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 十八 回. 와호장룡(臥虎藏룡)....와호장룡.

작성자겨울나그네|작성시간26.06.19|조회수88 목록 댓글 6

 

          < 第 十八 回. 와호장룡(臥虎藏룡)....와호장룡. >




추오상(秋傲霜)이 탄식하며 말했다. "두 어르신의 대답은 이 조카를 너무도 실망스럽게 만든다."

두동둔이 말했다. "현조가 혹시 믿지 못하는가?"

추오상이 말했다. "믿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이 조카가 가득한 희망을 품고 왔는데 두 어르신께서 아버님의 하처를 알지 못하신다 하니 어찌 실망스럽지 않겠는가?"

두동둔이 말했다. "현조는 실망할 필요 없다. 자네 아버님이 인간 세상에 건재해 계시기만 하다면 그분의 하처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으니, 눈앞에 찾을 수 있는 하나의 길이 있다. 시험 삼아 묻건대, 그 염군도는 어디서 이 소식을 전해 들었겠는가?"

추오상이 말했다. "보아하니 그는 무척 근거가 있는 듯하다. 만약 길거리의 뜬소문이었다면 두 어르신과 이 조카가 진작에 풍문으로 들었을 것이다."

두동둔이 말했다. "그렇구나!..."

말투를 약간 멈추고 손을 들어 추오상에게 신호한 뒤, 이내 목소리를 높여 불렀다. "금당아!"

채금당(蔡錦堂)이 문을 열고 들어와 공손히 물었다. "두 어르신, 어떤 분부가 있으십니까?"

두동둔이 말했다. "금당아, 근래에 '백화궁' 궁주 염군도의 소식이 있느냐?"

채금당이 중얼거렸다. "염군도 말씀이십니까!?"

그의 신색을 보니 마치 한 번도 이 사람에 대해 들어본 적이 없는 듯했다.

추오상은 염군도(閻君濤)의 행종을 알고 있었다. 그는 방금 전에도 봉음에게 명해 서신을 전하게 하여 염군도와 해초에 강가에서 만나기로 약속했으나, 지금은 도리어 묻지도 따지지도 않으니 보아하니 그의 마음속에 또 틀림없이 무슨 계책을 부리는 모양이었다.

두동둔(杜桐屯)이 말했다. "금당아, 네가 염군도라는 사람을 모르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바로 그 강호의 관상쟁이 황대선이다."

채금당이 말했다. "그 사람입니까?..."

이내 고개를 저으며 이어 말했다. "금릉성 안에서 그를 본 지 이미 무척 오래되었습니다."

추오상이 옆에서 끼어들며 말했다. "두 어르신께서는 그를 찾아 무엇을 하려 하시는가?"

두동둔이 말했다. "그에게 자네 아버님이 아직 세상에 건재해 계신다는 설이 어디서 나왔는지 물어보려는 것이다!"

추오상이 말했다. "만약 그의 대답이 그저 길거리의 뜬소문에 불과하다면, 그때는 당신과 내가 또 어찌해야 하는가?"

두동둔은 자신도 모르게 흠칫하더니 한참 동안 대답하지 못했다.

추오상이 말했다. "이 조카에게 도리어 한 가지 계책이 있다."

두동둔이 말했다. "이 늙은이에게 한 번 말해 보아라."

추오상이 말했다. "이 조카가 망령되이 한 가지 묻겠으니, 두 어르신께서는 진심으로 이 조카를 도우려 하시는가?"

두동둔이 말했다. "오랜 벗이 건재하다니 기쁜 일이다. 만약 자네 아버님이 타인에게 제압당해 계신다면 이 늙은이가 마땅히 힘을 다해 그를 구할 것이니, 비록 현조가 그 창랑보검을 허락하지 않더라도 이 늙은이는 똑같이 현조를 도와 하루빨리 자네 아버님의 하처를 찾을 것이다. 현조는 마땅히 안심해라."

추오상이 일어나 깊이 읍을 하며 말했다. "이 조카가 먼저 감사 인사를 올린다...."

다시 자리에 돌아와 앉으며 목소리를 낮추어 이어 말했다. "두 어르신께서는 '은호'가 지금 금릉에 와 있는 것을 아시는가?"

두동둔이 말했다. "대략 풍문으로 들었다."

추오상이 말했다. "두 어르신과 '은호'는 바로 옛 사이지간이니, 그녀에게 부탁해 대신 찾아보게 하는 것이 어떠한가?"

두동둔이 말했다. "그녀가 도움을 줄 수 있겠느냐?"

추오상이 말했다. "이 조카가 아는 바로는, 그 염군도는 하늘도 두려워하지 않고 땅도 두려워하지 않으나 천하에 오직 두 사람만을 두려워한다."

두동둔이 말했다. "그 두 사람이 누구인가?"

추오상이 말했다. "그는 오직 단비우와 '은호'만을 두려워하니, 만약 그녀가 가서 캐묻는다면 염군도는 필시 바른대로 말할 것이다."

두동둔이 말했다. "설령 그러할지라도, 그 '은호' 역시 염군도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 반드시 알지는 못할 것이다."

추오상이 말했다. "두 어르신께서는 깊은 거처에 계시며 거의 외출하지 않으시고 채 총관 역시 밖으로 다니는 일이 적으니, 자연히 일시 장중에 염군도의 종적을 살피기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그 '은호'는 객잔에 머물며 수시로 각 파 무림 인물들의 동태를 주의 깊게 살피고 있으니, 염군도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 그녀는 틀림없이 일목요연하게 알고 있을 것이다."

두동둔이 한동안 머뭇거리다가 고개를 돌려 채금당에게 물었다. "금당아! '은호'가 어느 객잔에 묵고 있는지 아느냐?"

채금당이 말했다. "부하가 알고 있습니다."

두동둔이 말했다. "내 명함을 가지고 가서 그녀를 저택으로 청해 이야기를 나누자고 해라."

채금당이 대답하고 물러갔다.

두동둔이 고개를 돌려 추오상에게 말했다. "현조는 먼저 객방으로 가서 잠시 쉬고 있거라. 잠시 후 이 늙은이가 다시 자네에게 고하겠다...."

추오상이 일어나 말을 받았다. "아니다! 이 조카는 이만 작별을 고하겠다."

두동둔이 말했다. 그 '은호'가 도움을 주겠다고 응낙할지 여부를 이 늙은이가 아직 현조에게 알려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추오상이 말했다. "이 조카가 이곳에 머물면 아마 여러모로 불편한 점이 많을 터이니, 이 조카가 깊은 밤에 다시 찾아와 소식을 한 번 알아보겠다."

두동둔이 말했다. "사정이 그러하다면 이 늙은이가 구태여 억지로 붙잡지는 않겠다."

추오상이 다시 한번 깊이 절하고는 비로소 사직하고 나왔다.

원래 이것은 추오상의 한 가지 수작이었다. 눈앞에 '은호'와 해옥환은 이미 향방을 알 수 없게 되었으니, 만약 '은호'를 찾고자 한다면 반드시 두동둔의 손을 빌리지 않을 수 없었다. 추오상의 짐작에 따르면 '은호'와 두동둔은 필시 서로 연락을 주고받고 있을 터였다. 두동둔은 비록 '경천궁'이 이미 '은호'의 손에 떨어졌다는 것을 반드시 알지는 못하겠지만, 그는 줄곧 '은호'와 자신 사이의 그 옛정이 여전하다고 여기고 있었고, '은호' 역시 일시 장중에 두동둔을 기꺼이 저버리지는 못할 터였다. 두 '금도'는 금릉에서 어찌 되었든 거동이 무거운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남성은 모두 지체가 높은 가문들이라 차집이나 주루 등 시끄러운 장소가 드물었다. 두부의 비스듬한 맞은편에 오직 표화점 한 곳이 있었는데, 올 때 추오상이 이미 그곳이 유일하게 몸을 숨길 만한 장소임을 눈여겨보아 두었다.

추오상은 두부를 사직하고 나온 뒤 곧장 오던 길로 달렸고, 모퉁이를 돈 후에 다시 골목길을 통해 꺾어 돌아와 후문으로 그 표화점에 들어갔다.

손님이 후문으로 들어오는 일이 결코 없는 일은 아니었기에, 점주가 이내 마중을 나와 웃는 얼굴로 물었다. "손님! 그림을 표구하려 하십니까?"

추오상이 냉랭한 눈길로 슬쩍 살피니, 이 점주는 예순 살가량 된 노인이었고 그 외에 점포 안에는 한 명의 중년 표구 장인과 두 명의 열네댓 살 된 어린 도제가 있었다.

추오상이 명백히 살핀 뒤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이 표화점(表畵店)은 하루에 은을 얼마나 버는가?"

그 점주가 허리를 굽히며 대답했다. "이 늙은이가 이 표화점을 연 것은 순전히 그림을 좋아하는 탓이라, 이 기회를 빌려 수많은 명가들의 필치를 볼 수 있기 때문이지 이 점포로 돈을 벌어 가솔을 기르기를 바라지는 않습니다."

추오상은 주머니 안에서 은자 한 덩이를 꺼내 점주의 손에 쥐여주며 말했다. "이것은 은 십 량이다."

그 점주는 자신도 모르게 흠칫하더니 다급히 물었다. "손님! 이것은...."




추오상이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어린 도제에게 즉시 점포 문을 닫으라고 해라. 이 은 십 량은 귀호의 손실을 보상하는 셈으로 치겠다."

점주가 놀라며 말했다. "손님께서 이 늙은이에게 문을 닫으라 하십니까?"

추오상이 말했다. "그렇다! 이 사람은 관부의 포쾌인데, 귀호의 이 장소를 빌려 사건을 처리하고자 한다."

육선문(六扇門)의 공인이라는 말을 듣자, 그 점주는 손발이 서툴러지며 다급히 말했다. "이 늙은이가 지금 사람에게 분부하여 문을 닫게 하겠으나, 은자는 감히 받지 못하겠습니다."

추오상이 말했다. "받아 두어라. 문판을 다 올린 뒤에 틈을 하나 남겨두고, 또한 점포 안의 사람들은 누구도 떠나서는 안 된다."

그 점주는 연달아 무수히 알겠다고 대답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이 표화점의 여덟 칸 문판 중 일곱 칸이 닫혔고, 한 칸의 공극이 남았는데 마침 추오상이 두부의 대문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었다.

대략 밥 한 끼 먹을 만한 시간이 지나자, 채금당이 동쪽 끝에서 다급히 두부로 분주히 돌아오는 것이 보였다. 그의 신색을 보니 객잔으로 찾아갔다가 허탕을 치고 온 것임을 알 수 있었으니, '은호' 모녀가 낮에 이미 그곳을 떠났기 때문이었다.

채금당이 두부로 돌아간 후, 단지 눈 깜짝할 사이에 그는 다시 밖으로 걸어 나왔다.

추오상은 마음속으로 은근히 기뻐했다. 필시 두동둔이 채금당에게 밀지를 주어, 그에게 다른 은밀한 장소로 가서 '은호'를 찾아보라고 한 모양이었다.

채금당은 한 번 가더니 오랫동안 돌아오지 않았다.

줄곧 날이 어둑어둑해져 그 깊은 저택들의 대문 앞에 매달린 팔각풍등에 모조리 불이 켜질 때가 되어서야, 채금당이 다급히 돌아오는 모습이 보였다. 그의 등 뒤에는 수놓은 커튼이 나직하게 드리워진 가마 한 채가 따르고 있었다.

채금당이 문을 열라 소리치자, 그 가마는 두부의 대원으로 곧장 나아갔고 두부 문 앞에서 가마에서 내리는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추오상은 십중팔구 가마 안에 앉은 자가 틀림없이 '은호'일 것이라 확신했다.

만약 다른 사람이었다면 절대 가마 안에 단정히 앉은 채 곧바로 두부 안으로 메어 들여가지는 못했을 터였다.

추오상이 그 점주에게 손짓을 하며 말했다. "어르신은 이리 와 보라, 이 사람이 어르신과 상의할 일이 있다."

점주가 다가와 말했다. "나으리, 일이 있으시면 얼마든지 분부하십시오."

추오상이 말했다. "이 사람이 어르신이 입은 이 푸른 천으로 된 겉옷을 잠시 빌려 쓰고자 한다."

점주가 말했다. "그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이내 몸에 입었던 푸른 천 겉옷을 벗었다.

추오상이 말했다. "번거롭겠지만 이 사람에게 챙이 넓은 털모자도 하나 찾아다 달라."

점주는 즉시 다시 가서 햇볕을 가리는 털모자 하나를 가져왔다.

추오상이 푸른 천 겉옷을 입고 털모자를 쓰니, 또 다른 모습으로 변장되었다.

대략 또 반 시진가량을 기다려 이미 유시(酉時) 정각 무렵이 되자, 긴 거리 위로 등불 그림자가 가득히 밝아졌고 그제야 그 가마가 두부에서 메어 나왔다.

추오상이 그 점주에게 포권을 하며 말했다. "방해했다...."

어조를 무겁게 바꾸어 이어 말했다. "오늘의 일은 누구에게도 발설해서는 안 되니, 만약 아주 작은 바람 소리라도 흘러나간다면 이 사람이 너희를 옥에 가두어 죄를 물을 것이다."

점주가 연달아 대답했다. "저희는 감히 그러지 못합니다."

이때 그 가마는 이미 두부를 떠나 약 오십 장쯤 멀어졌다. 추오상은 몸을 날려 그 표화점을 나와, 오십 장 밖에서 가마를 따라 걸으며 한 걸음 한 걸음 바짝 쫓았다.

그 가마는 두 명의 건장한 가마꾼이 메고 가는데 걸음걸이가 비행하듯 빨라 곧장 서곽으로 달렸으니, 낮에 소월매가 가던 것과 같은 경로를 걷고 있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그 가마는 이미 청량산에 올랐다.

추오상은 마음속으로 은근히 기뻐했다. 산에는 벽오동 나무가 많았고 지금은 또 깊은 밤이었으니, 자신의 종적을 은폐하기에 무척 편리했기 때문이었다.

이 생각이 이에 미치자 맹렬히 신형을 끌어올려 신속하게 가마의 우측으로 다가갔고, 벽오동 나무 뒤에 몸을 숨긴 채 그 가마와 나란히 걸어갔다.

한동안 앞으로 가다 청량사를 다급히 지나니 취미정이 이미 눈앞에 들어왔고, 이때 그 가마는 이미 평탄한 길 위를 걷고 있었다.

추오상은 소리 없이 검을 뽑아 손에 쥐고, 기회를 정확히 본 뒤 몸을 날려 나갔다.

야색 속에서 마치 한 가닥 비단과 같은 정광이 번쩍이더니, 벽오동 나무숲 속에서 뚫고 나와 가마 안으로 빠져들었다.

변고가 갑자기 일어나자 그 두 가마꾼은 손발이 풀려 쿵 하는 소리와 함께 가마를 땅에 떨어뜨렸다.

추오상은 음한하고 모진 기색을 얼굴에 띠고 손목을 꺾어 검을 뽑아냈다. 지금쯤 가마 안의 사람은 아마 이미 피바다 속에 쓰러져 있을 터였다.

단검을 거두어들이는 찰나, 한 줄기 맑은 빛이 추오상의 눈에 비쳤다.

추오상은 크게 흠칫하더니 검끝으로 가맛장을 젖히고 안을 들여다보았다. 가마 안에는 뜻밖에도 아무도 없이 텅 비어 있었다.

다시 자세히 보니 아무것도 없는 것은 아니었고, 발을 디디는 곳에 무게가 백 근쯤 나가는 커다란 돌덩이 하나가 들어 있었다.

추오상이 단검을 치켜들며 매섭게 꾸짖었다. "너희가 목숨을 건지려거든 바른대로 말해라, 가마 안의 사람은 어디로 갔는가?"

두 가마꾼이 땅에 무릎을 꿇고 황망히 대답했다. "사... 사... 사람이 가마 안에 앉아 계시지 않았단 말입니까?"

추오상은 이 두 가마꾼이 내막을 모를지 모른다고 짐작하고는, 이내 신색을 완화하여 말했다. "너희 두 사람은 두려워할 필요 없다, 내가 결코 너희를 해치지 않을 터이니 일어나 내 말에 대답해라."

그 두 가마꾼은 벌덜벌벌 떨며 일어나 말했다. "살려주신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추오상이 말했다. "너희가 방금 두부 안으로 메고 들어갔던 사람은 어떤 사람이었는가? 어디서 메고 온 것인가?"

두 가마꾼이 일제히 대답했다. "저희는 두부의 채 총관에게 고용된 자들인데, 강가 나루터에서 관상쟁이 선생 한 분을 메고 두부로 갔습니다."

추오상이 말했다. "그 관상쟁이 선생은 강포진에서 강을 건너온 자인가?"

두 가마꾼이 말했다. "아마 그러할 것입니다."

추오상이 말했다. "그 관상쟁이 선생은 어떤 모습이었는가?"

두 가마꾼이 말했다. "노란 피부에 노란 겉옷을 입은 마흔 몇 살쯤 된 이였습니다."

추오상은 마음속으로 은근히 짐작했다. '설마 그 강호의 관상쟁이가 바로 염군도란 말인가?'

마음속 생각이 돌았으나 입으로는 또 물었다. "너희가 두부를 떠날 때 가마 안에 사람이 없다는 것을 알았는가?"

두 가마꾼이 연달아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이 소인들은 몰랐습니다. 채 총관이 소인들에게 가마를 메고 곧장 청량산에 올라 그 관상쟁이 선생을 취미정 안으로 보내라고 가르쳤습니다. 소인들이 두부에 있을 때는 별원에 쉬고 있었기에, 당시에 그 관상쟁이 선생이 이미 가마 안에 있는 줄로만 알았지 가마 안에 단지 돌덩이 하나가 들어 있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추오상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갑자기 오른발을 들어 그 돌덩이를 걷어차 날려 버리고는 가마 안으로 들어가 앉으며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너희 두 사람은 지금 가마를 여전히 두부로 메고 돌아가되, 절대 기색을 드러내지 마라. 그렇지 않으면 내가 너희 두 놈의 개목숨을 거둘 것이다."

그는 말을 마치고는 드리워진 커튼을 내렸다.




문득 대청 밖에서 한 맑고 고운 목소리가 가마 외벽을 통해 들려왔다.

"추 부궁주, 이런 거동은 그리 현명치 못한 듯싶은데요?!"

추오상은 그 목소리를 듣고 반은 놀라고 반은 기뻐했다. 말을 건넨 이가 바로 소월매임을 단박에 알아채았기 때문이다. 그는 다급히 가맛장을 젖히고 밖으로 걸어 나왔다.

소월매가 그를 향해 천천히 걸어오며 가볍게 웃었다.

"추 부궁주께서 두부에 들어갔던 목적이 도대체 무엇인가요?"

추오상이 말했다.

"은호(銀狐)를 유인해 내기 위함이었다."

소월매가 말했다.

"그렇다면 '은호'가 이미 고루 앞의 그 객잔을 떠났단 말인가요?"

추오상이 말했다.

"그들 모녀는 이미 명(明)에서 암(暗)으로 몸을 숨겼다. 하지만 이 사람의 짐작으로는 '은호'와 두동둔 사이에 필시 어떤 연락망이 있을 것이다."

소월매가 말했다.

"하지만 가마꾼들의 말에 따르면, 그들이 두부로 메고 들어간 사람은 뜻밖에도 염군도라 하더군요."

추오상이 말했다.

"그렇기에...."

소월매가 급히 말을 가로채며 이어갔다.

"추 부궁주께서는 깨달으셔야 합니다. 빈 가마로 당신을 산 위까지 유인한 이 일이 결코 단순하지 않다는 것을요. 최소한, 두동둔은 당신이 두부 주변에서 엿보고 있었다는 사실을 이미 알아차린 것입니다."

추오상이 미간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두동둔이 이 사람의 행종을 알아챘을 리가 없을 텐데."

소월매가 물었다.

"추 부궁주께서는 어느 곳에 몸을 숨기고 감시하셨나요?"

추오상이 말했다.

"두부 비스듬한 맞은편에 있는 한 표화점 안이다."

소월매가 두 눈썹을 치켜세우며 말했다.

"그 점주가 예순 살가량 된 노인이던가요?"

추오상이 경악하며 말했다.

"설마 그 점주가 두동둔과 한패란 말인가?"

소월매가 말했다.

"추 부궁주, 단정을 너무 일찍 내리지는 마시고, 아무래도 서둘러 돌아가 동태를 살펴보는 게 좋겠습니다."

추오상이 말했다.

"낭자도 동행해 주겠는가?"

소월매가 말했다.

"이 월매가 기꺼이 동행(奉陪)하지요."

추오상이 손가락을 튕겨 그 두 가마꾼의 혼혈(昏穴)을 제압한 뒤, 앞장서서 산 아래로 몸을 날렸다.

두 사람이 질주하여 불과 차 한 잔 마실 만한 시간 만에 다시 그 표화점으로 돌아왔다. 점포 문은 여전히 문판 한 칸이 빠져 있었고, 두 사람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점포 내부에는 기시풍등(氣死風燈) 하나가 매달려 있었고 점주, 장인, 도제 등 네 사람이 등불 아래 모여 앉아 저녁 식사를 하고 있었다.

추오상이 털모자를 벗고 푸른 천 겉옷을 벗어 손에 받쳐 든 채 점주 앞으로 다가가 말했다.

"이 사람이 옷과 모자를 돌려주러 특별히 찾아왔다."

점주가 급히 일어나 받으며 웃어 말했다.

"다 떨어진 옷과 모자이니 나으리께서 아무 데나 던져두셔도 그만이었을 텐데, 어찌 번거롭게 다시 걸음을 하셨습니까."

추오상의 오른손이 돌연 번쩍 뒤집히며 점주의 왼쪽 손목을 낚아채려 했다. 그러자 그 점주는 손에 쥔 옷과 모자를 자연스럽게 뒤로 휙 던지며, 극히 흔적도 없이 그 기세를 빌려 추오상의 수작을 피해 내었다. 그리고는 손을 한번 내저으며 말했다.

" 거친 차와 엷은 밥뿐이라, 감히 두 분을 머물게 하여 대접하진 못하겠군요."

추오상은 마음속으로 은근히 경악했다. 상대가 분명 절정의 무공을 지니고 있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겉으로는 신색을 바꾸지 않은 채 태연하게 말했다.

"방금 전 도움을 많이 받았기에, 이 사람이 그대를 주루로 청해 술 한잔 대접하고자 하는데, 혹시 낯을 세워줄 수 있겠는가?"

점주가 웃으며 말했다.

"감히 비용을 쓰게 할 수 있겠습니까...."

말투를 한번 멈추더니 이어 말했다.

"만약 두 분께서 이 누추한 곳을 탓하지 않으신다면 이곳에 자리를 잡으시지요. 이 늙은이에게 도리어 몇 항아리의 오래된 좋은 술이 있으니, 마침 가져다가 손님을 대접하기에 딱 좋겠습니다."

이때는 겨우 술시(戌時) 초입 무렵이었다. 추오상은 소월매가 자시(子時)가 되기 전에는 전신 무공을 회복하기 어렵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에, 마음속으로 은근히 꺼림칙한 구석이 생겼다. 그러나 그가 탐색하는 눈길로 소월매를 바라보았을 때, 상대는 오히려 그에게 극히 안상하면서도 부드럽고 매혹적인 미소를 보내왔다.

추오상은 자신도 모르게 담력이 불끈 솟아올라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이 사람에게 헛된 수작을 부릴 필요 없다. 방금 전 이미 기별을 넣었듯이, 이 사람은 관부의 사건을 처리하는 포쾌다. 존경하는 대인께서 설마 잊으신 건 아니겠지."

점주가 미소를 띠며 말했다.

"설마 이 늙은이가 무슨 죄라도 지었단 말씀이십니까?"

추오상이 말했다.

"그대는 이 사람의 행종을 누설했다."

점주는 여전히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나으리께서 화를 그리 크게 내실 필요는 없습니다. 앉아서 술 몇 잔을 마시며 다시 이야기를 나누는 게 어떻겠습니까?"

추오상이 소매를 뿌리치며 말했다.

"이 사람은 그대와 공적인 일을 논하고 있다."

점주가 갑자기 안색을 굳히더니 두 눈썹을 높이 치켜세우고 냉랭하게 말했다.

"만약 공적인 일을 논하고자 한다면, 나으리께서 먼저 신분 패를 꺼내어 이 늙은이에게 구경이나 시켜 주십시오. 나으리께서 어쩌면 가짜 포쾌일지도 모르는 일 아닙니까."

추오상이 차갑게 콧방귀를 뀌며 돌연 손을 품 안으로 뻗으려 했다.

이때 소월매가 신속하게 몸을 휙 돌려 그의 무모한 행동을 가로막고는, 그 점주를 향해 웃는 얼굴로 말했다.

"이 어르신, 부디 노여워하지 마십시오. 젊은 사람들의 불같은 화기야 늘 있는 법이니, 어르신께서 조금만 혜량해 주십시오."

점주가 소월매를 슬쩍 훑어보며 말했다.

"낭자의 말은 도리어 들을 만하구려. 그래, 두 분께서 이곳에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소월매가 말했다.

"방금 전 이 친구가 귀호의 장소를 잠시 빌려 썼고, 은 십 량도 바친 바 있습니다."

점주가 말했다.

"그렇소."

소월매가 말했다.

"어르신께서 이미 은자를 받으셨다면, 이 친구가 이곳에 잠복해 있다는 소식을 누설해서는 안 되는 법이었습니다."

점주가 말했다.

"낭자의 그 말은 이치가 있소만, 이 늙은이 역시 한 가지 반문하겠소. 낭자는 어찌하여 이 늙은이가 소식을 누설했다고 단정하시는 거요?"

소월매(蕭月梅)가 웃으며 말했다.

"만약 손에 확실한 증거가 있었다면, 이렇게 이 자리에 서서 공손하게 어르신께 가르침을 청하고 있지도 않았겠지요."

점주가 웃으며 말했다.

"낭자가 참으로 영리한 말재주를 가졌구려."

추오상은 소월매와 그 노점주가 한가롭게 말씨름을 하며 시간을 끄는 것을 더는 지켜볼 수 없어, 다시 전면에 나서며 말했다.

"존가(尊駕)께서는 더는 연극을 하실 필요 없다. 어찌 명호라도 밝혀 이 사람으로 하여금 알아보고 물러나게 하지 않는가."

점주가 말했다.

"금릉성 안에서 나 송(宋) 선생을 모르는 사람은 없소."

추오상이 물었다.

"함자는 어찌 되시는가?"

점주가 말했다.

"이 늙은이는 이름을 잃어버렸소)."

추오상이 말했다.

"차라리 이곳에 이름을 숨기고 머물며 달리 도모하는 바가 있다고 말하는 게 어떠한가?"

점주가 냉소하며 말했다.

"나으리의 언사가 너무도 다그치듯 핍박하는구려. 날카로운 기세를 조금 죽이는 것이 도리어 복이 될 것이오."

추오상이 두 눈썹을 찌푸렸으나, 이내 말을 잇지 못했다.

소월매가 살짝 읍을 하며 말했다.

"송 선생! 묻자 하니, 어르신께서는 두부와 어떤 연원이 있으십니까?"

송 선생이 말했다.

"이 늙은이는 현혁함을 두려워하고 빈천함을 편안히 여기니, 감히 금릉의 세도가이신 두 어르신과 교분을 논하지는 못하오."

소월매가 웃으며 말했다.

"겸손하십니다...."

어조를 가라앉히며 이어갔다.

"솔직히 말씀드려서, 이 친구가 귀호에서 한 시진이 넘도록 지켜보았던 것은 바로 길 건너편의 두부와 관련이 있습니다. 본래 신도 모르고 귀신도 모를 정황이라 여겼거늘, 뜻밖에도 이 친구가 이곳에서 대기하고 있다는 소식이 이미 두 어르신께 알려졌으니, 이것은 자못 기이한 일 아니겠습니까?!"

송 선생이 눈에 정망을 뿜으며 추오상을 슬쩍 살피고는 말했다.

"나으리의 대명은 어찌 되시오?"

추오상이 말했다.

"이 사람은 추오상이라 한다."

송 선생(宋先生)이 말했다.

"방금 전 나으리께서 이곳에서 대기하실 때, 필시 보셨을 테지요. 이 늙은이를 포함하여 점포 안의 네 사람 중 누구 하나도 밖으로 나간 적이 없다는 것을 말이오."



추오상이 말했다. “그것은 사실이다.”

송 선생이 말했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귀하의 이번 걸음은 헛수고가 된 셈이다.”

추오상이 말했다. “그러나 내가 이곳에 잠복해 있다는 소식이 이미 누설되었다는 것 또한 사실이다.”

송 선생이 말했다. “설령 귀하가 이곳에 은닉한 목적이 두 영감의 목을 베기 위함이라 해도, 노부 스스로 밀고하는 짓 따위는 하지 않았을 것이다. 노부가 방금 말하지 않았나. 현달함을 두려워하고 빈천함에 안주하며, 권귀에게 아부하기를 좋아하지 않는 것이 노부 평생의 뜻이다.”

이 몇 마디 말은 미치도록 오만하다고 할 수 있었으며, 뼛속 깊이 그가 두동툰 같은 인물을 전혀 안중에 두지 않고 있음을 분명히 암시하고 있었다.

소월매는 문득 자신과 추오상이 이 가게 주인 한 사람에게만 주의를 기울여서는 안 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 표구점 안에 중년의 표구사 한 명과 어린 도제 두 명이 더 있지 않은가?

여기에 생각이 미치자, 자신도 모르게 다른 세 사람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그 중년 표구사와 두 어린 도제는 가게 주인과 손님 사이에 논쟁이 벌어진 것을 보고는, 일제히 수저를 내려놓은 채 멍하니 넋을 잃고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소월매가 밥상 옆으로 다가가 그 중년 표구사에게 물었다. “말씀 좀 여쭙겠다. 오후에 가게 문을 닫은 후, 혹시 수상한 행색의 누군가가 가게 안을 엿보는 것을 알아채지 못했나?”

표구사의 눈빛이 번뜩이더니,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낭자의 그 말이 마침 이 사람을 일깨워주었다. 우선 이 사람이 가서 가게 문부터 닫고 와서 다시 이야기하겠다.”

말을 마치고는 밥상에서 일어나 문 쪽으로 걸어갔다.

송 선생의 눈에서 갑자기 정광이 일더니, 나직하게 호통쳤다. “돌아오라!”

그 중년 표구사는 명령을 따라 발걸음을 멈추고 돌아서기는커녕, 도리어 두 발로 강하게 바닥을 차며 곧장 문을 향해 쏘아져 나갔다.

그의 신법을 보니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공부가 아니었으며, 단 한 걸음 만에 이미 문가에 도달했다.

그가 빨랐지만 송 선생은 그보다 더 빨랐다. 입으로 차가운 신음 소리를 내뱉는가 싶더니, 사람은 이미 그림자처럼 그 뒤를 쫓아 문가에 이르렀고, 팔을 가볍게 뻗어 팍 하는 소리와 함께 그 중년 표구사의 뒷덜미를 움켜쥐었다.

추오상과 소월매는 서로를 바라보며 각각 놀란 기색을 띠었다. 무림을 둘러보아도 신법의 신속함과 출수의 기이함에 있어서 그보다 뛰어난 자는 없을 것 같았다.

송 선생은 한 손으로 움켜잡는 데 성공하자, 다른 한 손으로도 연이어 그 중년 표구사의 맥문을 제압하며 동시에 낮은 목소리로 외쳤다. “제자들아, 어서 문짝을 닫아라.”

그 두 어린 도제는 둔해 보였으나, 한 번 움직이기 시작하자 신법이 날렵하여 아직 달지 않고 남겨두었던 문짝 하나를 순식간에 닫아걸었다.

송 선생은 이미 그 중년 표구사를 원래 자리로 밀쳐 보낸 후,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알고 보니 네놈이 두 부(府)에서 보낸 세작이었구나.”

중년 표구사는 얼굴 가득 공포가 서렸으면서도 입을 열어 살려달라고 빌지 않았다.

소월매가 어둠 속에서 추오상을 넌지시 잡아당기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추 부궁주, 대처할 때 절대로 경거망동해서는 안 된다. 이 송 선생이라는 분은 무림에서 보기 드문 고수이니, 죄를 지어서는 안 된다.”

추오상이 나지막이 물었다. “소 낭자는 그의 내력을 알고 있나?”

소월매가 말했다. “모른다. 하지만 그의 출수를 보면 한눈에 알 수 있다. 게다가 내 추측으로는, 그가 이곳의 이 표구점에 있는 것도 어쩌면 두금도를 겨냥한 것일지도 모른다.”

두 사람이 여기까지 말했을 때, 갑자기 나직한 비명 소리가 들려 눈을 들어 바라보니, 송 선생이 다섯 손가락을 강하게 움켜쥐자 제압당한 중년 표구사의 오른손이 순식간에 검붉은 자줏빛으로 변해 있었다.

송 선생이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어서 사실대로 말하라. 그렇지 않으면 노부가 먼저 네 오른팔을 부숴버리겠다.”

중년 표구사는 제법 뼈대가 있는지, 골수까지 사무치는 고통 속에서도 입을 열어 말하지 않았다.

추오상이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 포권을 해 보이며 말했다. “송 선생, 노여움을 잠시 거두시고, 이 사람이 이 표구사에게 몇 마디 물어보아도 되겠나?”

송 선생은 얼굴 가득 위엄과 분노를 띠고, 눈에서 번뜩이는 빛을 발하며 추오상을 휙 훑어보더니 말했다. “귀하는 옆으로 물러서라. 노부가 알아서 귀하에게 만족스러운 답을 주겠다.”

그러고는 눈으로 그 중년 표구사를 주시하며 이어 말했다. “이미 일이 실패했으니 강한 체하지 말라. 그렇지 않으면 노부가 네놈을 죽지도 살지도 못하게 만들 것이다.”

그 중년 표구사는 아마도 고통을 견디기 어려웠는지, 울부짖었다. “ 먼저 내 손목을 놓아달라. 그렇지 않으면 죽어도 말하지 않겠다.”

송 선생은 손을 놔주며 차갑게 콧방귀를 꼈다. “너를 놓아준들, 너 역시 결코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노부가 네놈에게 묻겠다. 두금도가 너를 보내 노부의 가게에 잠입시킨 것이냐?”

중년 표구사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다.”

송 선생이 말했다. “그렇다면 곽위룡 역시 네 진짜 이름이 아니겠구나?”

중년 표구사가 말했다. “곽위룡이 바로 이 사람의 이름이다.”

송 선생이 말했다. “노부는 네 이름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굳이 묻고 싶지 않다. 다만 두금도가 무슨 이유로 너를 노부의 가게에 잠입시켰는지 알고 싶을 뿐이다.”

곽위룡(郭危龍)이 말했다. “이 남대가 거리에 있는 상점들 중에는 집집마다 두 영감의 사람이 있다. 비단 너의 이 표구점에만 이 사람을 보낸 것이 아니다. 다만, 이 사람의 눈이 삐어 너 같은 무림 고수를 알아보지 못했을 뿐이다.”

송 선생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노부는 남이 아첨하는 말을 듣기 좋아하지 않는다....”

손을 들어 추오상을 가리키며 이어 말했다. “너는 저 자를 아느냐?”

곽위룡이 말했다. “경천궁 부궁주 추오상, 두 영감의 생사지 원수인데 이 사람이 어찌 모르겠나?”

송 선생이 시선을 추오상에게 슬쩍 던졌다가, 다시 곽위룡에게 물었다. “그렇다면 방금 이 추 부궁주가 가게 안에서 기다리고 있을 때, 네놈이 두금도에게 소식을 전한 것이냐?”

곽위룡이 말했다. “그렇다.”

송 선생이 말했다. “그렇다면 노부가 사람을 잘못 보았구나. 네놈은 줄곧 가게 안을 서성거렸는데, 노부는 네놈이 어떻게 소식을 밖으로 전달했는지 모르겠구나.”

소월매가 말을 끼어들었다. “송 선생! 그는 아마도 전음술로 몰래 두....”

송 선생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을 받았다. “노부가 큰소리치는 것은 아니지만, 내 눈에 들어온 사람이라면 설령 입술을 움직이지 않고 몰래 전음술로 타인과 대화를 나눈다 해도 결코 노부를 속일 수는 없다.”

곽위룡이 말했다. “너는 참으로 고명하구나!”

송 선생은 더 이상 묻지 않고, 날카로운 눈빛으로 사방을 훑어보았는데, 마치 무언가를 찾는 듯했다.

추오상과 소월매는 자연히 눈도 깜빡이지 않고 이 정정하신 노인을 주시했고, 나이가 어린 그 두 도제는 문짝을 닫은 후로 줄곧 문가에 서 있었다. 지금 두 사람 역시 각자 자신들의 가게 주인을 바라보고 있었다.

송 선생은 주위를 한 바퀴 둘러보더니, 갑자기 차가운 웃음소리를 내며 번쩍 몸을 일으켰다.

그가 바닥에 착지했을 때, 그의 손에는 새장 하나가 들려 있었다.




그 새장은 원래 들보에 박힌 철고리에 매달려 있었고, 새장 밖은 검은 천으로 가려져 있었다.

송 선생이 말했다. “곽위룡! 이것이 네가 기르는 화미(畵眉)냐?”

곽위룡(郭危龍)은 놀란 기색을 띠며 우물쭈물 말을 잇지 못했다.

송 선생이 손을 들어 검은 천을 들추자, 새장 안에는 과연 화미 한 마리가 있었다.

그가 냉소하며 말했다. “하마터면 노부를 속일 뻔했구나. 네놈이 조련하느라 꽤나 공을 들인 모양인데, 이 화미가 너를 대신해 소식을 전할 수 있다니.”

추오상은 문득 오후에 자신이 가게에서 기다리고 있을 때, 곽위룡이 과연 새장을 열고 새를 날려 보냈던 일이 생각났다. 원인은 바로 그것이었다.

곽위룡이 말했다. “송 선생! 이 사람은 두 영감의 돈을 받으니 자연히 그를 위해 일을 해야 한다. 송 선생이 만약 이 일로 노여워한다면 얼마든지 두 영감에게 가서 따지라.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다.”

송 선생이 말했다. “본래 너와는 상관없는 일이다....”

고개를 돌려 추오상에게 물었다. “귀하의 대계는 아무래도 소식이 누설되어 파탄이 난 모양이다?”

추오상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과연 파탄이 났고, 이제는 만회할 길이 없다. 사태가 명백해졌으니 이만 물러가겠다.”

송 선생이 손을 치켜들며 말했다. “잠시 기다려라.”

추오상이 말했다. “무슨 가르침이 있나?”

송 선생이 말했다. “노부가 귀하에게 은 열 냥을 받은 적이 있다.”

추오상이 웃으며 말했다. “설마 지금 내게 돌려주겠다는 것인가?”

송 선생의 안색이 침울해지며 말했다. “노부가 이 나이를 먹고서 설마 그런 유치한 생각을 하겠나. 오후에 귀하가 모습을 드러냈을 때 노부는 귀하의 의도를 알았다. 이른바 일이 자신과 상관없으면 무관심하고, 관심을 두면 도리어 미혹되는 법이라 노부가 들추어내지 않았다. 지금은 노부가 살피지 못해 다른 사람에게 귀하의 비밀을 누설하게 하여 대사를 그르쳤으니, 노부가 마땅히 책임을 져야 한다.”

추오상이 말했다. “어르신의 말씀이 지나치다.”

송 선생이 말했다. “귀하는 노부가 어떻게 배상하기를 바라나?”

추오상이 말했다. “방금 전 말로 범한 결례만으로도 내 마음이 편치 않은데, 어찌 감히 다른 것을 말하겠나. 이만 물러가겠다.”

이것이 바로 추오상의 깊은 심계였다. 물러섬으로써 나아가고 한 걸음씩 진지를 구축하면서도, 겉으로는 조금도 기색을 드러내지 않았다.

소월매가 적절한 때에 말을 받았다. “송 어르신의 뜻은 어떠한가?”

송 선생이 추오상을 주시하며 말했다. “그것은 이 추 부궁주의 원래 대계가 무엇이었는지에 달렸다.”

추오상은 미간을 찌푸리며 한참을 생각하더니, 이윽고 천천히 말했다. “아무래도 송 어르신 역시 무림의 분이시겠다?”

송 선생이 말했다. “묻지 않아도 알 것이다.”

추오상이 말했다. “어르신이 이곳에 가게를 열어 호구지책으로 삼으려는 것이 아니며, 명가의 필적을 감상하기 편리하다는 핑계 역시 자연히 변명일 터인데, 그렇다면 목적이 도대체 어디에 있나?”

송 선생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더 이상 근본을 캐묻지 말라.”

추오상이 포권을 해 보이며 말했다. “실언을 용서하라....”

길게 한숨을 쉬고는 이어서 물었다. “송 어르신이 나를 돕고 싶으신 것인가?”

송 선생이 말했다. “노부는 귀하와 친척도 아니고 아무런 고리도 없으니 도운다는 말은 어울리지 않는다. 화근이 뿌리에서 시작되었으니 노부가 이치상 보상해야 한다.”

추오상이 말했다. “내가 사람을 한 명 찾고 싶다.”

송 선생이 말했다. “무림의 사람인가?”

추오상이 말했다. “자연히 그렇다. 그녀는 무림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는 ‘은호’다.”

송 선생이 흰 눈썹을 치켜뜨며 말했다. “귀하가 이곳에서 기다린 것이 바로 그녀를 기다리기 위함이었나?”

추오상이 말했다. “그렇다.”

송 선생이 말했다. “그렇다면 노부에게는 이미 책임이 없다. 설령 성이 곽 씨인 자가 소식을 누설하지 않았다 해도 귀하는 똑같이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은호’는 이미 오늘 미시(未時) 전에 강을 건너 북쪽으로 가버렸기 때문이다.”

추오상이 멍해지며 말했다. “그녀가 금릉을 떠났단 말인가?”

송 선생이 말했다. “노부가 비록 문밖을 나가지는 않으나 천하의 일은 알고 있다.”

추오상이 고개를 돌려 소월매에게 시선을 던진 후 포권을 해 보이며 말했다. “송 어르신! 우리는 이만 작별하겠다.”

송 선생이 말했다. “노부가 작별의 말 한마디를 건네겠다.”

추오상이 매우 공손하게 대답했다. “귀를 씻고 공경히 듣겠다.”

송 선생이 말했다. “귀하가 예기를 조금 거둔다면 반드시 후복이 있을 것이나, 반대로 하면 후환이 있을 것이다.”

추오상이 말했다. “마음속에 깊이 새겨두겠다.”

사실 그의 마음속으로는 전혀 동조하지 않았다. 비록 소월매가 상대가 세상에 드문 기인일 가능성이 크다고 넌지시 일러주었음에도, 오만한 성품 탓에 그는 이 무림의 어르신을 대단치 않게 여겼다.

송 선생이 허리를 굽히며 손을 내저었다. “괴이하게 여기지 않는다면, 두 분은 후문으로 가라.”

추오상이 고개를 끄덕인 후, 소월매와 함께 후문을 통해 이 표구점을 걸어 나왔다.

두 사람이 나란히 걸어갈 때, 소월매가 나지막이 물었다. “추 부궁주는 어디로 가시려나?”

추오상이 말했다. “나는 따로 약속이 있다.”

소월매가 말했다. “그렇다면 월매가 동행하기에 불편하겠다.”

추오상이 말했다. “낭자는 중양절의 약속을 잊지 말라.”

소월매가 말했다. “월매는 반드시 약속을 지키겠다.” 가볍게 절을 올리고는 몸을 돌려 떠나갔다.

추오상은 무한한 서글픔을 느끼며 한참 동안 응시하다가, 그녀의 흔적이 사라진 후에야 고루를 향해 걸어갔다.

추오상은 은 한 냥으로 쾌정(快艇) 한 척을 빌려 강을 건넜다. 부두에 배를 대지는 않았다. 큰 강 양안의 사공들은 열에 여덟구는 김전표의 수하였다. 추오상이 이곳에서 배를 타고 강을 건넌 적이 많았고 사공들도 그를 알아보는 데다, 암중에서 주성한이 손을 써두었기에 자연히 모두 기꺼이 편의를 보아주었다.

추오상이 갈대숲 사이로 배를 대고 상륙한 후, 강변에 한동안 서서 하늘가의 희미한 별빛을 바라보며 시간을 헤아려 보니 이미 해초(亥初) 무렵이었다. 그제야 부두를 향해 걸어갔다.

멀리서부터 추오상은 봉음이 바람을 맞으며 서서 넓은 강물을 응시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분명히 고개를 길게 빼고 추오상이 오기를 기다리는 모양새였으나, 염군도의 그림자는 보이지 않았다.



추오상이 암중에서 한동안 관찰한 후에야 신형을 한 번 번뜩여 봉음의 곁으로 다가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봉음! 그 염 어르신은 만나지 못했나?”

봉음이 깜짝 놀라 고개를 돌렸다가, 추오상인 것을 보고는 고운 뺨에 기쁜 기색을 띠며 말했다. “추 부궁주이시구나....”

말을 하며 몸을 굽혀 절을 올리려 했다.

추오상이 손을 치켜들며 말했다. “절은 그만두라! 그 염 어르신을 만나기는 했나?”

봉음이 말했다. “만났다. 염 어르신께서 해초에는 틀림없이 약속 장소로 오겠다고 하셨다.”

추오상이 천색을 살펴보고는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천색이 벌써 해정(亥正)이 다 되어 가는데 아직 안 오다니.”

봉음이 말했다. “그러게 말이다! 사람을 기다리는 맛은 정말 참기 힘들다....”

목소리를 낮추며 이어 말했다. “부궁주께서 오시기 전에 저기 저 낯가죽 두꺼운 자들이 이 비자에게 실쩍쩍근덕대며 입에 거친 말을 담았다. 부궁주께서 오시기를 기다리는 중이 아니었다면, 이 비자가 진즉에 저 자들을 강바닥에 처넣었을 것이다.”

추오상이 고개를 돌려 바라보니, 과연 장한 서넛이 모여 수군거리고 있었다. 생김새를 보아하니 십중팔구 동네 건달들이었다. 혼자 있는 처자를 만났으니 자연히 쉽게 보내주지 않았을 터였다. 그저 실쩍쩍근덕대며 거친 말을 담은 것만으로도 이미 얌전하게 군 셈이었다.

그리하여 추오상은 그 건달 무리를 슬쩍 한번 훑어본 후 제대로 눈길도 주지 않은 채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상대하지 말라!”

그런데 상대방 쪽에서 오히려 그를 상대하러 나섰다. 체구가 다부진 장한 한 명이 헛기침을 하더니, 유유자적하게 추오상을 향해 걸어왔다.

봉음(鳳吟)이 말했다. “한 놈이 이쪽으로 오니, 이 비자가 버릇을 고쳐놓겠다.”

그녀는 강 한가운데를 바라보며 발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그 장한이 가까이 다가오자, 이윽고 고운 손바닥을 번쩍 치켜들었는데....

갑자기 그 장한이 낮은 목소리로 묻는 소리가 들렸다. “이분이 경천궁의 추 부궁주이신가?”

이 한마디에 봉음의 치켜든 손바닥이 허공에 멈추었을 뿐만 아니라, 추오상 역시 자신도 모르게 신형을 홱 돌려 눈에서 번뜩이는 빛을 상대에게 던지며 가라앉은 목소리로 물었다. “귀하는 누구인가?”

그 장한이 포권을 하며 예의를 표했다. “이 사람은 염 궁주님의 명을 받고 이곳에서 추 부궁주님을 공경히 기다리고 있었다.”

추오상이 눈을 들어 살펴보니, 얼핏 보기에는 그 장한이 건달 같았으나 자세히 보니 기세가 예사롭지 않아 아무래도 가짜는 아닌 듯싶었다.

여기에 생각이 미치자 자신도 모르게 물었다. “귀하의 함자를 여쭙겠다.”

장한이 말했다. “이 사람은 ‘백화궁’ 금릉 분궁의 궁주 나천리라 한다. 추 부궁주님을 금릉 분궁으로 공경히 모시고자 한다.”

추오상이 말했다. “나 분궁주이셨구나....”

어조를 한 차례 가다듬으며 이어 말했다. “귀궁의 염 궁주로부터 이곳에 분궁이 있다는 말은 아직 들은 적이 없다.”

나천리가 말했다. “분궁이 바로 어제 성립되었다. 이 사람은 원래 본궁의 호법이었으나, 조생(調升)된 지 채 하루도 되지 않았다.”

추오상이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내가 귀하의 새로운 직책을 축하하겠다. 다만 염 궁주께서 어찌하여 직접 이곳으로 약속을 지키러 오지 않으셨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데, 나 분궁주께서 그 사유를 말씀해주실 수 있나?”

나천리(羅千里)가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그것이....”

헤헤 웃으며 이어 말했다. “이 사람도 잘 모르겠다. 염 궁주님을 만나보시면 부궁주께서도 알게 되실 것이다.”

추오상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귀하가 관장하는 금릉 분궁은 어디에 설치되어 있나?”

나천리가 말했다. “이름 그대로 자연히 금릉에 설치되어 있다.”

추오상이 눈썹을 치켜뜨며 말했다. “그렇다면 또 강을 건너야 한다는 말이 아닌가?”

나천리가 말했다. “이 사람이 이미 쾌정(快艇)을 준비해 두었으니, 휘파람을 한 번 불면 곧장 강가로 올 것이다.”

말을 마치고는 입술을 모아 소리를 내려 했다.

추오상이 손을 치켜들며 말했다. “잠시 기다려라! 저기 저 자들은 누구인가?”

나천리가 말했다. “모두 우리 분궁의 부하들이다.”

추오상이 말했다. “내가 봉음 낭자에게 듣기로, 방금 전 그대들이 그녀에게 경박하게 굴며 희롱했다고 하던데?”

나천리가 말했다. “그것은 그저 남의 이목을 속이기 위함이었을 뿐이다. 사실 이 사람은 일찍이 이 낭자가 부궁주님의 사자임을 알고 있었다. 이따가 이 사람이 반드시 이 낭자에게 큰절을 올리며 사죄하겠다.”

봉음이 말했다. “그럴 것까지는 없다....”

상대방이 염군도의 사자라고 하니 그녀 역시 더 이상 탓하지 않으려 했으나, 문득 눈길을 주었을 때 추오상의 얼굴에 차가운 기색이 감도는 것을 발견하고는 저도 모르게 말을 멈추었다.

추오상이 말했다. “그것은 사소한 일이니, 나 분궁주께서 마음에 둘 필요는 없다....”

갑자기 목소리를 낮추며 이어 말했다. “배를 타고 강을 건너기 전에, 내가 귀하에게 물건을 하나 빌리고자 한다.”

나천리가 멍해지며 말했다. “부궁주님, 말씀하시라.”

추오상이 말했다. “내가 귀하가 무림에 명성을 떨친 철산판(?算?)을 빌려 쓰고 싶다. 그 물건이 귀하의 손에 있으면 넋을 쫓고 목숨을 앗아가는 무기이겠으나, 내가 빌리려는 것은 그저 남이 내게 빚진 것과 내가 남에게 빚진 장부를 셈해보기 위함이다.”

나천리(羅千里)가 다시 한번 멍해지더니, 이내 헤헤 웃으며 말했다. “부궁주님은 참으로 농담도 잘하신다.”

추오상이 말했다. “농담이 아니다. 내가 정말로 빌려 쓰고자 함이다. 나와 염 궁주와의 교분을 생각해서라도 귀하가 거절하지는 않을 터이다.”

나천리가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 “실상 감출 것도 없이, 큰 싸움을 마주하지 않으면 철산판은 결코 가벼이 쓰지 않는 법이라 몸에 지니고 오지 않았다.”

추오상이 갑자기 손을 휙 저으며 말했다. “봉음! 저기 저 좋은 친구들을 내가 정성껏 대접하고 싶구나. 네가 먼저 저쪽으로 가서 저 사람들을 붙잡아두라. 나는 먼저 이 나 분궁주를 대접해야겠다.”

봉음이 어찌나 영리하고 영악한지 고개를 끄덕이며 알겠다고 답하더니, 옷자락을 휘날리며 몸을 공중으로 훌쩍 날렸다. 이 전까지 추오상은 그녀의 무공 기본기가 어떠한지 알지 못했으나, 지금 몸을 날리는 신법과 소리 없이 내려앉는 영기로움을 보니 그녀 혼자서 저 장한 몇 명을 상대하기에는 차고도 넘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 장한들은 원래 쪼그리고 앉아 있거나 앉아 있었으나, 지금은 모두 자리에서 일어났다. 한편으로는 봉음을 향해 경계 태세를 취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눈빛으로 나천리의 명령을 살폈다.

나천리는 설마 이런 변고가 생길 줄 몰랐다는 듯 대경실색하며 말했다. “추 부궁주! 이것은....”

추오상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을 받았다. “철산판 나천리는 강호에서 작지 않은 명성이 있을 뿐만 아니라, 염 궁주 역시 득력한 부하로 여긴다.”

나천리가 말했다. “과찬의 말씀이시다!”

추오상이 말했다. “염, 나 두 사람이 한 사람은 지키고 한 사람은 나아가는 격인데, 이번에 쌍쌍이 금릉에 왕림했으니 참으로 뜻밖이다.”

나천리가 말했다. “현재 금릉에 구름이 일고 바람이 불어 상황이 특수한 까닭에, 우리 궁주님께서 전서구로 명령을 내려 이 사람을 불러 수고를 나누게 하신 것이다.”

추오상이 말했다. “상황이 긴박하다면서, 귀하는 어찌하여 그 무게가 서른여섯 근이나 나가는 철산판을 몸에 지니고 다니지 않는단 말인가?”

이 질문이 마침내 나천리를 말문이 막히게 만들었다. 그는 한참 동안 넋을 잃고 서 있더니, 이윽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과연 부궁주께서 이 사람의 말을 믿지 않으시는구나.”

추오상이 말했다. “귀하의 사기 수법이 너무 형편없어, 세 살 먹은 아이라도 알아챌 수 있겠다.”

나천리의 안색이 어두워지며 말했다. “그게 무슨 뜻인가?”




추오상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귀하가 아직도 교묘한 변명을 늘어놓으려 하다니. 백화궁은 여제자를 거두어 강호에 문파를 연 선례가 있거늘, 귀하가 나들이를 하면서 여제자를 한 명도 데리고 오지 않았으니 이것이 바로 커다란 파탄이다.”

나천리가 헤헤 웃으며 말했다. “과연 그렇구나....”

추오상이 엄하게 호통쳤다. “닥치라! 내가 다시 한번 귀하의 함자를 묻겠다. 사절검(四??)이 아직 칼집에서 나오지 않았을 때 귀하가 진실을 말할 기회는 남아 있다. 그렇지 않으면 이곳이 바로 귀하가 뼈를 묻을 자리가 될 것이다.”

나천리가 휙 두 미간을 치켜뜨며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추 부궁주는 이름 그대로 참으로 오만무례하기 짝이 없구나. 믿지 못하겠다면, 이 사람은 그저 강을 건너 염 궁주님께 복명할 수밖에 없다.”

입술을 모아 날카로운 휘파람 소리를 내니, 휘파람 소리 속에 강 한가운데 모래톱의 갈대숲 사이에서 쾌정(快艇) 한 척이 저어 나왔다. 시위를 떠난 화살처럼 빠른 속도로 부두를 향해 달려왔다.

추오상이 품속으로 급히 팔을 뻗치니, 슝 하는 소리와 함께 맑은 빛이 번뜩였다. 마치 어두운 밤하늘에 빛나는 번개 같아 검기가 사람을 핍박했다. 동시에 그가 나직하게 호통쳤다. “함부로 한 걸음이라도 움직이면 그 자리에서 죽여 용서하지 않겠다.”

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강 한가운데 있던 쾌정(快艇)이 이미 부두에 가까워졌고, 갑자기 슝슝 하는 소리가 연이어 들렸다. 강한 활과 쇠뇌에서 발사된 화살 무리가 소나기처럼 머리와 얼굴을 뒤덮으며 추오상을 향해 습격해 왔다.

추오상은 손에 쥔 단검으로 무형의 검막을 춤추듯 펼치며, 동시에 큰 소리로 외쳤다. “봉음! 어서 이쪽으로 오라.”

봉음은 그의 명령을 기다릴 것도 없이 일찌감치 몸을 급히 굴려 추오상의 곁으로 다가왔다.

추오상이 봉음을 보살피느라 정신이 분산된 짧은 순간을 틈타, 스스로 철산판 나천리라 칭했던 장한이 빈틈을 포착하여 몸을 날려 도약하더니, 강가에서 아직 열 장이나 떨어진 쾌정(快艇) 위로 착지했다.

그가 펼친 이 경공 한 가지만 보아도 그의 무게를 가늠할 수 있었으니, 결코 이름 없는 평범한 부류가 아니었다.

그는 쾌정(快艇) 위에 착지하자마자 팔을 치켜들며 외쳤다. “형제들! 철수하라!”

그 쾌정(快艇)이 이미 강가에서 대여섯 장 떨어진 곳까지 돌진해 오자, 다른 장한들 역시 신법이 약하지 않아 차례로 몸을 날려 도약하더니 그 쾌정(快艇) 위로 착지했다.

배를 모는 사공 역시 자신의 절기를 선보였다. 그 쾌정(快艇)은 그의 조종에 따라 마치 영리한 명마처럼 배 앞머리를 하늘로 치켜들며 급히 회전하더니, 다시 강 한가운데를 향해 달렸다.

이 모든 일이 그저 눈 깜짝할 사이에 벌어졌다. 추오상의 마음속은 분노로 가득 찼으나 그저 헛되이 탄식할 뿐이었다.

뜻밖에도 그 쾌정(快艇)이 방향을 틀 때, 장한 중 한 명이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동시에 땅에 엎드려 있던 봉음 역시 몸을 튕기며 일어났는데, 추오상이 고개를 돌려 바라보니 그녀의 손에 새끼손가락 굵기만 한 붉은 밧줄이 들려 있었고, 손목을 돌리며 급히 거두어들이고 있었다.

알고 보니 이 어린 비자에게 밧줄을 던져 사람을 묶는 절기가 있어, 도망치던 장한 무리 중 한 명을 다시 붙잡아 온 것이었다.

추오상은 밧줄에 묶인 장한이 땅에 떨어져 반사(半死) 상태가 될까 염려하여, 그가 허공에서 바닥으로 추락할 때 손을 뻗어 그 장한을 받아내고는 이내 장한의 마혈(麻穴)을 제압했다.

봉음이 말했다. “정말 가증스럽다! 이 자들이 감히 추 부궁주님 앞에서 잔꾀를 부리다니. 이놈에게 그들이 어디서 온 무리인지 물어보자.”

추오상이 갑자기 두 손을 툭 놓으며 낙담한 신색으로 말했다. “봉음! 네가 더 이상 심력을 허비할 필요가 없다!”

봉음이 멍해지며 말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신가?!”

추오상이 말했다. “이 자는 이미 죽었다.”

봉음이 말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살아 있지 않았나?”

추오상이 말했다. “네가 밧줄로 그를 묶어 올린 바로 그 순간, 그의 동료들이 독이 묻은 쇠뇌 화살로 그를 죽였다. 참으로 지독하구나.”

봉음이 중얼거렸다. “그 자들은 겉보기에 비루해 보였는데, 하나같이 신법이 대단할 줄은 미처 몰랐다.”

추오상이 말했다. “봉음! 네가 도리어 정확하게 보았구나.”

봉음이 말했다. “부궁주님의 과찬이시다....”

목소리를 낮추며 이어 말했다. “방금 전 부궁주께서 ‘백화궁’을 언급하시는 것을 들었다?”

추오상이 말했다. “네가 만난 그 염 어르신이 바로 ‘백화궁’의 궁주 염군도다.”

봉음이 놀라며 말했다. “우리 궁과 ‘백화궁’은 세사불립(誓不?立)의 관계인데, 그 염군도가 어찌하여 부궁주님과 약조를 맺었단 말인가?”

추오상의 안색이 차갑게 굳어지며 말했다. “봉음! 부궁주의 일에 너무 참견하지 말라.”

봉음이 황급히 고개를 숙여 가슴에 묻으며 굳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 비자가 죽을죄를 지었다.”

추오상이 한동안 침吟하더니 말했다. “봉음! 네가 오후에 틀림없이 마을의 그 객잔에 갔었나?”

봉음이 말했다. “이 비자가 어찌 감히 부궁주님을 기만하겠나?”

추오상이 말했다. “그리고 틀림없이 그 염 어르신을 만났나?”

봉음이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틀림없이 만났다. 그분은 해초에 정각 약속 장소로 가겠다고 확답까지 하셨다.”

추오상이 말했다. “그 후에 너는 어디로 갔나?”

봉음이 말했다. “마음대로 돌아다니다가, 유초(酉初)에 마을에서 저녁을 먹고 이곳으로 왔다.”

추오상이 한동안 침吟하더니 말했다. “봉음! 너는 용희 심 낭자의 수하 비자이고, 나는 경천궁의 부궁주다. 내가 너를 곁으로 불러 보내어 일을 시키니, 너는 자연히 내 명령을 따라야 한다.”

봉음이 말했다. “이 비자도 잘 알고 있다.”

추오상이 어조를 완화하며 말했다. “만약 주복(主奴)의 구분을 버린다면, 너는 기꺼이 내 부림을 받겠나?”

봉음이 의아해하며 말했다. “부궁주께서 어찌 그런 질문을 하시나?”

추오상이 말했다. “묻지 말고, 그저 내 질문에 대답하라.”

봉음이 말했다. “자연히 기쁜 마음으로 부림을 받겠다.”

추오상이 말했다. “이 말이 과연 폐부에서 나온 말이냐?”

봉음이 말했다. “한 마디 한 마디가 모두 진실이다! 이 비자는 노복의 신분인데, 추 부궁주님 같은 무림의 준걸을 모실 수 있게 되었으니 이 비자의 복이다!”

추오상이 손을 들어 그녀의 고운 머릿결을 어루만지며 말했다. “좋다! 네가 만약 나를 충성스럽게 모신다면 반드시 두터이 대접할 것이나, 만약 딴마음을 품고 반역할 뜻을 생한다면 사절검이 무정함을 원망하지 말라.”

슝! 하는 소리와 함께 단검을 칼집에 도로 넣었다.

봉음이 전전긍긍하며 대답했다. “이 비자는 감히 그러지 못한다.”

추오상이 말했다.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기는 어려운 법이다. 이미 나를 따르기로 결심했으니, 설령 심 낭자가 너에게 지시를 내린다 해도 듣지 말아야 한다.”

봉음이 말했다. “이 비자도 잘 알고 있다!”

그녀는 대답을 하면서도 추오상을 가만히 바라보았는데, 문득 그녀의 고운 뺨이 붉어지며 고개도 아래로 툭 떨어졌다. 아무래도 이 어린 계집아이가 그쪽으로 생각이 미친 모양이었다. 어느 처자인들 봄을 품지 않겠나. 봉음은 바야흐로 두구년화(豆?年?)의 나이였으니, 남몰래 마음을 정하고 이후로 추오상에게 충절을 다해 두 마음을 품지 않기로 다짐했다.



추오상이 말했다. “봉음! 너는 지금 바로 마을의 ‘순풍객잔(順風客棧)으로 가서 방을 잡고 우선 쉬라. 나는 아직 따로 처리할 일이 있으니, 늦어도 내일 아침에는 너를 찾아가겠다.”

봉음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이내 다시 물었다. “만약 가다가 또 염군도를 만나면 어찌하나?”

추오상이 말을 받았다. “네가 그 ‘순풍객잔’ 안에서 그를 다시 만날 일은 없을 터이니, 어서 가라!”

봉음이 말했다. “이만 물러가겠다.”

추오상이 말했다. “지금 이 순간부터 너는 말버릇을 고쳐야 한다. 다시는 비자라며 자신을 낮추어 불러서는 안 되고, 나를 부궁주라 불러서도 안 된다.”

봉음이 상당히 머뭇거리며 말했다. “그럼 뭐라고 불러야 하나?”

추오상이 말했다. “너는 나를 추 공자라 부르면 된다.”

봉음이 말했다. “명령을 따르겠다!”

그러고는 가볍게 절을 올린 후, 몸을 돌려 강포진을 향해 달려갔다.

추오상은 그녀의 가냘픈 신형이 사라지는 것을 배웅하고 나서야 비로소 완만한 걸음으로 상류를 향해 걸어갔다.

그는 목적도 없이 거닐었다. 눈앞의 상황은 마치 자신이 어떤 미진(迷?) 속에 빠져든 것 같았고, 게다가 갈수록 깊이 함몰되는 형국이었다. 제때에 스스로 벗어나지 못한다면 머리까지 잠겨 파멸할지도 몰랐다.

강바람이 얼굴을 때렸다. 비록 살을 에듯 차가워 사람을 움츠러들게 만들었으나, 도리어 사람의 지혜를 맑고 깨끗하게 돋우어주기도 했다. 추오상은 커다란 바위 위에 앉아 눈을 감고 깊은 사색에 잠겼다.

추오상은 침묵 속에서 문득 깨달은 바가 있었다. ‘백화궁’ 궁주 염군도(閻君濤)와 ‘금도’ 두동툰(杜桐屯)은 아무래도 서로 한패인 듯했다. 하룻밤 동안의 긴 대화와 은밀한 모의는 온통 함정이었고, 그의 아버지가 아직 인간 세상에 살아 있다는 말 역시 당연히 기만책이었던 것이다. 그들의 목적이 어디에 있는지 추오상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었다. 하늘의 별자리가 옮겨가며 이미 자시(子?)로 접어드는 것을 보며, 그는 자신도 모르게 길게 탄식하고는 쓸쓸한 신형으로 강가 부두를 향해 걸어갔다.

그는 이미 날이 밝는 대로 길을 떠나 고향으로 돌아가기로 결심했다. 다른 일들은 훗날 다시 도모하기로 했다. 이번 걸음의 목적이 비록 온전히 신의를 지키기 위해 그 ‘용연묵(龍涎墨)’을 주성한에게 전달하여 그의 효심을 이루어주기 위함만은 아니었다. 추오상 역시 이번 기회를 틈타 선인의 유물 속에서 실마리를 찾아내고 싶었다.

그렇다면 서둘러 ‘만인미(萬人迷)’ 강추로를 강포진으로 데려와야 했다. 따라서 그는 반드시 다시 한번 금릉으로 가야만 했다.

부두에 다다라 그가 목소리를 높여 외쳤다. “사공!”

쾌정(快艇) 한 척의 선창 휘장이 즉시 걷히더니, 정장한 장한 한 명이 걸어 나와 대답했다. “손님, 배를 통째로 빌리시려나?”

추오상이 말했다. “내가 은 다섯 냥을 줄 테니 왕복으로 배를 빌리겠다. 다만, 너는 맞은편 강가에서 잠시 기다려주어야 한다.”

정장한 장한이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손님, 어서 배에 오르라!”

추오상이 발끝을 가볍게 튕기니 이내 쾌정(快艇) 위로 껑충 뛰어올랐다.

정장한 장한이 대나무 상대를 한 번 찌르자 배는 이내 강가를 떠나 나아갔다.

배가 강 한가운데 이르렀을 때, 그 정장한 장한은 배를 저으며 말했다. “이 사람은 금 형님의 부하다.”

추오상은 아는 체 마는 체하며 나지막이 대답했다.

그 정장한 장한이 또 말했다. “주 소협의 당부가 있었기에, 이 사람은 아는 상황을 사실대로 추 부궁주님께 보고하지 않을 수 없다.”

추오상이 몸을 돌려 선미를 마주하고 온화하게 말했다. “말씀하시라.”

배를 젓는 장한이 말했다. “맞은편 부두에 중병이 매복해 있으니, 아무래도 추 부궁주님을 겨냥해 설비해둔 듯하다.”

추오상이 말했다. “귀하가 어찌 알았나?”

배를 젓는 장한이 말했다. “양안의 부두는 바로 금 형님의 세력권이다. 아주 작은 기척이라도 있으면 수방(水幇) 형제들의 귀를 피하기 어렵다.”

추오상이 말했다. “상대방의 내력을 알 수 있나?”

배를 젓는 장한이 말했다. “모두 낯설고 눈에 띄는 자들이나, 금릉 두 부(府)와 연관이 있음은 틀림없이 단정할 수 있다.”

추오상이 말했다. “무엇을 보고 그리 생각하나?”

배를 젓는 장한이 말했다. “두 부의 총관인 ‘칠성지(七星指)’ 채금당이 그 무리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적이 있다.”

추오상이 한동안 침吟하더니 말했다. “고맙다. 금 형님에게도 대신 감사의 뜻을 전해달라.”

배를 젓는 장한이 말했다. “추 부궁주께서는 대처할 방책이 있으시나?”

추오상이 말했다. “군사가 오면 장수로 막고 물이 밀려오면 흙으로 덮을 뿐이다. 마침 내 ‘사절검’의 날카로움을 시험해볼 기회다.”

배를 젓는 장한이 말했다. “이 사람이 보기에는 그리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추오상이 자신도 모르게 가벼운 감탄사를 내뱉으며, 형형한 눈빛으로 상대방을 주시했다.

배를 젓는 장한이 말했다. “추 부궁주께서는 단지 가실 뿐만 아니라 돌아오셔야 하니, 분명히 몸에 중대한 일이 있으실 터이다. 그 무리를 건드리지 않는 것이 상책이다.”

추오상이 말했다. “하지만 그들이 부두를 지키고 있지 않은가.”

배를 젓는 장한이 말했다. “우리가 다른 곳을 택해 상륙한다면, 상대방에게 발각되지 않을 것이다.”

추오상이 생각해보니 과연 일리가 있었고, 또한 그는 김전표의 부하들이 결코 자신 앞에서 궤계를 부리지 않을 것이라 확신했기에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다면 전적으로 귀하의 뜻에 따르겠다.”

배를 젓는 장한이 즉시 키를 돌려 방향을 바꾸었다. 쾌정(快艇)은 강 한가운데의 모래톱을 지나쳐 갈대숲으로 파고들더니 상류를 향해 저어갔다. 비록 역류를 거슬러 올라가는 길이었으나 여전히 나는 듯이 신속하게 달렸다.

잠시 후, 쾌정(快艇)이 어느 가파른 절벽 아래에 멈추어 섰다.

배를 젓는 장한이 말했다. “이곳에 배를 대는 것은 결코 평범한 사람이 예상할 수 없다. 추 부궁주께서는 상륙하시라!”

추오상이 고개를 들어 바라보니, 그 절벽은 적어도 스무 장은 되어 보였다. 만약 처음 금릉에 왔을 때였다면 배 위에서 단번에 절벽 꼭대기까지 뛰어오르는 것은 감히 상상도 하지 못했을 터였다. 지금은 공력이 배가되었으니 한 번 시도해볼 만은 했으나, 아주 확신이 서지는 않았다.

그리하여 추오상은 칠흑 같은 밤하늘 속에서 절벽 위에 발을 디뎌 힘을 얻을 만한 곳이 있는지 살펴보며, 슬쩍 말을 붙여 물었다. “이곳은 금릉 성내와 얼마나 떨어져 있나?”

배를 젓는 장한이 말했다. “서쪽 성곽과 불과 삼 리 거리다....”

어조를 약간 가다듬으며 이어 말했다. “이곳은 강물이 급하여 쾌정(快艇)을 오래 대어두기 불편하다. 추 부궁주께서 대략 얼마 만에 돌아오실 수 있는지 말씀해주시면, 이 사람이 그때 다시 이곳으로 마중을 오겠다.”

추오상이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대략 밥 한 끼 먹을 시간이면 갔다가 돌아올 수 있을 것이다.”

배를 젓는 장한이 말했다. “이 사람이 시간에 맞추어 배를 몰고 마중을 오겠다.”

추오상이 오랫동안 관찰해보았으나 절벽은 거울처럼 매끄러워 발을 디뎌 힘을 얻을 만한 곳이 단 한 군데도 없었다. 하지만 그는 김전표의 부하 앞에서 약한 모습을 보일 수 없었기에, 갑자기 나직하게 기합을 넣으며猛하게 몸을 날려 도약했다.

이 한 번의 도약은 적어도 스무 장 가량은 되었으니, 당금 무림에서 아마 다시는 제이인을 찾을 수 없을 터였다.

비록 이와 같았으나 추오상은 여전히 대략 다섯 자가량 거리가 모자라 절벽 꼭대기에 올라서지 못했다.

그의 신형이 아래로 추락하려 할 때, 갑자기 배를 젓는 장한이 목소리를 높여 외쳤다. “이 사람이 추 부궁주님을 한 팔 돕겠다.”

추오상이 고개를 숙여 아래를 바라보니, 그 배를 젓는 장한이 대나무 상대를 곧게 뻗치고 있었다. 추오상이 반공 중에서 고맙다는 말을 내뱉으며 발끝으로 대나무 상대 위를 살짝 딛고 다시 한번 위로 솟구쳤다.

이번에는 아무런 힘도 들이지 않고 절벽 꼭대기 위로 사뿐히 착지했다.

추오상 역시 마음속으로 은밀히 감탄하고 공경하는 마음이 생겼다. 자신이 발끝으로 가볍게 디뎠다 해도 분명 천균의 기세가 실렸을 터인데, 급류 속에 있는 배 위에서 배를 젓는 장한이 그것을 안연하게 받아내었으니 상대방의 공력 또한 가늠할 수 있었던 것이다.

추오상이 절벽 꼭대기에 올라선 후 고개를 돌려 아래를 바라보니, 발아래에 있던 쾌정(快艇)은 이미 물결을 따라 신속하게 멀어져 가고 있었다.



이때 그는 이미 금릉성 내의 등불을 보았고, 시선을 멀리 던져 묵묵히 살피며 방위를 똑똑히 기억해 둔 후에야 성내를 향해 달려갔다.

그저 눈 깜짝할 사이에 추오상은 이미 ‘와룡거(??居)’ 앞에 다가왔다.

커다란 저택은 어두워 빛이 보이지 않았으나, 추오상은 문도 두드리지 않은 채 몸을 날려 담을 넘어 들어갔다.

그가 바닥에 착지하자마자, 나지막한 목소리가 묻는 것이 들렸다. “추오상이냐?”

이렇듯 단도직입적으로 이름을 부르는 것만 보아도 말하는 자가 틀림없이 강추로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

추오상이 신형을 돌려 바라보니 과연 그녀였기에, 황급히 물었다. “그들은 어디 있나?”

강추로가 말했다. “잠자리에 들었다. 자시(子時)와 축시(丑時) 두 시진은 내가 당번이다.”

추오상이 말했다. “우리는 가자.”

강추로가 말했다. “그들을 깨우지 않겠나?”

추오상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그만두자!”

말을 마치고는 돌멩이 하나를 집어 들고 분벽 위에 적었다. ‘본좌는 노희(路姬)와 따로 공무가 있어, 보름 후에 이곳에서 만나겠다.’

끝에 낙관은 남기지 않았으나 용희 무리가 그의 필체를 알아볼 터였고, 하물며 그가 사전에 용희에게 잠시 금릉을 떠나는 원인을 말해둔 적도 있었다.

두 사람은 ‘와룡거(臥龍居)’를 나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서성 밖으로 달렸고, 이내 방금 전 올랐던 그 절벽으로 다시 돌아왔다.

추오상이 아래를 내려다보니 쾌정(快艇)이 마침 절벽 아래로 저어 오고 있었기에, 그는 강추로의 손목을 덥석 잡으며 외쳤다. “나를 따라 아래로 뛰라.”

두 사람이 몸을 날려 추락하여 한쪽으로 치우침 없이 선두에 사뿐히 착지했는데, 배 몸체는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으니 이로써 배를 젓는 장한이 극히 비범한 공력을 지녔음을 더욱 잘 알 수 있었다.

추오상이 포권을 하며 말했다. “귀하의 공력이 지극히 심후한데, 함자를 여쭙겠다?”

배를 젓는 장한이 말했다. “수방 총호법 남표라 한다. 무명소졸이다.”

추오상이 말했다. “남 총호법이셨구나. 심야에 수고를 끼치니 참으로 감당하기 어렵다.”

남표(藍飄)가 말했다. “상황이 특수한 까닭에 금 형님께서 부하들을 온전히 안심하지 못하여 이 사람을 보내 모시게 한 것이다. 주 소협은 우리 방의 좋은 친구이고 추 부궁주 역시 주 소협의 좋은 친구이시니, 이 사람이 이치상 미약한 힘이나마 다해야 마땅하다. 추 부궁주께서는 너무 과하게 객기를 부리실 필요 없다.”

추오상이 말했다. “훗날 귀방의 금 형님을 직접 뵙고 감사를....”

말이 여기에 이르렀을 때, 갑자기 배 밑바닥에서 쿵 하는 소리가 들렸다.

남표의 신색이 번뜩이더니 나직하게 호통쳤다. “어느 방자한 놈이 감히 장강 수면 위로 와서 망신을 자초하느냐?”

손에 쥔 대나무 상대를 번개처럼 물속으로 찔러 넣었다가 수면 위로 뽑아 올렸을 때, 대나무 상대에는 이미 시체 한 구가 꿰어 꽂혀 있었다. 하지만 물속에는 한 사람만 있는 것이 아니었으니, 또다시 쿵 하는 소리가 들리며 선창에 이미 물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알고 보니 누군가 물속에서 배 밑바닥을 뚫어버린 것이었다.

남표가 허리춤에서 설포처럼 빛나는 비수를 확 뽑아 들고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왼손으로는 선현을 받쳐 들고 오른손으로는 비수를 단단히 움켜쥔 채 목소리를 높여 말했다. “추 부궁주께서는 마음을 놓으시라. 남표의 손에서 아직 배가 가라앉은 적은 없다.”

남표가 과연 배를 받쳐 들기는 했으나 강물이 급하여, 이 쾌정(快艇)은 한 번 제어를 잃자 즉시 빙글빙글 돌며 멈추지 않았다.

동시에 수면 위로 상어 가죽으로 만든 수고(水?)를 입은 장한 두 명이 또 솟구쳐 올랐는데, 한 사람은 단도를 쥐고 한 사람은 단검을 쥔 채 남표를 향해 포위를 펼치며 공격해 왔다.

남표의 수중 무공은 과연 비범했으나, 불행히도 한 손으로 배를 받치고 두 명의 흉악무도한 기습자를 마주하다 보니 대처하기가 제법 옹색했다.

추오상은 손을 검 자루에 얹어 사절검을 언제든 칼집에서 뽑을 수 있게 대기했다. 그러나 그의 검은 길이가 겨우 한 자 여덟 치에 불과한 데다 상대방이 물속에 있으니, 이내 영웅이 무력을 휘두를 ‘땅’을 잃은 격이 되었다.

강추로가 갑자기 크게 외쳤다. “남 총호법은 적을 상대하는 데 전념하라. 이 배는 첩신에게 맡기면 된다.”

말소리가 떨어지기가 무섭게 그녀는 이미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남표(藍飄)가 잠시 멍해졌으니, 설마 강추로가 물속에서 상대방이 구멍을 뚫어 물이 새는 이 배를 한 손으로 받쳐 들 수 있을지 다소 믿기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그녀가 물에 뛰어드는 자세를 본 순간, 그제야 그녀가 전문가임을 알아보았다.

남표가 마침내 손을 놓아주자 기세가 그야말로 크게 더해졌으니, 비수의 차가운 빛이 번뜩이고 신형은 영리하기가 영룡 같았다. 불과 몇 차례 합을 겨루지 않아 단도를 쥔 자가 손목을 상했고, 두 사람 모두 물속으로 가라앉아 다시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남표가 다시 물속으로 잠입하여 한 차례 수색한 후에야 다시 떠올라 말했다. “도적들이 이미 물러갔다.”

강추로가 말했다. “남 총호법! 귀하와 내가 좌우에서 힘을 합쳐 이 배를 맞은편 강가로 받쳐 가자!”

두 사람은 수성이 지극히 뛰어났기에 배를 받치고 나아갔다. 비록 속도는 크게 줄었으나 그리 힘을 들이지도 않은 채, 대략 밥 한 끼 먹을 시간 만에 마침내 맞은편 강가에 도달했다.

추오상이 상륙한 후 남표가 포권을 하며 말했다. “추 부궁주를 놀라시게 했으니, 이 사람이 죄를 청하겠다.”

추오상이 말했다. “이까짓 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다만, 감히 금 형님의 지면 위에서 일을 벌이는 자가 있으니 참으로 방비하지 않을 수 없다.”

남표가 말했다. “그 무리의 내력은 우리 방에서 틀림없이 찾아낼 수 있을 터이니, 자연히 그들의 목적이 어디에 있는지도 물어야겠다.”

강추로가 차갑게 말했다. “그걸 또 물을 필요가 있나? 자연히 우리 추 부궁주님을 겨냥하고 온 것이다.”

남표가 몸을 돌려 포권을 해 보이며 말했다. “낭자의 수성이 이리 정묘하니 이 사람도 드물게 보는 바다, 혹시 방명을 여쭈어도 되겠나?”

강추로가 말했다. “천한 이름은 주 소협께서 알고 계시니 틀림없이 귀방의 금 형님 귀에도 들어갔을 터다. 남 총호법께서 물어보시면 곧 알게 될 것이다.”

남표가 가벼운 감탄사를 내뱉더니, 다시 고개를 돌려 추오상에게 말했다. “이 사람은 이만 작별하겠다. 금 형님께 아뢰어 이 일을 명백히 조사한 후, 반드시 주 소협을 번거롭게 하여 내막을 전해 듣도록 하겠다.”

강추로가 말했다. “조사할 필요 없다. 온 자들은 유명한 ‘황하팔걸(黃河八杰)’이며, 그 단검을 쓴 자가 바로 팔걸의 우두머리인 ‘수중랑(水中狼)’ 구등(勾騰)이다.”

남표가 소리를 높여 말했다. “그자가 구등이란 말인가? ‘수중랑’의 무공은...?”

강추로가 말을 받았다. “나쁘지 않다.”

남표가 말했다. “하지만 그가 방금 전에는...?”

강추로가 말했다. “남 총호법에게 팔을 상한 단도를 쥔 자는 팔걸 형제가 아니다. 그의 출수를 보니 겨우 삼, 사류에 불과했는데, 이 사람이 결례가 될 말을 하자면 일 대 일로 구등이 남 총호법을 대했다면 결코 서너 초 만에 승부를 낼 수는 없었을 것이다.”

남표(藍飄)가 말했다. “이 사람도 구등(勾騰)의 대명을 들은 지 오래다. 낭자의 말씀이 지극히 옳거늘, 어찌하여 그가 황급히 도망쳤단 말인가.”

강추로(江秋露)가 말했다. “구등이 물속으로 달아난 것은 남 총호법 손에 쥔 비수를 두려워해서가 아니라, 아무래도 다른 원인이 있어서일 것이다.”

남표가 잠시 멍해지더니 말했다. “이 일은 서둘러 우리 방의 금 형님께 아뢰어야겠다. 이만 작별하겠다.”

강가에 매어둔 다른 쾌정(快艇) 한 척 위로 뛰어오르더니, 닻줄을 풀고 신속하게 달려가 버렸다.

강추로가 말했다. “우리는 어디로 가나?”

추오상이 말했다. “먼저 마을의 여관으로 가서 네 몸의 옷부터 말리자!”

두 사람은 곧장 강포진을 향해 달렸다. 긴 거리는 적막했고, ‘순풍객잔(順風客棧)’ 역시 문을 닫아걸고 있었다.

추오상(秋傲霜)이 문짝을 마치 우레가 울리듯 두드리고 나서야 겨우 가게 문이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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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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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노상인(路上人) | 작성시간 26.06.19 깊이 감사드립니다. 혹시 인터넷 회선 어디 쓰시는지요. 저는 kt 몇 년 쓰다가 지역 케이블로 옮겨 10여년 넘게 쓰다가 다시 kt로 옮겨시 7-8년 되어가는데 그 어느 쪽도 그런 현상은 없었는데요. 간혹 케이블 쓸때 무슨 공사 들어간다가 하면 미리 공지하고 몇 시간 못쓴 적은 있었지만요. 제 경험으론 kt가제일 안정적인 듯했습니다. 약정기한이 다 되어가시거나 넘겼으면 kt쪽도 한 번 고려해 보시지요.
  • 작성자용가가 | 작성시간 26.06.19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 작성자왕타 | 작성시간 26.06.20 고맙습니다
  • 작성자조상 | 작성시간 26.06.20 감사합니다
  • 작성자사니조아 | 작성시간 38분 전 new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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