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무협장편소설(中國武俠長篇小說)
원 제 : 한매오상(寒梅傲霜) + 續 비천팔조(飛天八爪) 작 가 : 와룡생(臥龍生)
한매오상(寒梅傲霜) 또는 자룡기(紫龍旗) 또는 양자강(楊子江)의 혈투(血鬪)
차 례 제 2 권
第 十一 回. 폐부지언(肺腑之言)....마음속에서 우러나는 참된 말.
第 十二 回. 모사춘광(茅舍春光)....오막살이.
第 十三 回. 오결얼연(誤結孼緣)....잘못하여 악연을 맺다..
第 十四 回. 세균역적(勢均力敵)....힘이 서로 필적하다.
第 十五 回. 각환귀태(各環鬼胎)....각자 비밀스러운 계획을 세우다.
第 十六 回. 용희지미(龍姬之迷)....용희에 매혹되다.
續 비천팔조(飛天八爪)
第 十七 回. 남살무고(濫殺無辜)....죄가 없는 사람은 죽이지 말라.
第 十八 回. 와호장룡(臥虎藏룡)....와호장룡.
第 十九 回. 편지형극(遍地荊棘)....도처에 가시덤불이다.
第 二十 回. 오중암산(誤中暗算)....암수에 걸려들다.
< 第 十一 回. 폐부지언(肺腑之言)...마음속에서 우러나는 참된 말. >
추오상(秋傲霜)은 저도 모르게 멈칫하며 한참 동안 생각에 잠겼다가 이내 대답했다. "교활하고 사나우며 무림 가인의 위세는 있으나, 대가집 규수의 부드러움은 없소. 무공 면에서는 병기가 기특하고 무공이 절정이며, 예리한 기세가 겉으로 드러나고 살기가 뿜어져 나오더군. 선한 일을 한다면 무림에 많은 복이 되겠으나, 악한 일을 한다면 피바람이 몰아칠 것이오. 그 폭력적이고 사나운 성정을 보아하니 향후 반드시 무림의 여마(女魔)가 될 상이오."
주성한의 눈빛이 빛났다. "추 형이 그 여자를 아주 적나라하고 완벽하게 평가했구려. 이로 보아 눈앞에서는 그 여자와 벗이 되는 것이 이롭고, 적이 되는 것은 해롭소."
추오상이 말했다. "주 형의 뜻은...?"
주성한이 말을 받았다. "낮에 양 아가씨가 호언장담하기를, 추 형의 검을 봉한 약속 기한이 끝나기 전까지는 그 누구도 추 형의 털끝 하나 건드리지 못하게 하겠다고 했소. 우리가 마침 이 기회를 빌려 양 아가씨를 부추겨 염군도를 상대하게 만드는 것이 어떻겠소."
사실 그의 속내에는 계산이 있었다. 양계령에게 염군도와 적이 되라고 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는 말로 그녀를 얽매어, 추오상을 납치하려는 사악한 생각을 잠시 접게 만들 자신이 있었다. 다만 자신의 이러한 속뜻을 대놓고 말할 수는 없을 뿐이었다.
추오상은 한참 생각에 잠기더니 말했다. "이 사람이 주 형의 그런 생각이 틀렸다고 말할 수는 없소. 다만 상의해 볼 여지가 있구려."
주성한(朱星寒)이 말했다. "추 형의 가르침을 청하오."
추오상이 말했다. "방금 염군도(閻君濤)가 이 사람의 털끝 하나 건드리지 못한 것이 첫째요, 이 사람이 이미 약속을 깨고 검을 뽑았으니 더는 검을 봉하겠다는 제약에 얽매이지 않는 것이 둘째요. 또한 이 사람은 현재 '경천궁' 부궁주의 직책에 있으니, 개인의 명성은 작은 일이나 본궁의 명예는 큰일인데 어찌 남에게 구걸하듯 매달릴 수 있겠소..."
주성한이 말을 받았다. "추 형, 이 사람이 가서 한 번 시험해 보게 해 주면 어떻겠소?"
추오상이 말했다. "주 형이 그리하겠다면 굳이 나무랄 수는 없으나, 이 사람은 그 일에 관여할 수 없소."
주성한이 말했다. "추 형이 이미 잠시 몸을 피하기로 결정했으니, 이 사람이 감히 그 높은 뜻을 마음대로 바꿀 수는 없소. 다만 추 형이 잠시 몸을 피하기 전에 양계령이 염군도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하는지 알아낼 수 있다면, 추 형에게 이익은 있고 해는 없을 것이오."
추오상이 말했다. "주 형이 기필코 가겠단 말이오?"
주성한이 금전표(金戰彪)에게 시선을 슬쩍 던지며 말했다. "금 노어르신이 이미 양계령이 장강 부두에 있는 '임경별관'에 묵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내셨소. 이 사람이 지금 가서 양 아가씨의 동향을 탐지해 볼 테니, 추 형은 강 위에 배를 띄워두고 기다리 구려. 길어야 일각(약 15분), 짧으면 차 한 잔 마실 시간 동안 이 사람이 갔다가 다시 돌아오겠소."
추오상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뜻대로 하시오..." 말을 잠시 멈추더니 이어갔다. "무례를 무릅쓰고 한 말씀 묻겠소만, 주 형이 이토록 수고를 아끼지 않고 마음을 쓰는 것은 도대체 무엇 때문이오?"
주성한이 웃으며 말했다. "현재 추 형께서 선친이 남기신 문방사우를 선물로 주겠다고 허락하셨으니 감격해 마지않소. 단지 추 형이 하루빨리 위험한 국면에서 벗어나, 틈을 내어 고향에 한 번 다녀오심으로써 이 사람의 소원이 이루어지기만을 바랄 뿐이오. 만약 이 사람에게 어떤 목적이 있다고 한다면, 아마도 그 신물에 관한 일일 것이오."
추오상이 말했다. "주 형이 그리 말하니, 이 사람이 마음속에 깊이 기억해 두겠소."
주성한이 말했다. "그렇다면 추 형은 잠시 배 위에서 기다려 주시오!" 말을 마치고 금전표에게 손을 한 번 휘둘렀다.
금전표가 배 옆의 대나무 휘장을 걷어 올리고 창밖으로 머리를 내밀더니, 입술을 모아 맑고 우렁찬 휘파람 소리를 한 번 내질렀다. 얼마 지나지 않아 강 저편에서 응답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어 그가 손을 저으며 말했다. "소협께서는 선창 밖으로 나가 기다리십시오. 쾌정이 곧 당도할 것입니다."
주성한이 휘장을 걷고 선창 밖으로 나가니, 과연 쾌정 한 척이 날아들듯 다가와 순식간에 곁에 멈춰 섰다.
주성한이 마중 나온 쾌정에 뛰어오르며 급히 외쳤다. "강가 부두로 가자!"
쾌정은 시위를 떠난 화살처럼 기슭을 향해 달렸다. 아주 잠깐 사이에 배가 기슭에 닿았다.
주성한이 배를 젓는 두 대한에게 분부했다. "여기서 잠시 기다려라. 이 사람이 금방 다녀오겠다."
두 대한이 공손히 대답했다. 그들은 모두 주성한이 금전표를 대신해 액운을 해결해 준 일을 알고 있었기에 그를 매우 공경했다.
주성한이 배에서 내려 기슭에 오르자마자, '임경별관'이라 적힌 네 개의 기름종이 풍등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이때는 아직 무말(오후 9시 무렵)이었기에, 별관 문 앞은 등불이 휘황찬란했고 점포 안도 술과 요리 향기가 가득하며 손님들로 북적였다.
주성한이 문으로 들어서자, 마침 점원이 맞이하며 물었다. "상공, 손님을 만나러 오셨습니까?"
점원은 영리한 눈을 타고났기에, 찾아온 손님이 짐을 하나도 들지 않은 것을 보고 방을 잡으러 온 것이 아님을 단번에 알아챘다.
주성한이 말했다. "한 가지 묻겠소. 귀관에 혹시 양 아가씨라는 분이 묵고 계시오?"
점원이 말했다. "서주부에서 오신 양 아가씨라면 동쪽 별채의 '황(黃)' 자 상방에 묵고 계십니다. 소인이 상공을 안내하겠습니다."
주성한이 은전 한 조각을 꺼내 점원의 손바닥에 쥐여주며 말했다. "바쁠 테니 내 스스로 찾아가겠소. 이 은자는 주막에 가서 술이나 한잔 사 마시구려."
점원이 연신 허리를 굽히며 말했다. "감사합니다, 상공! 안마당을 지나 오른편으로 돌면 바로 동쪽 별채이니 방문에 문패가 붙어 있습니다."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주성한은 이미 안마당으로 걸어 들어갔다.
'임경별관'은 내부가 넓어 동쪽 별채의 상방만 해도 열여섯 칸이 있었는데, 천자문 순서대로 번호가 매겨져 있었고 네 번째 방이 바로 '황' 자 상방이었다.
방문에 다다른 주성한이 손을 들어 문을 가볍게 두드렸다.
방문이 끼익 열렸고, 주성한은 문을 열어준 사람이 네 명의 몸종 중 가장 어린 소아임을 알아보고 즉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소아, 양 아가씨가 계시느냐?"
소아가 말했다. "잠시 기다려 주십시오!" 그러고는 다시 방문을 닫았다.
잠시 후 방문이 활짝 열렸고, 소아가 문가에 공손히 서서 영접했다. "상공, 들어오십시오."
이 상방은 바깥방과 안방 두 칸으로 나뉘어 있었는데, 바깥방은 거처하는 곳이고 안방은 침실이었다. 주성한이 방안으로 들어서니 오직 네 명의 몸종만 보일 뿐 양계령은 보이지 않았다. 안방에 있음을 짐작했기에 굳이 캐묻지 않았다.
몸종들의 우두머리인 소선이 주성한을 시중들어 앉히고 향기로운 차 한 잔을 올린 뒤 공손히 곁에 서 있었다.
주성한은 양계령에 대해 다소 경계하는 마음이 있었기에, 차잔을 받아 들고 피어오르는 향기만 한번 맡은 뒤 그 뜨거운 차잔을 탁자 위에 내려놓았다.
이윽고 휘장이 움직이며 양계령이 안방에서 걸어 나왔다.
그녀는 비단 치마를 땅에 끌며 머리에는 진주와 비취를 가득 꽂고 있었는데, 아담하고 다채로운 자태에 아양과 요염함이 넘쳐나 낮의 모습과는 판이하게 달랐다.
이를 본 주성한은 저도 모르게 멍해졌다. 실태를 보일까 염려되어 황급히 일어서서 손을 맞잡아 예를 표하며 말했다. "이 사람이 깊은 밤에 찾아와 맑은 휴식을 방해했으니, 아가씨께서 너그러이 혜량해 주시기를 바라오."
양계령(楊桂玲) 역시 미소를 지으며 예를 표했다. "소협께서 너무 예의를 차리십니다..." 대범하게 주성한의 맞은편에 앉은 그녀는 고개를 살짝 치켜들며 이어갔다. "소협께서 필시 무슨 요긴한 일이 있으신 모양입니다?"
주성한이 먼저 자리에 앉은 후 말했다. "아가씨께서 낮에 이 사람에게 솔직히 말씀하시기를, 그 추오상이 영부인의 눈에 들어 귀보의 사위로 선택되었다고 하셨는데, 설마 농담으로 하신 말씀은 아니겠지요?"
양계령이 아름다운 눈을 굴리며 교태 섞인 목소리로 화를 냈다. "평생대사를 어찌 농담으로 삼을 리가 있겠습니까?"
주성한이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리 말씀하시니, 이 사람이 아무래도 아가씨를 위해 큰일을 하나 해낸 것 같소."
양계령이 버들가지 같은 눈썹을 치켜세우며 말했다. "무슨 일로 소협의 귀한 걸음을 번거롭게 했는지 모르겠으나, 말씀해 주시면 본 아가씨도 감사히 여기겠소."
주성한이 말했다. "아가씨께서 느닷없이 화를 내셨다가 다시 기뻐하시니, 참으로 이 사람을 어리둥절하게 만드는구려."
양계령이 득의양양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소협에게 숨기지 않겠다! 염 마두가 추오상을 만나러 간 것은 본 아가씨의 뜻이다."
주성한은 이미 짐작하고 있었으나, 일부러 모르는 척 물었다. "그것은 무슨 이유요?"
양계령이 말했다. "본 아가씨가 염 마두에게 추오상을 납치하여 양가보로 보내라고 했다."
주성한이 천천히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이 사람은 더욱 이해가 가지 않소. 혼인 대사는 억지로 구해도 이익이 없는 법이오. 설령 반드시 억지로 구해야 한다 하더라도 아가씨의 무공은 추오상을 이기기에 충분하니, 굳이 염 마두의 손을 빌릴 필요도 없지 않소!"
양계령이 요염하게 웃으며 말했다. "소협께서 본 아가씨를 기쁘게 하려고 듣기 좋은 말씀을 하시는구려."
주성한이 말했다. "이 사람의 마음속 깊은 곳에서 나온 말이오." 속으로는 은근히 부끄러워했다! 양계령의 무공이 탁월하여 추오상을 이길 수 있다는 말은 사실이었다. 그러나 이 말을 한 동기는 단지 그녀의 마음속 비밀을 캐내기 위함일 뿐이었다.
양계령은 처음부터 주성한에게 숨기는 것이 없었기에 주성한의 속내를 세밀히 살피지 않았고, 자아도취에 빠진 어조로 말했다. "본 아가씨가 염 마두를 움직이게 한 것은 다른 속셈이 있어서다."
주성한은 대놓고 캐묻기 곤란하여 다만 그녀의 어조에 장단을 맞추며 말했다. "무슨 속셈이오?"
양계령이 말했다. "염군도는 당대 무림의 흑도 거물인데, 그런 자가 본 아가씨를 위해 힘을 쓰게 만들었으니 또한 통쾌하지 않은가!"
주성한은 자신도 모르게 속으로 눈살을 찌푸렸다. 양계령이 이처럼 방자하게 강함만을 내세우니, 무공이 아무리 탁월하고 뛰어난들 심계에 능한 사람을 만나면 필시 손해를 볼 터였다.
당연히 이를 대놓고 설명하기는 곤란했기에, 다만 짙은 눈썹을 가볍게 찌푸리며 말했다. "염 마두가 공짜로 힘을 쓰지는 않았을 터, 필시 아가씨께서도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렀겠구려."
양계령이 말했다. "소협의 말이 맞다! 염 마두는 내 곁에 있는 네 명의 몸종을 보상으로 요구했다..." 말을 잠시 멈추더니 이어갔다. "하지만 본 아가씨는 이미 염 마두가 추오상을 납치하지 못할 것임을 짐작하고 있었다."
주성한이 물었다. "어찌 그리 보시오?"
양계령이 궤변을 늘어놓듯 교활하게 웃으며 말했다. "소협이 금릉에 온 목적은 분명 추오상에게 있을 터인데, 어찌 그가 염군도의 손에 떨어지는 것을 가만히 보고만 있겠는가? 소협은 고개를 저어 부인하지 마셔라."
주성한은 마음속으로 은근히 놀랐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그녀가 방자하게 강함만을 내세우는 것을 염려했었다.
사실 이 무림 가인은 심계를 부리는 데도 능한 고수였으니, 앞으로는 더욱 조심해야겠다.
이에 그는 가타부타 명확히 답하지 않고 얼버무리며 말했다. "아가씨께서 이토록 단정 지어 말씀하시니, 이 사람도 부인하기가 곤란하구려."
양계령이 말했다. "안심하셔라! 본 아가씨도 소협에게 억지로 인정하라고 핍박하지는 않겠다..." 말을 잠시 멈추더니 이어갔다. "본 아가씨가 염군도를 내세워 사람을 납치하려 한 데는 또 다른 의도가 있다."
주성한이 가볍게 아 하고 소리를 냈으나 묻지는 않았다. 묻지 않아도 양계령이 스스로 말할 것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과연 양계령이 다시 말했다. "굳이 염 마두를 내세운 것은, 바로 추오상이 약속을 깨고 검을 쓰도록 압박하기 위함이었다."
주성한이 놀라며 물었다. "그것은 무슨 까닭이오?"
양계령이 말했다. "추오상을 본 보의 사위로 삼으려면 아마도 많은 우여곡절을 겪어야 할 거다. 추오상의 성격에 대해서는 본 아가씨도 어느 정도 파악했으니, 그가 약속을 깨고 검을 쓰도록 압박한 목적은 그의 완강한 자신감을 무너뜨리기 위함이다. 게다가 사십구 일 동안 검을 봉하겠다는 약속은 단지 소월매 개인에게 한 서약일 뿐인데, 그 괘씸한 계집아이를 위해 신의를 지키는 꼴이 본 아가씨는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심혈을 기울여 그들의 검을 봉하겠다는 약속을 파괴하려 한 것이다."
주성한이 웃으며 말했다. "아가씨의 심계는 참으로 이 사람을 감복하게 만드는구려." 속으로는 '이 어린 계집의 심계가 너무도 무섭구나'라고 생각했다.
양계령이 웃으며 말했다. "다행히 본 아가씨의 목적이 순조롭게 달성되었으니 망정이지, 그러지 않았다면 소협은 본 아가씨와 원한 관계를 맺었을 거다!"
주성한이 말했다. "만약 이 사람이 추오상의 생사에 관여하지 않았다면 아가씨의 심계가 허사가 되지 않았겠소?"
양계령이 말했다. "소협이 저 금전표와 힘을 합쳐 배를 준비하고, 백룡천이 객잔에서 미행한 것까지 모두 본 아가씨의 눈에 들어왔다. 진작에 염 마두가 순조롭게 손에 넣지 못할 줄 알았다. 유일하게 확신하지 못했던 것은 추오상이 과연 약속을 깨고 검을 쓸 것인가 하는 점이었는데, 결과가 완전히 본 아가씨를 만족시켰다."
주성한이 말했다. "아가씨께서는 이 사람이 이 일로 인해 염군도와 원한을 맺게 되었다는 점은 생각지 않으셨소?"
양계령이 말했다. "소협은 방금! 이미 말씀하셨다시피 이 거사는 순전히 본 아가씨를 위해 힘을 쓴 셈이다. 그러므로 본 아가씨가 그 염군도가 소협을 찾아와 이 일을 따져 묻지 못하도록 보장하겠다."
주성한이 말했다. "그럴 필요는 없소. 이 사람이 이 일에 끼어든 이상, 뒷감당은 개의치 않소."
양계령이 말했다. "소협의 호기가 대단하다! 하지만 일이 많은 것보다 없는 것이 나은 법인데, 소협은 정말로 본 아가씨가 소협을 위해 화근을 잘라버리는 것을 원치 않으시는가?"
주성한이 말했다. "아가씨께서 그리 말씀하시니, 이 사람이 그 뜻을 고맙게 받겠소."
양계령이 물었다. "추오상은 지금 어디에 있느냐?"
주성한이 말했다. "강 위를 유람하고 있소."
양계령이 물었다. "그에게 무슨 계획이 있더냐?"
주성한이 말했다. "추오상은 '경천궁' 부궁주의 직책에 있으니, 일거수일투족이 모두 그 궁의 궁주 단비우의 명을 받아야 하오. 단비우의 친필 명령서가 오기 전까지 추오상은 잠시 시일을 피할 계획이오."
양계령이 물었다. "그 염군도를 잠시 피하겠다는 말이냐?"
주성한이 말했다. "필시 그러할 것이오."
양계령이 중얼거렸다. "두동돈(杜桐屯), 황해어(黃解語), 소월매(蕭月梅)와 동월매(冬月梅), 소협 그리고 본 아가씨까지 모두가 추오상을 두고 속셈을 차리고 있으니, 그가 마치 도마 위의 고기 꼴이 되지 않았는가?..." 말을 잠시 멈추었다. 그리고 두 줄기 맑은 시선을 주성한의 얼굴에 던지며 이어갔다. "소협은 목적이 어디에 있는지 솔직히 말해줄 수 있는가?"
주성한이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말씀드리지 않는다면 아가씨께서는 이 사람이 아가씨를 신뢰하지 않는다고 생각하실 것이오. 그러나 이 일은 중대하니, 아가씨께서는 부디 비밀을 지켜주시고 누설하지 말아 구려."
양계령이 버들가지 같은 눈썹을 찌푸리며 말했다. "소협의 신색이 어찌 이리 엄숙한가?"
주성한이 말했다. "사람의 목숨이 걸린 일이오."
양계령이 눈썹을 치켜세우며 놀라 물었다. "소협이 말하는 목숨이 설마 저 추오상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겠지?"
주성한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가씨께서 오해하셨소. 이 사람이 말하는 것은 가부(家父)요."
양계령이 말했다. "그게 무슨 말이냐?"
주성한이 말했다. "아가씨께서도 가부가 누구인지 필시 알고 계시겠지요?"
양계령이 말했다. "필시 한 세대의 의성(醫聖)이신 주소천(朱嘯天) 어르신이겠구나. 영친께서는 오직 상처와 병만을 따질 뿐 흑백양도를 가리지 않고 오로지 사람을 구하셨고, 은원도 묻지 않은 채 일찍이 수많은 사람을 살리셨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본 아가씨가 당신을 소협이라 부르는 것은 절반은 영친의 협기 어린 명성 때문이다."
주성한이 포권을 하며 말했다. "아가씨께 감사드리오..." 한숨을 쉬며 탄식하더니 이어갔다. "가부께서는 평생 수많은 사람을 살리셨으나, 정작 본인은 현재 깊은 병에 걸려 침상에서 앓아누워 계시오."
양계령이 혀를 내두르며 말했다. "그것은 본 아가씨가 생각지 못한 일이다. 설마 다스릴 약이 없단 말이냐?"
주성한이 말했다. "병을 다스릴 약재는 이미 다 거두어 갖추었으나, 오직 한 가지 약引(약 기운을 이끄는 약재)이 부족하오."
양계령이 물었다. "그것이 무엇이냐?"
주성한이 말했다. "그 물건은 추오상의 선친 추일장(秋日長) 어르신의 유물인, '용연오묵(龍涎烏墨)' 한 토막이오."
양계령이 말했다. "추오상의 옛집에 있단 말이냐?" 잠시 멈추더니 다시 말했다. "천천히 도모해도 무방하니, 이 일은 본 아가씨가 책임지겠다."
주성한이 말했다. "이 사람이 비록 명확하게 말하지는 않았으나, 추오상에게 그의 선친이 남기신 문방사우를 얻고 싶다고 넌지시 암시한 적이 있소. 그리고 그에게서 고향 집으로 돌아가 선인의 유물을 정리할 때 기회를 보아 찾아내어 선물하겠다는 허락을 받아두었소..."
양계령(楊桂玲)이 말을 가로채며 말했다. "그렇다면 소협은 더욱 안심하셔야 마땅하겠다."
주성한이 말했다. "아가씨께서는 잘 모르시는 말씀이오. 가부께서 앓고 계신 병은 겨울의 추위를 가장 기피하는데, 지금은 이미 칠월이라 남은 시일이 많지 않소. 이 때문에 이 사람은 마음이 불타듯 급하여 온종일 가시방석에 앉은 듯하오."
양계령이 말했다. "소협은 어찌하여 이러한 사정을 추오상에게 알리고, 그에게 즉시 고향 집으로 한 걸음 다녀와 달라고 번거롭게 부탁하지 않으시는가?"
주성한이 연신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온 세상에 오직 그 먹 한 토막만이 약인(藥引)이 될 수 있소. 만약 추오상이 그 먹 한 토막이 가부의 목숨을 고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이를 빌미로 협박해 온다면, 이 사람이 어찌 감당하겠소?"
양계령이 한참 생각에 잠기더니 말했다. "미래의 정세는 거스를 수 없으니, 머지않아 추오상과 본 아가씨는 어쩌면 한 가족이 될지도 모른다. 그때 본 아가씨가 이를 빌미로 협박한다면 소협은 또 어찌하시겠는가?"
주성한이 말했다. "사람을 믿으면 의심하지 않는 법이니, 이 사람은 아가씨께서 결코 남의 위기를 틈타지 않을 것임을 깊이 믿소. 만약 믿지 않게도 아가씨의 말대로 된다면, 이 사람은 단지 운명이 사람을 놀리는구나 하고 탄식할 뿐이오."
양계령이 교태롭게 웃으며 말했다. "소협은 마음을 푹 놓으셔라! 세상 여인들이 비록 저마다 심계를 부릴지언정 본 아가씨는 그런 남의 위기를 틈타는 짓은 하지 않겠다. 다만 소협이 향후 본 아가씨와 너무 맞서지만 않으시면 된다."
주성한이 말했다. "그 말씀은 필시 아가씨의 경고이겠구려."
양계령이 말했다. "어찌 감히..." 여기까지 말하고는 일어서서 예를 표하며 말했다. "추오상이 배를 타고 강 위를 유람하고 있으니 필시 소협이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을 터다. 그러니 본 아가씨도 더는 붙잡지 않겠다."
주성한 역시 당연히 일찍 돌아가고 싶었기에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이 사람이 작별을 고하오." 말을 마치고 방 밖으로 걸어 나갔다.
양계령이 갑자기 다시 외쳤다. "소협, 걸음을 멈추어 보아라."
주성한(朱星寒)이 걸음을 멈추고 물었다. "아가씨께서 아직 다 하지 못한 말씀이 있으시오?"
양계령이 말했다. "본 아가씨와 염 마두가 아직 만나기 전에 소협이 그와 마주치더라도, 부디 조금은 양보해 주시기를 바라겠다."
주성한이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이 사람이 명심하겠소." 말을 마치고 방을 걸어 나갔다.
주성한의 이번 걸음은 품었던 목적을 비록 이루지는 못했으나, 뜻밖에 생각지도 못한 일들을 많이 알게 되었으니 도리어 헛된 걸음은 아니었다.
임강별관(臨江別館)'을 나와 쾌정(快艇)이 정박해 있는 곳으로 곧장 달려갔다. 어둠 속에서 갑자기 한 사람이 휙 나타나 그의 길을 가로막았다. 주성한이 정신을 집중하여 바라보니 놀랍게도 그 염군도였다.
그는 도리어 일부러 가려내지 않고 차갑게 콧방귀를 꼈다. "황대선, 당신은 어찌하여 길을 가로막는 것이오?"
염군도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한 가지 기밀 사항을 말해주려 한다."
주성한이 말했다. "듣고 싶지 않소."
염군도가 허허 웃으며 말했다. "듣고 싶지 않다는 것은 거짓이겠지, 아마도 너는 진작에 알고 있었을 터다."
주성한이 말했다. "그리 말하니, 이 사람이 도리어 한 번 들어봐야겠구려."
염군도가 말했다. "내 본래의 면목을 보고 싶으냐?"
주성한은 속으로 사태가 좋지 않음을 직감했다! 이 늙은 마두가 스스로 진면목을 드러내려는 것은 필시 좋은 징조가 아니었다. 이에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군자는 남의 사생활을 캐묻지 않는 법인데, 이 사람이 어찌 소인이 되겠소."
염군도가 냉소하며 말했다. "이 어린놈이 입만 열면 인의도덕을 논하는구나. 필시 추오상이 진작에 내가 누구인지 고했을 터다."
주성한은 무의미한 충돌을 피하기 위해 말했다. "이 사람은 그런 말을 들은 적이 없소."
염군도가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렇다면 내가 지금 너 장한에게 말해주마..." 말을 잠시 멈추더니 이어갔다. "내가 비록 본래 면목을 드러내더라도 너 장한은 알아보지 못할 터다. 그러나 내 명호는 장한도 필시 들어보았을 것이다. 나는 바로 '최화태수' 염군도다. 백도의 원수이니 장한이 모를 리가 없겠지."
주성한이 평온한 신색으로 말했다. "이 사람도 그 이름은 들어보았으나, 혹시 존가께서 또 이름을 사칭하는 것이 아닌가 염려스럽구려."
염군도(閻君濤)가 마른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어린놈이 가벼운 곳으로 피해 갈 생각 마라. 내가 여기서 오랫동안 기다렸으니 결코 공으로 기다린 것이 아니다. 사공에게 명을 전해 추오상을 즉시 기슭으로 오르게 해라, 그러면 만사가 다 끝날 것이다. 그러지 않는다면 여기가 바로 너 장한의 목숨을 잃을 자리가 될 터이니, 믿기지 않으면 당장 한 번 겨뤄보자."
주성한은 마음속으로 은근히 헤아렸다. 생각이 물레방아 돌듯 연달아 몇 바퀴 돌았으나, 여전히 평온한 어조로 말했다. "이 사람이 방금 '?江??'에 가서 양계령 아가씨를 뵙고 왔소. 아가씨께서 헤어질 때 당부하시기를, 만약 존가와 마주치거든 마땅히 조금 참으며 양보하라고 하셨소. 그러지 않았다면 이 사람도 순순히 존가와 말로만 따지고 손을 쓰지 않지는 않았을 거요."
염군도가 낮게 호통쳤다. "내 앞에서 어린놈이 감히 손을 쓰겠다는 말이냐?"
주성한이 말했다. "존가께서는 미쳐 날뛰지 마시고, 존가께 먼저 양 아가씨를 만나보고 오시기를 권하오."
염군도가 말했다. "양계령의 금방울 한 쌍이 과연 대단하긴 하나, 나는 안중에도 두지 않는다. 어린놈이 그녀를 호신부로 삼을 생각 마라. 만약 즉시 사람을 시켜 말을 전해 추오상을 기슭으로 오게 하지 않는다면, 내가 손을 써서 무정하게 굴더라도 원망하지 마라."
염군도라는 사람의 무공에 대해 주성한 역시 대략 아는 바가 있었다. 만약 그와 정면으로 맞붙는다면 결코 이익을 보기 어려울 터였다. 그러나 눈앞의 정세는 명백히 피해 갈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이에 주성한은 마음을 모질게 먹고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강호를 행하는 것은 악을 없애고 간사함을 베어내기 위함일 뿐이오. 존가께서 이토록 강함만을 내세우시니, 이 사람도 이번 기회를 빌려 이 마두를 한바탕 교훈해 주겠소."
말이 끝나기도 전에 접부채가 이미 드러났다. "착" 하고 펼쳐지더니, 칼로 내리치듯 가로로 꺾어 염군도의 목덜미를 향해 깎아갔다.
염군도가 차갑게 콧방귀를 꼈다. "어린놈이 죽기를 자초하는구나!"
신형을 움직이지도 않은 채 오른손 바닥을 가볍게 한 번 휘두르니, 바닥에서 한 줄기 암?이 솟구쳐 주성한의 손에 쥔 접부채를 석 자 넘게 튕겨냈다. 주성한은 은근히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다. 상대가 펼친 것이 뜻밖에 소림의 절학인 '나한장'이었기 때문이다. 무림에 이 마두가 각 문파의 무공을 다 구사한다는 소문이 돌던 것이 과연 헛소문이 아니었다.
"착" 하는 소리와 함께 접부채가 접히더니, 깎아치던 수법이 찌르기로 바뀌어 상대의 목덜미를 향해 내질렀다.
염군도가 냉소를 터뜨리며 몸을 휙 굽히더니, 이어 신속하게 한 바퀴 회전했다. 그 매서운 일격을 피했을 뿐만 아니라, 발끝으로 주성한의 정강이를 쓸어갔다.
다행히 주성한이 몸을 튕겨 날아올랐기에 망정이지, 그러지 않았다면 필시 그 자리에 자빠졌을 터였다.
이번에 염군도가 펼친 것은 '현기문'의 독전 무공인 '무팔괘'였다. 객잔 안에서 채금당을 연달아 세 번이나 기이하게 자빠뜨렸던 괴이한 무공으로, 참으로 '현'묘하고도 '기'이했다.
주성한이 펼친 이 깎아치기와 찌르기는 그의 접부채 초식 중 가장 매서운 두 초식이었는데, 뜻밖에 아무런 효험을 보지 못하자 마음이 점차 공포스러워졌다.
남아있는 절招는 오직 부채뼈 속에 암장된 여덟 개의 소리 없는 깃털 화살뿐이었다. 화살촉이 예리하여 비록 극독을 바르지는 않았으나 '마황'으로 구워낸 것이었다. 화살에 맞은 자는 마황이 퍼뜨리는 극도로 빠른 약성에 마비되어 온몸을 꼼꼼짝도 하지 못한 채 식물인간처럼 변하게 된다.
약성은 한 달 이상이 지나야 점차 사라지는데, 체력이 강인하지 못한 자는 약성이 사라지기도 전에 진즉에 목숨을 잃고 만다.
말하자면 이 소리 없는 깃털 화살은 이미 극도로 악독한 암기라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주성한은 즉시 기관을 눌러 깃털 화살을 발사하지는 않았다.
염군도 같은 흑도의 거물을 상대로 주성한이 자비로운 마음을 품을 리는 없었다.
하지만 그는 혹여나 깃털 화살이 이 염 마두에게 명중하지 못한다면 향후 뒷감당이 극도로 심각해질까 염려스러웠다.
염군도는 먼저 공격해 오지 않고 다만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두 초식이 무공으로 돌아갔는데도 어린놈이 아직 곤란함을 알고 물러서지 않느냐?"
주성한이 말했다. "존가께서 펼치시는 자질구레한 무공들로는 이 사람을 어찌하지 못할 것이오."
염군도가 말했다. "어린놈이 정말 생사를 모르는구나. 내가 손속에 여지를 두고 있음을 장한은 아직도 모른단 말이냐?"
주성한이 말했다. "존가께서 비록 살수를 쓰실지언정 이 사람은 결코 흐리멍덩하게 당하지는 않겠소."
주성한이 정말로 호락호락해서가 아니었다. 그는 단지 상대방을 격노하게 만들어, 그 틈을 타 부채뼈 속에 암장된 소리 없는 깃털 화살을 쏘아보내고 싶었을 뿐이다.
뜻밖에도 염군도는 격노하기는커녕 도리어 허허 웃으며 말했다.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더니, 강호에 처음 발을 들인 자들은 모두 이 모양이군. 하지만 내가 너 장한에게 느닷없이 살수를 쓰고 싶지는 않다."
주성한이 말했다. "이 사람은 그런 인정을 받고 싶지 않소!"
염군도가 말했다. "네 아비가 그 정을 알면 된다! 한 세대의 의성인 주소천은 수많은 사람을 살렸고, 그중에는 흑도의 인물도 적지 않았다. 그러므로 이 염 모도 그의 후손이 끊어지게 만들고 싶지는 않구나."
주성한은 상황을 묵묵히 살펴보니 이 악투가 이대로 흐지부지 끝날 것 같았다. 이에 접부채를 소매 안으로 밀어 넣으며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존가께서 그리 말씀하시니, 이 사람은 이제 가도 되겠소?"
염군도는 길을 비켜주지 않은 채 허허 웃으며 말했다. "네 아비는 의술을 펼쳐 세상을 구하며 흑백을 가리지 않고 널리 선연을 베풀었다. 그래서 모든 이의 칭송을 받았거늘, 너 장한은 어찌하여 순순히 가는 길에 인정 한 번 베풀지 않으려 하느냐?"
주성한이 말했다. "무엇을 순순히 인정 베푼다고 하오?"
염군도가 말했다. "추오상이 장강 위에 있으나 조만간 기슭으로 올라와야 할 터다. 그는 '경천궁' 부궁주의 직책에 있으니, 결코 쥐새끼처럼 그냥 도망쳐 버릴 수는 없다. 내가 그를 찾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니, 너 장한을 만난 김에 사공을 시켜 소식이나 한 번 전해달라는 것이 무슨 상관이냐?"
주성한이 말했다. "이 사람이 어찌 친구를 팔 수 있겠소?"
염군도가 하늘을러 대소하며 말했다. "하하! 내가 단언하건대, 너 장한은 성정이 완고하여 결코 네 아비의 당년 같은 성망을 얻기는 어렵겠구나. 네 아비가 흑도 인물의 병을 고치고 상처를 치료할 때, 소위 정파라 하는 자들의 권유와 가로막음도 자주 받았으나 네 아비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너 장한은 그분에 비하면 한참 모자라는구나."
주성한이 말했다. "존가께서는 가부의 처세 원칙을 완전히 왜곡하고 있소. 그리하신 것은 결코 흑도의 마두들에게 아첨하기 위함이 아니라, 오직 의술의 도리가 본래 사람의 목숨을 구하는 데 있기 때문이었소..."
염군도가 말을 받았다. "어린놈이 말재주로 이기려 들지 마라. 네 아비가 비록 아첨할 뜻이 없었다 하더라도 오늘 좋은 결과를 얻지 않았느냐. 적어도 그의 아들이 오늘 내 손에 죽지는 않게 되었으니..." 몸을 옆으로 슬쩍 비키며 손을 저어 이어갔다. "장한, 가거라! 추오상에게 소식이나 전하는 것이 좋을 거다. 복은 화가 아니고 화는 피할 수 없는 법이니, 그가 나를 찾아와 만나는 것이 좋을 거라고 말이냐."
주성한이 말했다. "추오상이 비록 '경천궁'의 주인은 아니나, 이곳에서의 일거수일투족은 모두 '경천궁'을 대표하오. 양인(諒人)컨대 그가 존가 같은 흑도 거물을 찾아가 뵙지는 않을 것이오."
염군도가 말했다. "그렇다면 내가 그 어린놈을 찾아가 보지."
주성한은 더 대꾸하지 않고 고개를 든 채 부두 가로 걸어갔다.
쾌정에 올라탄 주성한이 손을 휘둘러 신호하니, 네 개의 노가 일제히 움직여 화살처럼 강심을 향해 달렸다.
잠깐 사이에 두 배가 마주쳤고 주성한은 훌쩍 뛰어 건너갔다.
추오상이 몸을 내밀며 급히 물었다. "주 형, 어찌 이리 오래 걸렸소?"
주성한이 말했다. "선창 안으로 들어가 자세히 이야기합시다."
선창 안으로 들어가 지나온 정황을 처음부터 끝까지 고스란히 설명해 주었다.
추오상은 정신을 집중해 들을 뿐, 한 마디도 입을 열지 않았다.
주성한이 물었다. "추 형은 무슨 계획이 있소? 이 사람이 힘을 보탤 곳이 있다면 부디 편히 분부하시오."
추오상이 말했다. "이 사람이 마음속 깊은 이야기를 몇 마디 하고자 하니, 주 형이 듣고 비웃지 않을지 모르겠소."
주성한이 말했다. "그게 무슨 말이오? 내..." 말을 잠시 멈추고 시선을 금전표에게 슬쩍 던지며 이어갔다. "게다가 금 노어르신도 남이 아니니, 추 형은 솔직히 말씀하셔도 상관없소."
금전표가 눈치 빠르게 일어서며 말했다. "노형은 배꼬리에 가서 백 대협과 동행할 테니, 두 분이서 마음껏 이야기 나누시오!" 말을 마치고 대나무 휘장을 걷어 선창을 나갔다.
추오상은 그를 붙잡지 않고 한참 동안 나지막이 생각에 잠겨 있다가 중얼거렸다. "이 사람이 고통스럽게 익힌 '선풍검법'이 비록 무림을 오시할 정도라고 장담할 수는 없으나, 한 세대의 검국 종장이신 단 궁주님의 눈에 들어 '경천궁' 부궁주의 직책에 선택되었으니 자연히 상당한 내공의 깊이는 있었소..."
주성한이 말을 받았다. "추 형이 결코 허풍을 뜬 것은 아니오. 이 사람도 이미 겪어보았으니, 추 형의 검법은 참으로 매섭기 그지없었소."
추오상이 포권을 하며 말했다. "과찬이오..." 어조를 미미하게 멈추더니 '사절검'을 두 다리 위에 평평하게 내려놓고 가라앉고 묵직한 어조로 이어갔다. "이 사람의 이 검법은 모질고 빠른 것으로 이름이 났소. 만약 조금이라도 망설임이 있다면 검을 움직임이 신속하지 못하고, 일단 지체되면 모질다고 할 수도 없소. 이 사람이 무례를 무릅쓰고 말하자면, 처음에 주 형과 검을 겨룰 때는 겨우 사 성의 공력뿐이었고, 다시 초식을 겨룰 때는 공력이 이미 삼 성으로 떨어져 있었소."
주성한이 눈썹을 치켜세우며 말했다. "그것은 무슨 까닭이오?"
추오상이 말했다. "병법에 늘 말하기를, '무자는 반드시 먼저 이긴 후에 싸움을 구한다'고 했소. 즉, 자신감이 첫째요 공력은 그다음이라는 뜻이오. 그러나 이 사람이 금릉에 온 후로는 검을 움직일 때마다 매번 두려움과 겁이 생기니, 검법을 자연히 진력으로 펼칠 수 없었소."
주성한이 중얼거렸다. "그것참 괴이하군!"
추오상이 말했다. "그 속에는 또 다른 연고가 있소."
주성한이 말했다. "이 사람이 공손히 듣겠소."
추오상이 말했다. "금릉에 온 후 이 사람이 처음 만난 사람은 '금도' 두동돈이었소. 그가 선부의 몇 가지 지난 일을 언급했는데, 말이 지극히 엄연할 뿐만 아니라 확실한 증거까지 있어 사람으로 하여금 믿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소. 그 이후로 이 사람은 온종일 정신이 황홀하고 일에 부딪히면 망설이며 결단력이 전혀 없어졌소. 누가 적이고 친구인지조차 혼동되어 구별하지 못하게 되었소. 지혜가 어두워졌을 뿐만 아니라 검법마저 유약하기 짝이 없게 변해버렸소. 단 궁주께서 이 사람의 현재 이 낭패한 꼴을 아신다면 필시 크게 실망하실 것이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양계령은 추오상을 도마 위의 고기처럼 여겼다. 지금 다시 추오상의 이 한숨 섞인 말을 들으니, 주성한의 마음속에는 저도 모르게 동정어린 탄식이 일었다. 한참을 침묵하다가 비로소 물었다. "두동돈이 추 형에게 도대체 무슨 말을 했는지 모르겠소?"
추오상이 미미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이 사람이 솔직히 말하기는 곤란함을 용서해 주시오. 그러나 약간은 밝힐 수 있으니, 두동돈이 언급한 지난 일은 선부의 일세 영명과 관계가 있소."
주성한이 포권을 하며 말했다. "무례를 무릅쓴 죄를 용서하시오."
추오상이 포권으로 답례하며 말했다. "주 형이 너무 예의를 차리십니다..." 어조를 미미하게 멈추더니 이어갔다. "이 사람이 현재 호기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방금 말한 원인 외에도 또 다른 연고가 있소."
주성한이 말했다. "말해줄 수 있소?"
추오상이 말했다. "이 사람이 마침 마음을 터놓고 털어버리고 싶구려."
주성한이 말했다. "이 사람이 공손히 듣겠소."
추오상이 기나긴 숨을 무겁게 내쉬고는 천천히 말했다. "선부께서 세상을 떠나셨을 때 이 사람은 겨우 다섯 살이었고, 열 살 때는 홀어머니마저 여의었소. 이 사람은 한 이름 없는 노인에게 거두어져 검법을 전수받았소..."
주성한이 말을 가로채며 물었다. "추 형은 줄곧 사부님의 성명을 모르고 계셨소?"
추오상이 말했다. "사부님은 성품이 유달리 괴팍하셨소. 이 사람이 그의 이름을 물어보기라도 하면 필시 한바탕 통독을 당했소. 그러나 사부님은 수시로 사람 됨됨이와 처세의 도리를 훈계해 주셨으니, 성품은 비록 괴이하셨으나 도리어 정인군자라 부르기에 부족함이 없는 분이었소."
주성한이 말했다. "그것은 당연한 일이오. 추 형의 '선풍검법'은 사부님이 독창하신 것이오?"
추오상이 말했다. "이 검은 사부님께서 선물해 주신 것이고, 검법 역시 사부님께서 창안하신 것이오. 그는 이 검의 특성과 선부께서 생전에 창안하신 철필 초식을 융합하여 하나로 완성하셨소..."
주성한이 말을 받았다. "사부님께서도 부친의 초식에 익숙하셨단 말이오?"
추오상이 말했다. "이 사람은 일곱 살 때부터 선모를 따라 무예를 익혔기에 선부의 철필 초식에 대해 대략 아는 바가 있었소. 그런데 사부님께서는 선부의 철필 초식에 대해 도리어 더욱 잘 알고 계셨소."
주성한이 말했다. "사부님은 필시 부친의 옛 친구였을 것이오."
추오상이 말했다. "이 사람 역시 그런 추측을 했었소. 그러나 매번 사부님께 여쭐 때마다 늘 그를 대발뢰정(크게 노하게 함)하게 만들었으니, 이후로는 감히 다시 묻지 못했소."
주성한이 말했다. "필시 사부님께 말 못 할 사정이 있으셨겠구려!"
추오상은 말을 잇지 않고 다시 화제를 돌려 말했다. "무예를 이루고 강호에 발을 들였을 때, 선부의 일세 영명과 사부님의 온종일 거듭된 훈계를 기억하며 남보다 뛰어나게 되리라 결심하고 제대로 한 번 도모해 보고자 했소. 마침 '경천궁'에서 부궁주를 초빙해 고시를 치렀는데, 그 궁은 무림의 큰 문파 중 하나였고 단 궁주님 역시 위명이 멀리 떨치고 계셨소. 이에 무례를 무릅쓰고 한 번 시험해 보았는데, 뜻밖에 요행히 합격하게 되었소."
주성한이 말했다. "추 형이 어찌 요행이라는 두 글자를 쓰시오? 추 형은 풍채가 당당할 뿐만 아니라 명문가 출신이요 검법이 초군하니, 바로 상상(上上)의 선택이었소!"
추오상이 말했다. "주 형의 말이 빈말이 아니기를 바라오."
주성한이 말했다. "구구절절 마음속 깊은 곳에서 나온 말이오."
추오상이 말했다. "이 사람인들 어찌 그런 호기가 생기지 않았겠소. 그러나 이 사람은 금릉에 처음 당도하자마자 두동돈에게 머리 위로 찬물 한 바가지를 들이켜 맞은 꼴이 되었소."
주성한이 말했다. "추 형, 어찌 그리 마음에 두십니까."
추오상이 말했다. "이 사람이 방금 말했듯이 현재 호기를 완전히 잃은 것은 결코 두동돈의 말 한마디 때문만은 아니오..." 말을 잠시 멈추더니 이어갔다. "주 형은 '은여우'가 단 궁주님의 친필 명령서를 가져왔던 일을 기억하시오?"
주성한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기억하고 있소."
추오상이 갑자기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 "주 형도 필시 '은여우'의 음탕하고 더러운 명성은 들어보았을 것이오. 단 궁주께서는 그녀에게 친필 명령서를 전달하게 하셨을 뿐만 아니라, 궁 안에 그녀를 머물게 하며 며칠 동안 함께 시간을 보내셨소. '은여우'의 말에 따르면, 과거에 단 궁주님과 그녀 사이에 한 차례 악연이 있었다고 하더군. 주 형은 이 말을 들은 후 이 사람에게 어떤 생각이 들었는지 아시오?"
주성한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이 사람이 감히 함부로 추측하지 못하겠소."
추오상이 말했다. "이 사람은 단 궁주님의 행실이 과연 강호에 널리 퍼진 것처럼 그렇게 바르고 강직한지 의구심이 들었소."
주성한이 말했다. "추 형이 마음속에 품은 생각을 이토록 솔직하게 털어놓으시니, 분명 이 사람을 매우 중히 여기시는구려. 그러니 이 사람도 추 형에게 한 말씀 조언하겠소. 마음속으로 의문을 품는 것은 괜찮으나, 가급적이면 쉽게 입 밖에 내어 논하지 않는 것이 좋을 듯하오."
추오상이 말했다. "두터운 정의에 감사드리며, 이 사람이 명심하겠소..." 말을 잠시 멈추더니 이어갔다. "그리하여 이 사람의 호기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린 것이오."
주성한이 말했다. "그렇다면 무리도 아니구려."
추오상이 가볍게 탄식했다. "하필이면 현재 금릉에 머물고 있는 자들이 모두 이 사람을 원수 보듯 하니, 마치 이 사람이 십악대죄라도 저지른 듯 도마 위의 고기 꼴이 되었소. 이는 이 사람을 이해할 수 없게 만들 뿐만 아니라, 온종일 전전긍긍하게 만든다오."
주성한이 말했다. "추 형이 가리키는 자들 중에 혹시 이 사람도 포함되어 있소?"
추오상이 말했다. "이 사람은 결코 주 형에게 억지로 인정하라고 강요하고 싶지는 않소."
주성한이 말했다. "이 사람은 단지 추 형의 선친께서 남기신 문방사우를 얻고 싶을 뿐이며, 다른 나쁜 생각은 전혀 없으니 부디 염려를 놓으시오."
추오상이 말했다. "이 사람이 이미 약속했으니, 비록 선인의 유물이라 할지라도 아끼지 않고 선물하겠소."
주성한은 찰나의 순간에 마음속으로 수많은 생각을 굴리다가, 기회를 틈타 기색을 살피며 말했다. "이 사람에게 염치없는 부탁이 하나 있으니, 추 형께서 허락해 주시기를 바라오."
추오상이 미미하게 멈칫하며 말했다. "무슨 일인데 주 형의 신색이 이토록 엄숙하오?"
주성한이 말했다. "가부께서는 평생 의술을 펼쳐 세상을 구하셨으나, 명성을 널리 떨치기를 구하지는 않으셨소..."
추오상이 말을 가로채며 물었다. "설마 그 한 세대의 의성이신 주소천 선배님이시오?"
주성한이 말했다. "바로 가부이시나, 성인이라 일컫기에는 감히 부끄럽소."
추오상이 포권을 하며 말했다. "영친의俠 명성은 진작부터 익히 들었소."
주성한이 말했다. "추 형의 과찬에 감사드리오..." 어조를 무겁게 가라앉히며 이어갔다. "가부께서는 평생 수많은 사람을 살리셨으나, 정작 본인은 현재 깊은 병에 걸려 침상에서 앓아누워 계시니 마치 바람 앞의 등불과도 같소."
추오상이 놀라며 말했다. "그것이 정말이오?"
주성한이 말했다. "이 사람이 어찌 감히 가부의 목숨을 두고 허황된 망발을 하겠소..." 말을 잠시 멈추더니 이어갔다. "가부께서는 약재를 모으고 처방을 내리시느라 평소에도 글을 쓰고 먹을 가시는 일을 자주 하셨소. 평생 추 형의 선친을 가장 경모하셨기에, 선친께서 생전에 쓰시던 문방사우를 얻을 수 있다면 필시 큰 영광으로 여기실 것이오!"
마음속으로는 저도 모르게 은근히 부끄러워했다. 왜냐하면 그가 한 말은 명백히 거짓말이었기 때문이다.
추오상이 말했다. "영광으로 여겨야 할 쪽은 도리어 선부이실 터이니, 이 사람이 반드시 이 일을 마음속에 깊이 기억해 두겠소."
주성한이 말했다. "추 형에게 감사드리오! 가부께서는 현재 병이 골수까지 깊어져, 아마도 오래 기다리시기 어려울 듯하오."
추오상이 짙은 눈썹을 긴밀히 찌푸리고 한참 동안 생각에 잠기더니 말했다. "이 사람이 진력으로 방법을 강구하여, 하루빨리 틈을 내어 고향에 한 번 다녀오도록 하겠소."
주성한이 말했다. "과연 그리해 주신다면, 이 사람이 향을 피우고 촛불을 켜서 큰절이라도 올리겠소."
추오상이 말했다. "어찌 이토록 중한 말씀을 하시오? 주 형께서 이미 소월매 아가씨를 멀리 떠나게 해 주셨으니, 이는 본래 이 사람이 마땅히 이행해야 할 약속이 아니오!"
주성한이 말했다. "그래도 이 사람은 여전히 감사할 따름이오..." 말을 잠시 멈추더니 이어갔다. "이 사람이 곁에서 냉정하게 지켜본 바로는, 소 계집아이가 추 형에게 큰 해가 될 것 같지 않았는데도 추 형은 그녀를 죽이려 하셨소. 무례를 무릅쓰고 한 말씀 묻겠소만, 이 사람의 능력이 미치지 못해 차선책으로 그녀를 떠나보내게 만든 것인데, 그 속에는 도대체 어떤 도리가 숨어 있는 것이오?"
추오상이 우물거리며 말했다. "말을 꺼내더라도 주 형께서는 부디 비웃지 마시오."
주성한이 말했다. "이 사람이 어찌 감히 그러겠소."
추오상이 말했다. "이 사람이 '사절검'을 몸에 차고 있기에, 첫 번째 계율이 여색을 끊는 것임을 깊이 알고 있소. 궁에 있을 때 검희들이 좌우에서 시중을 들었으나 이 사람은 단 한 번도 딴마음을 품은 적이 없었고, 황해어가 품에 안겨 오며 유혹할 때도 이 사람은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소. 소 아가씨는 일찌감치 이 사람과 사사건건 맞섰고, 술에 몰래 미약을 타기도 했으며, 미리 강가에 기녀들을 모아두어 이 사람의 원양을 파괴하려 했소. 이치대로라면 뼛속까지 미워해야 마땅하거늘, 이 사람은 그녀의 아름다운 그림자를 볼 때마다 저도 모르게 마음이 크게 요동쳐 스스로 걷잡을 수 없게 되오! 그녀는 마치 사람으로 하여금 거역하기 어렵게 만드는 기이한 마력을 타고난 듯하오. 이 사람이 백방으로 마음을 진정시키려 해도 마음속의 딴생각을 없앨 수가 없었기에, 주 형에게 손을 써서 그녀를 죽여달라고 부탁했던 것이오. 그 목적은 분풀이를 하려 함이 아니라, 단지 한 줄기 정근(情根)을 잘라버리고 싶었을 뿐이오."
주성한은 마음속으로 은근히 기이함을 금치 못했으나, 표면적으로는 짐짓 평정을 유지하며 말했다. "소위 아리따운 숙녀는 군자의 좋은 짝이라 하니, 이는 사람의 상정이오. 그러나 추 형께서 소 아가씨를 살해하여 한 줄기 정근을 없애려 하신 수법은 조금 과도한 듯하오. 천하에 아름다운 색은 매우 많으니 소 아가씨가 비록 죽는다 하더라도 또 다른 사람이 나타날 터인데, 어찌 다 없앨 수 있겠소? 실제로 정근은 오직 추 형의 마음속에 있을 뿐이오!"
추오상이 연신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이 사람은 주 형의 그런 말씀에 감히 동조하지 못하겠소."
주성한이 물었다. "어떤 고견이 있으시오?"
추오상이 말했다. "이 사람은 소 아가씨를 볼 때마다 신색은 비록 세차게 냉막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마음속이 격렬하게 요동친다오. 설령 그녀의 사람을 보지 못할 때라도 그녀의 아름다운 그림자가 이 사람의 뇌리에 떠오르니, 특히 밤이 깊고 사방이 고요할 때면 더욱 마음을 걷잡지 못하고 정을 스스로 억제할 수가 없어, 온갖 방법을 다 써도 마음의 신을 진정시킬 수가 없소."
주성한이 중얼거렸다. "그것참 기이하군. 추 형은 검술이 초군하니 정력(定力)이 필시 약하지 않을 터인데, 어찌 이리될 수 있단 말이오?"
추오상이 목소리를 더욱 낮추며 말했다. "어젯밤에 이 사람이 황당한 짓을 하나 저질렀소."
주성한이 멈칫하며 물었다. "무슨 일이오?"
추오상이 우물거리며 말했다. "이 사람은 마음속에 사악한 생각이 든 줄 알고, 시중들던 두 검희에게 함께 잠자리에 들라 명했소. 두 검희는 과분한 총애에 어찌할 바를 몰라 하며 옷을 벗고 환락을 받아들이며 온갖 아양을 다 떨었소. 그러나 이 사람이 일단 그녀들의 발가벗은 피부에 손을 대고 그녀들의 교태 섞인 목소리를 듣는 순간, 뜻밖에 욕념이 깨끗이 사라지고 마음의 경지가 고요한 물처럼 가라앉더군."
주성한이 한참 생각에 잠기더니 말했다. "필시 그 소 아가씨가 약을 타고 함정을 팠던 일이 추 형의 뇌리에 깊이 박혀 있기 때문일 것이오. 이 때문에 추 형은 그 사람이 쓴 수법 그대로 그 사람에게 되돌려주고자 마음속에 보복하려는 생각을 품게 된 것이 아니겠소..."
추오상이 말을 가로채며 말했다. "이 사람은 결코 보복할 생각이 없었소, 심지어 원망하는 마음조차 없소. 이 사람이 비록 주 형에게 대행하여 그녀를 죽여달라고 청했으나, 만약 주 형이 정말로 손을 쓰려 하실 때 마침 이 사람의 눈에 띄기라도 한다면, 이 사람은 어쩌면 몸을 날려 서로 보호하며 주 형이 그녀의 털끝 하나 건드리지 못하게 막아설지도 모르오!"
주성한이 천천히 고개를 저으며 중얼거렸다. "이 사람도 정말 그 속의 도리가 어디에 있는지 헤아리기 어렵구려."
추오상이 말했다. "주 형이 필시 속으로 비웃으시겠구려?"
주성한이 말했다. "추 형이 마음을 터놓고 털어놓으셨는데 이 사람이 어찌 감히 남몰래 웃겠소. 하물며 이는 인간의 정이니 결코 부끄러워할 일이 아니오!"
추오상이 길게 숨을 내쉬며 말했다. "현재 소 아가씨가 마침내 떠났으니, 머지않아 이 사람도 마음속의 딴생각을 점차 없앨 수 있기를 바랄 뿐이오."
주성한이 말했다. "훗날 만약 다시 만나게 된다면 어쩌시겠소?"
추오상이 중얼거렸다. "부디 이번 생에는 다시 만나지 않기를 바랄 뿐이오."
주성한은 마음속으로 은근히 흠칫 놀랐다. 소월매는 현재 잠시 몸을 숨겼을 뿐 떠나지 않았고, 게다가 그 '용연오묵' 한 토막을 얻기 위해서라도 그녀는 필시 다시 추오상을 찾아올 터였다. 그때가 되면...?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그의 마음속에는 저도 모르게 한 줄기 불길한 예감이 스쳐 지나갔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그런 생각은 다시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홀로 나지막이 탄식했다. '일을 도모하는 것은 사람에게 달렸고, 일이 이루어지는 것은 하늘에 달렸으니, 모든 것을 운명의 처분에 맡길 뿐이로다!'
추오상이 대나무 휘장을 걷어 올리고 창밖을 한 번 내다보며 말했다. "지금이 아마도 자시(오후 11시~오전 1시) 무렵이겠구려?"
주성한이 말했다. "아마 그쯤 되었을 것이오."
추오상이 말했다. "방금 마음속에 맺혀 있던 응어리를 다 털어놓고 나니 이제야 크게 통쾌하구려. 주 형의 소중한 시간을 많이 지체하게 만들었으니, 이 사람도 이제 기슭으로 올라가야겠소."
주성한이 말했다. "추 형이 이미 잠시 몸을 피하기로 결정하셨고 단 궁주님의 유시를 받든 후에 진퇴를 결정하시겠다면, 현재로서는 염군도와 얼굴을 마주치지 않는 것이 상책이오."
추오상이 말했다. "주 형의 말이 지극히 옳소. 그러나 이 사람이 평생 강물 위에서만 떠돌며 지낼 수는 없지 않소."
주성한이 말했다. "이 사람이 이미 추 형을 위해 생각해 둔 바가 있소. 차라리 북쪽 기슭에서 배를 버리고 기슭으로 오르는 것이 어떻겠소? 그 나루터는 금릉으로 오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길목이니, 추 형은 단 궁주께서 보내신 사자도 만나보실 수 있을 터인데 추 형의 뜻은 어떠시오?"
추오상이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말했다. "그리합시다! 다만, 주막방에 아직 자질구레한 옷가지들이 남아 있으니, 주 형이 번거롭겠지만 주인에게 대신 말해 주어 방 문을 잠시 잠가두게 해 주시오. 방세는 향후 이 사람이 빠짐없이 정산하겠소."
주성한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 일은 추 형께서 마음 쓰실 필요 없소, 이 사람이 알아서 잘 안배해 두겠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