠소."

주성한은 짐짓 신비로운 체하며 목소리를 낮추어 말을 이었다. "낭자는 추오상이 두 명의 검희를 데리고 어디로 갔는지 아시오?"

황해어가 고개를 연방 저으며 말했다. "모르오."

주성한이 말했다. "자금산으로 갔소. 하지만 산수를 구경하러 간 것이 아니니, 낭자께서 이 사람과 함께 가 일의 전말을 확인해보시지 않겠소?"

황해어가 중얼거렸다. "이 시국에 자금산으로 간다 말이오? 여기 이 재미난 판을 놓치는 것은 아무래도 너무 아쉬운 일인데."

주성한이 말했다. "낭자는 양 낭자가 황대선의 행패를 찾아내려는 일을 말하는 것이오?"

황해어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양 낭자의 ‘금령칠보탈혼초’는 과연 예사롭지 않소. 하지만 저 황대선의 솜씨 역시 그리 만만치 않을 터이니, 두 사람이 맞붙는다면 틀림없이 극히 흥미진진할 것이오."

주성한이 말했다. "그 양 낭자가 하루 이틀 안에는 아직 황대선을 찾아 들지 않을 터이니, 이 재미난 판을 놓칠 리는 없소."

두 사람은 대화를 나누며 걸음을 옮겨 이미 중문에 이르렀고, 황해어는 자신도 모르게 가게 바깥으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동시에 나지막한 목소리로 물었다. "상공이 보시기에, 추오상이 자금산으로 간 목적이 무엇이겠소?"

주성한이 말했다. "단정하기 매우 어렵소!"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객잔을 벗어나 남쪽 성벽을 향해 급히 달려갔다.

황해어 역시 자신도 모르게 다급히 발걸음을 바짝 뒤쫓았다.

두 사람의 신형이 긴 거마리에서 막 사라졌을 때, 양계령이 네 명의 시비를 거느리고 객잔에 당도했다. 그녀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곧장 합자 대원으로 향했다. 가게 사람들은 아침나절에 이미 이 다섯 처자의 매서운 기세를 보았기에, 자연히 아무도 감히 가로막지 못했다.

합자 대원의 행랑채에 이르자 양계령이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슬쩍 가눴다. 네 시비의 우두머리인 소선이 즉시 긴 회랑을 지나 황대선의 방문을 두드렸다.

방문이 스르륵 열리더니 황대선이 침착한 신색으로 물었다. "어린 처자가 무슨 일인가?"

소선(小蟬)이 읍을 하며 말했다. "우리 낭자께서 관상을 좀 보려 하오."

소선과 말을 나누는 와중에 황대선은 이미 행랑채에 서 있는 양계령을 보았으나, 짐짓 모른 체했다.

표정이 매우 대범하고 침착했으니, 이는 필시 믿는 구석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가 몸을 한 걸음 물려 방문을 널찍이 열고는 방 안쪽을 향해 손을 흔들며 말했다. "그대들의 아기씨를 방 안으로 드시게 하라!"

소선이 보고를 올리기도 전에 양계령이 이미 걸어왔다. 그녀는 네 시비를 향해 비단 소매를 한 번 휘두르며 분부했다. "너희는 밖에서 대기하거라."

날씬한 다리를 들어 방 안으로 훌쩍 들어서더니, 발꿈치로 뒤를 툭 차서 쿵 하고 방문을 닫아걸었다.

황대선은 지극히 침착한 태도로 평온한 어조로 물었다. "낭자께서 관상을 보려 하오?"

양계령은 거만하게 대나무 의자에 주저앉으며 차가운 눈길로 황대선을 한번 힐끗 보더니 매섭게 꾸짖었다. "염군도! 너는 내 양계령의 앞에서 더는 얼버무릴 생각 마라! 네 얼굴에 얹은 인피면구를 어서 벗어 던지거라!"

황대선의 그 누르스름한 얼굴에는 비록 뚜렷하게 기이한 빛이 서리지는 않았으나, 깊숙한 눈가에서 이내 두 줄기 흉포한 광채가 번뜩였고 콧구멍으로 차가운 콧방귀를 한 번 내뿜었다.

양계령은 여전히 조금도 안색을 바꾸지 않고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염 씨! 네놈이 단 한 초식 만에 이 몸을 죽음으로 몰아넣을 자신이 없다면, 가벼이 움직이지 않는 것이 좋을 것이다."

황대선은 그제야 과연 기세를 누그러뜨리며 차갑게 콧방귀를 뀌었다. "네가 남장으로 변복하고 하향의 뱃전까지 기어들었으니, 자연히 내 염군도의 내력을 진작에 빤히 꿰뚫어 보았을 터이지. 나 역시 구차하게 발뺌하지 않겠으니, 향아가 문을 박차고 들어온 심사를 명확히 밝혀보아라!"

알고 보니 그의 진짜 이름은 염군도였다! 과연 그러하니 현재 진회하에서 뱃놀이 기생으로 가장하고 있는 하향이 그를 염라왕이라 부른 법이었다.

양계령이 말했다. "이왕 왔으니 할 말을 끝마치기 전에는 이 몸도 떠나지 않겠다. 다만 너는 먼저 얼굴의 인피면구부터 벗어 던져라. 이 몸은 너의 그 누르스름하고 괴상한 몰골을 보아주기 지겹구나."

염군도(閻君濤)가 헤헤 웃으며 말했다. "네 그 두 눈알이 날카로운 칼날 같다더니, 생각지도 못하게 헛다리를 짚었구나. 이 염 아무개의 얼굴에는 인피면구 따위는 없다..."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양손으로 뺨을 거세게 한번 문지르자, 강호의 기인 황대선의 그 몰골이 순식간에 사라지고 이내 이목구비가 반듯하고 낯가죽이 하얀 얼굴이 나타났다.

양계령이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말했다. "네 역용술 하나는 참으로 고명하구나..." 어조를 잠시 가다듬고 말을 이었다. "경천궁(擎天宮)과 백화궁(百花宮)은 명색이 흑도와 백도의 패자라 일컬어지거늘, 너 염 씨는 명색이 ‘백화궁’ 궁주이자 당당한 흑도의 거두이면서 도대체 무슨 속셈으로 얼굴을 바꾸고 성을 가린 채 금릉으로 숨어들었단 말인가? 평소 네 음락을 채워주던 계집 무리마저 아끼지 않고 진회하의 뱃놀이 기생으로 타락시키면서까지, 도대체 무슨 의도를 품고 있느냐?"

염군도가 매서운 눈을 크게 뜨며 말했다. "낭자는 무슨 까닭으로 그것을 다그쳐 묻는가?"

양계령이 말했다. "문을 박차고 들어와 너와 한바탕 거래를 트고자 함이니, 자연히 네가 금릉에 잠복한 의도부터 먼저 명확히 파악해야 너와 값을 흥정하기 좋을 것이 아니겠느냐."

염군도가 잠시 흠칫 놀라며 말했다. "수년 동안 서주(徐州) 팔괘평(八卦坪)의 양가보(楊家堡)는 무림에서 도저히 하나의 문파로 쳐주지도 못하는 처지였다. 생각지도 못하게 이번 대에 이르러 낭자처럼 천품이 심후한 고수가 나와 ‘금령칠보탈혼초’로 사람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드니, 양가보의 명성 또한 널리 퍼지게 되었구나. 양 낭자처럼 명망 있는 인물과 대거리를 하는 것이라면 이 염 아무개의 신분에도 결코 격이 떨어지지 않지. 말해보아라, 대체 무슨 거래란 말이냐?"

양계령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먼저 서두르지 마라. 이 몸이 네가 금릉에 잠복한 의도가 무엇인지 먼저 들어본 뒤에 다시 이야기하자꾸나."

염군도가 눈을 부릅뜨며 대단히 불쾌한 어조로 말했다. "낭자는 어찌하여 이토록 줄기차게 근본을 캐물으려 드는가?"



양계령이 말했다. "거래를 하려면 반드시 교환 조건이 대등해야 하는 법이다. 이 몸이 네 힘을 빌릴 작정인데, 그렇다면 네가 내게 한 팔을 보탤 능력이 있는지부터 먼저 명확히 알아야겠다. 그러지 않으면 말해봤자 입만 아픈 꼴이 아니겠느냐. 거래를 트지 못하면 공연히 헛수고만 하는 셈이지."

염군도가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과연 그러한가?..." 어조를 잠시 가다듬고 말을 이었다. "그렇다면 이 염 아무개가 실상을 말하겠소! ‘백화궁’이 비록 흑도에서는 패자라 칭하나 아직 무림 전체를 제패하지는 못했소. 그리하여 이 금릉성에 잠복해 때를 기다리며 한바탕 피바람을 일으켜 패업을 펼치고자 함이오."

양계령이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말귀가 제법 당차고 야심 또한 대단하구나. 우리 양가보가 힘을 보탤 구석이 있을지 모르겠네?"

염군도는 두 눈을 둥그렇게 뜨고 양계령을 보고 또 보더니, 이내 무거운 목소리로 물었다. "낭자는 어찌하여 그런 질문을 하시오?"

양계령이 말했다. "패업을 발전시키고자 한다면 반드시 전途의 장애물을 쓸어버려야 하는 법이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스스로를 올곧다 자처하며 도를 지키는 인사 몇 놈을 도륙해야 한다는 뜻이지. 이 몸이 알기로 염 궁주는 각 문파의 독문무공을 거의 꿰뚫고 있어 자연히 안중에 두는 자가 없다고 들었다. 하지만 어쩌면 네가 직접 손을 써서 죽이기 곤란한 자가 있을 터이니, 그렇다면 이 몸이 대신 수고를 해줄 수도 있다."

염군도는 크게 흠칫 놀라 한참 동안 멍하니 있다가 이내 머뭇거리며 물었다. "당신이 나를 대신해 사람을 죽여주겠다는 말이오?"

양계령이 고개를 한 번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다."

염군도가 말했다. "그렇다면 낭자 역시 이 염 아무개의 손을 빌려 원수 한 놈을 제거하고 싶은 모양이구려?"

양계령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네가 잘못 짚었다."

염군도가 망연자실하여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물었다. "그렇다면...?"

양계령이 말을 받았다. "이 몸은 네가 전면에 나서서 추오상을 납치한 뒤, 암중에 양가보로 압송해 주기를 바란다."

염군도가 혀를 내두르며 말했다. "이것 참 기이한 노릇이군! 낭자의 솜씨라면 추오상을 납치하는 것쯤은 식은 죽 먹기나 다름없을 터인데, 어찌하여 타인의 손을 빌리려 하시오?"

양계령이 말했다. "그 연유는 캐묻지 마라. 오직 이 거래를 틀 용의가 있는지 없는지만 말하면 된다."

염군도가 말했다. "이 염 아무개가 기꺼이 당신을 위해 한 번 손을 쓸 용의는 있소만, 현재로서는 낭자의 그 목숨을 앗아가는 금방울 한 쌍을 빌릴 만한 구석이 없구려."

양계령이 말했다. "꼭 그렇지만은 않을 것이다. 지금 이 객잔 안에도 네가 반드시 제거해야 마땅하나 네가 직접 손을 쓰기 곤란한 자가 한 명 있지 않느냐."

염군도가 짙은 눈썹을 치켜뜨며 물었다. "그 자가 누구란 말이오?"

양계령이 쇠와 돌이 부딪치듯 힘 있는 어조로 한 자 한 자 내뱉었다. "그 자는 바로 황해어다."

염군도가 말했다. "낭자의 그 말은 매우 기이하구려. 이 염 아무개가 어찌하여 그녀를 죽음으로 몰아넣어야 한단 말이오?"

양계령이 말했다. "염 궁주는 명색이 흑도의 패자이면서 얼굴을 바꾸고 성을 가린 채 금릉에 잠복했으니, 필시 어떤 염려하는 바가 있어서일 것이다. 이 몸이 알기로 황해어는 네 내력을 귀신같이 빤히 알고 있다. 어쩌면 그녀가 네게 비밀을 지켜주겠다고 약조했을지 모르나, 늘 마음을 놓기 어려운 법이지. 잡초를 뽑을 때는 뿌리까지 없애야 비밀이 밖으로 새어 나가는 것을 원천적으로 봉쇄하는 최상의 상책이다."

염군도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이내 말했다. "낭자는 저 황해어 역시 얼굴을 바꾸고 성을 가린 상태라는 것을 알고 있소?"

양계령이 흠칫 놀라며 말했다. "그녀는 황산노인의 후손이 아니란 말이냐?"

염군도가 말했다. "황산노인은 평생 장가를 들지 않았는데, 어디서 그런 딸년이 나오겠소."

양계령이 말했다. "그렇다면 그녀는 대체...?"

염군도가 말을 이었다. "낭자는 ‘은호’라는 인물을 들어본 적이 있소?"

양계령이 경멸하는 기색을 역력히 드러내며 말했다. "무림의 거대한 음탕한 계집년 말이냐, 그년 역시 이 객잔에 묵고 있지 않느냐?"

염군도가 말했다. "황해어는 바로 ‘은호’가 음란한 짓거리를 벌이다 낳은 딸년이오. 생부가 누구인지는 알 길이 없고, 그 에미년 역시 이름도 성도 없었기에 그 딸년 또한 정식 이름이 없소. 오늘은 장 씨라 했다가 내일은 이 씨라 하고, 게다가 역용술이 극도로 고명하여 얼마나 많은 신분으로 쉽게 바꾸어 살았는지 모를 지경이오. 얼마 전에는 해옥환이라는 이름으로 ‘경천궁’에 기어들어 가 추오상 휘하의 사대검희 중 우두머리 노릇을 했소. 그러다 나중에는 거짓으로 죽은 척하며 ‘경천궁’을 이탈해 금릉으로 숨어들었으니, 이 가시내는 간계가 다단하고 익힌 무공 또한 온갖 잡학이라 죽이기가 여간 쉽지 않소. 더욱이 그녀 역시 흑도의 인물이라 할 수 있으며 육신을 밑천 삼아 널리 선연을 맺어두었으니, 설령 단번에 쳐 죽인다 한들 뒤따를 후환이 무궁무진하오."

양계령은 비록 이야기를 들으며 혀를 내둘렀으나 해옥환이라는 인물을 그리 대단치 않게 여겼기에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 몸은 개의치 않는다!"

염군도가 웃으며 말했다. "실속을 말하자면, 이 염 아무개는 그녀를 죽이고 싶지 않소."

양계령은 눈썹을 치켜뜨며 냉소를 지었다. 상대가 명색이 처첩을 백 명이나 거느린 색마라는 사실이 떠오르자, 자신도 모르게 상스러운 말이 입 밖으로 튀어나오려 했다. 그러다 갑자기 두 뺨에 붉은 노을이 번지며 머뭇거리며 말을 잇지 못했으니, 대개 그녀가 하고 싶었던 말이 스스로 입에 담기 부끄러운 성질의 것이었기 때문이리라.

염군도가 말했다. "낭자의 신색을 보니 필시 내 뜻을 알아챈 모양이구려. 이 염 아무개가 비록 꽃을 꺾고 풀을 탐하는 짓을 즐기나 감히 그녀를 건드릴 엄두는 내지 못하오. 그녀를 죽이려 하지 않는 것은 다른 까닭이 있어서요."

양계령이 말했다. "그 까닭을 들려다오."

염군도가 말했다. "말을 뱉었다간 혹여 낭자의 귀를 더럽힐까 염려스럽소."

양계령이 말했다. "곧장 말해도 무방하다."

염군도가 몸을 돌려 천천히 말했다. "해옥환은 채보술에 정통하오. 이는 여인이 내력을 충실히 쌓는 데 있어 하나의 거대한 지름길이라 할 수 있지. 본궁에 비록 백 명의 여인이 있으나 이 절기를 할 줄 아는 가시내가 단 한 명도 없소. 이 염 아무개는 마음 같아서는 그녀를 데려다 본궁의 여러 분대 제자들에게 가르침을 내리게 하고 싶소. 그러니 자연히 당장은 그녀를 죽음으로 몰아넣고 싶지 않은 것이오."

양계령이 말했다. "하지만 그녀는 너와 나를 모두 죽음으로 몰아넣으려 하고 있다."

염군도가 다시 몸을 돌려 마주 보며 물었다. "어찌 그리 보시오?"

양계령이 말했다. "방금 그녀가 와서 소식을 전하지 않았더냐?"

염군도가 말했다. "그렇소. 언사가 매우 감언이설에 가까웠지. 그녀는 그저 산에 앉아 호랑이끼리 싸우는 구경을 하려는 심사에 불과하오. 그녀가 너와 나를 죽이려 든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소."

양계령이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물었다. "그녀가 이름을 바꾸고 ‘경천궁’에 기어들어 가 검희 노릇을 한 목적이 무엇이더냐?"

염군도가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모르오."

양계령이 다시 물었다. "금陵으로 숨어든 목적은?"

염군도는 여전히 연방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것 역시 모르오."

양계령이 말했다. "그녀가 이단 옆차기와 좌도방문에 정통한 데다 ‘경천궁’에 섞여 들어 금릉까지 왔으니, 필시 추오상을 겨냥한 짓임이 분명하다."

염군도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낭자가 추오상을 양가보로 납치해 가기만 하면, 더는 마음을 쓸 필요가 없지 않겠소."

양계령은 자신도 모르게 눈썹을 연방 치켜뜨며 말했다. "염 궁주가 전면에 나서서 사람을 붙잡아 주겠느냐?"

염군도가 말했다. "이 염 아무개가 한 말씀 묻는 것을 양해하시오. 양 낭자가 이 염 아무개에게 추오상을 납치해 달라 청하는 목적이 대체 무엇이오?"

양계령이 말했다. "가모께서 이미 그자를 양가보의 사위로 점찍으셨기 때문이다."

염군도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말했다. "그것은 이 염 아무개도 미처 예상치 못한 일이군. 영당께서 추오상을 사위로 낙점하신 데에는 무슨 특별한 까닭이라도 있소?"

양계령이 말했다. "모른다."

염군도(閻君濤)가 말했다. "낭자는 그저 어머니의 명에 따라 행하는 것이오? 아니면 추오상에게 이미 연모하는 정이라도 싹튼 것이오?"

양계령이 입술을 삐죽이며 말했다. "이 몸은 추오상이라는 인물에게 그리 좋은 인상을 갖고 있지 않다. 다만 어머니의 명을 거역하기 어려울 뿐이지. 비단 가모의 명령일 뿐만 아니라, 우리 보의 전통적인 가문 규율이라 할 수도 있다."

염군도가 말했다. "낭자도 필시 추오상(秋傲霜)이 한 자루 사절검(四絶劍)을 차고 다닌다는 소문을 들었을 터인데..."




양계령이 말을 받았다. "그것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 게다가 우리 보가 문호를 연 이래로, 각 대에서 사위로 낙점한 인물 중 단 한 명도 놓친 적이 없으니, 자연히 추오상 역시 그 그물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염군도가 말했다. "추오상은 그 부친의 오골을 고스란히 이어받은 데다 천품 또한 극히 심후하오. 이 염 아무개가 수일 동안 관찰한바, 그 아이 역시 야심이 대단하니 귀보의 사위로 그리 쉽게 고개를 숙이려 들지 않을까 염려스럽소!"

양계령이 불쾌한 기색을 역력히 드러내며 말했다. "염 궁주의 그 말은 우리 보를 너무 얕보는 처사가 아니더냐. 추오상이 우리 보의 사위로 들어오는 것은 높은 데를 기어오르는 격이어늘, 어찌 고개를 숙인다는 말을 가당치 않게 입에 올리는가?"

염군도가 말했다. "적어도 추오상의 마음속에는 양가보로 들어가는 것이 자신에게 더없이 커다란 억울함이라 여겨질 것이오."

양계령이 말했다. "염 궁주는 그런 쓸데없는 소리는 집어치우고, 오직 수락할 것인지 말 것인지 그것만 말해라."

염군도가 물었다. "낭자에게 묻겠소, 공연히 대낮에 사람을 가로채자는 것이오? 아니면 암중에 진행하자는 것이오?"

양계령이 말했다. "네놈이 승낙한 뒤에 이 몸이 모든 세세한 전말을 일러줄 것이다."

염군도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현재 금릉에 발을 붙인 무림의 무리들이 저마다 목표를 추오상이라는 인물에게 맞추고 있으나, 오직 이 염 아무개만은 예외라오. 그러니 내가 전면에 나서서 추오상을 가로채 준다 한들 이 염 아무개에게 딱히 해가 될 것은 없지."

양계령이 말했다. "그렇다면..."

염군도가 말을 가로챘다. "이 염 아무개가 기꺼이 낭자를 위해 수고를 아끼지 않겠소. 다만, 이 염 아무개는 결코 밑지는 거래는 하지 않소이다."

양계령이 말했다. "이 몸이 방금 말하지 않았느냐, 너를 대신해 수고를 해줄 용의가..."

염군도가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이 염 아무개에게 설령 만 명의 강적이 도사리고 있다 한들, 어찌 감히 낭자의 그 고운 두 손을 번거롭게 해드리겠소."

양계령이 말했다. "네 어조를 들어보니, 아무래도 따로 조건이 있는 모양이구나."

염군도가 말했다. "낭자는 과연 빙설처럼 총명하시어 빤히 한마디로 꿰뚫어 보시는구려."

양계령이 말했다. "말해라! 다만 사자처럼 너무 입을 크게 벌리지 않기만을 바란다."

염군도가 말했다. "사람 하나로 넷을 바꾸는 격인데, 낭자는 기꺼이 이 밑지는 장사를 하시겠소?"

양계령이 미간을 찌푸리고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이 몸은 네 말뜻을 알아듣지 못하겠다."

염군도가 말했다. "낭자가 이 염 아무개에게 무슨 수단을 쓰라 명하든 추오상을 가로채 주는 일은 그대로 따르겠소. 다만, 이 염 아무개는 낭자 휘하의 소선(小蟬), 소연(小娟), 소교(小嬌), 소아(小娥) 네 시비를 요구하는 바요..."

양계령이 눈썹을 홱 치켜뜨며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을 받았다. "네놈이 결국은 내 네 가시내들에게 엉큼한 수작을 부리려는 심사였구나."

염군도가 헤헤 웃으며 말했다. "낭자는 부디 사악한 쪽으로만 생각지 마시오. ‘백화궁’ 안에 요염하고 아름다운 제자들은 널려 있으나, 낭자 수하의 네 시비처럼 자질이 맑고 수려한 아이들은 그리 흔치 않소. 그러니 이 염 아무개가 마땅히 이번 기회를 틈타 낭자에게 크게 한몫 단단히 뜯어내야 하지 않겠소."

양계령은 고개를 숙이고 깊은 생각에 잠겨 한동안 대답하지 않았다.

염군도가 다시 말을 이었다. "‘백화궁’ 제자들 중에는 귀보 출신의 인물도 있으니, 훗날 설령 양측에 무슨 충돌이 생긴다 한들 완충 작용을 해줄 것이오. 서로에게 비단 해가 없고 이롭기만 한 일이어늘, 낭자께서 어찌 마다하시겠소?"

양계령이 나직하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결국 네놈에게 단단히 덜미를 잡히고 말았구나. 다만 네 가시내들의 나이가 아직 어리니 너는 필히 살뜰히 대해주어야 할 것이다. 그러지 않으면 이 몸이 네놈을 찾아가 기어이 장부를 결산할 것이다."

염군도가 허허 웃으며 말했다. "이 염 아무개가 비록 신선한 과일을 즐기나 과일이 온전히 익기를 기다릴 줄은 아오. 게다가 본궁에 즐거움을 취할 만한 속된 분대들은 차고 넘치니, 자질이 이토록 빼어난 아이들을 이 염 아무개가 어찌 감히 함부로 망치려 들겠소?"

양계령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좋다! 그렇게 한마디로 못 박기로 하자."

염군도가 신색을 바르게 하며 말했다. "낭자의 하사에 감사드리 오. 이제 낭자께서 추오상을 어떻게 가로챌 것인지 그 방책을 말씀해 주시오!"

양계령이 손을 한 번 치켜들며 말했다. "궁주는 귀를 이쪽으로 바짝 대라."

염군도가 과연 고개를 앞으로 쑥 내밀자, 양계령은 난초 같은 숨결을 토해내며 나직나직하게 속삭였다. 향기가 코를 찔러왔으나 염군도는 온 정신을 가다듬고 응시했다. 평소 ‘최화색마(?花色魔)’라는 불미스러운 별호로 불리던 이 ‘백화궁’ 궁주는 비록 꽃을 꺾는 짓을 즐겼으나, 때와 장소, 그리고 대상을 가릴 줄 아는 위인이었다.

등불이 번뜩이며 진회하 위를 예쁘기 그지없게 수놓고 있었다.

높다랗게 비단 등불을 내건 화방(畵舫)들이 강물 위를 한가로이 노닐고 있는 모습은 마치 수십 마리의 불룡과 같았다. 번화한 노랫소리와 풍악 소리가 삐걱이는 노 젓는 소리를 덮어버렸고, 환락의 정취 또한 살벌한 살기를 감추어 버렸으니, 이는 마치 푸른 물결 속에 암암리에 도사린 소용돌이를 사람들이 미처 알아채지 못하는 것과 같았다.

하늘의 기색과 등불의 풍경을 보아하니, 지금 시각은 대략 술시(戌時) 초순쯤 된 듯싶었다.

‘은화방(銀花舫)’은 지금 조용히 낚시골목(釣魚巷) 어귀의 선착장에 정박해 있었고, 돛대 위에는 ‘명화에 이미 주인이 있소(名花已有主)’라는 글귀가 새겨진 푸르스름한 비단 등불이 외로이 내걸려 있었다.

하향은 여전히 전과 다름없는 모습으로 거울을 마주하고 정성껏 화장을 하고 있었고, 추월 또한 줄곧 그녀의 뒤에서 이것저것 분주히 챙기며 시중을 들고 있었다.

한 차례 차를 마실 만한 공력을 들여 하향의 머리를 구슬과 보석으로 화려하게 치장해 준 뒤, 추월은 그녀의 목에 두르고 있던 비단 수건을 풀어내어 머리끝에 남은 분가루를 가볍게 털어내 주었다.

하향은 고개를 이리저리 돌려가며 거울 속을 꼼꼼히 살피고는 그제야 입을 열었다. "되었다, 가서 저 분홍색 운채라삼(雲彩羅衫)을 가져오너라."

추월이 예 하고 대답하고는 몸을 돌려 침상 머리의 벽장을 열고 매우 명귀한 운사라삼을 꺼내왔다.

하향이 콧구멍을 씰룩이며 냄새를 맏아보더니, 갑자기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추월아! 너는 어찌하여 라삼을 사향(麝香)으로 훈증하는 것을 깜빡 잊었느냐?"

추월이 웃는 낯으로 달래며 대답했다. "아기씨! 춘화 언니가 사향을 어디다 숨겨두었는지 알 길이 없어, 이 비자가 한참을 찾았으나 끝내 찾지 못했나이다."

하향의 안색이 차갑게 굳어지더니 악랄하게 욕설을 퍼부었다. "그 쳐 죽일 년, 황천길에 가더라도 마땅히 칼산에 오르고 기름 가마에 처박혀야 마땅할 년이로구나."

추월이 말했다. "아기씨! 춘화 언니는 이미 죽은 목숨인데 어찌 자꾸 저주를 하십니까, 그저..."

하향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을 가로챘다. "너는 그 춘화라는 가시내가 진정 강물에 뛰어들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믿느냐?"

추월이 흠칫 놀라며 말했다. "설마 그것이 가짜란 말씀이옵니까."

하향이 말했다. "춘화 그 가시내는 우리 염라왕 영감탱이에게 홀려 한창 흥이 돋아 있던 차인데, 그녀가 어찌 차마 죽을 엄두를 내겠느냐!"

추월이 중얼거렸다. "그렇다면...?"

하향이 말을 이었다. "가짜다! 분명 염라왕 영감이 그녀에게 무슨 비밀스러운 임무를 맡기면서 타인이 알까 염려되어, 이처럼 강물에 뛰어들어 자진했다는 위장술을 부린 것이 분명해. 아직도 알아듣지 못하겠느냐?"

추월이 아 하고 나직한 소리를 내고는, 이내 묵묵히 하향이 라삼을 갈아입는 시중을 들었다.

모든 매무새가 정돈되자 하향은 다시 거울을 향해 꼼꼼히 비추어 본 뒤 물었다. "지금이 어느 대쯤 되었느냐?"

추월이 말했다. "대략 술시 초순이옵니다."

하향(荷香)이 눈썹을 찌푸리며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다시 물었다. "추월아, 그 추오상이라는 자가 틀림없이 오겠느냐?"

추월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가 이 비자에게 대답하기를 못 박듯 단호히 하였으니, 늦어도 술시 정각(戌正) 무렵에는 필히 배 위로 당도할 것이옵니다."

하향이 중얼거렸다. "염라왕 영감이 또 무슨 얄궂은 잔꾀를 부리려는 것인지..." 잠시 뜸을 들인 뒤 말을 이었다. "듣자 하니 그 추 씨 성을 가진 애송이 또한 그리 만만히 건드릴 인물은 아니라더구나!"

추월이 말했다. "아기씨께서 어찌 그런 일까지 마음을 쓰십니까. 우리가 처음 궁에 들어왔을 때부터 이미 이 목숨을 주인 가문에게 바친 바이니, 살고 죽는 것은 하늘의 명에 달린 것이라 어찌 일일이 다 살피겠습니까."

하향이 어깨를 으쓱이며 웃었다. "이 가시내가 나보다 한술 더 떠서 달관했구나..." 비단 소매를 한 번 휘두르며 말을 이었다. "추월아! 너는 어서 배 위로 나가 손님을 맞이할 채비를 하거라."

추월(秋月)이 대답을 올리고는, 이내 이 정교하고 자그마한 침실을 걸어 나갔다.



화풍이 얼굴을 스치니 더할 나위 없이 시원했다. 추월은 난간에 바짝 기대어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

갑자기 배가 미미하게 흔들리자 추월은 깜짝 놀라 고개를 돌렸다. 나타난 사람은 두부(杜府)의 총관인 채 총관이었다.

채금당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추월! 배에 손님이 있느냐?"

추월은 연신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없습니다!"

채금당은 손을 들어 난간 위를 가리키며 말했다. "손님이 없는데 어찌 저 초록색 비단 등을 걸어 두었느냐?"

영리하고 눈치 빠른 추월은 즉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저 초록색 비단 등을 걸어 둔 것은 풍류를 즐기려는 손님이 배에 올라와 번거롭게 굴까 염려되어서다. 아가씨는 채 어르신을 모신 이후로 줄곧 정조를 지키고 있다."

그제야 채금당의 안색이 풀렸다. 그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아가씨는 선창 안에 있느냐?"

추월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예! 채 어르신, 당신은..."

채금당이 낮은 목소리로 말을 받았다. "배를 갈대밭으로 저어 가거라. 너의 채 어르신이 하향 아가씨와 옛 정을 나누고자 한다." 말을 마치자마자 그는 몸을 돌려 침실 선창으로 들어가는 사다리 입구로 걸어갔다.

추월은 속으로 은근히 애가 탔지만, 가로막기도 난감했다.

바로 이때, 기슭에서 갑자기 호통 소리가 울려 퍼졌다. "채 총관, 걸음을 멈추시오."

호통을 친 사람은 '백화궁'의 궁주 염군도였다. 지금도 여전히 황대선의 차림을 하고 있던 그는, 채금당이 자신이 안배한 대계를 망치는 것을 당연히 원치 않았다.

소리를 듣고 고개를 돌린 채금당은 그가 황대선임을 알아채고 마음에 즉시 경외심이 생겼다. 배 앞머리로 다가간 그가 엄숙한 목소리로 물었다. "대선께서 무슨 일로 부르십니까?"

염군도(閻君濤)가 말했다. "채 총관이 어찌 이리 풍류를 즐기러 올 흥취가 생겼소?"

채금당(蔡錦堂)은 얼굴이 멋쩍어지자 허허 웃으며 말했다. "만약 대선께서 흥이 있으시다면 채 모가 대접할 테니, 함께 부자묘 앞으로 가서 통쾌하게 몇 잔 마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염군도는 일부러 신비로운 척 목소리를 낮추어 말했다. "잠시 후 황 모가 두 어르신을 방문하려 하니, 채 총관은 즉시 부로 돌아가 두 어르신께 고해 주시오."

채금당이 급히 말했다. "두 어르신께서도 대선과 만나고 싶어 하신다. 채 모가 먼저 한 걸음 앞서 돌아가 고할 테니, 그때 귀한 걸음을 정중히 기다리겠다." 말을 마치고 화방(화려하게 치장한 배)에서 뛰어내려 날쌔게 사라졌다.

염군도는 배 위에 있는 추월에게 눈길 한번 주지 않고, 다시 어둠 속으로 모습을 감추었다.

그제야 추월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다행히 그들의 주인이 제때 번거로움을 해결해 주었기에 망정이지, 그러지 않았다면 정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몰랐을 터였다.

눈 깜짝할 사이에 무정(오후 8시 무렵)이 되었다. 추월이 간절히 바라보며 기다리던 중, 마침내 세 사람의 그림자가 낚시 골목에서 천천히 걸어 나오는 것이 보였다.

추오상이 오는데 두 검희가 동행하는 것은 원래 예상했던 바였다.

멀리서 보니 두 검희는 이미 남장을 하고 있었다. 사정을 모르는 사람이라면 입술이 붉고 치아가 하얗고 늠름하며 수려한 이 세 젊은이에게 깊은 시선을 던질 것이 분명했다.

상대방이 가까이 다가오기도 전에 추월이 먼저 사다리 입구로 달려가 외쳤다. "아가씨! 추오상이 왔다."

하향은 소리를 듣고 신속하게 선상으로 올라와 물었다. "그 사람 혼자더냐?"

추월이 손을 들어 가리키며 말했다. "보아라! 세 사람이다. 두 검희도 함께 왔다."

하향이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방금 채 씨 성을 가진 자가 왔었느냐?"

추월(秋月)이 가볍게 응하며 말했다. "다행히 주인께서 쫓아내 주었다. 그러지 않았다면 정말 대처하기 어려웠을 거다..."

하향이 남몰래 손을 뻗어 그녀를 꼬집었다. 어느새 추오상 일행 세 사람이 배 옆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그녀가 눈길을 돌려 바라보니, 한눈에 가운데에 있는 짙은 눈썹에 큰 눈을 가진 자가 추오상임을 알 수 있었다. 마음이 순간 흔들렸으나 그녀는 이내 마음을 다잡았다. 상대방은 마치 옥으로 조각한 과일 같아서, 바라볼 수만 있을 뿐 실제로 입에 넣고 먹을 수는 없는 존재 같았기 때문이다.

추오상은 배 옆에 이르러 멈춰 섰다. 오후에 자신에게 편지를 전해 준 추월을 한눈에 알아보고 바삐 외쳤다. "추월 아가씨, 이 사람이 약속을 지키러 왔다!"

추월이 공손하게 말했다. "추 공자, 배로 오르십시오!"

추오상이 고개를 끄덕이자 두 검희와 함께 화방에 올랐다.

하향이 앞으로 나아가 예를 표하며 말했다. "시첩 하향, 추 공자를 뵙는다."

추오상이 손을 맞잡아 답례한 후 종용히 말했다. "아가씨께서 기밀 대사를 알려주신다고 들었소. 그래서 추 모가 일부러 배에 올라 뵈러 왔으니, 이제 가르침을 듣겠다."

하향이 말했다. "시첩이 무례를 무릅쓰고 한 말씀 묻겠다. 공자께서는 시첩을 믿으시는가?"

추오상이 말했다. "추 모 역시 방자한 말을 한마디 하겠다. 아가씨의 약속은 어쩌면 함정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추 모는 이미 왔으니 편안히 여길 뿐, 믿고 안 믿고를 따질 것이 없다."

하향이 말했다. "그렇다면 아주 좋다..." 몸을 돌려 추월에게 비단 소매를 한 번 휘두르며 말했다. "추월! 밪줄을 풀고 배를 재촉하여 갈대밭으로 가 정박하거라. 한적해야 추 공자와 이야기하기 좋다."

추월이 대답하고 밪줄을 푼 뒤 배의 꼬리로 갔다. 삐걱거리는 소리와 함께 화방이 점차 기슭을 떠났다.

하향이 손을 저으며 말했다. "추 공자, 선창 안으로 드셔서 잠시 앉으십시오. 시첩이 거친 음식과 엷은 술을 준비했으니, 부디 청을 들어달라."

추오상이 고맙다는 말을 하고 사다리 입구로 걸어갔다.

그러나 남장을 한 두 검희는 화방의 양쪽에 나누어 선 채 꼼짝도 하지 않았다.

하향이 웃으며 말했다. "두 분은 어찌 선창으로 들어가 함께 한잔하지 않는가?"

두 검희가 한목소리로 말했다. "부궁주님 앞에 어찌 우리 자리가 있겠느냐. 아가씨께서는 편히 하셔라!"

하향은 당연히 억지로 권하기 어려웠다. 두 검희가 선상에 머무는 것은 조금 후 어둠을 틈타 배에 오를 염군도에게 불편함을 줄 수도 있었지만, 그녀는 그렇게 많이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만약 마음속의 저 염라대왕 같은 남자가 일을 처리하는 데 조금 순조롭지 못하다면, 오히려 그녀에게 알 수 없는 쾌감을 줄지도 모를 일이었다.

선창 안으로 들어서자 하향은 벽에 기대어 있는 자단나무 작은 사방 탁자를 당겼다. 그리고 벽면 그릇장에 미리 준비해 둔 네 가지 반찬과 한 병의 '천취도화홍', 상아 젓가락, 은잔을 꺼내어 추오상과 마주 앉았다. 고운 손으로 술병을 잡고 미주를 잔 가득 채우며 부드럽게 웃었다. "시첩이 먼저 한잔 올리겠다."

추오상이 손바닥을 뻗어 술잔을 덮으며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아가씨, 잔을 들기 전에 잠시 멈추시오. 추 모가 먼저 한 가지 물어보겠다. 아가씨께서 청한 것은 본심이오, 아니면 타인의 부탁을 받은 것이오?"

말주변은 이미 염군도에게 철저히 배운 터라 하향은 즉시 대답했다. "사실대로 말씀드리면, 시첩은 타인의 부탁을 받았다."

추오상이 두 눈썹을 치켜세우며 말했다. "부탁한 자가 누구 선가?"

하향(荷香)이 말했다. "강호의 관상쟁이 황대선(黃大仙)이다."

추오상(秋傲霜)이 말했다. "그것참 괴이하군. 그는 추 모와 같은 객잔에 머물고 있다. 할 말이 있다면 어찌 추 모에게 직언하지 않고, 번거롭게 아가씨를 통해 전하려 한단 말이오?"



하향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시첩은 그것까지는 모르겠다. 이른바 남의 돈을 받았으면 남의 재앙을 없애주는 법이라..."

추오상이 말을 받았다. "그가 당신에게 추 모에게 무슨 말을 전하라고 하더냐?"

하향이 말했다. "그는 공자께서 잠시 금릉을 떠나시기를 바라고 있다..."

그녀의 말이 마침 여기에 이르렀을 때, 선창 밖에서 갑자기 나지막한 목소리가 이어졌다. "맞소. 추 부궁주께서 자진해서 잠시 금릉을 떠나신다면 백 리는 있고 일 해는 없다고 할 수 있지."

말을 한 사람은 바로 그 염군도였다. 당연히 추오상의 눈에는 그가 여전히 왜소하고 초라한 행색의 황대선으로 보였다.

추오상은 소리를 듣고 사람을 보자 마음속으로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술잔을 밀쳐내고 일어서며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존가께서는 어디서 오시는 길이오?"

염군도가 문앞에 버티고 서서 냉정하게 웃으며 말했다. "당연히 물을 건너왔소."

추오상이 말했다. "두 검희가 설마 존가의 독수에 당한 것이오?"

염군도가 허허 웃으며 말했다. "추 부궁주가 이런 상황에서도 여전히 여인을 아끼고 보살피는 마음을 잊지 않을 줄은 몰랐소. 하지만 크게 안심해도 좋소. 두 검희는 단지 혼혈(昏穴)이 짚여 잠시 잠들었을 뿐이오."

추오상이 말했다. "존가께서는 어찌하여 손을 써서 본 부궁주의 부하인 두 검희의 혼혈을 막아 버린 것이오?"

염군도가 말했다. "황 모가 당신과 나의 만남을 그들이 아는 것을 원치 않았기 때문이오."

추오상이 말했다. "이 하향 아가씨가 이미 존가의 말을 전했으니, 본 부궁주는 이제 존가에게 답할 수 있소. 이 사람은 아직 금릉을 떠날 생각이 없소."

염군도가 냉소하며 말했다. "그렇다면 황 모가 강제력을 쓸 수밖에 없겠소!"

추오상이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본 부궁주가 검을 봉하고 움직이지 않는다고 해서 존가가 경솔하게 무력을 쓸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마시오. 존가의 그 '무팔괘(武八卦)' 따위는 본 부궁주의 안중에도 없소."

염군도가 말했다. "추 부궁주! 황 모가 한마디 하겠소. 피도 안 마른 어린아이 같은 당신은 물론이요, 저 '창랑검객' 단비우라 해도 황 모의 안중에는 없소."

추오상이 약간 멍해지며 말했다. "존가가 '무팔괘'의 초식을 한 번 보여준 후로, 원래 존가를 '현기문(玄奇門)'의 사람으로 생각했소. 그러나 현기문은 규율이 엄격하여 존가처럼 이토록 거만하고 미쳐 날뛰지 않소. 존가는 어찌 본래의 신분을 드러내지 않는 것이오?"

염군도가 말했다. "번거롭게 물을 필요 없소."

추오상이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리 외고집이라면 본 부궁주가 손가락을 검으로 대신하여 이 미친 자를 한바탕 교훈해 주어도 상관없겠군."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식지와 중지 두 손가락을 모아 번개처럼 염군도의 '선기(璇璣)' 대혈을 찔러갔다. 이는 당당하고 바른 검법의 초식으로, 비록 검봉의 날카로움은 없었으나 검기의 기세가 있었다.

염군도는 신형을 미미하게 흔들어 가볍게 피하며 차갑게 콧방귀를 꼈다. "추 부궁주가 어찌 헛되이 힘을 낭비하는가? 검을 뽑아 칼집에서 꺼낸다면 한 번 겨뤄볼 만하겠지만, 손가락으로 검을 대신하는 것은 한참 모자라오."

추오상은 상대가 회피하는 신법이 확연히 '무지문(無極門)'의 '부광약영(浮光掠影)' 경공임을 보고 마음속으로 흠칫 놀라며, 동시에 속으로 생각했다. '상대는 도대체 어느 쪽 길의 사람인가.'

염군도는 안색이 조금 완화되자 말했다. "방금 하향 아가씨가 틀림없이 전했을 터, 잠시 금릉을 떠나는 것은 백 리가 있고 일 해가 없다고 할 수 있소. 어찌 한결같이 강함을 뽐내며 무의미한 싸움을 하려 하는가."

추오상은 대답도 하지 않고 전력을 다해 또 한 초식을 공공해 갔다.

염군도가 냉소를 터뜨리며 몸을 피하지도 않고 단숨에 손가락 하나를 내질렀다.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추오상의 호구(虎口, 엄지와 검지 사이)를 정확히 찔러가니, 추오상의 마음속에 격렬한 경악이 일었다.

초식이 기이하고 수법이 빠르며 내경의 힘이 충분한 것은 추오상을 경악하게 만들기에 부족했다. 그가 경악을 금치 못한 것은, 염군도가 펼친 반격 수법이 뜻밖에도 그의 부친 추일장이 당년에 창안한 철필 초식 중 하나인 '화룡점정(畵龍點睛)'이었기 때문이다.

추오상은 사부의 입을 통해 무림 인물들을 많이 익히 알고 있었다. '경천궁(擎天宮)'의 부궁주가 된 후에는 단비우와 무림의 대세를 논하면서 견문이 더욱 더해졌다.

이 순간 마음속으로 번뜩 깨달은 바가 있어 냉소하며 말했다. "과연 존가는 대단한 내력이 있는 자였군."

염군도가 자부하는 것은 각 문파의 독전 무공을 능숙하게 익힌 것이었다. 지금 진력하여 과시하고 있으니, 자연히 추오상이 그의 진면목을 알아채는 것에 개의치 않았다. 말을 듣고 허허 웃으며 말했다. "추 부궁주가 그래도 안목은 좀 있군!"

추오상이 말했다. "당당한 백화궁(百花宮) 궁주이자 흑도의 거물이, 뜻밖에 머리와 꼬리를 숨기고 금릉에 잠복해 있다니. 필시 또 무슨 음모를 꾸미려는 것이겠지!"

염군도가 말했다. "번거롭게 물을 필요 없소."

추오상이 말했다. "존가는 궤계가 다단하고 무공이 걸출하니 본 부궁주를 두려워할 리가 없소. 그런데도 존가가 기필코 본 부궁주를 금릉에서 멀리 떠나보내려 하니, 혹시 다른 연고가 있는 것이오?"

염군도가 낮게 호통쳤다. "잔말 마라!"

추오상은 자신이 결코 염군도의 적수가 되지 못함을 스스로 알았다. 하물며 지금은 검을 봉한 기간이기도 했다. 계산해 보건대 늦어도 내일 밤이면 하희가 단비우(單飛宇)의 수유(手諭 :친필 명령서)를 가지고 돌아올 터이니, 수유를 읽어본 후에 다시 대책을 세우는 것이 나았다. 이에 완병지계(緩兵之計 :시간을 버는 계책)를 쓰며 말했다. "존가의 말대로 본 부궁주가 잠시 금릉을 떠나는 것이 백 리가 있고 일 해가 없다는 말이 틀리지 않을지도 모르겠소. 그리하여 본 부궁주도 고려해 보고자 하니, 내일 이 시간에 존가에게 답을 주면 어떻겠소."

염군도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잔머리 굴리지 마라. 염 모가 친히 너를 압송하여 이 석두성(石頭城 :금릉의 별칭)을 떠날 것이다."

추오상의 마음속에는 은근히 놀라움이 일었으나, 표정은 필사적으로 침착함을 유지하며 말했다. "존가께서는 권세로 사람을 능멸할 작정이오?"

염군도가 말했다. "그렇게 말해도 틀린 것은 아니지."

추오상이 말했다. "전해지기로 존가는 각 문파의 독전 무공에 정통할 뿐만 아니라 박람강기하다고 들었소. 관중이 말하기를, 의식이 풍족한 후에야 욕됨을 안다고 했소! 존가는 그 뜻을 이해하오?"

염군도의 신색이 미미하게 멍해지며 말했다. "음! 그래서 어쨌다는 말이냐?"

추오상이 한 자 한 자 금과 옥을 두드리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본 부궁주는 옛사람의 말을 본떠 한마디 하고 싶소. 목숨을 보존해야 비로소 위명이 있고, 위명이 있어야 비로소 신용을 논할 수 있는 법이오."

염군도의 신색이 또 한 번 멍해지며 말했다. "그 말이 무슨 의미냐?"

추오상의 얼굴에 갑자기 한 가닥 상서롭고 온화한 미소가 나타났다. 마치 먹구름이 겹겹이 쌓인 하늘가에 갑자기 한 바퀴 태양이 떠오른 듯했다. 걸음걸이를 무겁고 완만하게 하여 앞으로 두 걸음 걸어가더니, 맑은 하늘의 날벼락처럼 느닷없이 크게 한 소리 질렀다. "검을 받아라!"

'검'이라는 글자가 두 입술에서 막 떨어지자마자, 한 줄기 날카로운 빛이 이미 염군도의 가슴 앞으로 휘감아 들었다. 말소리도 빨랐지만 검을 뽑는 것은 더 빨랐다. 알고 보니 추오상이 약속을 어기고 갑자기 검을 사용한 것이었다. 검을 봉하겠다는 약속은 단지 소월매 개인에게 한 서약일 뿐이었다. 이른바 두 가지 해로움 중 가벼운 것을 택한다는 도리에 따라, 그는 결코 고리타분한 사람이 아니었다.

염군도는 추오상이 신의를 저버리고 검을 움직일 줄은 전혀 생각지도 못했다. 게다가 상대가 선수를 완전히 빼앗아 전력으로 진격해 오니, 순식간에 그는 위험한 국면에 빠졌다.

침실 선창은 겨우 사방 한 장(一丈) 남짓에 높이는 겨우 여덟 자에 불과했다. 선창 안에는 침대, 옷장, 탁자, 의자가 가득 차 있어 회전할 여지가 거의 없었다. 위로는 몸을 튕겨 날아오를 수 없고, 좌우로도 몸을 돌려 피하기가 불편했다. 그러나 염군도는 과연 흑도의 거물다웠다. 양손을 모아 강력한 장풍 한 줄기를 내뿜으며, 찔러오는 장검을 향해 강하게 맞서 나갔다.

추오상은 진즉에 준비가 있었다. 하물며 그는 이 순간 염군도가 펼치는 외문 경파 무공인 '철사장'을 한눈에 알아보았다. 한 쌍의 맨손이 무쇠처럼 단단하게 변해 있었다. 즉시 손목을 가라앉혀 검을 누르더니, 검광을 위로 치켜 올려 상대의 목덜미를 겨누어 찔렀다.

염군도 역시 추오상이 초식을 바꿀 것을 예상한 듯했다. 장풍을 휘두르는 형세를 따라 끊어진 연처럼, 겉보기에는 흔들흔들하는 듯했으나 실제로는 극도로 영활하게 비단 이불이 겹겹이 쌓인 침상 위로 뛰어올랐다.

검은 가볍고 영활함을 귀하게 여기며, 특히 신법과 보법을 중히 여긴다. 선창 안은 공간이 제한되어 검을 쓰는 자가 기량을 펼치기 어려웠다. 추오상은 바로 이 짧은 틈을 타서 문을 뚫고 나갔다. 발끝으로 사다리 판을 단 한 번 디디자, 몸은 이미 선상에 이르렀다.

추월은 진즉에 주인의 명을 받아 방어의 책임을 맡고 있었다. 나이는 비록 어리고 무공도 약했으나 겁을 내지는 않았다. 추오상이 선창 안에서 뛰어내려 오는 것을 보자마자, 번개처럼 고운 다섯 손가락을 뻗어 추오상의 어깨를 움켜쥐려 했다.

염군도의 진면목을 알아챈 순간, 추오상은 은화방(銀花舫) 위의 기녀와 몸종이 필시 '최화색마(催花色魔)의 부하인 화류계의 무리일 것이라고 짐작했다. 그리하여 선상으로 뛰어오를 때, 이미 추월에 대해서도 방비가 있었다. 즉시 장검을 한 번 휘두르니, 추월은 허리가 동강 나 두 조각이 났다. '사절검(四絶劍)'이 움직이면 목숨이 끊어지니, 그 어린 몸종은 좀 억울하게 죽은 셈이었다.

추오상이 막 몸을 돌려 사다리 입구를 봉하려 할 때, 문득 쾌정 한 척이 물결을 헤치며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배 앞머리에 서 있는 한 사람이 높이 외쳤다. "추 형, 어서 이쪽으로 오시오."

추오상은 목소리를 통해 온 사람이 주성한임을 알아챘다.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양팔을 치켜들어 혼수 상태에 빠진 두 검희를 옆구리에 끼고 몸을 날려 뛰어올랐다. 쾌정의 노를 잡은 자가 맹렬히 힘을 더하니, 추오상은 정확히 배 위에 착지했다.

주성한(朱星寒)이 손을 휘두르며 말했다. "백 대협, 신속하게 배를 돌리시오."



알고 보니 배를 젓는 사람은 수괴(水怪) 백룡천(白龍天)이었다. 이 쾌정이 진회하 위를 마치 시위를 떠난 화살처럼 신속하게 달리는 것도 당연했다.

백룡천(白龍天)이 대답하고는 노를 세차게 저으니, 눈 깜짝할 사이에 쾌정은 '은화방'에서 십 장 넘게 멀어졌다.

주성한이 물었다. "추 형이 검을 썼소?"

추오상이 말했다. "부끄럽소..." 말을 잠시 멈추더니 이어갔다. "주 형은 어찌 내가 여기 있는 줄 알았소?"

주성한이 말했다. "소 아가씨께서 이미 잠시 금릉을 떠나시면서, 가시기 전에 특별히 이 사람에게 추 형의 검을 봉한 약속이 끝나기 전까지 보호의 책임을 다해달라 부탁하셨소. 그리하여 이 사람이 수시로 추 형의 행적을 주의 깊게 살폈으니, 부디 괴이하게 여기지 마시오."

추오상이 한숨을 쉬며 탄식했다. "이 사람은 본래 신의를 굳게 지키는 사람이 되고자 했으나, 정세에 몰린 탓에 어쩔 수 없이 소 아가씨와의 약속을 저버리게 되었소."

주성한이 말했다. "추 형이 마음에 너무 두고 마음에 걸려 할 필요는 없소. 마땅히 기회를 보아 임기응변을 발휘해야 하는 법이오..." 말을 잠시 멈추더니 이어갔다. "두 검희는 상처를 입었소?"

추오상이 말했다. "단지 혼혈이 짚였을 뿐이오..." 말하면서 손가락을 튕겨 두 검희의 혼혈을 풀어주었다.

두 검희는 깨어나 어리둥절해했으나, 현재 상황을 어느 정도 짐작했는지 더는 입을 열어 묻지 않았다.

주성한이 말했다. "추 형, 선창 안으로 들어가 앉으시오."

추오상이 눈을 들어 좌우를 힐끗 살피더니 물길이 아득히 넓은 것을 발견하고 놀라서 물었다. "이 배는 어디로 가는 것이오?"

주성한이 말했다. "이 사람이 추 형과 깊은 대화를 나누고 싶소. 오직 큰 강 위라야 비교적 조용하니, 이에 잠시 배를 대고 기슭으로 올라갈 생각은 없소. 추 형은 부디 의심하지 말아 달 구려."

추오상은 그제야 눈 깜짝할 사이에 쾌정이 진회하 입구를 벗어나 장강 수면에 이르렀음을 깨달았다. 그는 스스로 상대방이 어떤 나쁜 마음을 품었을 거라 의심하지 않았고, 하물며 검을 손에 쥐고 있으니 두려울 것도 없었다.

주성한이 이미 선창의 휘장을 걷어 올렸고, 추오상은 손짓을 해 두 검희에게 선창 밖을 지키게 한 뒤 발을 내디뎌 선창 안으로 들어갔다.

선창 안에는 이미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은 추오상이 들어오는 것을 보자 일어서서 포권을 하며 말했다. "노형은 금전표라고 하오, 오래전부터 명성을 들었소!"

추오상도 손을 맞잡아 답례하며 말했다. "오래전부터 명성을 들었소."

이후 세 사람은 각각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주성한이 물었다. "그 강호의 점술가 황대선이 추 형이 검을 움직일 만한 가치가 있는 자였소?"

추오상은 즉시 대답하지 않고 시선을 금전표에게 슬쩍 던지며 말했다. "주 형과 이 수라의 호걸은 어떤 친분이 있는 사이요?"

금전표가 가로막으며 말했다. "노형은 물러갈 테니, 두 분이서 마음을 터놓고 은밀히 이야기 나누시오."

주성한이 팔을 뻗어 금전표를 가로막은 후 추오상에게 말했다. "금 노어르신과 이 사람은 망년지교라 할 수 있소. 추 형이 이 사람에게 말할 수 있는 것이라면 금 노어르신이 들어도 무방하오."

추오상이 금전표에게 포권을 하며 말했다. "추 모가 죄를 청하오..." 말을 잠시 멈추더니 이어갔다. "배꼬리에서 배를 젓는 사람은 누구시오?"

주성한이 말했다. "동정 군산 '운룡방'의 호법이신 백 대협으로, 사람들은 '수괴' 백룡천이라 부르오. 이 사람의 막역지교요."

추오상이 말했다. "이 두 수라의 강자가 있었던 덕분에 주 형이 순조롭게 이 사람을 인도해 '은화방'을 떠나게 해 준 것이오. 그렇지 않았다면 이 사람은 지금 필시 아직도 피비린내 나는 싸움을 벌이고 있었을 거요."

주성한이 놀라며 물었다. "그 황대선이 그토록 대단하단 말이오?"

추오상이 말했다. "무림의 선배들이 늘 말씀하시기를, 강호를 행할 때 심복을 만나기는 어렵다고 했소. 눈앞의 금릉은 마침 풍파가 험난하고 교활한 국면이라, 서로 속이고 속이며 각자 자기 이익을 다투고 있으니, 본래 매사에 한 걸음 물러서고 말은 반만 남겨야 하오. 그러나 이 사람은 주 형을 잠시 심복으로 여기고 있으니, 이에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하고자 하오."

주성한이 포권을 하며 말했다. "뜻을 받아들이겠소."

추오상이 말했다. "주 형은 그 강호 점술가의 내력을 아시오?"

주성한이 말했다. "이 사람은 단지 황대선이 그의 진짜 성명이 아님을 알 뿐, 그의 본래 면목은 모르오."

추오상이 말했다. "현재 흑도의 거물이자 한 세대의 무림 간웅으로, 사람들이 '최화색마'라 부르는 '백화궁'의 궁주 염군도를 주 형은 들어본 적이 있소?"

주성한과 주성한이 동시에 놀라며 말했다. "그자란 말이오?"

추오상이 고개를 끄덕이며 엄숙한 신색으로 말했다. "전해지기로 이 마두가 각 문파의 독전 무공에 정통하다고 하던데 과연 거짓이 아니었소. 방금 그는 뜻밖에 선부께서 당년에 연구해 창안하신 철필 초식 중 하나인 '화룡점정'을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펼쳐 보였소. 결코 흉내만 낸 것이 아니었소."

금전표가 말했다. "노형이 물길에서 구른 지 거의 사십 년이 되었소. 그동안 염군도가 금릉에 온 적이 두 번 있었는데, 무공이든 실력이든 간에 그는 성명을 숨기고 모습을 바꿀 필요가 없는 자요. 이번에 금릉에 온 것은 그 속내를 헤아리기 어렵군."

주성한이 물었다. "추 형은 어찌하여 그 염군도와 손을 쓰게 된 것이오?"

추오상이 말했다. "그는 이 사람에게 잠시 금릉을 떠나라고 요구했고, 게다가 자신이 친히 압송하여 떠나겠다고 했소. 이는 단지 그럴듯한 말일 뿐, 그의 진짜 목적은 사람을 납치해 가려는 것에 불과했소."

주성한은 침묵을 지키며 말을 하지 않았다. 낮에 그는 이미 양계령의 입을 통해 황대선이 염군도의 화신임을 알았으니, 방금의 질문은 사실 알고도 물은 것이었다. 오후에 비록 그 요염하고 교활한 암여우와 함께 자금산에 다녀왔으나, 객잔의 동정은 그의 귀와 눈을 피하지 못했다. 양계령이 염군도를 찾아갔었으나 아무런 소란도 없었던 것을 보면, 두 사람의 담판이 뜻이 맞았음을 알 수 있었다. 염군도가 추오상을 납치하려 한 것은 당연히 대신 일을 처리해 주려 한 것인데, 그는 또 이해가 가지 않았다. 염군도 같은 흑도의 거물이 어찌 그리 쉽게 양계령의 지시를 따랐단 말인가. 양계령이 추오상을 양가보의 사위로 삼고 싶어 하면서도 왜 이런 수법을 쓰는 것일까. 설령 이런 수법을 쓴다 해도 왜 그에게 대신 일을 시키는 것일까. 주성한이 유일하게 확신할 수 있는 것은, 양계령이 영리하고 괴팍하니 그 속에 필시 많은 잔꾀가 들어있을 것이라는 점뿐이었다.

염군도가 함정을 파서 손을 쓴 것이 양계령의 부탁을 받은 일이라는 점에 대해, 주성한은 발설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그 어린 계집아이를 노엽게 만드는 것은 파란 얼굴에 송곳니를 드러낸 사나운 악마를 노엽게 만드는 것과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추오상은 주성한이 오랫동안 말이 없자 탄식하며 물었다. "주 형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소?"

주성한이 대꾸하듯 답했다. "이 사람은 염군도의 이번 거사의 목적이 어디에 있는지 생각하고 있었소."

추오상이 말했다. "이 사람 역시 백번 생각해도 이해가 가지 않소. 게다가 그는 자신의 본래 면목을 가릴 생각도 없었소."

주성한이 말했다. "그의 생각에는 추 형이 결코 벗어나기 어려울 터이니 아무런 꺼림칙함이 없었겠지. 그러나 추 형이 임기응변에 밝아 대국을 돌보기 위해 작은 신의를 버리고 갑자기 검을 뽑을 줄은 전혀 몰랐을 것이오. 이로 보아 '사절검'의 위세는 과연 명불허전이구려."

추오상이 가볍게 숨을 쉬며 말했다. "주 형이 이 사람을 칭찬해 주는 말이나, 이 사람은 감히 자만하지 못하오. 만약 당시에 갑자기 검을 뽑아 상대방의 손을 쓸 수 없게 만들지 않았다면, 이 사람은 아마 선창을 걸어 나오지 못했을 거요."

주성한이 갑자기 화제를 돌려 물었다. "추 형은 어떤 계획이 있소?"

추오상은 멍하니 있다가 이내 천천히 대답했다. "이 사람은 현재 '경천궁' 부궁주의 직책에 있어 명을 받고 남순 중이오. 매사를 궁주의 뜻에 따라 행해야 하니, 주 형처럼 그렇게 소탈하고 자유롭지 못하오. 사실대로 말씀드리면, 이 사람은 이미 검희 하화련을 밤낮으로 달려 궁으로 보내 지시를 청했소. 단 궁주의 친필 명령서가 오기 전에는 이 사람이 함부로 움직이기 곤란하오."

주성한이 말했다. "염군도가 한 번의 일격에 실패했으니 필시 다시 추격해 올 것이오. 추 형을 위해 생각건대, 눈앞에서는 잠시 몸을 피해야 하지 않겠소?"

추오상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이 사람도 마침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니, 주 형은 비웃지 말아 구려."

주성한이 말했다. "그게 무슨 말이오?..." 말을 잠시 멈추더니 이어갔다. "방금 추 형이 말하기를, 이미 잠시 이 사람을 심복으로 여긴다고 했으니, 이 사람 역시 추 형을 남처럼 대할 수 없소. 이 사람이 방금 무거운 상황을 피해 가벼운 곳으로 갈 만한 좋은 생각을 해두었소."

추오상이 눈을 크게 뜨며 말했다. "이 사람이 가르침을 듣겠소."

주성한이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 "추 형은 그 양계령 아가씨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오?"


                               < 한매오상(寒梅傲霜) 第 一 卷 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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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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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무극태극권 | 작성시간 26.06.12 수고에 감사드립니다!
  • 작성자조상 | 작성시간 26.06.13 감사합니다
  • 작성자왕타 | 작성시간 26.06.15 고맙습니다
  • 작성자사니조아 | 작성시간 26.06.16 감사합니다
  • 작성자이모백 | 작성시간 26.06.17 첩첩산중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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