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 十二 回. 모사춘광(茅舍春光)....오막살이.

작성자겨울나그네|작성시간26.06.14|조회수95 목록 댓글 11

 

        < 第 十二 回. 모사춘광(茅舍春光)....오막살이. >




추오상(秋傲霜)이 말했다. "이 사람의 짐작으로는 단 궁주님의 친필 명령서가 조만간 당도할 것이오. 이 사람은 머지않아 다시 금릉으로 돌아갈 것이오..."

그는 무릎 위에 올려두었던 단검을 들어 허공으로 훌쩍 던졌다가 다시 손으로 받아 쥐며 무거운 목소리로 이어갔다. "이 검 중의 보물을 이대로 억울하게 썩혀둘 수는 없지 않소."

주성한이 말했다. "이 사람이 추 형께서 무림에 위명을 떨치시기를 미리 축하하오."

추오상이 포권을 하며 말했다. "고맙소!"

주성한이 선창 뒤쪽의 대나무 휘장을 걷고는 키를 잡고 배를 저어가던 백룡천에게 몇 가지 사항을 당부하자, 쾌정은 즉시 기수를 돌려 북쪽 기슭을 향해 화살처럼 세차게 달렸다.

주성한이 막 고개를 돌리려 할 때, 문득 강물에서 '풍덩' 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는 황급히 다시 머리를 내밀며 물었다. "어찌 된 일이오?"

백룡천(白龍天)이 삿대를 멈추어 배를 안정시키더니 급한 목소리로 물었다. "금 노어르신이 물속으로 뛰어드셨습니다. 보아하니 무언가를 발견하신 모양입니다."

주성한과 추오상은 그 말을 듣자마자 즉시 선창을 나와 배 앞머리로 향했다.

하용미와 맹채옥은 배판에 서로 등받이로 기대어 앉아 있다가, 추오상이 선창 밖으로 나오는 것을 보고 즉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추오상이 물었다. "너희는 혹시 무언가를 보았느냐?"

두 검희가 이구동성으로 대답했다. "보지 못했습니다!"

그들이 말을 나누는 사이에 금전표가 이미 물 위로 휙 솟구쳐 올랐다. 그는 한 손으로 배 가장자리를 짚더니 도리어 아무런 힘도 들이지 않고 가볍게 한 번에 껑충 뛰어올랐다.

주성한이 황급히 물었다. "금 노어르신, 어찌 된 일이오?"

금전표(金戰彪)가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 "노형이 분명히 한 사람의 그림자가 배 옆에 매달려 있는 것을 보았소. 노형이 고개를 돌리자 그 자가 즉시 물속으로 잠겨버렸는데, 노형이 물밑으로 잠수해 들어갔을 때는 이미 종적을 찾을 수 없었소. 노형이 물 위에서 날아다닐 수는 있으나 이 자는 물밑을 뚫고 다니니, 뜻밖에 그만 놓쳐버리고 말았구려."

주성한(朱星寒)은 자신도 모르게 신색이 멍해지며 말했다. "금 노어르신께서 혹시 잘못 보신 것은 아니오?"

금전표가 말했다. "노형이 스스로 확신하건대 아직 눈이 흐릿해지지는 않았소."

주성한이 말했다. "금 노어르신은 수중의 패왕이라 일컬어지기에 부족함이 없거늘, 금 노어르신의 눈앞에서 찰나의 순간에 흔적도 없이 도망칠 수 있는 자는 아마 그리 많지 않을 터요! 금 노어르신께서는 혹시 이 자가 누구인지 짐작 가는 데가 없으시오?"

금전표가 연신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노형도 아직 그 어떤 이가 이토록 경이적인 수중 무공을 지니고 있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소."

주성한이 출렁이는 강면으로 시선을 응시하며 중얼거렸다. "그것참 기이하군!"

추오상이 말을 받았다. "주 형은 마음에 두실 필요 없소! 어차피 귀하와 나는 그리 과도하게 남에게 알려서 안 될 비밀스러운 이야기는 나누지 않았지 않소."

주성한이 말했다. "추 형은 향후 더욱 조심하셔야겠소. 어둠 속에서 어쩌면 아직도 누군가가 엿보며 기회를 노리고 있을지 모르오."

추오상이 말했다. "주 형께서는 부디 근심하지 마시오, 이 사람은 마음에 두지 않소."

이때 배꼬리에 있던 백룡천이 갑자기 큰 소리로 외쳤다. "주 소협, 여전히 강북으로 가시는 겁니까?"

주성한이 대답했다. "여전히 강북으로 갑니다. 백 대협께서는 배를 비교적 은밀한 곳으로 저어 기슭에 대어 주십시오."

백룡천은 더 대꾸하지 않고 뇌성처럼 빠르게 노와 삿대를 움직였다. 쾌정은 곧장 북쪽 기슭으로 달렸다.

잠깐 사이에 배가 한 황량하고 외진 바닷가 모래밭에 닿았다.

주성한이 포권을 하며 말했다. "추 형, 기슭으로 오르시오. 이 사람은 더 배웅하지 않겠소."

추오상 역시 포권을 하며 말했다. "걸음을 멈추시오. 길어야 사흘이면 이 사람이 반드시 다시 금릉으로 돌아갈 것이오."

말을 마치고 손을 한 번 휘두르더니, 두 검희와 함께 훌쩍 기슭으로 뛰어올라 어둠 속으로 모습을 감추었다.

주성한은 묵묵히 찰나 동안 주시하다가 비로소 손을 휘두르며 말했다. "백 대협! 번거롭겠지만 배를 다시 남쪽 기슭으로 저어 주십시오!"

금릉의 맞은편은 강포(江浦)라 불리는 곳이었다. 비록 작은 마을이었으나 요새에 위치해 있었기에 도리어 인가가 조밀하고 대단히 번화했다. 나루터가 있는 곳은 더욱 돛대들이 숲을 이루고 배와 정들이 쉴 새 없이 오고 갔다.

이날 해질 무렵, 석양이 강물을 금빛으로 찬란하게 물들이고 있을 때, 한 필의 대추 빛깔 신마가 번개 같은 말발굽 소리를 울리며 나루터에 당도했다. 말 위에 탄 사람은 진홍색 옷을 입은 여인이었는데, 등에는 장검을 꽂고 발에는 쾌화(달리기 편한 신발)를 신고 있어 영지기세가 드높아 보였다. 그러나 그녀의 얼굴은 땀방울이 먼지와 뒤섞여 꾀죄죄하기 짝이 없었다.

십중팔구 미친 듯이 길을 재촉해 달려왔기에, 이토록 향기로운 땀방울을 철철 흘리고 온통 먼지투성이가 되었을 터였다.

이 홍의 여랑이 막 배를 불러 강을 건너려 할 때, 갑자기 한 녹의 여인이 훌쩍 대추빛 말등 위로 뛰어올랐다. 그녀는 두 손으로 홍의 여인의 양어깨를 짚더니 급한 목소리로 외쳤다. "하 언니! 빨리 서쪽으로 채찍을 가하십시오!"

홍의 여인이 깜짝 놀라 고개를 돌렸다가, 말을 건 자가 누구인지 명확히 확인하고 나서야 비로소 고삐를 잡아당기며 가랑이 사이의 준마를 세차게 후려쳤다. 말?이 "히이잉" 하고 한 차례 미친 듯이 울부짖더니, 발광한 듯 강변을 따라 서쪽으로 질주하기 시작했다.

한바탕 미친 듯이 내달려 순식간에 이십여 리를 지나쳤다! 사방에는 처처에 우거진 풀숲 외에는 더는 사람의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았다.

홍의 여인이 그제야 고삐를 늦추며 고개를 돌려 물었다. "하 동생! 어찌 된 일이냐?"

그녀들이 부르는 칭호를 들어보니, 필시 하화련과 저 하용미인 모양이었다. 그 녹의 여인은 과연 하용미였으니, 그녀가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하 언니, 언니가 떠나신 후에 뜻밖에 생각지도 못한 정황들이 많이 발생했습니다! 잠시 후에 동생이 언니에게 자세히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하화련이 고삐를 조금 더 죄며 다시 물었다. "부궁주님은 어디 계시느냐?"

하용미가 말했다. "앞쪽 죽림(竹林) 속에 있는 한 초가집 안에 계십니다."

하화련(夏火蓮)이 물었다. "어찌하여 금릉을 떠나신 것이냐?"

하용미(何蓉媚)가 말했다. "하 언니! 이는 몇 마디 말로 다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하화련은 더 묻지 않고 가랑이 사이의 대추빛 말에게 모질게 채찍질을 가했다! 즉시 네 발이 날아들듯 움직이며 앞으로 광분했다. 다시 이십여 리를 더 달려가니 과연 강변에 거대한 대나무 숲 한 군데가 나타났고, 수려한 대나무들 사이로 초가집의 한 모퉁이가 은연히 보였다.

하화련이 고삐를 풀고 말머리를 돌려 천천히 대나무 숲을 향해 걸어가며 물었다. "하 동생, 이처럼 청정하고 고요한 곳은 어찌 찾아내었느냐?"

하용미가 말했다. "이곳에는 한 늙은 어옹이 살고 있는데, 저희도 이리저리 부딪치다가 우연히 이곳을 찾아내게 된 것입니다."

하화련이 말했다. "당당한 '경천궁' 부궁주님과 그 수하 검희들이 어찌하여 이토록 숨어 다녀야 한단 말이냐?"

하용미가 말했다. "하 언니, 부궁주님께서 들으시고 꾸짖으실까 염려스러우니 조심하십시오! 하지만 언니께서 그 속의 원유를 다 알고 나시면 더는 이런 말씀을 하지 못하실 것입니다."

하화련의 서열이 비록 하용미보다 높았으나 위세를 부리며 거들먹거리지는 않았기에, 하용미의 말을 듣고 나서는 도리어 묵묵히 말을 아끼며 고삐를 늦추어 완행했다.

대나무 숲 가에 이르러 두 사람은 말을 멈추고 각자 말등에서 훌쩍 뛰어내렸다.

맹채옥(孟采玉)이 이미 소리를 듣고 밖으로 나오며 멀리서부터 교태롭게 웃었다. "하 언니가 오셨습니까? 부궁주님의 셈이 참으로 귀신같이 정확하십니다. 과연 오늘 당도하셨군요."

추오상 역시 뒤따라 걸어 나오며 온화한 목소리로 말했다. "하 언니, 이 길을 오느라 고생이 많았소?"

이 한마디 물음을 받자 하화련의 피로가 눈 녹듯 사라지고 마음속이 아늑해져, 사뿐히 예를 표하며 말했다. "첩신은 결코 고통스럽지 않으나, 다만 부궁주님께서 애타게 기다리셨을까 염려스럽습니다."

추오상이 말했다. "검 상처가 아직 아물지도 않았는데 길을 재촉하게 만들었으니, 참으로 마음이 떨리고 차마 견디기 어려웠소! 현재는 좀 어떠시오?"

하화련이 말했다. "궁주님의 보살핌 덕분에 저는 이미 완쾌되었습니다."

추오상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거 다행이구려..." 어조를 잠시 멈추더니 이어갔다. "궁주님의 친필 명령서는 가져왔소?"



하화련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품속 주머니에서 화칠로 밀봉한 상피 봉투를 꺼내 공손히 건넸다.

추오상(秋傲霜)이 뜯어보니 편지지에 이렇게 적혀 있었다.

‘지금은 잠시 참아라. 머지않아 용희를 금릉으로 보내 도울 것이다. 본 궁주도 나중에 남쪽으로 갈 예정이니 특별히 먼저 알린다.’

그 아래에는 단비우의 흘려 쓴 서명이 있었다.

추오상은 읽고 나서 수유를 봉투에 넣고 품에 넣으며 하화련에게 물었다.

“궁주의 수석검희가 금릉으로 온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느냐?”

하화련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소첩은 듣지 못했다.”

하희(夏姬)와 맹희(孟姬) 두 검희가 동시에 말했다.

“용희(龍姬)가 온단 말이냐?”

추오상이 말했다.

“궁주께서 수유에 적으시길, 머지않아 금릉으로 온다고 하셨다....” 어조를 한 번 멈추고 이어 말했다. “샤희! 궁주께서 본 부궁주의 상소문을 뜯어보신 후, 당시 어떤 기색을 보이셨느냐?”

하화련이 말했다.

“궁주께서는 가볍게 한숨을 쉬시며, 정말 그에게 미안하구나! 라고 말씀하셨다.”

추오상은 정신이 번쩍 들어 말했다.

“궁주께서 그렇게 말씀하셨단 말이냐?”

하화련이 말했다.

“소첩이 드린 말씀은 천진만확하다.”

추오상은 한참 동안 생각에 잠기더니 말했다.

“궁주께서 지금은 참으라고 분부하셨으니, 우리는 아직 이곳에서 한동안 은거해야 한다. 잠시 금릉으로 돌아갈 계획은 세우지 않겠다.”

하화련이 말했다.

“용희가 온다면 어떻게 우리를 찾겠느냐?”

추오상이 말했다.

“너희가 조를 나누어 나루터에서 밤낮으로 지키면 분명 그녀를 기다려 만날 수 있을 것이다.”

하화련이 말했다.

“소첩, 명을 따르겠다.”

추오상이 말했다.

“하희! 가서 좀 씻고 갈아입어라! 옷가지를 금릉에서 미처 챙겨 나오지 못해, 오늘 강포진(江浦鎭)에서 기성품 무명 저고리와 바지를 좀 샀으니 임시로 갈아입어라!”

하화련(夏火蓮)은 이상하게 여기며 이해하지 못했다. 마치 금릉에서 황급히 도망쳐 나온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녀는 급하게 캐묻지 않았다. 조금 후에 두 검희의 입을 통해 전말을 알아내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추오상은 두 검희가 초가집으로 들어가는 것을 기다렸다가, 어두워져 가는 강면을 한참 동안 응시한 후에야 몸을 돌려 초가집으로 향했다.

이 초가집은 대나무 숲 밖에서 볼 때는 기이할 정도로 작아 보였으나, 가까이 다가가서야 비로소 크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가운데는 넓은 대청마루가 있고 좌우에 각각 세 칸의 행랑채가 있어, 비록 풀을 엮어 만든 초막이었지만 매우 정연하게 지어져 있었다.

이 초가집의 주인은 예순이 넘은 늙은 어부로, 스스로 이름을 강상추라고 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원래 이 커다란 초가집은 자신과 일녀삼남이 함께 살던 곳이었다. 맏딸은 멀리 시집갔고, 세 아들은 또 객지로 나가 따로 살길을 찾아 떠났기 때문에 그 홀로 늙은이만 남았다고 했다. 매일 그물을 몇 번 던져 싱싱한 물고기 몇 마리를 잡아 반은 먹고 반은 팔며 지내니 세월이 오히려 한가롭다고 했다.

하늘은 이미 거뭇거뭇해졌지만, 이 늙은 어부는 아직 초가집 앞의 작은 공터에서 그물을 깁고 있었다. 보아하니 그의 체력은 그리 나쁘지 않은 듯했다.

추오상이 늙은 어부 앞으로 걸어가 포권을 하며 말했다.

“강 노인, 안목이 정말 좋으시다!”

강상추(江上秋)는 고개를 들고 허허 웃으며 말했다.

“이 늙은이가 가장 기쁜 것은 이 나이에도 눈이 아직 좋고, 뼈가 튼튼하며, 또 잘 먹고 잘 자는 것이라네....” 어조를 멈추고 이어 말했다. “상공께서는 떠나시려는가?”

추오상이 말했다.

“이 사람은 원래 귀한 집에 잠시 쉬어가며 강변 풍경을 구경하고, 밤이 되면 떠날 생각이었다. 이곳이 이렇게 청정할 줄은 예상치 못해, 이 사람이 떠나는 것을 잊고 머물게 되었다.”

강상추가 말했다.

“상공께서는 묵어가실 생각인가?”

추오상이 말했다.

“이 사람이 며칠 더 폐를 끼치고 싶은데, 괜찮을지 모르겠다.”

강상추가 말했다.

“상공께서 너무 정중하시네. 다만 우리 집은 빈 침상만 있을 뿐 베개와 이불이 없고, 또 대접할 음식도 부족하니 소홀함이 있을까 염려된다네.”

추오상이 말했다.

“그것은 강 노인께서 마음 쓰실 필요 없다. 강포진에 음식과 옷가지가 없는 게 없으니 이 사람이 스스로 가서 조달할 것이다. 다만 강 노인의 청정함을 너무 방해하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강상추가 말했다.

“상공께서 이곳을 좋아하신다면 며칠 더 묵으셔도 상관없다네....” 어조를 멈추고 이어 말했다. “상공께서는 금릉에 사시는가?”

추오상이 말했다.

“금릉에 손님으로 왔을 뿐이다!”

강상추가 말했다.

“그 세 처자는...?”

추오상이 말했다.

“이 사람의 시첩이다.”

강상추는 허허 웃으며 말했다.

“상공께서는 정말 복이 많으시네....” 어조를 멈추고 이어 말했다. “상공의 기품을 보고 상공의 말씀하시는 것을 들으니, 분명 서향만대(서독가문) 출신이신데 과거에 급제하셨는지 모르겠네?”

추오상은 속으로 웃음이 나왔다. 그러나 하화련이 마침 방 안에서 몸을 씻고 옷을 갈아입는 동안, 그도 이 고독한 노인과 이야기 나누는 것이 즐거웠기에 마음대로 지어내어 말했다.

“이 사람은 책 읽는 것을 가장 싫어하여 삼자경을 겨우 다 읽고 천자문을 반년 동안 읽었으니, 어찌 과거를 논할 수 있겠는가?”

강상추가 말했다.

“그렇군! 이 늙은이가 보기에 상공과 그 처자들이 모두 보검을 차고 있으니 필시 무예가 고강할 것이네. 그렇다면 상공께서는 무과 거인이시겠군.”

추오상이 말했다.

“무과 거인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얼마 안 가 변방으로 전전해야 하고, 전공을 세워야만 출세할 수 있다. 한 장수가 공을 이루면 만 명의 뼈가 마르는 법이니, 이 사람은 다른 사람의 목숨을 자신의 출세를 위한 디딤돌로 삼고 싶지 않다.”

강상추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찬탄했다.

“상공께서는 참으로 활달하시네! 누구나 명리를 다투는데, 오직 상공만이 세상에 이름을 알리기를 구하지 않으니 참으로 얻기 힘든 일일세.”

추오상은 원래 마음대로 지어낸 말이었다. 목적은 단지 이곳에서 며칠 더 머물며 단비우 곁의 수석검희가 오기를 기다리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이것저것 한가롭게 이야기를 나누는 중에, 그는 이 늙은 어부의 말솜씨가 범상치 않으며 마치 큰 풍파를 겪어본 사람 같다는 것을 발견했다.

다만 이 노인이 관직의 풍파를 겪었는지, 아니면 강호의 풍파를 겪었는지는 추오상도 일시적으로 가늠하기 어려웠다.

막 상대방과 더 깊은 대화를 나누려 할 때, 마침 맹채옥이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맹채옥이 말했다.

“부궁주께 아뢴다. 소첩이 강포진에 가서 먹을 것을 좀 사 오려고 한다.”

강상추가 말을 받아 말했다.

“이 늙은이가 오늘 싱싱한 물고기 몇 마리를 잡았으니, 내가 가서 한 마리 가져와 상공께 드려 국을 끓여 드시게 하겠네.” 말을 마치고는 스스로 가버렸다.

추오상이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맹희! 네가 어찌 이 노인 앞에서 나를 부궁주라 부르느냐?”

맹채옥이 말했다.

“소첩이 미처 살피지 못했다. 다음에는 유의하겠다.”

추오상도 깊이 책망하지는 않고 한참 생각하다가 말했다.

“나룻배(渡船)가 매일 언제 운항을 시작하고 언제 멈추는지 아느냐?”

맹채옥이 말했다.

“나룻배(渡船)는 매일 묘정(오전 6시)부터 유말(오후 7시)까지 운항한다.”

추오상이 말했다.

“내일 묘초(오전 5시)부터 시작하여 너희 세 사람이 교대로 나루터를 지켜라. 그녀를 보거든 즉시 이곳으로 모셔오도록 해라.”

맹채옥(孟采玉)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갑자기 눈썹을 치켜세우며 말했다.

“이곳에 오래 머물 수 있겠느냐?”




추오상이 말했다. “이곳은 저잣거리와 멀리 떨어져 있고, 좌우에 관도도 없으니 매우 한적하다. 잠시 머물러도 무방하니, 너는 강포진에 가서 쌀과 양식, 술과 고기를 좀 사고, 가는 김에 베개와 돗자리도 좀 챙겨 오너라. 날씨가 무더우니 이불은 필요 없다. 빨리 다녀오너라!”

맹채옥이 공손히 대답하고는 대나무 숲 밖으로 걸어 나갔다. 이윽고 말발굽 소리가 점차 멀어졌다.

추오상이 초가집 안으로 들어가니, 하화련이 이미 옷을 깨끗이 갈아입은 상태였다. 등잔불이 불그스레 비치는 아래에서 그녀의 피부가 붉고 윤기 있게 돋보였다.

하희는 본래 용모가 아름답고 매우 요염하게 생긴 여인이었다. 필시 다른 두 희의 입을 통해 무슨 말인가를 들었는지, 지금 추오상을 보자 눈썹을 찡긋하고 눈짓을 하며 끊임없이 정을 통하는 기색을 보였다.

추오상이 전에 하, 맹 두 희에게 옷을 벗고 수침을 들게 명했으니, 화련은 분명 이 일을 듣고 태도가 크게 변한 것이었다.

추오상도 이를 굳이 들추어내지 않고, 하용미에게 손을 흔들며 말했다. “맹희가 쌀과 양식, 술과 고기를 사러 갔으니 머잖아 돌아올 것이다. 너는 먼저 부엌에 가서 솥에 물을 끓이며 기다려라. 본 부궁주는 하희와 이야기를 좀 나누고자 하니, 밥 먹을 때가 되기 전에는 방해하지 마라.”

하용미가 대답하고 물러나며, 몸을 돌리는 순간 하화련에게 눈짓을 해 보였다.

이 방 안에는 빈 나무 침대 하나와 대나무 의자 두 개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하용미가 떠나자 하화련이 사립문을 닫았고, 그제야 추오상이 대나무 의자에 앉았다.

하화련이 그의 맞은편에 앉으며 지나치지 않게 활짝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소첩은 몸은 여로에 있으나 마음은 금릉에 있어, 매 순간 부궁주님을 그리워했습니다.”

추오상은 마음속으로 상대의 아양 떠는 모습이 어쩐지 불편하게 느껴졌으나, 겉으로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네가 그런 마음을 품어 주니 참 기특하구나...” 이내 미소를 거두며 말을 이었다. “하희, 본 부궁주가 사람을 대함이 어떠하냐?”

하화련이 약간 멍해지더니 눈썹을 치켜세우며 말했다. “부궁주님께서는 어찌 그런 질문을 하십니까?”

추오상이 말했다. “사실대로 답하거라.”

하화련이 말했다. “사람을 박하게 대하지 않으십니다!”

추오상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다면 우리 잠시 귀천의 구분을 버리고 속마음을 털어놓고 이야기해 보자.”

하화련이 가볍게 절을 하며 말했다. “부궁주님의 가르침을 청하오니 소첩은 귀를 기울이겠습니다.”

추오상이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속마음을 털어놓기로 했으니 그런 호칭부터 바꿔야겠다. 그렇지 않으면 말하는 데 거리낌이 생길 테니. 자! 앉아서 천천히 얘기하자.”

하화련이 다시 한 번 절을 하며 말했다. “명 받들겠습니다!” 말을 마치고는 추오상 맞은편의 대나무 의자에 앉았다.

추오상이 한쪽 발을 뻗어 하화련이 앉은 대나무 의자를 자기 앞으로 끌어당겼다. 그 대나무 의자는 본래 그리 튼튼하지 않았으나, 움직일 때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았고 부서지지도 않았다. 이는 추오상이 기세를 사람을 압도하는 ‘선풍검법’ 외에도 자잘하고 미묘한 무공 수단 또한 약하지 않음을 보여 주었다.

조금 뜸을 들인 후에야 그가 입을 열었다. “화련! 내가 기억하기로 너는 ‘음양검’ 여상연의 기명제자(이름만 걸어 둔 제자)인 듯한데, 맞느냐?”

하화련이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추오상이 말했다. “어찌하여 정식 제자가 되지 못하고 기명제자가 된 것이냐?”

하화련이 말했다. “여 선배님께서는 평생 단 한 명의 제자만 거두겠다고 맹세하셨습니다. 제 앞에 이미 큰언니 한옥봉을 거두어 가르치셨기에 화련을 다시 정식 제자로 들일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어르신께서도 화련이 의지할 곳 없이 외로운 것을 차마 보지 못해 기명제자의 명분을 주셨습니다.”

추오상이 말했다. “처음 궁에 들어올 때 너는 부모를 여의고 천지에 일가친척이 없다고 했다. 궁주의 규칙에 따라 문인 된 자는 혈육이 죽었다면 굳이 가문을 밝히지 않아도 되지만, 지금 너와 내가 속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하는 자리이니 네 신세를 말해 줄 수 있겠느냐?”

하화련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소첩, 명을 받들겠습니다...” 말투를 조금 머뭇거리더니, 어두운 안색으로 말을 이었다. “돌아가신 아버님 하일봉은 본래 육선문(관청)의 포두였습니다...”

추오상이 말을 자르며 물었다. “그렇다면 그분도 무예를 익힌 사람이었더냐?”

하화련이 말했다. “그렇습니다. 돌아가신 아버님은 비록 관청의 포쾌였으나 녹림의 호걸들에게 매우 존경을 받으셨습니다. 아버님의 손에 쥔 구절강편(아홉 마디 철찍찍이) 위세가 출신입화의 경지에 이르러 무예가 고강하셨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무예가 뛰어난 것만으로는 사람을 두려워하게 할 뿐 마음으로 복종하게 만들 수는 없으니, 어찌 사람들의 존경을 받는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추오상이 말했다. “필시 녹림의 친구들을 크게 배려해 주었겠구나?”

하화련이 말했다. “아버님께서 조정의 녹봉을 받으시니 법을 지나치게 굽힐 수는 없었으나, 인명을 해치지 않은 강도 사건이라면 원래의 장물을 되찾을 수 있는 한 범인들을 곤란하게 만들지 않으셨습니다.”

추오상이 말했다. “과연 녹림 호걸들의 존경을 받을 만했구나.”

하화련이 말했다. “이 때문에 아버님은 남구성에서 명성이 드높으셨고, 때로는 하 포두의 이름 석 자만 내걸어도 도적들이 알아서 장물과 은자를 돌려보내곤 했습니다. 하지만 아버님께서는 표국이 털린 재물에 대해서는 절대 관여하지 않으셨습니다. 녹림 호걸들도 함부로 손을 댈 수는 없었기에 오직 표차(짐마차)를 노릴 수밖에 없었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아버님께서는 남구성의 크고 작은 열일곱 개 표국의 원망을 한 몸에 사게 되었습니다.”

추오상이 으응 하며 말을 자르지 않고 귀를 기울였다. 흥미진진하게 들으며 뒤이어 나올 이야기가 몹시 궁금한 기색이었다.

하화련이 길게 한숨을 쉬고는 다시 말을 이었다. “당시 남구성에서 가장 큰 표국은 화성표국이었고, 대장주 위화성은 표사 업계의 우두머리라 할 수 있는 강호의 쟁쟁한 인물이었습니다. 화성표국은 한 번도 실수를 한 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촉 땅 경계에서 호송해 오던 명귀한 약재가 무호의 강배 위에서 귀신도 모르게 도난당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추오상이 물었다. “누가 표물을 훔친 것이냐?”

하화련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지금까지도 어느 녹림 호걸이 손을 썼는지 알지 못합니다.”

추오상이 말했다. “그 말을 들으니, 그 표물은 끝내 되찾지 못했나 보구나?”

하화련이 말했다. “당시 위화성이 아버님을 찾아와 표물만 되찾아 주어 화성표국의 위명을 지켜 준다면, 그 약재 호송 판판의 총가격에 맞먹는 은자를 전부 아버님께 드리겠다고 했습니다. 대략 십만 양에 달하는 은자였으나, 아버님께서는 단칼에 거절하셨습니다.”

추오상이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공경할 만하고 기릴 만하구나!”

하화련이 고마운 눈빛을 보낸 후 다시 말을 이었다. “위화성은 다시 재물과 권세를 동원해 부윤 대인을 찾아가 관부의 압력으로 아버님을 나서게 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아버님께서는 여전히 단칼에 거절하셨고, 그 이유 또한 당당하셨습니다. 표국은 무예로 표물을 지키며 본령으로 돈을 버는 곳이니, 일단 일이 터졌으면 스스로 운이 없음을 인정해야지 관부가 그들을 위해 힘을 쓸 필요는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추오상이 말했다. “옳은 말이다!”

하화련이 말했다. “부윤은 마음속으로 노하여 본래 아버님을 관직에서 해임하고 문책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당시 아버님이 버티고 계셨기에 남구성이 그나마 평온했으므로 감히 함부로 움직이지 못했습니다.

아! 하지만 부윤은 넘어갔을지언정 위화성은 넘어가지 않을 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이튿날 아버님께서 밖으로 나가신 뒤 돌아오지 않으셨고, 나중에 거친 들판에서 시신으로 발견되셨는데 사지가 온전치 못할 정도로 찢겨 비참하게 죽어 계셨습니다.”

추오상이 두 눈썹을 치켜세우며 말했다. “그 위화성이 저지른 짓이더냐?”

하화련이 탄식하며 말했다. “성씨가 위의 소행인지 확실치 않으나, 사흘 뒤 어느 날 밤 위화성의 온 가족을 비롯해 화성표국의 표사와 일꾼들이 단 한 명도 살아남지 못하고 전부 살해당했습니다.”

추오상이 오 하더니 말했다. “필시 녹림의 친구들이 네 부친을 위해 원수를 갚아 준 것이로구나.”

하화련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듣기로는 남구성의 녹림 호걸들이 모두 출동했다고 합니다.”

추오상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안타까운 일이구나!”

하화련이 말했다. “이보다 훨씬 더 비참한 일이 있습니다!”

추오상은 자신도 모르게 멍해져 두 눈으로 하화련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며 다음 이야기를 조용히 기다렸다.

하화련은 입술을 굳게 다물며 간신히 마음을 진정시키려는 듯 보였다.



한동안 방 안에는 슬프고 참담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한참이 지난 후에야 그녀는 무거운 안색으로 말을 이었다. “부윤은 진작부터 돌아가신 아버님을 기만하고 미워하던 차에, 이 사건이 너무도 커지자 책임을 온전히 아버님께 떠넘겼다. 거짓 보고서를 올려 아버님이 한사코 무뢰배들을 두둔하는 바람에 이토록 엄청난 대화가 일어났다고 꾸며댄 것이다.”

추오상이 말했다. “관청의 일이라는 게 원래 서로 책임을 전가하기 마련이다. 부윤이 그렇게 처신한 것도 무리는 아닌 듯싶구나.”

하화련이 말했다. “부윤의 보고서는 비밀리에 부쳐진 일이었을 텐데, 뜻밖에도 녹림 호걸들이 이를 알아차리고는 부윤의 온 가족을 또다시 전멸시켜 버렸다.”

추오상이 말했다. “그것은 너무 과했구나!”

하화련이 말했다. “그들은 그저 의분에 격했을 뿐, 왕법을 알지 못했고 그것이 가져올 이해관계도 알지 못했다. 이렇게 되자 아버님이 무뢰배들을 비호했다는 설은 그만 움직일 수 없는 철안이 되고 말았다.”

추오상이 말했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느냐?”

하화련이 말했다. “조정의 처결이 내려와 우리 온 가족을 체포해 감옥에 가두었다. 그때 내 나이 겨우 다섯 살이었다.”

추오상이 말했다. “그 후에는 어찌 되었느냐?”

하화련이 말했다. “그 녹림 호걸들이 감히 감옥을 습격해 구하려 왔으나, 관군은 이미 준비를 마치고 사방에 매복해 있어 한바탕 혼전이 벌어졌다. 어머니와 오라버니는 그 자리에서 살해당했고, 오직 나 한 사람만이 누군가의 등 뒤에 업혀 탈출했다. 하지만 나를 업은 사람도 화살을 맞아 부상을 입었고, 미친 듯이 질주하다가 결국 땅에 쓰러져 일어나지 못했다.”

추오상이 짐작하며 말했다. “네가 아마 그때 ‘음양검’ 여상연을 만난 모양이구나, 맞느냐?”

하화련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분을 만나지 못했다면 나는 아마 진작에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을 것이다.”

추오상은 잠시 묵묵히 있다가 위로하듯 말했다. “사람이 세상에 태어나 짧은 수십 년을 사는 동안 괴롭거나 달콤한 것은 저마다의 기운에 달린 법이다. 너도 비참한 지난날에 너무 연연할 필요는 없다. 매사를 좋은 쪽으로 생각하면 하루하루가 스스로 편안해질 터이니, 늘 마음에 두고 고통스러워하지 마라.”

하화련이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부궁주님이 아니셨다면...”

추오상이 손을 내저으며 말을 가로막았다. “방금 말하지 않았느냐, 지금은 그런 호칭을 쓰지 말라고.”

하화련이 말했다. “내가 또 잊었다!...” 말투를 잠시 가다듬고 말을 이었다. “궁에 들어온 후로 나는 전혀 다른 새로운 생명의 여정에 오른 것이나 다름없다. 그래서 지난날의 일은 이미 머리 뒤로 지워버렸으니, 상공께서 꺼내지 않으셨다면 거의 잊고 살았을 것이다.”

추오상이 말했다. “그것이 가장 좋구나...” 잠시 말을 멈추었다가 이었다. “화련! 한 가지 이해되지 않는 일이 있어 네게 물어보아야겠다.”

하화련이 안색을 바로잡으며 말했다. “밝히 말씀해 달라!”

추오상이 말했다. “네 검법이 나쁘지 않고 용모도 아름다우니, 마음에 드는 낭군을 만나 평생을 해로하는 것이 어렵지 않았을 터다. 그런데 어찌하여 본궁에 들어와 감히 검희가 된 것이냐?”

하화련은 자신도 모르게 크게 멍해져 추오상을 응시할 뿐, 한참 동안 말을 가벼이 내지 못했다.

추오상이 고개를 돌리며 부드럽게 말했다. “화련! 너와 내가 속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하는 자리임을 잊지 마라.”

하화련이 중얼거렸다. “내게는 남모를 사정이 있다.”

추오상이 말했다. “설령 속사정이 있다 해도 직언하는 것이 좋다. 내가 듣고 싶은 것이 바로 그 속마음이다.”

하화련이 말했다. “나는 속세의 평범한 몸이라 불도에 귀의해 청수하게 수행할 생각은 감히 하지 못했다. 여인의 몸으로 태어났으니 결국 누구에겐가 의탁해야 할 터인데, 무림에 몸담고 있으니 자연히 무림 인물을 택하려 했다. 하지만 가장 혐오하는 출신 두 가지가 있었으니, 하나는 육선문의 주사들이요, 또 하나는 표국에서 어중이떠중이로 섞여 지내는 자들이었다. 이에 나는 그런 허황된 바람을 품지 않았다.”

추오상이 말했다. “단지 그 이유 때문이냐?”

하화련이 말했다. “또 다른 이유도 있다...” 잠시 숨을 고르고 말을 이었다. “나는 여 선배님의 기명제자라 강호의 규칙에 따르면 일단 강호에 발을 들이면 이름을 지워야 했다. 비록 여씨 문중에 평생 머물며 선배님 좌우에서 시중을 들고 싶었으나 선배님께서 거절하셨다. 나 같은 연약한 한 명의 여인으로서는 차라리 한 문파에 투신하는 것이 마음을 편히 가질 수 있는 길이었다. 하물며 ‘경천궁’은 무림에서 기세가 웅대하고 단 궁주의 명성 또한 나쁘지 않으니, 참으로 내가 갈 만한 곳이었다. 게다가...”

말을 이 지경까지 하다가 갑자기 고개를 가슴 깊이 숙이며 말을 멈추었는데, 그 태도가 무척 부끄러워하는 기색이었다.

추오상이 말했다. “어찌 말을 잇지 않느냐?”

하화련이 말했다. “여 선배님 말씀에 따르면 상공께서는 ‘철필성수’ 추일장 대협의 후손이시니 명문가 출신이라 할 만하다 하셨다. 눈앞에는 ‘경천궁’ 부궁주의 직위에 계시니 더욱 무림의 제이인자라 할 수 있다...”

추오상이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부끄럽구나!”

하화련이 말을 이었다. “한 가지 더 드릴 말씀이 있는데, 감히 드려도 될지 모르겠다.”

추오상이 말했다. “말해 보아라.”

하화련이 말했다. “상공께서 아직 정실을 두지 않으셨다고 들었다. 내가 비록 검희의 신분이나 만약 총애를 입을 수 있다면 이 또한 복된 일이 아니겠는가 생각했다. 그러나 막상 궁에 들어오고 나서야 내가 감히 넘볼 수 없는 처지임을 알았다.”

추오상이 말했다. “화련! 네가 잘 몰라서 그렇다. 내 스승님께서 누차 훈계하시기를, 만약 단 한 번이라도 여색을 가까이하면 내가 익힌 검법이 하루아침에 무너질 것이라 하셨다. 그리하여 너희들을 냉대한 것이다.”

하화련이 몇 번이고 입술을 달싹이며 말을 꺼내려다 참기를 반복했다. 한참이 지난 후에야 비로소 용기를 내어 말했다. “감히 상공께 한 말씀 여쭈어보고 싶다.”

추오상이 말했다. “물어보아라.”

하화련이 말했다. “내가 금릉을 떠난 후, 상공께서 하, 맹 두 희를 불러 수침을 들게 하셨다 들었는데 그것이 사실이냐?”

추오상의 얼굴에 약간 멋쩍은 기색이 스쳤으나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과연 그런 일이 있었다.”

하화련이 말했다. “그들에게 옷을 벗고 몸을 드러내게 하셨다는데, 이 또한 거짓이 아니냐?”

추오상이 말했다. “그렇다. 말하자면 황당한 일이지. 나는 그저 내 정력을 시험해보고 싶었을 뿐이다. 하, 맹 두 희가 필시 네게 말했겠지만, 나는 그들과 정을 통하지 않았다.”

하화련이 말했다. “설령 그렇다 해도 이미 그들은 마음속으로 만족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런 영광조차 가져보지 못했다.”

추오상은 마음속으로 은근히 당황하여 얼른 화제를 돌리며 말했다. “화련! 그런 이야기는 그만하자...” 말을 멈추었다가 이었다. “네가 방금 단 궁주의 명성이 나쁘지 않아 투신했다고 했는데, 그것이 진심이냐?”

하화련이 말했다. “당연히 진심이다.”

추오상이 말했다. “그것은 내가 처음에 ‘경천궁’에 몸을 담은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나는 지금 단 궁주에 대한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하화련의 안색이 미묘하게 변했으나 대답하지 않았다.

추오상이 다시 말했다. “화련! 혹시 ‘은여우’라는 자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느냐?”

하화련이 말했다. “본 적도 있다. 단 궁주의 친필 수칙을 가져온 그 백발의 노파가 아니냐?”

추오상이 말했다. “그 노파는 젊은 시절 요염하게 행실하며 채보(남자의 정기를 취함)에 정통했다 하더구나...”

하화련이 말을 자르며 물었다. “채보라는 것이 무엇이냐?”

추오상이 자신도 모르게 멍해져 말했다. “채보가 무엇인지도 모르느냐?”

하화련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진실로 알지 못한다.”

추오상이 더듬거리며 말했다. “채보라는 것은 여자가 남자와 정을 통하는 기회를 틈타 남자의 원양(순수한 정기)을 취함으로써 자신의 음기를 보충하는 짓이다. 이는 대개 음탕한 여자들이 즐겨 익히는 좌도방문(사파의 무공)이다.”




하화련은 자신도 모르게 뺨에 붉은 노을을 띄우며 가볍게 쳇 하고 소리를 냈다.

추오상이 다시 말했다. “‘은여우(銀狐)’는 무림에서 온천하가 다 아는 음탕한 계집이다. 평생 동안 그년과 정을 통환 남자는 헤아릴 수조차 없어 그 명성이 지극히 더러운 지경에 이르렀다. 단 궁주가 뜻밖에도 그년에게 청하여 친필 수칙을 금릉으로 가져오게 했으니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게다가 그 노파가 사석에서 털어놓기를, 단 궁주 역시 지난날 자신과 한때 악연이 있었다고 하더구나. 금릉에 오기 전에도 궁에 머물며 며칠을 유흥했다고 하니, 이는 그 속사정을 더욱 헤아릴 수 없게 만든다.”

하화련이 중얼거렸다. “그 음탕하고 천한 계집의 말은 그리 믿을 것이 못 된다.”

추오상이 말했다. “단 궁주가 그년에게 청하여 친필 수칙을 가져오게 한 것은 천지신명이 다 아는 명백한 사실이다. 당당한 ‘경천궁’이 무림의 패자를 자처하면서 이런 여자와 왕래한다는 사실이 일단 밖으로 전해지면 무림 인물들이 어찌 보겠느냐? 설마 단 궁주가 조금도 개의치 않는단 말이냐?”

하화련은 미간을 찌푸린 채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추오상이 가볍게 탄식하며 말했다. “이 때문에 나 역시 단비우의 처사에 더는 신뢰를 보낼 수 없게 되었다.”

추오상이 이런 말을 했을 뿐만 아니라 단비우(單飛宇)의 이름 석 자를 그대로 불렀으니, ‘경천궁’의 엄한 규칙 안에서는 이미 범상(윗사람을 침해함)의 죄에 해당했다. 이에 하화련의 안색이 미묘하게 변하더니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상공께서는 이런 말씀을 하실 때 조금 조심하셔야 한다. 나는 절대 죽어도 누설하지 않을 자신이 있으나, 하, 맹 두 희는 필시...”

추오상이 고개를 저으며 가리켰다. “그들은 절대 집 밖에서 엿들을 엄두를 내지 못한다. 하물며 검희는 모시는 주인과 생사를 같이해야 하는 법이니, 그들 또한 이해관계를 알고 있어 감히 망언을 뱉지 못할 것이다.”

이 말은 의심할 바 없이 하화련에게 주는 일종의 암시이기도 했다.

하화련이 무거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나도 그 도리를 잘 알고 있다. 만약 단 궁주가 우리가 뒤에서 자신을 논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검희 된 자와 부궁주님은 같은 처분을 받게 될 터다. 내가 그 이해를 잘 알고 있으니 부궁주님께 또한 충심을 다하겠다...”

추오상이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내 잘 알고 있으니 너는 더 고해 바치지 않아도 된다.”

하화련이 말했다. “궁의 십이검희가 비록 두 분 정부궁주 좌우에서 시중을 들어 겉보기에는 존귀해 보이나, 사실 궁에서의 지위는 각 호법의 아래일 뿐만 아니라 각 당의 당주들보다도 훨씬 못하다. 그런데 상공께서 뜻밖에도 나를 심복으로 여겨 속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해 주시니, 내가 어찌 감히 죽음으로써 보답하지 않겠는가.”

추오상이 웃으며 말했다. “네가 어찌 일을 그리 중하게 말하느냐.”

하화련이 말했다. “내가 이번에 궁으로 돌아가 비록 한 시진 동안만 머물렀으나, 역시 한 가지 괴이한 일을 발견했다. 다만 이전에는 감히 밝혀 말하지 못했을 뿐이다.”

추오상이 두 눈썹을 치켜세우며 말했다. “무슨 일이냐?”

하화련이 목소리를 낮추어 말했다. “해희(解姬)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은 가짜요, 도망친 것이 진짜다. 그 시신은 그저 도망친 한 명의 여종일 뿐이다. 역용술이 비록 절묘했으나 궁의 안목이 있는 사람들을 속일 수는 없었다. 오직 단 궁주님만이 마치 아무것도 모르는 듯하셨으니 어찌 괴이한 일이 아니겠는가!”

추오상이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고개를 들어 물었다. “화련! 너는 해희의 출신을 알고 있느냐?”

하화련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모른다.”

추오상이 말했다. “그녀가 바로 ‘은여우’의 딸이다. 이 안에는 필시 커다란 기치창검이 숨어 있을 것이다.”

하화련이 놀란 기색을 띠며 말했다. “정말이냐?”

추오상이 말했다. “틀림없는 사실이다. 게다가 그 계집은 눈앞에 이미 금릉으로 은밀히 잠입해 들어왔다.”

하화련이 씩씩거리며 말했다. “만약 내 눈에 띄기만 하면 반드시 그년을 갈가리 찢어 죽여 버리겠다.”

추오상이 말했다. “듣기로 그 계집의 역용술이 비정상적으로 고명하여 설령 마주친다 해도 네가 알아채지 못할 수 있다. 설령 알아본다 해도 절대 그녀를 건드리지 않는 것이 좋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너는 그녀의 상대가 되지 못한다...” 말을 잠시 멈추었다가 이었다. “화련! 너는 내가 너와 이런 속이야기를 나누는 목적이 어디에 있는지 아느냐?”

하화련이 말했다. “내 지혜가 명민하지 못해 그 뜻을 헤아리기 어려우니 부디 명확히 일러 달라!”

추오상이 길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남의 부하 된 자가 본래 다른 마음을 품어서는 안 된다. 하지만 주인의 처사가 어떠한지는 마땅히 유의해야 한다. 죽음은 두려울 것이 없으나, 사리에 어둡고 무지하여 남에게 이용당하고 부림을 받는 것은 커다란 어리석음이다. 단 궁주 곁의 수석 검희가 조만간 금릉에 올 터이니, 그때 우리는 언행에 더욱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조심조심 대처해야 할 터다.”

하화련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마음에 새겨 두겠다.”

나눌 이야기가 다 끝나자 추오상은 천천히 길게 숨을 몰아쉬며 고개를 들어 그녀의 얼굴을 지긋이 바라보았다.

하화련은 문득 그의 눈빛이 예사롭지 않음을 발견하고는 부끄러운 듯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깊이 숙였다.

추오상이 중얼거렸다. “화련! 네 이름이 참으로 독특하고 사람 또한 매우 아름답구나!”

사실 그가 내뱉은 이 말은 마치 소월매에게 하는 말과 같았다. 왜냐하면 지금 그의 뇌리에는 다시 소월매의 고운 그림자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비록 물속의 거꾸로 비친 그림자처럼 때로는 흩어지고 때로는 모여 모호하고 불분명했으나, 그것은 그의 마음을 흔들어 스스로 억제하기 어렵게 만들었고, 동시에 따스한 열기가 아랫배에서부터 솟구쳐 올랐다.

하화련은 당연히 추오상의 속내를 알지 못했기에, 이 말이 귀에 들려오자 마음속으로 미친 듯이 기뻐하며 교태와 부끄러움을 더했다. 그녀가 소곤거렸다. “상공의 과찬이시지, 나는 스스로 매우 추함을 잘 알고 있다.”

추오상이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며 나직하게 말했다. “맹희가 돗자리와 베개를 사서 돌아왔는지 모르겠구나.”

하화련은 당연히 그의 말속에 담긴 뜻을 알아차렸고, 가슴이 크게 출렁여 너무 격동된 나머지 거의 말을 잇지 못할 지경이었다.

그러나 그녀 역시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됨을 알았기에 용기를 내어 말했다. “맹 동생은 일 처리가 늘 치밀하니 결코 잊지 않았을 것이다. 내가 스스로 알아서 건사할 터이니 마음 쓰지 않으셔도 된다.”

말이 여기에 이르렀을 때, 하용미가 방 밖에서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하 언니! 밥이 다 되었어!”

하화련이 추오상에게 요염하게 한번 미소를 지어 보이고는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하, 맹 두 희는 마침 안방 안의 대나무 탁자 위에 대접과 수저를 차려놓고 있었다. 추오상이 다가가 보니 네 가지 소박한 반찬에 신선한 물고기 탕 한 대접, 그리고 그 지방의 이름난 명주인 ‘자금소’ 한 항아리가 놓여 있었다. 술과 음식의 향기가 코를 찌르니 추오상은 자신도 모르게 마음이 상쾌해졌다.

그가 즉시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가서 저 강 노선생을 모셔와 함께 한잔 나누자꾸나.”

하용미가 대답했다. “강 노선생은 이미 잠자리에 드셨다.”

추오상이 말했다. “이토록 일찍 잠자리에 들었단 말이냐?”

하화련이 고개를 내밀어 하늘 빛을 살피며 말했다. “이르다고 조급해할 것은 없다. 지금이 아마 유시 정각(저녁 6시 무렵)쯤 되었을 터다. 시골 사람들은 일찍 자고 일찍 깨어나니 우리처럼 밤낮을 분간하지 못하는 이들과는 다르다!”

추오상도 더는 말을 얹지 않고 술 두 잔을 들이켠 후 연거푸 흰쌀밥 세 그릇을 비워냈다. 그가 먹고 마시는 기색을 보니 마음이 무척 즐거운 듯했다.

식사를 마친 후 추오상은 대나무 숲을 가로질러 강가에 이르러 오랫동안 서 있었다. 사방에 사람이 없어 만물이 고요하니 그가 머릿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알 길이 없었다.

밤이 한밤중에 이르러 달이 이미 중천에 이르렀을 때야 추오상은 비로소 대나무 무리 속의 초가집으로 돌아왔다.

초가는 칠흑같이 어두웠으니 세 희가 모두 잠든 듯했다.

가까이 다가갔을 때야 그는 하화련이 집 앞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음을 발견했다.

추오상은 방금 강물을 마주하고 오랫동안 서 있었기에 마음이 이미 평온해진 상태였다. 그러나 지금 다시 하화련을 보게 되자 마음이 또다시 출렁이기 시작했다.

그녀의 머리 얹은 모양, 그녀의 얼굴, 그리고 그녀의 신체가 모두 그 소월매의 모습과 흡사해 보였다.

사실 두 사람은 완전히 다른 이였다. 그 이름과 마찬가지로 화련은 연꽃처럼 요염하고 분방했으나, 월매는 북풍이 몰아치는 속에서 오연히 서서 홀로 은은한 향기를 발하는 홍매화 같았다.

달빛이 밝아 초가집 앞에 서 있는 하화련은 은빛 가득한 속에 잠겨 있었으니 얼굴도 신형도 모호하지 않았다. 그러나 추오상의 눈에는 그녀가 소월매처럼 보였다.

괴이한 일이었다. 참으로 기이한 일이 아닌가.

추오상이 잠시 멍하니 있다가 나직한 목소리로 물었다. “하, 맹 두 희는 잠들었느냐?”



하화련이 대답했다. “진작 잠들었다. 하 동생은 내일 아침 묘시 초(새벽 5시 무렵)에 나루터로 가서 대기해야 하니...”

추오상이 이미 안방으로 한 발을 들여놓으며 말을 가로채 물었다. “너도 진작 잠들었어야지, 길을 오느라 꽤 고생했을 터인데.”

하화련이 말했다. “화련은 시중을 들고자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는 말을 하며 한 걸음 앞서 나가 방 한 칸의 문을 열었다. 이는 초가집 전체에서 유일하게 나무 판자로 된 문이 달린 방이었다.

추오상은 망설임 없이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탁자 위에는 기름 등잔 하나가 놓여 가느다란 불꽃을 내뿜고 있었고, 어스름한 불빛이 방 안을 몽환적으로 비추고 있었다.

추오상이 숨을 깊게 들이쉬니, 방 안에 쑥을 태워 훈증한 듯 향기로운 여운이 감돌고 있음이 느껴졌다.

나무 침대 역시 깨끗이 닦여 있었고, 그 위에는 두꺼운 마른풀과 함께 새로 산 대나무 돗자리, 두 개의 목침, 그리고 거친 흰 천으로 된 휑한 이불보가 깔려 있었다. 필시 모두 맹채옥이 강포진에서 사 온 물건들일 터였다.

하화련이 방문을 닫고는 무척 신중하게 문빗장을 걸었고, 유일한 창문 하나마저 나무 쐐기로 단단히 고정했다. 그러고는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부궁주님, 이제...”

추오상이 차갑게 꾸짖었다. “방금 말하지 않았느냐, 그런 호칭은 쓰지 말라고. 어찌 또 잊은 것이냐?”

그의 어조는 지극히 냉峻하여, 마치 이를 빌미로 서로 유쾌하지 않은 분위기를 만들려는 듯했다. 왜냐하면 지금 그의 마음속 생각이 무척 모순되었기 때문이다. 눈앞에 곧 어떤 일이 벌어지려 하고 있었으나, 이는 그가 결코 하고 싶지 않은 일이었다.

하화련은 불쾌해하기는커녕 오히려 더욱 교태를 부리며 말했다. “화련은 상공을 유일한 주인으로 여기고 있기에 한 번에 고치기가 어려우니, 앞으로 주의하겠다...” 잠시 말을 멈추었다가 이었다. “상공께서도 이제 잠자리에 드셔야 하니, 화련이 상공의 옷을 벗겨 시중을 들겠다.”

추오상이 말했다. “내 스스로 하마.” 말을 마치고 겉에 입은 연푸른 대삼을 벗고 신발을 벗은 뒤 나무 침대에 누웠다.

한동안 침묵이 흐른 뒤에야 하화련이 나직하게 물었다. “화련도 여기에서 자는 것이냐?”

추오상이 으응 하고 대답했다. 지극히 미미한 소리여서 마치 알아채기 힘든 어떤 생각에 억눌려 억지로 짜내어진 듯했다.

하화련이 다시 물었다. “기름 등잔은 끌까?”

추오상이 또 한 번 으응 하고 소리를 냈다.

‘푹’ 하는 소리와 함께 불이 꺼지자, 창문 틈새로 한 줄기 달빛이 비쳐 들어와 마침 침대 한가운데에 가로놓였다.

하화련이 침대 앞으로 다가와 다시금 물었다. “화련이 옷을 벗고 시중을 들어야 하느냐?”

추오상은 여전히 으응 할 뿐이었다. 만약 사방이 고요하지 않았거나 하화련이 각별히 신경을 쓰지 않았다면, 이 가벼운 신음 같은 소리를 결코 듣지 못했을 터였다.

침대 가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추오상이 고개를 돌려 보니, 한 줄기 달빛이 마침 하화련의 눈부시게 하얀 피부 위로 떨어지고 있었다. 그는 얼른 눈을 감아버렸다.

눈을 감자 상황은 더욱 나빠졌다. 침대 가에 서 있는 하화련이 뇌리 속의 소월매로 완전히 변해버린 것이었다. 그 깊은 눈망울, 그 긴 머리타래, 그 가냘픈 몸매가 순식간에 추오상의 마음을 흔들어놓아 정신을 차릴 수 없게 만들었다.

그는 몸을 돌려 품에 지니고 있던 ‘사절검’을 가만히 풀어 차가운 검집을 뺨에 대어보았다. 그러나 여전히 흔들리는 마음을 가라앉힐 수는 없었다.

갑자기 어떤 손길이 그의 손에 들린 단검을 가져갔고, 따스하고 매끄러운 육체가 그의 품 안으로 미끄러져 들어왔다.

극히 나직하고 요염한 목소리가 그의 귀를 자극했다. “상공, 옷을 벗으시지요!”

추오상은 자신이 지금 마치 도마 위의 고기 신세가 된 것 같다고 생각했다. 현재의 상황이 참으로 그러했으니, 그는 하화련의 손길이 자신의 옷을 풀어헤치는 것을 고스란히 받아들이며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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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조상 | 작성시간 26.06.15 감사합니다
  • 작성자사니조아 | 작성시간 26.06.16 감사합니다
  • 작성자왕타 | 작성시간 26.06.17 고맙습니다
  • 작성자이모백 | 작성시간 26.06.20 모사춘광이라 ^^
    추오상은 홍분의 유혹을 이겨낼지 ^^
  • 작성자바다사랑 | 작성시간 26.06.21 new 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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